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 미국은 왜 실패할 전쟁에 빠져들었는가
제프리 와우로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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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면 미국과의 혈맹을 강조하는 우리로서는 섭섭하지만 오늘날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아예 잊혀졌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극동의 오지에서 벌어진 지루하고 재미없는 싸움으로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할리우드에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교적 최근인 2022년에 장진호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디보션(Devotion)>라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진호 전투보다 미 공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였던 제시 브라운(Jesse LeRoy Brown) 소위에게 포커스를 맞춘 것이라. 게다가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닐 뿐더러 평이한 내용 탓에 흥행에서 완전 폭망했다고. 솔직히 내가 봐도 따분하더라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없는 장군 중 한 사람인 맥아더와 엮인 탓에 논란이 일어날 게 뻔한 인천상륙작전은 그렇다쳐도 미 해병대가 10배의 중공군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장진호 전투는 충분히 영화화할만 것인데 말이다. 할리우드의 이러한 홀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액션 영화들을 끝없이 만드는 대조적이다. 갈수록 살기 팍팍한 미국인들로서는 자기네 리즈 시절이다보니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모양. "그때가 좋았지"

심지어 <트랜스포머5>에서는 미군이 외계인 로봇들과 편먹고 처칠 본가이자 나치 소굴이 된 블레넘 궁전을 터는 장면이 나오기도. 그러고보니 캡틴 아메리카와 울버린, 원더우먼도 2차대전 참전용사라던가. 이런 미친 괴물들과 맞짱뜬 독일군이 더 대단하달지.


제2차 세계대전이 두고두고 새겨야 할 영광의 순간이고 한국전쟁이 존재감 없는 무승부전이었다면, 베트남전쟁은 미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맛 본 악몽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싸움에 졌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힘에 도취된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를 괴롭힌 부도덕하고 명분없는 전쟁이었고 미국 역사의 오점이었다. 민간인들을 상대로 과거 그들의 아버지들이 맞서 싸웠던 나치나 일본군과 다를바 없는 전쟁범죄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었으며 수많은 참전 군인들이 PTSD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를 비롯하여 미국을 믿고 자국 군대를 보냈던 동맹국들 역시 지금까지도 파병의 정당성을 놓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베트남전쟁 초반 아이드랑 전투에서 활약한 미 제1기병사단의 대대장 할 무어 중령을 다룬 <위워 솔저스>에서는 멜 깁슨이 특유의 마초 분위기와 프로파간다적인 국뽕을 한껏 보여주지만 약 빨기 전의 찰리 신이 주연을 맡은 <플래툰>이나 <지옥의 묵시록>, <굿모닝 베트남> 등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대개 암울하고 부정적이다. 실버스타 스탤론의 <람보> 또한 시리즈를 더할수록 황당무계한 인간병기의 B급 액션물로 변질하지만 주지사님의 <코만도>와는 달리 원래 이 영화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재향군인의 PTSD와 부적응을 다룬 반전 영화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에게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베트남전쟁의 기억이라는 얘기이다.

엑스맨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통하는 <엑스맨의 탄생>에서는 울버린 형제가 불사신으로 살면서 남북전쟁부터 베트남전쟁까지 미국의 모든 전쟁에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는 민간인 학살과 강간, 상관 살해까지. 이 양반들 6.25에도 참전하지 않았을지.


이후의 미국에게 베트남전의 악몽은 끊임없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후임자들은 덩치크고 비효율적이었던 미군을 뿌리부터 바꾸었고 억지로 끌려온 오합지졸 신병 대신 잘 훈련된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미군은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일방적으로 아작내어 베트남전쟁의 트라우마를 털어냈다. 부시는 이참에 후세인 정권을 끝장내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쫓아내는 선에서 만족하여 또다시 수렁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반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정치는 배웠으되 절제를 배우지 못한 아들 부시는 911테러를 빌미로 아프간과 이라크에 발을 들였고 결과는 제2의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2021년 8월 15일 카불 함락은 반 세기 전 사이공의 데자뷰였다. 전직 미국 버클리 대학교수이자 기업가 출신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이 카불로 진격하자 과거 남베트남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버리고 가족과 재산만 챙겨서 잽싸게 달아났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또 한번 자신의 힘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위신만 실추한 채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책임을 통감하는 대신 궤변과 핑계를 늘어놓으며 자신들을 합리화한 것도 50년 전과 똑같았다. 몇달 전에는 강박적인 관심 종자인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벌집을 건드려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수렁에 빠뜨렸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마따나 되풀이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랄까.

역사 인문 전문 출판사인 책과 함께에서 지난 5월에 나온 신작도서인 <베트남전쟁>은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베트남전쟁 통사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주요 전투의 나열 만이 아니라 700여 페이지에 걸쳐 미국이 베트남에서 장장 10년에 걸쳐서 그토록 많은 돈과 물자, 인명을 소모하고도 결국에는 두 손 들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전모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 푸틴이 삽질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쳐 보이기도. 저자는 명문 예일대 출신의 미국 노스텍사스대학교 군사사 교수이자 TV 역사 채널 진행자이기도 한 제프리 와우로(Geoffrey Wawro). 보불전쟁, 보오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주로 근현대 전쟁사가 전문인 모양. 그 중에서도 이 책은 2024년에 나온 그의 가장 따끈따끈한 최신작이라고.

뭔가 캐빈 코스티너 닮은 둣한 이 핸섬한 아재가 저자인 제프리 와우로 교수. 뉴욕타임즈는 그의 신작인 <베트남전쟁>을 가리켜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최고의 통사이자 기본서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 책은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영혼까지 털린 채 인도차이나를 떠난 프랑스에 이어서 아이젠하워가 바통을 넘겨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디엔비엔푸 전투 두달 뒤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서 북위 17도를 경계로 베트남을 임시적으로 분단하되 2년 뒤에 전국 총선거를 실시하여 재통일키로 한 약속을 깨뜨리기로 했다. 7년 전 한반도에서는 소련이 생깠다면 이번에는 미국이 써먹은 꼴이었다. 어차피 남쪽의 3류 지도자들로서는 북쪽의 국민 영웅인 호치민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결코 프랑스가 손 떼고 간 전쟁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국내 반공여론의 비난을 면피할 만큼의 생색내기만 하겠다는 속편한 계산이었다. 그로 인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치를 것이며 북베트남이 순순히 받아들일지, 남베트남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 히틀러가 북아프리카에서 죽을 쑤는 무능한 동맹자 무솔리니를 구하겠답시고 살짝 발을 들였다가 이탈리아의 전쟁 전체를 떠맡아야 했던 것을 되풀이한 셈이었고 후임자들에게는 지옥문을 여는 순간이기도 했다. 불과 10년 전 나치를 상대로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조차 아시아에 대해서는 이토록 안이했다는 것이 놀랍다랄까.

아이젠하워는 미군 투입 방안에서는 물러서기는 했지만,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조지프 매키시 주변에 모여든 빨갱이 탄압 반공주의자들을 우려하여 남베트남에 군사 경제 원조를 쏟아부어 자신이 공산주의 위협을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을 입증코자 했다. 그는 조지프 매카시에게 트집 잡히지 않을 만큼만 남베트남을 지원하려고 했고 과하게 지원할 생각은 없었다. 남베트남은 부채가 너무 많았기에 아이젠하워는 설령 그곳이 함락된다고 해도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다. - p.28


1961년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아이젠하워로부터 어떤 상황을 넘겨받았는지 알고 경악했다. 1950년대에 미국 뉴저지주 레이크우드에 있는 메르놀 신학대학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에게 자신을 유망한 활동가로 선전했던 지엠은 당시 남베트남에서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지엠은 인기 없고 독신을 고수하며 예의범절에 엄격한 독불장군으로 자기 주변을 가족들과 측근들로 에워쌌다. 그들 대다수는 부패와 폭정으로 빠져들었다. - p.32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호치민보다 11살 아래였던 응오딘지엠은 명문 집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프랑스 식민지 관료를 지내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독립운동에 뛰어들면서 나름대로의 명망을 얻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기반은 호치민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며 무장 투쟁의 경험도 없었고 휘하에 호치민의 베트민과 같은 무력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베트남을 독립시킨 것은 호치민 군대이지 그가 아니었다. 어쨌든 남베트남을 통틀어 그나마 호치민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1960년 1월 15일 또 다른 반공 거두인 타이완의 장제스를 방문한 응오딘지엠. 미국이 보기에 이승만, 장제스, 응오딘지엠은 '아시아의 부패 독재자 삼인방'이자 골칫거리였지만 이들은 그저 미국에 빌붙어 단물을 빠는 기생충이 아니라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민족주의 지도자였다. 응오딘지엠 치하의 혼란상은 말기적 증세보다 한 나라가 탄생 과정에서 겪는 불가피한 진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참아낼 인내심이 없는 쪽은 미국이었고 고결한 자신들의 위상에 흠집이라는 이유로 제거함으로서 남베트남에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아마도 300년 전 쯤이었다면 한 왕조의 창시자로서 그런대로 무난하게 나라를 이끌었을지도 모르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농민들을 선동하는데 익숙하고 산악지대의 싸움에 이골이 난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응오딘지엠은 서구식 교육을 받고 독실한 기독교도였음에도 정작 그의 본질은 봉건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한계였다. 20세기식 게릴라전을 구사하면서 사정없이 파고드는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캐캐묵은 방식으로 맞섰던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미국을 붙잡고 매달렸지만 자충수가 되었다. 미국은 갈수록 성가시고 부담스러웠던 응오딘지엠을 잘라내기로 결심하고 남베트남 장군들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켰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남베트남은 인기 없는 독재자라고는 하지만 군부를 억누르고 북쪽과의 전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구심점을 잃었고 권력을 맛본 장군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는데 열을 올렸다. 그러자 미국은 더 큰 실수를 저지르기로 했다. 아직 북베트남이 충분히 강하지 않을 때 남베트남의 개혁을 압박하거나 남베트남군을 싸울 수 있는 군대로 만드는 대신 자신들이 직접 전쟁을 떠맡은 것이었다. 그것은 한 나라를 망친 것에 대한 속죄도, 책임감도, 하물며 미국 자신의 국익 때문도 아니었다. 자신들이 경솔했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일부 권력자들의 아집과 체면 치례를 위해서였다.

저자는 1964년 8월 2일 통킹만 사건을 시작으로 존슨 행정부가 본격적인 개입에 나서는 것부터 1973년 1월 27일 헨리 키신저가 사실상 남베트남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파리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2년 뒤 사이공이 함락되기까지 10여년 동안 베트남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그것은 목표없는 전쟁이었고 설사 이긴다고 한들 무엇을 얻을지도 불분명했다. 애초에 개입을 결정한 존슨부터 아무런 열의가 없었다. 그는 베트남전쟁을 원치 않았지만 남베트남이 붕괴되면 미국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따라서 다음 대선에 좋을 것이 없다는 지극히 타산적인 이유로 뛰어들었다. 장군들 역시 개입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칼자루를 쥔 대통령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찬성했다.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전쟁이 머나먼 오지에서 벌이는 심심풀이 막간극에 지나지 않는다면 북베트남의 목표는 훨씬 분명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베트남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한 어떤 댓가와 희생조차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적을 상대로 미국이 명분이나 전략도 없이 자신의 판돈이 넉넉하다는 것만 믿고 덤벼서는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살짝 발만 걸칠 요량으로 시작된 전쟁은 남베트남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스스로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미국의 가식과 위선, 무분별한 작전은 책을 읽는 내내 분노를 자아낸다.


