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일기장 꿈꾸는 문학 3
이경순 지음 / 키다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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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부모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는 본인들의 가치관을 붙들어 맨 채 아이들을 키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사춘기가 되면 사사건건 부딪히고 싸우게 되는데 이 책도 그런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흔들리는 모녀관계를 바라보면서 좀 더 객관적이고 신중해질 수 있기에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연주는 엄마와 중국 여행이 잡혀있다. 가족 모두 함께 떠나기로 한 여행이었지만 회사일 때문에 아빠가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녀 사이가 심상찮다. 엄마도 딸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으르렁거린 시간이 길어 보인다. 연주는 가고 싶지 않은 여행길이었지만 5박 6일을 잘만 참아내면 다시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었기에 불편한 심기를 눌러보기로 한다.

 

모녀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연주의 친구들 때문이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목표도 분명하다.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되고 엄마의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진다. 승미의 조언들은 더욱 그런 자신을 깨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런 혼란과 자각 후에 네 삶은 분명 달라질 거야. 이제까지와는 다른 네가 될 거란 거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했던 일도 스스로 가치를 판단해 가며 선택하고 결정하게 되겠지. 그렇게 되었을 때 진정한 너로 살아가게 된다는 거야. 네가 엄마가 될 수 없듯 엄마도 네가 될 수 없잖아. 네 인생이랑 엄마 인생은 다른 거니까." -p.140

 

연주의 엄마는 일명 헬리콥터 맘이다. 딸아이의 성적뿐 아니라 친구관계까지 간섭하려 든다. 아이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입히기에 급급하다 보니 아이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본인의 인생보다 자식이 곧 자신의 희망이고 미래인 엄마인 셈이다. 그런 엄마에게 연주의 생각과 의견이 통할 리가 없다. 연주의 카톡을 보게 된 엄마는 모든 게 다 친구 탓이라 여기며 전학을 보내려 한다. 정말 나도 엄마지만 어이가 없었다. 게다 친구들에게 전화까지 하며 아이들을 무시했던 일은 어른인 내가 다 창피할 정도였다.

 

암튼 여행 첫날부터 삐걱거리던 모녀는 잠시 휴전하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가 내민 것이 녹색일기장이었다. 일기를 보고 간단한 코멘트를 다는 것이 숙제였다. 남의 일기 따위를 내가 왜 보냐며 퉁퉁거리던 연주는 일정 동안 일기를 보며 나름의 생각을 적게 된다. 그리고 점점 일기의 주인공인 깡순이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는데....

 

녹색일기장이 화해의 카드긴 하였지만 모녀는 여행 중에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함께 한 일행 중에 연주는 자신의 또래뿐 아니라 언니들과 대화 속에서 자신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엄마도 또래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서 조언을 얻게 된다. 게다 엄마는 일흔아홉 할머니의 열의를 보며 자식 바라기를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점만 보아도 여행에서 엄청난 수확을 거둔 셈이다. 그리고 연주도 일기장 때문에 엄마의 입장을 더 이해하게 되면서 엄마와의 거리를 좁히게 된다. 역시 일상을 내려놓고 여행길에 오르면 서로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나 보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아시아 동북공정 사업에 관한 내용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중국 동북공정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 반드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여 중국과 한반도 경계지점을 야금야금 먹으려는 속셈이 다분한 사업이기에 정말 무서운 것이다. 백두산에서 태극기를 펼칠 수 없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질 노릇이니 우리가 왜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지 느꼈을 것이다.

 

이제 몇 년 뒤면 나도 사춘기 딸과 한바탕 심리전을 치르게 될 것이다. 고분고분하던 딸이 튕겨져 나가려 할 때마다 흔들리고 또 흔들릴지도 모른다. 딸이 툭툭 던지는 한마디에 울었다는 지인의 말에 나는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춘기와 갱년기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겠다. 특히 연주 엄마처럼 "너한테 이미 질릴 대로 질렸으니까."라며 비꼬는 말들은 절대 쓰면 안 되겠다. 읽는 나도 기분이 영~~ 별로다.

 

연주 친구 승미의 데미안 패러디가 참 와닿았다.

