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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열전 -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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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로마제국 개설서이다. 황제의 거처였던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을 프롤로그로 하여, 아우구스투스의 창건부터 로마를 기독교 제국으로 변모시키고 동방으로 권력을 옮기는 콘스탄티누스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에 걸친 역사를 꽤나 밀도있게 서술하고 있다.


각 장(chapter)이 황제가 재위기간 중 겪는 일로 시작하면서, 뒤이어 그의 출생부터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이런 장치 때문에 '왕좌의 게임'을 읽는 것 같다는 추천글이 있는 것 같지만(월스트리트 저널), 왕겜은 약간 오버고 그래도 TV 시리즈 같은 극적 효과인 점은 확실하다. 왕좌의 게임이 제 아무리 권력투쟁의 명작 드라마라고 한들, 현실보다 더 잔인하고 피가 튀길까.


숱한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로마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힘으로 저자는 '실용주의'와 '신인(新人)의 등장'을 꼽고 있다. 미국이 수십년간 세계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다. 미국 학자이니 역시 미국과 로마와 동일시하는 것일까?


다만, '로마 황제 열전'이라는 제목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황제가 시정잡배가 아닌데'열전'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제목 'Ten Caesar'와 다르게, 10명의 황제를 중심으로 다루면서도, 저자는 그 사이사이 재위한 황제들에 대한 서술도 놓치지 않는다. 그들도 황제들도 짧게는 몇줄부터 길게는 몇 페이지에 걸쳐 언급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현제'가 각각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일년에 몇번씩 뒤바뀐 장삼이사 황제의 이름들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로마제국 약사'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아무튼 그런 드라마 못지않게 4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흥미를 잃지 않고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작년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나폴레옹 전쟁사』의 역자가 번역을 맡아서 믿음이 간다.

우리는 제위를 찬탈한 사람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대중의 사고에서 징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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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3 세트 - 전3권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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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술라와 마리우스파 간 내전, 술라의 승리와 기사계급 숙청, 반동적 복고정치 그리고 그의 죽음, 청년 카이사르의 망명, 동방 여행과 참전에 따른 시민관 획득, 레피두스와 브루투스의 어설픈 반란, 히스파니아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전쟁과 이를 통해 성장한 폼페이우스, 스파르타쿠스 전쟁과 크라수스의 부상, 두 사람의 집정관 취임, 그리고 카이사르의 고모 율리아의 죽음 등을 다루고 있다.


스스로를 포르투나의 선택으로 여기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술라와 카이사르는 물론, 폼페이우스, 루쿨루스, 스파르타쿠스 등. 그래서 제목이 'favorates'로 복수형이고, 그들의 행적들이 이 편의 주제이다. 그 많은 인간군상 중 단 한사람만이 '시월의 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작가의 후기에 따르면, 이 시기 동안에는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내용을 넣었다고 한다. 그 중 짧기는 해도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다룬 부분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대중에게 검투사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미드 '스파르타쿠스'가 큰 기여를 했겠지만, 이 책에 따르면 실상은 다소 달랐던 것 같다. 다소 과격한 프로레슬링이나 이종 격투기 수준으로 상대방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에 군중들이 열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 전쟁이 온전히 노예전쟁은 아니었고, 끊임없이 로마에 저항하는 삼니움족이 여기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카이사르가 이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은 순전히 가설이지만, 여기서는 이를 채택했고 미드도 마찬가지이다. 미드는 한 발 더 나아가, 카이사르의 게이설도 활용해 크라수스의 아들에게 강간당하는 장면까지 보여준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에 따르면 스파르타쿠스 전쟁 전후로 이 시기 카이사르에 대한 공식 기록은 거의 없는 듯하다. 여기서 작가의 상상력이 빛난다. 이 전쟁을 계기로 카이사르가 크라수스와 가까워졌고, 그가 크라수스와 (재산으로) 경쟁관계인 폼페이우스와 가교역할을 했다고 설정한다. 정치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에 상대적으로 어두운 두 사람에게 정치적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집정관에 동반 당선되는데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카이사르가 막후 기획한 것으로 여겨지는 '삼두정치'의 싹이다(폼페이우스의 아내가 될 카이사르의 딸은 아직 아동이었지만).


