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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평점 :
"우리는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력이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합체의 압력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 절차를 위험에 처하게 놔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직 의식이 깨어있고 지식이 풍부한 시민만이 거대 군산복합체를 평화로운 방법과 목표에 적절히 조화시켜 안보와 자유가 함께 번영하도록 이끌고 나갈 것입니다." - 1961년 1월 17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 연설에서
2025년에 개봉한 마르탱 부르불롱 감독의 프랑스 영화 <13일 낮, 13일 밤(13 Days, 13 Nights)>은 프랑스인의 눈으로 본 카불 최후의 날이다. 2021년 8월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 느닷없이 탈레반 군대가 들이닥친다. 그것은 50여년 전 사이공 함락의 데자뷰였다. 차이가 있다면 탈레반은 북베트남군대보다도 더 열악했고 아직 미군이 카불에서 철수하기도 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이자 기업가 출신으로 미국인들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자기 가족과 재산만 챙겨서 제일 먼저 달아난 것이나 우두머리를 잃은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무너진 것은 그때와 똑같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제아무리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30만 명의 병력과 현대적인 중화기로 무장한 아프간 군대가 7만명에 불과한 게릴라들에게 패배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카불의 함락은 기습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아프간 정부나 서방인들 밑에서 일하던 '부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뒤늦게야 탈레반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려는 엑소더스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운좋게 탈출한 일부는 운명을 탈레반에게 맡겨야 하는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떠나는게 이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이다.

마치 <세계대전Z>에서 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좀비떼를 연상시키는 탈출 러시. 현실에서 맞딱들이면 평생 잊지 못할 PTSD가 될 듯.
당시 대부분의 미군이 철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천여명의 병력이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프간군과 함께 탈레반을 카불에서 쫓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마치 달아나듯 오히려 철수를 서둘렀고 아프간인들 전체가 버려졌다. 그렇게 끝날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쪽이 서로를 위해 좋았을 터인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이 또 한번 상처만 남긴 채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철수할 때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가 "북베트남이 쳐들어온다면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지키지도 않을 립서비스로 남베트남인들을 희망고문했다면 바이든은 훨씬 신랄했다. 미국이 20년 동안 1조 달러가 넘는 거액을 써서 아프간인들을 훈련하고 무장했는데 탈레반과의 싸움에 쓸모가 없었으며 스스로 싸우려고 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미군이 대신 목숨을 바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프간인들 입장에서는 뻔뻔하고 가당찮은 소리였을 것이다. 애초에 미국이 아프간인들에게 자립할 기회를 주었던가. 한 나라를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책상물림 학자를 다루기 좋다는 이유로 권좌에 올린 것도 미국이고 겉만 번드르하고 껍데기 뿐인 군대를 만든 것도 미국이었다. 바이든이 거론하는 1조 달러 중에서 일부라도 제대로 쓰였다면 아프간군이 그토록 부패하고 타락한 군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탈레반이 다시 득세하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미국 납세자들은 아프간 전쟁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바쳤지만 대부분은 아프간인들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낭비되거나 워싱턴의 정치인, 관료들과 결탁한 미국 군납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였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졌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들에게는 손해 본 장사가 아닌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의 변명은 자기 기만이자 그동안 자신들이 충분히 재미를 보았고 더 있어봐야 재미가 없으니 내팽개쳤다는 것이 진짜 속내일 것이다. 아프간만이 아니라 남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되풀이된 미국의 한결같은 방식이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떠났다고 해서, 백악관의 주인이 민주당의 바이든이 아니라 공화당의 트럼프나 설령 또 다른 사람이 차지한다고 해서 미국의 전쟁기계가 멈추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다. '위대한 미국의 부흥'을 내세워 당선된 트럼프는 그 방법이 대다수 소시민들을 위해 풍요롭고 안전하게 사는 나라가 아니라 소위 황금 함대나 골든 돔처럼 크고 알흠답지만 돈만 먹고 실속 없는 무기를 만들겠다는 식이다. 그는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전임자들을 비난하면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했음에도 막상 권력을 잡자 누구보다도 전쟁에 진심이다. 교육과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국방 예산에 죄다 때려넣었지만 막상 그 수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거는 병사들이 아니라 워싱턴의 높으신 분들과 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들의 몫이다. 이쯤되면 국가적 차원의 사기라고 해야.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탐욕스러운 정치인과 관료, 업자들이 합작하여 만든 미국의 전쟁기계가 무한 자가 증식하면서 미국만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같은 만만한 동맹국들까지 먹잇감 삼아 마수를 뻗히고 있다. 과연 그 마지막은 어디일까 싶다.

