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고양이 1~2 세트-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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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있다. 베르나르의 책이 두 번째인데 작가의 스타일을 알 것 같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느낌. 하지만 여러 방면에 걸친 톡 쏘는 사유가 돋보인다. 그의 책을 언제 다보나~~~^^

 

고양이는 제목 그대로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세계.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임에도 비판적 시각이 돋보여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게다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도 명확하고. 청소년도서로 강추! 그런데 굳이 1,2권으로 쪼갤 필요가 있었나 싶다.

암고양이 바스테트와 수고양이 피타고라스.

이 두 마리 냥이의 이름에 담긴 뜻을 뒤쫓다 보면 고양이의 역사까지 쭉 펼쳐진다.

작가는 고양이의 습성과 매력을 잘 잡아내었다. 게다 고양이에 얽힌 신화와 고양이들의 굴곡진 생과 사를 훑어보는 재미도 있다. 고양이들의 삶이 어떤 형태로 달라졌는지를 보면 인간들의 어리석은 탐욕과 무지가 드러난다. 전쟁과 종교에 올라타 자행되는 살육전. 인간은 서로를 죽이고 다른 개체도 죽이다 결국 자멸의 길로 간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복수가 아닌 포용을 택한다. 인간과의 교감을 믿고 서로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집사의 살가운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그녀는 집사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오인하지만.^^ 집사와의 교감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나름 콧대가 높은 고양이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왕성한 호기심을 지녔다. 게다 자존감도 꽤 높은 아가씨다. 이웃집 샴고양이가 자신을 본체만체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한다. 콧대를 꺾어놓을 요량으로 그에게 접근했지만 인간들의 행동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는 그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USB가 장착된 수고양이다. 오로지 실험용으로 태어나 가장 적합하게 테스트되고 훈련을 받았다. 그는 인간의 컴퓨터와 연결해서 언어를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얻은 정보를 같은 종족에게 전하게 된다. 즉 그의 집사는 다른 개체 간의 소통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피타고라스는 바스테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방대한 정보를 하나하나씩 풀어 낸다.

인간들의 생활방식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각종 테러의 조짐이 곧 전쟁으로 나타날 거라는 예견, 게다가 질병으로 인간이 멸종하게 될 거라는 사실까지도. 고양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과 종교에 대한 해석도 그럴싸하다. 전쟁은 인구 과밀을 의식한 인간들이 무의식적으로 벌이는 행위이며 종교란 인간들을 갉아먹고 자기 파괴로 내 모는 것이라는 말이 어쩜 그리도 와닿는 건지.

 

새로운 지식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보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 -p.91

 

바스테트에게 새로운 지식은 안도감도 주었지만 희망도 제시한다. 즉 무지해선 결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단 말이겠지. 자신의 새끼를 죽인 인간에게 복수를 다짐하지만 니가 굳이 힘쓰지 않아도 인간은 자멸하게 돼 있다는 피타고라스의 논리가 서글프다. 그럼에도 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은 소수의 인간에게 희망을 건다. 영혼의 교감을 의심했지만 그것이 일어난 순간. 그녀는 엄청난 깨달음도 얻게 된다.

 

내가 믿는 것이 곧 나다.

나는 나 이상이 될 수 있다

나는 무한하다

 

이런 생각의 시작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기인한다. 즉 종과의 소통은 전기적 신호 그 이상의 체계를 넘어선 정신과의 교감이 이루어질 때 살아남을 수 있다.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지만 욕망이 과하면 자멸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무지는 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주어진 정보 체계를 활용하는 능력은 피타고라스가 했지만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 준 건 암고양이 바스테트였다. 작가 또한 남성보다 여성의 교감능력을 더 신뢰한 것이 아니었을까.

쥐들과의 일차 전이 끝난 뒤 피타고라스는 인간들이 지식의 창고인 책을 부러워한다. 말로만 전달할 수밖에 없는 역사는 진실이 퇴색되기 마련이니까. 책의 중요성 또한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다.