한편, '왕의 DNA'를 강조하는 카이사르의 정신나간 발언들이 작품 곳곳에 터지는데, 마지막 고모 율리아의 장례식에서 정점에 달한다. 작가는 그의 어머니인 아우렐리아를 어머니라기보다는 (잦은 해외 근무로 집에 거의 없었던) 아버지의 역할로 설정했다. 게이설을 지우기 위해서, 매춘부보다는 그 소문을 퍼뜨리는 정적들의 부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라는 아우렐리아의 조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실질적으로 그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것은 율리아 고모였다. 율리아는 영리한 조카를 사랑으로 감싸주었고 키스해 주었다. 카이사르도 고모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고모의 '이름'과 죽음마저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로마 건국의 뿌리인 '이울루스'의 적손. 그녀의 모계는 왕가의 혈통. 고모에 대한 카이사르의 이러한 추도사의 내용은 골즈워디의 책에서도 확인된다.


전반적으로 미드 '왕좌의 게임'을 연상케 하는 『풀잎관』에 비해 긴박감이 떨어져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물론 다른 소설들에 훨씬 재미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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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에이우스가 스스로 붙인 세번째 이름을 술라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불러준 것이다.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그러니까 위대한 폼페이우스였다!  2권 15쪽


"그들은 그의 군단병이나 정규 기병이 아니었습니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두려움에 덜덜 떨며 정찰대장이 말했다. "그들은 유격병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난데없이 나타나고, 매복했다가 습격하고, 죽이고, 다시 사라집니다." 2권 520쪽  

(세르토리우스 전쟁에서 켈트이베리아 적병에 대한 묘사.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 때, 게릴라들의 활약을 연상시킨다)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카이사르가 말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저들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자력으로 왕이 된 사람이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력으로 왕이 된 사람?"

"통치의 운명을 타고난 왕은 백성을 그리 아끼지 않아요." (중략) "하나만큼은 분명합니다, 마르쿠스 크라수스. 저 남자는 그에게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이 거대한 무리에 포함된 모든 이들을 사랑해요!" 3권 239쪽

(스파르타쿠스와 한니발의 공통점이 아닐까. 필립 프리먼에 따르면,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를 떠나 카르타고 귀국하는 것을 망설인 것은 15년 동안이나 그의 동맹이었던 비로마 이탈리아인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의 귀국은 곧 동맹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사람의 마음이 참 웃긴 게, 기소인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다! 기소인은 늘 불쌍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기로 작정한 저속한 인간으로 비쳤고, 반면 그 불쌍한 개인의 삶을 구제해주는 변호인은 인민의 영웅이었다. 이 불쌍한 개인들이 대부분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이며 명백히 유죄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영위할 권리를 위협하는 것은 무조건, 개인에게 마땅히 주어진 권리의 침해로 간주되었다. 3권 334쪽

(변호사는 인권의 수호자에 가깝고 검찰은 개혁대상으로만 여기는 어느 나라의 모습인데, 작가의 나라에서도 그런 것인가?)


카이사르가 말했다. "집정관님은 자신의 부에 대해 입을 여는 사람이고, 이제껏 더 많은 돈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하지만 우리의 폼페이우스는 큰 땅을 소유한 전형적인 시골 귀족이에요. 자신의 부에 대해서는 입을 여는 법이 없죠. 그는 집정관님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요. 그거 하나만큼은 단언할 수 있지요. (중략) 크라수스 집정관님은 로마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아닙니다. 단언컨대 로마 제일의 부자는 폼페이우스예요." 3권 366쪽


"불쌍한 내 아들." 그녀가 속삭였다. "위인의 아들로 산다는 건 끔찍한 일이란다……. 너에겐 아들이 없으면 좋겠구나. 넌 분명 위인이 될 테니까."  3권 406쪽


"난 혼자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킨닐라가 말했다. "그건 모든 운명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더 끔찍한 운명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카이사르가 말했다. "계속 우울한 이야기만 하는 거요." 3권 416쪽 

(카이사르가 떠올린 고통스러운 기억은, 아마도 아들의 비참한 최후 이후에도 몇 년을 더 살다가 사망한 고모 율리아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저는 지금 제가 느끼는 것 이상의 슬픔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슬픔의 비극이죠. 우리는 늘 자신의 슬픔을 타인의 슬픔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니까요. (중략) 여러분께 이미 슬픔의 비극에 대해 한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비극은,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한 번도 깨닫지 못하는 비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권 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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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필립 프리먼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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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매컬로의 『포르투나의 선택』2권까지 읽고 나서 집어든 책이다. 우연이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건 게, 그 2권이 바로 히스파니아에서 세르토리우스 전쟁을 다룬 터라 당시 히스파니아 지도가 어느 정도 눈에 익어 한니발 전쟁에서 히스파니아 내 이동경로와 전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풀잎관』에서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 『포르투나의 선택』1, 2권에서 마리우스파와 술라의 내전을 다룸에 따라 익히게 된 이탈리아 반도 지도는 물론이고.