합참은 존슨에게 "스스로 정한 제한을 제쳐두고"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합참은 북베트남의 모든 전력 거점을 타격하는 초토화 항공전역을 원했다. 하지만 존슨은 중국이 개입하거나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그런 조치를 승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맥나마라는 합참이 밀어붙이는 '강한 타격' 대신 '점진적 압박'을 선택했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장성들이 점진적 압박을 '수용가능한' 전략으로 여긴다고 거짓으로 단언했다. - p.51


미군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적을 발견하면 우월한 전술과 기술로 섬멸할 계획이었다. 이름하여 공중기동작전이었다. 전쟁의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야전군이 수천 대의 헬기를 전술적 이동의 주된 방법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싸우기로 결심한 무렵 이 전쟁의 아이콘이 전투에 도입되었다. 바로 벨 사의 UH-1 이로쿼이 다목적 헬리콥터, '휴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헬기였다. - p.119


1966년 1월 연두교서에서 존슨은 베트남전이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며칠이 몇 달이 될 수도 있고 몇 달이 몇 년이 될 수도 있지만 공격성이 우리에게 전투를 명령하는 한 우리는 계속 머무를 것입니다." 연두교서 이후 인터뷰에서 존슨은 자신이 사태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에서 이기거나 빠져나올 수 있는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얼마나 오래 갈지 얼마나 들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무심코 말해버렸다. 그러더니 잠시 말을 멈추었다고 이렇게 덧붙였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입니다. 나는 우리가 옳다고 믿습니다." 달리 말하면 전략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위선과 뒤섞인 폭력이었다. - p.173


베트남전쟁에서 낭비, 목적 없는 활동, 바보짓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웨스트모얼랜드는 씩씩한 플라이급 권투 선수처럼 비어 있는 링을 춤추듯 돌아다니면서 펀치를 날렸다. 다만 그런 펀치를 위협으로 여길 상대 선수가 없었다. 상대는 로프 사이로 빠져나갔다가 웨스트모얼랜드가 지쳐서 자기 코너로 돌아가 땀을 닦고 다음번 급습을 준비할 때만 다시 나타났다. - p.247


그동안 웨스트모얼랜드의 승리 이론은 미군의 기동성과 화력을 이용하는 '소모전략'으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주력 부대들을 격멸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과 전략은 너무나 명백하게 실패하고 있었다. 적의 침투가 줄기는 커녕 도리어 늘고 있었다. 북베트남군은 1967년에 매달 평균 8500명을 남베트남에 침투시켰는데 이 수치가 연말에 급증하고 1968에 들면 두배인 2만 350명으로 한층 늘어날 터였다. 소모 전략은 적이 사상자를 전원 교체하고 새로운 부대를 추가하고 남베트남으로 더 깊이 밀고 들어옴에 따라 좌초하는 중이었다. - p.280


미라이 학살 소식, 그리고 인근 미케 촌락에서 제3보병연대 제4대대의 1개 중대가 최소 90명의 민간인을 더 학살했다는 소식은 미군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미 잔혹행위가 흔한 일이었고(보병들은 마주치는 마을 주민들을 강간하거나 학대하거나 살해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보통 상부에서 은폐하긴 했지만 이번 학살은 은폐하기에 너무 큰 규모였다. 사이공의 한 장교는 '핑크빌 학살'에 대해 거의 즉각 들었고 육군이 학살을 1년 넘게 쉬쉬할 수 있었다는 데 '놀랐다'고 회상했다. - p.429


임기 막판에 웨스트모얼랜드는 전시 동안 자신이 저지른 무모한 행위에 대한 변명문을 작성하느라 바빴다. 그는 "어떤 미군 사령관이든 잡 장군만큼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면 하룻밤 사이에 해임되었을 것이다."라고 투덜댔으며 이로써 본인이 이끈 전쟁의 성격을 여전히 오판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평판을 만회하려는 웨스트모얼랜드의 열의는 끝이 없었다. 훗날 그는 해병대의 케산 역사서에 서문을 쓰기로 하고 이 작전의 가치에 대한 이기적인 허튼 소리로 지면을 채웠다. 마치 변호사처럼 지적한 수정 사항은 그가 북베트남에게 속은 이후 자신의 흔적을 감추려고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 드러낸다. "내가 병력을 '덜 결정적인' 지역이 아니라 '덜 압박받는' 지역에서 데려왔다고 수정해 주십시오." - p.470


닉슨은 1968년에 본인의 당선을 위해 강화 절차에 훼방을 놓았다. 그때 닉슨은 미국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하노이에 종전을 강요하는 일은 자신이 존슨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면서 강해 방해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1969년에 제37대 대통령은 유권자에게 약속했던 강화 교섭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 p.567


베트남에서 복무한 미군 병사 중 4분의 3이상은 노동계급이나 저소득 가정 출신이었다. 전문직이나 경영직, 기술직 부모를 둔 병사는 23퍼센트에 불과했다. 부유층의 아들은 학교에 머물거나 꾀병을 부리는 수법으로 징병 유예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는 미래의 대통령 조지 부시처럼 예일 대학을 졸업해 학생 징병 유예권을 잃기 2주 전인 1968년 5월에 마치 마법처럼 주방위군에 임관함으로서 베트남 복무를 피했다. 그날 부시와 함께 또 한명의 고위층인 텍사스 상원의원 로이드 벤슨의 아들도 징집을 피하기 위해 같은 주 공군 부대에 비집고 들어갔다. - p.596


5개 사단의 5만 명으로 신속히 병력을 증원한 북베트남군을 퇴각하기 시작한 남베트남 지상군을 타격했다. 남베트남군은 온갖 실책을 저질렀다. 공중 엄호, 정찰, 측면 보호, 후위 전투를 거의 않았다. 무턱대고 후진하다가 번번히 매복 공격을 당했다. 손질과 패주에 가속이 붙는 가운데 어느 미군 조종사는 "속으로 이 모든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생각했다." - p.645


p.404에서는 존슨 대통령이 참모들을 향해 "어째서 북베트남인이 남베트남인보다 훨씬 더 결연하게 그토록 잘 싸우는건가"라면서 절망을 토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은 모든 미국인들이 품었을 핵심질문이자 핵심을 비켜난 질문이기도 하다. 과연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몰랐을까. 베트남전쟁의 딜레마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전쟁임과 동시에 미국의 전쟁이 아니었고 남베트남인들에게도 남베트남의 전쟁이면서 자신들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존슨은 말로만 남베트남을 동맹국이라고 부르면서 평화와 안정을 위해 싸운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방식은 20세기 초반 필리핀 식민지에서 현지 독립군을 상대로 벌인 토벌전이었다.

남베트남에서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전쟁의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군복 입은 공무원이었고 전쟁을 모르는 책상물림 장군이었다. 그는 흔히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착한 베트콩은 죽은 베트콩"이 아니라 "죽은 베트남인들이 나쁜 베트콩"이라는 식이었다. 마치 대로에서 눈을 감고 칼을 마구 휘두르는 식으로 벌였던 미군의 작전은 무분별한 학살극이었고 칼을 맞아 죽은 사람이 베트콩이라는 게 웨스트모얼랜드가 말하는 전과였다. 이 전쟁을 통틀어 유일하게 자신들의 전쟁이었던 북베트남이 미군을 연구하고 꾸준히 약점을 찾아냈던 반면, 웨스트모얼랜드는 자신의 방식을 끝까지 고집했다. 그러면서 전과를 과장하고 허위 보고를 일삼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길 것이며 남베트남인들이 미국의 전쟁에 열광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하지만 미국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자성하거나 바로잡는 대신 애초에 이런 싸움에 끼어든 것이 잘못이라며 난장판을 내팽게치고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 남은 자들이 알아서 치울 몫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베트남전쟁 동안 단 한발의 포탄이 떨어질 일도 없었던 미국은 5만명의 전사자와 막대한 전비, 국론 분열, 오만한 자존심에 처음으로 금이 간 정도라면 남베트남인들은 나라를 잃었다. 이들은 통일 베트남에서 2등 국민으로 전락했고 전체 인구의 1/10이 공산정권의 보복을 피해 해외로 탈출했다.

1973년 1월 초 미국 양원은 자국 전쟁포로들이 송환되자마자 베트남 전쟁의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한다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서방 연합국은 11일간의 항공 전역과 민간인 사상자 수천 명에 경악했다. 라인베커II가 끝난 뒤 파리로 날아간 키신저는 1월 27일 마침내 파리 강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종료했다. 닉슨은 "전쟁을 종결해 베트남과 동남아에 명예로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랑했다. 지난 5년 간 250차례 4자 회의를 통해 줄다리기를 벌인 녹샌 모직천이 덮인 커다란 테이블 주변에는 축하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두 차례 따로따로 진행된 서명식은 한 목격자가 보기에 "보슬비 내리는 잿빛 파리 하늘이 침울한" 것 만큼이나 "냉담하고 음울한" 분위기였다. - p.707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해군기지와 비행장 주면에서 남베트남군 부대들끼리 싸우는 소규모 접전을 지켜보았다. 다낭에서 탈출해 남하한 해병대와 유격대, 그리고 이 지역 본부를 확보하기 위해 사이공에서 파견된 병력 간의 전투였다. 이 부대들은 이제 미국의 원조가 줄었으니 '가난한 자의 전쟁'을 치르라는 티에우의 지시를 따르기는 커녕 오히려 군율을 팽개치고 눈앞의 전리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웠다. 그들은 피아스터, 달러, 금, 보석, 가보 등 속수무책인 피란민들로부터 약할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전리품으로 챙겼다. - p.727


북베트남군 전차들이 사이공 시내로 진입했고 그 중 한 대가 대통령궁의 출입문을 들이받아 부수었다. AP 통신의 사이공 지국장 조지 에스퍼는 이 행위로 "한 세기에 걸친 서구의 영향이 종언을 고했다."라고 기록했다. 즈엉반민은 라디오로 남베트남군 전체에 오전 10시 24분에 항복하라고 명령했다. 공식적으로 항복하기 위해 대통령궁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즈엉반민은 이미 인민혁명으로 권한이 넘어갔으니 있지도 않은 권한으로 항복할 수는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 P.741


과연 베트남전쟁은 처음부터 실패가 정해진 싸움이었을까. 여기서 내가 그때 이래야 했다, 저래야 했다라고 떠드는 것은 한낱 탁상공론일 뿐더러 미국이 몰라서 생고생한 것도 아닐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웨스트모얼랜드같은 무능한 보신주의자가 아니라 마셜이나 아이젠하워, 브래들리같은 미국 최고의 장군들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또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미군이 힘든 것만큼이나 북베트남에게도 힘든 싸움이었고 실제로 북베트남이 먼저 손을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눈앞의 자기 선거에만 눈이 멀고 책임지지 않을 궁리만 하는 지도자 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보다도 존슨이 하필이면 웨스트모얼랜드같은 인간을 기용하여 제 발등을 찍은 것도 미 육군에 정말로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대통령으로서 존슨의 그릇이었을테니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오로지 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베트남전쟁이다. 정작 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남베트남인들에 대한 얘기는 없다. 과연 이들은 미국의 아집이 벌여놓은 전쟁에 억지로 휘말린 피동적인 존재이기만 했던가. 저자는 본문 내내 베트남에서 미국은 명분도 없었고 전략도 없었으며 충분한 병력도, 방법도, 의지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물론 결코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전쟁이 남베트남인들에게도 아무런 의미 없는 전쟁이었을까. 남베트남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저주받은 사생아에 지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사실은 남베트남인들이 상전 노릇하는 미국의 횡포에 분노하고 남베트남의 부패한 군부 정권에 실망했다고 해서 북쪽의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점이다.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저지른 수많은 만행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원래 전쟁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며 공산주의 치하에서 기다리고 있을 궁핍과 압제가 그보다 덜 할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미국의 원조와 자유 무역 덕분에 남베트남인들은 북베트남인들보다 전반적으로 생활 수준이 더 높았다.

어쩌면 남베트남은 살아남을 수도 있었고 스스로 혼란상을 딛고 우리가 그러했듯 '사이공의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남베트남인들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쟁 내내 남베트남인들과 괴리되었던 미국은 이 재미없는 전쟁이 갈수록 부담이라는 이유로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이 지키라며 야반도주했다. 그로 인해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할 만큼 했는데 남베트남인들이 싸우지 않은 탓이라며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자생할 기회를 줬던가. 애초에 부패하고 무능한 남베트남 정권과 남베트남군의 무기력함은 자연 발생이 아니라 미국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남베트남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라를 이끌만한 역량과 강단 있는 민족주의자들을 배척하고 부패하고 인기 없지만 말 잘 듣는 사람을 선호한 것이 미국의 방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베트남군이 퍼주는 것만큼 밥값을 못 한다고 타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고 충분히 퍼준 것도 아니었다. 존슨 행정부 말기에 와서야 '베트남전쟁의 베트남화'를 외치며 남베트남군의 강화에 착수했다지만 프로그램은 졸속이었고 시간은 촉박했다. 어차피 자기네가 떠난 뒤의 일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의 남베트남 대통령궁에 진입하는 북베트남군의 59식 전차. 미군이 철수한 지 불과 2년 1개월 만이었다. 철수하면서 대량의 무기를 남겨놓았던 미국은 남베트남군의 무력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무기의 태반은 가져가는게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이유로 쓰레기 버리듯 투기하고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고 남베트남군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것이 베트남전쟁 내내 남베트남군과 괴리되어 머리수 채우는 식민지 군대로만 취급했던 미국의 한결같은 방식이었다.