'자기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 줄 때까지 기다리면 요리감이 된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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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부터 가족 바일라 7
신지영 지음 / 서유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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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가족이라 하면 친족원으로 구성된 집단을 말하지만 요즘은 재혼, 입양, 인연 등 가족 구성원을 이루는 방식이 다양해서 가족의 의미도 확장되고 있다.

가족은 개개인의 삶을 지탱해주는 존재이기에 없어서는 안된다. 세상에 내 편이 없다는 것만큼 외로운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반면 가족이란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담을 주기도 한다. 가족이지만 남보다도 못한 경우도 있고 가족 때문에 삶의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이 여섯 편의 이야기는 십 대들의 시선으로 가족을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른 이야기에서도 등장하며 연결고리를 짓고 있다. 하나같이 기분 좋은 끝맺음으로 독자들을 끌어 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슷하다. 십 대인 그들에게 가족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안정된 보살핌과 따스한 말 한마디면 충분한 곳이니까.

 

[어쩌면 양배추처럼]과 [텐텐텐 클럽]에서의 가족이라 하면 가족이기에 무조건 내 편이 되는 존재다. 이런 가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혈연이 아닌 이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핀다는 점 때문이다.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린 엄마의 자리를 필리핀 새엄마가 대신하고 있는 성민이네와 재혼한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지만 새엄마와 나이차가 열 살밖에 되지 않아 누나라 부르며 살고 있는 진이네는 흔한 가정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가족들보다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

 

표제작 [전생부터 가족]처럼 서로를 끔찍이 생각하는 진짜 가족과, 끔찍이 챙겨주는 가짜 가족도 있다. 진짜 가족, 즉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그들은 그야말로 무늬만 가족일 뿐 대화가 없다. 반면 내가 선택한 가짜 가족은 낯간지러울 정도로 서로를 챙긴다. 그래서인지 도연이의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이 풀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모양만 그럴싸하게 포장한 가족이 진짜 가족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반전으로 웃음을 준 이야기도 있다. [문제아의 탄생]은 아빠의 가출이라는 심각한 상황으로 출발하지만 결말에서 오잉? 하게 되는 흐뭇함을 선사한다. 반면 [나를 찾아줘]처럼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도 있다. 엄마가 집을 나가버려 혼자가 된 태준이에게 새끼 길냥이가 등장한다. 엄마가 없다는 비슷한 처지에 동질감을 느낀 태준이가 길냥이를 안고 집으로 가는 장면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십 대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감싸 안아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며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하길 바랄 것이다.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이라도 그들은 가족의 진심을 보게 된다. 집 나간 엄마를 원망보다는 기다리는 태준이,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린 엄마를 백번 이해하는 성민이, 자신보다 열 살 많은 누나 같은 엄마의 진심을 간파한 진이. 그들은 결핍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좀 더 이해하려고 한다. 못난 어른은 있어도 못난 아이는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듯하다.

지독히도 닮아서 서로를 어렵게 할 때도 있지만 가족은 닮아가면서 가슴으로 품는 사람들임을 이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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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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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참 많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인데 이번에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어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워낙 판타지물을 좋아하고 시간 여행도 좋아해서 재밌게 읽긴 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어 책을 덮고는 원작을 당장 구매했다. 아동문학의 고전을 만화로도 잘 표현된 작품을 보고 있으니 판타지물의 원조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원은 상상 그 이상의 공간이다. 특히 판타지물에서 정원은 시간의 문이 있기도 하고 요정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 톰의 정원은 어느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톰이 홍역에 걸리자 톰의 부모는 그를 이모네로 보내게 된다. 동생에게 옮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모네로 오게 된 톰은 정원 하나 없는 데다 창살까지 있는 다세대주택이 갑갑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주택 일층에는 오래된 낡은 괘종시계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끝났음에도 한 번 더 울려대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피터, 종이 열세 번 칠 때 시곗바늘은 과연 어디를 기리 킬지 난 꼭 알고 싶었어." - p.10

 

나 역시 열세 번이라니. 뭐지? 하며 호기심이 한가득이었다. 톰은 일층으로 내려왔다 뒷문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에 이끌려 뒷문을 연다. 그 순간 엄청나게 넓은 정원을 보게 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다시 뒷문을 열었을 땐 그냥 좁은 뒷마당의 모습뿐이었다.

