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본질 -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그레이엄 앨리슨.필립 젤리코 지음, 김태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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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의 안개(fog of war)'라는 말이 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전쟁이란 결코 합리적이고 정량화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우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쟁은 반드시 더 강한 쪽이 승리하고 약한 쪽은 패배하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세상에는 굳이 전쟁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누구도 질 것이 뻔한 싸움을 선택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싸우는 이유는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조금이라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윗이 골리앗을 꺾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에게 승리하였고 소련은 아프간에서 혹독한 대가와 망신을 당한 채 물러나야 했다. 강대국들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굳이 무리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다. 무솔리니의 그리스 침공처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여기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적의 저항이 예상외로 강하거나 뜻밖의 상황에 부딪치면서 전세가 역전되기도 한다. 어느 쪽도 결코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의중을 오판하거나 두려움, 정보 부재로 결국에는 파멸적인 전쟁으로 이어진 예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1차 세계대전이다.

대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를 놓고 다양한 가설을 세운 다음 우리 나름의 관점에서 미루어 짐작한다. 이것은 지나간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치인들과 장군들 역시 정치 외교, 군사적인 사안에서 상대가 어떠한 의중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며 잘못된 정보와 상대의 기만 전술, 선입견과 고정관념도 끼어들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은 반드시 합리적인 동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가 보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그 시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도 시간이 지난 뒤 결과적으로 보면 최악의 선택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충분한 정보와 근거의 뒷받침 없이 가설과 상상력에만 의존해서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도출할 수 밖에 없다.

루즈벨트가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용인했다는 둥의 소위 음모설들은 지금도 수없이 제기되고 있다. 음모설들이 대개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상상력만으로 의혹을 부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막연히 '가장 합리적인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책 결정이란 사실은 굉장히 허술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이러이러했다"라는 결과를 다루는 책은 얼마 있어도 "왜 그렇게 했는가" 과정을 다루는 책은 거의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포장된 음모설에 쉽게 현혹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모던 아카이브 출판사에서 신작 도서 <결정의 본질 - 누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가 출간되었다. 결정의 본질은 1971년에 첫 출간되어 국제정치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념비적 저서라는 평을 받았으며 1999년에 개정판이 나온 뒤에도 45만 부가 팔린 국제 정치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에 이미 모 출판사에서 페이퍼북 형식으로 한번 출간되었다가 2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한번 햇볕을 보게 된 셈이다. 번역 수준이나 편집 상태 역시 예전의 퍼이퍼북과는 감히 비교할 바가 아닐 정도로 깔끔하다.

"전쟁은 경쟁국의 의도를 지나치게 낙관할 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상대가 선제공격할 가능성을 지나치게 우려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전쟁에서 얻는 순 이익은 영토 획득과 같은 실물도 있지만, 전쟁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래를 회피하는 기대치가 될 수도 있다."   - p.79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흐루쇼프의 마음을 바꾼 것은 케네디의 봉쇄 작전 때문이 아니었다. 공습, 침공과 같은 추가적인 위협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소련의 후퇴를 유도하지 못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미 배치된 미사일을 철수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흐루쇼프의 마음을 진짜로 바꾼 것이 과연 당근인지, 채찍인지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p.165

"1994년 4월 어느 맑은 날 이라크 북부에서 미 공군 F-15 전투기 두대가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조기경보기의 도움을 받아서 헬리콥터 두대를 격추시켰다. 그 헬리콥터는 미 육군 소속의 블랙 호크였고 평화유지군 26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2년 동안 조사한 결과는 조종사나 항법사의 실수일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정상적인 조직의 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행동한 결과였다. 이 비극을 불러온 진짜 이유는 사전에 준비된 메뉴얼에 순응했기 때문이었다." - p.195

"소련은 기존 방침대로 구형 미사일을 신형 미사일로 교체했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고 거의 불가피한 정상적인 현대화 계획의 일환이었다. 소련 정부는 SS-20 미사일의 배치가 서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분석하지 않았다. 따라서 서방이 항의하자 깜짝 놀랐다. 소련은 자신들의 신형 미사일 배치가 서방의 신형 미사일 배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외교적 위기가 초래 되었다." - p.222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국가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그것을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국가 정책의 결정 과정이란 여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외부 사람들은 심지어 전문가들조차도 그것의 진짜 속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이를 직접 결정한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란 어느 한 사람이나 몇몇 고위 관료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분업을 하고 있다.

