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관노트
2025년5월22일 / 내 나이50에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를 시작했다.
내 나이 쉰이 되어 골프를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평소에 골프라는 운동에 대해 안 좋은 편견이 있었기에, 나는 절대로 골프를 배울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었다.
사치스럽고,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 운동.
특권 의식에 쩔은, 그렇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
그게 내가 골프를 기피했던 이유였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졌던 내가 어제까지 8일째 연습장에 가서 하루에 공을 100개씩 치고 있다.
사람이 변하면 곧 죽는다고 하던데… 내가 죽을 날이 가까워진 것일까?
사정이 생겼다.
골프를 해야만 하는 사정이 생긴 것이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아르바이트 제안을 하나 받았다.
모 회사의 대표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IT 개발 관련 업무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역할을 맡아야 하고, 그 회사의 대표라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대표직이라는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대표에 걸맞는 ‘조건’을 갖추어야 했다.
그게 바로 골프였다.
또한 IT 관련 업무도 함께 공부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다.
살다 살다 이런 아르바이트 제안은 처음이었고, 안 할 수도 없었다.
황당한 상황이지만,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오지 않을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제안.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골프와 IT라는 새로운 영역에 처음부터 다시 입문한다는 자세로,
얼마나 오래 갈진 모르지만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독서 활동을 하며 쌓아왔던 내공이 있다면, 이 새로운 도전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골프 관노트> 라는 제목으로 매일, 혹은 틈틈이
골프를 하며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형식과 내용은 그때그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100일 정진처럼 쓰다 보면, 어느 정도 형식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오늘은, 첫째 날부터 여덟째 날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연습장 첫째 날 (2025.5.7)
대표직을 제안한 친구(나이가 같아 친구로 지내기로 한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공 50개를 쳤다.
친구가 “골프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다리, 허리, 손을 하나하나 교정해 주었다.
골프 용어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따라 했다.
손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팠다.
아니, 아프다기보다는… 처음 해보는 자세라 몸이 불편해했다.
그리고 ‘똑딱이’라는 걸 반복했다.
가볍게 클럽을 들고 툭 치는 것.
보기에는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면 제대로 맞지 않았다.
어쨌든 50개는 쳤다.
둘째 날 (2025.5.13)
이런 운동을 왜 해야 하냐고, 친구에게 투덜거렸다.
“굳이 이런 운동을 해서 사람들 모임에 나가야 하냐고, 왜 사업을 이렇게 해야 하냐”고 따졌다. 친구는 이 업계는 다 골프를 쳐야 한다고 했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없단다. 도대체 언제부터 누가 이런 관행을 만들었는지 짜증이 났지만,
그렇다니 또 어쩔 수 없이 연습장에 갔다.
내가 들고 있는 골프채를 ‘7번 아이언’이라고 불렀다.
골프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클럽이란다.
여기서 궁금증.
왜 골프채를 ‘클럽(CLUB)’이라고 부를까?
‘클럽’이 원래는 ‘몽둥이’란 뜻이란다.
비슷한 운동인 배드민턴이나 테니스는 ‘라켓’, 야구는 ‘배트’를 쓰지만,
골프는 그냥 ‘몽둥이’,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친구가 알려준 자세대로 하니 공이 맞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멀리 날아갔다.
“뭐야, 이게 되네?”
친구는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돼”라며,
“집에서 벽에 머리를 박고 스윙 연습을 하라”고 했다.
스윙할 때 머리가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란다.
뭐 벌 서는 것도 아니고 벽에다 머리를 박으라니…
셋째 날 (2025.5.14)
친구가 알려준 대로 스윙을 했다.
제대로 맞는 경우도 있었고, 삑사리도 났다.
자세가 불완전해서 그렇단다. 당연한 말이지.
집에 와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넷째 날 (2025.5.16)
혼자 연습장에 갔다. 100개를 쳤다.
그 중 절반은 전부 옆으로 날아갔다. 이걸 ‘슬라이스’라고 부른다.
초보들이 가장 많이 겪는 문제라 한다.
나는 분명히 정면을 향해 쳤는데, 공은 영락없이 오른쪽으로 휘어 날아갔다.
아무리 자세를 다시 잡고 쳐봐도 마찬가지.
결국 왼 손 중지 아래엔 물집이 생겼다. 시큰거리며 아프다.
다섯째~여덟째 날 (2025.5.18~5.21)
혼자 매일 100개씩 치기 시작했다.
슬라이스 문제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았다.
그립을 잡는 법부터 어드레스(자세 잡기)를 하나하나 분석했다.
물론 레슨을 받으면 쉽게 교정될 수도 있겠지만,
골프는 코치마다 말이 다르다. 그래서 내 지론은 이거다: 일단 독학.
유튜브를 보든, 친구의 조언을 듣든, 남들이 하는 모습을 관찰하든, 나만의 문제를 내가 파악하는 것부터.
그리고 목표를 세웠다.
5년 안에 싱글 골퍼 되기.
챗GPT에게 물어봤다.
5년 안에 싱글로 가기 위한 준비 비용이 얼마나 들까?
대략 7,800만 원. 연 1,000만 원 이상이 든단다.
갑자기 골프에 발을 들인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이번 한 달만 해보자.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자, “손에 힘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스윙이 어렵다면 하프스윙으로. 슬라이스가 계속 나면, 그립과 어드레스를 다시 조정해보기.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는 맛이 조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힘을 빼고, 클럽 헤드의 무게로 쳐보는 건
뭔가 작은 깨달음 같았다.
오늘은 쉬기로 했다.
그동안 몸에 무리가 있었는지 손바닥과 손가락이 아프다.
팔꿈치도 얼얼하다. 엘보는 아니지만.
쉰 살의 신체 나이, 무시하면 안 된다.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