같은 시기 남한과 타이완 또한 미국의 원조에 기댔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싸우는 주체는 엄연히 이들이지 미국이 아니었다. 국공내전에서 남베트남군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장제스 군대는 1949년 10월 진먼다오에서 처음 승리한 이후 1950년대 내내 공산군이 타이완 해협을 넘는 것을 막아냈다. 미군이 나서지 않고도 말이다. 어째서 남베트남군은 그렇지 못했던가. 남한과 타이완 역시 비민주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권위적인 정부가 지배했다. 그럼에도 공산주의 세력은 거의 침투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자신들의 손으로 민주화에 성공했으며 비서구권에서 가장 번영하는 나라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 국가와 남베트남의 운명을 갈랐던가. 이 책에서는 그저 미국인의 시각에서 남베트남이 부패하고 무능하고 타성에 젖은 구제불능의 정권이었다는 뻔하고 단편적인 사실만이 있을 뿐 왜 자립에 성공할 수 없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다. 이것이 반세기가 넘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식 베트남전쟁 연구의 한계이자 그 많은 교훈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은 미국의 10년 베트남전쟁을 이해하는데 비할 바 없이 훌륭한 개괄서이다. 다만 지적할 부분은 번역. 사단장을 '사단 사령관', 중화기를 '무거운 화기'를 번역한 것이나, p.470쪽에서는 "웨스트모얼랜드의 후임은 그의 부관인 53세 장군 크레이튼 에이브럼스였다."라고 나오는데 'deputy'는 보좌관을 의미하는 부관(aide)가 아니라 부사령관이다. 둘 다 같은 4성장군인데 영관급이 맡는 부관으로 해석해서야. p.636의 "응우옌쫑루엇 대령의 기갑기동부대"는 '기갑임무부대(Armored Task Force)'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보다도 번역 전반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 역자가 문외한도 아니고 <몽유병자들>과 <제3제국사>, <피와 폐허> 등 중량 있는 전쟁사를 여럿 번역한 바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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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6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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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소위 이세계물 양판소가 난무하는 일본 라이트노벨 중에 <이세계 방랑 밥>이라는 작품이 있다. 솔직히 내용은 별거 없다. 우연히 이세계로 온 샐러리맨 아재가 유유자적하게 세상 구경하면서 슬로우 라이프를 즐긴다는 스토리이다. 같이 다니는 사역마들이 워낙 먼치킨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보니 소설로서 갖추어야 할 긴장감이랄게 없다. 위기로 발전하기 전에 일찌감치 정리하다보니.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내용의 연속인데도 나름 인기가 있는 걸 보면 현실에 찌든 일본인들의 꿈같은 로망을 제대로 담고 있는 모양이다.


제목인 <이세계 방랑 밥>이라는 게 이세계에서 방랑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뜻. 스토리가 죄다 밥먹는 얘기. 본격 이세계 캠핑이라며.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고 일본에도 '꽃보다 경단(花より団子)'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세계이건 어디건 간에 여행의 진정한 정수는 먹거리 탐방이다. 그 지역의 다양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게 여행의 참된 목적이 아니겠는가. 뭐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인터넷 홈쇼핑과 현지에서 잡은 몬스터 고기를 식재료로 일본 음식을 만든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그때마다 주변에서 천상의 맛이자 식문화의 혁명이라며 극찬하고 그걸 무한 반복하는 식. 이 만화만이 아니라 요즘 일본 판타지들의 대세랄까. 작가나 읽는 독자나 안그래도 복잡한 세상 더 복잡한 건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 어쨌든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된 사랑은 없다"라고 했던가.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양반일세. 나는 먹는 것보다 보는 쪽이지만 그래도 지난 뒤에 남는 건 먹거리 추억이더라.

예전에 모 광고 멘트에서 집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했다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타지에서 힐링을 꿈꾼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곳에서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것 보고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그 시간이나마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게 복잡하고 고민 많은 현대인들의 공통된 본능이랄까. 덕분에 유튜브에는 먹방 여행을 다룬 영상이 넘쳐난다. 막상 떠나면 그것도 쉽지는 않은 게 우리네 삶이지만 말이다.

작년 말 마티스블루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1938 타이완 여행기>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타이완을 배경으로 아오야마 치즈코라는 소설 쓰는 한 젊은 일본인 여성이 그곳을 여행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나온 건 진작에 알았는데 요즘 감성에 안 맞는 고리타분한 기행기인줄 알고 읽을 일 없을 거라며 까먹고 있다가 뭐시기 부커상인지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새삼스레 호기심이 동하여 동네 도서관에서 빌렸담서.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영국 여류 작가로서 130년 전 조선의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한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와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이 실존인물이 아니라 픽션이라는 점, 그리고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여행과 먹거리가 아니라 사실은 같은 또래의 현지 여성과 벌이는 금단의 로맨스라는 사실.

저자 아주매. 실제로 본인이 레즈라는데 어째 처음에는 먹는 얘기하다가 뒤로 갈수록 뭔가 위험한 느낌의 백합물로 변신하더라는.


이 책의 주인공인 아오야마 치즈코는 25살의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무려 본인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을 정도. 그것도 여자들이 변변한 교육도 받기 어려웠던 1930년대에 말이다. 이쪽도 먼치킨급 능력자일세. 하지만 남 눈치 안보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마이페이스의 소유자이기도. 여자의 첫번째 덕목은 남편의 내조라는 그 시절 캐캐묵은 규범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인 1938년 어느날 타이완으로 향한다. 명목은 타이완 총독부에서 강연 초청을 받았다는 것이지만 자신을 한물간 노처녀 취급하면서 제발 시집 좀 가라는 가족들의 끝없는 잔소리를 피하여 본가에서 달아나기 위한 도피여행이었다. 게다가 사례비에 교통비와 식비, 숙박비까지 전액 부담해 준다고 하니 안갈 이유가 없담서.

스와 신사의 신이 카스텔라 케이크와 시베리아 케이크에게 매수된 걸까. 아니면 보타모치나 백앙금 모찌에 매수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편지가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그건 바로 타이완 총독부 타이중 주청에서 보낸 편지였다. - p.28


그렇게 집에서 도망치듯 홀가분하게 도착한 이국의 세계 타이완에서 그녀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은 미시마라는 현지 관원, 또 한 사람은 왕첸허라는 하카족(객가인) 출신의 타이완인 여성이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한창 때의 동년배라는 점. 여느 소설이라면 낯선 공간에서 만난 여주과 남주가 썸을 타고 그 사이에 또 다른 여성이 끼어들여 삼각관계가 벌어지는게 국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정반대이다. 미시마는 총각인지 유부남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시절 일본 공무원답게 융통성 없고 꼬장꼬장한 성격의 소유자로 주인공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극인 반면, 통역 가이드를 맡은 왕첸허는 눈치 빠르면서 재색 겸비의 양갓집 규수로서 허당끼 가득한 주인공을 요령껏 보살피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재주많은 왕첸허에게 흠뻑 빠져든 주인공은 그녀를 '샤오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함께 산천을 유람하고 미식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중반부까지는 <요리왕 비룡>에 나올 것같은 음식 묘사가 주된 얘기라면 어느 순간 수상한 분위기로 돌변한다. 솔직한 성격의 주인공은 번역가라는 꿈과 시대가 강요하는 여자로서의 굴레 사이에서 고뇌하는 샤오첸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남이 정한 인생을 억지로 살기보다 내가 책임져 줄 테니 차라리 가출하여 함께 일본으로 가자고 권유한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의 프로포즈나 다름없는 황당한 제안에 왕첸허는 당황하고 곤란해 한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상대가 뭐라하건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다. 소설은 그때부터 백합물을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복잡한 밀당이 된다. 작가는 여성 특유의 필력으로 그 과정을 서정적이면서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 책을 한 세기 전 여자 둘의 맛집 탐방기로 여겼던 독자로서는 "이게 도대체 뭔 뜬금포같은 전개임?"라면서도 몰입하여 이 위험한 관계의 결말을 궁금해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속 읽게 된다랄까.

찐 탕은 종류가 여럿이다. 돼지 뼈나 돼지고기를 고아서 끓인 것도 있고 생선이나 새우 같은 해산물을 넣어서 끊인 것 도 있다. 지난번에 갔던 노점에서는 잘게 다진 돼지고기를 조려 만든 러우싸오 한 숟가락을 듬뿍 펴서 탕 속에 넣었다. 붉은 양파로 만든 튀김을 고명으로 얹는 곳도 있었다. 부추는 빼고 간장에 졸인 달걀이나 완자를 고명으로 얹는 곳도 있었다. 타이난과 가오슝 일대에서는 어육이나 굴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역마다 조리법이 다른 셈이었다. - p.80


첫번째 고기 완자는 감자 전분과 고부마 전분 반죽 속에 돼지고기 소가 들어 있는데 익으면 겉면이 조금 투명해졌다. 두번째 고기 완자는 돼지고기와 전분을 섞은 반죽을 얇게 두드려서 피를 만들고 그 피로 소를 감싼거였다. 세번째 고기 완자는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를 손으로 빚은 것이고 네번째 고기 완자는 아삭한 과실 조각과 돼지고기를 함께 빚은 거였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토란 완자는 굵은 실처럼 썬 토란을 전분 반죽과 잘 섞어서 그 안에 재운 돼지고기 덩어리를 넣고 찐 거였다. - p.116


얇게 썰어서 식초 물에 다가놓았던 우엉을 넓은 도자기 냄비 바닥에 조심스럽게 깔고 그 뒤에 배를 갈라 손질한 미꾸라지를 놓으면 요리 시작이다. 미리 끓여둔 가쓰오부시 육수를 냄비에 부은 뒤 간장, 미림, 청주와 설탕을 조미료로 넣었다. 설탕은 조금 많이, 아지노모토는 됐고 소금도 넣지 말자. 곧이어 불을 켜고 끓였다. 국물이 부글부글 끓을 때 미꾸라지가 부서지는 걸 막으려면 뚜껑을 덮어야 한다. 그러나 본섬에서는 뚜껑을 잘 쓰지 않았기에 임시방편으로 다시마를 썼다. 넓은 훗카이도 라우스 다시마를 두세 조각으로 잘라서 국물 위에 얹었는데 다시마 맛이 마꾸라지와 국물에도 스며드니 사치스럽다고 할 수는 있어도 낭비라도 할 수는 없었다. - p.226


워낙 리얼한 묘사 덕에 읽는 것만으로도 어떤 음식인지 이미지가 연상될 정도. 이랬던 것이.


샤오첸의 빰에 보조개가 떠올랐다. 샤오첸은 "정말 아오야마 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라면서 미소와 함께 탄식했다. "그러면 아오야마 씨의 선물을 받게 해주세요." 보조개는 더 깊어졌고 목소리는 더 달콤해졌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확실히 변한 게 있었다. 나는 눈을 몇번이나 깜빡이고 나서야 확실히 알아차렸다. 샤오첸이 그 아름다운 노멘(能面)을 다시 썼다. - p.256


원래도 아름다운 웃음이었는데 지금의 웃음에는 누군가를 꾀어서 꿀단지 안으로 빠뜨리는 매혹적인 느낌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샤오첸의 입술이 아름다운 장밋빛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잠깐만요. 샤오첸이 절 이렇게 본다면 중요한 일을 논의할 방법이 없다고요!" "음 어째서죠? 이렇게 본다는 게 대체 어떻게 보는건가요?" 샤오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 p.265


샤오첸이 함께였다면 우리는 타오위안과 신주에서 하카인의 요리를 한두 가지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귀가했을 것이다. 어쩌면 달캴을 넣은 행인차를 야식으로 먹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이런 아침에는 샤오첸이 미닫이문을 열어 머리가 맑아지도록 시원한 공기를 들이겠지. 보조개가 생길 정도로 환히 웃으면서 내 서제로 들어올 테고. - p.343


뒤로 갈수록 이런 분위기. 저자는 샤오첸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을 그야말로 에로틱하게 묘사한다. 사실 이렇게 보면 젊은 남녀 연인이 꽁냥거리는 평범한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이 같은 여자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샤오첸은 그런 주인공의 접근을 부담스러워 하면서 공적인 사이로 남기를 원하지만 주인공은 오지랍을 넘어서 그녀를 향한 집착까지 드러낸다. 두 사람의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관계는 결국 파국에 직면한다.

대충 이런 끈적한 느낌이랄지. 제아무리 저자가 그쪽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낯뜨거운 표현은 우리 감성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훼이크였다는. 주인공의 얀데레적인 모습은 19금 소설에나 나올 만한 금단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샤오첸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심과 안타까움에서 나온 선의였다. 샤오첸이 그녀를 거부한 것 또한 동성간의 위험한 선을 넘지 않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서로 극복할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벽은 바로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이라는 식민지 시대가 만들어낸 신분적 차이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에게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소설 내내 존재감 제로였던 미시마였다. 일본인이면서 타이완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주인공이 자신은 일본의 팽창 정책을 결코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타이완 여행을 통해서 식민 정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같다며 '식민지 근대화론' 비슷한 것을 거론하자 정색하면서 호되게 질책한다. 그것은 가식이자 위선이며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는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진짜 메시지일 것이다. 백합 따위가 아니라.

