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나무 독깨비 (책콩 어린이) 58
캐서린 애플게이트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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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인정하는 것보다 우리 나무가 훨씬 더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p.26

 

나무는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세상과 함께 했다. 그들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공생하는 법을 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함께 하면서 인간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나무는 인간을 위해 희생하고, 그늘이 되어주고, 쉼터가 되어주고, 신성한 의미를 지니기도 하며 그 곁에 있어왔다.

 

우리나라에도 마을 입구에 오래된 나무를 신성시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그런 나무를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오랜 시간을 견딘 나무는 역사의 혼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어준 나무를 함부로 대한다면 불행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가 고작 나뭇잎의 속삭임뿐이라고 해도 나무에게 마음을 내어주면 나무는 애정을 드러낸다. 이는 그러한 믿음만 있다면 느낄 수 있다. 식물도 인간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졌지 않은가.

 

저자는 소원나무 레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과 자연의 공생뿐 아니라 다문화 사회를 이슈화하여 더불어 잘 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참나무 레드는 216년이란 시간을 지나는 동안 인간들에게 소원나무라 불리며 함께 지내왔다. 그리고 레드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 친구들에게도 집이 되어주고 먹이를 주고 놀이터가 되어주며 함께 지내 왔다. 소원의 날 만큼은 인간들은 나무에게 한없이 애정을 드러낸다. 레드를 보고 있자니 그 애정이 좀 과해 보이기도 한다.~~^^

 

 

 

사건의 발단은 마을에 사마르의 가족이 이사를 오고 나서 시작된다. 당시 각국은 테러로 인해 이민족에 대한 반발심이 커져만 가고 있었기에 이슬람교인 사마르 가족은 미국 사회에서 온전히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서 늘 혼자인 사마르의 소원은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경계하는 눈빛은 더 강렬해지고 소원의 날 누군가가 레드의 몸에

“떠나라”라는 글자를 새기자 문제가 커지게 된다.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음식, 서로 다른 관습, 그게 우리의 이웃이었다.

자유분방하고, 복잡하며 각양각색인 이웃, 으뜸 중의 으뜸인 정원처럼. -p.62

 

인간들은 이해불가다. 216년을 산 레드의 말이다. 레드의 눈에 비친 인간들의 모습은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서로 잘 어울리다가도 금방 벽을 세운다. 추잡한 소문은 금세 퍼지고 정작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레드를 베어버리기로 하자 레드는 더 이상 인내심을 참아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해서는 안 될 일, 인간들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다는 규율을 깨트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두 친구에게 말을 건다.

“가지 마.”

 

레드가 말을 건 뒤 두 친구는 레드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이는 불편했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도 된다. 그 과정에서 레드의 친구 까마귀 봉고와 레드의 이웃인 동물 친구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꼭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자연은 이처럼 인간들을 위한 삶의 교과서이다. 작든 크든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데 피부색, 생김새, 종교, 국적, 나이 등이 서로를 배척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려거든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간이 소망 없이는 살 수 없듯이 레드가 없어짐으로 해서 사라져버리는 것들도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레드는 두 친구에게 우정을 선물했고 두 친구는 레드에게 계속된 삶을 선물했다. 나무가 자신을 베어버리려던 인간을 끝까지 지켜주고자 했던 모습을 보며 인간은 더 부끄러워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한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지 마세요”라는 말처럼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겠다.

 

 

이 나무는 이 자리를 지킬 거란다. 네 가족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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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불렀어 생각숲 상상바다 8
이금이 지음, 최명숙 그림 / 해와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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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이 책은 5월의 마지막 날 만난 책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단면만 보기 쉬운 아이들에게 나와 다른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의 폭을 넓혀 볼 수 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할머니와 살고 있는 동준이는 자신의 환경이 저 너머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가야만 하는 처지가 싫다. 그러나 동준이는 다친 할머니를 더 힘들게 할 수 없다는 걸 알 정도로 심성이 깊다. 그렇게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조금 놀란다.

