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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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우리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는 게 어떨까?"

"그래. 그냥 죽어버리자."

참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어 보이는 이 대화는 아이들이 어릴 때 차 안에서 들려주던 이솝 우화 중 한 대사이다. 이 책에도 비슷한 우화가 등장하는데 토끼들은 너무나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자신들이 한심해서 이렇게 살바엔 차라리 죽어버리자며 결심한 뒤 내뱉은 대사다. 하지만 연못으로 뛰어들려던 순간 토끼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개구리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그걸 보면서 토끼들은 저런 소심한 개구리들도 사는데 자신들이라고 못 살 이유가 없다며 죽지 말자고 한다. 낭독하던 성우의 대사가 너무나 귀에 쏙 들어와서 "죽어버리자 "라는 대사만 나오면 그렇게 따라 하며 웃었었다. 물론 소심하고 겁 많은 큰 녀석에게 이야기의 교훈을 얘기해 주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 토끼와 거북이, 해와 달, 개미와 베짱이, 여우와 두루미, 어리석은 개, 서울쥐와 시골쥐, 양치기 소년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솝 우화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재미있고 귀엽게 각색되어 동화로 읽혀 오고 있다. 그러나 원래 이솝우화는 어린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오래전 이솝이란 사람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솝도 델포이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결국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 꼴인가. 그의 말로가 씁쓸하다.

 

오래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욕망을 대신하던 존재였다. 그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들을 심심찮게 저지른다. 그랬기에 유독 우화에 신들이 등장한다. 즉 인간의 어리석음을 신과 동물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가르치려 한 것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많이 순화되었지만 원문을 읽다 보면 참 잔인하고 야만적인 이야기들도 더러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근원도 잔혹동화가 많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그 시절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명작동화를 좋아하고 이야기의 근원을 찾는 것도 좋아해서 이솝우화 전집을 본 순간 욕심이 났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358편의 우화가 실려 있으며 다수의 일러스트까지 곁들여져 있어 편집이나 구성도 맘에 들었다. 원문에 교훈도 짤막하게 덧붙여 놓았다.

 

모든 우화가 다 교훈적인 것은 아니다. 더러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교훈이 없는 것도 있다. <내시와 제관>에는 교훈이 없다고는 하나 이 우화는 좀 잔인하다. <아이와 까마귀>도 교훈이 없다고는 하나 뭐가 있을 거야 하면서 집요하게 찾고 싶어진다.ㅋ

<사람과 사티로스>에 보면 사람은 동일한 입으로 덥히기도 하고 식히기도 하는 사람이라며 믿지 못할 존재라 칭한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쁘게 보면 인간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존재긴 하지만 좋게 보면 한 입으로 두 가지를 다하는 능력자이기도 하지 않나.^^

 

이솝 우화에서는 철저히 선과 악이 분리되고 자연의 질서와 순리를 지키고자 한다. 또한 과한 명예욕과 분에 넘치는 욕심은 화를 자초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늑대와 말>에서의 늑대처럼 천성이 악한 자는 선의를 강조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음을, <농부와 독사>에서 농부가 독사를 불쌍히 여겼다가 되려 독사에게 당하는 것처럼 악은 원래 악한 존재로 비친다. 그런데 나쁜 이들에게 당한 자들은 항상 당해도 싸지라는 말로 자신을 탓한다. 우화에는 분노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 우화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대한 내용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런 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제우스와 수치심>이라는 우화에서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채소에 물을 주는 원예사>에서는 계모와 생모에 관한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 <갈매기와 솔개> 이야기는 솔직히 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갈매기가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사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뭐가 큰 야망을 품었다고 하는 것인지...

 

뭐니 뭐니 해도 우화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어 철학적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사람들>을 읽으면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지음을 받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전쟁과 오만>을 읽으면서 인간이 오만하지 않았으면 전쟁 또한 잦지 않았을 텐데 전쟁은 왜 오만하고 결혼을 해가지고라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좋은 것들은 힘이 없어서 나쁜 것들에게 쫓겨 다녔다.'로 시작하고 있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라는 이야도가 인상 깊었다. 어쩜 그리도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건지.

철학서와 고전에 관심이 있다면 이솝 우화 전집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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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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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우리네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매개체이다. 간접적 경험들을 통해 타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개개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을 놓을 수가 없다.

