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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31

오늘의정진: 香象奔波失却威 (향상분파실각위향기로운 코끼리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게 되나


- 100일 정진, 37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여섯번 째 구절은 

<獅子吼無畏說 百獸聞之皆腦裂 /사자후무외설 백수문지개뇌열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온갖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였다

자각한 자의 사자후와도 같은 일갈에 듣는 이들의 고정관념은 모두 흩어져 버린다.

너무나도 당당하여 거칠 것이 없도다

 

오늘은 서른 일곱번 째 구절

香象奔波失却威 (향기 향코끼리 상달릴 분물결 파잃을 실물리칠 각위엄 위 )

향상분파실각위향기로운 코끼리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게 되나

天龍寂聽生欣悅 (하늘 천용 용고요할 적들을 청날 생기쁠 흔기쁠 열)

천룡적청생흔열 / 천룡은 고요히 들으며 희열을 내는도다

 

붓다가 고타마 싯다르타로 태어나기전 어머니 마야 부인의 꿈에 흰 코끼리가 겨드랑이로 들어왔다는 태몽이 전해진다

그래서 코끼리는 불교에서 신성한 의미를 지녔다.

또한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코끼리 형상의 가네샤를 신으로 칭하는데 지혜와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네샤는 힌두교 3대신중 하나인 파괴의 신 시바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코끼리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압도적인 덩치와 힘그리고 지능까지 똑똑해서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성체 코끼리를 무력으로 이길 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코뿔소나 하마악어 같은 동물들도 어쩌다 난동을 피우는 코끼리에게는 짓밟힘을 당할 뿐이다

그래서 코끼리는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코끼리라는 한자어 ‘상()’ 이라는 글자는 코끼리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이다.

그런데 예전 중국에서는 실제로 코끼리 모습을 보고 글자를 본 뜬게 아니라 코끼리의 뼈를 보고 코끼리의 모습을 생각으로 상상해서 만든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상상(想象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향상(香象)은 이러한 코끼리의 이미지에 향기로운 코끼리라는 상상을 더 추가했다

그러한 코끼리가 분주하게 난동을 피운다는 것이다

위엄을 갖추어야 할 코끼리가 난동을 피울 정도면 얼마나 소란스럽다는 뜻인가?

밟혀 죽을 수도 있고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박살이 나는 것이다

반면에 천룡은 고요히 들으며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향상도 천룡도 모두 상상속의 동물이다

향상은 위엄을 잃고 소란스럽고천룡은 고요하며 희열을 느낀다.

둘이 서로 대비가 된다

우리의 마음은 때때로 다스리지 못하면 코끼리가 난동을 피우는 것과 같이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그렇게 폭주하게 되면 그냥 모든 걸 아사리판으로  만들기도 한다.

마음도 그와 같다

호수 속 깊은 곳에 사는 이무기가 1000년을 수행하여 용으로 승천하게 되듯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천용은 그렇게 존재한다.

수행은 코끼리의 마음을 천용의 마음으로 변화 시켜야 되는 것이다.

마음은 때에 따라 향상이 되고 천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나의 한 생각에 향상이 되고 천용이 될 수도 있으니 마음을 잘 내야 한다.

마음을 잘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요생활이다

 

<일일 소견>

본래 신성한 마음이지만 때때로 폭주하는 내 마음.

고요히 다스려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듯 때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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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30

오늘의정진: 獅子吼無畏說 (사자후무외설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 100일 정진, 36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다섯번 째 구절은 

<非但我今獨遠了河沙諸佛體皆同 비단아금독원료하사제불체개동

단지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뿐 아니라모래 수 같이 많은 일체 부처님의 본체는 모두 같도다.> 였다


세상에 혼자서 깨닫는 것은 없다

사실 나는 나 혼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내 몸안에는 무수히 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포들이 몸의 각 기관을 만들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깨달음도 나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수행자를 깨닫기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스승이 되어 이끌어 주었던가

보이는 인연들과 보이지 않는 인연들이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깨달음에 이를 수가 있었을까

그 모든 인연들이 스승이요불보살인 것이다.

깨달음이란 혼자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고함께 마음 내고함께 움직이고한 몸이 되어함께 먹는 것임을 증득하는 것이다


오늘은 서른 여섯번 째 구절

獅子吼無畏說 (사자 사아들 자울부짖을 후없을 무두려워할 외말씀 설 )

사자후무외설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百獸聞之皆腦裂 (일백 백짐승 수들을 문갈 지모두 개뇌 뇌찢을 열)

백수문지개뇌열 / 온갖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백수의 왕 사자는 한번 울음에 모든 짐승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사자후는 사자가 크게 내짖는 포효(咆哮)이다.

사자가 아닌 다른 짐승들은 그러한 소리를 낼 수가 없다.

한 명의 깨달은 사람이 전하는 설법은 뭇 중생들을 놀라게 하고 그들이 가졌던 고정관념들을 전부 찢어 버린다.

