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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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2012년부터 마음에 담아 둔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5·18항쟁에 대한 폄훼가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상황이 두 가지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들을 현재까지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박정희 군부독재부터 이어져 온 지역 모순과 차별을 끈질기게 부추기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이 기록을 쓰게 만들었다.”-p.6

 

 

 

우리는 광주항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우리 현대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나조차도 부끄럽지만 학창시절은 입시로 인해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 지나버렸고 이십 대부터는 나만 생각하느라 역시 관심 밖이었다. 정치권은 늘 지역색으로 편이 갈려 내 편이 아니면 다 빨갱이고, 일베라는 족속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남의 아픔을 후벼파고 조롱한다. 사건의 진실은커녕 본질마저도 왜곡하고 은폐하는 것도 모자라 날조하여 퍼다 나른다. 게다가 역겹게도 사건을 지휘했던 우두머리는 여전히 큰소리치며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시름 중이다. 이념과 사상으로 이 작은 나라가 자꾸만 쪼개것이 한심스럽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날의 일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알아야 올바른 소리에 힘을 보탤 수 있으니까.

 

이 책의 집필 목적도 그래서였다. 오죽했으면 그 시절의 살아있는 증인들이 끄집어내기도 몸서리쳐질 기억들을 다시 불러내었을까.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리는 길만이 나 같은 독자뿐 아니라 지겹다고 떠들어대는 인간들 중 하나라도 반성하게 만들 것 아닌가.

 

이 책은 녹두서점을 운영했던 김상윤님과 그의 아내 정현애님, 그리고 김상윤의 남동생 김상집님. 이 세 분이 겪은 5.18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기술한 증언집이자 역사서다. 오히려 너무나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문장에 가슴이 더 먹먹해지고 애써 끄집어낸 기억들에 미안한 마음마저든다. 그렇지만 정말로 감사하다. 이런 분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민주주의의 시작은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녹두서점의 탄생 배경도 지식인들의 소통이 목적이었다. 김상윤은 서점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며 의식화 작업을 해나갔다.

비판적 의식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물줄기를 제공하는 수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p.18

그렇게 녹두서점은 5.18항 쟁의 또 다른 산실이었다. 유신 체재를 반대하고 현 정권에 조용히 목소리를 모으려 했던 김상집 덕분에 이곳은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비밀스러운 장소가 된다. 게다가 노총각의 눈에 배필로 찍힌 정현애는 김상집이 잡혀간 후에도 서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책임진다. 서점은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하며 그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서점은 상황실 역할을 하며 서로의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여성들의 활약상을 볼 수 있어 울컥했다. 김상현 또한 제대 후 야학운동을 주도하고 형수와 처제를 돕는 일에 모든 힘을 보탠다. 한 가족이 이렇게 똘똘뭉쳐 민주화를 위해 뛰어들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광주는 희그야말로 희생양이 되었다. 박정희가 죽고 막을 내릴 줄 알았던 유신 체재가 전두환의 군부독재로 더 악랄해지고 언론은 더욱 더 철저히 통제되어 민중을 눈과 귀를 막는다. 군부독재 타도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던 10일간의 광주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된다. 무차별 폭력과 폭격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은폐된다. 감시와 미행 그리고 연행으로 사람들은 사라진다. 민간인들은 눈앞의 광경이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다. 설마 하던 일들이 정말로 일어나자 광주는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 그 자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처참한지 민간인에게 총칼을 휘두른 군인과 경찰들도 미친것 같다. 영화 변호인과 택시를 보았을 때 느꼈던 참담함과 울분이 몇 배가 되어 나를 흔들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남겨진 사진들은 들여다보는 것 자체만으로 울컥하게 만든다. 정작 광주를 지킨 자들은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간첩도 아니고 폭도도 아닌 광주시민들이 직접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것이었다. 그들은 계엄군에 맞고 쓰러지는 학생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택시 운전자들은 자진해서 다친 사람들을 실어 날랐고, 버스 운전기사들도 시위에 동참했으며, 시민들은 도망치는 학생들을 숨겨주거나 주먹밥을 나르기도 한다. 심지어 유흥업소 여성들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동참하며 광주를 불붙인다.

