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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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인간이 구축하고 이룩해놓은 세상은 생존이라는 미명 아래 치열과 처절을 반복하며 흘러간다. 공포와 잔인한 덫, 때론 견딜 수 없고 때론 견뎌야만 하는 그 과정들 속에서 결국 남는 건 애처롭고 외로운 삶의 흉터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은 그저 동화 속 세계관일 뿐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행의 순간을 달래줄 무언가이다.

저자는 이런 주제의식을 열 편의 단편들에 꼭꼭 눌러 담았다. 잘못 뿌리내린 관습과 인간이 저지른 어리석음의 대가는 쓸쓸하다. 냉정한 인간의 본성과 사회상을 꼬집고 비틀 때마다 잔혹동화의 잔상과 허무한 그림자가 남는다.

한 여인의 몸뚱이가 변기 구멍에 처박힌다. AI의 손에 가슴이 찔린 여인은 호흡이 옅어져간다. 집(House)에 집착한 나머지 꿈꾸던 집(home)을 잃어버린 여자는 혼자만의 세계에 꽁꽁 틀어박힌다. 나와 내 가족만 괜찮으면 된다는 독선에 한 소년의 삶은 끔찍하게 기만당한다. 빨대 꽂은 자들의 광기와 빨대 꽂힌 자들의 멍한 눈빛에 소름이 돋기는 매한가지다.

눅눅함에 찌든 밤.

내쉬던 깊은 한숨이 사라지고 귀여운 토끼 한 마리가 갉아먹던 시원한 복수극에 웃음 지었다. 핏덩이로 태어난 아기가 터져버렸을 때 오히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욕에 눈이 멀어버린 왕자에게 배신을 당한 공주가 신의 청(영원의 삶)을 거절하며 끝(죽음)이 있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잠깐이나마 미소를 지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선 자와 빛을 향해 나가는 자를 보며 그곳이 어디든 삶을 지탱하는 힘은 생존을 자각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이 쓸쓸함이란.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저주 토끼>와 조용하고 평화롭고 소박하며 따뜻한 곳(이런 곳이 절대 있을 리가 없다)을 원했던 <즐거운 나의 집>과 사랑 이야기라고 여겼던 <재회>의 막판은 가히 식스센스급의 반전을 보여 주며 닭살을 돋게 한다. 잔상의 여운이 강렬했던 건 <머리>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어디선가 나를 어머니 하며 부를 것만 같아서.






피임약을 남용하다 덜컥 자가 임신이 되어버렸다는 기발한 설정에서 시작된 <몸하다>는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남성 배우자를 반드시 찾아야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설정까지 더해져 내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반드시, 아무나라니. 남성 배우자가 없다는 이유로 완전해질 수 없다니. 더 웃기는 건 이게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 편인 <재회>는 살아있다는 것과 살아야 한다는 것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여러 이유로 과거에 묶여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에게 절박한 건 삶 그 자체가 아니다. 삶은 불안했다. 나는 그 불안으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치고 싶었다. -p.298 는 그녀처럼 어느 외국의 광장에 앉아 잠시나마 현실 도피를 즐길 수 있다면 살아있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존(전쟁과 학대)을 위협받을 만큼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그때의 시간들이 되풀이된다. 살아있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던 묶인 삶. 다시 끈을 동여 묶으면서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온 그가 괜찮아라고 말하며 가버렸을 땐 쓸쓸함의 결정판을 보고 말았다.

인생이 불행이라는 삶의 저주에 묶여 있다고 여긴다면 비틀린 채 흘러가는 미래를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다. 굳이 그렇게까지 비약할 필요가 있을까. "너는 어떤 슬픔이 그리워서 묶이기를 원하는 거야?"-p.314 라는 물음은 너무나 애처롭고 외롭다. 그렇다면 죽음을 선택한 그들에게 그래도 살아야만 한다고 설교하는 건 기만이 아닐까.