 

동준은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과 그것이 같은 반 친구 혜나라는 두 가지 사실에 기분이 새롭다. 여태껏 받아보지 못한 관심에 혜나의 입김마저도 몽실몽실 사랑스럽게 보일 만큼 설렘을 느낀다. 그렇게 혜나를 좋아하게 되지만 방학 교실 담당 선생님을 좋아하는듯한 혜나의 모습에 심통이 나고 만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동준이처럼 자신감도 없고 존재감이 결여된 이들에게는 함께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동준이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에게 신경을 쓰게 된다. 혜나를 향한 관심은 동준을 좀 더 적극적인 아이로 변하게 한다.

 

꿈을 그리고 발표하는 시간. 동준이는 초라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창피해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무시당할까 두렵다. 그러나 혜나의 뜻밖의 고백에 용기를 얻고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꿈과 포부를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혜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인해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다.

 

 

 

가족 구성원의 빈자리만큼 동준이의 마음 한편 도 늘 주눅이 들어있다. 방학이지만 학교를 가야 하는 신세라고 여기는 것부터 자신의 꿈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애정을 향한 질투를 보면 동준이가 느끼는 박탈감이나 빈곤감에 마음이 쓰리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그날부터 동준이는 조금씩 달라진다. 선생님을 향했던 오해의 끈이 슬슬 풀어지는 과정을 보며 학생을 향한 선생님의 애정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한 지붕 아래 살아도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심해보게 된다. 축구공을 안고 홀로 쓸쓸히 걷던 동준이는 선생님의 관심 덕에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가족의 형태나 생활환경의 차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주변을 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간다. 행복과 불행의 잣대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지만 각자의 주어진 환경을 서로 보듬어주며 이해하려는 포용력을 키워가야 한다. 세상은 결코 나 혼자만 잘 살 수 없다.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겠지만 동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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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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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자리에 A형” 어쩐지 비슷한 구석이 많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선은 이게 뭐라고 작가와 운명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다. 유명인과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찾고 나면 괜스레 으슥한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그는 염소자리에 A형이라 힘드셨나 보다. 손해 막심한 삶이라... 막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참고 말지' 한 적은 많았던 것 같다. FM대로 살아야 맘이 놓이고, 예의는 될 수 있으면 지켜야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될 수 있으면 내가 맞추려 했던.

그래도 요즘은 가만 생각하면 욱할 때가 있어서 하고픈 대로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나저나 나도 염소자리 A형의 유명인을 한 명만 더 찾아볼까나.

 

초반부터 저자와의 공통분모 때문에 반갑게 시작하였지만 송구스럽게도 그의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의 티저북만 읽은 게 고작이다.

책장에 몇 권이 진열돼 있긴 한데 이상하게도 선뜻 읽지 못하고 있다.

 

 

 

 

에세이는 정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작가의 일상부터 취향, 성격 등 많은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다. 하루키처럼 베스트셀러가 많고 팬층도 두터운 작가의 에세이는 다음 작품을 선택하는 데 망설임을 줄여준다. 그와의 성격적 공통점뿐 아니라 그가 느낀 일상의 단상들은 비슷한 경험들이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중고도서다. 읽다 보니 밑줄 그은 곳이 곳곳에 보인다. 누군가가 그어놓은 문장 앞에 다다르니 생각이 두 배로 많아진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p.10

흑과 백이 존재하는 한 만인이 평등하기는 어렵다는 진리는 세상에 눈을 뜨면서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걸 알면서도 늘 상처받고 살아가긴 하지만.

 

스무 살은 - 그때는 그때대로 즐거웠지만 -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 -p.21

저자의 청춘은 타인의 한마디에 무너져버렸지만 나는 청춘이 저물어서 아쉬운 마음보다는 요즘 같아선 젊음이 부러울 때가 더 많다. 얼마 전에 큰 녀석의 절친이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내가 다 설렌 적이 있었다. 어쩜 그리도 예뻐 보이는지.

청춘은 한 번뿐이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 나왔으니 저자의 경험처럼 괜한 말로 후회를 한 경험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상대의 별 뜻 없는 말에 상처를 받거나 굳이 안 해도 되는 말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그렇지만 요즘은 특히 내뱉고 있는 와중에도 후회할 때가 있다. 생각이 모자라서인지 말주변이 없어서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하는 데 서투른데, -p.35

이 문장은 그냥 자신의 성향과 비슷해서 동질감에 줄이 쳐진것이 아닐까 한다. 나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도 서툰 대화 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말을 거는 타이밍도 잘 놓치지만 반대로 말을 걸까 봐 긴장할 때도 가끔 있다.