 

그러나 계엄군의 만행은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지나다 맞아죽은 사람, 호통을 치다 머리통이 깨진 노인뿐 아니라 남녀 구분 없이 속옷만 입힌 채 구타를 당하고, 수영하던 소년들이 총에 맞아 죽는다.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했던 그때의 당사자들은 대체 지금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뿐 아니라 붙잡혀 온 자들에게는 빨갱이, 폭도, 극렬분자 등의 혐의를 뒤집어 씌워 잔악하게 고문하고 사건을 날조한다.

 

지독한 고문에도 살아남은 이들은 또다시 싸워야 했다. 김상현 씨는 그때의 심정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사형이 아닌 20년이 구형된 순간 기뻐했던 마음 때문에 여전히 괴롭다고. 그래도 정현애와 구속자 가족들의 노고 덕에 죄 없는 광주를 폭도의 도시로 전락시킨 억울함이 풀린 것이 아닐까 한다.

 

 

 

광주는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권력에 눈먼 미친놈들 때문에 죄 없는 민간인들이 학살을 당했다. 살아남은 자들마저도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힘겨운 일상을 버텨내고 있다. 5월이 돌아오면 김상집씨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은 여전히 죄책감에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폭도로 내몰린 그들이 민중 투사가 되기까지 험난했던 과정들을 들여다보며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날 광주의 실상과 그들이 지켜내고자 한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과 유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p.s) 내가 아는 쌍욕이란 욕은 다 뱉어내며 읽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버젓이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은 인간들이 득실대기 때문이다.

 

며칠간 밥도 못 먹었다는 청년, 양말이라도 갈아 신었으면 좋겠다던 어린 시민 군,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에 밥이라도 해 주고 싶어 자신은 남아 있겠다던 아주머니, 버스터미널에서 구두를 닦다가 공수의 만행에 떨쳐 일어선 박래풍, 술집에서 술을 팔다가 항쟁에 발 벗고 뛰어든 아가씨! 이 책은 바로 이들에 대한 헌사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자괴감이 온몸을 감싼다.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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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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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미클로스와 어머니 릴리는 1945년 9월부터 1946년 2월까지 6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다가 스톡홀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50년 동안 나는 두 분이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998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어머니는 꼭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내게 수레국화처럼 파란색과 진한 붉은색의 실크 리본으로 묶어놓은 커다란 편지 다발 두 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눈 속에 희망과 불안이 어려 있는 것을 보았다. - 에필로그 중에서

 

 

이 이야기는 기적이 만들어 낸 희망과 희망이 만들어낸 기적이라는 두 요소를 다 담고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성인 남성이 29킬로의 몸무게와 치아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그런 그에게 다시 삶의 닻은 내려졌지만 죽음은 닻을 다시 올리려 한다. 남은 시간은 6개월. 결핵균은 그의 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것이고 그는 한 번씩 찾아오는 발작에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그를 찾아오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새벽 4시를 기점으로 오르는 체온이었다.

늘 그랬듯이 더도 덜도 아닌 38.2도였다.

신열은 꼭 강도처럼 슬그머니 찾아와서 자신감을 심어주는 척하다가 새벽의 회색빛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곤 했다. -p.73

 

그가 지속적인 고열에도 불구하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보다 결혼에 대한 열망이 간절해진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오픈 된 편지 꾸러미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정확한 속내를 알 수 없을는지는 모르겠다. 이대로 죽는 게 억울해서 결혼이라도 하겠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결혼이었는지 말이다.

 

미클로스는 강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스페인의 한 병동에서 다시 시한부를 선고받지만 그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결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처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정보를 손에 넣고 그녀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무려 117명에게.