 

오늘 빨간 불빛에 농락당했어. -p.100

 

암고양이 대사에 빵 터졌다. 집사라면 백퍼 공감할 이야기가 아닐까. 고양이는 레이저 포인터에 환장을 한다. 나도 우리 냥이들을 자주 농락시켰었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어느 책에서 냥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더 일리가 있어 보여서 그 짓은 그만~~~^^

 

그런데 새끼 고양이를 익사시키는 장면은 생소하다. 정말 그런다고? 막 태어난 꼬물이들을! 아니 할 짓이 따로 있지 어디 살아있는 생명을. 아~ 화난다! 진짜 진짜.

토마 이 나쁜 삐리리야!

 

개판인 세상을 고양이가 구할줄이야.ㅎㅎ

역시 개보단 고양이?! 음 두 종류 다 기르고 있는 입장에선 고양이가 더 매력이 넘친다는 사실에 반박할 수가 없다. 고양이와 인간이 엄청난 쥐들과 맞서 싸우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세문 <고양이와 쥐>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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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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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화에 관심이 없었다. 이솝이야기나 동화는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신화하면 왠지 종교적 색채가 짙을 것 같고 인간이 만들어낸 신들 이야기에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림은 좋아하지만 고전 작품 속 신화를 볼 때는 솔직히 별 감흥 없이 지나치는 편이기도 했다.

 

독서 모임 덕에 <키르케>를 읽지 않았다면 <아킬레우스의 노래>도 오래도록 책장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이벤트 당첨 선물도 서로 받은 책이라 더더욱. 물론 이 작가의 전작인지도 몰랐다.

말했다시피 그닥 기대 없이 펼쳤다. 일단 신화의 신자도 모르니까.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맘 편히 고전 동화처럼 읽었다. 미운 오리 새끼도 떠오르고 라푼젤도 떠오르고. 신이 아닌 신과 인간의 중간쯤인 마녀 이야기라 더 신선하기도 했다.

물론 이름 암기가 걸림돌이 되긴 했지만 가계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제일 헷갈렸던 건 오디세우스의 두 아들 이름뿐. 그 시대에 돌림자라니^^

 

키르케는 그닥 주목받지 못하는 신으로 태어났다. 외모도, 눈빛도, 어떠한 능력도 없는 지나치게 평범해서 볼품없는 신. 그런 이유로 그녀는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찬밥 신세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조롱과 모욕은 기본이고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그럼에도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일말의 자존심이 있었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p.110

 

결국 그녀는 외롭게 신들 세상을 겉돌다가 인간 세상을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인간 남자에게 애정을 품고 그를 신으로 변신시켜 영원히 함께하고자 했으나 인간 남자가 그렇듯 딴 곳으로 눈이 돌아간다. 첫사랑의 고통은 그녀에게 강한 질투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녀는 신비의 약초를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정체가 드러난다.

파르마키스, 마녀라는 사실.

 

키르케는 마법을 멋대로 쓴 대가로 벌을 받는다. 그녀의 능력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더 힘이 실리긴 하지만. 암튼 뭐 엄청난 벌인 줄 알았더니 지중해 외딴섬에 영원히 혼자 살아야 한단다. 나도 같이 갇히고 싶다. 딱 한 달만. 책 싸 들고. 엉뚱한 생각이지만 아빠가 그녀를 무인도로 보낸 건 좀 진지하게 마법 연구나 하라고 보낸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했다. 어찌 되었든 더 이상의 빈정거리는 소음이 차단된 곳에서 그녀는 독학하느라 진지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키르케가 여성의 이야기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신들에 묻혀 한 줄로 끝나버릴 인물을 살려냈다는 점. 그리고 나처럼 신화를 전혀 모르는 이들의 호감도를 끌어낸 점은 인정할만하다. 한 여인의 성장기로도 충분히 전달력이 있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이들을 만나며 느낀 동질감. 특히 육아전쟁은 신이나 인간이나 어쩜 그리 중노동인건지.ㅎ 하지만 남자없인 안되는 거였나? 남자와 함께 해피엔딩이라니. 내가 너무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캐릭터를 원했었나보다.