"본섬의 어획량은 확실히 제국이 도입한 기술 덕분에 증가했습니다. 그렇기에 본섬 사람들의 먹는 풍경도 함께 변했죠. 그런데 이게 본섬 사람이 기뻐할 일일까요. 혹은 이런 예를 들어볼 수도 있겠죠. 펑위안의 마조묘가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제국의 관용 덕분이 아닙니다. 메이지 시대에 제국 군대가 파괴했기 때문이죠. 펑위안 지역의 본섬 사람들은 애를 쓰며 노력하여 마조묘가 다이쇼 시대에 다시 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퍼우이안 신사가 몇 년 전에 세워졌다. 마조묘에도 돌로 만든 석등과 도리이를 세웠고요. 이게 본 섬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요. 제국이 본섬에 아름다운 걸 더해줬다고요? 아오야마 선생님의 말씀은 본섬과 본섬 사람을 우룽하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멋진 것들은 그저 내지인에게나 그러할 뿐이지요. 심지어는 아오야마 선생님에게만 멋진 일일 뿐입니다." - p.391


얼마 전 타이완을 여행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우리 과거사가 독재 정권 시절 맹목에 가까운 반일주의에서 어느 순간 이념과 진영 싸움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왜곡되고 있다면 타이완은 아예 그런 기억 자체를 지워버린 것은 아니냐고. 타이완 곳곳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세운 신사와 일본식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심지어 타이완 총독부 건물을 자기네 총통부로 쓰다. 마치 스스로를 일본의 사생아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 그럼으로서 사사건건 성가시게 구는 대륙과의 질긴 악연을 끊고 싶은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타이완인들의 역사 인식 부재를 지적한다. 문제는 두 처자의 백합 분위기가 하도 강렬한지라 묻혀버렸다랄지. 그게 저자의 노림수일지도. 안그럼 이 소설 봤겠음?

저자의 메세지가 아무리 무겁건간에 이 소설은 전형적인 여성향이다. 따라서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재미없음을 넘어서 불쾌감을 드러낼 만큼 호불호가 갈릴만한 내용이다. 특히 타이완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동성애를 금기로 여기는 국내에서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잘 썼다고 생각하지만 타이완의 복잡한 역사나 저자가 이 글을 쓴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뭐시기 상 받았으니 한번 읽어볼까하는 식으로 안이하게 접근할만한 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보다 나로서는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1938년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이다. 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대륙은 물론이고, 타이완 또한 때때로 러시아인들의 지원을 받는 중국 폭격기들이 넘어오는 등 전쟁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8년 2월 23일 중소 연합공군의 쑹산 비행장 폭격이었다. 소련제 SB-2 쌍발 폭격기 28대라는 대편대가 타이베이 쑹산 비행장을 폭격하여 수십대의 일본 군용기를 파괴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런 전시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말 평화롭고 목가적이랄까. 울 마눌님 말마따나 전쟁사는 여자가 가까이 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미국과 일본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반면 대륙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백합 때문이 아니라 저자가 타이완 독립파라는 이유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어둠의 루트로 볼 놈들은 다 보면서 욕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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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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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력이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합체의 압력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 절차를 위험에 처하게 놔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직 의식이 깨어있고 지식이 풍부한 시민만이 거대 군산복합체를 평화로운 방법과 목표에 적절히 조화시켜 안보와 자유가 함께 번영하도록 이끌고 나갈 것입니다." - 1961년 1월 17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 연설에서


2025년에 개봉한 마르탱 부르불롱 감독의 프랑스 영화 <13일 낮, 13일 밤(13 Days, 13 Nights)>은 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카불 최후의 날이다. 2021년 8월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 느닷없이 탈레반 군대가 들이닥친다. 그것은 50여년 전 사이공 함락의 데자뷰였다. 차이가 있다면 탈레반은 북베트남군대보다도 더 열악했고 아직 미군이 카불에서 철수하기도 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이자 기업가 출신으로 미국인들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자기 가족과 재산만 챙겨서 제일 먼저 달아난 것이나 우두머리를 잃은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무너진 것은 그때와 똑같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제아무리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30만 명의 병력과 현대적인 중화기로 무장한 아프간 군대가 7만명에 불과한 게릴라들에게 패배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카불의 함락은 기습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아프간 정부나 서방인들 밑에서 일하던 '부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뒤늦게야 탈레반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려는 엑소더스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운좋게 탈출한 일부는 운명을 탈레반에게 맡겨야 하는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떠나는게 이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이다.


마치 <세계대전Z>에서 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좀비떼를 연상시키는 탈출 러시. 현실에서 맞딱들이면 평생 잊지 못할 PTSD가 될 듯.


당시 대부분의 미군이 철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천여명의 병력이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프간군과 함께 탈레반을 카불에서 쫓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마치 달아나듯 오히려 철수를 서둘렀고 아프간인들 전체가 버려졌다. 그렇게 끝날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쪽이 서로를 위해 좋았을 터인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이 또 한번 상처만 남긴 채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철수할 때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가 "북베트남이 쳐들어온다면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지키지도 않을 립서비스로 남베트남인들을 희망고문했다면 바이든은 훨씬 신랄했다. 미국이 20년 동안 1조 달러가 넘는 거액을 써서 아프간인들을 훈련하고 무장했는데 탈레반과의 싸움에 쓸모가 없었으며 스스로 싸우려고 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미군이 대신 목숨을 바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프간인들 입장에서는 뻔뻔하고 가당찮은 소리였을 것이다. 애초에 미국이 아프간인들에게 자립할 기회를 주었던가. 한 나라를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책상물림 학자를 다루기 좋다는 이유로 권좌에 올린 것도 미국이고 겉만 번드르하고 껍데기 뿐인 군대를 만든 것도 미국이었다. 바이든이 거론하는 1조 달러 중에서 일부라도 제대로 쓰였다면 아프간군이 그토록 부패하고 타락한 군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탈레반이 다시 득세하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미국 납세자들은 아프간 전쟁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바쳤지만 대부분은 아프간인들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낭비되거나 워싱턴의 정치인, 관료들과 결탁한 미국 군납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였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졌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들에게는 손해 본 장사가 아닌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의 변명은 자기 기만이자 그동안 자신들이 충분히 재미를 보았고 더 있어봐야 재미가 없으니 내팽개쳤다는 것이 진짜 속내일 것이다. 아프간만이 아니라 남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되풀이된 미국의 한결같은 방식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떠났다고 해서, 백악관의 주인이 민주당의 바이든이 아니라 공화당의 트럼프나 설령 또 다른 사람이 차지한다고 해서 미국의 전쟁기계가 멈추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다. '위대한 미국의 부흥'을 내세워 당선된 트럼프는 그 방법이 대다수 소시민들을 위해 풍요롭고 안전하게 사는 나라가 아니라 소위 황금 함대나 골든 돔처럼 크고 알흠답지만 돈만 먹고 실속 없는 무기를 만들겠다는 식이다. 그는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전임자들을 비난하면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했음에도 막상 권력을 잡자 누구보다도 전쟁에 진심이다. 교육과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국방 예산에 죄다 때려넣었지만 막상 그 수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거는 병사들이 아니라 워싱턴의 높으신 분들과 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들의 몫이다. 이쯤되면 국가적 차원의 사기라고 해야.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탐욕스러운 정치인과 관료, 업자들이 합작하여 만든 미국의 전쟁기계가 무한 자가 증식하면서 미국만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같은 만만한 동맹국들까지 먹잇감 삼아 마수를 뻗히고 있다. 과연 그 마지막은 어디일까 싶다.

부키에서 나온 신작 도서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은 냉전 종식 이후 싸울 상대를 잃은 미국이 군축 대신 군산복합체라는 괴물이 되어 마치 불교에서 영원히 먹을 것을 찾아 헤메는 아귀마냥 자신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끝없이 전쟁을 갈구하게 되었는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군사 외교 싱크 탱크인 퀸시책임국정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의 선임 연구원인 윌리엄 D. 하텅과 벤 프리먼.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단체는 2019년에 처음 창설되었고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 무력 일변도 정책에 반대하고 군비 감축과 외교적 해결주의를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퀸시라는 이름은 19세기 초반 미국 제6대 대통령이자 전임자인 먼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냈던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가 "미국은 파괴할 괴물을 찾아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에서 따온 것. 하지만 그가 제창한 소위 먼로주의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폭력주의가 아니라 대서양 서쪽은 내 나와바리니까 유럽이 침 바를 생각하지 말라는 상호 불간섭주의와 아메리카에서의 패권주의에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 특유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랄지. 이스라엘의 호전적인 행태를 비판하여 유대인 단체들의 눈엣가시이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나쁜 쪽은 전쟁을 일으킨 푸틴이 아니라 그를 전쟁의 길로 이끌게 만든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 탓으로 돌리면서 욕을 거하게 먹기도.

저자인 윌리엄 D. 하텅(왼쪽)과 벤 프리먼(오른쪽). 아재 둘이서 공저했지만 여느 칼럼 모음집처럼 각자의 파트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캐 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스펙 좋은 양반들이 뭔가 함께 도모하기란 부자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던가.


오늘날 전쟁 국가 미국을 상징하는 '군산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은 미-소 군비 경쟁이 본격화되던 1961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퇴임식에서 처음 거론하면서 유명해졌다. 사실 미국이 전쟁 국가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세기 초반에만 해도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1% 남짓에 불과했고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상비군이 유럽 대륙 전체보다 넓은 땅을 방어했다. 물론 240년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15년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빈말로도 미국을 가리켜 평화 애호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전쟁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뒷북 참전했을 때에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무기가 없어서 프랑스군에게서 빌려썼을 정도였다. 패전 일본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 승차하고 경제에 올인한 덕분에 미국의 아성조차 위협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미국 또한 신생국가에서 두 세기만에 세계 최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군비를 억제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전쟁에서 나온다고 카더라"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과도한 군비가 국가의 잠재성장을 얼마나 갉아먹으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쪽에 썼더라면 우리네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웠을 것임이 분명하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치솟는 미국의 국방비. 물론 물가상승도 고려해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전쟁 때만 잠시 국방비가 폭등했다가 전쟁 끝나고 원래상태로 돌아갔다면 이제는 다음 전쟁을 대비한다며 끝없이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미국의 전쟁 기계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거대 방산기업들이 빨대를 꽂고 꿀을 빨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국은 자칭 '민주주의 병기창'이라며 민주주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제공한다고 강조하지만 뻔뻔한 위선이다. 실제로는 돈벌이만 되면 상대가 어떤 독재자이건 알빠노라면서 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여태껏 보여준 모습이다. 여기에는 공화당, 민주당 어느 쪽도 자유롭지 못하며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

미국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무기 시장의 43% 이상을 장악했는데 러시아의 3배, 중국의 6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미국은 전 세계 107개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지구상 국가의 절반이 넘는 숫자이다. 왜 미국은 그렇게 많은 무기를 판매할까. 국방부나 국무부 관리에게 묻는다면 아마 미국산 무기가 안정을 강화하고 동맹국이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 무기는 불안정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증폭한 경우가 많았다. 미국산 무기는 세계 대부분의 분쟁에 불을 지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병기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비민주 정권에 수시로 공급된다. - p.41


평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전쟁을 부추긴 민주당 대통령은 바이든만이 아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도 자신의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과 같은 행태를 보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103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제안했는데 2024년 바이든 행정부의 무기 판매 제안 규모와 맞먹는 규모이다. 그 제안의 절반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거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2014년부터 그 무기 상당수를 예멘에서 벌어진 잔혹한 전쟁에 사용했다. 무차별 공습과 식량 의료품 봉쇄로 민간인 약 4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 p.45

1930년대까지도 결코 군비 과다 지출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의 군수산업은 진주만 기습과 제2차 세계대전에 발을 들이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음먹고 포텐셜을 터뜨린 미국은 자신은 물론 영국, 소련 등 다른 동맹국들에게도 랜드리스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물자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여유까지 보여주며 다른 경쟁국가들의 기를 꺾어 놓았다. 문제는 더 이상 예전의 아싸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포텐셜을 너무 크게 터뜨렸다는 사실이었다. 전 세계가 미국의 힘을 경외했다. 역사상 어떤 대제국도 꿈꾸지 못한 천조국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한번 고삐가 풀린 군산복합체들은 여전히 미국은 안전하지 못하다며 새로운 적을 끝없이 만들어 내었고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여 더 많은 무기 생산에 자원을 쏟아붓게 했다. 처음에는 소련과의 체제 경쟁이었다. 그 경쟁을 버텨내지 못한 소련이 제풀에 망하자 다음은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가 언젠가 미국을 잡아먹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후임자들이 한 귀로 흘린 결과였다. 그보다도 그가 경고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는 미국 정치인들은 무한 증식하는 군산 복합체에 재갈을 물리려고 애쓰기는 커녕 도리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앞장서는 판국이었다. 이 책은 400여 페이지에 걸쳐서 군산 복합체들이 어떻게 미국의 힘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미국의 무기가 미국인 자신을 위협한 경우는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전쟁 기계의 위험은 미국 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미국이 무기 개발에 점점 더 많은 시간과 정신, 돈을 쏟아붓는 동안 세계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가장 위험한 사태 중 일부는 미국의 정책이 촉발한 결과였다. 예컨대 1953년 미국은 영국, 당시 이란의 샤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와 협력하여 이란에서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모하마드 모사다케를 축출했다. 이 쿠테타는 이후 수십년 간 적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오늘날까지 중동을 더욱 위태롭고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쿠데타가 없었다면 이란인들은 1979년 혁명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이란은 지금처럼 군사화된 국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 p.62


