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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산지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쥐약을 손에 쥐여주던 아버지와, 아이의 고통을 속수무책 지켜볼 뿐인 자신의 거리가 얼마쯤 될까.-p.26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죽기 싫어요. 아부지."
그리고 그의 아들은 그에게 말했다. "얼마나 더 아파야 죽게 돼요? "
그가 애초에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은 인생이었다면 자신의 인생을 가시고기처럼 벼랑으로 몰고 갔을까.
삶에 밑바닥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도 없을 것만 같은 절망 앞에 선다면 아마도 그런 생각이 들것만 같다. 희망이 있는 곳에 절망이 있다는 이 이상야릇한 말은 꼭 이 소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예전에 TV 다큐에서 가시고기의 삶을 본 적이 있다. 보면서 불쌍하고 안타깝지만 그것이 자연의 순리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는 희망도 걸어볼 수 있고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꼭 마지막 희망이어야 감동이 배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부부는 사랑만으로 살기엔 서로 자라 온 환경이 너무나 달랐다. 그렇게 아내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두 사람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남자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과 아내에게 버림받은 현실로 인해 자신의 남은 사랑을 아들에게 한없이 쏟아붓는 중이다. 아이의 병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으며 밀린 병원비는 그를 옥죄어 온다. 병원비를 내지 못해 아이가 잘못된다면 그는 그의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자신을 두고 가버린 아버지와 홀로 남은 세상에서 떳떳이 살고 싶었던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려 한다. 그렇게 매 순간 위기의 순간을 넘기며 버텨온 그 앞에 골수이식의 희망만이 남은 상황에서 더 큰 시련이 닥친다.
소설은 아이의 시선도 보여주고 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다 말하기도 하지만 병 때문에 어른 아이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아버지는 세상 전부이다. 그런 아버지인데 마지막 장면 때문에 더 가슴이 메어졌다. 아이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받았을 상처는 어찌하라고 이렇게 잔인한 결말을 쓰신 걸까.
이야기는 부성애를 강조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되려 이런 아버지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다.
아픈 아이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이도 살리고 자신도 살수 있는 길을 왜 버리고 굳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아내가 얄밉긴 하지만 충분히 성공한 아내와 상의하여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대체 알량한 자존심 따위가 자신의 죽음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무모하고 어리석은 판단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살아서 아이와 함께 더 오래 행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는 굳이 떠안지 않아도 될 마음의 고통을 떠안았고,
아내는 결국 진실을 모른 채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못한 채 떠났고, 남자를 기다리며 함께 울어준 여자의 상처는 또 어떡하라고.
아버지의 극진한 부성애도 좋지만 나는 답답한 마음이 더 했다. 신파도 이 정도일 줄은.
"저도 아버지입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요. 하지만 선생님처럼은 못하겠네요." -p.328
이 부분에서 내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의 선택이 무모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민 과장의 부성애가 덜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보다 아이를 더 위해 희생하려 하니까.
병원비가 밀려 송계장에게 내내 쪼아리던 상황에서 해병대 기수가 밝혀지는 순간, 냉정해 보이던 송 게장의 태도가 돌변하는 장면에서는 잠깐 웃기도 했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이 과연 그에겐 최선이었을까라는 생각에 내내 마음이 무겁다.
책이 나온 십 년 전과 지금은 분명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되려 더 메마르고 각박해졌다고 한다. 가끔 터지는 천륜을 거스르는 범죄는 분명 극소수의 일인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 마냥 비치는 것도 서글프다.
하지만 부모의 내리사랑은 표현의 정도가 달라졌을 뿐 변함이 없다고 본다. 장기든 각막이든 팔아서라도 자식을 살리고픈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나저나 요즘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타인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가족의 소중함은 물론이고 부모 자식 간의 정을 생각하며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