우리네 정서가 그득하고 스산한 기괴함이 돋보이는 단편이었다. 냉소적 시선에 담긴 유머까지도 기발하다. <머리>에서 그녀 외 주변인물들이 머리를 대하는 무신경한 태도는 가히 인상적이었다. 내버려둬요. 별일아니잖아. -p.48

그나저나 눅진 머릿속을 우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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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의 비밀 모자 도란도란 마음 동화 4
김경옥 지음, 신진호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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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에겐 멋스러운 밀짚모자가 하나 있다.

표지 그림을 찬찬히 보자.

어라.

모자 밖으로 얼굴을 내민

자그마한 녀석들은 누구지??

커다란 눈망울에 호기심과

경계의 빛이 가득 들어차있는데.

그나저나

마로의 미소에는

흡족함이 한가득이다.

뭔지 모를 비밀이 깃든 그런~~^^

대체 마로와 녀석들은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걸까.





초록별 지구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제공했고 눈부신 자연은 순환의 법칙 아래 적절히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파괴욕으로 그 모든 질서가 무너졌다. 이는 오래전 공룡이 멸종되었던 시대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문명의 이기와 인류의 개입으로 생명과 터전이 빼앗긴 생물들의 개체 수는 급감했고 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사라져버린 생물들도 부지기수다. 그들과 똑같이 지구땅을 빌려 쓰면서 더 많이 더 오래 차지하려는 욕망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인류의 발자취는 귀히 여기면서 어찌 무너져가는 자연의 질서에는 그리 무감각한 것일까.


이번 청어람주니어에서 출간된 <마로의 밀짚모자>는 멸종 위기 동물인 안경원숭이가 등장한다. 필리핀이 터전인 이 녀석은 영장류 중에서 가장 작은 동물이지만 개체 수가 줄어 보호가 필요한 동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보호라는 명목 아래 다른 속셈을 숨기고 안경원숭이에게 되려 해를 가하고 있다. 귀한 것은 그만큼 관광자원으로써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생명체에게만큼은 과한 요구가 아닐까.

7000여 개의 섬을 가진 필리핀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은 나라다. 섬을 찾는 사람들은 이색적인 풍경과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과의 첫 대면을 잔뜩 기대한다. 하지만 동물의 특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탓에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지쳐만 간다. 안경원숭이 또한 야행성동물이라 낮에 방문해서 자신들을 깨우는 관광객들이 반가울 리가 없다. 심지어 만지거나 큰 소음에 트라우마가 있어 자살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마로는 이곳 보홀섬을 찾은 관광객 중 하나다. 마로는 동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다. 이미 오는 도중 비행기 안에서 안경원숭이에 대한 공부도 했다. 와~~ 정말 멋진 친구다. 이 정도의 기본 지식만 알아두면 나의 행동이 동물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기에 여기서 우리는 마로의 행동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였을까. 안경원숭이 포포의 눈에 비친 마로는 어딘지 달라 보인다. 눈빛이 반짝이는 아이 마로. 포포는 마로의 어떤 행동에 관심이 미치게 된 걸까.

분명한 건 마로의 계획에는 진정한 공존의 비밀이 숨어 있단 것이다.


책과 함께 도착한 컬러 부채는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어 대만족이다. 바깥활동 시 소지하고 다니기 딱 좋은 사이즈라 이번 여름 자주 애용해야겠다.

이번 기회에 멸종 위기종에 대해 좀 더 찾아보게 되었다. 참 부끄럽다. 어찌 보면 앞으로 모든 생명체의 미래가 위태로워 보인다. 멸종 위기종을 지정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이 특정단체와 소수의 관심으로는 지켜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안경원숭이를 본 적은 없지만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이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마로의 바람도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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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해관계
임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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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상사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것이 임현의 소설집이 아닐까 한다. 아홉 편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뉴스를 장식한 사건부터 잊고 있었던 나의 경험담까지 하나둘 떠오른다. 살다 보면 어디까지가 상식이고 도인지가 모호해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맞고 틀린 건지,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는지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한 권의 육아서를 열 명이 읽으면 열 권이 되는 현상이 요즘 세상이다. 편견의 덫에 걸린 사람들과 지레짐작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들에 무수한 진실들이 밟힌다.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는 믿음조차도 부서지는 현실에서 무얼 붙잡고 버텨야 할까.