 

그는 어린 시절 서점을 운영했던 아버지 덕에 책과 함께 성장했다. 덕분에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이었던 그는 편지를 쓰면서 삶의 에너지를 느낀듯하다. 그렇다고 그가 로맨티스트로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전쟁이 그의 낭만스러움을 빼앗아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열정이 많은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시한부생앞에서 결혼을 결심하는 이는 흔치 않으니까. 어쩌면 무언가를 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느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의 편지를 받은 순간 그녀들이 느낄 감정을 상상하는 것도 설레는 일이니까.

 

편지를 받은 이들 중 누구는 무시했을 것이고 누구는 편지가 잘못 배달된 것이라 여긴 이도 있었을 것이다. 릴리도 그런 여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픈 그녀도 병원에서의 생활에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그의 편지에 답장을 쓴다. 그렇게 편지가 오가는 사이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가슴 한구석에 온기가 머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것보다 이제는 살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미클로스는 엉뚱하고 유쾌하고 재치가 넘쳤다. 시한부 인생임에도 담배는 끊을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릴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다른 여성들과 편지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난처한 순간도 겪게 된다. 편지를 받은 여인 중 클라라라는 여성은 미클로스를 만나기위해 달려왔다.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한다는 같은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재치있게(?) 그 순간을 피해 간다. 실은 자신이 친구의 편지를 대필한것이라고.ㅎ 클라라를 생각하면 조금 난감하고 안타깝다고 해야하나..

결혼반지를 사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담대한 꾀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게다가 그는 사소한 행동에도 자신과의 내기를 건다. 나 같으면 뒤로 나자빠지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하지 않을 같은데 그가 의자를 기울여 두 다리를 들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려던 행동만 보아도 그는 어딘가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때도, 그리고 나중에도.

-p.167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과거를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책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과거의 장면들을 접하는 내내 활자 위에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인간의 잔혹함의 끝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오죽하면 릴리는 개종을 하고자 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지옥 같은 경험을 한 그녀에게 자신의 뿌리조차 원망스러워 부정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들은 그렇게 6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서로에게 진심을 전했고 희망만을 말하려 했다. 그러는 사이 미클로스의 새벽의 열기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6개월보다 더 오래 살게 될 기적의 순간을 맞이한다. 순간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는 이외수의 시가 떠올랐다. 미클로스의 강한 믿음과 선택은 결핵균마저도 발효가 된듯하다.

 

실화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 건 삶에 대한 열정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삶에서 그가 찾으려 한 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에 그 어떤 로맨스보다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미클로스가 쓴 시를 읽고 나니 그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린 형제여, 만일 내게 아들이 생긴다면

그에게 가르쳐 총칼은 절대 진실이 아니라고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건

멀리 날아가는 로켓포가 아니라고

그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르게 되면

납 병정도 무기도 사주지 마

대신 나뭇조각을 사줘

그 아이가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건설하는 법을 배우도록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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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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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별말 아닌데 그리고 때론 뻔한 말들 같은데 피식할 때가 있지. 왜 평소 쓰는 말투에 센스가 묻어나서 부러운 사람들 있잖아.

카톡 대화방에서, 댓글 하나하나에도 어쩜 그리 남들과는 달라 보이는 어법을 구사하는지. 평소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방식도 다양하겠지만 생각의 다채로움이 보는 이의 마음의 양식이 될 때 글을 좀 쓴다는 이들은 뿌듯할 거야.

 

에세이에도 다양한 느낌과 무게감이 있지만 여기 있는 글들은 그냥 매일 먹는 밥과 반찬에 가끔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푸짐한 샐러드 같은 느낌이랄까. 알코올은 일도도 없는 청량한 음료 같기도 하고. 순전히 어피치의 엉덩이에 힌트를 얻어 시작했겠지만 솔로들의 든든한 말벗이 되어주고도 남을 듯해.

 

평소 이런 문장들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내게 어피치든 라이언이든 캐릭터 하나 가지고 책 한 권을 꾸려낸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해. 이거는 순전히 백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국 같은 것들이니까 아마 공감하며 박수 짝짝, 이마 철썩 때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어피치 캐릭터의 앙증맞은 핑크 얼굴만 알았지 뭐 정확히 얘가 어떤 애인지 알려고 한 적은 없었어.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친구인 줄도 몰랐는데 얜 그렇게 안 보이는데 성격이 급하구나. 핑크공주가 의외인걸. 난 성격 급한 사람 싫어하는데 요즘 빨리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달고 사는 걸 보니 내가 싫어지네. 그래도 내게는 없는 애교와 흥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하다.

