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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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p.126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보다 추억을 곱씹는 횟수가 늘면 늙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그리움이든 회환이든 시절이 불러오는 감각은 어딘지 모를 쓸쓸함을 동반하니까.

작가님도 늙으셨나 보다. 이번 단편들은 중년 남자의 일기장을 들춰본 기분이다. 여전히 문체는 덤덤하고 감정의 높낮이도 없다. 아마도 시선의 깊이감 때문이리라.

익숙함 속에 불현듯 솟아나는 낯섬(오스틴)과 오래된 그림 한 점으로 되살아난 의문들(넝쿨식물)과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으로 혼란스러워지는 감정(라인벡)과 기쁨과 희열 뒤로 전류처럼 빠져나가는 불안(숨을 쉬어)과 오해와 비겁함으로 끊어진 관계(실루엣)와 존재를 자각하게 해 주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 (히메나)까지.

각각의 단편들은 소중함을 자각하게 만든다. 사라지는 것들뒤로 더 생생해지는 기억들이 있다. -p.127 는 사실도 덩달아 일깨운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 속에서 이건 영원히 살 거야. -p.67 라며 라임나무를 건네며 희망을 속삭이던 순간이나 누군가를 떠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유쾌한 이미지가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문득 인생의 단순한 즐거움 -p.20 만 잘 찾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안정감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닐까. 단골 식당이란 개념이 사라진 자리에 단골 브랜드가 자리를 잡은 요즘. 그런 것조차 하나 없다는 생각에 하나쯤 만들어도 좋겠다 싶다.

일생 동안 겪게 되는 삶의 변화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고 있는듯하지만 정작 큰일은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시간은 일깨운다.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 -p.14 이라는 말속에 깃든 측은함으로 삶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무심이라기보다는 무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도 하다. 반면 닥칠 변화 앞에 마음을 단단히 먹-p.230어야 된다는 걸 깨닫는 때도 온다. 더 이상 이전의 나로 살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첼로]의 나, 아내의 기약 없는 기다림을 받아들여야 하는 [벌]의 남편, 실종인지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른 채 견뎌야 되는 [사라진 것들]의 그들은 당장 혹은 훗날의 시간에 대한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너 어디로 간 거야? -p.24


늙어간다는 게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나도 최근까지는 젊다는 게 아니라 아직은 그런 척할 수 있다는-p.111 감각이 살아있다고 느끼지만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 시절의 점과 점으로 선을 잇고 살아온 나를 추억하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있을 나를 떠올려본다. 분명한 건 지금보다는 쿰쿰해지고 마르고 쪼그라 -p.28 들어 있겠지만 섬세한, 서정적인, 부드러운-p.21 나는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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