부키에서 나온 신작 도서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은 냉전 종식 이후 싸울 상대를 잃은 미국이 군축 대신 군산복합체라는 괴물이 되어 마치 불교에서 영원히 먹을 것을 찾아 헤메는 아귀마냥 자신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끝없이 전쟁을 갈구하게 되었는지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군사 외교 싱크 탱크인 퀸시책임국정연구소(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의 선임 연구원인 윌리엄 D. 하텅과 벤 프리먼.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단체는 2019년에 처음 창설되었고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등 무력 일변도 정책에 반대하고 군비 감축과 외교적 해결주의를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퀸시라는 이름은 19세기 초반 미국 제6대 대통령이자 전임자인 먼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냈던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가 "미국은 파괴할 괴물을 찾아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에서 따온 것. 하지만 그가 제창한 소위 먼로주의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폭력주의가 아니라 대서양 서쪽은 내 나와바리니까 유럽이 침 바를 생각하지 말라는 상호 불간섭주의와 아메리카에서의 패권주의에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 특유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랄지. 이스라엘의 호전적인 행태를 비판하여 유대인 단체들의 눈엣가시이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나쁜 쪽은 전쟁을 일으킨 푸틴이 아니라 그를 전쟁의 길로 이끌게 만든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 탓으로 돌리면서 욕을 거하게 먹기도.

저자인 윌리엄 D. 하텅(왼쪽)과 벤 프리먼(오른쪽). 아재 둘이서 공저했지만 여느 칼럼 모음집처럼 각자의 파트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캐 협업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스펙 좋은 양반들이 뭔가 함께 도모하기란 부자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던가.
오늘날 전쟁 국가 미국을 상징하는 '군산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은 미-소 군비 경쟁이 본격화되던 1961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퇴임식에서 처음 거론하면서 유명해졌다. 사실 미국이 전쟁 국가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세기 초반에만 해도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1% 남짓에 불과했고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상비군이 유럽 대륙 전체보다 넓은 땅을 방어했다. 물론 240년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15년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빈말로도 미국을 가리켜 평화 애호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전쟁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뒷북 참전했을 때에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무기가 없어서 프랑스군에게서 빌려썼을 정도였다. 패전 일본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 승차하고 경제에 올인한 덕분에 미국의 아성조차 위협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미국 또한 신생국가에서 두 세기만에 세계 최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군비를 억제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전쟁에서 나온다고 카더라"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과도한 군비가 국가의 잠재성장을 얼마나 갉아먹으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쪽에 썼더라면 우리네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웠을 것임이 분명하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치솟는 미국의 국방비. 물론 물가상승도 고려해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전쟁 때만 잠시 국방비가 폭등했다가 전쟁 끝나고 원래상태로 돌아갔다면 이제는 다음 전쟁을 대비한다며 끝없이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미국의 전쟁 기계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거대 방산기업들이 빨대를 꽂고 꿀을 빨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국은 자칭 '민주주의 병기창'이라며 민주주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제공한다고 강조하지만 뻔뻔한 위선이다. 실제로는 돈벌이만 되면 상대가 어떤 독재자이건 알빠노라면서 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여태껏 보여준 모습이다. 여기에는 공화당, 민주당 어느 쪽도 자유롭지 못하며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
