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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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죽음에 가까워져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인생이란 뭐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돌아보면 크든 작든 후회가 밀려들기 마련이다. 후회나 미련은 현재에 자꾸 밀려 찌그러져 있게 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새도, 후회를 뒤집을 행동도 하기 어렵다. 선뜻 현재의 안정이 깨어질까를 두려워하는 심리도 작용하니

만약은 언제나 가정일뿐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삶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마음이 먼저일까.

호스피스 병동은 더 이상 가망이 없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다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다른 의무실에서 근무하는 이들보다 심적으로 힘들고 또 그만큼 환자나 보호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심성도 갖추어야 한다. 죽음이 임박한 이들은 더더욱 후회와 삶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생명을 돌보고 있는 담당 의사들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곳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 중인 루미코는 그런 의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녀는 부모의 이혼 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느라 죽어라 공부만 해서 의사가 되었다. 당연히 애교도 없고 공감력도 제로에다 연애 감정도 무디다. 그러니 환자들에게 말실수가 잦아 오해를 사고 그러다 보니 환자들이 기피하는 의사가 되어있다. 사람들이 담당 의사의 본심까지 헤아릴 리도 없을뿐더러 간호사들조차도 그녀를 무시한다.

 

답답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마음까지 진심으로 돌보고 싶지만 타고난 천성이 쉽게 바뀔 리 없다. 늘 매점에서 빵과 우유로 허겁지겁 때우는 일상이지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루미코는 화단에서 반짝이는 무언가에 이끌리고 낯선 청진기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인이 없어 그녀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 청진기를 들고 회진을 돌다 그녀는 깜짝 놀라게 된다. 청진기를 대니 그 사람의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환자와 함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그렇게 자신 없어하던 환자와의 공감대에 청진기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환자들은 보호자와의 소통도 힘들어하던 차 손을 내밀어 준 루미코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하나같이 청진기를 신기해하지만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속 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후회의 시간 앞에 다시 서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DREAM, FAMILY, MARRIAGE, FRIEND

삶에서 이 네 가지 단어는 빠질 수 없는 소재다. 꿈을 이루지 못해 후회하는 젊은 여인, 가족을 위해 헌신만 하다 헌신짝 취급을 받고 후회 중인 남자, 결혼을 반대한 이후로 독신을 고집하고 있는 딸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 좋아하던 여자아이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인생이 꼬인 친구 때문에 늘 괴로워하는 친구.

그들은 말기 암으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렇게 후회되는 순간들 때문에 답답해한다. 그런데 루미코를 만난 뒤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게 되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게 된다.

 

엄마의 반대에 늘 억울해 하던 여인는 연예인이 되어보고나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엄마가 겪은 인생의 고충도 알게 되고, 아내 탓을 하던 남자는 회사에 헌신하던 삶을 버리자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 보이고 외로웠을 아내도 이해하게 된다. 결혼 편에서는 정말 반전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는데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실감 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게다 막판에 한 번의 반전이 또 있다. 그렇게 착한 딸은 어디로 간 건일까.ㅋ

친구 편에서 사랑의 콩깍지가 때론 위험할 수도 있으며 사랑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자는 되려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평생 끌어안고 있었고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만 했다. 아내가 참으로 무서운 여자였음에 약간 등골이 서늘해졌다고나 할까.ㅎ 남자가 다시 살게 돼서 다행이다.

 

'만약'이라는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이 참 흥미진진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죽음보다는 삶에 치중해서인지 그리 무겁지 않아 좋았다. 청진기에서 들리는 그들의 마음속 소리에 루미코의 마음의 크기도 넓어지는 듯하다. 물론 끝까지 자신에게 눈을 꽂고 있는 동료의 마음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그런 일이 있은 뒤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되고 루미코는 고민한다. 온전치 못한 가정에서 성장한 이들의 사연은 그녀의 공감력을 키워주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마 그녀가 아버지를 그대로 지나쳤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과거의 문은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뿐 아니라 연인, 가족,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미련이 남는 삶이지만 그때가 최선이었음을,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믿는 것만이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나저나 읽는 내내 루미코의 담당 간호사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의사를 무시해도 되는 건가? 나중에 루미코의 자라온 환경을 알게 되고서는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째려보다니. 아무리 동갑내기 완벽남 동료 때문이라지만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환자도 보호자도 젊은 여의사를 무시하는 시선도 참 불편했고.