개개인은 제아무리 자신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반드시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조직들 간의 협력이 얼마나 잘 되는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톱니바퀴가 조금만 어긋나더라도, 가령 적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매우 중요한 일급 기밀이 하부에서 걸러지면서 상층부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면, 또는 그 정보가 가장 윗선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막상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윗선에서는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려도 그 명령이 하부에 제때 전달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진주만 공격, 바바롯사 작전 당시 독일의 기습 작전이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그저 눈 앞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모델과 사례를 통하여 국가 정책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다룬다. 여기에는 크게 세가지의 모델이 있다. 첫째는 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이다. "이런 행동을 한 것에는 거기에 걸맞는 합리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모델이지만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허점 또한 있다. 국가란 결코 사람처럼 단일 행위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고도로 나누어진 복잡한 기계 장치와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행동은 항상 일관성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모순되고 상충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제1모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두번째 모델이 제2모델(조직이론)이다. 정부를 구성하는 조직의 문화와 가치관, 절차 등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모델이 정부정치이론이다. 정부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타협을 벌인 결과라는 것이다. "어느 정부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흥정한 결과이다."

이 세 가지 모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사건에 대하여 막연한 추론이나 허황된 음모론이 아니라 보다 진실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초반부의 이론 설명은 다소 난해한 느낌도 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빨려들어가는 책이다. 냉전 시절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에 가장 근접했다는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소련의 의중을 분석하기 위하여 다양한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 가설들에 맞추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최선의 방안을 찾아나갔다. 

미국 수뇌부 앞에는 크게 6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쿠바를 침공할 것인가, 공습을 할 것인가, 봉쇄를 할 것인가, 카스트로를 매수할 것인가, 외교 루트를 통한 압박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 할 것인가. 각각의 선택지에는 그렇게 했을 때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었다. 어떤 것도 나름의 리스크가 뒤따랐기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었다. 케네디가 고민에 빠졌듯이 같은 시간 흐루쇼프와 소련 수뇌부 또한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그나마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이라고 여기는 선택을 하였다. 이것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2부의 내용은 정책 결정권자들이 복잡한 정치 외교적인 사안을 놓고 어떠한 방식으로 판단을 내리며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뮌헨 회담에서 체임벌린은 왜 히틀러에 대하여 오판했는가. 루즈벨트는 어째서 일본의 위협에 대비하지 않았는가.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위협했을 때 부시는 왜 방관했는가. 그리고 손바닥 뒤집듯이 이라크를 공격했는가.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상대의 의중을 어떻게 파악했는가. 무엇이 이들을 물러나게 하였는가. 겉만 보아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의혹들에 대하여 이 책은 "그들은 왜 그렇게 했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사례로 삼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냉탕과 온탕을 쉴 새 없이 오가는 남북 관계, 올초만 해도 최악으로 치달았다가 어느 순간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었는지, 당장 북한을 폭격할 듯 위협하던 트럼프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게 된 이유 등 그저 단선적으로 바라보아서는 그 본질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어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석을 빼고 480여 페이지의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분량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치 외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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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 지음, 정탄 옮김, 권성욱 감수 / 교유서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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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비극적인 사실을 말하려 합니다. 유럽은 히틀러에게 굴복당했습니다. 이제 다음 차례는 영국입니다. 하지만 저는 국민들에게 해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국민의 피와 땀과 그리고 눈물입니다.

앞으로 기나긴 투쟁과 고난한 시련의 세월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의 확고한 정책은 보장되지 않는 기만적인 강화조약이 아닌 전쟁입니다. 수많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쟁을 하는 목적은 승리입니다. 파시즘에 굴복당하지 않는 자유민의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우리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의 단결된 힘이 기필코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1940년 5월 13일 처칠이 수상으로 취임했을 때 전쟁은 겨우 3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상황은 이미 최악이었다. 독일 공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네덜란드는 삼일만에 백기를 들었고 벨기에가 "작은 마지노"라고 자랑하던 에방 에말 요새 역시 함락되어 방어선의 한쪽이 무너졌다. 또한 구데리안이 이끄는 독일군 기갑 부대는 프랑스군 수뇌부가 절대 넘을 수 없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아르덴을 단숨에 돌파하여 뫼즈강을 도하한 후 서쪽으로 파죽지세로 진격하였다. 전쟁이 시작될 때만 해도 승리는 따놓은 당상인양 기세등등했던 프랑스군 총사령관 가믈렝은 패닉에 빠진 채 자포자기해 버렸다. 그나마 예비 전력으로 남겨 두었던 프랑스의 3개 기갑 사단은 가믈렝이 축차 투입한 덕분에 각개 격파당하였다. 연합군의 2/3는 벨기에와 북부 프랑스에서 갇힌데다 나머지의 대부분도 마지노선에 묶인 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만약 연합군 지휘관 중에 롬멜이나 패튼, 몽고메리, 쥬코프처럼 과감하고 뛰어난 장군이 있었더라면 조직적인 종심 방어로 독일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지나치게 깊숙이 진격한 독일군의 측면을 찔러서 양분시키고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군 수뇌부가 가장 두려워했던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또한 4년 후 히틀러가 아르덴에서 미군을 상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도박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통하지 않은 채 참담한 패배로 끝이 났다.