 

불우한 성장기, 첫사랑의 배신, 게다가 인간남자들의 일그러진 욕정앞에서 자꾸만 마녀의 본성(사악함)이 눈을 뜨려 하지만 그녀는 줄이 하나뿐인 하프에 낼 줄 아는 음이라고는 자기자신뿐. -p.470인 이기적인 신들보다 좀 더 인간적인 면모에 가깝고자 했다. 때론 형제들을 그리워했고(여동생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다) 인간을 시험했고(처음부터 사악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질투의 대가로 괴물이 된 스킬라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녀 때문에 죽어간 인간들을 위한 죄책감까지도.

 

이런 그녀가 어딜 봐서 신에 가깝단 말인가. 그녀는 사랑이 그리웠고 사람이 그리웠다. 오디세우스와 한 달 정도 지내는 동안 그녀는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떠날 때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다. 아들을 위해 무리하게 쳐 둔 실드 때문에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자책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신들이 말하는 운명론을 맹신하고 노력조차 놓아버린다면 그것 또한 재미없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운명을 거슬러 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했다. 통하는 마법이란 좋은 재료보다 그 마법을 향한 진정성이니까.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신 아테나로부터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섬에 마법을 건 것도 모자라 과잉보호를 한다. 세상의 사악함과 추함만을 알린 라푼젤의 엄마와는 다르게 세상의 아름다움만을 가르치고자 했지만 아들의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식 교육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ㅋ

 

철떡 같이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성향을 닮았다고 여겼건만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결정적 증언을 한다. 당신의 아들은 당신을 쏙 빼닮았다고.

부모도 자식과 함께 성장한다고 하듯 텔레고노스의 모험심은 그녀를 다시 깨운다. 유배를 풀기 위해 이번에야말로 아버지와 제대로 된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가 찌릿한다.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 -p.470

 

태어날 때부터 걸맞은 이름이 없어 키르케가 된 키르케.

이름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 인간들은 맘에 들지 않으면 개명도 한다던데 키르케는 키르케답게 자신의 삶의 영역을 잘 일구어 나간다. 행운에 감사하고 불운에 어떻게든 또 맞서기 위해 뭔가를 준비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인내했다. 때론 감내하고 때론 맞서며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갔다. 혼자여서 외로웠고 아팠고 아픔을 공유했고 다른 이의 경험을 통해 사악함을 내려놓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인내심을 다져가고 페넬로페를 만난 후 따스함을 배워간다.

 

페넬로페와 그녀의 아들 이야기를 읽다 보니 페넬로피아드를 읽었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 책도 재독을 해야겠구나. 아이들 읽히기 위해 들였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 전집도 독파 계획에 넣었다. 권장도서 0순위라고.ㅋ 신화를 보면 다양한 인간사가 보인다. 신화는 해석하는 이들에 따라 같은 캐릭터라도 이미지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아킬레우스의 노래>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도 궁금하다. 신화를 알고 나면 예술 작품도 달리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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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심으로 엮일 때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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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마지막. 이상하게도 존치버 단편집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토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걸까. 그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작가님의 다른 책에 손을 뻗었다. 어쩌면 외쿡!정서보다 우리네 정서가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심으로 엮일 때라는 말의 의미도 뭉클하지만 표지 그림 속 그녀의 질끈 묶은 머리끈으로 자꾸만 시선이 고정된다. 가닥가닥 흩어진 관계들. 한치 건너 또 한치 건너 이어져 있는 관계들. 그런 관계들이 서로 엮여 들려고 할 때 생기는 다양한 심리들. 아마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 아닐까 짐작해보며 시작했다.

 

아직까지 나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사람은 만나본 적은 없다. 간혹 개명한 사람이 주위에 한둘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리플리 부인>과 <마리나 나의 마리나>에 등장하는 여인은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많다. 그런 사람과 얽혀 있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지속적인 의심을 품게 만든다.

