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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ㅣ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산해 인연론』은 물론 임두 작가님이 홀로 23년 동안 쓴 거작이지만,
그 밑바탕에 이처럼 여자 작가들과 여자 독자들이 백 년 넘게 쌓아온 상상의 세계가 깔려 있다네.
이건 청나라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소설이야. 놀랍지 않은가?"
- 대소설의 시대 1권_p.47
그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여태껏 살아오며 마음에 품었던 여인들과의 추억도 떠오르고, 또 제대로 잘 살기 위해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도 되돌아보게 되오. 소설이 읽는 이들에게 그처럼 귀한 선물을 준다면, 소설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오. -1권_ p.309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활자보다 영상물이 더 소비되는 세상이다 보니 소설은 더 외면받고 있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책도 빨리 소비하려 한다. 심지어 왜 소설 따위를 읽느냐는 말부터 넌 책도 보고 한가해서 좋겠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민한 적도 있다. 개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쓴 에세이나 라이트노벨, 여행, 취미, 실용서 등만이 소비되고, 사회적 현상에 치중한 소설이 더 많이 읽히는 시대에 과연 우리 곁에서 이야기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 숨 쉴 수 있을까.
이처럼 점점 책이 외면받고 있는 시대지만 18세기 조선 후기 대소설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소설 애호가들 중 여성 독자들이 읽고 쓴 거대한 소설들이 한두 편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놀랍기 그지없다.
『대소설의 시대 1,2권』은 18세기 조선시대 여성들에 의해 소설이 쓰이고 읽혔던 시대를 바탕으로 새롭게 쓰인 이야기다. 조선 후기 여성들이 책을 즐길 수 있었던데는 한글의 역할이 한몫했다. 시대적으로 억압받고 무시당하던 여성들은 여성만이 지닐 수 있는 섬세함과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글로 풀어내어 그들끼리 읽고 쓰고 필사하며 소설을 즐긴 것이다.
남자를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여자들이 만드는 이야기를 알고 느끼려면,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들여다봐야 해, 말하지 않은, 말할 수 없는, 말하기 싫은, 그래서 담기지 않은 여백의 속 마음을 곰곰이 따질 필요가 있지. -1권_p.46

소설의 목차 제목을 보고 있자니 이것들이 과연 실존하는 책인가 할 정도로 내겐 낯설다. 하지만 실존하는 책이라고 한다. 심지어 대부분이 대소설이다. 어떤 책은 그 권수가 180권에 달하는 소설도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얼마나 무수한 이야기들이 쉼 없이 쓰였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우리 문화유산을 볼 때마다 느낀 장대함을 대소설을 보며 느꼈달까.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정조 시대)과 등장인물들(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등) 때문에 사실인 것 마냥 그럴싸하다. 게다가 목차에서 언급되고 있는 작품들이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머릿속 한편에 들었던 의문은 작가의 고증이었다. 대체 이 많은 책들을 언제 읽었단 말인가. 뒤쪽 참고문헌만 해도 몇 장이 넘어간다. 그러한 의문들은 마지막 작가의 후기에서 엿볼 수 있는데 무려 180권이나 되는 『와월회맹연』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억의 속도보다 망각의 속도가 더 빠른 소설'이라는 말이 어쩜 그리도 어울리는지.

예전에 비해 장르 편식이 줄어들긴 했지만 대소설의 시대를 끌어나가는 것은 추리였기에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산해인연록』은 궁중 여인들에게 23년 동안 읽힌 대소설이다. 등장인물의 가계도만 보아도 오대에 이른다. 그러나 이 책은 비밀리에 쓰이고 있었다.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이라면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이미 임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깎아내리고 비난 받았던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만은 지키기 위해 남성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어떤 독자도 만나지 않는다.
임두는 평생을 소설가로만 살았다. 소설이니 어찌 사고파는 일이 없었을까마는, 거래와 흥정의 도구로 소설을 간주한 적이 없었다.
한 인간의 희로애락과 한 가문 나아가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글쓰기, 그것이 곧 임두가 생각하는 소설이었다. -1권_p.31
소설의 집필 과정은 작가인 임두의 손녀 임승혜와 두 명의 제자 경문과 수문, 혜경궁 홍씨와 의빈 성씨, 필사를 담당한 궁녀와 몇몇 내명부 사람들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임두는 199권까지 소설을 쓰고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를 5개월이 넘어가자 궁중 여인들의 조바심은 날로 커져만 간다. 의빈 성씨는 당장 의금부도사 이명방과 규장각 서리 김진을 불러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은밀히 조사할 것을 지시한다.
전반은 두 사람의 추리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두 사람이 임두의 상황을 살피던 중 임두의 치매 증상을 의심하게 되고 결정적으로 임두에게서 소설의 결말을 기록해 둔 수첩 ‘휴탑’을 잃어버렸음을 듣게 된다. 그러던 사이 어느 날 임두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직접 휴탑을 찾으러 나선 건지 마실이라도 나갔다 치매 증상으로 길을 잃은 건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와중에 의빈 성씨의 독촉은 날로 심해진다. 결국 임두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두 제자에게 200권의 남은 결말을 완성 짓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의 음모들이 밝혀지게 된다.