 

 

 

 

 

톰은 이 놀랍고도 신기한 사실을 동생과 편지로 주고받는다. 정원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 매일 밤 열세 번의 종이 울리면 어김없이 정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맘껏 돌아다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톰의 몸은 마치 유령처럼 문을 통과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더군다나 그렇게 놀고 돌아왔는데도 정작 현재는 몇 분 정도만 흘렀을 뿐이다.

 

그곳에서 놀던 아이들을 염탐하다 해티란 여자아이가 자신을 볼 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된다. 해티의 눈에는 왜 톰이 보인 건지 알 수 없지만 해티와 톰은 친구가 된다. 해티는 큰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있었지만 왈가닥에 호기심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였다.

 

 

 

 

정원이 왜 나타났으며 해티와의 만남이 어떤 의미였을지 톰은 내내 생각하지만 해티를 만나는 동안은 잊어버린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톰의 정원은 시간대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듯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도 하고 톰은 매일 밤 정원을 찾았음에도 해티에겐 몇 달에 한 번씩 불쑥 찾아오는 것이었기도 했다. 게다가 해티와 톰은 서로가 유령이라고 여긴다. 톰은 점점 더 해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게 되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궁금증에 대한 열쇠를 시계의 주인인 바살러뮤 부인이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결말이 어느 정도 예측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해티와 톰의 만남에서 뭉클해지는 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점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전 나와는 상관없는 시간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나에게로까지 이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한다.

 

톰은 잠시나마 해티와 영원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의 문이 닫히고 해티를 외쳐 부를 땐 정말이지 안타까웠다. 가끔 어떤 장소에서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들이 숨 쉬던 곳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정원이 변하듯 우리네 삶도 변한다. 그리고 해티가 해티의 인생을 잘 살았듯이 톰도 자신의 시간대에서 자신만의 삶을 꿈꾸어야 한다. 비록 한여름 밤의 꿈이었지만 톰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정원의 아름다움만큼. 원작도, 영화도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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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이 양말 웅진책마을 100
황지영 지음, 정진희 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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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이 다른 양말을 신어본 적이 있었나? 나는 짝이 다른 양말을 신어본 적도 없고 딸도 그런 편이다. 왠지 짝이 다른 양말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게 되고 또 칠칠맞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는 짝짝이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선다.

 

하나는 새 학기부터 늦잠을 잤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부모님은 하나를 챙길 여유가 없다. 부랴부랴 일어났긴 했지만 어라! 양말이 죄다 짝짝이뿐이다. 학교에 늦을 것만 같아 어쩔 수 없이 짝짝이 양말을 신고 나서는데 기분이 영 별로다.(그래도 짝짝이로 신고 나서다니 성격 쿨하네.ㅎ)

 

 

 

 

이 책은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 사이에 다른 친구가 끼어들게 되면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단짝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단짝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여러 관계에 눈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 같았다.

 

강하나와 승주는 4학년 내내 단짝이었다. 운 좋게도 5학년이 돼서도 승주와 같은 반이 되고 하나는 당연히 승주와 쭉 함께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유리가 끼어들게 된다. 아침에 등교만 서둘렀더라도 승주 옆자리에 앉았을 텐데 이 모든 게 짝짝이 양말 때문인 것 같다.

 

새침데기에 질투 많은 유리는 모범생 승주에게 들러붙어 하나가 끼어들지 못하게 방어막을 친다. 하나는 여우 같은 유리뿐 아니라 모질게 말 못 하는 승주도 원망스럽다. 짝 없이 어정쩡해져 버린 하나는 그렇게 승주 곁에 있지 못하고 혼자 앉게 되지만 다행히 일학년 때부터 장난치며 친하게 지낸 정균이가 하나를 은근슬쩍 챙긴다.

