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 권지현 옮김 / 아카넷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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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는 않았지만 주한 외국인들의 토크 대결을 다룬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쪽 패널로 출연한 바 있다는 벨랴코프 일리야씨가 쓴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라는 책에서는 러시아인들이 바라보는 푸틴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독재자가 아니다." 왜나하면 소련 시절 '진짜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푸틴의 방식은 독재 축에 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러시아의 아버지'다운 강력한 지도력으로 부패 관료들을 때려잡고 소련 붕괴 이후 나락으로 향하던 러시아 경제를 안정시켰으며 푸틴 치하에서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고 여긴단다. 그의 높은 지지율이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죄다 조작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어차피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보니 푸틴이 조금 잘못을 해도 그보다 더 나은 놈이 없다는 이유로 신경끄고 산다고.

그리 따지면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도 '중국식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상 천지에 독재국가가 어디에 있겠냐 싶지만 어쨌든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한 동물인데다 '감각순응'이라고 하여 지옥을 맛본 사람일수록 어지간한 일에는 둔감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우리야 푸틴을 독재자라고 욕하면서 그 옛날 루이16세나 니콜라이 2세처럼 오래지 않아 철권 통치에 분노한 러시아 국민들에 의해 타도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래서야 어림없을 듯 하다. 예전에 좌파 인권 운동가들의 칼럼을 모은 <우크라이나 전쟁,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각축전>에서는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고 지성과 양심을 갖춘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푸틴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주장하던데 이 양반 설명에 따르면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인 셈. 옳고 그름을 떠나서 러시아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우리가 어쩌겠는가.

책 제목대로 저자의 사견이 한가득 담겨 있다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지구에 살면서도 러시아가 얼마나 멀고도 먼 나라이며 서로의 사고방식이 동떨어져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극단으로 치닫게 된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은 먼저 서방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집권 초기에도 서방에 유화 제스쳐를 취했음에도 서방이 약속을 깨고 나토를 동진시켰기 때문이라는 것.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뉴코비치가 쫓겨난 것이 미국의 음모이며 친서방 정권이 러시아를 적대하고 나토를 끌어들이려고 했음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러시아 입장에서의 아전인수랄까. 우리로 치면 일본인이 일본의 조선합병을 고종의 반일정책과 어차피 그 시절 일본이 아니었어도 누군가 조선을 먹었을 것이므로 죄가 없다고 하는 꼴이니 우크라이나인들이 들으면 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결코 오해해서 안 되는 점은 인과관계가 거꾸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푸틴은 입만 열면 서방의 동진을 비난하면서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타령했지만 정작 서방과의 관계를 파토낸 것은 푸틴 자신이었다. 푸틴이 처음 러시아의 권좌에 앉았을 때만 해도 서방과의 관계는 화기애애했다. 그는 서방을 핵무기로 위협하던 구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프랑스 언론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의 <노르트스트림의 덫>에는 푸틴이 2000년대 내내 독일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나 앙겔라 메르크를 비롯하여 서방 지도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언급한다. 러시아는 서방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그 대가로 경제 원조를 얻어냈다. 심지어 푸틴에 감화된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국의 최신 군함인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러시아에 판매하기로 했다. 이대로만 계속되었다면 한 세기 전 짜르가 꿈꾸었던 프랑스-독일-러시아 3국 연합이 실현되었을지도 모른다.

2011년 프랑스가 러시아에 넘기려고 한 미스트랄급(Mistral-class) 강습상륙함. 핵항모인 샤를 드골을 제외하고 프랑스 해군에서 가장 큰 군함으로 배수량 2만톤에 16대의 대형헬기, 전차 40대, 병력 450명을 수송할 수 있으며 지휘통제함으로서 기능을 갖추었다. 프랑스가 자국의 최신 기술이 집약한 군함을 러시아에 판매할 만큼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푸틴의 욕심이 망쳤다.