글을 잘 쓴다고 말을 다 잘하는 게 아님을 저자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넉살도 나잇살만큼 더 늘었으면 좋으련만.

 

집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느끼지 않는다. -p.48

소수의 생각이 모든 이의 의견인 마냥 범하는 실수는 일상에서도 비일비재한다. 지인들과 대화 도중에 겪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한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학교급식이 너무 맛없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엄마들은 일제히 학교의 급식이 형편없다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제각각인 입맛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부정적인 생각들은 먼저 뿌리를 내리고 만다.

 

하루키의 음악 취향은 재즈인가 보다. 빌리 홀리데이의 곡을 찾아듣고 있자니 '원액 같은 것'의 느낌을 알듯하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나는 예전에 즐겨 보던 미드 [콜드 케이스]가 떠올랐다. 십 년 전 방영된 드라마로 미제 사건(cold case)을 해결하는 범죄 수사물이었는데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 흘러나오는 올드팝이 더 좋아서 챙겨보던 드라마였다. 그 이후로 올드팝만 흘러나오면 장면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피해자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오버랩하며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울컥한다. 이 미드는 일본에서도 진실의 문으로 리메이크 되어 방영되었다. 하루키님도 보셨을라나.

 

 

 

 

 

 

며칠 전부터 거실 바닥에 누워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늑하게만 느껴지던 침대가 어느 날부턴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지고 있는 것도 한몫하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넓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잘한 소음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나간다. 하루키처럼 두 시간씩 책상에 앉아 창밖 빈 공터를 바라보는 것만큼의 사색은 덜하겠지만 너른 천장을 보고 멍 때리고 있는 것도 나름 괜찮다. 며칠 전 혼자가 된 앵무새가 갑자기 천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외롭다고 발광하는 것 같아 맘이 짠하다. 짝을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천장에 달과 별을 달면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례로 지난다.

 

일상의 단상을 이처럼 훌륭한 글로 바꾸어낼 수 있는 능력은 하루키라서 가능한 것임을 느낀다. 염소자리와 A형 말고도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식사시간은 최소화하는 게 좋고, 경제관념은 꽝이라 재테크도 관심 없고, 할 일이 있으면 불안해하고, 영어회화도 잘 못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해서 하루키가 더 좋아진다. 그래서 다음책은 장수 고양이의 비밀로 선택했다.

 

저자는 쌍둥이와의 데이트를 꿈꾼다고 했다. 내가 봐도 불가능해 보이긴 하지만 뭐 어쨌든 꿈이지 않는가. 그래도 난 실현 가능한 꿈을 꾼다. BTS 사인회가 당첨된다면 좋아서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 새벽 웸블리 스타디움 콘서트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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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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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 인연론』은 물론 임두 작가님이 홀로 23년 동안 쓴 거작이지만,

 그 밑바탕에 이처럼 여자 작가들과 여자 독자들이 백 년 넘게 쌓아온 상상의 세계가 깔려 있다네.

 이건 청나라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소설이야. 놀랍지 않은가?"

- 대소설의 시대 1권_p.47

 

 

 

그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여태껏 살아오며 마음에 품었던 여인들과의 추억도 떠오르고, 또 제대로 잘 살기 위해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도 되돌아보게 되오. 소설이 읽는 이들에게 그처럼 귀한 선물을 준다면, 소설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오. -1권_ p.309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활자보다 영상물이 더 소비되는 세상이다 보니 소설은 더 외면받고 있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책도 빨리 소비하려 한다. 심지어 왜 소설 따위를 읽느냐는 말부터 넌 책도 보고 한가해서 좋겠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민한 적도 있다.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쓴 에세이나 라이트노벨, 여행, 취미, 실용서 등만이 소비되고, 사회적 현상에 치중한 소설이 더 많이 읽히는 시대에 과연 우리 곁에서 이야기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 숨 쉴 수 있을까.

