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 - 부엌에서 마주한 사랑과 이별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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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선뜻 부엌을 보자고 한다면 민낯이 드러나는 기분이 들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신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에 별 취미가 없다. 전혀 재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귀찮은 일 중 하나다. 만드는 열정도, 먹는 즐거움도 그다지 없다. 배만 안고프면 된다는 생각에 여태껏 식에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시부모님과 합친 후 부엌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시간들은 더 큰 스트레스를 낳았었다.

 

하지만 내게도 싫든 좋든 부엌에 관한 추억은 쌓였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했던 일들이 단순히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되짚어 보니 내 삶도 그곳에서부터 영글기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집 저집 음식 냄새를 타고 퍼져나가는 사연들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마음들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래도록 부엌을 쓰고 닦는 동안 많은 이들과의 연을 채워간 이도 있을 것이고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충실하지 못한 삶을 부엌에서 위안 받거나 새로운 시도로 마음을 다잡아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부억취재기가 담겨있다. 저자는 취재를 하는 동안 이곳에서 사람사는 냄새를 진하게 느낀다. 그래서인지 나는 소개된 열아홉 집의 모습을 보며 부엌을 홀대했던 순간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식도락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요리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지고 또 결혼 후 함께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는 부부도 흔하다. 함께 장을 보고 장단 맞춰 식사 준비가 끝나면 즐겁게 식사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더 정겹게 흘러간다. 그래서 가족이 한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긍정적 기운을 불러온다. 그래서 우리집도 되도록이면 저녁식사는 온 가족이 함께 하려한다.

부엌은 그렇게 함께 하며 서로의 식성과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마주는 앉았지만 각자의 음식에만 몰두한다면 식사시간이 즐거울 리 없다. 아내의 채식 식단 앞에서 "뭐야, 당신, 잘난 척 그만해." -p.13라고 내뱉는 남편이라면 굳이 밥상 앞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터졌을 것이다.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이라면 한쪽이 감당해야 할 상처는 더 커져간다. 그 순간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깨닫는데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들인 공간은 그만큼 가치가 깃든다는 말이 부엌과 그리 잘 어우러질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부엌과 그리 친하진 않아도 다른 집의 부엌을 들여다보니 정겨움이 느껴진다.

각자의 취향을 반영한 듯 조리도구 및 주방용품이 빼곡한 집도 있는 반면에 초라해 보이는 집도 있다. 욕심나는 주방기구를 설치한 것으로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고 인테리어에 제법 공을 들인 집도 있다. 그러나 노숙자 생활을 방불케하는 노부부의 부엌을 보면서 앞날보단 당장의 위생과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다.

 

 

 

부엌이란 공간과 삶을 엮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혼 후 미각을 잃은 여자가 부엌에서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친구가 해준 충고가 떠올랐다. 내가 나 스스로를 제대로 대접하는 일은 제대로 된 식사에 있다며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조언을 남긴 친구의 말과 그녀가 정의한 요리는 '입지 확인'이다라는 말이 닮아 있는 듯 하다.

 

다시 한번 혼자만의 생활로 돌아와 땅에 발을 붙이고 현실이 살아가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생활에서 최저한의 부분은 지키고 싶어요. 힘차게 살고 있는지 아닌지, 요리는 제게 그 입지를 확인하는 일이에요. -p.92

 

시집살이의 부엌일은 고달팠으나 마당 텃밭에서 길러낸 제철 채소들로 부침개를 부쳐 나눠먹던 일(여름이면 식탁이 각종 채소로 풍성했다), 힘든 육아 시절 남이 해 준 밥은 다 맛있구나를 경험한 일(내가 먹은 감자볶음 중 최고였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빠의 요리 갈치구이(비주얼은 엉망이었는데 맛은 끝장이었다), 명절 때마다 그 좁은 부엌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내오던 요술쟁이 같던 엄마(그렇게 차려놓고도 차린 게 없단 소리는 빼놓지 않았다), 싸운 뒤 분위기가 서먹할 때 나는 떡볶이로 남편은 라면으로(역시 먹는 게 남는 건가), 작년 겨울에 담은 김장김치가 성공한 일(마음가짐을 달리 먹었다. 즐기기로)들이 막 떠올랐다.

최근에는 "방학이라 삼시 세끼 챙기다 하루가 다 가. 내 공간이라곤 부엌 식탁뿐인 것 같아."라며 신세한탄하던 친한 언니의 투정도 떠오른다.