 

의류 매장을 전전하다 지방 의류매장으로 이직을 한 여자는 <리플리 부인>이라 불리는 사장의 정체에 의심을 품는다. 그녀가 자랑하듯 떠벌리는 과거와 짝퉁 옷을 라벨갈이 하며 고객을 속이는 모습에서 그녀의 과장된 과거와 거짓된 삶을 의심한다.

정복순. 정하연. 정혜경. 리플리 부인.

그녀는 그녀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내버린 인생과 숨겨둔 자아를 늘려갔고 여자는 그런 그녀를 자신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한심하게도 자신의 이름마저 내버리고 온갖 고생 끝에 선택하려는 종착지가 돈 많고 명 짧은 영감이라니. 싼티난다고 해야 하나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온통 거짓뿐인 그녀의 삶에 진저리를 느끼며 다시 가방을 싼 여자는 계속되는 의문이 자신을 누르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진실 따윈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병신처럼 당하지 말라던 선임 직원의 말이 낳은 파동이 워낙에 강력하니까.

 

순수하고 청아하게 태어난 인간은 일생을 사는 동안 자신이 지닌 눈부신 빚덩어리를 힘껏 훼손하기만 하다가 결국 유해한 존재로 세상과 작별한다. -p.64

 

<마리나 나의 마리나>편의 영숙씨는 그런 믿음을 더욱 뒤흔들어 놓은 인물이다. 사람을 믿는 근간은 무엇일까. 그들의 관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믿음의 방향이 변화는 과정을 보게 된다. 민자씨에게 영숙씨는 그저 안으로 조여진 느낌이 없는 선명하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으나 민자씨 딸에게는 눈빛부터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의심의 폭은 돈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금전적으로 얽히지만 않았어도 영숙씨는 그저 괜찮은 이웃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도움을 주던 외삼촌마저도 돈 앞에 계산적으로 돌변하지 않았던가.

 

<돈의 수사학>도 돈이 문제다. 아래층 집 도배하는 소리를 돈 세는 소리로 들은 조. 그는 돈을 귀하게 여기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여태 받들며 살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로서는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이 집의 가정사가 외손자의 한 마디로 귀결되버렸다. 영감, 존나 기 빨리게 하더니....

돈돈했던 아버지는 딸들에게는 원망스러운 돈줄이고 그런 관계를 지켜본 외손자 또한 마찬가지다. 자식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는 딸의 논리는 그 집안만의 법인가. 돈의 귀함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 조가 딸들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이해시킨 것 같아 씁쓸했다. 노년이 외로운 사람은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과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래요. -p.133 라는 말이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면 백 프로 공감했을 것이다.

 

 

 

 

<천사는 이렇게 탄생한다>와 <우리가 진심으로 엮일 때>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전쟁통에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할아버지와 얽히게 된 은주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은주네 회사를 방문했고 몇 번의 만남 속에서 은주는 알 수 없는 연민에 사로잡힌다. 이 두 가지의 질문이 은주의 심경을 자극했을는지도.

흐르지 않는 시간에 갇혀 있다면 서은주씨는 어떤 기분일 것 같습니까? -p.170

모든 기억을 깡그리 잃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가씨는 어떤 선택을 하시겠소. -p.186

 

양념한 가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은주네 집은 성실하지 못한 엄마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색깔별로 슬리퍼를 사는 엄마를 은주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사연을 들으며 어떤 공통점을 발견한다. 오로지 홀로 견디고 구축하며 삶의 불가능에 맞서왔다는 점은 은주의 나면 속 천사의 얼굴을 흔들어 깨운다. 할아버지에게 가족이란 단어를 연상하게 해 준 선물을 하면서도 그냥 무언가에 살짝 미쳤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은주도 할아버지도 서로 첫눈에 알아본 건 상실감의 눈빛이었다. 그 빈틈을 채워주고 싶었던 마음이 은주의 혈관에 흘러들어 진심이라는 연결고리로 엮은 것이다.

