
처음 간 식당에서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자리를 잡는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 난간을 두르고 높인 좌석이 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나를 내려다보며 밥을 먹는 구조다. 이상하다 싶어 둘러보니 공간 전체가 둘로 나뉘고 내 쪽 좌석은 모두 저쪽보다 낮았다. 하필 내가 그 마주 가장자리에 앉은 거다. 아직은 내 옆자리에 손님이 없지만 언제라도 나는 ‘아랫것’처럼 밥을 먹어야 할 판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세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오고 직원은 바로 그 자리로 그들을 안내한다. 별생각 없이 편의에 따라 한 행동일 테지만 식당이 거의 빈 상태인지라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사람이 좌정한다. 바로 다음 순간 그중 한 사람이 말한다. “저쪽 자리로 옮기겠습니다. 옆자리 앉으신 분이 불편하시지 않겠습니까. 다른 자리 많은데 구태여···.” 쉽지만 쉽지 않은 배려다. 귀가 쩍 열린다.
아주 특이한 목소리를 지닌 남자 사람이다. 명노민 배우 톤에 파스텔 음색이 깊게 깔린 매혹을 지녔다. 듣자마자 심사가 여유롭고 푸근해진다. 일부러 목소리를 작게 하지는 않아서 일행 이외 사람들에게도 그 말이 들리는데 여낙낙히 열리는 미닫이문처럼 지나간다. 어머니와 옆지기로 보이는 다른 두 여자 사람 음성은 상대적으로 쟁쟁한데, 그 둘을 다독이듯 대화 소리를 알맞게 수렴시키고 있다.
세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거의 쉴 틈 없이 조곤조곤 이어간다. 남자 사람 목소리보다 더 경이로운 사건에 내가 빠져들고 있음을 어느 순간 알아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대화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개는 한 사람이 음성·어투, 발언 시간·분량, 제스처 따위로 꼭대기 올라앉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에 민감한 나는 그 여하를 누구보다 정확히 감지한다. 대단히 드문 경우다. 아름답고 귀하다. 감사하다.
저 가족 구성상으로 흔히 그려낼 수 있는 풍경이 전혀 아니다. 나는 소주 한 잔 가득히 따라 마시며 생각에 젖는다. 아무리 크고 잘난 담론으로 떠들어도 결국 민주정치는 이 소담한 풍경을 밑절미 삼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가 살풍경이면 정치는 민주를 떠난다. 떠난 민주를 되돌리려 광장은 여태 함성중이다. 함성은 이 세 사람 목소리를 품어 번지게 한다. 나는 광장으로 되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