 

그래도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까. 못다 이룬 꿈으로 아쉬움이 컸던 그녀는 숨을 거두기 직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소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죽음은 피해 갈 수 없지만 후회로 얼룩진 삶은 피해 갈 수 있다. 공감력이야 말로 절실히 필요할 때다. 옮긴이의 말처럼 삶의 태도와 관계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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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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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래된 것들이 좋아진다. 바꾸어 말하자면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 힘들어진다. 신도시 바람에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대지를 다 차지하고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인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곳이 이곳같이 비슷하게 정리된 구획들 그 어디를 보아도 정감 어린 냄새를 맡기가 힘들다.

 

요즘은 조그만 동네와 오래된 가게, 그리고 풍경 같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나로 살고 싶다. 누군가는 뭐가 그리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나무늘보처럼, 달팽이처럼, 느리게 살고 싶다. 그게 잘 안된다면 그런 책이라도 읽으며 위안을 얻고 싶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나의 그런 욕구를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인 작가다. 일상 속에서 생겨나는 파동을 진정시켜주는 그런 작가라고나 할까.

 

흐름이 나아가는 속도를, 아무리 세상의 속도가 빨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눈앞의 매일에 차분하게 참가해서, 조금씩, 그래, 그가 말한 대로, 달팽이처럼. -p.150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건 8년 전이다) [주주](주주는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를 나타낸 말이라는데 정말 주주라고 들리나?)는 그 자리에서 머물며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결핍과 상처 입은 자만이 느끼는 동질감은 서로를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묶어준다. 이것이 그들이 일상을 살아내는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람이 하는 치유의 언어와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렬하다.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도, 너에게 시급한 것도, 누군가가 내밀어 주는 손이다. 이 작은 동네에서는 그런 일들이 공기의 흐름을 타고 퍼져나간다. 물론 이야기에는 현실 그 이상의 온기가 있다.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 같은 느낌. 그래서 스테이크 가게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채식을 한 기분이랄까.

 

낯선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딸과 교제를 하고 아이를 유산해도 괜찮은 미쓰코의 엄마, 부모의 버림에도 성실하고 올곧게 자라는 신이치, 이혼남 따위는 걸고넘어지지 않는 미쓰코의 아버지, 애초에 인생의 포부 따위보다 흐름을 따라 산 미쓰코. 뭐 이만하면 우리네 현실과는 다소 멀어 보이지만 다 괜찮다고 토닥이는 것만 같아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시장을 보고, 취미 활동을 하고, 아무튼 돈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게 강요된 이미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허망하다.-p.27

 

리는 사실은 서로를 시샘하고, 깎아내리고, 상대의 목숨을 파먹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에 거는 사람들도, 아주 조금이지만 있다. -p.146

 

미쓰코는 부모님의 스테이크 가게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게에서 일을 돕고 있다.

나는 가게와 한 몸으로 태어난 사이보그라고 할까, 가게에서 분열되어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쭉 가게에서 자랐다. -p.21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엄마가 돌아가셔서 런치 타임을 손놓고 있긴 하지만 아빠와 신이치와 셋이서 가게를 계속 꾸려가고 있다. 엄마의 죽음 뒤에도 일상을 살 수밖에 없는 건 단순히 생계의 문제는 아니다. 주주가 곧 엄마였기에 손을 놓을 수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의 온기마저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니까.