 

난 이 책을 계기로 부엌에 대한 느낌이 많이 바뀌었다. 능숙하지는 않지만 부엌에서 써 내려갈 레시피가 나의 인생 레시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애정을 쏟고 싶어진다. 요리는 생활의 질을 높이고 맛있는 음식은 입안뿐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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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비책 - 모든 시험의 완벽 대비 진짜 공부법
조기현 지음 / 지혜의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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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자격증을 따며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다가간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데 다들 동의할 것이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또 무조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누구나 합격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 것이다.
이 책은 좀 더 상급 학생이나 고등고시 및 전문자격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적용 가능한 책이며
‘올바른 방법으로 쉽게 공부하여야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다.’라는 사실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은 두껍지 않아 금방 읽힌다. 공부를 요령껏 잘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게 책이 두꺼워질 만큼 많은 분량이 필요 없다.
목차만 보아도 핵심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올바른 공부법의 중요성
2. 목표 설정 단계
3. 강의 및 학습 보조 자료의 선택
4. 객관식 시험공부 방법론
5.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6. 효과적인 멘탈 관리
7. 수험생활을 잘 하는 요령
8. 직장인 수험생을 위한 충고

 


 


 

잦은 실패는 분명 공부법에 문제가 있다. 그럼으로 자신의 공부법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올바르게 해야 한다. 한 분야에 능통한 공부법이 모든 분야에 맞을 수 없듯 자신에게 맞는 방법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양해야 할 점을 먼저 체크한다.
각종 공부 비법에서 주의할 점은 단정적인 표현은 백 프로 신뢰하면 안 된다. 공부법이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경쟁률이라는 숫자에 약해질 필요가 없다고 꼬집는다. 자신감은 좋은 시너지를 부르기 때문에 이왕 시작점부터 관점을 바꾸라고 조언하는데 좋은 조언이라 생각한다.

무리한 계획은 슬럼프라는 덫에 빠지기 쉽다. 본인의 의지를 과신하지 말고 공부의 양을 정하는 것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필자는 수험 시간을 11로 잡아 3-4-4라는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오전 3시간, 오후 4시간, 저녁 4시간이라는 계획 아래 강의시간 복습 시간과 과목 등을 배분했다고 예를 들고 있다.

쉬지 않고 하는 공부가 효율적일 리가 없듯이 쉴 때 쉬고 공부할 땐 공부하자는 마인드도 중요한 법인데 쉬는 시간만큼은 내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이 능률 상승의 길이다. 주의할 것은 스마트폰과 수험생 커뮤니티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스마트폰의 중독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커뮤니티는 자칫 부풀려진 정보나 거짓 정보에 휩쓸리기 쉬운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무 과목이나, 독학이 길은 아니다. 충분한 지식이 없다면 독학보다는 강의가 빠른 이해를 돕고 강의 시 필기보다는 귀와 뇌를 열어 흡수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예습과 누적 복습은 피하고 노트 필기에 너무 시간을 할애하지 않도록 하며 차근차근 공부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부분에서는 내가 그러다가 중도 포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참으로 공감했다.

필자가 말하는 공부의 순서는 좀 더 공부를 쉽게 해 줄 비책으로 보인다. 기출문제집의 중요성을 부각해 설명하고 있으니 이 책의 핵심인듯하다. 문제집의 선택과 풀이 방법 등 기출문제집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 외 연애, 운동, 음주, 직장인들이 일과 공부를 병행할때 해주는 조언도 들을만하니 읽어두면 좋겠다.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나태와 슬럼프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이들이 많다. 문제점을 직시하지 못하고 두려움만 키우는 안타까운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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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세계 미술관
이유민 지음, 김초혜 그림 / 이종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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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유명 미술작품을 눈도장 찍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책이 나왔다. 그림을 좋아하고 그리는 일이 일상인 녀석에게 폭넓은 회화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 책이 적합해 보였다. 이미 방과 후 미술활동을 하면서 명화를 따라 그려보거나 여러 가지 기법으로 재현해보는 작업을 몇 번 한 적이 있어서인지 낯설지 않은 그림도 여럿 보였다.