일명경세(鸣惊), 한 번의 울음에 세상을 놀라게 한.

깨달음의 설법은 그와 같다.


법화경(法华经)은 부처님께서 설한 설법중에  열반에 드시기 얼마전에 영산회상에서 설한 법문이다

그 법회에서 부처님은 대중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설해 왔던 가르침은 전부 방편이었다

진실로 성불하기 위해서는  오직 대승(大乘)을 삼아 반드시 하나의 불승(一佛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2승이나 3승은 없노라.  

오직 1승만 있고 2, 3승은 없으니 소승(小乘)으로는 부처를 이룰 수없다.”

이 말에 당시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던 수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 설법을 믿지 않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때 부처는 일불승에 의한 깨달음 즉 모든 중생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고또한 그 법회에 남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깨달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수기(受记)를 주신다.

또한 본래 부처는 현생에서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 생에서 부터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선언을 하신다.

이러한 법화경의 가르침 믿음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 당시 법문의 자리에서 이탈했던  것이다.

누구나가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선언하신 것은 사자가 뭇 짐승들에게 사자후를 내지른 것과 같다

내가 본래 사자새끼 였음을 믿는가?

아니면 사자의 울음소리에 겁을 먹는 머리에 뿔 달린 양임을 믿는가?

깨달음엔 결국 믿음의 문제만 남는게 아닌가 싶다.

 

<일일 소견>

일명경인(一鸣惊人이란 말은 사기(史记)에 나온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위왕은 국사를 내팽개치고 날마다 주연을 벌이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그렇게 나라를 돌보지 않아 나라 꼴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제 곧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다들 아우성이었지만 감히 왕에게 조언을 하려하지는 않았다.

보다 못해 순우곤이란 자가 위왕 앞에 나아가 한마디 재치 있는 말로 간언했다.

이 나라에 큰 새가 한마리 있습니다. 3년 동안 날지도 않고울지도 않습니다무슨 새인지 아시는지요? “ 이에 위왕은 답했다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지만한번에 하늘로 날고

울지 않으면 그뿐이지만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 라고 했다.


그후 위왕은 방탕했던 생활을 접고 바로 제나라를 훌륭하게 키웠다고 한다.

일명경인(一鸣惊人)을 일명경세(一鸣惊世)로 바꾸어야 할 때다

한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해야 한다그것이 바로 사자후(狮子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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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29

오늘의정진: 非但我今獨遠了(비단아금독원료단지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뿐 아니라 


- 100일 정진, 35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네번째 구절은 

<宗亦通說亦通定慧圓明不滯空 /종역통설역통정혜원명불체공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니선정과 지혜가 둥글고 밝아 공에 막히지 않는다> 였다

도통(道通한 경지의 노래이다.

무수히 많은 깨달음의 길도무수히 많은 설법도 모두 하나로 통했으니 선정의 지혜가 충만하고 텅 빈 가운데 원만히 있도다.  

그저 신심만 낼 뿐이다.

 

오늘은 서른 다섯번째 구절

非但我今獨遠了 (아닐 비다만 단나 아현재 금홀로 독멀 원마칠 료 )

비단아금독원료단지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뿐 아니라 

河沙諸佛體皆同 (강 하모래 사모두 제부처 불몸 체모두 개같을 동)

하사제불체개동 / 모래 수 같이 많은 일체 부처님의 본체는 모두 같도다.

 

영가스님은 말한다.

이제 자신이 혼자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래 수 같은 많은 부처님이 사실은 하나 였더라.

부처님이 계시는 국토를 불국토라고 한다.

불국토 마다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수가 강가에 있는 모래 수 만큼이나 많다고 한다.

갠지스강 모래 알 만큼이나 많은 불국토가 우주에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불국토에는 모두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큰 사찰에 가면 대웅전에 부처님 상이 모셔져 있다.

부처님 상 뒤에 수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을 그려놓은 탱화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그려진 불보살의 형상은 수 없이 존재하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상징적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그런데 영가 스님은 이렇게도 많은 부처님이 사실은 하나의 본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존재 형태는 삼신(三身)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법신불(法身佛), 공덕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보신불(报身佛) 그리고 현세에 실체로 나타나는 것이 응신불(应身佛)이라고 한다

법신불을 대표하는 부처는 비로자나불 이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처님들과 보살님들그리고 심지어 중생들까지 전부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의 빛을 두루 비추는 존재라는 뜻으로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비로자나불의 화신인 것이다.

내가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는데 알고보니 나 역시 본래 비로자나불 이였더라는 뜻이 된다.

내가 본래 부처 였음을 아는 것그것이 어쩌면 수행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자성본래불(自性本来佛)

자성본래불(自性本来佛)

나의 성품이 본래 부처이어라

내가 내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남도 나처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본래 부처였음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일 소견>

새해가 밝았다

비로자나부처님의 밝은 빛이 온 누리에 미치지 못함이 없다.