미국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무기 시장의 43% 이상을 장악했는데 러시아의 3배, 중국의 6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미국은 전 세계 107개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지구상 국가의 절반이 넘는 숫자이다. 왜 미국은 그렇게 많은 무기를 판매할까. 국방부나 국무부 관리에게 묻는다면 아마 미국산 무기가 안정을 강화하고 동맹국이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 무기는 불안정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증폭한 경우가 많았다. 미국산 무기는 세계 대부분의 분쟁에 불을 지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병기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비민주 정권에 수시로 공급된다. - p.41
평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전쟁을 부추긴 민주당 대통령은 바이든만이 아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도 자신의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과 같은 행태를 보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103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제안했는데 2024년 바이든 행정부의 무기 판매 제안 규모와 맞먹는 규모이다. 그 제안의 절반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거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2014년부터 그 무기 상당수를 예멘에서 벌어진 잔혹한 전쟁에 사용했다. 무차별 공습과 식량 의료품 봉쇄로 민간인 약 4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 p.45
1930년대까지도 결코 군비 과다 지출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의 군수산업은 진주만 기습과 제2차 세계대전에 발을 들이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음먹고 포텐셜을 터뜨린 미국은 자신은 물론 영국, 소련 등 다른 동맹국들에게도 랜드리스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물자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여유까지 보여주며 다른 경쟁국가들의 기를 꺾어 놓았다. 문제는 더 이상 예전의 아싸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포텐셜을 너무 크게 터뜨렸다는 사실이었다. 전 세계가 미국의 힘을 경외했다. 역사상 어떤 대제국도 꿈꾸지 못한 천조국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한번 고삐가 풀린 군산복합체들은 여전히 미국은 안전하지 못하다며 새로운 적을 끝없이 만들어 내었고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여 더 많은 무기 생산에 자원을 쏟아붓게 했다. 처음에는 소련과의 체제 경쟁이었다. 그 경쟁을 버텨내지 못한 소련이 제풀에 망하자 다음은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가 언젠가 미국을 잡아먹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후임자들이 한 귀로 흘린 결과였다. 그보다도 그가 경고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는 미국 정치인들은 무한 증식하는 군산 복합체에 재갈을 물리려고 애쓰기는 커녕 도리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앞장서는 판국이었다. 이 책은 400여 페이지에 걸쳐서 군산 복합체들이 어떻게 미국의 힘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미국의 무기가 미국인 자신을 위협한 경우는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전쟁 기계의 위험은 미국 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미국이 무기 개발에 점점 더 많은 시간과 정신, 돈을 쏟아붓는 동안 세계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가장 위험한 사태 중 일부는 미국의 정책이 촉발한 결과였다. 예컨대 1953년 미국은 영국, 당시 이란의 샤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와 협력하여 이란에서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모하마드 모사다케를 축출했다. 이 쿠테타는 이후 수십년 간 적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오늘날까지 중동을 더욱 위태롭고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쿠데타가 없었다면 이란인들은 1979년 혁명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이란은 지금처럼 군사화된 국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 p.62
오늘날 F-35는 요구된 임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많은 폭탄을 탑재하기에는 기체가 너무 가볍다. 공중전에서는 이전 세대 전투기들보다 열세이다. 게다가 유지 보수가 너무 어려워 거의 절반의 시간을 격납고에서 정비받으며 보낸다. 프로그램이 시작된지 20년이 지난 2022년에도 여전히 800건이 넘는 결함이 해결되지 않았고 이 중 6건 가량은 조종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P.111