한니발의 전술은 현대 군사학교에서도 가르칠만큼 창의적이어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와 더불어 그의 유산으로 행정력과 외교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무려 15년 간 적국 이탈리아 반도에 주둔하면서, 끊임없이 동맹을 만들어내고 그의 병사들을 거의 홀로 다스리다시피 했을 것이다. 병사들에게 지급할 주화를 발행하기도 했다는 점이 놀라운데, 이  방면으로 이 책이 소개한 것이 거의 없어 (혹은 기록이 없거나) 다소 아쉽다.


반면, 한니발의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묘사한 점은 매우 돋보인다. 전쟁 심리학에 관한 책을 편찬할 정도로, 그는 인간 심리에 통달했다고 한다. 적장의 마음을 움직여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곳에서 전투를 치러 항상 승리를 이끌었다. 동맹군과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은 물론이다. 한니발 전쟁에 대해 당대에 가장 믿을만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평가 받는 폴리비오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군대를 지휘하는 자라면 누구든, 적장의 드러난 신체가 아니라 그 마음의 약점을 기필코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후대에 전쟁 영웅(혹은 전쟁광)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리고 히틀러) 역시 병사와 대중의 심리를 조종하는 데 달인들이었다. 이 역시 한니발의 유산일 것이다.


(여담. 책 표지의 코끼리 등을 탄 한니발 그림은 한니발이라는 인물을 지극히 축소한 것이다. 알프스를 넘고 롬바르드 평원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아프리카의 전투용 코끼리는 단 한마리만 살아남았다. 저자는 코끼리는 단지 마스코트에 불과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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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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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간신히 정착했다 싶었던 독서 루틴이『풀잎관』과 함께 하는 동안 완전히 깨졌다. 다른 것들은 모두 제껴놓고 4일 간 오직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이다. 첫날 밤 1권을 모두 읽고 잠자리에 누웠다. 둘째날 밤 6백페이지에 육박하는 2권의 절반을 조금 넘겨 잠자리에 누웠고, 셋째 날에는 2권을 모두 마친 뒤 바로 3권에 들어가, 미트리다테스의 야만적인 행위들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풀잎관』은 소아시아 지역의 폰투스 왕 미트리다테스의 부상과 자연인으로 돌아가 동방을 여행하던 마리우스가 미트리다테스와 만나는 것을 프롤로그로 하여, 모든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려던 호민관 드루수스의 개혁과 좌절,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 이런 상황을 기회로 삼은 미트리다테스의 그리스-로마 침공, 그리고 술라와 마리우스의 연쇄 쿠데타를 다루고 있다.


첫 주인공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보수 파트리키 집안이지만 게르만족과의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함께 했던 마르시족 실로와 교류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겨 ‘가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들을 포함해 이탈리아인 전체에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상정하려다 반대파에 암살당한다. 이로 인해 마르시족과 삼니움 족 등이 주축이 되어 전쟁이 발발한다. 에트루리아와 움브리아를 제외한 전 이탈리아 동맹시가 로마의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로마의 이 역사를 배웠어야 했다. 그들이 로마사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카피톨(의회) 습격 폭력사태 뿐인 듯하다.