 

친구 같았던 엄마가 떠난 뒤 미쓰코의 삶은 잿빛이다. 일상에서 죽음이 가져오는 파동은 너무나 넓고 깊다. 그래서 그 흔들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돌아갈 일상이 없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쓰꼬의 기억에는 좋은 기억만이 한가득이다.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힘겨워도 산책을 나가면 꽃이 보이고, 산책길에 만난 개의 온기에 기운이 나듯 그 속에서 또 무언가 삶의 빛을 발견하게 되고, 버거워도 가게와 함께하는 그 속에서 새로운 빛을 감지하기도 한다.

 

매일 똑같이 걷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도, 보이는 세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그 색채감을 눈이 알아보게 되었다. -p.22

 

 

 

주주의 햄버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온다. 변하지 않는 맛, 그것은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이것만은 잃고 싶어 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정성이자 신뢰이자 치유다. 단골들의 얼굴 표정만으로도 햄버그의 굽기를 달리할 수 있는 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인생에는, 그런 일도 있어. -p.104

 

어제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점심을 때웠다. 그러나 햄버거를 반이나 남겼다. 이래저래 기분이 저기압이었는데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먹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심신을 위로해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풀릴까. 당장 맛집 검색에 들어가 볼까나.

 

큰 틀만 보면 매일이 똑같아 보여도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도 꽤나 다채로운 순간들이 있다. 해가 뜰 때와 질 때의 에너지가 다르고 어제의 아침과 오늘의 아침이 다르듯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 민감하지만 잊고 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현재의 나를 잘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햄버그의 칼로리를 걱정하다 입안에서만큼은 잊어버리는 우리지만 그것이 꼬인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런 줄로 알고 넘겨야 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중의 하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도, 이별도, 상처도,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다시 살아내면서 덜어내야 한다. 미쓰코가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듯해서 좋았다.

그리고 나에게 의지가 될 [지옥의 살라미 짱]과 같은 책이 한 권 있다면 더 좋겠다. 살라미 짱이 어떤 만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스누피나 보노보노, 무민은 자주 들춰보는데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선 요시모토 바나나의 삶의 손길에 조금 기대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인생의 파도를 제대로 타고 있는 감각이었다. -p.142

그나저나 인생의 파도를 제대로 타고 있다는 느낌은 언제나 올까. 지금이 그때인데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어찌 되었든 며칠 동안의 우울감을 주주를 읽으며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 내 삶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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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산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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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약을 손에 쥐여주던 아버지와, 아이의 고통을 속수무책 지켜볼 뿐인 자신의 거리가 얼마쯤 될까.-p.26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죽기 싫어요. 아부지."

그리고 그의 아들은 그에게 말했다. "얼마나 더 아파야 죽게 돼요? "

 

그가 애초에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은 인생이었다면 자신의 인생을 가시고기처럼 벼랑으로 몰고 갔을까.

 

삶에 밑바닥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도 없을 것만 같은 절망 앞에 선다면 아마도 그런 생각이 들것만 같다. 희망이 있는 곳에 절망이 있다는 이 이상야릇한 말은 꼭 이 소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예전에 TV 다큐에서 가시고기의 삶을 본 적이 있다. 보면서 불쌍하고 안타깝지만 그것이 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는 희망도 걸어볼 수 있고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꼭 마지막 희망이어야 감동이 배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부부는 사랑만으로 살기엔 서로 자라 온 환경이 너무나 달랐다. 그렇게 아내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두 사람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남자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과 아내에게 버림받은 현실로 인해 자신의 남은 사랑을 아들에게 한없이 쏟아붓는 중이다. 아이의 병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으며 밀린 병원비는 그를 옥죄어 온다. 병원비를 내지 못해 아이가 잘못된다면 그는 그의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자신을 두고 가버린 아버지와 홀로 남은 세상에서 떳떳이 살고 싶었던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려 한다. 그렇게 매 순간 위기의 순간을 넘기며 버텨온 그 앞에 골수이식의 희망만이 남은 상황에서 더 큰 시련이 닥친다.

 

소설은 아이의 시선도 보여주고 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다 말하기도 하지만 병 때문에 어른 아이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아버지는 세상 전부이다. 그런 아버지인데 마지막 장면 때문에 더 가슴이 메어졌다. 아이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받았을 상처는 어찌하라고 이렇게 잔인한 결말을 쓰신 걸까.