남색과 보라색의 애매함에 대해 언급한 <목견>을 읽다가 반품 받은 타올이 생각났다. 자수 작업까지 완료된 타올이었음에도 본인이 생각한 하늘색이 아니라고 우기던 고객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모니터에 따라 색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문구 따위는 애당초 먹힐 리가 없었고 손해에 대한 속상함보다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그게 설득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소통에 능한 재주를 가질 능력이 안돼서일까. 단편 속에 등장하는 여럿 관계들을 보면서 우리는 교묘하게 진실을 피해 가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행운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일 것이고 불행의 당사자가 되면 불행을 탓하고 원망할 대상이 존재해야 안도감을 느낀다.

<그들의 이해관계>에서 아내를 잃은 '나' 역시 그 대상을 찾으려 했으나 버스기사의 불행 앞에 마음을 접고 만다. 오히려 일인 시위라도 하고 있는 버스기사의 처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알맞게 불행하고 적당하게 균형을 누리다가 누군가를 위해 휘청거려 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전해주는 그런 거.​ -p.29 그런 것들이 복잡 미묘한 관계를 끌고 나가는 원동력이지 아니할까.

<그들의 이해관계>에서 '나'와 해주는 서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눈치껏 서로를 배려하던 사이는 삐걱거리는 시간 속에서 무심함으로 무장하고 견딘다. 한쪽의 시간이 멎어 버리고 나서야 나머지 한쪽은 후회와 미련이라는 아픔의 시간들로 가득하다. 결국 '나'는 나를 탓할 수밖에 없다. <나쁜 사마리안>에서 '나'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이를 대리기사로 다시 만나게 되지만 상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래전 울고 있던 그를 만난 적이 있었던 '나'는 그 스침의 만남이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우연이라는 공간 속에 착각이 불러온 의도되지 않은 공감인 셈이다. 그보다 '나'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지금 곁에 있는 도경의 존재다. 나쁜 사마리안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녀의 농담에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인관계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때문에 곤혹을 치러야 되는 경우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변명은 해명이 되고 적당히 몸을 사리려다 이도 저도 못한 억울함을 겪기도 한다. 아마도 제일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내가 그어 놓은 선이 과연 적당선인지도 헷갈리고, 상대의 삐딱선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면 감정적 무능함마저 느껴야 하니까.

게다가 요즘처럼 사람들에게 화가 들어 차 있고 여차하면 시비에 휘말리는 이런 때에는 더더욱.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에서의 감정의 살얼음판을 보는 것 같다. 중립, 균형, 공평, 겸손의 자세로 모든 이들을 대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부터 반문하고 싶다. 애초에 세계는 여러 갈래인데 하나라고 믿는 거 자체가 틀렸다. 여러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게 일차적 목적은 아니지 않나.

요컨대 우리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p.110​

<목견>에서는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자 다른 것을 볼 수 밖에 없는-p.205 사람들 때문에 견디지 못한 경비의 사연이 등장한다. 그들이 갖는 확신과 보이는 대로만 믿어버리는 자들 앞에서 침묵과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예정>에 등장하는 상식 이하의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이미 자극을 받을 대로 받은 말초신경이 폭발하며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요. 정말이지 사람이 싫습니다. 자기만 옳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을 아주 혐오합니다.​ -p.173 그럼에도 우습지만 나 역시 그런 인간인 적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얼마 전에 본 김보름 선수의 기사를 보며 너무나 맘이 편치 않았다. 당시 나 역시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진실의 반대가 거짓이나 가짜가 아니라 무지라는 말이 무척 공감이 된다.

인간은 아니 우리의 이해관계는 모순 덩어리다. 그렇기에 점점 ​사람을 상대하는 것 역시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고 선의의 위로조차 통하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해원>에게 불빛을 비추던 경비 아저씨의 태도였고 그처럼 묵묵히 빛을 내고 있는 불빛으로 인해 견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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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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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6월의 어느 하루. 세 여인은 자신 본래의 이름으로 살고 싶어 한다. 지긋지긋한 그 시간들(The hours)을 버리고.