 

이처럼 점점 책이 외면받고 있는 시대지만 18세기 조선 후기 대소설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소설 애호가들 중 여성 독자들이 읽고 쓴 거대한 소설들이 한두 편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놀랍기 그지없다.

 

『대소설의 시대 1,2권』은 18세기 조선시대 여성들에 의해 소설이 쓰이고 읽혔던 시대를 바탕으로 새롭게 쓰인 이야기다. 조선 후기 여성들이 책을 즐길 수 있었던데는 한글의 역할이 한몫했다. 시대적으로 억압받고 무시당하던 여성들은 여성만이 지닐 수 있는 섬세함과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글로 풀어내어 그들끼리 읽고 쓰고 필사하며 소설을 즐긴 것이다.

 

남자를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여자들이 만드는 이야기를 알고 느끼려면,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들여다봐야 해, 말하지 않은, 말할 수 없는, 말하기 싫은, 그래서 담기지 않은 여백의 속 마음을 곰곰이 따질 필요가 있지. -1권_p.46

 

 

 

 

소설의 목차 제목을 보고 있자니 이것들이 과연 실존하는 책인가 할 정도로 내겐 낯설다. 하지만 실존하는 책이라고 한다. 심지어 대부분이 대소설이다. 어떤 책은 그 권수가 180권에 달하는 소설도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얼마나 무수한 이야기들이 쉼 없이 쓰였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우리 문화유산을 볼 때마다 느낀 장대함을 대소설을 보며 느꼈달까.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정조 시대)과 등장인물들(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등) 때문에 사실인 것 마냥 그럴싸하다. 게다가 목차에서 언급되고 있는 작품들이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머릿속 한편에 들었던 의문은 작가의 고증이었다. 대체 이 많은 책들을 언제 읽었단 말인가. 뒤쪽 참고문헌만 해도 몇 장이 넘어간다. 그러한 의문들은 마지막 작가의 후기에서 엿볼 수 있는데 무려 180권이나 되는 『와월회맹연』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억의 속도보다 망각의 속도가 더 빠른 소설'이라는 말이 어쩜 그리도 어울리는지.

 

 

 

 

예전에 비해 장르 편식이 줄어들긴 했지만 대소설의 시대를 끌어나가는 것은 추리였기에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산해인연록』은 궁중 여인들에게 23년 동안 읽힌 대소설이다. 등장인물의 가계도만 보아도 오대에 이른다. 그러나 이 책은 비밀리에 쓰이고 있었다.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이라면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이미 임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깎아내리고 비난 받았던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만은 지키기 위해 남성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어떤 독자도 만나지 않는다.

 

임두는 평생을 소설가로만 살았다. 소설이니 어찌 사고파는 일이 없었을까마는, 거래와 흥정의 도구로 소설을 간주한 적이 없었다.

한 인간의 희로애락과 한 가문 나아가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글쓰기, 그것이 곧 임두가 생각하는 소설이었다. -1권_p.31

 

소설의 집필 과정은 작가인 임두의 손녀 임승혜와 두 명의 제자 경문과 수문, 혜경궁 홍씨와 의빈 성씨, 필사를 담당한 궁녀와 몇몇 내명부 사람들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임두는 199권까지 소설을 쓰고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를 5개월이 넘어가자 궁중 여인들의 조바심은 날로 커져만 간다. 의빈 성씨는 당장 의금부도사 이명방과 규장각 서리 김진을 불러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은밀히 조사할 것을 지시한다.

 

전반은 두 사람의 추리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두 사람이 임두의 상황을 살피던 중 임두의 치매 증상을 의심하게 되고 결정적으로 임두에게서 소설의 결말을 기록해 둔 수첩 ‘휴탑’을 잃어버렸음을 듣게 된다. 그러던 사이 어느 날 임두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직접 휴탑을 찾으러 나선 건지 마실이라도 나갔다 치매 증상으로 길을 잃은 건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와중에 의빈 성씨의 독촉은 날로 심해진다. 결국 임두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두 제자에게 200권의 남은 결말을 완성 짓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의 음모들이 밝혀지게 된다.