2023년 12월 기준으로 미국 해군과 공군, 해병대는 약 400여대의 오스프리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적에게만큼이나 어쩌면 적보다 더 승무원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오스프리는 지금까지 10건의 치명적 추락 사고에서 무려 64명의 사망자를 냈다. 가장 최근 사고는 2023년 11월 29일 일본 해안에게 발생했으며 추락으로 탑승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러한 결함에도 국방부가 여전히 오스프리를 다시 운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130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지표에서 연안전투함은 철저한 실패작이었다.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한 때보다 10여년 전부터 연안전투함의 치명적인 결함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이 함정은 당초 계획보다 비용이 2배나 들었고 균열과 부식 문제에 시달렸다. 심지어 미국 국방부 산하 시험평가국조차 "연안전투함은 적대적 전투 환경에서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곧 이름에 전투라는 단어가 들어간 함정이 실제 전투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p.187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허위 주장을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게 무기를 떠넘기는데 수업이 이용해왔듯 국방부 계약업체들은 동시에 또 다른 강력한 영향력 무기를 동원한다. 바로 선거 자금이다. 그들은 의회와 대통령이 자기네 뜻대로 움직이도록 달래기 위해 선거 자금을 댄다. 로비 관련 비영리 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방위산업 부문은 2024년 선거운동에 최소 3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선거 자금은 방산업체들에 유리한 쪽으로 저울을 기울일 수 있는 정책결정자들, 즉 대통령 후보와 군사위원회 또는 국방 세출소위원회에 몸담은 의원들에게 집중적으로 흘러갔다. 한마디로 국방부 예산의 규모와 구성을 좌우하는데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이들에게 돈이 간 것이었다. - p.202
1980년은 학문적이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싱크 탱크의 모델이 뒤집힌 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정치적 옹호 활동으로 결정적 전환을 선도했다. 이 재단은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에 대응하는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로 여겨졌다. 헤리티지재단은 그해 <리더십을 위한 명령>이라는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자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가 레이건 행정부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리더십을 위한 명령>이 발간된 후 45년이 지난 오늘날 싱크탱크 부문은 점점 더 당파적이고 정치 활동에 적극적이며 특정 이해관계 집단의 자금에 의존하는 성격을 띄게 되었다. - p.225
왜 부시 행정부의 거짓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보가 일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신중한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랜데이는 그 이유가 단순히 뉴스룸과 언론 경영진의 태도에 그치지 않고 9.11테러 이후의 광범위한 대중 정서에까지 뻗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기를 흔들어대며 즉각 분출된 국수주의는 실로 엄청났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많은 언론사가 "분위기를 거스르거나 행정부에 맞서는 보도를 함으로써 매출을 잃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 p.289
2019년 할리우드 상공에서 선더버즈가 멋진 편대 비행을 펼쳤다. 이는 새 영화 <캡틴 마블> 개봉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더버즈가 상공을 날아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조종사들이 제복을 입은 채 영화 시사회 레드 카펫을 밟았다.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이유는 <캡틴 마블>이 아마 공군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광고였기 때문이다. 공군이 <캡틴 마블>에 개입한 수준과 그로부터 얻은 효과는 놀라울 수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전투기를 직접 타고 군의 사실상 홍보 대사 역할을 맡는 일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캡틴 마블>과 미군의 유착은 오늘날 대형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군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사실상 국방부의 지원 덕분에 제작된 영화를 본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10
팔머 러키, 피터 틸, 일론 머스크와 이들의 동료들은 반정부 정서가 강하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 그렇기에 세계 정세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이 순간에 미국의 군사 정책을 설계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곧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이미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년 동안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주요 무기 제조업제들이 선호하는 접근법과 달리 실리콘 밸리의 많은 군사 신기술 옹호자들은 당파성이 철저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J.D.밴스같은 주요 공화당 후보들에게 돈과 영향력을 쏟아붓는다. 틸과 머스크는 모두 강한 반민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틸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발전시키고 완성해야 할 정부 형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 P.357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이 전쟁을 수출하고 친미 독재자들의 뒷배 노릇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민주주의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자정 능력이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후 병력은 줄었지만 국방비는 되려 치솟고 있고 그 돈은 군인들의 복지가 아니라 방산업체들이 만든 최첨단의 탈을 쓴 쓰레기 무기들을 구매하는데 쓰이고 있다. 