세상 모든 존재가 진리의 법신임을 알기를… 

진리 아님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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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28

오늘의정진: 宗亦通說亦通(종역통설역통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니


- 100일 정진, 34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세번째 구절은 

<不因訕謗起怨親何表無生慈忍力/불인산방기원친하표무생자인력

비방과 힐난에도 원망과 친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어찌 태어남이 없는 자비와 인욕의 힘이 나타나리오?> 였다


인욕의 힘은 자비심의 바탕이 된다

그리고 자비의 마음을 지니게 되면 지혜는 저절로 나오게 된다

지혜와 자비는 둘이 아니다.

자비와 지혜의 완성이 바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이다.

반야심경에 지혜의 상징인 사리자가 등장하고자비의 상징인 관세음 보살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건너야 할 길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증도가는 선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노래이지만 대승보살의 길이기도 하다.


오늘은 서른 네번째 구절

宗亦通說亦通 (마루 종또 역통할 통말씀 설또 역통할 통)

종역통설역통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니

定慧圓明不滯空(정할 정지혜 혜둥글 원밝을 명아닐 불막힐 체빌 공)

정혜원명불체공 / 선정과 지혜가 둥글고 밝아 공에 막히지 않는다

 

불도를 이루는 방법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의 문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한 가운데 어느 한가지 길만이 맞다고 할 수 없다.

참선을 통해서염불을 통해서절을 통해서사경을 통해서 마음을 닦는 법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서도 개인의 상황과 인연에 따라 수행은 달라진다.

종취는 그 깨달음에 도달하는 다양한 길 가운데 선택한 하나의 길이라 볼 수 있다.

설법 또한 그러하다수 많은 선지식들께서 말씀하신 설법도 무척 다양하다.

그런데 그러한 종취와 설법이 모두 통(한다고 했다.

모두가 자신의 길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서로 다툼이 없이 통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원만(圆满한 상태이다.

선정과 지혜가 둥글고 밝게 즉 원만하게 어울려져 있다.  

()은 텅 빈 충만이다따라서 선정과 지혜는 공 속에서 막힘이 없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선의 화두 중에 만법귀일일귀하처(万法归一,一归何处)’ 가 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 가는데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 가는가라는 뜻이다.

종취도 설법도 서로 통하고선정과 지혜도 막힘이 없이 통한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그렇다면 그 돌아가는 하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하나로 돌아가게 하고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참구해 볼만 하다.


<일일 소견>

종취도 설법도 통하고선정과 지혜 원만 하다.

공은 막힘이 없으니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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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27

오늘의정진: 不因訕謗起怨親(불인산방기원친비방과 힐난에도 원망과 친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 100일 정진, 33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서른 두번째 구절은 

<觀惡言是功德此則成吾善知識/관악언시공덕차칙성오선지식

나쁜 말을 관함이 바로 공덕이 있으니 , 이 법칙이 나에게는 선지식을 되었다> 였다


선지식은 나를 이끌어 주는 스승을 일컫는다.

스승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기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 하다.

부처님 역시도 과거생에 무수히 많은 전생을 거쳐 왔으며 그 전생에서 수 많은 스승이 계셨다

그만큼 선지식은 수행자가 올바른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선지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착한 것이 아니다

수행자에게 반면교사(反面教师또한 선지식이 되는 것이다.

선과 악은 본래 둘이 아니다

 

오늘은 서른 세번째 구절

不因訕謗起怨親 (아닐 불원인 인헐뜯을 산헐뜯을 방일 기원망 원친할 친)

불인산방기원친비방과 힐난에도 원망과 친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何表無生慈忍力 (어찌 하겉 표없을 무날 생자비 자참을 인힘 력)

하표무생자인력 / 어찌 태어남이 없는 자비와 인욕의 힘이 나타나리오?

 

다른 사람들의 비방과 칭찬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여여한 것은 이미 부동한 본래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이것은 곧 태어남과 죽음이 없으며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며더하고 덜함도 없는 본래무일물한 자리이다.

자비심은 한 없이 중생에게 연민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한다.

보살의 경지에 이르면 중생들을 향한 자비심은 더할 나위 없이 솟는 것이다.

그러나 자비심의 바탕은 인욕이라고 한다.

인욕은 참는 것이다

자신에게 욕이 되는 것을 참으면서도 절대로 남을 원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욕은 억지로 참아서 할 수있는 성질이 아니다

저절로 그러한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자비심은 결국 지혜를 낳게 되는데 그 지혜를 바로 반야바라밀이라고 부른다

 

<일일 소견>

舍利子,是诸法空相不生不,不垢不,不增不

(사리자시제법공상불생불멸 불구부정부증불감)

사리자여모든 법은 공하여 상이 없나니나고 죽음도 없고더러웁고 깨끗함도 없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반야심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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