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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죽음에 가까워져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인생이란 뭐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돌아보면 크든 작든 후회가 밀려들기 마련이다. 후회나 미련은 현재에 자꾸 밀려 찌그러져 있게 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새도, 후회를 뒤집을 행동도 하기 어렵다. 선뜻 현재의 안정이 깨어질까를 두려워하는 심리도 작용하니
만약은 언제나 가정일뿐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삶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마음이 먼저일까.
호스피스 병동은 더 이상 가망이 없는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다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다른 의무실에서 근무하는 이들보다 심적으로 힘들고 또 그만큼 환자나 보호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심성도 갖추어야 한다. 죽음이 임박한 이들은 더더욱 후회와 삶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생명을 돌보고 있는 담당 의사들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그러나 이곳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 중인 루미코는 그런 의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녀는 부모의 이혼 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느라 죽어라 공부만 해서 의사가 되었다. 당연히 애교도 없고 공감력도 제로에다 연애 감정도 무디다. 그러니 환자들에게 말실수가 잦아 오해를 사고 그러다 보니 환자들이 기피하는 의사가 되어있다. 사람들이 담당 의사의 본심까지 헤아릴 리도 없을뿐더러 간호사들조차도 그녀를 무시한다.
답답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마음까지 진심으로 돌보고 싶지만 타고난 천성이 쉽게 바뀔 리 없다. 늘 매점에서 빵과 우유로 허겁지겁 때우는 일상이지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루미코는 화단에서 반짝이는 무언가에 이끌리고 낯선 청진기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인이 없어 그녀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 청진기를 들고 회진을 돌다 그녀는 깜짝 놀라게 된다. 청진기를 대니 그 사람의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환자와 함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그렇게 자신 없어하던 환자와의 공감대에 청진기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환자들은 보호자와의 소통도 힘들어하던 차 손을 내밀어 준 루미코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하나같이 청진기를 신기해하지만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속 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후회의 시간 앞에 다시 서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DREAM, FAMILY, MARRIAGE, FRIEND
삶에서 이 네 가지 단어는 빠질 수 없는 소재다. 꿈을 이루지 못해 후회하는 젊은 여인, 가족을 위해 헌신만 하다 헌신짝 취급을 받고 후회 중인 남자, 결혼을 반대한 이후로 독신을 고집하고 있는 딸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 좋아하던 여자아이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인생이 꼬인 친구 때문에 늘 괴로워하는 친구.
그들은 말기 암으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렇게 후회되는 순간들 때문에 답답해한다. 그런데 루미코를 만난 뒤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게 되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게 된다.
엄마의 반대에 늘 억울해 하던 여인는 연예인이 되어보고나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엄마가 겪은 인생의 고충도 알게 되고, 아내 탓을 하던 남자는 회사에 헌신하던 삶을 버리자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 보이고 외로웠을 아내도 이해하게 된다. 결혼 편에서는 정말 반전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는데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실감 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게다 막판에 한 번의 반전이 또 있다. 그렇게 착한 딸은 어디로 간 건일까.ㅋ
친구 편에서 사랑의 콩깍지가 때론 위험할 수도 있으며 사랑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자는 되려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평생 끌어안고 있었고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만 했다. 아내가 참으로 무서운 여자였음에 약간 등골이 서늘해졌다고나 할까.ㅎ 남자가 다시 살게 돼서 다행이다.
'만약'이라는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이 참 흥미진진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죽음보다는 삶에 치중해서인지 그리 무겁지 않아 좋았다. 청진기에서 들리는 그들의 마음속 소리에 루미코의 마음의 크기도 넓어지는 듯하다. 물론 끝까지 자신에게 눈을 꽂고 있는 동료의 마음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그런 일이 있은 뒤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되고 루미코는 고민한다. 온전치 못한 가정에서 성장한 이들의 사연은 그녀의 공감력을 키워주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마 그녀가 아버지를 그대로 지나쳤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과거의 문은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뿐 아니라 연인, 가족,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미련이 남는 삶이지만 그때가 최선이었음을,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믿는 것만이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나저나 읽는 내내 루미코의 담당 간호사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의사를 무시해도 되는 건가? 나중에 루미코의 자라온 환경을 알게 되고서는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째려보다니. 아무리 동갑내기 완벽남 동료 때문이라지만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환자도 보호자도 젊은 여의사를 무시하는 시선도 참 불편했고.
그래도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까. 못다 이룬 꿈으로 아쉬움이 컸던 그녀는 숨을 거두기 직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소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죽음은 피해 갈 수 없지만 후회로 얼룩진 삶은 피해 갈 수 있다. 공감력이야 말로 절실히 필요할 때다. 옮긴이의 말처럼 삶의 태도와 관계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할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