 

 

 

요즘은 일상을 살면서도 곰살스럽게 무언가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지가 않네. 아마도 난 지금 생계와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해야 하는 샌드위치 인생이라 그런지도 모르지. 그래서 난 고가의 럭셔리한 선풍기가 더 멋스럽다는 생각뿐 날개 달린 선풍기의 추억 따위를 아쉬워할 여력도 없이 살았네. 아이들이 선풍기 앞에서 아~~아~~~아~~~ 하던 추억이 떠올라서 좀 시끄럽지만 날개 달린 선풍기를 계속 써야겠다고 맘먹었어.

 

 

 

내가 카카오 이모티콘 중 즐겨 쓰는 넘이 하나 있어. 어피치가 나무 작대기로 뒤통수를 때리는.ㅋㅋ 그만큼 나뿐 아니라 정신 줄 놓고 댕기는 이들이 많단 얘기이기도 해. 얄미운 상사, 내 뒷담화를 까는 동료, 잘난척하는 친구, 그리고 정신 못 차리는 나 자신과 우리 큰 아들넘에게도. 이보다 화끈한 이모티콘은 없어.

 

내가 나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리고 내가 싫을 때, 우리는 수많은 순간 다른 나를 만나. 그럴 때마다 생각하지. “”에 대해.

하지만 중요한 건 나를 너무 내몰지 않는 거야. 어제 실수를 잔뜩한 나도, 사랑에 실패한 나도, 뚱뚱한 나도, 조금 얼큰이인 나도, 모두 내 모습이니까 예쁘게 보자고 다시 다짐을 해보자. 살아보니 제일 어리석은 건 자기 자신 때문에 힘든 게 제일 힘든 거더라고. 스스로에게 만족 못 해서 다른 것들로 채우려고도 하지 마. 더 허기만 질뿐이니까.

 

그러고 보니 정말 공감 가는 내용이 있더라고.

“배와 가슴의 경쟁 관계” 이거 완전 내 얘기아냐? ㅎㅎ

요즘 배가 자꾸 가슴을 이기려고 해서 좀 슬프지만 나도 다시 가슴에게 응원을 하려고 해. 가슴 화이팅!

 

사진은 지극히 정직한데도 늙어 보이게 나온다며 사진 거부반응을 보이는 내게 오늘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고 날씬한 날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 투덜대지 말고 맘껏 브이하고 찍어야겠더라고.

그리고 평범한 이들의 잇 템. 스트라이프 티셔츠 한 장이 없다는 사실에 당장 하나 주문했어. 그것도 1+1으로! 서로에겐 특별한 존재여야겠지만 결국 우린 평범한 이들이니까. 뭐 가끔은 이왕이면 나도 좀 특별난 존재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대한 것에 상처를 받는다는 말도 참 일리가 있더라. 그래서 희망고문이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우리를 다시 세우는 것도 희망이고, 성장이라는 결이 쌓여 경험이 된다는 말이 제일 좋았어. 이건 내 아이들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

 

“아이 엠 그라운드”라는 게임에도 의미를 붙이자 이름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어. 세상과 좀 더 가까워지고 나라는 존재뿐 아니라 내 이름 석 자와 내 주변 사물까지도 나와 연관이 되면 다 특별한 의미가 된다는 걸 깨달았어. 그러니까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주변이 다가올꺼야.

