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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다락방하면 집의 숨은 공간을 의미한다. 오래된 먼지가 쌓여 있긴 하지만 집의 역사가 숨어있기도 하고 물건 정리를 하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발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내 기억 속 다락방도 그렇다.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오래된 앨범을 들춰보거나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물건들을 찾아내는 일들에 꽤 즐거움을 느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니 왜 다락방 미술관인지 알듯했다. 마치 그림 속 숨어 있는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그때 그 시절과 닮아있는 듯했다.
먼저 저자의 이력을 보면서 참 부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미술사 책을 읽으며 미술사를 전공할껄하며 후회한 적이 있었다. 살면서 그때의 마음은 흐릿해졌지만 최근 다시 그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계기가 반 고흐 전시회를 다녀온 뒤부터였다. 그 뒤 미술사 관련 책을 사 보기 시작했고 한 달에 한 번은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다니고 있다. 유명한 명화뿐 아니라 현대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 그 이상의 것들이 궁금해졌다. 그림 속에 깃든 배경과 화가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면 무수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사람은 죽어도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고 한 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시대가 정말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 책은 미술 초보자들도 편하게 볼 수 있다. 우선 저자의 글들이 참으로 편안하다. 한편의 그림에서 우러나는 저자의 깊이 있는 생각들로 인해 그림에 더 애착이 생긴다. 조반니 벨리니의 <순교자의 암살>이나 대 피터르 브뤼헐의 <이카로스의 추락>을 보며 현대인의 무관심과 별반 다름없음을 얘기할 때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타인의 불행에 민감해져야 하지 않을까.
이 작품들은 주변을 무심히 표현함으로 역설적이게 냉혹한 현실의 섬뜩함을 보여준다. - p. 57
그렇듯 그림과 저자의 생각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예전에 다른 책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다시 보면서 흐려진 기억을 떠올려도 보고 새로운 그림에 다시 매료되기도 했다. 우선 역사를 좋아한다면 그림에 얽힌 사연도 정말 재밌게 볼 수 있다. 많은 작품들을 추려내기 쉽지 않았겠지만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어려운 용어는 되도록이면 피하고 작품에 몰입하기 쉽도록 작품과 화가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화가만도 총 28명이다. 미술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절반 이상은 들어본 인물들이기에 금방 읽힌다.
작품보다 화가의 인생에 더 관심이 쏠린 경우도 있었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젠탈레스키의 작품을 보며 그녀가 느낀 분노와 울분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식과 아내를 모두 잃어버린 슬픈 예술가의 자화상을 보니 렘브란트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콜비츠 또한 자식과 손자까지 전쟁에서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는다. 전쟁을 반대한 그녀의 외침이 오래도록 지켜졌으면 좋겠다.

반 고흐는 지난 전시회에서 많은 작품과 그의 인생 이야기를 만나보았었기에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어내려갔었다. 고희와 고갱의 두 작품을 비교해 보아도 두 사람의 내면의 차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빛 혹은 그림자]라는 책으로 알게 된 작가인데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한 이 책이 더 궁금해진다.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몸뚱이를 본 순간 그녀가 그림이 아니었다면 살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성화가 나혜석의 자화상에서 바라본 쓸쓸한 외침과 비참한 말년에 가슴이 아팠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그의 작품 <회화의 기술>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찬찬히 들여다보며 얼마나 공을 들인 작품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이 작품은 여러 미술 관련 서적에 언급이 되어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한데 벌써 제목에서부터 슬픔과 아픔, 그리고 환희 등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다시 보아도 가슴에 깊이 남는 그림이다.

에곤 실레편에서 예술과 외설 사이에 관한 글을 보니 얼마 전에 본 <시몬과 페로>에 대한 블로그 글이 떠올랐다. 딸의 지극한 효심보다 솔직히 불쾌감이 먼저 든 것이 사실인데 예술작품이라고 불리는 작품 중에도 이런 분위기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에서 성(姓)은 피해 갈 수 없는 주제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며 그것은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에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품을 대한 여러 궁금증도 풀어내고 있는데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을 보며 그가 어떻게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는지, 샤갈의 [그녀 주위에]라는 그림에 왜 자신의 고개를 거꾸로 그렸는지, 피카소가 왜 앙리 루소의 작품을 사게 되었는지,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은 왜 눈동자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들이 그 시대에는 외면받기 일쑤였고 외롭고 고독한 생을 살다간 예술가도 많다. 그래서 한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든 음지에서 외면받던 예술가든 훌륭한 예술작품은 결핍에서 탄생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다. 물론 힘겨운 시대에 고달픈 인생길을 걷던 예술가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했지만 말이다.
모든 그림들이 다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내가 감동받은 작품이 다른 이에게는 별것 아닌 작품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작품에 제대로 임하기 위해서는 화가의 인생을 들여다볼 자세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다 그림을 찾아보게 한 점은 어떤 숨은 의도가 있는 걸까하면서 보긴하였지만 그래도 그림이 먼저 나오고 글이 시작되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덧붙인다. 그리고 그림이 많이 실려있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했다. 찾아보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그림에 관한 다른 글들도 만나볼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또한 남성 위주의 예술세계에서 여성작가도 적절히 소개한 점도 맘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해당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으니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도움이 되겠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본 뒤라면 "저런 건 나도 그리겠다!”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