한편, 아시아의 맹주를 노리던 미트리다테스 왕은 비티니아와 카파도키아를 점령하고, 쫓겨난 양국의 왕들은 원로원 유력자들에게 온갖 금을 뿌려 왕위를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진상조사를 위해 파견된 위원들은 아시아의 금은보화에 대한 욕구가 엄청났으며, 이를 위해 현지 병사들을 모아 폰투스를 침략한다. 역공에 나선 폰투스는 순식간에 소아시아 전체와 그리스까지 점령하고 제국 내 로마인과 그들의 노예 8만명을 학살한다.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원인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아쉬운 지점이다. 동맹시 전쟁은 흡사 미국의 혁명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탈리아의 다른 부족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로마 원로원의 공유지이며 전쟁시 병사들을 제공하는 반면, 로마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라는 것. 반면,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원인은 엘리트들 개개인들의 욕망으로 축소되어 있다. 처음에는 동맹시 전쟁에 따른 국고 탕진으로 전쟁 자금이 부족해 출병을 꺼려했던 술라마저, 종국에는 '동방의 황금과 여자들'을 보상으로 부하들을 독려한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도 '화약고'라 불리는, 제국들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강대국의 충돌에 지정학적 요인을 분석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시아의 왕국들이 보유하고 있던 금은보화와 여자가, 지금의 석유나 희토류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로마인과 아시아인은 잔인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반란자 5천명을 모두 참수형에 처한 '카르니펙스(도살자)'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도, 미트리다테스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작가는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와 그의 병사들 만큼이나 미트리다테스를 비틀린 괴물로 묘사한다. 아마도 아시아 쪽은 사료가 없어, 주로 그리스-로마 측 기록에 근거하여 서술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트리다테스가 마니우스 아퀼리우스의 입에 녹은 금을 부어 죽이는 장면은 미드 '왕좌의 게임'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미트리다테스의 독 면역성 신화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아르센 뤼팽(『813』)에 영향을 준 것처럼.


정부를 둘을 비롯해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학대하는 악마적 본성의 술라.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남부 전장에서 주도하면서 총사령관으로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부하들로부터 '임페라토르'의 칭호와 함께 '풀잎관'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원로원 내 비주류 신진세력인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점차 멀어지면서 파트리키(구귀족) 반동 세력으로 주자로 성장하는데, 집정관으로 선출되고 이어 미트리다테스 전쟁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지만, 마리우스와 술피키우스의 반대로 출병을 준비하던 중 총사령관 권한을 박탈당한다. 이에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몰아내고 다시 권력을 쥐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꿈꾸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술라가 역사상 최초로 로마 시내에 군대를 진입시킨 아름다운 전통은 이어진다. 술라가 그리스 전장으로 간 틈을 타 쫓겨난 마리우스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낸다. 군대를 로마 시내에 진입시킨 것으로 모자라 반대파들을 대량학살한 것이다. 그리고 일곱 번째 집정관에 취임했지만, 한 달을 못 넘기고 사망한다. ‘2주 천하'쯤 될 것이다. 더 아름다운 전통은 다시 술라가 더욱 더 아름다운 전통으로 계승하게 된다. 카이사르 같은 ’관용‘의 변종이 있을 것이지만, 이 전통은 아우구스투스의 10년 간의 피의 숙청의 선례가 될 것이다. 


2부에서는 1부에서 뿌려놓은 ‘점성술사 마르타의 예언’ 등 떡밥들을 대부분 회수했다. 그 중 마지막에 카이사르가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는 예언에 마리우스가 견제구를 넣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① 학살을 거의 마무리한 마리우스가 어린 카이사르를 유피테르 신전의 대신관으로 임명했는데, ② 이것은 유피테르 대신관직은 군인으로 성장하는 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①과 ② 모두 기록이 있는 것들인데 이 둘을 연결하는데 이런 의미를 부여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익히 알고 있는 카이사르 시대 인물들의 어릴적 모습들을 읽어가다 보면, '카이사르 평전'의 프리퀄 같은 느낌도 받는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장터인 속주 총독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던 키케로는 『풀잎관』의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에서 수습군관으로 복무하면서 연신 토한다. '도살자'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키케로의 그런 문약함을 비웃는 동년배의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평생 연인이 되는 세르빌리아는 바람난 친모더러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소녀인데,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자뭇 궁금하다. 그녀의 그런 성격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배다른 동생 카토도 아기일적부터 지지리도 말을 안 들었으니. 


카이사르만은 다소 다르다. 마리우스의 회복을 돕던 총명한 소년이 유부녀들을 끝도 없이 홀리고 다니는 남자가 되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다음 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 점에서만큼은 그분을 능가하고 싶지 않아요. 아니, 흉내조차 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절대 로마의 시가지에 피가 흐르게 하지 않을 거예요.” 3권 368쪽


"내 머리가 온전히 붙어 있었으면 하는데, 저 불쌍한 시월의 말은 그러지를 못하니 말이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중략) 왜 군마를 둘씩 짝지어서 전차에 매어 경주를 시키고 이긴 쪽 전차의 오른편 말을 제물로 바치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누가 말 머리를 드느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까지……!"(1권) - P102