 

아무튼 어피치의 말랑말랑한 엉덩이덕에 내 젖은 일상을 잘 건져 말려놓을 수 있었어. 그래도 이 책의 주요 타깃은 사십 대보다는 독신 청춘들에게 더 어울릴듯해. 나같은 세대는 말보다 세월로 위안을 얻는 세대라~~^^ 그래도 마음이 꽈당할것 같은 이들은 어피치가 도움이 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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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벌레 나가신다! 아이스토리빌 38
신채연 지음, 김유대 그림 / 밝은미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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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책을 보고 나면 마음공부를 다시 하고 있는 듯 새롭다. 아이들에게는 도덕을 중요시하고 공감력을 강조하면서 정작 어른들은 그런 마음과 비껴가면서 살고 있는 듯 해서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당연히 한결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요즘은 삐뚤어진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눈에 비친 단면만 보거나 편향적인 정보에 치우쳐 쉽게 결론을 내리고 믿어버린다. 외모만으로, 사는 정도로, 옷차림으로 심지어는 피부색이나 국적 등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우리가 그렇게 갖는 생각들이 편견이라는 것도 모른 채 자라나 어른이 되어서는 더 심각한 경계를 만들며 살아간다.

세상은 이미 가까워져 있지만 차별과 편견의 뿌리는 자꾸만 자라난다. 왜 우린 알면서도 뽑아 버리지 않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초등 저학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종에 대해, 그리고 거짓 정보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오해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다문화시대로 인해 요즘은 같은 반 친구 중에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을 쉽게 보게 된다. 하지만 잘 지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이 책에서는 그런 친구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의미를 전한다. 머릿니 소동으로 인해 자연스레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는 점이 무척 재미있었다.

 

오봉이는 친구들과 파자마를 계획하고 있다. (파자마는 친구들과 집에서 모여 하룻밤 자면서 노는 것인데 나도 아이들 파자마를 무진장했던 터라 우리 집은 늘 하숙집을 방불케했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오봉이의 머리에 머릿니가 생긴 것이다. 친구들에게 거짓 핑계로 파자마는 연기하였지만 문제는 금세 반 아이들에게 소문이 퍼진 것이다. 머릿니를 향한 아이들의 공포가 그림에서 진하게 풍겨온다.ㅋ

 

 

 

오봉이네 반에는 피부색이 다른 친구 미노란 아이가 있다. 얼굴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미노는 늘 혼자다. 하지만 미노는 크게 주눅 들어 하지 않는 모습이다. 워낙에 그런 반응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림에 반응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재미없어서 포기한다는 말에 내가 다 울컥한다. 수업 시간에 얄밉게 미노 주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망신을 주려 하지만 미노는 끄덕도 없다.

 

 

 

오봉이는 이제 외톨이가 되었다. 급식시간에도 아무도 곁에 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오봉이 앞에 미노가 다가와 위로의 손을 내민다. 오봉이는 평소 미노의 얼굴이 까매서 더럽다고 생각하고는 싫은 내색을 하지만 외톨이가 되어보니 미노의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오봉이는 그런 친구들이 얄미워서 친구들을 골탕 먹일 계획을 짜게 된다. 미노와 함께 말이다.

오봉이가 짠 작전이 진짜 얄밉게 웃긴다. 과연 잘 성공해서 오봉이의 섭섭한 마음이 풀어지게 될까.

중요한 건 이제 둘은 외톨이란 코드로 뭉쳤으나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된다. 벌레까지 나누면서 말이다.ㅋㅋ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아야만 그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공감력은 그런 자세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임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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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분홍색 부채 에놀라 홈즈 시리즈 4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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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는 요즘 범죄 스릴러나 추리소설에 빠져있다. 그런데 보는 것들이 죄다 초등생이 보기에는 자극적인 면이 없지 않아서 걱정이 되던 차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이미 재작년에 셜록 홈즈 시리즈를 장만하긴 했으나 책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진열 수준이라 아쉬움만 늘어가고 있었는데 어쩌면 에놀라 홈즈를 계기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운 좋게 에놀라 홈즈 시리즈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시리즈는 1권부터 읽어야 해서 첫 번째 이야기는 구매를 했다. 딸아이에게 이렇게 세트를 안겨주고 뿌듯해하던 차 네 번째 이야기가 출간된 것을 보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네 번째 이야기부터 보게 되었다.