게다가 아무도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 일부 언론에서 폭로하고 내부 고발로 이슈가 되어도 마지막에 꼬리를 내리는 쪽은 방산업체가 아니라 미국 정부이다. 거대 권력인 미국 정부가 방산업체들을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산을 심의하는 의원들이 이들의 집요한 로비에 굴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돈 앞에 장사 없다는 것.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실무를 맡은 보좌관, 장군들, 국방부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감아 주는 대가로 퇴임 후 두둑한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약속받는다. 우리만 해도 공직자들의 전관예우와 부패방지를 위해 공직자 윤리법이나 취업 제한과 같은 엄격한 윤리 잣대를 들이대고 있고 미국 또한 유사한 규정이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눈치껏 빠져나갈 구멍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이다. 언론과 할리우드 역시 방산업체의 강력한 우군이다. 가령 영화 <탑건>은 결코 현실의 공중전과는 거리가 먼 오락물이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F-14의 멋진 자태와 훈남 조종사들의 우정은 관객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공군의 높으신 분들에게도 판타지를 심어주었다. 일본 항공자위대에서 이 영화보고 F-14를 사려다가 울며겨자먹기로 F-15를 샀다는 얘기도.

우리 공군의 F-35 라이트닝-II 전투기. 1990년대만 해도 골동품인 F-4/5가 주력이고 F-16이 최강 전력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가격만 비싸고 온갖 고장으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속없다는 얘기. 어차피 우리같은 밀덕이야 얼마나 돈값하느냐보다 스텔스 전투기라는 타이틀과 스마트한 외형, 할리우드 영화에서 외계 괴수들과 맞짱 드는 이미지가 더 중요한지라.
그동안 미국이 세계 경찰을 하면서 분쟁을 억제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 일본, 유럽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의 득을 톡톡히 보았고 당장 트럼프가 몽니를 부리며 여차하면 나토와 결별할 수도 있다고 으름짱을 놓자 유럽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 말이다. 책의 추천사에도 저자들이 미군의 축소로 인한 힘의 공백과 동맹 불안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트럼프가 값비싸고 문제많은 무기들을 동맹국들에게도 더 이상의 공짜 점심은 없다면서 강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덩치가 커질대로 커진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까지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얘기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군산복합체의 CEO들이 탐욕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도덕 윤리까지 결여된 인간들이 많다는 점이다. 저자는 기술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자들이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효율만 앞세워 AI를 이용한 살인 병기를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말라고 누가 장담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여기 나온 내용이 미국에만 해당되는 얘기이던가. 엊그제 선관위가 전대미문의 사고를 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지만 자신들을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여기는 집단들은 얼마든지 있다. 수십년 군부 독재의 배설물인 장군들의 전관예우, 군과 방산업체의 결탁, 군납비리, 도덕적 해이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며 민주화된 지금까지도 그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방산 카르텔은 안보를 방패삼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면서 조금이라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 사방에서 벌떼처럼 달려든다. 북한 위협론을 과장하고 끝없이 재생산하면서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여 더 많은 국방비를 쏟아넣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들의 행태는 이 책에 등장하는 미국 군산복합체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 언론, 학계 또한 침묵하거나 대변인 노릇을 한다. 우리 국민들은 모르는 게 약이라는 식이다. 물론 스텔스 전투기나 이지스함같은 첨단 무기의 도입이 국민들의 자긍심과 안보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얼마나 실속이 있건 둘째치고 말이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과도한 군비 투자는 우리의 국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한 세기 전 세계 바다를 지배했던 대영제국이 몰락한 것도 독일과의 무리한 건함 경쟁 때문이었고 소련이 무너진 것이나 오늘날 미국이 쇠락의 길을 걷는 것 또한 이 때문임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