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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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간신히 정착했다 싶었던 독서 루틴이『풀잎관』과 함께 하는 동안 완전히 깨졌다. 다른 것들은 모두 제껴놓고 4일 간 오직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이다. 첫날 밤 1권을 모두 읽고 잠자리에 누웠다. 둘째날 밤 6백페이지에 육박하는 2권의 절반을 조금 넘겨 잠자리에 누웠고, 셋째 날에는 2권을 모두 마친 뒤 바로 3권에 들어가, 미트리다테스의 야만적인 행위들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풀잎관』은 소아시아 지역의 폰투스 왕 미트리다테스의 부상과 자연인으로 돌아가 동방을 여행하던 마리우스가 미트리다테스와 만나는 것을 프롤로그로 하여, 모든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려던 호민관 드루수스의 개혁과 좌절,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 이런 상황을 기회로 삼은 미트리다테스의 그리스-로마 침공, 그리고 술라와 마리우스의 연쇄 쿠데타를 다루고 있다.


첫 주인공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보수 파트리키 집안이지만 게르만족과의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함께 했던 마르시족 실로와 교류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겨 ‘가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들을 포함해 이탈리아인 전체에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상정하려다 반대파에 암살당한다. 이로 인해 마르시족과 삼니움 족 등이 주축이 되어 전쟁이 발발한다. 에트루리아와 움브리아를 제외한 전 이탈리아 동맹시가 로마의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로마의 이 역사를 배웠어야 했다. 그들이 로마사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카피톨(의회) 습격 폭력사태 뿐인 듯하다.


한편, 아시아의 맹주를 노리던 미트리다테스 왕은 비티니아와 카파도키아를 점령하고, 쫓겨난 양국의 왕들은 원로원 유력자들에게 온갖 금을 뿌려 왕위를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진상조사를 위해 파견된 위원들은 아시아의 금은보화에 대한 욕구가 엄청났으며, 이를 위해 현지 병사들을 모아 폰투스를 침략한다. 역공에 나선 폰투스는 순식간에 소아시아 전체와 그리스까지 점령하고 제국 내 로마인과 그들의 노예 8만명을 학살한다.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원인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아쉬운 지점이다. 동맹시 전쟁은 흡사 미국의 혁명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탈리아의 다른 부족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로마 원로원의 공유지이며 전쟁시 병사들을 제공하는 반면, 로마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라는 것. 반면,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원인은 엘리트들 개개인들의 욕망으로 축소되어 있다. 처음에는 동맹시 전쟁에 따른 국고 탕진으로 전쟁 자금이 부족해 출병을 꺼려했던 술라마저, 종국에는 '동방의 황금과 여자들'을 보상으로 부하들을 독려한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도 '화약고'라 불리는, 제국들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강대국의 충돌에 지정학적 요인을 분석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시아의 왕국들이 보유하고 있던 금은보화와 여자가, 지금의 석유나 희토류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로마인과 아시아인은 잔인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반란자 5천명을 모두 참수형에 처한 '카르니펙스(도살자)'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도, 미트리다테스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작가는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와 그의 병사들 만큼이나 미트리다테스를 비틀린 괴물로 묘사한다. 아마도 아시아 쪽은 사료가 없어, 주로 그리스-로마 측 기록에 근거하여 서술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트리다테스가 마니우스 아퀼리우스의 입에 녹은 금을 부어 죽이는 장면은 미드 '왕좌의 게임'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미트리다테스의 독 면역성 신화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아르센 뤼팽(『813』)에 영향을 준 것처럼.


정부를 둘을 비롯해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학대하는 악마적 본성의 술라.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남부 전장에서 주도하면서 총사령관으로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부하들로부터 '임페라토르'의 칭호와 함께 '풀잎관'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원로원 내 비주류 신진세력인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점차 멀어지면서 파트리키(구귀족) 반동 세력으로 주자로 성장하는데, 집정관으로 선출되고 이어 미트리다테스 전쟁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지만, 마리우스와 술피키우스의 반대로 출병을 준비하던 중 총사령관 권한을 박탈당한다. 이에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몰아내고 다시 권력을 쥐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꿈꾸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술라가 역사상 최초로 로마 시내에 군대를 진입시킨 아름다운 전통은 이어진다. 술라가 그리스 전장으로 간 틈을 타 쫓겨난 마리우스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낸다. 군대를 로마 시내에 진입시킨 것으로 모자라 반대파들을 대량학살한 것이다. 그리고 일곱 번째 집정관에 취임했지만, 한 달을 못 넘기고 사망한다. ‘2주 천하'쯤 될 것이다. 더 아름다운 전통은 다시 술라가 더욱 더 아름다운 전통으로 계승하게 된다. 카이사르 같은 ’관용‘의 변종이 있을 것이지만, 이 전통은 아우구스투스의 10년 간의 피의 숙청의 선례가 될 것이다. 


2부에서는 1부에서 뿌려놓은 ‘점성술사 마르타의 예언’ 등 떡밥들을 대부분 회수했다. 그 중 마지막에 카이사르가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는 예언에 마리우스가 견제구를 넣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① 학살을 거의 마무리한 마리우스가 어린 카이사르를 유피테르 신전의 대신관으로 임명했는데, ② 이것은 유피테르 대신관직은 군인으로 성장하는 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①과 ② 모두 기록이 있는 것들인데 이 둘을 연결하는데 이런 의미를 부여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익히 알고 있는 카이사르 시대 인물들의 어릴적 모습들을 읽어가다 보면, '카이사르 평전'의 프리퀄 같은 느낌도 받는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장터인 속주 총독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던 키케로는 『풀잎관』의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에서 수습군관으로 복무하면서 연신 토한다. '도살자'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키케로의 그런 문약함을 비웃는 동년배의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평생 연인이 되는 세르빌리아는 바람난 친모더러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소녀인데,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자뭇 궁금하다. 그녀의 그런 성격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배다른 동생 카토도 아기일적부터 지지리도 말을 안 들었으니. 


카이사르만은 다소 다르다. 마리우스의 회복을 돕던 총명한 소년이 유부녀들을 끝도 없이 홀리고 다니는 남자가 되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다음 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 점에서만큼은 그분을 능가하고 싶지 않아요. 아니, 흉내조차 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절대 로마의 시가지에 피가 흐르게 하지 않을 거예요.” 3권 368쪽


"내 머리가 온전히 붙어 있었으면 하는데, 저 불쌍한 시월의 말은 그러지를 못하니 말이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중략) 왜 군마를 둘씩 짝지어서 전차에 매어 경주를 시키고 이긴 쪽 전차의 오른편 말을 제물로 바치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누가 말 머리를 드느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까지……!"(1권) - P102

"무엇을 하느냐가 왜 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야! 왜 하느냐는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위안일 뿐,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뿐이고, 나는 무엇을 제대로 해내는 최선의 길은 건전하고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확신한다." (2권) - P168

"그럴 수는 없소. 로마의 그 어떠한 법, 헌법, 전례도 임기가 끝나지 않은 고등 정무관을 기소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주지 않소. 그 어떤 정무관도, 국정 주체도, 민회도 그럴 권한이 없소. 방법을 잘 찾으면 호민관이나 의무에 태만한 재무관을 해임하거나 원로원에서 방출시키거나 심사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지. 하지만 집정관이나 다른 고등 정무관은 절대 임기중에 해임할 수 없소." (3권)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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