 

별사탕 한 알을 입안에 던져 넣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단물을 빼내는 동안 믿음과 진심이란 단어에 얽힌 관계의 의미를 굴려 보았다.

우리는 사람을 향한 믿음의 뿌리를 어디에 둬야 하고 무얼 근거로 그 믿음을 다져야 할까. 눈빛이 선하지 못함을 끝까지 의심해야 할지, 얼굴선의 선명하지 못함을 의심해야 할지, 관계의 시간 속에서 흐려진 의심을 믿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애매한 건 돋보기를 들이댈수록 거짓이 확대되어 보이는 자보다 믿음의 조직이 성글어져 보이는 자다.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데 경험밖에 답이 없는 것일까. 하긴 진심이라는 것 또한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니까.

 

작가님의 글은 익숙한 지명이 등장하고 역사적 사건 속에서 파생된 이야기 때문에 친근하기도 하지만 가끔 군침도 돌게 한다. 조기의 연한 살점을 고사리로 휘감아 먹는 고사리 조기찜은 어떤 맛일까.

아쉬운 마음에 남은 별사탕 세 개를 마저 털어 넣었다.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이해하지 못할 악인을 쓰는 게 꿈이라고 하셨다. 캐릭터를 자꾸만 이해하려 들어서 선과 악의 경계가 자꾸 모호해진다고. 그 말씀을 들으니 사이코 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에 가졌던 의문이 조금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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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학년 청어람주니어 저학년 문고 24
이지현 지음, 심윤정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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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처럼 배움의 기회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나이를 불문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은 흔하니까.

 

지금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예전에는 배움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거나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살아온 이들이 꽤 있었다. 특히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더욱더 교육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사연 때문에 글을 모른 채 살아온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이름부터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대충 지어진 설움을 가졌다. 또 딸을 낳았다고 해서 또출이라니. 그러고 보니 초등시절 짝꿍 이름도 후남이었다. 후남이 동생은 아들이었을까.ㅎ

 

박또출 할머니는 까막눈이다.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 어떻게 글도 모른 채 살아오셨을까 싶지만 할머니는 그냥 불편을 감수하고 살았다.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쉬이 배움에 대한 열의를 접게 만든다. 중국집 가서 메뉴판을 몰라 짜장면만 시켜 먹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랬던 할머니였건만 어느 날 드디어 배움의 열정이 싹트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가 키우던 독구 때문이었는데.

 

 

 

 

 

이야기가 더 사랑스러운 건 독구의 활약 때문이다. 독구와 할머니는 가족처럼 돈독하다. 독구는 할머니를 지키는 든든한 보디가드이자 할머니의 말동무 친구도 되어준다. 그런데 독구에겐 더 특출난 재주가 있었으니 바로 글도 알고 시를 짓는다는 사실이었다. 텅 빈 운동장에서 시를 읊는 독구 때문에 빵 터졌는데 독구의 모습에 우리 집 강아지를 덧씌우니 몇 배로 더 귀엽지 아니한가.

 

박또출 할머니는 단체 온천여행을 갔다가 타고 온 관광버스를 못 찾아 길을 잃을뻔한다. 글을 읽을 수가 없다 보니 버스를 못 찾은 것이다. 이에 동네 안동댁이 할머니의 까막눈 사실을 폭로하면서 한바탕 신경전이 오갔고 할머니는 내내 기분이 별로다. 그런 와중에 독구는 할머니를 보며 시를 쓴다. 글자를 쓰고 있는 독구를 본 할머니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할머니가 아는 거라곤 학교뿐이었다. 무조건 학교를 찾아가서 배우고 싶은 열의를 전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할머니의 나이를 문제 삼으며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대로 포기하고 말까?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더군다나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제자리걸음이다.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은 늘 스스로를 주눅 들게 만들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없게 한다. 할머니는 글을 배움으로써 삶의 의지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더 높이게 된다.