문제는 푸틴이 서방에게는 비굴하리만큼 추파를 던지면서도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만만한 주변의 구소련 형제들에게는 옛날 버릇을 못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는 친러 주민들을 선동하고 무기를 제공하여 혼란을 부추겼으며 공공연히 선거에 개입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은 주먹맛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할 때만 해도 유고슬라비아처럼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민족간의 갈등이 극심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내전과 러시아로의 이탈로 이어진 것은 푸틴이 막후에서 부추긴 결과였다. 2014년 2월 자신이 오랫동안 공을 들인 야뉴코비치가 부패 문제와 장기집권을 노리다가 분노한 국민들 손에 쫓겨나 러시아로 망명하자 뻔뻔하게도 서방의 음모론을 내세우며 1주일 뒤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것은 선을 넘은 것이었고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를 한방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푸틴은 덩샤오핑의 인내심을 배워야 했다. 서방은 그의 민낯을 깨달았고 지금까지의 제스쳐가 진심이 아니라 자신들을 방심시키려는 방편이라고 결론내렸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프랑스는 2척의 상륙함을 러시아가 아니라 이집트에 넘기기로 했다.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무장을 해제했던 나토는 러시아에 대비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로부터 존립 자체를 위협받았다고 여긴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에 나섰다. 푸틴은 외교적 해결책 대신 가면을 벗고 더 이상 서방의 비위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그 결과가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푸틴의 속셈은 서방을 직접 위협하지 않되, 그 대가로 구소련 시절의 세력권을 자신의 '나와바리'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 소련 형제국들을 동등한 주권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속국으로 여긴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그는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냉전 종식과 함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실체 없는 나라이며 원래는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떠들고 있다. '나토의 동진'에 그토록 발끈하는 것도 서방이 정말로 러시아를 무력으로 위협한다기보다 내 똘마니들 멋대로 빼가지 말라는 것. 하지만 서방에 불신감을 드러내기 앞서 구소련 형제국들이 러시아를 그토록 질색하는 이유부터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푸틴은 벨라루스의 루카센코처럼 코드 맞는 독재자들에게는 든든한 뒷배노릇을 하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 드골과 독일의 아데나워가 보여준 것같은 역사적 화해나 진정한 이웃이자 형제로서 존중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는 더 이상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구소련 시절 KGB에서 배운 습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토 동진에 일조한 발트 3국이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러시아 대신 친서방으로 돌아선 것도 푸틴이 하는 것마냥 서방이 그들 지도자들을 매수해서가 아니라 푸틴의 오만한 태도가 그렇게 내몬 결과이다.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쫓겨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호화저택. 친러정서가 강한 동부 출신인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흔한 부패 정치인이자 그 동네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부정의혹으로 물러나야 했고 6년 뒤 다시 당선되었지만 푸틴의 충복 노릇을 하면서 국가적 분열과 부패를 한층 조장하고 우크라이나군을 무력화시켰다. 우크라이나판 을사5적인 셈. 시위대에 유혈진압을 지시했다가 궁지에 몰리자 러시아로 달아나 푸틴의 보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러시아 국민들 또한 푸틴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배울만큼 배웠고 한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일리야같은 사람조차 뻔한 레파토리를 앵무새마냥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세뇌의 무서움일까.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러시아 참전 군인의 아내가 남편더러 우크라이나 여자를 성폭행해도 된다는 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부차를 비롯하여 러시아군이 철수한 장소에서는 학살과 약탈, 강간, 고문의 수많은 전쟁 범죄 현장이 발견되었으며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아동들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화를 명목으로 러시아 가정에 강제 입양되었다. 이것이 죄다 그동안 서방이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을까. 90여년 전 독일 국민들은 서방이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했다면서 히틀러의 침략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나치의 전쟁범죄에 가담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피해자가 아니라 엄연한 공범이었다. 단지 한 나라 전체를 전범으로 처벌할 수 없었을 뿐이다. 러시아인들 역시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폭발한 뒤 국내에도 서방과 러시아의 문명 충돌을 다룬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그 전에도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 등 국지적 분쟁은 많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네 세상이 위기라는 얘기. 지난 2월 아카넷에서 나온 신작 도서 <서방의 패배>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Emmanuel Todd)는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주로 인류 통계학적인 관점에서 가족의 구조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한다고. 그래서 이 책 내내 가족이 어쩌구 타령을 하더라는. 특히 냉전이 한창이던 1976년에는 소련 붕괴를 예견하고 2002년에는 미국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주장하여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양반들이 흔히 그러하듯 사고가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 논란도 많은 모양.

