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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ㅣ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가끔 별말 아닌데 그리고 때론 뻔한 말들 같은데 피식할 때가 있지. 왜 평소 쓰는 말투에 센스가 묻어나서 부러운 사람들 있잖아.
카톡 대화방에서, 댓글 하나하나에도 어쩜 그리 남들과는 달라 보이는 어법을 구사하는지. 평소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방식도 다양하겠지만 생각의 다채로움이 보는 이의 마음의 양식이 될 때 글을 좀 쓴다는 이들은 뿌듯할 거야.
에세이에도 다양한 느낌과 무게감이 있지만 여기 있는 글들은 그냥 매일 먹는 밥과 반찬에 가끔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푸짐한 샐러드 같은 느낌이랄까. 알코올은 일도도 없는 청량한 음료 같기도 하고. 순전히 어피치의 엉덩이에 힌트를 얻어 시작했겠지만 솔로들의 든든한 말벗이 되어주고도 남을 듯해.
평소 이런 문장들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내게 어피치든 라이언이든 캐릭터 하나 가지고 책 한 권을 꾸려낸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해. 이거는 순전히 백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국 같은 것들이니까 아마 공감하며 박수 짝짝, 이마 철썩 때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어피치 캐릭터의 앙증맞은 핑크 얼굴만 알았지 뭐 정확히 얘가 어떤 애인지 알려고 한 적은 없었어.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친구인 줄도 몰랐는데 얜 그렇게 안 보이는데 성격이 급하구나. 핑크공주가 의외인걸. 난 성격 급한 사람 싫어하는데 요즘 빨리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달고 사는 걸 보니 내가 싫어지네. 그래도 내게는 없는 애교와 흥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하다.

요즘은 일상을 살면서도 곰살스럽게 무언가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지가 않네. 아마도 난 지금 생계와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해야 하는 샌드위치 인생이라 그런지도 모르지. 그래서 난 고가의 럭셔리한 선풍기가 더 멋스럽다는 생각뿐 날개 달린 선풍기의 추억 따위를 아쉬워할 여력도 없이 살았네. 아이들이 선풍기 앞에서 아~~아~~~아~~~ 하던 추억이 떠올라서 좀 시끄럽지만 날개 달린 선풍기를 계속 써야겠다고 맘먹었어.

내가 카카오 이모티콘 중 즐겨 쓰는 넘이 하나 있어. 어피치가 나무 작대기로 뒤통수를 때리는.ㅋㅋ 그만큼 나뿐 아니라 정신 줄 놓고 댕기는 이들이 많단 얘기이기도 해. 얄미운 상사, 내 뒷담화를 까는 동료, 잘난척하는 친구, 그리고 정신 못 차리는 나 자신과 우리 큰 아들넘에게도. 이보다 화끈한 이모티콘은 없어.
내가 나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리고 내가 싫을 때, 우리는 수많은 순간 다른 나를 만나. 그럴 때마다 생각하지. “나”에 대해.
하지만 중요한 건 나를 너무 내몰지 않는 거야. 어제 실수를 잔뜩한 나도, 사랑에 실패한 나도, 뚱뚱한 나도, 조금 얼큰이인 나도, 모두 내 모습이니까 예쁘게 보자고 다시 다짐을 해보자. 살아보니 제일 어리석은 건 자기 자신 때문에 힘든 게 제일 힘든 거더라고. 스스로에게 만족 못 해서 다른 것들로 채우려고도 하지 마. 더 허기만 질뿐이니까.
그러고 보니 정말 공감 가는 내용이 있더라고.
“배와 가슴의 경쟁 관계” 이거 완전 내 얘기아냐? ㅎㅎ
요즘 배가 자꾸 가슴을 이기려고 해서 좀 슬프지만 나도 다시 가슴에게 응원을 하려고 해. 가슴 화이팅!
사진은 지극히 정직한데도 늙어 보이게 나온다며 사진 거부반응을 보이는 내게 오늘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고 날씬한 날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 투덜대지 말고 맘껏 브이하고 찍어야겠더라고.
그리고 평범한 이들의 잇 템. 스트라이프 티셔츠 한 장이 없다는 사실에 당장 하나 주문했어. 그것도 1+1으로! 서로에겐 특별한 존재여야겠지만 결국 우린 평범한 이들이니까. 뭐 가끔은 이왕이면 나도 좀 특별난 존재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대한 것에 상처를 받는다는 말도 참 일리가 있더라. 그래서 희망고문이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우리를 다시 세우는 것도 희망이고, 성장이라는 결이 쌓여 경험이 된다는 말이 제일 좋았어. 이건 내 아이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
“아이 엠 그라운드”라는 게임에도 의미를 붙이자 이름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어. 세상과 좀 더 가까워지고 나라는 존재뿐 아니라 내 이름 석 자와 내 주변 사물까지도 나와 연관이 되면 다 특별한 의미가 된다는 걸 깨달았어. 그러니까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주변이 다가올꺼야.
아무튼 어피치의 말랑말랑한 엉덩이덕에 내 젖은 일상을 잘 건져 말려놓을 수 있었어. 그래도 이 책의 주요 타깃은 사십 대보다는 독신 청춘들에게 더 어울릴듯해. 나같은 세대는 말보다 세월로 위안을 얻는 세대라~~^^ 그래도 마음이 꽈당할것 같은 이들은 어피치가 도움이 될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