오늘날 F-35는 요구된 임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많은 폭탄을 탑재하기에는 기체가 너무 가볍다. 공중전에서는 이전 세대 전투기들보다 열세이다. 게다가 유지 보수가 너무 어려워 거의 절반의 시간을 격납고에서 정비받으며 보낸다. 프로그램이 시작된지 20년이 지난 2022년에도 여전히 800건이 넘는 결함이 해결되지 않았고 이 중 6건 가량은 조종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P.111


2023년 12월 기준으로 미국 해군과 공군, 해병대는 약 400여대의 오스프리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적에게만큼이나 어쩌면 적보다 더 승무원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오스프리는 지금까지 10건의 치명적 추락 사고에서 무려 64명의 사망자를 냈다. 가장 최근 사고는 2023년 11월 29일 일본 해안에게 발생했으며 추락으로 탑승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러한 결함에도 국방부가 여전히 오스프리를 다시 운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130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지표에서 연안전투함은 철저한 실패작이었다.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한 때보다 10여년 전부터 연안전투함의 치명적인 결함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이 함정은 당초 계획보다 비용이 2배나 들었고 균열과 부식 문제에 시달렸다. 심지어 미국 국방부 산하 시험평가국조차 "연안전투함은 적대적 전투 환경에서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곧 이름에 전투라는 단어가 들어간 함정이 실제 전투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p.187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허위 주장을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게 무기를 떠넘기는데 수업이 이용해왔듯 국방부 계약업체들은 동시에 또 다른 강력한 영향력 무기를 동원한다. 바로 선거 자금이다. 그들은 의회와 대통령이 자기네 뜻대로 움직이도록 달래기 위해 선거 자금을 댄다. 로비 관련 비영리 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방위산업 부문은 2024년 선거운동에 최소 3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선거 자금은 방산업체들에 유리한 쪽으로 저울을 기울일 수 있는 정책결정자들, 즉 대통령 후보와 군사위원회 또는 국방 세출소위원회에 몸담은 의원들에게 집중적으로 흘러갔다. 한마디로 국방부 예산의 규모와 구성을 좌우하는데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이들에게 돈이 간 것이었다. - p.202


1980년은 학문적이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싱크 탱크의 모델이 뒤집힌 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정치적 옹호 활동으로 결정적 전환을 선도했다. 이 재단은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에 대응하는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로 여겨졌다. 헤리티지재단은 그해 <리더십을 위한 명령>이라는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자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가 레이건 행정부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리더십을 위한 명령>이 발간된 후 45년이 지난 오늘날 싱크탱크 부문은 점점 더 당파적이고 정치 활동에 적극적이며 특정 이해관계 집단의 자금에 의존하는 성격을 띄게 되었다. - p.225


왜 부시 행정부의 거짓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보가 일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신중한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랜데이는 그 이유가 단순히 뉴스룸과 언론 경영진의 태도에 그치지 않고 9.11테러 이후의 광범위한 대중 정서에까지 뻗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기를 흔들어대며 즉각 분출된 국수주의는 실로 엄청났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많은 언론사가 "분위기를 거스르거나 행정부에 맞서는 보도를 함으로써 매출을 잃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 p.289


2019년 할리우드 상공에서 선더버즈가 멋진 편대 비행을 펼쳤다. 이는 새 영화 <캡틴 마블> 개봉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더버즈가 상공을 날아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조종사들이 제복을 입은 채 영화 시사회 레드 카펫을 밟았다.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이유는 <캡틴 마블>이 아마 공군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광고였기 때문이다. 공군이 <캡틴 마블>에 개입한 수준과 그로부터 얻은 효과는 놀라울 수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전투기를 직접 타고 군의 사실상 홍보 대사 역할을 맡는 일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캡틴 마블>과 미군의 유착은 오늘날 대형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군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사실상 국방부의 지원 덕분에 제작된 영화를 본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10


팔머 러키, 피터 틸, 일론 머스크와 이들의 동료들은 반정부 정서가 강하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 그렇기에 세계 정세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이 순간에 미국의 군사 정책을 설계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곧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이미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년 동안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주요 무기 제조업제들이 선호하는 접근법과 달리 실리콘 밸리의 많은 군사 신기술 옹호자들은 당파성이 철저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J.D.밴스같은 주요 공화당 후보들에게 돈과 영향력을 쏟아붓는다. 틸과 머스크는 모두 강한 반민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틸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발전시키고 완성해야 할 정부 형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 P.357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이 전쟁을 수출하고 친미 독재자들의 뒷배 노릇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민주주의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자정 능력이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후 병력은 줄었지만 국방비는 되려 치솟고 있고 그 돈은 군인들의 복지가 아니라 방산업체들이 만든 최첨단의 탈을 쓴 쓰레기 무기들을 구매하는데 쓰이고 있다. 게다가 아무도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서 폭로하고 내부 고발로 이슈가 되어도 마지막에 꼬리를 내리는 쪽은 방산업체가 아니라 미국 정부이다. 거대 권력인 미국 정부가 방산업체들을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산을 심의하는 의원들이 이들의 집요한 로비에 굴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돈 앞에 장사 없다는 것.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실무를 맡은 보좌관, 장군들, 국방부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감아 주는 대가로 퇴임 후 두둑한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약속받는다. 우리만 해도 공직자들의 전관예우와 부패방지를 위해 공직자 윤리법이나 취업 제한과 같은 엄격한 윤리 잣대를 들이대고 있고 미국 또한 유사한 규정이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눈치껏 빠져나갈 구멍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이다. 언론과 할리우드 역시 방산업체의 강력한 우군이다. 가령 영화 <탑건>은 결코 현실의 공중전과는 거리가 먼 오락물이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F-14의 멋진 자태와 훈남 조종사들의 우정은 관객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공군의 높으신 분들에게도 판타지를 심어주었다. 일본 항공자위대에서 이 영화보고 F-14를 사려다가 울며겨자먹기로 F-15를 샀다는 얘기도.


우리 공군의 F-35 라이트닝-II 전투기. 1990년대만 해도 골동품인 F-4/5가 주력이고 F-16이 최강 전력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가격만 비싸고 온갖 고장으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속없다는 얘기. 어차피 우리같은 밀덕이야 얼마나 돈값하느냐보다 스텔스 전투기라는 타이틀과 스마트한 외형, 할리우드 영화에서 외계 괴수들과 맞짱 드는 이미지가 더 중요한지라.


그동안 미국이 세계 경찰을 하면서 분쟁을 억제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 일본, 유럽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의 득을 톡톡히 보았고 당장 트럼프가 몽니를 부리며 여차하면 나토와 결별할 수도 있다고 으름짱을 놓자 유럽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 말이다. 책의 추천사에도 저자들이 미군의 축소로 인한 힘의 공백과 동맹 불안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트럼프가 값비싸고 문제많은 무기들을 동맹국들에게도 더 이상의 공짜 점심은 없다면서 강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덩치가 커질대로 커진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까지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얘기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군산복합체의 CEO들이 탐욕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도덕 윤리까지 결여된 인간들이 많다는 점이다. 저자는 기술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자들이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효율만 앞세워 AI를 이용한 살인 병기를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말라고 누가 장담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여기 나온 내용이 미국에만 해당되는 얘기이던가. 엊그제 선관위가 무소불위의 지위만 믿고 안이하게 일을 하다가 전대미문의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어떤 비판과 간섭도 용납하지 않는 집단은 얼마든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방산 카르텔일 것이다. 수십년 군부 독재의 배설물인 장군들의 전관예우, 군과 방산업체의 결탁, 군납비리, 도덕적 해이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며 민주화된 지금까지도 그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안보를 방패삼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면서 비판의 목소리라도 들리면 사방에서 벌떼처럼 달려든다. 우리같은 일반 국민들이야 세계 5위의 군사력이라는 허울 좋은 말 이외에 우리가 낸 세금이 얼마나 제대로 쓰이는지 알 도리가 없다. 언론에서는 소위 전문가라는 양반들이 북한 위협론을 과장하고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아직도 부족하다며 더 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들의 행태가 이 책의 저자들이 지적하는 미국 군산복합체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안보는 중요하지만 그 핑계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엉뚱한 자들이 배를 불리는 꼴을 내버려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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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 권지현 옮김 / 아카넷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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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는 않았지만 주한 외국인들의 토크 대결을 다룬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쪽 패널로 출연한 바 있다는 벨랴코프 일리야씨가 쓴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라는 책에서는 러시아인들이 바라보는 푸틴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독재자가 아니다." 왜나하면 소련 시절 '진짜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푸틴의 방식은 독재 축에 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러시아의 아버지'다운 강력한 지도력으로 부패 관료들을 때려잡고 소련 붕괴 이후 나락으로 향하던 러시아 경제를 안정시켰으며 푸틴 치하에서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고 여긴단다. 그의 높은 지지율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죄다 조작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어차피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보니 푸틴이 조금 잘못을 해도 그보다 더 나은 놈이 없다는 이유로 신경끄고 산다고.

그리 따지면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도 '중국식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상 천지에 독재국가가 어디에 있겠냐 싶지만 어쨌든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한 동물인데다 '감각순응'이라고 하여 지옥을 맛본 사람일수록 어지간한 일에는 둔감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우리야 푸틴을 독재자라고 욕하면서 그 옛날 루이16세나 니콜라이 2세처럼 오래지 않아 철권 통치에 분노한 러시아 국민들에 의해 타도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서야 어림없을 듯 하다. 예전에 좌파 인권 운동가들의 칼럼을 모은 <우크라이나 전쟁,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각축전>에서는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고 지성과 양심을 갖춘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푸틴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주장하던데 이 양반 설명에 따르면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인 셈. 옳고 그름을 떠나서 러시아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우리가 어쩌겠는가.

책 제목대로 저자의 사견이 한가득 담겨 있다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지구에 살면서도 러시아가 얼마나 멀고도 먼 나라이며 서로의 사고방식이 동떨어져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극단으로 치닫게 된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먼저 서방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집권 초기에도 서방에 유화 제스쳐를 취했음에도 서방이 약속을 깨고 나토를 동진시켰기 때문이라는 것.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뉴코비치가 쫓겨난 것이 미국의 음모이며 친서방 정권이 러시아를 적대하고 나토를 끌어들이려고 했음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러시아 입장에서의 아전인수랄까. 우리로 치면 일본인이 일본의 조선합병을 고종의 반일정책과 어차피 그 시절 일본이 아니었어도 누군가 조선을 먹었을 것이므로 죄가 없다고 하는 꼴이니 우크라이나인들이 들으면 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결코 오해해서 안 되는 점은 인과관계가 거꾸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푸틴은 입만 열면 서방의 동진을 비난하면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타령했지만 정작 서방과의 관계를 파토낸 것은 푸틴 자신이었다. 푸틴이 처음 러시아의 권좌에 앉았을 때만 해도 서방과의 관계는 화기애애했다. 그는 서방을 핵무기로 위협하던 구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프랑스 언론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의 <노르트스트림의 덫>에는 푸틴이 2000년대 내내 독일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나 앙겔라 메르크를 비롯하여 서방 지도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언급한다. 러시아는 서방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그 대가로 경제 원조를 얻어냈다. 심지어 푸틴에 감화된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국의 최신 군함인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대로만 계속되었다면 한 세기 전 짜르가 꿈꾸었던 프랑스-독일-러시아 3국 연합이 실현되었을지도 모른다.

2011년 프랑스가 러시아에 넘기려고 한 미스트랄급(Mistral-class) 강습상륙함. 핵항모인 샤를 드골을 제외하고 프랑스 해군에서 가장 큰 군함으로 배수량 2만톤에 16대의 대형헬기, 전차 40대, 병력 450명을 수송할 수 있으며 지휘통제함으로서 기능을 갖추었다. 프랑스가 자국의 최신 기술이 집약한 군함을 러시아에 판매할 만큼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푸틴의 욕심이 망쳤다.