물론 프랑스군 수뇌부도 반격을 계획했다. 하지만 막상 반격 작전에 필요한 수단이 결여되어 있었다. 공군은 숫적으로 우세했지만 무계획적으로 흩어져 있었고 전차는 보병 사단에 분산되어 있었으며 프랑스군의 부대는 대부분 기동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연합군은 오랫동안 독일의 공격을 기다렸음에도 정작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프랑스군 수뇌부가 대체적으로 나이만 많을 뿐 고루하고 창의성이 부족하며 행동이 느렸기 때문이었다. 공군의 엄호를 받으며 연합군의 대응 능력보다 훨씬 빠르게 파고 들어오는 독일군을 저지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독일군이 연합군의 미약한 방어선을 밀어내고 영불 해협에 도착하자 40만명의 연합군의 퇴로가 차단되면서 거대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5월 22일에는 칼레가 포위되었고 23일에는 볼로뉴 항구가 함락되었다. 연합군에게 남은 것은 덩케르크의 손바닥만한 작은 교두보 뿐이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선봉부대는 이미 덩케르크에서 겨우 15km 떨어진 곳까지 당도하였다. 이제 한발만 더 내딛으면 사상 최대의 포위 섬멸전이 시작될 판이었다. 

상황이 급박하자 영국 해군은 이들의 구출 작전을 처칠에게 건의하였다. 처칠은 스탈린처럼 무조건적인 사수를 명령하는 대신 현명하게도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 이라 불리게 되는 사상 최대의 철수 작전이었다. 참고로 "다이나모"는 작전 회의가 열리던 도버성의 방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5월 26일 일요일 오후 6시 57분 다이나모 작전이 발동되었다.

영국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령 갈리폴리에서 대규모 철수 작전을 수행한 바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해군 장관으로서 갈리폴리 철수를 지휘했던 사람은 처칠이었다. 비록 갈리폴리 전투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륙작전"이라고 불릴 만큼 재앙에 가까운 실패였지만 철수 작전만큼은 매우 질서정연하게 조직적으로 실시되어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덩케르크는 갈리폴리보다 훨씬 불리하였다. 광범위한데 흩어져 있던 영국 해군은 철수 작전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터키군은 추격에 나서지 않았지만 독일군은 당장이라도 덩케르크의 해안가로 들이닥칠 판이었다.

하늘은 독일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영불 해협에서는 유보트들이 승냥이떼처럼 활동하면서 연합군의 선박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게다가 덩케르크는 해안가는 넓지만 수심이 얕아서 대형 수송선이 정박하기에 마땅하지 않은데다 대부분의 항구 시설은 이미 파괴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소형 선박을 이용하여 해안가에서 직접 병사들을 태우고 먼 바다까지 나오는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었기에 처칠과 영국 수뇌부는 그저 전체의 1/10 정도인 4만명 정도만 구출해도 대성공이라고 여기는 판이었다.

상황은 일분일초가 다급했기에 철수에 필요한 해군 선박을 충분히 모을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처칠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서 영국 국민들을 향하여 지금의 위기를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였다. 그의 비장하고도 간절한 호소는 놀라운 효과가 있었고 전쟁에 냉담하던 영국 국민을 전례없이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어선, 요트, 구명정, 낚시배, 심지어 관광객들을 위하여 템즈강을 오가던 구식 범선에 이르기까지 수백척에 달하는 선박들이 너나 할 것없이 덩케르크 해안가로 일제히 향하였다.