이 깐깐해 보이는 할배가 저자인 에마누엘 토드. 아버지는 기자, 할아버지는 작가였으며 무려 고등학생 시절 프랑스의 유명한 68혁명이 폭발하자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보통 싹수가 아닐세. 1951년생이니 나이가 75살인데 아직도 왕성하게 글을 쓰는 모양.


<서방의 패배(The Defeat of the West)>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저자의 가장 최신 저서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난 서방의 모순과 어째서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지를 지적한다. 문제는 특유의 반골 기질로 서방은 신랄하게 까는 반면, 푸틴에 대해서는 마치 그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한없이 우호적이며 근거와 잣대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 덕분에 러시아 쪽에서는 당연히 호평을 받았다고.

가령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식 표현인 '특수 군사 작전'이라고 부른다. 푸틴은 돈바스의 친러 세력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수도 키이우까지 진격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우크라이나 정복을 노렸고 우크라이나인들의 격렬한 항전으로 무려 4년 넘게 싸우고 있음에도 이 양반 기준에는 아무튼 전쟁은 아닌 모양. 중일전쟁을 당시 일본 지도자들이 국제 사회의 제재를 피할 요량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아전인수식 용어인 '지나사변'이라고 부르는 격이랄까. 중국인들이 노발대발할 듯. 그리 따지면 소련-아프간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도 전쟁이 아니며 1940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 또한 특수한 군사 작전이라고 해야 할 판.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조된 러시아를 향한 구소련 국가들과 서방의 경계심을 '자격지심'에서 나온 실체없는 공포심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러시아에는 스탈린 시절과 달리 저출산과 인구 감소로 유럽을 위협할 힘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구 소련 시절 얼마나 축복을 받았으며 만약 이들이 처음부터 순순히 돈바스를 포기했다면 지금처럼 고통 겪는 일도 없었을 거라도 단언한다. 물론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며 스탈린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독재자의 모델이 스탈린만 있는가. 푸틴이 스탈린이 아니라고 해서 독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흐루쇼프를 비롯하여 구 소련 시절의 지도자들 역시 스탈린은 아니었으며 리비아 카타피, 이라크 후세인, 우간다 이디 아민 또한 스탈린은 아니었다. 이디 아민은 잔인함에서 본다면 스탈린도 벌벌 떨었을 듯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스탈린은 레닌과 달리 공산 혁명의 확산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푸틴보다 훨씬 신중하고 교활했다. 적어도 답이 없는 전쟁에 매달려서 4년 넘게 수렁에서 허우적 거린 적은 없었다.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소련을 다스리는데 만족했을 것이다.

러시아에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바로 저출산이다. 저출산은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러시아는 동원 가능한 남성 인구가 감소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유럽을 장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환상이나 선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구가 감소 중인 러시아는 국토 면적이 170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여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미 보유한 영토를 어떻게 계속 점유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 p.57

러시아는 천연자원과 노동으로 살아간다. 자국의 가치를 세상에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머지 세계'를 경제적으로 착취하거나 자국의 문화를 수출할 능력도 없다. '나머지 세계'의 노동으로 살아가고 니힐리즘적인 문화를 자랑하는 미국에 비하면 러시아는 '나머지 세계'에 더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소련은 최초의 탈시민지화에 엄청나게 이바지했다. 이제 많은 국가가 러시아가 두번째 탈식민지화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 p.281