 

그러나 단짝 없는 학교생활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자신과 쿵작이 맞는 이가 없으니 더 위축되고 결국 외톨이처럼 혼자 다니게 된다. 쿨한 척 혼자도 괜찮다고 위안 삼으며. 그런데 그런 하나에게도 구세주(?)가 등장했으니 바로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다. 젊은 여선생님의 놀라운 패션 감각과 자유분방해 보이는 성격은 여태껏 보아온 선생님의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규율과 규칙이 있는 단체에서는 좋게 비칠 리가 없다. 그런 선생님과 하나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닮아 있는듯하다. 하나는 자신을 보는듯한 선생님의 시선을 느끼게 되고 선생님과 친해지게 된다.

 

 

 

 

계속 승주와 유리가 거슬리지만 혼자서 지내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학교 수련회 때문에 우울해진다. 버스를 탈 때도, 방 배정을 받은 때도 짝이나 조로 움직여야 한다. 단체생활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하나의 상황에서는 전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래서였을까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짝짓기 놀이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물론 막춤을 춘 뒤라 자신감이 더해지긴 했지만.

 

조를 짜는 과정에서 민망하고 자신감이 없어진 하나는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승주와 유리와 같은 조가 된다. 수련회 날 들고 갈 트렁크부터 꼬이고 유리의 질투와 따돌림에 수련회가 즐거울 리 없다. 그래서였을까 장난으로 시작한 베개 놀이에서 하나는 유리를 제대로 한방 먹이기에 이른다. 친구들과의 사이가 점점 나빠져 만 가는 하나는 단짝이었던 승주와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

 

내 아이도 5학년이다. 그래서인지 딸아이의 친구관계를 떠올려 보며 읽었다. 딸은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하나처럼 승주 바라기는 아니다. 언젠가 넌 단짝이 없냐고 물어보니 친구 이름을 줄줄이 비엔나처럼 읊어댄다. 아직 단짝의 개념을 모르는 건지 아님 정말 죽이 맞는 친구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게 다행스러워 보인다.

 

우정은 소유하는 게 아니다. 연인 사이처럼 둘만의 관계도 아니다. 유리는 승주와 하나 사이에 끼어든 것처럼 보였지만 승주의 말대로 유리의 상황을 조금 이해하려 했다면 하나가 그렇게 마음을 다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일방적인 따돌림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 너는 자세가 틀렸어. 좋아하는 인형을 뽑는 게 아니야. 뽑기 좋은 위치에 있는 인형을 뽑는 거지.”라는 정균의 말에 나의 가치관도 흔들렸다.

 

 

마지막에 아이들 사진과 그림을 걸어놓고 하나가 가졌던 생각들이나 승주가 유리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자 자신이 잘못 바라본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단짝이나 우정에 대한 생각이 바로 잡힐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장기 자랑에서 유리의 의도를 파악하고 제대로 한방 먹이는 장면은 속이 후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균이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예쁘다.

 

하나처럼 씩씩하고 쿨한 친구도 단짝과의 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는데 소심한 아이들은 짝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다. 위축되고 상처받은 마음이 부정적인 씨앗을 틔울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통해 친구들과의 관계도 넓게 보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처지가 짝 잃은 짝짝이 양말 같다고 여겼지만 오히려 짝짝이라서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왜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그래? 가 아닌 짝짝이면 좀 어때!라는 생각을 가져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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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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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인도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나라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하나의 환영일 뿐이다. -p.232

 

 

나마스테.~~^^

그나저나 인도가 이렇게 웃기는 곳일 줄이야. 난 경험도 하지 않고 인도를 형편없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예전에 읽은 적절한 균형이란 책 때문이기도 하고 인도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때문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가.

 

지구별 여행자는 작가의 인도 여행기 그 이상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웃다가 뭉클하다가 울컥하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인도가 좋아지고 있었다.

여행기를 통해 알게 된 인도는

성자들의 말재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곳.

절대 말로 이겨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곳.

허풍처럼 들리지만 말의 씨가 있는 곳.

명언으로도 충분히 헛배가 부를 수 있는 곳.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고 베풀 줄 아는 곳.

어처구니없이 진실한 곳.

그리고 누군가에겐 더럽고 무질서 한 곳이지만 누군가에겐 현실 너머 그 이상인 곳이다.