 

공부는 때가 없다지만 평생 해야 되는 것 또한 공부다.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 만든 시스템 안에서 익숙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공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배우고 배움을 나누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 글에서 눈여겨볼 것이 배움의 나눔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할머니가 더 쉽고 빠르게 글을 익힐 수 있을까에 의견을 모은다. 게다가 아이들은 각자의 재능을 살려 서로서로 돕는다. 자신만 잘났다고 뻐기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친구들을 위한 배려가 정말로 예쁘게 다가왔는데 딸아이의 일화가 떠올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초등 1학년 상담 때 한글을 잘 모르던 짝꿍을 도와준 일로 선생님이 아이의 칭찬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드디어 우여곡절끝에 할머니는 그토록 원하던 일을 성취한다. 독구에게 자신이 지은 시를 들려주는 모습이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눈을 감고 시를 즐기고 있는 독구와 그런 독구를 위해 정답게 시를 읊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훈훈해져 온다. 배우는 것의 즐거움을 할머니가 깨달았듯이 우리 아이들도 공부의 즐거움을 느껴가면서 성장했으면 좋겠다.

 

 

 

청어람 주니어에서 제공하는 활동지는 볼 때마다 알차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엔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연필 두 자루도 함께 도착했다.

 

독후 활동지는 초등 저학년뿐 아니라 고학년이 해도 좋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기에 아이와 함께 해 보았다.

숨은 낱말도 찾고 잘 읽었는지 내용 확인도 하고 또 시를 읽는 독구와 신입생이 된 할머니를 보며 느낀 점도 적어보았다. 상황에 따른 글쓰기는 생각하며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할머니처럼 시를 지어보는 시간도 가져볼 수 있어 알찬 시간이 되었으니 독후 활동지는 정말 강추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독구가 할머니 이름을 썼던 장면이라고.ㅎㅎㅎ

독구의 놀라운 재능이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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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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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다리가 부러진 채 달려야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시작 전에 다리를 분질러 버리려는 자들이다. 세상사 불공평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평등과 자유를 부르짖어도 또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천지라는 것도 안다. 차별과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쓰였음에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밟는 자들이 있다는 건 밟히는 자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이상한 시나리오가 여전히 존재한다. 고로 맞은 자는 흉터로 기억하지만 때린 자는 남은 게 없어 기억을 못 하나 보다. 가해자들은 죄다 돌머리거나 오리발의 대가들인 셈이다. 증거는 차고 넘침에도.

 

거기서 사람을 온갖 방법으로 구부려놓기 때문에 똑바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게 돼. 거길 나올 때쯤에는 사람이 아주 뒤틀려버린다고. -p.208

 

이 이야기의 큰 틀은 인종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이야기이자 사회와 가족 간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소외된 자들을 배척하고 끊어버리려는 이야기이다. 눈에 보이는 높은 담은 없지만 무관심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실태를 고발하는 이야기이다. 세상을 흑과 백이라는 확연한 이분법으로 잘라 놓고 어정쩡한 푯말을 세운다. 분리돼 있지만 평등하다는 원칙. 이곳 니클도 분리돼 있지만 폭력에는 차별이 없었다.

우습게도 멕시코계 아이 하나는 어정쩡한 피부색 때문에 흑과 백을 오간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고 한숨짓는 아이의 목소리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저자는 실제 도지어 남학교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모티브로 니클 감화원을 그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가 절대 허구나 상상으로 읽히지 않는다. 인종차별은 오래전부터 아주 잔혹하게 자행되어 왔다. 남북전쟁으로 촉발되긴 했으나 오히려 짐 크로 법이 있었기에 그 법에 적극적으로 대항함으로써 두드러진 것이 아닐까 한다. 역사에서 늘 진실과 자유의 문은 더디게 온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마치 재물처럼 희생되고서야 조금씩 열어젖힐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가.