 

이야기는 부성애를 강조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되려 이런 아버지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다.

아픈 아이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이도 살리고 자신도 살수 있는 길을 왜 버리고 굳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아내가 얄밉긴 하지만 충분히 성공한 아내와 상의하여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대체 알량한 자존심 따위가 자신의 죽음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무모하고 어리석은 판단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살아서 아이와 함께 더 오래 행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는 굳이 떠안지 않아도 될 마음의 고통을 떠안았고,

아내는 결국 진실을 모른 채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못한 채 떠났고, 남자를 기다리며 함께 울어준 여자의 상처는 또 어떡하라고.

아버지의 극진한 부성애도 좋지만 나는 답답한 마음이 더 했다. 신파도 이 정도일 줄은.

 

"저도 아버지입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요. 하지만 선생님처럼은 못하겠네요." -p.328

이 부분에서 내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의 선택이 무모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민 과장의 부성애가 덜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보다 아이를 더 위해 희생하려 하니까.

 

병원비가 밀려 송계장에게 내내 쪼아리던 상황에서 해병대 기수가 밝혀지는 순간, 냉정해 보이던 송 게장의 태도가 돌변하는 장면에서는 잠깐 웃기도 했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이 과연 그에겐 최선이었을까라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겁다.

 

책이 나온 십 년 전과 지금은 분명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되려 더 메마르고 각박해졌다고 한다. 가끔 터지는 천륜을 거스르는 범죄는 분명 극소수의 일인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 마냥 비치는 것도 서글프다.

하지만 부모의 내리사랑은 표현의 정도가 달라졌을 뿐 변함이 없다고 본다. 장기든 각막이든 팔아서라도 자식을 살리고픈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나저나 요즘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타인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가족의 소중함은 물론이고 부모 자식 간의 정을 생각하며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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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내 삶에 힘이 되는 Practical Classics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깨깨 그림, 이길태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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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셜리.

그렇게 보고도 또 보고 싶어 찾아보게 되는 소녀. 마치 프린스에드워드섬의 초록색 지붕에서 정말 살았던 것처럼 내겐 추억과도 같은 소녀. 그래서 나는 또 한 권의 새로운 책을 펼쳐들었다.

 

앤하면 먼저 떠오르는 다양한 에피소드 때문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것은 내가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미드까지 알뜰하게 챙겨 본 영향도 있어서일 것이다. 앤이 저지른(?) 여러 가지 사건들 속에 앤이 남긴 명언들은 많은 이들의 감성을 깨워주고 어루만져 주고 있다.

그래서 앤 덕후들은 그런 앤의 감성에 자신의 느낌을 더해 그림으로 글로 재탄생시킨다. 덕분에 나 같은 독자들은 앤과 다시 시간을 보내며 추억에 빠져서 좋다.

 

빨간 머리 앤은 정말 다양한 아이템으로 계속 출간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원작을 바탕으로 일러스트레이터 깨깨님의 단발머리 앤과 북극 곰 꼬미가 함께 한다. 앤의 성장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예쁜 일러스트와 문구로 채워 소개하고 있는데 역시나 사랑스러운 느낌이 넘쳐 난다. 그래서 빨간 머리 앤의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희미한 분들이나 아직 안 읽은 분들에게 더 좋을 듯하다. 나는 전집까지 읽긴 했지만 재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깨깨님의 손에 의해 탄생한 그림들 덕에 눈이 즐겁다. 1908년에 태어난 앤이 2019년도에 재탄생한 느낌이랄까. 깔끔하고 정갈한 그림도 새롭다. 초록색 지붕집도, 환희의 길도 깨깨님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해서 더욱 예쁜 풍경이 되었다.

특히 '꼬미가 들려주는 20가지의 말' 페이지의 그림들이 정말 사랑스러워 깨깨님의 그라폴리오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림풍에 소녀감성이 제대로 묻어나고 딸이 좋아하는 풍의 그림이라 이 책도 권해볼 참이다. 그림이 예뻐한 챕터씩 읽기에 부담 없어 좋을 것 같다.