    

 

영불 해협의 거친 풍랑과 독일 공군의 폭격, 유보트의 위협, 자기 기뢰 등 온갖 장애물과 난관이 있었지만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병사들을 태운 후 영국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였다. 영국군 병사들 또한 독일군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음에도 전의를 잃지 않은 채 질서 정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결과는 놀라울 만큼 성공적이었다.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9일 동안 구출된 장병들은 무려 33만8천명에 달했다. 그 중에서 영국군이 19만명, 프랑스군이 14만명 정도였다. 덩케르크의 모습은 당시 패닉에 빠진 채 총을 버리고 독일군에게 무질서하게 투항하던 다른 연합군 병사들과는 대조적이었다.

순수하게 군사적으로 본다면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되고 조직적인 철수 작전이 아니었기에 철수 부대는 거의 모든 장비를 상실했다. 당시 3개 군단 10개 보병 사단, 1개 기갑 사단으로 구성된 영국의 대륙원정군(British Expeditionary Force)은 영국군이 보유한 최정예 부대였다. 또한 500대의 영국 공군이 프랑스에 배치되어 있었다.

덩케르크에서 철수하면서 이들이 버리고 온 장비는 야포 880문, 대공포 500문, 대전차포 850문, 기관총 1만1천정, 전차 700대, 차량 4만5천대에 달했으며 그 외에도 막대한 탄약과 유류, 보급품이 있었다. 덩케르크에는 영국, 프랑스군이 남긴 무수한 무기와 야포, 차량이 즐비하게 늘려 있었고 대부분 파괴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독일군의 손에 넘어가 1년 뒤 발칸과 소련 침공 작전에 쓰이게 된다. 영국에는 겨우 2개 사단을 무장할 수 있는 예비 장비가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처칠은 미국에게 도움을 급히 요청하여 미국이 제공하는 "랜드리스"로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또한 철수 과정에서도 6만 8천여명에 달하는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고 마지막까지 철수를 엄호했던 부대는 결국 탈출하지 못한 채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철수 과정에서 6척의 영국 구축함과 3척의 프랑스 구축함이 격침되었고 19척이 큰 손상을 입었다. 또한 474대의 영국 공군기가 격추당했다. 독일 공군의 피해는 132대에 불과했다. 작전에 동참했던 민간 선박들 역시 200여척 이상이 침몰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냉철하게 말하자면 전쟁에 패배하여 빈털털이가 된 채 목숨만 겨우 건져서 비참한 몰골로 돌아온 꼴이었다. 따라서 참패의 원인을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처칠은 그 책임을 졌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은 오히려 처칠을 찬사하였고 귀환한 병사들을 따뜻하게 격려하였다. 또한 독일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은 더욱 불타 올랐다.

작전의 성공 여부를 놓고 본다면 덩케르크보다 갈리폴리의 철수 작전이 훨씬 성공적이었음에도 우리는 전자를 기억하고 후자는 기억하지 못하지 못한다. 이것은 덩케르크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처칠은 국민들에게 "아직 우리는 진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 힘이 수많은 고통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날까지 영국을 끌고 간 것이다. 뮌헨 회담에서 히틀러에게 굴복한 체임벌린을 "평화를 지켰다"라며 환호했던 영국 국민들은 이제 전쟁에 스스로 동참하였고 전쟁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처칠이 말하는 진정한 "덩케르크의 기적"이었다.

얼마 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명 영화와 함께 <덩케르크 -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이 출간되었다. 표지의 사진은 프랑스 해군의 1500톤급 구축함인 브라스크(Bourrasque)의 침몰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덩케르크를 상징하는 유명한 사진 중의 하나이다. 브라스크는 덩케르크 작전 당시 병사들을 구조하다가 1940년 5월 30일 독일군의 기뢰에 부딪쳐 침몰하였다.