문제는 푸틴이 서방에게는 비굴하리만큼 추파를 던지면서도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만만한 주변의 구소련 형제들에게는 옛날 버릇을 못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는 친러 주민들을 선동하고 무기를 제공하여 혼란을 부추겼으며 공공연히 선거에 개입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은 주먹맛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유고슬라비아처럼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민족간의 갈등이 극심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내전과 러시아로의 이탈로 이어진 것은 푸틴이 막후에서 부추긴 결과였다. 2014년 2월 자신이 오랫동안 공을 들인 야뉴코비치가 부패 문제와 장기집권을 노리다가 분노한 국민들 손에 쫓겨나 러시아로 망명하자 뻔뻔하게도 서방의 음모론을 내세우며 1주일 뒤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것은 선을 넘은 것이었고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를 한방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푸틴은 덩샤오핑의 인내심을 배워야 했다. 서방은 그의 민낯을 깨달았고 지금까지의 제스쳐가 진심이 아니라 자신들을 방심시키려는 방편이라고 결론내렸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프랑스는 2척의 상륙함을 러시아가 아니라 이집트에 넘기기로 했다.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무장을 해제했던 나토는 러시아에 대비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로부터 존립 자체를 위협받았다고 여긴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에 나섰다. 푸틴은 외교적 해결책 대신 가면을 벗고 더 이상 서방의 비위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 결과가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푸틴의 속셈은 서방을 직접 위협하지 않되, 그 대가로 구소련 시절의 세력권을 자신의 '나와바리'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 소련 형제국들을 동등한 주권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속국으로 여긴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그는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냉전 종식과 함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실체 없는 나라이며 원래는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떠들고 있다. '나토의 동진'에 그토록 발끈하는 것도 서방이 정말로 러시아를 무력으로 위협한다기보다 내 똘마니들 멋대로 빼가지 말라는 것. 하지만 서방에 불신감을 드러내기 앞서 구소련 형제국들이 러시아를 그토록 질색하는 이유부터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푸틴은 벨라루스의 루카센코처럼 코드 맞는 독재자들에게는 든든한 뒷배노릇을 하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 드골과 독일의 아데나워가 보여준 것같은 역사적 화해나 진정한 이웃이자 형제로서 존중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는 더 이상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구소련 시절 KGB에서 배운 습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토 동진에 일조한 발트 3국이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러시아 대신 친서방으로 돌아선 것도 푸틴이 하는 것마냥 서방이 그들 지도자들을 매수해서가 아니라 푸틴의 오만한 태도가 그렇게 내몬 결과이다.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쫓겨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호화저택. 친러정서가 강한 동부 출신인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흔한 부패 정치인이자 그 동네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부정의혹으로 물러나야 했고 6년 뒤 다시 당선되었지만 푸틴의 충복 노릇을 하면서 국가적 분열과 부패를 한층 조장하고 우크라이나군을 무력화시켰다. 우크라이나판 을사5적인 셈. 시위대에 유혈진압을 지시했다가 궁지에 몰리자 러시아로 달아나 푸틴의 보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러시아 국민들 또한 푸틴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배울만큼 배웠고 한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일리야같은 사람조차 뻔한 레파토리를 앵무새마냥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세뇌의 무서움일까.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러시아 참전 군인의 아내가 남편더러 우크라이나 여자를 성폭행해도 된다는 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부차를 비롯하여 러시아군이 철수한 장소에서는 학살과 약탈, 강간, 고문의 수많은 전쟁 범죄 현장이 발견되었으며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를 명목으로 러시아 가정에 강제 입양되었다. 이것이 죄다 그동안 서방이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을까. 90여년 전 독일 국민들은 서방이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했다면서 히틀러의 침략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나치의 전쟁범죄에 가담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피해자가 아니라 엄연한 공범이었다. 단지 한 나라 전체를 전범으로 처벌할 수 없었을 뿐이다. 러시아인들 역시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폭발한 뒤 국내에도 서방과 러시아의 문명 충돌을 다룬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그 전에도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 등 국지적 분쟁은 많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네 세상이 위기라는 얘기. 지난 2월 아카넷에서 나온 신작 도서 <서방의 패배>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Emmanuel Todd)는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주로 인류 통계학적인 관점에서 가족의 구조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한다고. 그래서 이 책 내내 가족이 어쩌구 타령을 하더라는. 특히 냉전이 한창이던 1976년에는 소련 붕괴를 예견하고 2002년에는 미국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양반들이 흔히 그러하듯 사고가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 논란도 많은 모양.

이 깐깐해 보이는 할배가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 아버지는 기자, 할아버지는 작가였으며 무려 고등학생 시절 프랑스의 유명한 68혁명이 폭발하자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보통 싹수가 아닐세. 1951년생이니 나이가 75살인데 아직도 왕성하게 글을 쓰는 모양.


<서방의 패배(The Defeat of the West)>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저자의 가장 최신 저서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난 서방의 모순과 어째서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지를 지적한다. 문제는 특유의 반골 기질로 서방은 신랄하게 까는 반면, 푸틴에 대해서는 마치 그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한없이 우호적이며 근거와 잣대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 덕분에 러시아 쪽에서는 당연히 호평을 받았다고.

가령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식 표현인 '특수 군사 작전'이라고 부른다. 푸틴은 돈바스의 친러 세력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수도 키이우까지 진격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우크라이나 정복을 노렸고 우크라이나인들의 격렬한 항전으로 무려 4년 넘게 싸우고 있음에도 이 양반 기준에는 아무튼 전쟁은 아닌 모양. 중일전쟁을 당시 일본 지도자들이 국제 사회의 제재를 피할 요량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아전인수식 용어인 '지나사변'이라고 부르는 격이랄까. 중국인들이 노발대발할 듯. 그리 따지면 소련-아프간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도 전쟁이 아니며 1940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 또한 특수한 군사 작전이라고 해야 할 판.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조된 러시아를 향한 구소련 국가들과 서방의 경계심을 '자격지심'에서 나온 실체없는 공포심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러시아에는 스탈린 시절과 달리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유럽을 위협할 힘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구 소련 시절 얼마나 축복을 받았으며 만약 이들이 처음부터 순순히 돈바스를 포기했다면 지금처럼 고통 겪는 일도 없었을 거라도 단언한다. 물론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스탈린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독재자의 모델이 스탈린만 있는가. 푸틴이 스탈린이 아니라고 해서 독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흐루쇼프를 비롯하여 구 소련 시절의 지도자들 역시 스탈린은 아니었으며 리비아 카타피, 이라크 후세인, 우간다 이디 아민 또한 스탈린은 아니었다. 이디 아민은 잔인함에서 본다면 스탈린도 벌벌 떨었을 듯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스탈린은 레닌과 달리 공산 혁명의 확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푸틴보다 훨씬 신중하고 교활했다. 적어도 답이 없는 전쟁에 매달려서 4년 넘게 수렁에서 허우적 거린 적은 없었다.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소련을 다스리는데 만족했을 것이다.

러시아에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바로 저출산이다. 저출산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러시아는 동원 가능한 남성 인구가 감소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유럽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환상이나 선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구가 감소 중인 러시아는 국토 면적이 170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여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미 보유한 영토를 어떻게 계속 점유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 p.57

러시아는 천연자원과 노동으로 살아간다. 자국의 가치를 세상에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머지 세계'를 경제적으로 착취하거나 자국의 문화를 수출할 능력도 없다. '나머지 세계'의 노동으로 살아가고 니힐리즘적인 문화를 자랑하는 미국에 비하면 러시아는 '나머지 세계'에 더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소련은 최초의 탈시민지화에 엄청나게 이바지했다. 이제 많은 국가가 러시아가 두번째 탈식민지화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 p.281


저자의 말마따나 러시아가 미국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자국의 헤게모니를 무력으로 투사할 능력은 없다고 해도 적어도 국경을 맞대고 주먹이 직접 닿을 수 있는 만만한 구소련 형제국이나 시리아같은 친러 국가들에게는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2008년에는 조지아가 반러의 기치를 들었다는 이유로 응징했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평화 유지를 명목으로 개입했으며 시리아 내전에는 중동의 맹우인 아사드 대통령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병집단인 바그너 군단을 보내어 반군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 밖에도 미국만큼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여기저기 끼어들고 있다. 저자가 직접 겪을 일이 없다보니 와닿지 않는 모양.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홀로도모르로 한정해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농업국가인 우크라이나가 스탈린에 의해 순교자가 되었지만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우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 첨단 항공 산업과 군수 산업을 포함한 산업 우선 개발 지역이 되었다. - p.72

나는 200년 전부터 소련, 즉 러시아의 지배로 동유럽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주장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쇼언바움의 실용적인 본능은 옛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의 러시아 혐오가 그저 옛 지배자에 대한 무의식적으로 감추어진, 수용할 수 없고 용납되지 않는 역사적 부채에 기인했다는 것을 내가 확인해주었다. - p.119


이건 우크라이나판 식민지 근대화론이랄까. 일부 학자들이 내세우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맹점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공장을 지어준 것이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이나 이들이 기부천사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공장들은 일본의 기술과 자본으로 돌아갔기에 식민지인들로서는 다소의 일자리는 얻었을지 몰라도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오히려 그로 인하여 조선 경제는 일본 경제의 하청으로 예속되었으며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자생할 수 있었던 기회를 박탈당한 꼴이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그들이 남긴 공장들은 대부분 고철이 되었고 경제가 마비되는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조선만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한 뒤 겪거나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일이며 우크라이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름 좌파 지식인이라는 양반이 이런 뻔뻔한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는 지배하는 쪽이지 지배받는 쪽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구 소련 영역이 붕괴한 뒤로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은 더는 함께 살고 싶지 않아서 사이좋게 헤어졌다. 지배 세력이었던 체코인들이 지배권을 포기한 것이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사이가 더는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지역은 분리시키고 모두가 인정하는 세력 중 일부의 도움을 받아 국민국가의 건립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와 그곳의 러시아 주민을 되찾으려고 전쟁을 계속했으며 크림반도와 그곳에 거주하는 러시아 주민들을 되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 그러니까 자국보다 힘이 훨씬 센 나라의 주민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 p.99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 놈의 알자스-로렌을 놓고 독일과 두번이나 세계대전을 초래했던 프랑스인이 할 말은 아닐 듯 하다. 하물며 돈바스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강탈한 땅도 아니고 푸틴이 무력으로 사정없이 진압했던 체첸처럼 처음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했던 지역도 아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을 때 돈바스와 크림반도는 러시아로의 편입 대신 우크라이나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국민 통합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이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어느 나라가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이유로 자국 영토를 함부로 포기할 수 있을까. 설령 돈바스를 러시아에 내준다고 해서 푸틴이 여기서 만족할 거라고 누가 장담한다는 말인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놓고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편을 들어 체코의 양보를 종용했고 체코 또한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세계대전의 폭발이었다. 서방이 푸틴의 야심을 경계하는 것은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틴은 서방의 불신을 푸는 대신 크렘린 궁전 깊숙한 곳에 앉아서 핵공갈만 일삼고 있다. 누가 그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낱 책상물림 학자인 저자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떠들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인들로서는 자기 결정에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공산주의로의 사회 변환과 능력 위주의 소련식 교육으로 만들어진 러시아 중산층도 나머지 국민과 마찬가지로 푸틴 시대의 사회적 평화를 누린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앞에서 보았던 자살률, 살인율, 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률 감소이다. 유아 사망률은 러시아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정신적, 사회적 분위기의 효과이자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실랴펜토흐는 자유를 포함하여 러시아의 생활 환경이 푸틴 때만큼 좋은 때가 없다고 강조한다. - p.55

우크라이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태동하는 우크라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저널리즘적인 사고는 명백히 부조리하다.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정체성에 근거한다. 유럽과 아메리카노스피어를 다룬 꼭지들이 보여주듯이 서방은 더는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아니다. 서방이 지금 어떤 세계인지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겹치는 가치가 많고도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가치가 민주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 p.104

서방에서 가장 많은 보호를 받는 소수는 바로 부자들이다.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자이든 올리가르히든 보호받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따라서 '자유주의적 과두제'가 되었다. 전쟁의 이데올로적거 의미는 바뀐다. 서방의 자유민주주의가 러시아의 권위주의와 싸우는 것이라는 지배적인 생각은 실제로는 서방의 자유주의적 과두제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의 대결이 되었다. - p.137