 

오래전 출간된 책임에도 이 책에 사로잡힌 이유는 내가 표지의 유혹에 약한 데다가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 작품들을 선호해서다. 게다가 이 작가의 글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라는 작품을 읽고 받았던 그 충격이란! <곰>이란 작품으로 그를 알게 되었었고 바로 <소리와 분노>를 읽었는데 상당히 독특하고 난해한 방식에 묘한 매력을 받았었다. 기대만큼 여기에 실린 단편 <에밀리를 위한 장미>도 역시나 강렬하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떠오른 단어가 소름이었다. 그리고 지독하다. 사랑이라기보다는 광기 어린 복수극이다. 이 사랑의 빛깔은 짙은 고동빛 같다. 저자도 이 작가에게 시간을 내주길 권하며 작가에 대한 호감도를 드러내었다.

 

이처럼 책에 실린 11편의 단편에서는 각각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절반 정도는 처음 접하는 작가이고 또 낯익은 작가라도 작품은 낯설어 호기심이 발동한다. 고전 속에서 만나는 사랑은 시대가 변하면서 그 색채가 많이 달라졌다. 우선은 여성의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고 사랑의 체감온도도 제법 변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닌 속성은 비슷하게 흐르는듯하다. 그랬기에 이 결이 다른 이야기들을 읽으며 여러 생각에 빠질 수 있었다. 특히 <슌킨 이야기>는 다소 설정 자체가 충격이었으나 두 남녀 주인공의 애달픈 사랑의 여운은 가장 오래 남는다. 사스케는 눈먼 여인 슌킨을 위해 손과 발이 되어 준 것도 모자라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자신을 낮춘다. 몸종으로써 충성을 다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그림자로 지낸 듯 보였지만 실상 둘은 바늘과 실 같은 사이였다. 확실히 저자처럼 이 기이한 끌림이 싫지만은 않다.

 

최근 감성과 가장 가깝게 느껴진 작품이라면 토머스 하디의 <환상을 좇는 여인>이겠다. 남편과 정신적 교감이 어려웠던 아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에 격하게 공감했는데 마지막 남편이 부인의 외도를 의심하다 못해 인정하는 모습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시인과의 만남을 앞두고 남편이 약속을 잡자 안절부절못하는 아내의 모습에 나의 경험담이 오버랩되어 웃음이 났다. 방방콘 있는 시간대에 영화 보자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줬으면.ㅋㅋ

한 여인의 과한 욕망이 부른 비극이라고만 하기엔 남편의 무관심을 탓하고 싶어진다.

 

 

 

 

이곳에 핑크빛 색채는 없다. 알퐁스 도테의 <별>과 같은 두근거림은 잠시 스칠 뿐이다. 사랑은 저마다의 빛으로 열정을 뿜는다.

강렬한 이끌림, 배신, 헌신, 집착, 순수.

 

일생을 사랑 없이 살 수 없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이었다. 안톤 체호프는 이 여인을 <사랑스러운 여인>이라 칭한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세상과 호흡한다. 희생보다는 기생에 가까운.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주체를 잃어버린다.

 

반면 한 사람만 바라보며 애정을 쏟은 여인도 있다. 어쩌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로 향한 동정심과 연민이 먼저였을 테지만 그녀는 그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 스탕달은 시대적 상황에서 충돌하는 사랑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은 씁쓸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한 남자를 소유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조국을 더 사랑한 남자로 인해 허망하게 막을 내린다. 글을 쓰다 보니 이 남자에게 화가 난다.ㅎㅎ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 떠올랐던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의 <르네>라는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감정 앞에 나설 수 없는 운명. 한 남자의 지독한 고독감에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허무하고 어떤 이야기는 공허하다. 단 한 문장에 마음이 아려오기도 하고 저 푸른 산 뒤에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 있어. 그 시절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p.286 단 한 문장에 오싹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청회색을 띤 기다란 머리카락이었다. -p.348 라이젠 보그 남작의 슬픈 운명을 보며 사랑의 환상이 자칫 허황된 믿음 따위에 농락당할 수도 있음을 보게 된다. 라이젠보그는 그가 클래레를 소유함으로써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되었다고 느꼈다. -p.438

 

읽고 싶은 책이 또 늘었다. 장바구니에 서너 권을 담아놓고는 아직 내 것이 아님에도 내 것인 것 마냥 좋아하고 있다. 문학이 뭔가 잃어가는 감성을 다시 채워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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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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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2살 소녀 씨씨는 어느 날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마주한다.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아빠와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혀 미쳐버린 엄마 사이에서 홀로 쓸쓸히 견뎌내고 있었던 소녀. 이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던 마음은 이모할머니의 등장으로 완전히 분위기가 전환된다.