 

 

 

 

지금 보면 앤이 친 사고도, 앤의 상상력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지만 어렸을 땐 이런 앤이 감당이 안 될 때도 있었다. FM대로 살던 내게 앤의 지나친 상상과 순진하다 못해 어리숙해 보이는 행동에 짜증이 날 때도 있었는데 무슨 애가 이리도 말이 많고 산만한 걸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와는 정반대인 앤이 용감하고 씩씩해 보여 부럽기도 했다. 특히 앤이 자연을 바라볼 때 가지는 감성이나 부족함을 상상력으로 채워가는 모습은 정말 살면서 필요한 자세다. 그래서인지 앤은 나의 마음속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절망적인 순간이나 누군가로 인해 지치거나 되는 일없이 꼬여만 갈 때 나는 앤을 보고, 읽으며 위안을 얻곤 했다.

 

남자아이를 원했던 초록색 지붕집에 착오로 오게 된 순간부터 불행의 연속이라 여겼지만 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묘한 재주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제 인생은 희망을 묻어 버린 묘지에요.” -p.79라는 말에 슬퍼도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앤은 늘 상상과 공상에 빠져 지냈지만 부족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것은 자신만의 비법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방은 잠을 자는 곳이라고 말하는 마릴라에게 “어머, 꿈을 꾸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p.229라고 말하는 센스는 또 어떻고.

 

밋밋한 원피스도, 커튼 없는 방도, 자신의 빨간 머리도, 상상력으로 불만을 덮어버리려 노력한다. 앤이 레이첼 린드 부인에게 과장되게 사과를 하거나 브로치를 잃어버린 상황을 거짓으로 고백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못 말린다 싶었지만 상상력이 더 긍정의 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았다. 때론 지나친 상상이 독이 될 때도 있었고 지나친 낭만으로 물에 빠져 죽을뻔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무뚝뚝하던 마릴라는 앤에게 낭만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앤으로 인해 마릴라도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낭만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말아라, 앤. 낭만은 좋은 것이란다.

물론 지나치지만 않으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은 추구하는 거다, 앤.” -p.435

 

빨간 머리에 늘 예민한 앤은 그 빨간 머리로 인한 여러 사건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빨간 머리가 싫어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 결과는 처참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교훈도 얻는다. 빨간 머리라고 놀린 길버트와는 오랜 기간 동안 말도 섞지 않고 지냈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후회만 가득하다. 지나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불행하다 절망하지 않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현재에 에너지를 쏟으며 즐길 줄 알았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현재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닐까 한다. 앤은 말한다. 되려 부족했기에 더 행복할 수 있었다고. 정말 부족함을 채워도 늘 부족하다고 불평만 하는 우리의 모습이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토록 앤을 사랑하던 매튜 아저씨의 죽음에 가슴이 아팠고 앤이 대학을 포기하고 초록색 지붕집을 지키기로 한 결심 앞에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쉼 없이 달려야 하고 기회가 오면 반드시 잡아야 하고 가능하다면 지름길로 가라고 부축이는 현대사회에서 때로는 꺾인 길도 괜찮음을 말하고 있다.

"이제는 그 길이 약간 꺾였을 뿐이에요.

꺾인 길을 돌아가면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지만 가장 좋은 일이 기다릴 거라고 믿어요!” -p.572

 

 

 

 

 

앤이 이토록 오래 사랑받고 있는 데는 앤의 긍정의 에너지가 아닐까한다. 더불어 프린스에드워드섬의 풍경이 자연친화적인 삶을 동경하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앤이 좋아한 산사나무의 꽃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게도 만드는 것까지도.

문득 다이애나와 앤이 창에서 서로 신호를 보내는 장면을 보며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감성이 이렇게 메말라가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통신의 발달은 서로를 가까이 묶어는 두지만 애틋함은 줄어드는 것만 같다는 생각도 부쩍든다.