엊그제 필자도 휴가를 이용하여 영화를 보았는데 놀란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웅장하면서도 긴장감을 끌어내는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할리우드 특유의 액션이 거의 없다보니 <라이언 일병>이나 <애너미 앳더 게이트>와 같은 전쟁 영화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카메라 구도를 통해 마치 나 자신이 당시의 긴박한 전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면서도 국내에서 꾸준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대신 놀란의 영화는 전후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연합군이 왜 덩케르크에 갇히게 되었는지 왜 여기서 탈출해야 하는지, 선장들이 어째서 자신의 배를 끌고 위험하다는 덩케르크로 향하는지, 내가 살기 위해 전우의 희생조차 마다하지 않는 병사들의 이기적인 모습, "너희 공군은 뭐하고 있느냐" 질타하는 병사에게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떨구는 파일럿. 놀란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그저 관객들을 77년 전 덩케르크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을 뿐이다. 이것이 놀란 감독 특유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거의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재미가 반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유서가에서 나온 <덩케르크>는 영화의 배경, 즉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의 상황을 다룬 책이다. 5월 10일 새벽,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일제히 네덜란드 국경을 돌파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독일 공군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네덜란드, 벨기에 전선에서 벌어진 연합군의 패배, 구데리안의 기갑부대가 아르덴을 돌파하여 연합군의  후방으로 쇄도하였다. 덩케르크의 좁은 포켓에 갖힌 40만명의 연합군. 책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은 존 키건의 <2차대전사>와 같은 전쟁사 책이 아니다. 장군들이 테이블 위에서 어떠한 작전을 짰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배를 몰고 바다로 나서는 모습, 한번 떠나면 귀환을 장담할 수 없는 긴장감, 어떠한 위험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았던 놀라운 투지,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도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의 용기, 마치 영화 <타이타닉>이나 <포세이돈>, <판도라>럼 거대한 재난 속에서 그것과 용감하게 싸우며 그 속을 헤쳐나오는 한편의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램지 중장은 프랑스 해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종일관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신속하게 도버 해협을 건넜을 때 마주한 것은 정유공장과 정유조가 있는 덩케르크 항 서쪽에서 솟구치는 화염과 검은 연기의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16킬로미터에 이르는 모래톱! 모래톱에서 해안선까지는 온통 집으로 돌아가려는 병사들로 새까맣게 채워져 있었다."  - p.101

"독일군 전투기 10여대가 한꺼번에 몰려와 주위를 선회하면서 폭탄으로 조준 타격하고 갑판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몇번이고 이런 공격이 쏟아질 때면 실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같았다. 그럼에도 지옥 구덩이를 간발의 차로 빠져나온 병사들과 배를 잃고 바다 위에서 살려달라고 외쳤던 선원들의 대부분은 놀라우리만큼 침착했다." - p.183

"그는 아직 살아 있었지만 두 다리 모두 무릎 아래가 잘려나간 상태였다. 승조원들은 그를 조심스럽게 갑판에 뉘였고 냉혹한 상황에서도 허용되는 한 편안하게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그의 기백은 육체 속에서 강렬하게 타올랐다. 육체적인 고통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는 단호하게 일어서려고 몸부림쳤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영국 해군 만세!" 그는 쓰러졌다."  - p.329

이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은 영국의 군사 전문가이자 작가로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4년에 죽었다. 이 책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결행된 지 1년 후에 써였다고 한다. 영국인으로서 덩케르크는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자 불굴의 의지와 같았을 것이다. 우리로 치면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비견될만하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가지는 비중에 비하여 그동안 국내에서는 소홀히 여겨져 온 면이 있다. 2차세계대전사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존 키건 교수의 <2차세계대전사 The Second World War>를 비롯하여 시중의 관련 서적을 보면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대하여 고작 몇 페이지를 할애하여 연합군이 어떻게 철수할 수 있었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할 뿐이다. 따라서 충분한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들로서는 프랑스 전역과 영국 본토 항공전 사이의 짧은 단막극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좌우했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의 진정한 의미가 가려지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밀덕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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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전쟁 - 제1차 세계대전부터 사이버전쟁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비밀들
박종재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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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하지 않는다" - 군사 격언

"많은 임금과 장수 중에서 특출나게 승리를 거두는 자는 적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적에 대하여 미리 알려면 귀신에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물을 흉내낼 수도 없으며 짐작으로 추측하여 시험해 볼 수도 없다. 반드시 상대의 사정을 잘 아는 첩자를 써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다" - 손자 용간편

일찍이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기 위한 정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적보다 많은 병력과 유리한 상황을 선점하고 있어도 막상 그 사실을 지휘관이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극적인 지휘관일수록 오히려 내가 불리하다고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거나 패배를 자초하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반대로 적이 얼마나 강대한지 모르고 자신의 용맹함을 과신하여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스스로 사지에 들어가는 예도 있다. 그 단적인 예가 태평양전쟁 당시 버마전선을 담당하였던 무다구치 렌야이다.