저자의 말마따나 러시아가 미국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자국의 헤게모니를 무력으로 투사할 능력은 없다고 해도 적어도 국경을 맞대고 주먹이 직접 닿을 수 있는 만만한 구소련 형제국이나 시리아같은 친러 국가들에게는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2008년에는 조지아가 반러의 기치를 들었다는 이유로 응징했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평화 유지를 명목으로 개입했으며 시리아 내전에는 중동의 맹우인 아사드 대통령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사병집단인 바그너 군단을 보내어 반군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 밖에도 미국만큼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여기저기 끼어들고 있다. 저자가 직접 겪을 일이 없다보니 와닿지 않는 모양.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홀로도모르로 한정해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농업국가인 우크라이나가 스탈린에 의해 순교자가 되었지만 반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우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 첨단 항공 산업과 군수 산업을 포함한 산업 우선 개발 지역이 되었다. - p.72

나는 200년 전부터 소련, 즉 러시아의 지배로 동유럽의 현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주장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쇼언바움의 실용적인 본능은 옛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의 러시아 혐오가 그저 옛 지배자에 대한 무의식적으로 감추어진, 수용할 수 없고 용납되지 않는 역사적 부채에 기인했다는 것을 내가 확인해주었다. - p.119


이건 우크라이나판 식민지 근대화론이랄까. 일부 학자들이 내세우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맹점은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공장을 지어준 것이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이나 이들이 기부천사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공장들은 일본의 기술과 자본으로 돌아갔기에 식민지인들로서는 다소의 일자리는 얻었을지 몰라도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오히려 그로 인하여 조선 경제는 일본 경제의 하청으로 예속되었으며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자생할 수 있었던 기회를 박탈당한 꼴이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그들이 남긴 공장들은 대부분 고철이 되었고 경제가 마비되는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조선만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한 뒤 겪거나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일이며 우크라이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름 좌파 지식인이라는 양반이 이런 뻔뻔한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는 지배하는 쪽이지 지배받는 쪽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구 소련 영역이 붕괴한 뒤로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은 더는 함께 살고 싶지 않아서 사이좋게 헤어졌다. 지배 세력이었던 체코인들이 지배권을 포기한 것이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사이가 더는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지역은 분리시키고 모두가 인정하는 세력 중 일부의 도움을 받아 국민국가의 건립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는 돈바스와 그곳의 러시아 주민을 되찾으려고 전쟁을 계속했으며 크림반도와 그곳에 거주하는 러시아 주민들을 되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 그러니까 자국보다 힘이 훨씬 센 나라의 주민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 p.99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 놈의 알자스-로렌을 놓고 독일과 두번이나 세계대전을 초래했던 프랑스인이 할 말은 아닐 듯 하다. 하물며 돈바스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강탈한 땅도 아니고 푸틴이 무력으로 사정없이 진압했던 체첸처럼 처음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했던 지역도 아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을 때 돈바스와 크림반도는 러시아로의 편입 대신 우크라이나에 남는 쪽을 선택했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국민 통합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이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어느 나라가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이유로 자국 영토를 함부로 포기할 수 있을까. 설령 돈바스를 러시아에 내준다고 해서 푸틴이 여기서 만족할 거라고 누가 장담한다는 말인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놓고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편을 들어 체코의 양보를 종용했고 체코 또한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세계대전의 폭발이었다. 서방이 푸틴의 야심을 경계하는 것은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틴은 서방의 불신을 푸는 대신 크렘린 궁전 깊숙한 곳에 앉아서 핵공갈만 일삼고 있다. 누가 그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낱 책상물림 학자인 저자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떠들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인들로서는 자기 결정에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공산주의로의 사회 변환과 능력 위주의 소련식 교육으로 만들어진 러시아 중산층도 나머지 국민과 마찬가지로 푸틴 시대의 사회적 평화를 누린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앞에서 보았던 자살률, 살인율, 알코올 중독에 의한 사망률 감소이다. 유아 사망률은 러시아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정신적, 사회적 분위기의 효과이자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실랴펜토흐는 자유를 포함하여 러시아의 생활 환경이 푸틴 때만큼 좋은 때가 없다고 강조한다. - p.55