마치 신데렐라가 나머지 유리구두의 한 짝을 찾은 것처럼, 소공녀 세라가 부자 이웃을 만난 것처럼. 씨씨의 환경은 동전의 앞뒤면이 뒤집히듯 바뀐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쏟아진 사랑들에 내가 다 취한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ㅎㅎ

지나치게 동화 같은 설정에 아니 과하게 인간애 넘치는 설정에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내 인생이 여기 있어. 이게 내 진짜 인생이야." - p.34 라며 과거 속에 갇힌 씨씨의 엄마는 정신을 놓아버리고 스스로를 방치한다. 씨씨마저 그런 엄마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녀는 사랑의 균형이 무너져 버렸다. 주는 것보다 받는 사랑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그녀는 미인대회라는 지점에서 인생이 멈추어 버렸다. 모두 자신만을 바라봐 주던 무대 위의 황홀감에 빠져 왕관을 쓰고 드레스에 집착한다. 그렇다면 그녀를 망친 건 미인대회였을까. 무관심한 남편이었을까. 아니면 북부라는 환경이었을까. 그토록 딸을 사랑했음에도 스스로의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녀가 뛰어들기 직전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있었던 일은 정말 유감이다. 하지만 전부 다 내 잘못이 아니란 걸 너도 알아줬으면 해. - p.219 이 책에는 거의 여자만 등장한다. 그나마 등장하는 남자들의 이미지는 꽤 좋지 못하다. 씨씨의 아빠도, 경찰도, 강도도.ㅋㅋ

아빠는 정말 무책임한 가장으로 등장한다. 미쳐가는 아내와 딸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바람까지 피운다. 하지만 이야기 초반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집을 며칠씩 비워야 했고 아내의 카드빚을 갚느라 힘이 들어 보이는 모습엔 측은함이 일기도 했다.

솔직히 남녀 문제는 자식이라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법. 다만 아빠가 딸에게까지 무관심한 건 아주 지탄받아 마땅하다. 딸에게 자꾸만 이해해달라고 변명한다고 한들 고작 십이 년밖에 살지 않은 어린아이가 우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자도 모르고 아이도 모르는 늙은 남자도 참 철없어 보이긴 매한가지다.

엄마의 죽음 뒤 아빠는 딸의 양육권을 이모할머니에게 넘긴다. 처음 본 이모의 차에 그냥 실려갈 수밖에 없다. 어린 소녀가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모할머니 댁에 도착하자마자 이곳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시나몬 롤과 복숭아 맛에 아픔을 해독하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남부의 공기에 씨씨의 몸 세포가 하나씩 되살아난다.

투티, 올레타, 굿페퍼 그녀의 책에 새로 등장한 딕시까지. 그녀 주위를 둘러싼 사랑과 관심의 공기가 진한 복숭아 향기처럼 달콤하기 그지없다. 각자의 캐릭터는 저마다의 색채로 씨씨를 돌본다. 누구는 조심스럽게, 누구는 다정하게, 누구는 강하고 진취적으로 씨씨에게 삶의 철학을 가르친다. 나 또한 솔직함과 당당한 굿페퍼가, 요리만큼은 자신감을 보이던 올레타가, 옛 건물 보존에 진취적인 투티를 보며 삶의 에너지를 느꼈다.

매번 무례한 홉스 부인 같은 여자를 어쩌다 보니 혼내주게도 되고, 또 어쩌다 보니 티격태격하면서 갈등의 고조를 높여보지만 작가는 최대한 친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자칫 범죄소설론까지는 닿지 않았다는 얘기. 게다 씨씨의 일탈 또한 가볍게 끝이 나고 인종차별 문제도 무겁게 끌고 나가지 않는다. 단지 씨씨를 이해시키기 위한 정도랄까. 세상엔 네가 당한 차별보다 변화시킬 수 없는 억울한 차별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과거와 화해시키고자 한다. 수많은 인생 경험으로 단단해진 올레타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씨씨는 엄마의 죽음에도 충분히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그랬던 소녀가 뒤늦게 엄마를 위한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씨씨의 주변 인물들은 한 소녀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보낸다. 달라진 환경뿐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이 작정하고 보살피는듯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씨씨 허니컷 구하기인가 보다.