그는 일본군이 가장 유리했던 1942년 여름에는 지형의 험난함과 보급 문제를 들어서 인도 침공을 완강하게 반대했다가 뒤늦게 태도를 바꾸어 이번에는 일본군의 사정은 무시한 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격을 강행하였다. 영국군이 허약했던 1942년에 공격했다면 손쉽게 승리했겠지만 1944년의 영국군은 훨씬 강해진 반면, 일본군은 약화되어 있었다. 결국 병력의 2/3를 잃고 참담한 몰골로 철수하였다. 그의 실패는 태평양전쟁을 통틀어 일본이 경험한 최악의 참사였으며 결국 버마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심지어 연합군은 그를 "연합군의 승리에 가장 기여한 일본군 장군"이라고 칭찬했을 정도였다. 무다구치가 실패한 이유는 정보를 무시한 채 자신의 막연하고 관념적인 편견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서 고금의 전쟁에서 정보의 중요성이란 새삼 말할 것도 없으리라. 고대 서양에서 가장 위대한 전투라고 꼽히는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이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정보력 덕분이다. 그는 상대의 강약에 대하여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하였고 적장의 성향까지 파악하여 허를 찔렀다. 반면, 로마군 사령관인 바로는 그저 숫적인 우위만 믿고 정보 수집을 게을리 한 채 무작정 공격에 나섰다가 한니발의 함정에 빠져서 문자 그대로 전멸하고 말았다. 23전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이순신 역시 일본 수군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라는 말을 사용하여 정보가 얼마나 불확실하며 그 중에서 진짜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강조한 바 있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 중에서는 적이 의도적으로 흘린 더미 정보도 있고 서로 상충되거나 상식에서 어긋나는 정보도 많다. 설령 뛰어난 정보 전문가가 수많은 쓰레기 정보 중에서 진짜 가치가 있는 정보를 어렵사리 골라내어도 윗선까지 제대로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다. 중간 보고 단계에서 버려지거나 전혀 엉뚱하게 왜곡되기도 한다. 정확한 정보가 정확하게 보고되어 정확하게 활용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행운에 가깝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가. 정보를 골라내는 과정에서 사람의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서로 상충하는 정보가 있을 때 냉철하게 판단하여 결정하거나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내 입맛에 맞는 쪽을 택한다. 그저 "이랬으면 좋겠다"는 단순힌 희망 사항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해 버린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정보의 중요성을 무시한 예가 다름아닌 임진왜란이다. 히데요시는 조용히 쳐들어오는 대신, "명을 치겠으니 조선은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라"라고 엄포를 놓았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히데요시의 허세 덕분에 대비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번 셈이었다. 하지만 모든 수단을 다하여 상대의 의중과 군사력, 작전 계획 등 정보를 수집하기는 커녕 그저 의례적인 통신사 두명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그조차도 한 사람은 "쳐들어온다" 또 한사람은 "안 쳐들어온다"라는 완전히 상반되는 보고를 하여 혼란을 부추겼고 무사안일에 젖어 있었던 조정은 "안 쳐들어오겠지만 혹시 모르니까"라는 태평한 생각으로 의례적인 수준의 대비를 했을 뿐이었다. 결국 예상을 훨씬 초월하는 침공에 조정 전체가 패닉 상태에 직면하여 선조는 조중 국경의 끝단인 의주까지 도망쳐야 했다.

히데요시가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는 것은 그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상황임에도 조정이 이를 무시한 것은 그런 상황 자체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백년 동안 외적의 대규모 침략은 없었는데 하필 우리 대에 와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귀납법적인 오류, 사실이 아닌 희망에 불과한 가정을 사실로 단정해 버린 채 다른 가능성은 모두 무시하는 전형적인 가정 망각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전쟁사에는 비일비재하다. 한국전쟁에서 맥아더 역시 중공군의 참전을 알려주는 수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그 정보 자체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묵살하거나 자신의 편의대로 해석하였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침공한다는 경고를 외면하여 개전 초반에 500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상실하는 대참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 군대에 대한 경멸감과 경제적인 부담을 이유로 동원령을 미뤘다가 이집트, 시리아의 기습을 받아 거의 패망 직전까지 몰리는 호된 댓가를 치루었다. 정보를 무시하기는 쉽지만 정보를 무시한 대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얼마 전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한 신작 도서가 나왔다. <함께 보는 근현대사> <유라시아 견문> 등을 출판한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서해문집에서 나온 <정보전쟁>이다. 마침 해당 출판사에서 필자에게 신작이라면서 선물로 보내왔다. 감사할 따름이다.