1923년, 버지니아 울프는 <델러웨어 부인>의 삶을 궁리 중이다. 부인에게 부여할 자유와 권리에는 그녀의 내재된 욕망으로 충만하다. 부인이 살아가는 소설 속 세상은 버지니아 스티븐, 그녀가 원하는 삶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익히 알다시피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운 채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완성된 책은 1949년, 로라 브라운의 삶을 흔든다. 그녀는 스스로 이름 없는 존재라 여기며 살고 있다. 남편이 꿈꾸던 이상적 삶에서 그녀는 그저 보조출연자이자 부속품인 것만 같다. 어린 아들과 뱃속의 아기, 다정한 남편이 있음에도 그녀는 다른 세상을 향한 문을 찾고 싶어 한다. 다른 세상에서라면 그녀는 평생 책을 읽으며 보냈을지도 모른다. -p.65 그녀는 우울하고 싶지 않다. 망쳐버리는 건 케이크 하나면 족하다. 실패하는 것 역시 케이크 하나여야만 한다. 마음은 이미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다. 로라 지엘스키로!

그리고 현재, '델러웨어 부인'이라고 불리던 클러리서 본은 연인의 파티를 준비 중이다. 열여덟, 그녀의 청춘은 사랑으로 충만했지만 그에게 새 애인이 생기는 걸 지켜보았으며 이제 꺼져가는 그를 돌보고 있는 오십 대의 여인일 뿐이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댈러웨어 부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그 여름날의 높은 둔덕 위에 서 있을 것이다.-p.196 남들 눈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녀 역시 그녀의 삶이 그녀만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과거의 어느 순간들을 부여잡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순간들을 그리워할 때마다 마음은 초라해질 뿐이다.

<디 아워스>는 영화를 먼저 보길 추천한다. 그래야지만 책 속 문장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영화의 연출이 워낙 훌륭해서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 차오른다. 그렇지만 책을 지나칠 수가 없어 재독을 했다. 재밌는 문장이 딱 걸려든다.

"그러니까 침대에 들어올 거지?"

"네."

그녀에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멀리서. -p.314

남편의 요구가 얼마나 싫은지 단번에 알겠다. 왈왈.

정신이 멀쩡한 클러리서는 런던을 사랑하고, 자기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계속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어느 미치광이 시인은, 어느 몽상가는 죽음을 택할 것이다.-p.310

리처드는 버지니아와 닮아 있다. 버지니아는 댈러웨어 부인을 죽이지 않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살한다. 남편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리처드는 클러리서를 댈러웨어 부인이라고 불렀지만 그녀를 놓아주기 위해 자살한다. 한때의 행복했던 순간을 간직한 채. 버지니아는 댈러웨이 부인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두고 이런 생각을 한다. 한 존재가 살아 있을 때 차지하는 공간이 죽었을 때의 그것보다 얼마나 더 큰지. -p.246

이 소설은 각기 다른 시공간에 사는 세 여인의 하루를 담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그렇기에 철저히 세 여인의 삶만 들여다보아야 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리처드나, 버지니아에게 최선을 다하던 남편까지 챙기다 보면 감정이 너절해진다. 그녀를 기억해? 또 다른 당신 말이야. 그녀는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p 294 라고 말하는 리처드의 슬픔까지 생각하면 브라운 부인은 이기적인 년일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자기만의 방이라고 겨우 들어온 곳이 호텔 방이지만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는 변명이 덕지덕지 따라붙는다. 죽음은 간단하지만 자신의 삶을 더 사랑했음을 깨닫고 차선을 택한 그녀에게 공감해야 한다. 우리는 그녀의 슬픔이 평범한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p.303

수많은 선택지에서 방황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지에서 고통받고 또 그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누군가는 그 평범한 하루조차도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게 인생이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팔십이 된 로라는 이런 말을 한다. 여자로서의 삶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자신의 선택에 조금은 뻔뻔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꽃이 피고 지듯 우리의 순간들도 그렇다. 이 지금의 시간을 살게 해 주는 것들이 그런 평범한 기대감이 아닐까. 시간은 흐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며 언제 끝날는지도 미지수다. 그러니 내 앞에 놓인 그 시간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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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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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이 되어봐, 단 하루만이라도. -p.13​

루시는 불행했다. 여러 이유로.

