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4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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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 여성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결혼 골대를 향해서만 온통 열정을 쏟으며 사는 존재로 비쳐서 참으로 답답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너무 요즘 시대의 잣대로 그녀들을 이해하려 했음이 문제였단 걸 책을 읽는 동안 깨달았다. 영화를 보면서도 남녀 주인공의 밀당에 초점을 잡고 보았던지라 밑바탕에 깔린 영국 사회의 관습과 제도는 간과했었다. 그랬기에 소설의 첫 문장이 뜻하는 바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베넷 부인의 그 난리 법석이 그럴 수밖에는 없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는 베넷가 딸들의 결혼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을 통해 소극적이고 전통적이었던 여성상을 좀 더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작가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실린 힘과 재치에 속이 후련하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자신 없어하고 늘 천사표를 자처하는 제인이 답답할 지경이다.

 

당시 영국 상류사회는 온통 오만과 편견, 편견과 무지가 난무한다. 보수적 도덕주의, 엄숙, 허영, 위선, 교만이 깊이 뿌리내려진 사회였기에 가진 자의 오만함과 덜 가진 자를 향한 편견, 무지가 낳은 오해와 편협한 사고들이 여러 인물들에게서 드러난다. 당차고 현명한 스스로 분별력이 있다고 자부한 엘리자베스조차도 비껴갈 수 없는 감정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베넷 부부, 다섯 딸들, 그들의 친인척, 베넷가 아가씨들과 맺어질 빙리와 다아시 쪽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부를 가진 자들이고 그 부를 중심으로 관계망이 형성된다. 그랬기에 두 남녀의 감정에 외부 감정들의 개입은 당연한 것이고 눈높이가 맞지 않을 경우 한쪽 집안은 물론 당사자의 자존심에 베이는 상처는 깊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처음에 <첫인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초반 몇몇 구절만 보아도 첫인상의 양면성을 꼬집고 있음이 보인다. 최종 판결을 내렸다.-p.19, 판정이 내려졌다.-p. 27 첫인상만으로 쉽게 상대를 판단하는 경솔함은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다. 그랬기에 우리는 늘 이러한 판단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이 몇 번의 퇴고를 거치며 <오만과 편견>으로 자리 잡은 이유가 이런 점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있는 자는 좀 오만해도 된다고 말하는 장면에선 왜 끄덕이게 되는건지.ㅋㅋ

 

돈 쓰는 습관이 우리를 너무 의존적으로 만들지요. -p.239

당시 여자들의 삶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 보조 역할을 하는 존재였으니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미모가 출중해야 하고 게다 교양과 다양한 스펙은 결혼의 중요 덕목이었다. 딸뿐인 베넷가의 큰 숙제 또한 딸들을 좋은 집으로 시집보내는 것이었다. 재산에 대한 법적 권리가 딸들에게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신데렐라의 환상이 주는 기대감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적 감성이 깔려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유치하지 않은 이유는 그러한 돈의 계급으로 세분화된 관계를 개인의 자질로 깨부순다는 데 재미가 있다. 물론 이런 플롯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다루어져 왔지만 좀 더 매너 있고 격식 있는 대사와 재치와 활력 덕에 더 쫄깃하게 읽힌다. 극도의 분노 없이도 부드럽게 상대를 K.O 시키는 능력! 이 얼마나 지성인 다운 면모인가.

 

베넷 부인의 호들갑과 경박스러움, 텅 빈 머리로 남자들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동생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변변치 않은 조건으로 결혼에 골인하는 루커스의 선택도 이해가 된다. 사랑보다 안정된 가정을 갖기 위해서 여자들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이것뿐이라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도 얻게 된다.

 

다아시의 오만함과 위컴의 거짓 증언에 모든 정황을 오판한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의 솔직함과 당당함에 반기를 든 빙리 양과 캐서린 드 버그 귀부인. 이 다양한 편견들이 낳은 인간들의 속내와 위선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기에 갈등이 해소되고 사랑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즐겁다. 마치 내가 엘리자베스가 된 것 마냥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기까지 한다.

 

서재에서 베넷 부인을 쫓아내는 베넷 씨의 모습에 빵 터졌고 안정된 부만 보장되면 딸들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하며 편할 대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베넷 부인의 모습과 교양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어린 동생들의 철딱서니 없는 모습은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그런 가족의 흠을 꼼꼼하게 지적질 하는 다아시의 솔직한 견해에 수긍하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그 또한 솔직 담백해서 웃음이 난다. 리디아의 철부지 없는 사랑 도피를 수습한 다아시와 늘 자신보다 언니를 더 걱정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참으로 배려가 넘친다. 두 자매 사이가 으찌나 각별한지.

 

그럼에도 나는 엘리자베스가 그 먼 길을 언니의 병환 때문에 걸었을까? 혹 그곳에 디아시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녀 또한 스스로 아닌척했지만 그를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역시 말이란 건 양쪽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하는 법이고 인간은 절대 바뀌지 않는 법이며 밀당은 적당히 하는 것이 좋고 될 수 있으면 주위에 적을 두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위에 휘둘리지 말고 내 인생은 스스로 일구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핵심이 아닐까.^^

 

유행가 가사처럼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인 시대지만 여전히 돈이 목적인 결혼과 분별 있는 결혼의 차이점을 모르는 이들이 있으며 오만과 편견으로 눈앞에 인연을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베넷씨처럼 상대를 젊음과 미모만 보고 선택할 경우 포기해야 할 것들(진정한 애정, 존경, 존중, 신뢰)이 많아질 수도 있다. 그가 시골생활과 책에서 위안을 얻지 않았다면 큰일날뻔 했다.ㅋㅋ

 

편견은 내가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상대가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깊이 새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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