우크라이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태동하는 우크라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저널리즘적인 사고는 명백히 부조리하다.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정체성에 근거한다. 유럽과 아메리카노스피어를 다룬 꼭지들이 보여주듯이 서방은 더는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아니다. 서방이 지금 어떤 세계인지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만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겹치는 가치가 많고도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가치가 민주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 p.104

서방에서 가장 많은 보호를 받는 소수는 바로 부자들이다.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자이든 올리가르히든 보호받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따라서 '자유주의적 과두제'가 되었다. 전쟁의 이데올로적거 의미는 바뀐다. 서방의 자유민주주의가 러시아의 권위주의와 싸우는 것이라는 지배적인 생각은 실제로는 서방의 자유주의적 과두제와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의 대결이 되었다. - p.137


저자는 푸틴의 러시아를 가리켜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는 서구가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정치가 우크라이나인들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리 따지면 러시아는 그렇지 않은가. 러시아 또한 모스크바 시민과 변방의 소수민족들이 같은 권리를 누리지 않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푸틴이 러시아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발전시켰다면서 극찬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놀라운 성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러시아의 1인당 GDP는 서방은 커녕 튀르키예만도 못하며 석유와 천연가스, 일부 무기 분야를 제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네임드 있는 기업이나 제품이 있는가. 러시아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북한이나 캄보디아보다도 짧다.

우크라이나가 서구의 잣대에서 미흡할지는 몰라도 지금의 통치자인 젤렌스키는 시진핑이나 푸틴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임자와의 밀실야합으로 자기들끼리 권좌를 주고 받는 식이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택을 받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적어도 푸틴이 20년째 장기집권하는 러시아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젤렌스키가 링컨은 아니라도 더 오랫동안 집권하고 더 부패한 쪽은 그가 아니라 푸틴이다. 민주주의 실험을 한 지 불과 30년 밖에 안 된 나라더러 저자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도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저자의 생각처럼 민주주의 동맹이라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서방 자신의 위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푸틴이 캅카스에 있는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에는 서방은 방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조지아는 서방에서 멀고 우크라이나는 가깝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소리와 달리 러시아 군대는 병사를 아끼기 위해서 느린 전쟁을 선택했다. 찔끔찔끔 진행되었던 동원령과 전쟁 초기에 체첸 군대와 바그너 그룹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그런 선택이다. 러시아의 우선순위는 최대한 많은 영토를 차지하지는 것이 아니라 병력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2022년 가을 대동원령 이후 벌어진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3대1의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동부 하르키우주를 포기했고 남부에서는 싸우지도 않고 드니프로강 좌안으로 철수했다. 이 결정을 내린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은 쓸데없이 병사를 희생하지 않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p.58


저자는 저출산의 압박을 받는 푸틴이 스탈린과 달리 나름대로 인명을 아끼는 전쟁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는 거라고 주장한다. 서방의 주장처럼 병사들을 무한정 갈아넣지 않는다는 얘기.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정말로 지도자로서 책임감이 있다면 애초에 전쟁 대신 주변국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더욱이 기왕 시작한 이상 본전이라도 찾겠다며 출구없는 전쟁을 질질 끌고 심지어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고 국제사회의 왕따인 북한한테까지 가오 안 서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 과연 러시아 병사를 아끼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말인가. 이 쯤 되면 저자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 책에서는 서방이 푸틴과의 대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위 '개신교의 좀비화'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은총을 잃고 기존의 가족 제도가 해체되었으며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와 동성애가 확산되면서 출산율이 저하된 탓이라나. 왜 기독교가 아니라 굳이 개신교라고 콕 찍어서 지칭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국은 그렇다쳐도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 아니었음? 그러면서도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의 부상은 유교에 의한 전통적인 가족 문화가 든든히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전쟁에 대한 영국의 격노는 그런 것까지 바라지 않았던 미국을 당황스럽게 했다. 영국은 언제나처럼 미국을 따라 하기만 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제2차 걸프 전쟁에서 부시를 따라 참전한 블레어처럼 말이다. 영국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에는 비극적인 이면이 있었다. 영국은 보내줄 물자도 많지 않았으면서 단계마다 전쟁을 악화시켰다. - p.178