벌새를 구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허니컷이란 이름과 자연스럽게 연결 짓게 된다. 인간 세상만큼은 약육강식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우주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인간은 서로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생명체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나저나 즐겁께 늙어갈 베프를 잘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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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난민 도야 청어람주니어 저학년 문고 23
안선모 지음, 심윤정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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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난민 이야기에요?"라며 딸아이가 한마디 툭 던진다. ㅋㅋ 그도 그럴 것이 꽤 많이 읽긴 했다. 어린이문고, 외국소설에 그래픽 노블까지 챙겨서 보여줬었다. 그 많고 많은 사연들 중 정말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았고 화가 나다가도 울적하거나 먹먹해지는 이야기들도 더러 있었다.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타민족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분명 어른들보다는 순수할 텐데 그럼에도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점점 어른들의 편견과 삐뚤어진 민족주의에 지역 이기주의까지 고스란히 닮아가고 있다. 아니면 어른들이 계속 그런 나쁜 점을 물려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가 얼마나 아픈 화살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 꽂히는지를 왜 모르는 것일까.

 

작가는 교육 환경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펴냈다. 난민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서 상처받지 않고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세계는 이미 온택트 시대가 열렸음에도 여전히 마음과 마음의 연결은 어려운 숙제인가 보다. 도야네처럼 전쟁이나 재난 등으로 전 세계를 떠도는 난민의 수는 점점 급증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포용력을 키워야 한다. 인종 울타리를 걷어내면 우리는 진정 세계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도야네는 미얀마에서 왔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수군거림은 이미 그들 가족 주변에서는 흔한 것들이다. 도야네는 낯선 언어, 낯선 이웃, 낯선 제도에 적응하는 중이지만 도야만은 영 이곳 생활이 쉽지 않다. 신발을 신는 일도, 급식을 먹는 일도, 안내장을 확인하는 일도 다 서툴다. 그중에 받아쓰기는 정말 최악이다. 한국 이름인 김도영도 낯선데 한국어 받아쓰기가 잘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한국에서만 못하는 것일 뿐이다. 도야는 발랄하고 솔직하며 자신감이 넘친다. 하드를 좋아하고 나무와 숲도 좋아한다. 반 친구들과도 큰 문제 없이 잘 지냈다. 민주가 반장이 되기 전까지는.

 

 

 

 

그러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불가능이란 없다더니 도야가 받아쓰기 백 점을 맞은 것이다. 저 천진난만한 얼굴 표정을 보라.ㅎㅎ 그나저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 않던데 어딘가 영 수상쩍다. ㅋㅋ 그 사연이야 도야가 오빠에게 말함으로써(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낱낱이 드러나지만 참으로 발칙하다.ㅋ 오빠가 목적을 위해 그런 거짓된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자 선생님께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도야는 무엇보다도 캠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없이 이곳 한국이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민주와 작은 다툼이 생겨 잔뜩 겁을 먹은 순간에도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는 이웃 할머니와 친구 엄마, 담임 선생님 덕에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아. 친구 창수도 있었지.^^

 

난민들에게 삶의 종착지가 필요한 것처럼 난민 이야기에도 종착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난민의 수는 점점 더 급증할 것이고 그들을 계속 외면할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국가이기에 더더욱이 외국인을 향한 시선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더군다나 제3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 그들이 오죽하면 고향땅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저학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좀 더 난민 문제를 긍정적이고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며 성장한다. 함께 읽어보면서 어른들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아이들에겐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할지를 항상 생각하면 좋겠다. 도야를 도야로 인정해 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청어람 출판사에서는 늘 독후 활동을 할 수 있게끔 활동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너무 좋다. 아이들이 꾸준히 독서록을 작성하면 좋겠지만 글쓰기를 아직 힘들어하는 저학년들에게는 활동지만 한 게 없다. 난민에 대한 정의와 우리나라 난민의 현주소까지 언급하고 있어 아이와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정리도 해보고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림도 그려보았다. 마지막으로 도야의 뒷이야기까지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 역시나 쉽지 많은 않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오히려 저학년들이 훨씬 잘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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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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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이곳의 실상을 역사 책에서 본 이들이라면 이런 곳에 학교가 있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할 것이다. 어떻게 버젓이 학교가?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을 가스실로 보내버리고 온갖 생체실험이 자행되던 곳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수많은 유대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게르만족의 희생양이 된다.