 

먼저 딸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는데 세계 각국의 박물관의 모습에 더 관심을 보인다. 고풍스럽고 웅장한 건물에 시선을 뺏기는 건 어른이나 애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모습은 다시 보아도 멋지고 유럽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빈 미술사 박물관은 아름다운 궁전을 연상시켰다. 코톨드 갤러리는 예전에 다른 그림 찾기에서 하도 뚫어져라 본 적이 있어 아이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일상과 가깝지 않다 보니 딱딱하고 낯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자주 접해주는 것이 좋을 텐데 이 책은 아이들에게 세계의 미술작품을 어떻게 하면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을까에 포인트를 맞추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양이 친구 그레이와 또래 친구 서연이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에 그림과 더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이 낯선 친구들은 미술관에 대한 예절을 숙지하고 미술관 속 공간구성과 미술관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누가 있을지 살펴볼 수 있다.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도 유럽 각지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간략 정보를 빼놓지 않았다. 유럽 각지의 유명 박물관도 만나보고 대표 작품과 작품에 얽힌 간단한 일화 등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작품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을 수 있다.

 

다시 보아도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그림에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실감 나는 터치와 붓놀림 그리고 빛과 어둠을 절묘하게 담아낸 작품들을 보며 당대 화가들의 실력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림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도 보이고 그 당시 어떤 것들이 유행하였는지도 볼 수 있으며 종교나 신화의 이야기를 재현한 그림을 보며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리아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작품이 실려 있어 반가웠다.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에 이 그림은 볼 때마다 울컥하는데 아이에게도 어떤 감정이 드는지 물어보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을 잘 모르더라도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살펴보며 아이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이의 간략한 리뷰도 같이 실어 보았다.

특이한 그림이 많아서 재미있었고, 내가 그리는 그림이랑은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서 신기했다. 그중 존 밀레이라는 화가의 [오필리아]라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꽃을 따다 물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는 게 안타깝기도 했던 그림이었다.

 

고양이 그레이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싸움에 져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지만 정치인들이 신을 부정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제자들을 타락시킨 죄로 이야길 포장하였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고 그것을 따르기 위해 독약을 먹고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재밌기도 했지만 죽음이라 하니 슬프고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도 인상 깊었다. 내가 알고 좋아하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건물이 예쁘기도 해서이다.

 

이 책은 그림과 그림에 알맞은 설명을 재미있게 적어놓아서 좋았고, 어려운 문장이 많지 않아 이해하기도 쉬웠다. 또 내용도 지루하지 않아서 어린이들이 보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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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모리 에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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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리 에토의 최근작인 [다시 만나다]를 읽고 고민 없이 선택했다. 물론 제목에 더 끌리기도 했다. 전반적인 내용은 1960년대 일본, 군국주의 교육과정을 지난 뒤 생겨나기 시작한 일본 학원의 역사를 한 교육자 가족의 일대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대략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강산이 변하는 속도보다 더 교육은 몸살을 앓으며 변화를 거듭한다.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터, 가족의 일대기가 속도를 내며 흘러가니 두껍던 책은 지루할 틈이 없이 넘어갔다.


학교 조무원실에서 근무하는 남자 오시마 고로는 조무원을 찾아오는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르치는 일에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온 여인 지아키는 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군국주의 교육의 날것을 보며 공교육을 끔찍이 싫어하며 이상적인 교육관을 지닌 진취적인 여성이다. 그런 공교육의 대안을 학원에서 찾은 그녀는 고로를 찾아가 함께 운영하자고 설득한다.


교육자도 아닌 그가 선뜻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결국 지아키의 밀어붙이는 추진력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함께 동업자에서 한 가족이 된 두 사람은 식구가 늘 듯 학원의 규모도 키워 나간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는 만큼 잡음도 커지게 마련이다. 교육부의 학원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압력, 주변 경쟁업체와의 경쟁과 대립 등에 치이면서 그만큼 둘 사이의 의견 충돌도 커져만 간다. 지아키의 고집은 집착이 되어가고 둘 사이는 파국을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 집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데는 자녀들의 역할이 컸다.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교육자 집안의 숙명과 사명감 같은 그 무엇이 흩어진 가족을 하나로 이어준 것이다.


모리 에토의 따뜻한 시선이 여기저기 녹아 있어 책장을 덮고도 그 온기가 오래갔다. 미혼모 가정에 들어가 모자람을 사랑으로 꽉 채운 고로가 이야기의 반 이상을 끌고 가지만 후반은 손자가 마무리 지으며 완성도를 높인다. 어려움 앞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돕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은 교육의 이상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오시마 씨, 전 학교 교육이 태양이라면 학원은 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빛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비추는 달.