1870~1930년 무너진 개신교는 이렇게 반으로 갈라진 개신교이다. 이때 내가 좀비 개신교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했다. 성서에 나온 계명을 모두 지키지 않는다는 신호로 출산율이 추락했다. 개신교라는 틀이 사라진 영국은 순수한 국민주의를 발견했고 별다른 고민 없이 제1차 세계대전의 살육에 참여했다. 이 전쟁은 프랑스와 독일의 맹렬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당시 두 경제 강대국을 대치시켰다. 이 두 국가는 좀비 상태로 넘어가던 개신교 국가 독일과 영국이다. - p.196

위기는 종교적이고 문화적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국가는 개신교의 자녀이고 개신교의 점진적 소멸은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종교가 제로 상태에 다다르면 작은 국가에서는 국가적 불안이 생기고 결국 국제적 불안이 발생한다. 어쩌면 거기에서 안보에 관한 욕구가 생겼고 그 욕구를 나토 가입이 채워줌으로써 있지도 않은 외부의 위협을 물리치려는 것이리라. 인느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에게서 위협감이 자라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요청한 것은 러시아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순전히 소속감에 대한 욕구이다. - p.217

과거의 독일 니힐리즘처럼 미국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은 개신교의 해체가 낳은 결과이다. 오늘날의 위기는 개신교의 제로 상태에 해당한다. 개신교의 제로 상태를 통해서 우리는 트럼프 현상과 바이든의 대외 정책, 내부로는 썩어 들어가고 바깥으로는 과시벽을 보이는 미국, 미국 시스템이 자국 시민과 다른 국가의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 p.223

아시아 학생의 높은 비중은 역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아시아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개신교가 사라지면서 교육열과 노려에 대한 숭배도 함께 사라졌고 자녀를 잘 돌보지 않는 절대적 핵가족이라는 인류학적 배경 때문에 백인들의 학습 능력은 크게 떨어졌다. 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 자녀들의 SAT 점수와 평균 지능지수는 동시에 떨어졌다. 일본, 한국, 중국, 베트남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한두 세대 정도 권위적인 가족 구조와 교육을 신성시하는 유교 전통이 대물림되었기 때문에 같은 추락을 겪지 않았다. - p.262


저자는 서방의 몰락을 종교적 믿음의 약화와 가족의 해체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서방이 몰락하고 있는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특히 요근래 트럼프가 위대한 미국 어쩌구 하면서 헛발질만 거듭하는데도 여전히 미국인의 1/3이 지지하는 것만 보더라도 정상은 아닌 듯. 하지만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냥 푸틴이 잘하고 있으며 서방은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식.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랄까.

저자는 서구가 푸틴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푸틴을 잘 못 보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가장 큰 오류는 서방과 러시아에만 주목할 뿐, 전쟁의 또다른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이리저리 지조없이 휘둘리는 갈대같은 존재가 아니라 엄연히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6.25전쟁이 단순히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대리전쟁이 아니라 우리 또한 전쟁의 한 축을 맡은 주연의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역사를 강대국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데 익숙한 서구 사람들의 오만함이랄까. 하물며 우크라이나는 아프간 친미 정부나 남베트남처럼 미국이 인위적으로 만든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들이 쟁취해낸 것이다.

이거 하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꿈꾸지만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고. 그 옛날 프랑스 보수주의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이렇게 말했다던가. 모든 나라는 자기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얻는 법이라고. 그렇다. 푸틴이 러시아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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