이명방이 임두를 처음 대면할 때 그녀의 방과 외모를 묘사한 부분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 그녀의 집필 능력과 고집이 두드러진다. 천부적 재능을 알아본 이들 덕에 여생을 산해인연록에 쏟아붓기로 결정했지만 23년 동안 199권이나 되는 방대한 이야기를 집필한다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앞선다. 소설 속 삽화까지도 공을 들이고 궁녀들의 필사를 거치며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들을 보며 책 한 권에 들이는 정성에 감탄할 지경이다.
사건의 시작만 본다면 안달 난 독자가 작가를 독촉하는 과정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버스럽다. 이유인즉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주의 생사를 두고 궁중 여인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임두가 처음 소설을 쓰기 전 황족을 요절시키지 말 것을 약조했기 때문이다. 많은 황족들이 여럿 이유로 요절하던 시대에 궁중의 여인들의 소망이 참으로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소설이든 드라마든 웹툰이든 다음 회를 기다리다 안달 날 수밖에 없는 독자들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되어 웃음이 난다.
이야기는 기승전을 지나 결에 다다를 무렵 새로운 사상이 등장한다. 뜬금없이 야소교도는 뭐지 하다가 당시 조선에 천주교 사상이 들어오던 시기가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분과 계급, 남성과 여성이라는 여러 가지 제도적 차별 속에서 천주교사상(야소교도)인 인간 평등사상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사건의 방향은 금서로 지정된 『성경직해』의 필사본이 발견되며 더 흥미롭게 돌아간다. 임두가 정말로 마지막권을 끝내지 못하고 헤매게 된 이유가 납득이 된다.
작가는 서사속에 자신의 세계관이나 철학을 글 속에 담고 싶어 한다.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을 남긴다는 건 작가에게 있어서 큰 의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대소설의 시대 말미에 저자가 야소교도를 끌어온 것도 당시 조선사회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신사상은 산해인연록의 결말을 다채롭게 하며 멋진 결말을 끌어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새로이 쓰일 것이다. 작가의 방식대로.
소설을 읽으면서 놀란 점이라면 소설덕후들의 방대한 독서량이다. 제목만 대면 이야기의 핵심이 줄줄 나온다. 좋은 소설이란 ‘세상을 새롭게 보고 삶을 더 깊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 2권_p.182’이라는 사실을 체득해서일까.
소설의 분량을 따져본다면 일일이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소설 속 인물들을 예로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참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임승혜와 이명방의 만남을 지켜보며 소설 속 유일한 로맨스가 될뻔했음에 못내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녀의 결정을 지지한다. 때론 여자도 사랑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에 인생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끝까지 여성을 응원하는 결말이 좋았다.
임두도 저자도 쓰기 위해 평생을 사는 이들이다. 그들 덕에 문학은 더 풍요로워졌으며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이어져 갈 것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뻔했는데 저자 덕에 그 시대 여성들의 소설을 향한 열정까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그녀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을 찾았다. 비록 그녀들의 위대한 업적이 세월 속에 묻힌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지만 지금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다시 공부해서 차별과 억압된 세상 속에서 열의를 불태운 여성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대작이 사라지고 특정 소수인들만이 찾는 문학이 과연 얼마나 작가들의 마음을 달래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즐기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이들이 늘기를 바라야겠다. 읽다 죽느니 쓰는 일에 더 매진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멈추지 않길 바란다. 덕분에 대하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다. 우선은 저자의 조선왕조실록시리즈부터 찾아보아야겠다. 그리고 난 쓰는 이들덕에 읽는 이로 남고 싶다.~^^
끝이라 체념한 순간, 이어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생 하나는 소설. 소설이 끝나도, 그 소설을 쓴 작가와 그 소설을 읽은 독자의 인생은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소설이 끝난 뒤 새로운 소설이 이어지기도 한다.
- 대소설의 시대 2권_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