지금은 아직 여릿한 초승달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둥글게 차오를 거예요.

P.34


교육을 달과 태양에 비유하며 사교육에 대한 열의를 담아낼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교육이 비즈니스가 되면 초창기 품었던 뜻에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아키를 마냥 비난할 수도 없다.

게다가 교육에 대한 철학과 현실과의 충돌은 지금도 진행 중인 문제들이고 딸 란의 깨달음처럼 교육은 절대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번 일로 알았어. 아이란 건 고객이면서 고객이 아니야. 등록하고 해지하고를 결정하는 것도, 돈을 내는 것도 애들이 아니라 보호자니까. 학원에 다니는 애들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무력해. 그 점에서 다른 비즈니스하고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고 났더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하기가 무서워졌어.” -p.371


표면적으로 추구하던 교육의 목표는 언제나 그 주위를 겉돌기 마련이다. 이상적인 교육관을 담은 서적이 불티나게 팔려도 현실의 괴리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세기를 지나며 교육이 누군가를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씁쓸하게도 성공의 도구로 전락한 점은 안타깝다. 사설학원을 비난할 수도 막무가내로 공교육의 질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려진 경쟁 시스템에 교육의 초점을 맞춘 점도 한몫한다. 요즘 한창 뜨는 스카이캐슬 속 입시전쟁이 전혀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치로 줄 세우는데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차지만 정작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확신할 자신도 없다.


빨리 성장해야 했고 누구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달려왔지만 교육은 빨리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님을 일본과 한국을 보며 깨달았을 것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뿌리내리자 교육의 이기심도 커지고 그 속에 아이들은 여전히 혹사당한다. 방학이 더 두렵다는 아이들 얘기에 어느새 나도 아이를 입시지옥의 문 앞에 세워놓은 기분이라 요새 마음이 영 편치만은 않다.


어느 시대든 교육이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대립은 지금도 확실한 대안 없이 흐르고 있다. 공교육에서조차 처지는 아이들을 끌고 가지 못하고 방치하는가 하면 사교육에서도 입학 커트라인을 만들어 학원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에 앞장선다. 교육의 불평등도 점점 벌어지는 소득의 격차만큼 벌어질 수밖에 없다. 책에서도 그러한 문제점을 깨닫고 헤쳐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저소득계층을 위한 무료교육지원 사업이 채울 수 없을 것만 같던 깨진 독에 돌멩이 역할을 해 주는 듯해서 따스했다.

지아키와 고로, 두 사람의 간극은 결국 무수한 시행착오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 속에서 서로가 놓쳐버린 것들도 많다는 점이다. 지아키의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아이들을 방치했기 때문에 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반문하던 지아키의 변명과 그렇게 사라져 버린 맏딸과 연락을 끊고 사는 엄마라니.. 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교육은 초승달처럼 끝내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보름달처럼 꽉 채울 수 있는 교육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교육의 패턴에 아이를 맞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부모가 찾아주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교육만큼 자식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은 지아키의 맏딸을 보며 공감했다. 교육의 혐오와 사교육에 혼신을 쏟는 엄마보다 아빠의 교육철학을 존중한 딸은 결국 공교육에 발을 들인다. 그래도 공교육의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함을 내비칠 때 뭉클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리 에토가 한국의 조정래 같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 보았다.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던 [풀꽃도 꽃이다]와 [초승달]은 스토리의 공통점은 없어도 말하고자 하는 뉘앙스는 비슷해 보였다. 교육의 문제를 다시 상기시켜주며 교육을 본질을 찾아가자는 의미 말이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힘, 쉽사리 통제되지 않기 위한 힘을 주기 위해 있다. -p.512


50년이라는 세월을 촘촘히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듬성듬성 뛰어넘는 시간 속에서 모리 에토만의 인간미를 느껴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일본에서는 티브이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대지 속 남녀가 그 두 사람인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낼지 벌써 궁금해진다. 책 때문에 더 자주 밤하늘을 올려다볼 것 같다. 초승달부터 달이 차오르는 매일을 들여다보며 내일은 무엇으로 채워갈지 고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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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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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희망이 사라져버린 지는 오래된듯하다. 계층과 계급이 선명한 세상에서 계천에서 용나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일이 되어버렸고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잔인함만이 남았다.