"무엇을 하느냐가 왜 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야! 왜 하느냐는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위안일 뿐,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뿐이고, 나는 무엇을 제대로 해내는 최선의 길은 건전하고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확신한다." (2권) - P168

"그럴 수는 없소. 로마의 그 어떠한 법, 헌법, 전례도 임기가 끝나지 않은 고등 정무관을 기소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주지 않소. 그 어떤 정무관도, 국정 주체도, 민회도 그럴 권한이 없소. 방법을 잘 찾으면 호민관이나 의무에 태만한 재무관을 해임하거나 원로원에서 방출시키거나 심사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지. 하지만 집정관이나 다른 고등 정무관은 절대 임기중에 해임할 수 없소." (3권)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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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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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오노 나나미의 연작 로마역사 에세이는 90년대 출간되어 지금까지 절판된 적 없이 꾸준한 인기를 이어오고 있는 그의 작품은 가장 대중적인 로마역사서인 듯하다. 그 중 작가가 최고로 꼽는 인물이 바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런데, 숱한 말과 자취를 남겼음에도 우리나라에서 그에 대한 책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실정이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 정도가 카이사르의 생애를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작품은 매우 훌륭하고 매력적이긴 해도, 소설이라는 한계상 사실과 허구를 선별하는 수고를 독자가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영국의 역사가인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이 평전은 시오노 나나미의 카이사르관의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출간된 『로마와 페르시아』의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어, 절판되고 내가 사는 지역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도 않은 이 책을 운 좋게도 중고로 구입할 수 있었다.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함은, 저자는 사료가 극히 드문 고대사의 특성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세부 사건들을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데 반해 골즈워디는 가능성, 또는 추측으로 메우는데 이 점에서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물론,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의 첫 남자가 '거의 확실하다'라는 의견을 낸 부분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2천년 후의 역사가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가 겨우 100만명 정도의 갈리아인과 로마인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카이사르의 관용'이라는 말의 주인공이 된 점, 간질환자였다는 점, 어느 나라의 왕과 남색을 했다는 소문이 있고 이를 극히 싫어했다는 점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어느나라의 모 정치인 저리가라 할 만치 현금을 뿌리고 다닌 포퓰리스트(포퓰라리스)면서, 대중 선동의 달인이었다. 루비콘을 건널 때 그가 했다는 말의 여러가지 버전과, 살해당할 때 했다는 말의 여러 버전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장면들을 다시 소환한 것도 수확이라 할 만하다. 스파르타쿠스 반란은 그라쿠스가 진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태만을 질책하기 위해 '10분의 1형'을 명령했다거나, 폼페이우스가 마지막에 떡고물을 줏어먹었다는 점이 그렇다. 카이사르와 관련해서는, 기록에는 없으나 이 전쟁에 '카이사르가 참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는데, 시리즈에서 카이사르가 반란군 사이에 밀정으로 잠입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남색을 했다는 소문은, 드라마에서 크라수스의 아들에게 강간당하는 장면과 묘하게 연결된다.


한편으로, 나폴레옹이 가장 존경한 인물로서,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생활할 때 그에 대한 평전도 남겼다고 전해진다. 둘이 닮은 점이 상당하다. 자투리 귀족에서 출발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그를 위해 100만명도 넘는 사람을 전쟁에서 죽음으로 몰았으며, 동방 정복을 꿈꾸었다.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 데 달인이었고, 자신의 군대로부터 충성을 이끌어냈으며,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해 필경사를 항시 옆에 두었다. 숱한 여자도 항시 옆에 두었지만 말이다.


그가 경쟁자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독재관으로 부임함으로써 로마 공화정의 몰락과 제정의 시작을 앞당겼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저자는 당시의 로마 공화정도 망조가 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집정관 등의 부정선거가 만연했다는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필요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 지점에서 또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유투브도 엄청나게 많이 봤지만 이런 로마 공화정 말기의 상황과 동일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어이없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적어도, 카이사르는 술독에 빠져 살면서 판단을 그르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적들을 용서하는 '관용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 대통령은 카이사르보다는 그의 측근 중 하나인 안토니우스와 오히려 흡사하다. 음주를 무척이나 즐겼고 용서를 몰랐는데, 마지막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와 비교되면서 많이 안 팔려서 절판된 것 같긴 한데, '책과함께' 같은 대중 역사서 출판사를 통해 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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