 

그는 여행 내내 수많은 인도인에게서 배움을 얻었다. 무임승차한 성자와 검표인, 망고주스 가게 주인, 올드 여인숙에서 만난 올드 시타람, 식당 주인, 버스나 기차에서 만난 승객, 황무지에서 만난 집시, 행상, 거지 등 그와 말을 섞은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가슴에 무언가를 하나씩 남기고 사라졌다.

 

 

 

 

어떤 이야기들은 막무가내 말잔치로 들리지만 하나같이 틀리지 않기에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으스대거나 잘난체하게 되면 끝은 민망해지기 일쑤다. 오랜 시간 동안 명상과 수도로 길들여진 나라에서 인도인의 말재간을 당해내긴 힘들어 보인다. 낡은 여인숙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자신을 일깨워준 늙은 주인의 입심에 나마저 죄지은 어린 양이 된 기분이다.

 

버스에서는 한 노인이 반강제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다 아는 얘기라 소리치며 노인의 입을 닫게 해버린다. 그런데 그 노인의 말이 또 기가 막힌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남의 말을 가로막으면 결국 자신이 내지르는 소리에 자신이 놀라 쓰러질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역시 인도인은 못 당해라며 혀를 내둘렀다.

 

작가는 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그래서 그는 목에 볼펜을 걸고 다닌다. 그 모습을 본 한 노인이 작가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그런데 노인은 당신은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고 받아친다. 진정한 작가라면 충분한 경험을 근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기록 따윈 무의미하다고 말함으로써 그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삶의 중요한 것들은 직접 경험해야만 자신의 것이 되는 법이니까. -p. 103

 

 

 

 

여행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일회성 만남이지만 가난한 나라 인도에는 따뜻함과 진실됨이 있다. 그가 강도를 만나 살아서 돌아온 일화는 천운이라고 할지라도 여행객을 향한 관심과 배려에 가슴이 뜨끈해진다.

애초부터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입버릇처럼 외치는 '노 프라블럼'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고 반딧불이를 잡아 삶의 불을 밝혀 준 인도 여인 소마에게서 따뜻한 인간미를 보았다.

 

명언 제조기 식당 주인 때문에 피식 웃기도 했는데 정말 그의 명언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졌다. 그 어떤 명사라도 못 당해낼 실력이다. 수프가 짜다는 말에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라고 되받아치는 순간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신이 창조한 날은 단지 오늘뿐이란 말이오.

어제와 내일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오. -p.143

 

 

어떤 탈무드 책보다 어떤 철학서보다 배울 점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여행이라면 진정한 여행기라 할만하다. 그가 머리말에 언급했던 여행이 책이라는 말이 괜히 있어 보이려고 한 말이 아님을 책을 덮고 알게 되었다.

 

가끔은 점을 보는 앵무새가 달아나기도 하고, 춤춰야 할 코브라가 춤을 추지 않아 따귀를 서너 차례 얻어맞기도 하고, 진품이 아닌 향료 목걸이로 관광객을 속이더라도 그 엉성함에 친근감이 느껴지고 인간미가 전해진다.

 

나는 머리에 불이 날것 같으면 풍경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얻는 것임을 깨달았다. 경험을 통해 그가 하나씩 배워갈 때마다 얼마나 행복했을지를 떠올려보았다. 물론 인도와 한국은 너무나 다른 곳이다. 한국에서 인도의 깨달음을 실천하면서 살기란 깨달음의 과정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별 여행자의 인도 이야기에서 존재의 이유, 인연과 숙명, 단순한 삶과 고결한 생각 등에 마음이 움직여질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 다음이란 없음을 깨닫는 순간 현재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10월이면 결혼해서 인도로 떠날 사촌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어진다. 영적으로는 전혀 문맹 하지 않은 나라 인도에서 좀 더 철들어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힌디어 생김새를 보니 정말 빨랫줄에 걸어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힌디어로 아차! 가 알겠군 이란 뜻이라는데 요건 잊어먹지 않을듯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원모어찬스의 [럭셔리 버스]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인도 여행을 기약할 수는 없지만 인도를 향한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듯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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