 

1962년. 엘우드는 짐 크로 법이 폐지되기 전 -1965년에 폐지되었다- 즉 법의 부당함에 대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높아지던 시절을 지나던 청소년이었다. 비록 그의 부모들이 그를 할머니에게 버려두고 떠나버리긴 했지만 깨어있는 정신을 지닌 청년으로 자라는 중이었다. 하지만 당시 흑인들에겐 불운이 늘 따라다녔다. 재수 옴 붙으면 죽음이 들러붙기도 한다. 똑똑하고 바른 청년 엘우드 또한 그 불운을 비껴갈 수 없었고 니클 아카데미로 오게 된다.

 

아카데미란 탈을 쓴 이 교육기관은 문제아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크나큰 문제아부터 소소한 문제아까지 죄목도 다양하지만 대부분 억울하게 끌려온 아이들이다. 더군다나 변명조차 통하지 않던 흑인에게는.

 

들어오긴 쉬워도 나가기는 어려운 곳.

비위생적인 시설과 말도 안 되는 체벌이 행해지던 곳. 연고 없는 아이들의 생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곳.

한 마디로 이곳은 감옥보다 더 한 수용소를 연상시킨다. 관리자들은 이런 아이들의 살점을 야금야금 뜯어먹으며 이득을 취하고 소문의 틈새를 완벽히 차단한다. 어쩌면 알면서도 눈 가린 자들덕에 더 배를 불렸을 수도.

 

마틴 루서 킹 목사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외쳤고 견딤의 숭고함을 부르짖었건만 스펜서나 얼 같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악용해서 더 악랄하게 괴롭힌다. 엘우드는 바른 생활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착하게 잘 지내면 아무 일 없을 거라던 경찰의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 니클이었다. 싸움을 말리려다 되레 죽을 만큼 맞았고 니클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기록해둔 종잇조각도 휴지가 되었다. 엘우드의 순진함이 지독한 체벌 앞에 짓밟히고 선량한 희망마저 독방에서 체념화되어간다. 할머니 또한 그를 도울 수 없었고 도움을 청한 편지도 묵묵부답이었다. 정말 그는 분수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한 대가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니클의 공포에 체념한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터너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알았고 자신보다 용감했던 엘우드와 목숨을 건 탈출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후반부에 가서야 표지 그림을 이해했다. 누가 되었든 진실을 알려 줄 산증인이 필요하고 억울한 영혼들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이들에게 나머지 한쪽 눈을 뜨게 끔 알려야 한다.

이야기는 현재 니클의 소년들의 뼛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해 과거로 떠난다. 무력해진 폭력 앞에 엘우드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거다란 지렛대는 폭력밖에 없다. -p.111 가설을 세우기도 하지만 니클을 없애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진실이라는.

 

"그 녀석들은 죽어서도 골칫덩이였다" 라는 첫 문장을 읽으며 골칫덩이로 여긴 것이 개발업자였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회의 골칫덩이로만 존재할 수 없었던 이 가여운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고발 소설을 읽을 때 불편함보다는 이러한 비극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불편하고 안타깝다. 어찌 되었든 흑인 아이들의 인권 따위를 무시한 건 백인이었고 백인들은 그런 체재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피부색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이들조차도 무관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랬다면 엘우드의 쪽지로 변화가 일어났어야 했다.

세상을 일부밖에 보지 못하는 눈에 익숙해지면 -p.116 이런 일들은 어디서든 계속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조차도 엘우드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비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열해지느냐 마느냐보다 더 외면할 수 없었던 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를 찍어 누르는 크고 작은 힘에 사라져선 안된다. 그리고 진실에 가닿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고발 소설답게 여기저기 널려 있는 풍자의 떡밥도 볼거리다. 두 번 읽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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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6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작품 영화로 만들어 지면 좋겠어요.
항상 건빵님 리뷰 읽을때마다 느끼지만(감탄)

짠돌이 알라딘 이렇게 잘쓴 건빵님 리뷰들
당선작으로 뽑아줘라!

건빵과 별사탕 2021-02-26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제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온이 부쩍 올랐네요.
기분좋은 주말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