그녀가 떠나온 고향은 어린 소녀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국의 암울한 역사는 여전히 삶을 가난하게 했고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가 더뎠다. 당시 미국의 이민정책이 없었다면 그녀 역시 고향땅에서 매를 맞거나 목이 베이거나 몸을 팔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죽하면 여자 유다로 낙인찍고 마찰이 일 때마다 증오와 분노와 경멸로 상대했을까.

열아홉, 목덜미를 옥죄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의 구명보트가 되어준 곳은 미국 상류층의 부엌에 딸린 작은방이다. 그녀는 친절한 미국인 부부와 사랑스러운 네 아이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오히려 지우고 싶던 고향땅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의 삶은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었고 영원히 그럴 것만 같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지? -p.21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p.26

어떻게 하면 그래요? -p.37​

이곳은 루시가 지금껏 경험한 세상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곳이다. 피정복자와 점령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느끼고 흘리는 눈물의 맛은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절대 맛볼 수 없는 차원의 것들이다.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과 풍경을 대하는 태도와 아낌없는 친절과 진심 어린 위안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랐다.

루시는 고향에 남겨진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몇 통의 거짓 안부를 띄운다. 엄마가 전하는 고향의 소식은 그녀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질구질한 공포는 오래도록 쌓여 온 애증에 증오심만 키울 뿐이다. 결국 그녀는 차단하는 쪽을 택한다. 눈 덮인 세상의 부드러움을 견디고 싶었다. 굉장하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 라는 머라이어의 감정에 언젠가는 동조할 수 있는 처지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꽁꽁 봉투를 봉했으리라.

내게 머라이어는 엄마 같았다. -p.89 엄마는 떨쳐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머라이어와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던 엄마의 모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지 않은가. 엄마와의 닫힌 문 대신 또 다른 문이 되어준 머라이어가 있었다는 사실이. 긍정의 기운이 루시에게 옮아감을 보았다.

넌 정말 화가 많은 애구나. 그렇지? 그녀의 화는 자격지심에서 오는 빈정거림이 아니었다. 불평등한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단지 어렸을 뿐이었다. 루시는 새로운 사람과의 첫 대면에서 상대가 내뱉는 첫마디에 예민하다. 페기와 휴는 좋았지만 다이나는 싫었다. 그뿐이다. 머라이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제는 이해하고 진실과 허위를 구별할 줄도 안다. 루이스와 머라이어 사이에 균열이 일고 산산조각이 나는 과정을 보며 삶의 기복의 당연함도 깨닫는다.

하루키 데뷔작에 등장하는 쥐라는 인물도 그렇게 낯선 세상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살면서 익숙해진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일 아닐까?"라는 휴의 말까지 곱씹어 보니 이것은 루시의 입장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루시는 삶을 담는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모습들을 담는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즐거움. 그건 치유다.

멀찍이서 들여다보면 루시는 이제 겨우 스무해를 살았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성장기가 차지하는 비중의 중요성을 알기에 루시의 화에 공감이 된다. 태어나기전부터 성가신 존재였고 태어나서는 귀찮은 존재에게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엄마를 보며 같은 여자지만 그점은 참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마지막 돈까지 탈탈 털어 인연을 끊고 싶어했을 루시가 어찌나 안스럽고 외로워보이던지.

다른 건 몰라도 엄마를 보며 보고 배운 교훈의 효과는 확실했다. 남자를 쉽게 믿지 않은 건 박수! ㅎ 스무 살 루시의 독립기는 이제 시작이다. 노트에 적은 문장을 보며 다시 한번 사랑과 증오가 나란히 공존함을 보았다. 혀의 맛이 아닌 오로지 감각으로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마침내 난 여전히 두렵긴 해도 숲속을 걷는 일에 아주 익숙해져서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숲에 근사한 면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금씩 확장해가는 내 세계에 그렇게 또 하나를 덧붙였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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