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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평점 :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참 많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인데 이번에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어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워낙 판타지물을 좋아하고 시간 여행도 좋아해서 재밌게 읽긴 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어 책을 덮고는 원작을 당장 구매했다. 아동문학의 고전을 만화로도 잘 표현된 작품을 보고 있으니 판타지물의 원조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원은 상상 그 이상의 공간이다. 특히 판타지물에서 정원은 시간의 문이 있기도 하고 요정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 톰의 정원은 어느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톰이 홍역에 걸리자 톰의 부모는 그를 이모네로 보내게 된다. 동생에게 옮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모네로 오게 된 톰은 정원 하나 없는 데다 창살까지 있는 다세대주택이 갑갑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주택 일층에는 오래된 낡은 괘종시계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끝났음에도 한 번 더 울려대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피터, 종이 열세 번 칠 때 시곗바늘은 과연 어디를 기리 킬지 난 꼭 알고 싶었어." - p.10
나 역시 열세 번이라니. 뭐지? 하며 호기심이 한가득이었다. 톰은 일층으로 내려왔다 뒷문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에 이끌려 뒷문을 연다. 그 순간 엄청나게 넓은 정원을 보게 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다시 뒷문을 열었을 땐 그냥 좁은 뒷마당의 모습뿐이었다.

톰은 이 놀랍고도 신기한 사실을 동생과 편지로 주고받는다. 정원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 매일 밤 열세 번의 종이 울리면 어김없이 정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맘껏 돌아다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톰의 몸은 마치 유령처럼 문을 통과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더군다나 그렇게 놀고 돌아왔는데도 정작 현재는 몇 분 정도만 흘렀을 뿐이다.
그곳에서 놀던 아이들을 염탐하다 해티란 여자아이가 자신을 볼 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된다. 해티의 눈에는 왜 톰이 보인 건지 알 수 없지만 해티와 톰은 친구가 된다. 해티는 큰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있었지만 왈가닥에 호기심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였다.

정원이 왜 나타났으며 해티와의 만남이 어떤 의미였을지 톰은 내내 생각하지만 해티를 만나는 동안은 잊어버린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톰의 정원은 시간대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듯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도 하고 톰은 매일 밤 정원을 찾았음에도 해티에겐 몇 달에 한 번씩 불쑥 찾아오는 것이었기도 했다. 게다가 해티와 톰은 서로가 유령이라고 여긴다. 톰은 점점 더 해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게 되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궁금증에 대한 열쇠를 시계의 주인인 바살러뮤 부인이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결말이 어느 정도 예측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해티와 톰의 만남에서 뭉클해지는 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점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전 나와는 상관없는 시간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나에게로까지 이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한다.
톰은 잠시나마 해티와 영원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의 문이 닫히고 해티를 외쳐 부를 땐 정말이지 안타까웠다. 가끔 어떤 장소에서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들이 숨 쉬던 곳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정원이 변하듯 우리네 삶도 변한다. 그리고 해티가 해티의 인생을 잘 살았듯이 톰도 자신의 시간대에서 자신만의 삶을 꿈꾸어야 한다. 비록 한여름 밤의 꿈이었지만 톰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정원의 아름다움만큼. 원작도, 영화도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