가족캠프 31구역. 이곳은 다른 구역과는 조금 차별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나치가 국제적 비난을 덮기 위해, 그들의 인종말살정책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 캠프를 조성한 것이다. 물론 이곳에 수용된 이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른 채 지내고 있다. 다른 곳보다 사망자가 적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할 뿐이다.

 

이야기는 '디타 크라우스'라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치 시절, 산처럼 쌓인 책들이 불태워졌다. 책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소설을 두어 권 읽긴 했어도 캠프 내에서 비밀리에 책을 돌려보았다는 사실은 처음 접했다. 제아무리 책의 힘이 놀랍다고는 하지만 빵에 대한 욕구만이 남아 있는 곳에서 문학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시작된 책 읽기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을 끌어내기에 좋았다. 이 모든 건 위험을 무릅쓰고 사서를 자처한 한 소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길고 마른 다리를 가진 한 소녀가 늘 뛰어다닌다. 그녀의 옷 안쪽 비밀의 주머니에는 수용소에서 볼 수 없는 물건이 숨어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31구역 사서라 부른다.

 

디타는 책이 좋았다. 독서는 즐겁다. 그녀가 열두 번째 생일날 받고 싶었던 선물은 물건이 아니었다. 그냥 이제부터 어른 책을 읽게 허락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책은 뭐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해 주고 세상에서 부족한 걸 채워주기도 하며 어디든 데려다주기도 하고 타임머신이 되기도 한다. 책을 아무리 불태워도 책은 그 어딘가에서 사람들에게 영혼을 불어 넣는다.

 

31구역을 관리하고 있는 유대인 관리자 프레디 허쉬는 디타에게 사서가 될 것을 권하며 책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을 부탁한다. 하지만 자동반사처럼 두려움으로 인한 두 다리의 떨림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디타는 마냥 책이 좋았기 때문에 책을 돌보고 지키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매번 지독한 검열과 감시를 피해야 하지만 그녀는 열네 살의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신중하며 당차며 똑 부러진다. 심지어 악명 높던 요제프 멩겔레의 시야에 걸려들어 매사 두려움이 커져갔지만 빛과 같은 짧은 찰나 그 짧은 순간만큼은 서로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내고 싶었다. 어쩌면 당장 다음이 마지막이 될지언정 책 속 한 구절에서 위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도 족했다.

 

 

 

 

이곳에는 종이책 여덟 권(표지 그림이 참 맘에 든다)과 살아있는 책이 있다. 너덜너덜 바래지고 찢긴 책 들이지만 그마저도 너무나 소중하다.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자들은 자진해서 살아있는 책이 되어준다. 아이들은 이야기의 재미를 알고 있으며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이라도 전쟁의 실상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해야 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책은 그들 모두가 실의에 빠졌을 때 미소를 돌려주기도 한다.

 

때론 진실 따윈 모른 채 살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반면 거짓말은 더 인간적이다. -p.351

 

이야기는 수용소의 실상과 멩겔레의 생체실험, 가스실과 시체 구덩이 등 당시 상황 등이 세세히 묘사되고 있다. 가스실에서 나온 시체들의 끔찍한 모습, 멩겔레가 쌍둥이를 대상으로 자행한 만행들, 강제수용소의 끔찍한 인권 말살 등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힘든 독서가 될듯하다. 하지만 그 끔찍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기에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모두들 반쯤 제정신이 아니지만(뭐가 정상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지만) 그들은 대가를 치러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디타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분노가 들끓는다. 모겐스턴 교수의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내내 증오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분노가 그들에겐 승리예요. -p.231

떠난 이들은 더는 고통스럽지 않아요. -p 232

 

"넌 절대 포기하면 안 돼"라는 말을 남기고 격리 캠프로 사라졌던 프레디. 떨어지는 영혼의 비들을 마주하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납득할 수 없는 프레디의 죽음은 디타를 내내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고 보니 디타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납득할 수 없는 일들뿐이다. 여벌의 신발 대신 책 한 권을 넣어왔던 아빠는 끝내 살아남지 못했고 묵묵한 강인함으로 끝까지 딸을 지켰던 엄마는 되찾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위기의 순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들의 가치는 개인을 위한 것이든 다수를 위한 것이든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아우슈비츠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그곳에서 누군가에겐 하찮을 수도 있었던 책을 지켰던 한 소녀의 이야기는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도 정말 인상 깊었었지만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이야기 말미엔 안네도 잠깐 등장한다.)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 <책도둑>도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이 책도 영화저작권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다. 그녀의 생존 덕에 우리는 그날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디타의 남은 생이 내내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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