스포츠 정신이 돈 아래 놓인 세상에서 그 돈줄을 쥐고 흔드는 자들은 꿈나무들의 가지를 입맛대로 가지치기 한다. 거대 스폰서의 빨대 꽂기, 후원금, 줄 세우기, 승부조작 등 연일 터져대는 스포츠계의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성폭력까지 가세해 썩을 대로 썩은 스포츠계의 민낯에 경악할 지경이다. 그런 비리 속에서 선수들은 물고 뜯기며 정상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곳엔 우정도, 의리도, 믿음도, 다시 한번 의심하고 의심해야 한다. 스포츠계의 추악함만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기고 지는 전쟁터에서 스포츠도 마찬가지일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비단 스포츠뿐이겠는가, 사는 게 전쟁터인데.

 

아침마다 현관 문고리를 잡으면 그런 기분이 듭니다.

이걸 열고 나가면 오늘도 여기저기서 물어뜯겠다고 달려들겠구나. --- p.14

 

테니스계에서 촉망받던 어린 선수 임석. 어느 날 그는 초대받은 별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정신을 잃게 된다. 그렇게 꿈과 현실을 혼동하던 사이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어 있다. 모든 화살이 그를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서마저도 철저히 지워져 있다. 잃었던 의식만큼 그날의 기억은 희미하고 앞날은 더 깜깜하다. 그러나 절대악을 쓰러뜨릴 병기가 등장해야 읽을 맛이 있지 않겠는가. 변호사 임지선은 임석에게 정의라는 것을,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주는 인물이다.

감별소에 있는 동안 누명을 벗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검은 개 마냥 어둠 속에서 몸을 사린 채 달려들 때를 기다려야 한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도 덤비지 말고 한 놈을 죽이든 두 놈을 죽이든 천천히 밟고 올라가. 빨리 해결한다고 총알 한 발로 뭔가를 끝내는 카우보이가 되지는 마라. 카우보이가 되면 저도 총알 한 발로 인생이 끝나 버리니까. 그리고 감별소에서 죽으면 골치 아파진다.”

임 변은 잔인하게도 그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 p.321

 

거짓이 단단하게 자신을 죄어오는 상황도 미칠 노릇이지만 감별소에서의 눈치싸움은 더 죽을 맛이다. 어딜 가나 줄 세우기 좋아하고 누군가를 찍어 눌러야 직성이 풀리는 동물적 본능에 인간미라곤 느껴볼 수가 없다. 그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인자들의 기싸움에 내 기가 더 빨린다. 더 이상 잃은 것 없는 자들의 몸부림이 더 잔악해서 인생의 바닥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어스름한 빛이 내리비치는 그들의 세계에 농도가 다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오라고,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내게 말했다. ---p.328

 

세상의 중심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 알았던 소년에게 돌아온 플래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른들의 더럽고 지독하게 이기적인 욕망의 희생양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사건이 터진 와중에도 훈련을 밀어붙이려는 코치, 그 와중에도 노예 계약서를 들이미는 엄마, 콩가루 가족.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세상의 바닥에서 남은 건 깡뿐이다.

 

진실은 통했다고 안도해야 함에도 나는 그리 안도감이 들지 않는다. 추악한 비리를 밝혀냈음에도 개인의 꿈은 짓밟혔고 그렇듯 또 다른 어둠들은 많은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다. 정의와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 하고많은 이들이 돈 앞에 절망을 맛보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더 씁쓸하다.

 

시원한 필력과 캐면 캘수록 쏟아져 나오는 진실들에 470페이지가 쉼 없이 넘어갔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작가의 이력을 들춰보지 않았었는데 데뷔작도 궁금해질 만큼 글이 좋았다. 군더더기 없이 착착 감기는 문장 또한 매력적이다.

 

이 글은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갈등,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극한 대립 속에서 교묘히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검은 밤을 검은 개 눈으로 좇고자 하는 과정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위너스 독서실, 황금 부동산, 영재 피아노, 봄날 미용실 - p.439처럼 그냥 희망 사항이자 가고 싶어 하는, 대부분이 다다르지 못하는 목적지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기댈 어깨가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내려놓을 인생이라지만 한 젊은 선수의 꿈이 좌절되는 순간을 엿보는 건 여전히 쓰리고 아프다. 그게 나뿐 아니라 내 자식의 일이 될까 봐 그리고 청춘을 위로할 그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서. 이미 많은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내면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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