 

세상은 어쩌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기대감을 안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늘 좋은 일들만 있을 수는 없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얼마든지 순간을 이겨낼 수 있음을 되새겨야겠다. 앤처럼.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사는 재미를 절반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

그럼 상상할 거리도 없겠고요.”-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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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Re: Cat 러브 리 캣 - 사랑을 되돌려 주는 고양이 컬러링북
이보라 지음 / 이덴슬리벨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컬러링북도 점점 고급스러워져가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다 칠하고 나면 버려버리고 말았는데 이 컬러링북은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고급스러운 양장북에 표지마저 럭셔리해서 예쁘게 색칠한 뒤 그림책으로 소장해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죠.

 

워낙 그림책도 좋아하지만 고양이 덕후라 이 책은 보자마자 소장하고픈 마음이 컸어요.

 책을 펼쳐보니 적당히 스토리도 있고 컬러링이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림이 맘에 들어 구입해 놓고 막상 칠하려고 보면 너무 복잡해서 완성하기까지 버거울 때가 많았거든요.

 

저자 이보라님의 프로필을 보니 책에 실린 캐릭터와 비슷하신 것 같아요.

 저자도 고양이와 8년째 동거 중인 집사여서인지 고양이의 특징을 굉장히 잘 살려낸 듯 보이고

 애완묘에 대한 사랑도 넘쳐 보입니다.

 

 고양이의 포즈와 얼굴 표정을 살피며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으니 저도 냥이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그리고 밑그림이 예뻐서 굳이 색을 입히지 않은 이대로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만큼 초보자들이 적당히 컬러링을 해도 결과물이 좋을 것 같았어요.

 

 

 

 

소녀와 고양이의 캐릭터가 참 따스하고 일상의 한 컷 한 컷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또한 동화 속과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소녀의 일상에 미소가 절로 지고요.

 

토끼를 따라 간 이상한 나라 속에서 고양이와 요리도 하고 운동도 즐긴고

 마녀로 변신해 할로윈을 즐기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테마의 그림에 자신만의 컬러를 입혀보면 나만의 동화책이 한 권 탄생하는 느낌이 들것 같아요.

 작품집으로 두고두고 보기에도 좋을 것 같네요.

 

 

 

 

 

 

오랜만에 컬러링북을 펼치니 의욕이 넘쳐납니다.

 한동안 시간에 쫓겨 색연필 한 번 잡을 여유가 없었는데 컬러링을 하는 동안 머리를 좀 비워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짬 나는 틈틈이 색을 입혀 보았답니다.

 

딸아이와 함께 서로 칠하고 싶은 부분을 선택해서 다양한 재료로 색칠을 해 보기도 하고

 한 페이지를 같이 칠해 보기도 했어요.

 딸아이도 고양이 컬러링북이 맘에 든다며 잘 칠해보겠다고 열의를 보이네요.

 

이 책은 앞장에 짧게 컬러링 팁을 소개하고 있으니

초보자들은 색을 입히는 순서나 칠하는 방법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특히 딸아이도 스케치는 잘하는 반면 컬러링에서 실수가 잦았는데 저자의 방법을 고려하며 칠하였어요.

 스케치가 복잡하지 않은 페이지를 먼저 칠해보고 조금 복잡한 부분을 시도해보면 좋겠네요.

 아무리 열의가 넘쳐도 페이지 가득 색을 입히는 과정이 간단하지만은 않거든요.

 역시 차근차근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물이 좋지 않겠어요.~^^

 

이 책의 장점이라면 밑그림에 문양이나 명암을 살려두었기에 색을 입히는데 너무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슥슥 색연필로 연하게 색을 입혀도 결과물이 예뻐서 만족할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색을 쓰는데 자신이 없다면 따라서 보고 칠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어요.

 저자가 컬러링한 방법으로 따라 해보면서 색채감 각도 키워볼 수 있을듯합니다.

 패턴이나 무늬도 더 추가해 보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니 그림의 완성도가 더 높아진듯하네요.

 그림을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신다면 강추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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