 

 

 

 

이명방이 임두를 처음 대면할 때 그녀의 방과 외모를 묘사한 부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 그녀의 집필 능력과 고집이 두드러진다. 천부적 재능을 알아본 이들 덕에 여생을 산해인연록에 쏟아붓기로 결정했지만 23년 동안 199권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를 집필한다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앞선다. 소설 속 삽화까지도 공을 들이고 궁녀들의 필사를 거치며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들을 보며 책 한 권에 들이는 정성에 감탄할 지경이다.

 

사건의 시작만 본다면 안달 난 독자가 작가를 독촉하는 과정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버스럽다. 이유인즉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주의 생사를 두고 궁중 여인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임두가 처음 소설을 쓰기 전 황족을 요절시키지 말 것을 약조했기 때문이다. 많은 황족들이 여럿 이유로 요절하던 시대에 궁중의 여인들의 소망이 참으로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소설이든 드라마든 웹툰이든 다음 회를 기다리다 안달 날 수밖에 없는 독자들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되어 웃음이 난다.

 

이야기는 기승전을 지나 결에 다다를 무렵 새로운 사상이 등장한다. 뜬금없이 야소교도는 뭐지 하다가 당시 조선에 천주교 사상이 들어오던 시기가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분과 계급, 남성과 여성이라는 여러 가지 제도적 차별 속에서 천주교사상(야소교도)인 인간 평등사상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사건의 방향은 금서로 지정된 『성경직해』의 필사본이 발견되며 더 흥미롭게 돌아간다. 임두가 정말로 마지막권을 끝내지 못하고 헤매게 된 이유가 납득이 된다.

작가는 서사속에 자신의 세계관이나 철학을 글 속에 담고 싶어 한다.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을 남긴다는 건 작가에게 있어서 큰 의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대소설의 시대 말미에 저자가 야소교도를 끌어온 것도 당시 조선사회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신사상은 산해인연록의 결말을 다채롭게 하며 멋진 결말을 끌어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새로이 쓰일 것이다. 작가의 방식대로.

 

소설을 읽으면서 놀란 점이라면 소설덕후들의 방대한 독서량이다. 제목만 대면 이야기의 핵심이 줄줄 나온다. 좋은 소설이란 ‘세상을 새롭게 보고 삶을 더 깊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 2권_p.182’이라는 사실을 체득해서일까.

소설의 분량을 따져본다면 일일이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소설 속 인물들을 예로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참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임승혜와 이명방의 만남을 지켜보며 소설 속 유일한 로맨스가 될뻔했음에 못내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녀의 결정을 지지한다. 때론 여자도 사랑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에 인생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끝까지 여성을 응원하는 결말이 좋았다.

 

임두도 저자도 쓰기 위해 평생을 사는 이들이다. 그들 덕에 문학은 더 풍요로워졌으며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이어져 갈 것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뻔했는데 저자 덕에 그 시대 여성들의 소설을 향한 열정까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그녀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을 찾았다. 비록 그녀들의 위대한 업적이 세월 속에 묻힌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지만 지금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다시 공부해서 차별과 억압된 세상 속에서 열의를 불태운 여성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대작이 사라지고 특정 소수인들만이 찾는 문학이 과연 얼마나 작가들의 마음을 달래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즐기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이들이 늘기를 바라야겠다. 읽다 죽느니 쓰는 일에 더 매진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멈추지 않길 바란다. 덕분에 대하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다. 우선은 저자의 조선왕조실록시리즈부터 찾아보아야겠다. 그리고 난 쓰는 이들덕에 읽는 이로 남고 싶다.~^^

 

 

끝이라 체념한 순간, 이어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생 하나는 소설. 소설이 끝나도, 그 소설을 쓴 작가와 그 소설을 읽은 독자의 인생은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소설이 끝난 뒤 새로운 소설이 이어지기도 한다.

