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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래된 것들이 좋아진다. 바꾸어 말하자면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 힘들어진다. 신도시 바람에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대지를 다 차지하고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인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곳이 이곳같이 비슷하게 정리된 구획들 그 어디를 보아도 정감 어린 냄새를 맡기가 힘들다.
요즘은 조그만 동네와 오래된 가게, 그리고 풍경 같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나로 살고 싶다. 누군가는 뭐가 그리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나무늘보처럼, 달팽이처럼, 느리게 살고 싶다. 그게 잘 안된다면 그런 책이라도 읽으며 위안을 얻고 싶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나의 그런 욕구를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인 작가다. 일상 속에서 생겨나는 파동을 진정시켜주는 그런 작가라고나 할까.
흐름이 나아가는 속도를, 아무리 세상의 속도가 빨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눈앞의 매일에 차분하게 참가해서, 조금씩, 그래, 그가 말한 대로, 달팽이처럼. -p.150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건 8년 전이다) [주주](주주는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를 나타낸 말이라는데 정말 주주라고 들리나?)는 그 자리에서 머물며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결핍과 상처 입은 자만이 느끼는 동질감은 서로를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묶어준다. 이것이 그들이 일상을 살아내는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람이 하는 치유의 언어와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렬하다.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도, 너에게 시급한 것도, 누군가가 내밀어 주는 손이다. 이 작은 동네에서는 그런 일들이 공기의 흐름을 타고 퍼져나간다. 물론 이야기에는 현실 그 이상의 온기가 있다.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 같은 느낌. 그래서 스테이크 가게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채식을 한 기분이랄까.
낯선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딸과 교제를 하고 아이를 유산해도 괜찮은 미쓰코의 엄마, 부모의 버림에도 성실하고 올곧게 자라는 신이치, 이혼남 따위는 걸고넘어지지 않는 미쓰코의 아버지, 애초에 인생의 포부 따위보다 흐름을 따라 산 미쓰코. 뭐 이만하면 우리네 현실과는 다소 멀어 보이지만 다 괜찮다고 토닥이는 것만 같아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시장을 보고, 취미 활동을 하고, 아무튼 돈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강요된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허망하다.-p.27
우리는 사실은 서로를 시샘하고, 깎아내리고, 상대의 목숨을 파먹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에 거는 사람들도, 아주 조금이지만 있다. -p.146
미쓰코는 부모님의 스테이크 가게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게에서 일을 돕고 있다.
나는 가게와 한 몸으로 태어난 사이보그라고 할까, 가게에서 분열되어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쭉 가게에서 자랐다. -p.21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엄마가 돌아가셔서 런치 타임을 손놓고 있긴 하지만 아빠와 신이치와 셋이서 가게를 계속 꾸려가고 있다. 엄마의 죽음 뒤에도 일상을 살 수밖에 없는 건 단순히 생계의 문제는 아니다. 주주가 곧 엄마였기에 손을 놓을 수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의 온기마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니까.
친구 같았던 엄마가 떠난 뒤 미쓰코의 삶은 잿빛이다. 일상에서 죽음이 가져오는 파동은 너무나 넓고 깊다. 그래서 그 흔들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돌아갈 일상이 없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쓰꼬의 기억에는 좋은 기억만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힘겨워도 산책을 나가면 꽃이 보이고, 산책길에 만난 개의 온기에 기운이 나듯 그 속에서 또 무언가 삶의 빛을 발견하게 되고, 버거워도 가게와 함께하는 그 속에서 새로운 빛을 감지하기도 한다.
매일 똑같이 걷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도, 보이는 세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그 색채감을 눈이 알아보게 되었다. -p.22

주주의 햄버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온다. 변하지 않는 맛, 그것은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이것만은 잃고 싶어 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정성이자 신뢰이자 치유다. 단골들의 얼굴 표정만으로도 햄버그의 굽기를 달리할 수 있는 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인생에는, 그런 일도 있어. -p.104
어제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점심을 때웠다. 그러나 햄버거를 반이나 남겼다. 이래저래 기분이 저기압이었는데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먹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심신을 위로해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풀릴까. 당장 맛집 검색에 들어가 볼까나.
큰 틀만 보면 매일이 똑같아 보여도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도 꽤나 다채로운 순간들이 있다. 해가 뜰 때와 질 때의 에너지가 다르고 어제의 아침과 오늘의 아침이 다르듯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 민감하지만 잊고 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현재의 나를 잘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햄버그의 칼로리를 걱정하다 입안에서만큼은 잊어버리는 우리지만 그것이 꼬인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런 줄로 알고 넘겨야 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중의 하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도, 이별도, 상처도,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다시 살아내면서 덜어내야 한다. 미쓰코가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듯해서 좋았다.
그리고 나에게 의지가 될 [지옥의 살라미 짱]과 같은 책이 한 권 있다면 더 좋겠다. 살라미 짱이 어떤 만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스누피나 보노보노, 무민은 자주 들춰보는데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선 요시모토 바나나의 삶의 손길에 조금 기대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인생의 파도를 제대로 타고 있는 감각이었다. -p.142
그나저나 인생의 파도를 제대로 타고 있다는 느낌은 언제나 올까. 지금이 그때인데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어찌 되었든 며칠 동안의 우울감을 주주를 읽으며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 내 삶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