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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평점 :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인도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나라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하나의 환영일 뿐이다. -p.232
나마스테.~~^^
그나저나 인도가 이렇게 웃기는 곳일 줄이야. 난 경험도 하지 않고 인도를 형편없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예전에 읽은 적절한 균형이란 책 때문이기도 하고 인도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때문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가.
지구별 여행자는 작가의 인도 여행기 그 이상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웃다가 뭉클하다가 울컥하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인도가 좋아지고 있었다.
여행기를 통해 알게 된 인도는
성자들의 말재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곳.
절대 말로 이겨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곳.
허풍처럼 들리지만 말의 씨가 있는 곳.
명언으로도 충분히 헛배가 부를 수 있는 곳.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고 베풀 줄 아는 곳.
어처구니없이 진실한 곳.
그리고 누군가에겐 더럽고 무질서 한 곳이지만 누군가에겐 현실 너머 그 이상인 곳이다.
그는 여행 내내 수많은 인도인에게서 배움을 얻었다. 무임승차한 성자와 검표인, 망고주스 가게 주인, 올드 여인숙에서 만난 올드 시타람, 식당 주인, 버스나 기차에서 만난 승객, 황무지에서 만난 집시, 행상, 거지 등 그와 말을 섞은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가슴에 무언가를 하나씩 남기고 사라졌다.


어떤 이야기들은 막무가내 말잔치로 들리지만 하나같이 틀리지 않기에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으스대거나 잘난체하게 되면 끝은 민망해지기 일쑤다. 오랜 시간 동안 명상과 수도로 길들여진 나라에서 인도인의 말재간을 당해내긴 힘들어 보인다. 낡은 여인숙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자신을 일깨워준 늙은 주인의 입심에 나마저 죄지은 어린 양이 된 기분이다.
버스에서는 한 노인이 반강제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다 아는 얘기라 소리치며 노인의 입을 닫게 해버린다. 그런데 그 노인의 말이 또 기가 막힌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남의 말을 가로막으면 결국 자신이 내지르는 소리에 자신이 놀라 쓰러질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역시 인도인은 못 당해라며 혀를 내둘렀다.
작가는 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그래서 그는 목에 볼펜을 걸고 다닌다. 그 모습을 본 한 노인이 작가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그런데 노인은 당신은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고 받아친다. 진정한 작가라면 충분한 경험을 근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기록 따윈 무의미하다고 말함으로써 그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삶의 중요한 것들은 직접 경험해야만 자신의 것이 되는 법이니까. -p. 103

여행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일회성 만남이지만 가난한 나라 인도에는 따뜻함과 진실됨이 있다. 그가 강도를 만나 살아서 돌아온 일화는 천운이라고 할지라도 여행객을 향한 관심과 배려에 가슴이 뜨끈해진다.
애초부터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입버릇처럼 외치는 '노 프라블럼'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고 반딧불이를 잡아 삶의 불을 밝혀 준 인도 여인 소마에게서 따뜻한 인간미를 보았다.
명언 제조기 식당 주인 때문에 피식 웃기도 했는데 정말 그의 명언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졌다. 그 어떤 명사라도 못 당해낼 실력이다. 수프가 짜다는 말에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라고 되받아치는 순간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떤 탈무드 책보다 어떤 철학서보다 배울 점이 한가득이었다. 이런 여행이라면 진정한 여행기라 할만하다. 그가 머리말에 언급했던 여행이 책이라는 말이 괜히 있어 보이려고 한 말이 아님을 책을 덮고 알게 되었다.
가끔은 점을 보는 앵무새가 달아나기도 하고, 춤춰야 할 코브라가 춤을 추지 않아 따귀를 서너 차례 얻어맞기도 하고, 진품이 아닌 향료 목걸이로 관광객을 속이더라도 그 엉성함에 친근감이 느껴지고 인간미가 전해진다.
나는 머리에 불이 날것 같으면 풍경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얻는 것임을 깨달았다. 경험을 통해 그가 하나씩 배워갈 때마다 얼마나 행복했을지를 떠올려보았다. 물론 인도와 한국은 너무나 다른 곳이다. 한국에서 인도의 깨달음을 실천하면서 살기란 깨달음의 과정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별 여행자의 인도 이야기에서 존재의 이유, 인연과 숙명, 단순한 삶과 고결한 생각 등에 마음이 움직여질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 다음이란 없음을 깨닫는 순간 현재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10월이면 결혼해서 인도로 떠날 사촌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어진다. 영적으로는 전혀 문맹 하지 않은 나라 인도에서 좀 더 철들어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힌디어 생김새를 보니 정말 빨랫줄에 걸어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힌디어로 아차! 가 알겠군 이란 뜻이라는데 요건 잊어먹지 않을듯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원모어찬스의 [럭셔리 버스]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인도 여행을 기약할 수는 없지만 인도를 향한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듯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