 - 대소설의 시대 2권_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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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줄 수 있을까. 이것은 나뿐 아니라 주변 엄마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답사여행을 다녀도 돌아오는 반응이라고는 무덤이랑 절은 그만 가고 싶다는 말과 막상 가더라도 부모가 지식이 부족해서 사진만 찍다 오는 경우가 태반이니 제대로 된 답사가 될 수 없다. 해야 할 것은 많고 볼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우리의 문화유산까지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나도 그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공부는 해도 문화재의 멋을 모르고 지나친다는 건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도 모르는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 문화의 위대함뿐 아니라 민족의 자긍심마저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독자의 전화를 받았던 일화를 털어놓는다. 그분은 다짜고짜 타국의 문화가 훨씬 좋아 보이는데 대체 우리 문화 어디가 그렇게 훌륭하냐며 따져 묻는다. 눈으로만 보면 화려하고 웅장하고 멋진 문화재가 어디 한두 개이랴. 저자는 확고하게 대답한다. 굳이 타국의 문화와 비교하면서 스스로 비참해할 필요가 무어냐고. 그리고는 당당하게 우리가 자랑할만한 유산을 몇 가지 내놓으며 설득한다.

난 이 일화를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문화재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애국심이 커지듯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도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작년에 그분의 강연회를 다녀오고 나서는 부쩍 더 한국 곳곳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결심도 했었다.

 

 

 

 

 

이 책은 문화유산답사기 중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 편이다. 답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경주요, 아이들 역사 탐방으로 많은 이들이 찾은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몇몇 맘 맞는 엄마들은 아이들끼리 체험학습으로 2박 3일을 둘러보고 온다고도 한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경주의 문화재 중 선덕여왕 시절의 유산부터 시작하여 경주의 석탑을 살피고 에밀레종, 석굴암, 불국사의 탄생 기와 수난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1편은 끝이 난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문화재의 궁금증도 많이 해소가 되고 우리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원효대사의 일화를 보며 부처의 가르침을 알게 될 것이고, 황룡사의 건축 기간뿐 아니라 황룡사 구층 목탑의 유래가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욱 그 위엄이 전해질 것이다. 또한 첨성대의 구조에 얽힌 정교함, 에밀레종의 종소리에 숨겨진 비밀, 석굴암의 건축기술과 본존불의 미를 통해 석공의 재주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스페인의 대성당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도 건축기술의 정교함에 감탄했었는데 오래전 그들의 지혜에 놀랄 따름이다. 특히 석굴암이 일제에 의해 망가진 후 그 뒤로도 제대로 된 복원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제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어도 신라인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반면 문화재가 전쟁으로 불타고 일제시대 때 도난당하고 약탈당하는 것도 모자라 제멋대로 보수공사에 더 망가지는 과정을 보며 참담한 기분도 느낄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이겠냐마는 인류가 이루어온 문화재를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지금도 문화재 반환을 위해 애쓰고 계신 분들뿐 아니라 개인의 사비를 털어서라도 문화재 보존에 애쓰시는 분들의 일화를 보며 감동을 받았다. 더 많은 이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는 길뿐이다.

 

재작년에 불국사를 방문하고 석굴암을 못 보고 돌아왔다며 너무나 아쉬워하던 지인이 떠오른다.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는데 아마 보고 왔더라도 아쉬워했을 것 같다. 지인은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잘 아는 분이다. 그런 분이 유리창 너머로는 본존불의 감동을 전해 받기 어렵지 않았을까. 나도 다시 불국사를 찾게 되면 불국사의 독특한 구조에 더 관심을 두고 보아야겠다. 연화교 연꽃무늬, 대웅전 돌계단의 측면, 석가탑 탑 날개 등 마치 보물을 찾듯 꼼꼼히 살펴보고 싶다.

 

 

 

 

 

저자가 말하듯 문화유산의 가치를 잘 알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이 책은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고 문화재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보다 먼저 읽어보았는데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으며 아이들의 관심도를 끌어낼 수 있는 이슈들도 적절히 연결 지어놓았다. 특히 문화재의 탄생 배경뿐 아니라 문화재가 소실되고 약탈되는 등 수난을 당했던 과정을 읽으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소중함도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니 영재발굴단에서 보았던 문화유산 신동이 떠올랐다.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로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조사하고 훗날 꼭 찾아올 포부까지 드러낸 그 아이를 보며 내가 다 뿌듯했으니 말이다. 그 아이가 잘 성장해서 우리 문화재의 지킴이로 꼭 활약하길 기대해 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정답인 것 같다.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젠 제대로 된 답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한 제자처럼 아이들도 돌덩이가 뭐라고 말하는듯한 그 느낌을 경험하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2권으로 넘어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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