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희망이 사라져버린 지는 오래된듯하다. 계층과 계급이 선명한 세상에서 계천에서 용나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일이 되어버렸고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잔인함만이 남았다.

스포츠 정신이 돈 아래 놓인 세상에서 그 돈줄을 쥐고 흔드는 자들은 꿈나무들의 가지를 입맛대로 가지치기 한다. 거대 스폰서의 빨대 꽂기, 후원금, 줄 세우기, 승부조작 등 연일 터져대는 스포츠계의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성폭력까지 가세해 썩을 대로 썩은 스포츠계의 민낯에 경악할 지경이다. 그런 비리 속에서 선수들은 물고 뜯기며 정상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곳엔 우정도, 의리도, 믿음도, 다시 한번 의심하고 의심해야 한다. 스포츠계의 추악함만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기고 지는 전쟁터에서 스포츠도 마찬가지일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비단 스포츠뿐이겠는가, 사는 게 전쟁터인데.

 

아침마다 현관 문고리를 잡으면 그런 기분이 듭니다.

이걸 열고 나가면 오늘도 여기저기서 물어뜯겠다고 달려들겠구나. --- p.14

 

테니스계에서 촉망받던 어린 선수 임석. 어느 날 그는 초대받은 별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정신을 잃게 된다. 그렇게 꿈과 현실을 혼동하던 사이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어 있다. 모든 화살이 그를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서마저도 철저히 지워져 있다. 잃었던 의식만큼 그날의 기억은 희미하고 앞날은 더 깜깜하다. 그러나 절대악을 쓰러뜨릴 병기가 등장해야 읽을 맛이 있지 않겠는가. 변호사 임지선은 임석에게 정의라는 것을,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주는 인물이다.

감별소에 있는 동안 누명을 벗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검은 개 마냥 어둠 속에서 몸을 사린 채 달려들 때를 기다려야 한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도 덤비지 말고 한 놈을 죽이든 두 놈을 죽이든 천천히 밟고 올라가. 빨리 해결한다고 총알 한 발로 뭔가를 끝내는 카우보이가 되지는 마라. 카우보이가 되면 저도 총알 한 발로 인생이 끝나 버리니까. 그리고 감별소에서 죽으면 골치 아파진다.”

임 변은 잔인하게도 그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 p.321

 

거짓이 단단하게 자신을 죄어오는 상황도 미칠 노릇이지만 감별소에서의 눈치싸움은 더 죽을 맛이다. 어딜 가나 줄 세우기 좋아하고 누군가를 찍어 눌러야 직성이 풀리는 동물적 본능에 인간미라곤 느껴볼 수가 없다. 그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인자들의 기싸움에 내 기가 더 빨린다. 더 이상 잃은 것 없는 자들의 몸부림이 더 잔악해서 인생의 바닥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어스름한 빛이 내리비치는 그들의 세계에 농도가 다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오라고,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내게 말했다. ---p.328

 

세상의 중심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 알았던 소년에게 돌아온 플래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른들의 더럽고 지독하게 이기적인 욕망의 희생양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사건이 터진 와중에도 훈련을 밀어붙이려는 코치, 그 와중에도 노예 계약서를 들이미는 엄마, 콩가루 가족.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세상의 바닥에서 남은 건 깡뿐이다.

 

진실은 통했다고 안도해야 함에도 나는 그리 안도감이 들지 않는다. 추악한 비리를 밝혀냈음에도 개인의 꿈은 짓밟혔고 그렇듯 또 다른 어둠들은 많은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다. 정의와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 하고많은 이들이 돈 앞에 절망을 맛보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더 씁쓸하다.

 

시원한 필력과 캐면 캘수록 쏟아져 나오는 진실들에 470페이지가 쉼 없이 넘어갔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작가의 이력을 들춰보지 않았었는데 데뷔작도 궁금해질 만큼 글이 좋았다. 군더더기 없이 착착 감기는 문장 또한 매력적이다.

 

이 글은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갈등,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극한 대립 속에서 교묘히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검은 밤을 검은 개 눈으로 좇고자 하는 과정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위너스 독서실, 황금 부동산, 영재 피아노, 봄날 미용실 - p.439처럼 그냥 희망 사항이자 가고 싶어 하는, 대부분이 다다르지 못하는 목적지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기댈 어깨가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내려놓을 인생이라지만 한 젊은 선수의 꿈이 좌절되는 순간을 엿보는 건 여전히 쓰리고 아프다. 그게 나뿐 아니라 내 자식의 일이 될까 봐 그리고 청춘을 위로할 그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서. 이미 많은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내면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