 

평소 추리물은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워낙에 추리에 둔감해서이기도 하고 범인을 쫓고 잡는데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에놀라 홈즈를 읽고 있으니 풋풋해지는 기분이다. 에놀라 홈즈는 셜록 홈즈의 여동생으로 셜록 홈즈만큼 지성이 넘치는 소녀다. 아직 14살밖에 안된 소녀치곤 꽤나 영리하고 치밀하다. 하지만 엄마의 가출과 두 오빠의 진심 어린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고 있는 탓에 많이 외로워 보여 짠한 맘도 느껴진다.

 

네 번째 책부터 보다 보니 전편의 간단한 줄거리가 필요해 보였다. 먼저 언급했듯이 에놀라의 엄마는 사라졌고 에놀라는 오빠들을 피해 숨어 지내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삶은 꽤 제한적이었고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사회였다. 짐작하건대 에놀라의 엄마도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듯하고 그런 엄마를 찾고자 시작된 탐정 놀이에 에놀라는 제대로 적성을 찾은 듯 보인다. 혼자서 당당히(물론 나이와 여성이라는 제한적 조건으로 편법을 쓰긴 했지만) 혼자서 탐정 사무소를 차린다. 정작 엄마의 행방보다 자질구레한 사건을 해결하느라 더 바쁘긴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누구보다 더 큰 열정을 지녔으며, 그리고 오빠들보다 더 명석해 보인다.

 

네 번째 별난 분홍색 부채는 두 번째 이야기에 등장한 왼손잡이 숙녀 세실리가 다시 등장한다. 왼손잡이 작가라는 인격과 사교계에 순응하도록 강요받는 오른손잡이 숙녀라는 두 인격으로 살아가는 안타까운 인물로 그녀는 사촌 간 결혼의 희생양이 될 참이다. 에놀라는 그녀를 우연히 여성전용 화장실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옷차림이나 행동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에놀라는 그녀의 눈빛뿐 아니라 그녀를 옥죄고 있는 마녀 같은 두 여자들 때문에 더욱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자신의 처지를 보아서인지 그녀가 남기고 간 분홍색 부채에서 단서를 찾아 그녀를 구하는 일에 매진한다.

 

세실리를 쫓다 마이크로프트 오빠를 성추행범으로 몰기도 하고, 도랑에 빠진 셜록 홈즈를 구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추리가 오빠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자 함께 손을 잡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놀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오빠들이 언제든지 자신의 인생을 새장에 가둘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차 한잔하자는 오빠의 청을 선뜻 허락할 수 없는 에놀라의 처지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십 대 소녀 탐정이 보여주는 활약상이 더 볼만하다. 같은 런던에서 오빠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취재 상황에 맞게 변장도 필요하다 보니 그녀의 변장술은 베테랑급이다. 정통 탐정극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기분이라 영화가 제작 중이라는데 벌써 기대가 된다. 기자로, 학자로, 상류층 아가씨로, 게다 두엄 수거인에 고아까지 완벽하게 변신한다. 고아로 분장하여 잠입에 성공 후 실제 고아라고 해도 될 만큼의 연기력에 마냥 웃음이 나오다가 마지막에 세실리를 구하고 미친 척 연기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평소 추리물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재미가 있을까 했었는데 에놀라의 활약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패션이나 문화, 영국 상류사회와 일반서민들의 삶의 모습도 볼만한 요소다. 에놀라가 발로 뛰어다니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 조마조마하고 엉뚱하지만 유쾌하다. 레이디 세실리의 행방을 찾기 위해 쓰는 방식이 아날로그적이라 더 좋다. 쓰고, 그림도 그리며, 탐문 수사하는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오히려 혼자서 너무 열심히 뛰어다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결국 마지막에선 두 오빠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행스러웠지만.

 

책은 6권까지가 끝이라고 한다. 아직 읽지 못한 전편들을 읽고 딸에게 넘겨야겠다.~~

에놀라가 엄마를 찾고 오빠들과도 화해를 한 뒤 진정한 여성 탐정으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그래서 책을 보는 수많은 십 대 여자아이들에게도 매사에 호기심과 자신감을 팡팡 심어주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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