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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215

오늘의정진: 旣能解此如意珠 기능해차여의주 /이미 이 여의주를 알게 되었으니


- 100일 정진, 52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쉰 한번 째 구절은 

<但得本莫愁末 단득본막수말 /단지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如淨瑠璃含寶月 여정유리함보월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달을 머금음과 같도다> 였다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본래 나고 죽음이 없음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본래 전부 갖추어 졌음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본래 동요함이 없음을 어찌 알았으랴?

자성이 능히 만법을 만들어 냄을 어찌 알았으랴?>

이는 육조혜능선사(六祖慧能禅师 638713) 의 오도송(悟道颂)으로 전해진다.

즉 혜능선사의 깨달음을 표현한 노래인 것이다.

밤 하늘에 뜬 달이 보름달이 아니라고 해도 그 본래 달이 둥근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우리의 자성(自性)은  또한 그러하니 오직 근본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쉰 두번 째 구절

旣能解此如意珠 (이미 기할 능풀 해이를 차같을 여뜻 의구슬 주)

기능해차여의주 /이미 이 여의주를 알게 되었으니

自利利他終不竭 (스스로 자이로울 리이로울 리다를 타끝낼 종아닐 불다할 갈   )

자리리타종불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다함이 없도다.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众生).

위로는 보리즉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이다.

불교 수행의 목적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중생 구제이다.

중생이 있어야 부처가 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

그러니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다

따라서 깨달음과 중생 구제도 둘이 아니게 된다

이는 깨달음을 얻으신 역대 선지식들께서 하신 말씀이다.

유마거사 또한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고 했었다.

부처는 위대하고중생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듯 깨달음도 중생심에서 피어난다.

어떻게 해야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이롭게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야 말로 깨달음에 이른 마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살의 마음이야 말로 자신을 구제하고 세상을 구하는 마음이다.

깨달음은 그 속에 이미 있다

 

<일일 소견>

깨달음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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