저자는 푸틴의 러시아를 가리켜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는 서구가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정치가 우크라이나인들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 따지면 러시아는 그렇지 않은가. 러시아 또한 모스크바 시민과 변방의 소수민족들이 같은 권리를 누리지 않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푸틴이 러시아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발전시켰다면서 극찬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놀라운 성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러시아의 1인당 GDP는 서방은 커녕 튀르키예만도 못하며 석유와 천연가스, 일부 무기 분야를 제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네임드 있는 기업이나 제품이 있는가. 러시아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북한이나 캄보디아보다도 짧다.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잣대에서 미흡할지는 몰라도 지금의 통치자인 젤렌스키는 시진핑이나 푸틴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임자와의 밀실야합으로 자기들끼리 권좌를 주고 받는 식이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택을 받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적어도 푸틴이 20년째 장기집권하는 러시아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젤렌스키가 링컨은 아니라도 더 오랫동안 집권하고 더 부패한 쪽은 그가 아니라 푸틴이다. 민주주의 실험을 한 지 불과 30년 밖에 안 된 나라더러 저자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도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저자의 생각처럼 민주주의 동맹이라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서방 자신의 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푸틴이 캅카스에 있는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에는 서방은 방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조지아는 서방에서 멀고 우크라이나는 가깝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소리와 달리 러시아 군대는 병사를 아끼기 위해서 느린 전쟁을 선택했다. 찔끔찔끔 진행되었던 동원령과 전쟁 초기에 체첸 군대와 바그너 그룹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그런 선택이다. 러시아의 우선순위는 최대한 많은 영토를 차지하지는 것이 아니라 병력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2022년 가을 대동원령 이후 벌어진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3대1의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동부 하르키우주를 포기했고 남부에서는 싸우지도 않고 드니프로강 좌안으로 철수했다. 이 결정을 내린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은 쓸데없이 병사를 희생하지 않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p.58


저자는 저출산의 압박을 받는 푸틴이 스탈린과 달리 나름대로 인명을 아끼는 전쟁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는 거라고 주장한다. 서방의 주장처럼 병사들을 무한정 갈아넣지 않는다는 얘기.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정말로 지도자로서 책임감이 있다면 애초에 전쟁 대신 주변국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더욱이 기왕 시작한 이상 본전이라도 찾겠다며 출구없는 전쟁을 질질 끌고 심지어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고 국제사회의 왕따인 북한한테까지 가오 안 서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 과연 러시아 병사를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말인가. 이 쯤 되면 저자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 책에서는 서방이 푸틴과의 대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위 '개신교의 좀비화'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은총을 잃고 기존의 가족 제도가 해체되었으며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와 동성애가 확산되면서 출산율이 저하된 탓이라나. 왜 기독교가 아니라 굳이 개신교라고 콕 찍어서 지칭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국은 그렇다쳐도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 아니었음? 그러면서도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의 부상은 유교에 의한 전통적인 가족 문화가 든든히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전쟁에 대한 영국의 격노는 그런 것까지 바라지 않았던 미국을 당황스럽게 했다. 영국은 언제나처럼 미국을 따라 하기만 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제2차 걸프 전쟁에서 부시를 따라 참전한 블레어처럼 말이다. 영국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에는 비극적인 이면이 있었다. 영국은 보내줄 물자도 많지 않았으면서 단계마다 전쟁을 악화시켰다. - p.178

1870~1930년 무너진 개신교는 이렇게 반으로 갈라진 개신교이다. 이때 내가 좀비 개신교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했다. 성서에 나온 계명을 모두 지키지 않는다는 신호로 출산율이 추락했다. 개신교라는 틀이 사라진 영국은 순수한 국민주의를 발견했고 별다른 고민 없이 제1차 세계대전의 살육에 참여했다. 이 전쟁은 프랑스와 독일의 맹렬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당시 두 경제 강대국을 대치시켰다. 이 두 국가는 좀비 상태로 넘어가던 개신교 국가 독일과 영국이다. - p.196

위기는 종교적이고 문화적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국가는 개신교의 자녀이고 개신교의 점진적 소멸은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종교가 제로 상태에 다다르면 작은 국가에서는 국가적 불안이 생기고 결국 국제적 불안이 발생한다. 어쩌면 거기에서 안보에 관한 욕구가 생겼고 그 욕구를 나토 가입이 채워줌으로써 있지도 않은 외부의 위협을 물리치려는 것이리라. 인느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에게서 위협감이 자라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요청한 것은 러시아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순전히 소속감에 대한 욕구이다. - p.217

과거의 독일 니힐리즘처럼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은 개신교의 해체가 낳은 결과이다. 오늘날의 위기는 개신교의 제로 상태에 해당한다. 개신교의 제로 상태를 통해서 우리는 트럼프 현상과 바이든의 대외 정책, 내부로는 썩어 들어가고 바깥으로는 과시벽을 보이는 미국, 미국 시스템이 자국 시민과 다른 국가의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 p.223

아시아 학생의 높은 비중은 역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아시아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개신교가 사라지면서 교육열과 노려에 대한 숭배도 함께 사라졌고 자녀를 잘 돌보지 않는 절대적 핵가족이라는 인류학적 배경 때문에 백인들의 학습 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 자녀들의 SAT 점수와 평균 지능지수는 동시에 떨어졌다. 일본, 한국, 중국, 베트남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한두 세대 정도 권위적인 가족 구조와 교육을 신성시하는 유교 전통이 대물림되었기 때문에 같은 추락을 겪지 않았다. - p.262


저자는 서방의 몰락을 종교적 믿음의 약화와 가족의 해체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서방이 몰락하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특히 요근래 트럼프가 위대한 미국 어쩌구 하면서 헛발질만 거듭하는데도 여전히 미국인의 1/3이 지지하는 것만 보더라도 정상은 아닌 듯. 하지만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냥 푸틴이 잘하고 있으며 서방은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식.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랄까.

저자는 서구가 푸틴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푸틴을 잘 못 보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가장 큰 오류는 서방과 러시아에만 주목할 뿐, 전쟁의 또다른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이리저리 지조없이 휘둘리는 갈대같은 존재가 아니라 엄연히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6.25전쟁이 단순히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대리전쟁이 아니라 우리 또한 전쟁의 한 축을 맡은 주연의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역사를 강대국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데 익숙한 서구 사람들의 오만함이랄까. 하물며 우크라이나는 아프간 친미 정부나 남베트남처럼 미국이 인위적으로 만든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들이 쟁취해낸 것이다.

이거 하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꿈꾸지만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고. 그 옛날 프랑스 보수주의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이렇게 말했다던가. 모든 나라는 자기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얻는 법이라고. 그렇다. 푸틴이 러시아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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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이슬람 전쟁사 - 패권을 두고 격돌한 1400년의 대립
레이먼드 이브라힘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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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오빠가 절대 반지 대신 성지 수호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흔한 양판소가 아니라 1187년 7월 4일 이슬람군의 공세로 지난 100년 간 십자군이 알박기한 예루살렘의 몰락을 묘사한 실제 역사이다. 말그대로 킹덤 오브 헤븐의 몰락인 셈. 주인공인 발리앙을 비롯하여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흐 앗 딘이나 예루살렘 왕국의 은가면 성군 보두앵 4세, 그 뒤를 이어 왕국을 물려받았지만 사고뭉치 금쪽이 르노와 함께 빌런 노릇을 하다가 폭망하는 기 드 뤼지냥 등 등장캐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다. 물론 발리앙이 사생아 출신 대장장이였다거나 예루살렘 여왕 에바 그린과의 썸씽은 픽션이지만 말이다.


20년 전 영화지만 십자기를 앞세운 보두앵 4세가 예루살렘의 대군을 이끌고 나오는 모습은 실로 장엄하다. 오히려 CG로 떡칠하는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광경. 중세 마을의 재현이나 전투 장면 또한 그저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고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기의 개삽질로 저 군대 대부분을 궤멸시킨 하틴 전투가 '어른의 사정'으로 패한 장면만 나오고 넘어간 건 아쉽지만 말이다.


감독판 기준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유혈이 낭자하지만 이 영화의 메세지는 종교적 관용과 화해이다. 양 진영을 대표하는 살라흐 앗 딘과 보두앵 4세는 오랜 숙적이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한다. 반면 오만한 성격의 기는 살라흐 앗 딘의 유인작전에 휘말려 사막 한가운데로 진격했다가 보급로가 끊기는 바람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패배를 당하고 발리앙은 궁지에 몰린 예루살렘을 끝까지 지켜내지만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결국 살라흐 앗 딘과 조약을 맺고 평화적으로 성을 넘겨준다. 극장판에서는 잘렸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시종일관 시비 털던 기와 한판 붙고 그에게 참벌을 내린다. 그리고 머리 빡빡 깎은 여왕님과 손 잡고 속세를 떠나는 대신 고향인 프랑스로 향한다. 사실은 엘프 대장장이 영주님의 영지 개발물이라는 얘기도.


영화는 이슬람의 성지 탈환과 십자군의 패배로 끝나지만 9차에 달하는 길고도 파란만장했던 십자군 원정 전체로 본다면 이제 중반부 즈음이랄까. 중동에서 십자군 세력이 완전히 쫓겨나기까지는 앞으로 100년은 더 싸워야 했다. 게다가 이슬람의 공세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었다. 유럽을 지켜주는 마지막 방파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쉴레이만 대제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는 발칸과 동유럽을 휩쓸고 유럽의 중심인 빈까지 진격했다. 지중해에서도 오스만 해군이 신성 동맹 함대를 격파하고 해상 제국 베네치아를 몰락시켰다. 훈족과 몽골족의 침입 이후 또 한번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유럽 전체가 이슬람화되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지만 오스만은 결국 빈의 두꺼운 성벽을 넘지 못했다. 이제 수세에 몰린 쪽은 이슬람이었다. 19세기가 되자 오스만은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고 다른 이슬람 세력이 오스만을 대신하여 산업혁명으로 약진하는 유럽에 도전하지도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두 문명의 기나긴 대결은 기독교가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서구 유럽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문명이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 체제를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살만한 동네가 된 반면, 이슬람 국가들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의 몇몇 석유 부국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가난뱅이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에서도 후진적이며 특히 여성 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파키스탄이나 '중동의 북한'이라고 불리며 요즘 트럼프를 상대로 이슬람의 깡을 보여주고 있는 신정 국가 이란으로 이민가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하물며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은 숨쉬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할 판.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패배자로 치부하는 것 또한 성급한 결론일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1/4이 이슬람 교도이며 몇년만 지나면 기독교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자랑하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기보다 이슬람 국가들이 대개 종교 선택의 자유가 없고 짧은 수명과 가난 덕분에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이라고. 게다가 선진국들이 저출산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에 허덕이는 사이 이들이 곳곳에서 침투하면서 세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썩 환영받지는 못하는 처지. 내전을 피하여 유럽으로 넘어온 백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들은 자기네를 받아준 포용에 대한 감사와 절제 대신 폭력과 범죄로 온 유럽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 옛날 쉴레이만 대제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이들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슬람과 역사적으로 별 인연 없는 우리조차 잠재적인 테러 집단 취급하면서 색안경끼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판국이다. 911테러 이후 갈수록 고조되는 반 이슬람 분위기를 죄다 그들이 자초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막연한 편견이라고만 할 수도 없을 듯하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이슬람이 쫓아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2023년 알제리계 이민자 소년의 죽음으로 폭발한 프랑스 무슬림 폭동. 2명이 죽고 600여명이 다쳤으며 피해액은 1조원에 달했다. 무슬림들은 프랑스 사회의 인종차별과 경찰의 과잉 대응이 초래한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남의 땅에서 행패부리는 짓이 용납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 해결은 커녕 이슬람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스스로 입증하여 이미지만 더 나빠진 꼴이 된 셈이었다.


1천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독교가 이슬람보다 우세해 진 것은 불과 2백여년 남짓이다. 형세가 언제 또다시 역전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기독교가 예전에 어떠했건 근대에 와서 이성주의와 인본주의를 선택한 반면, 여전히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람보다 종교를 우선하는 게 이슬람의 현 모습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살라흐 앗 딘이 보여준 관용은 온데간데 없고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소위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이교도들과 싸우다가 순교하면 저승에서 72명의 처녀가 기다리고 있다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순진한 소리겠지만 판타지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측실들의 암투 때문에 신세 망친 사내가 얼마나 많으며 말이 꽃밭이지 기 센 여인네들 사이에 끼여서 골머리 썩히느니 차라리 홀홀단신 싸움터가 낫다고 할런지도.


역사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책과 함께에서 얼마 전에 나온 신작도서 <기독교-이슬람 전쟁사>는 무려 1400여년 동안 동서양의 경계에서 벌어진 숙명과도 같았던 두 문명의 패권 다툼을 다루고 있다. 저자인 레이먼드 이브라힘(Raymond Ibrahim)은 미국인 작가이자 칼럼리스트이며 이슬람과 아랍을 주제로 글을 쓰는 모양. 그런데 종교적 화해를 강조하는 도덕 교과서 같은 여느 서구 학자들과 달리 이슬람이 서구 문명을 위협한다는 둥 직설적인 소리를 늘어놓다보니 이슬람 쪽에서 알라의 적으로 낙인찍힌 모양. 게다가 미국 내 대표적인 반 이슬람 싱크 탱크이자 트럼프 1기 시절 국가 안전 보좌관을 지냈지만 지금은 앙숙이 된 것으로 유명한 존 볼트가 회장을 맡기도 했던 게이트스톤 연구소(Gatestone Institute)의 선임 연구원이기도. 마가 아님?


이 눈빛 험악한 털보 아재가 저자인 레이먼드 이브라힘. 그러고보니 <킹덤 오브 헤븐>에서 기와 함께 강경파로 나오는 르노 역을 맡은 브렌던 글리슨과 닮은 것같기도.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슬람 비판이 혐오라며 그 동네 인권단체들로부터 욕도 거하게 먹고 있다고.


예전에 미지북스에서 나온 <십자가 초승달 동맹>이라는 책에서 이슬람이 언제나 기독교의 적은 아니었으며 때로는 서로 협력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면, 여기서는 이슬람이란 불리하면 평화를 거론하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대번에 본색을 드러내는 후안무치한 족속들이므로 결단코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식. 학술적 차원에서의 역사 기술을 넘어서 때로는 이슬람을 향한 저자의 증오심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보니 누군가에게는 속 시원할지 몰라도 나처럼 중립적 시각을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걸려 읽어야 싶은 부분도 있더라는.


<기독교-이슬람 전쟁사>는 서방과 이슬람 세계가 약 1400년 전 이슬람교가 탄생한 이래로 불구대천의 원수였음을 보여주고 그들의 군사사를 서술하는 맥락에서 양측의 가장 역사적인 전투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 가운데 일부는 세계사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대부분의 군사사가 아무리 흥미롭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학문적 논의에 머무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시의적절한 교정을 제공한다. 즉 두 문명 사이의 심하게 왜곡된 역사 기록을 바로잡고 이를 통해 이슬람교도의 서방에 대한 적대가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이슬람 역사에서 계속 이어져 온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 머리말 중에서(p.23)


이 책은 634년에서 시작한다.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 세력이 중동의 패권을 놓고 처음으로 맞붙는 역사적인 한해였다. 결과는 동로마 제국의 참패였다. 무함마드의 충복이자 '알라의 검(Sayf Allah)'이라고 불리는 걸출한 군사 지도자인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Khalid ibn al-Walid)가 이끄는 이슬람군의 공세 앞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했고 시리아를 빼앗겼다. 동로마 제국은 총력을 기울여 반격에 나섰지만 2년 뒤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에서 벌어진 야르무크 전투(battle of Yarmouk)에서 때마침 불어온 모래폭풍 때문에 재앙에 가까운 대패를 당했다. 이슬람에게는 알라의 가호였고 기독교도들에게는 신의 외면이었다. 이 전투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 동로마 제국은 내분까지 겹치면서 80년 뒤에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포위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동로마 제국의 패배는 부패와 타락으로 약해져서라기보다 이슬람이 여태껏 본 적 없는 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슬람 특유의 복종에 대한 보상과 가차없는 처벌의 공포에서 비롯된 종교적 광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하디스>에 적혀 있다는 72명의 처녀 어쩌구는 죽음조차 불사할 만큼 그 동네 남정네들에게는 어지간히 매력적이었던 모양. 그 이유에 대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지하드를 수행하는 이들은 반드시 진심이거나 경건한 의도를 가져야 할 의무는 없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코란>의 냉정하고 사무적인 언어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하드를 수행하는 자는 누구든 알라에 좋은 대출을 해주는 것이며 알라는 그 대가를 여러 배로 보상해주는 것을 보장한다. "그들은 알라의 길에서 싸우며 죽이고 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맺은 이 거래에 기뻐하라." 죄에 대한 즉각적인 용서가 신자들에게 주어지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믿음이 약한 이슬람교도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면허가 되었다. 지하드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기도나 단식같은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여러가지 면제 혜택이 있었다. - p.36


땅에 쓰러져 죽어가던 이슬람 병사들은 지하드를 통해 죽은 자에게 약속된 천국의 미녀가 양팔을 벌이고 자신들을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여러 일화가 이슬람 연대기에 들어갔다. 한 이슬람 병사는 야르무크 강변에서 칼을 맞고 땅에 쓰러진 전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쳐드는 것을 보았고 그가 기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미녀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또다른 아라비아 지휘관은 깃발을 흔들며 병사들에게 "기독교도 개들에게 맹렬히 돌진하는 것은 미녀들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라고 외쳤다. - p.61


이집트는 기독교 인구가 많은 지역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슬람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초기 이슬람 연대기들은 수백년에 걸친 박해와 재정적 수탈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콥트인들이 샤하디를 고백하게 되었고 이로서 이집트가 오늘날과 같이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국가가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슬람 역사학자 타키알딘 알마크리지는 그의 방대한 이집트사를 통해 이슬람교도들이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도들을 학살 또는 화형에 처하고 그들의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삼았다는 여러 별도의 기록들을 전하고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많은 기독교도가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 p.77


이 책은 636년 야르무르 전투, 717년 콘스탄티노플 포위전, 732년 투르 전투,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1187년 하틴 전투,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1683년 빈 포위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와 이슬람이 벌였던 8번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균형적 시각이라기보다 백인 기독교도의 눈에서 본 이슬람의 침략에 맞선 기독교의 항전사이랄까. 이슬람은 악이요, 기독교는 선이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관점이 구석구석에서 와닿는 느낌. 저자는 이슬람의 잔혹함을 단순한 일부의 일탈이 아닌 교리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은 종교라고 매도하면서도 정작 그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기독교의 만행에 대해서는 마치 불가피한 선택인양 옹호한다. 흔히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코란"이라는 이슬람이 일부 지식인들의 막연한 환상마냥 다른 종교보다 더 관용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이교도들에게 덜 폭력적이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십자군 원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물론, 특히 근세에 와서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했던 아시아, 아프리카인들 입장에서는 말이다. 저자도 다이야 할당 못 채웠다고 손목이 잘려봐야.


실제로 10세기의 이슬람세계는 유럽의 생산물이나 천연자원을 소비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오직 유럽인들의 몸 자체만이 필요했다. 수요가 많은 것은 젊은 여성과 소년이었지만 10세기 중 거의 모든 연령과 계층, 그리고 대륙의 거의 모든 지역의 유럽인들이 사슬에 묶여 북아프리카나 서아시아로 향하는 배에 실렸다. 이 끊임없는 습격의 결과는 원인은 잊혔을지라도 잘 알려져 있었다. 점점 가난해지고 문맹이 되어가던 유럽인들은 해안을 떠나 고지대의 요새와 성으로 피신했고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어떤 영주나 기사에게든 충성을 맹세했다. 유럽의 '암흑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p.155


요컨대 사도 바울이 말한 기독교도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경건하고도 근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 형태의 공적 폭력을 용인하는 것은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용서의 교리에서 본질적인 모순은 없다. - p.214


서방 기사들은 동료 기독교도 기사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여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는 전투 중심이었고 전쟁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것이 그들이 잘하는 일이자 아마도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는 예수의 사랑과 평화의 명령을 어긴다는 죄책감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 - p.21


<코란> 제3장 28절은 타키야를 정당화하는 주요 구절 중 하나이다. "믿는 자들은 이교도를 친구나 동맹으로 삼지 말라. 누그든 그렇게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알라와 관계 없다. 다만 이교도를 조심해야 할 위험이 있을 때에는 예외로 하되, 신중하게 처신하라." "만약 이슬람교도가 이교도의 권위 아래 놓여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느낀다면 말로는 충성을 가장하되 마음 속으로는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품어라. 알라께서는 신자들이 이교도와 우호적이거나 친밀해지는 것을 금지하셨다. 다만 이교도가 권세를 가졌을 경우에는 예외이다. 그럴 때에는 그들에게 친근하게 굴되, 종교는 지켜야 한다." - p.309


역설적이게도 미화된 역사 속 다른 이슬람 제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아이들에 대한 유괴, 강제 개종, 지하드 세뇌 제도는 일부 주요 학자들에 의해 마치 아이를 좋은 교육 기관에 보내 성공적인 경력을 위한 훈련을 받게 하는 것에 해당하는 듯 묘사된다. 실제로는 세뇌와 비인간화라는 가혹한 시련을 견뎌낸 자들만이 이교도와의 전쟁에 대한광적인 욕구를 가진 사람으로 변신해 오스만 군대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바로 '새로운 병사'라는 뜻의 예니체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가족과 본래 신앙으로부터 납치한 책임이 있는 술탄에게 '개처럼 충성'했고 그들의 옛 가족과  신앙을 상대로 광란의 행동을 보였다. 이것은 기록에 남아 있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역사상 최초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증거였다. - p.328


샤리아에 따르면 언제 이교도와 평화 조약을 맺을 지 결정하는 요인은 상황이다. 이슬람 교도가 강할 때에는 공격을 지속해야 하고 약할 때에는 평화를 청해야 한다. 6장에서 보앗듯 개종을  가장하는 타키야가 그런 겨웅이다. 일반적으로 이교도에게 우위를 점하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하는 거은 선지자의 유명한격언 "전쟁은 속임수이다"에 근거한다. 그는 한 젊은 개종자에게 선지자를 조롱했던 늙은 유대인 시인을  속여 이슬람 교도가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하도록 만들 것을 허락했다. 유대인이 경계를 풀고 이슬람교도 청년을 신뢰하게 되자 그 청년은 노인을 암살했다. - p.351


제노바 상인이자 오스만 제국의 관습에 정통했던 야코포 데 캄피는 그 절차를 이렇게 묘사했다. "튀르크 황제는 벌하고자 하는 사람을 땅에 눕힌다. 팔로라고 불리는 날카롭고 긴 장대를 항문에 꼽고 집행인은 두 손으로 큰 망치를 잡아서 있는 힘껏 내리친다. 그러면 장대가 인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것이 지나가는 경로에 따라 불행한 자는 오래 고통을 겪다가 죽기도 하고 즉사하기도 한다. 그 후 장대를 들어서 땅에 꽂아 세운다. 그렇게 불행한 자는 최후의 순간을 맞게 되며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 p.352


쉴레이만의 전례없는 유럽 진출은 시기적으로도 최악의  순간에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오스만이 맘루크 술탄국의 광대한 영토를 흡수한 해인 1517년에 기독교 세계의 마지막이자 가장 혹독한 최악의 분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궁극적 결과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이익이 되었다. 가톨릭 성직자인 마르틴 루터는 이 때 역사적인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루터의 행위는 의도치 않게 이슬람 세력의 침입에 맞선 유럽의 단합을 약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아마도 가장 심각한 점은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 지도자들이 가톨릭 교황을 수십만의 기독교도를 학살하고 노예화한 책임이 있는 오스만 술탄보다 더한 '적 그리스도'로 묘사함으로서 일종의 상대주의를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만연한 이 상대주의는 가톨릭 역사 속 종종 왜곡된 사례를 끌어와서 지금도 계속되는 이슬람교도의 만행을 축소하거나 희석하는데 이용된다. - p.392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신생 독립국이었던 미국이 처음으로 치러야 했던 전쟁이 이슬람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한다. 북아프리카에서 미국 선박을 상대로 노략질했던 바르바르 해적 토벌전 말이다.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요근래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벌집을 건드려서 전 세계 기름값을 폭등시킨 것 또한 이슬람과의 기나긴 성전의 일환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듯. 내가 보기에는 그 양반에게 원대한 계획이 있다기보다 치매나 충동조절장애가 더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아무튼 "서방은 바뀌었지만 이슬람은 여전하다"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리고 서방의 정신이 해이해진 사이 이슬람은 지금도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사회 일각에서 잊을 만하면 북한 위협론을 들고 나오는 느낌이랄까.


물론 저자의 지적처럼 이성적인 서구 기독교도들에 비하여 탈레반이나 ISIS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우리네 세상에 훨씬 위험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동에서 깡패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이 과연 그들보다 덜 하다고 할 수 있으며 서방 또한 묵인하고 있지 않은가. 소위 '스트롱맨'을 자처하는 트럼프조차 이란 핵에 대해서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핵은 우리편이라면서 모르쇠로 일관하여 역시 만만한 적에게만 스트롱맨임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미국식 이중잣대에는 침묵한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이슬람은 서쪽의 기독교 세계를 끊임없이 위협했지만 동쪽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가령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인 것은 대항해시대 향신료 무역과 개종의 결과이지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어째서 오스만 제국은 유교 국가인 중국을 상대로 종교 전쟁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들의 칼끝은 동쪽이 아니라 언제나 서쪽으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또한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출판사의 소개글이나 옮긴 이의 말에는 영원한 숙적이었던 기독교와 이슬람 갈등의 역사를 담백하게 거론할 뿐, 저자의 특수한 배경이나 이런 내용의 책이라는 얘기는 쏙 빼놓고 있다. 처음부터 알고 번역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슬람이 탐탁치는 않지만 기독교 하는 짓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나로서는 교인이라면 몰라도 우리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 이슬람 포비아를 자극하여 교회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외친들 둘 다 도찐개찐 아닌가 싶기도. 어떻게 평가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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