저자인 박종재 교수님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 대학에서 전략학 박사를 수료한 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해군 제1함대, 안보정보비서관실 등에서 근무하는 등 국내에서는 정보분야의 통이라고 하실만한 분이다.

"여러분의 성공은 기억되지 않지만 실패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CIA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정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막상 사람들의 이목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성공하면 그저 본전이요, 실패하면 이유 여하와 상관없이 사방에서 두들겨 받는 것이 바로 정보 부서의 운명이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그들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다. 그것은 정치인, 장군들의 몫이다. 007과 같은 스파이들의 멋진 액션은 그저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이다. 하지만 그림자 속에서 숨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누구보다도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 바로 이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20세기 현대사에서 정보력이 전쟁사를 어떻게 좌우했는지 다룬다. 가장 먼저 나오는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지키는 미국의 참전을 결정적으로 유도한 이른바 "치머만 사건"이다.

당시 독일 외무장관이었던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관으로 한통의 전문을 보낸다. 독일은 멕시코에 자금과 무기를 대고 만약 미국이 유럽 전선에 참전할 기미가 보일 경우 멕시코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미국은 유럽에 참전하지 못할 것이고 독일이 전쟁에 승리한 뒤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멕시코가 빼앗긴 텍사스, 뉴멕시코, 아리조나 등을 되찾아주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내용이었다.

      
1917년 4월 2일 미 의회에서 참전을 공식 요청하는 윌슨 대통령. 2년전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루시타니아호가 침몰되면서 가뜩이나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데다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치머만 전보까지 공개되면서 더 이상 고립주의자들도 참전을 반대할 명분이 없었고 결국 참전이 결정되었다.

이 전문을 입수한 윌슨은 1917년 2월 27일 <AP통신>을 통하여 언론에 공개하였다. 게다가 어리석게도 치머만 스스로도 이 전문이 사실이라고 인정함으로서 미국이 참전할 명분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4월 6일 윌슨은 정식으로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유럽으로 군대를 보냈다. 당시 동부전선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군이 붕괴되고 영국, 프랑스 역시 니벨의 졸렬한 공세가 전례없는 대참사로 끝나면서 패배 직전에 몰린 상황이었다. 만약 치머만 사건이 없었거나 그 전문이 가짜라고 고집했다면 윌슨은 고립주의자들을 누르고 참전을 강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제 무덤을 판 꼴이 되었다.

치머만 전보는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사건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밀 전보가 어떤 경위로 미국 정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 전후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암호화되어 있었던 치머만 전보를 처음 캐치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 정보부였다. 암호 해독만도 20여일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 핵폭탄같은 기밀 문서를 미국에게 넘기는데 주저하였는데 그들은 독일만 감청한 것이 아니라 미국도 감청하고 있었기에 자칫 이 사실이 미국에게 알려질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설령 넘겨주어도 미국이 과연 이 문서가 진짜인지 믿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전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영국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미국에게 넘겼다. 영국의 예상대로 미국 사회는 들끓었고 독일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미국의 참전을 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양쪽 모두 난타전으로 기진맥진한 가운데 그나마 독일이 어느 정도 승기를 잡았음에도 팔팔한 새로운 전력이 끼어들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참호를 사이에 둔 채 몇년에 걸쳐서 수백만명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제1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른 것은 독가스나 전차와 같은 신무기가 아니라 바로 정보전이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정보전하면 빠질 수 없는 사건 중의 하나가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이었던 미드웨이 해전이다. 만약 미국 정보부에서 일본 해군의 주력이 어디를 공격할지 알아내지 못했다면 미드웨이 해전은 결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일본 정보부가 미국 해군이 미드웨이로 이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미드웨이에서 승리한 쪽은 틀림없이 일본 해군이었을 것이다. 물론 미드웨이에서 일본 해군이 이겼어도 결국에는 미국이 승리했겠지만 전쟁은 보다 길어졌을 것이며 오스트레일리아는 틀림없이 일본의 수중에 넘어갔을 것이다. 진주만도 위험해졌을 것이며 루즈벨트는 보다 상황이 유리해질 때까지 태평양을 포기한 채 서부 캘리포니아로 남은 해군력을 철수시켰을지도 모른다. 그 전까지 일본군에게 연전연패하던 미군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미드웨이의 승리 덕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는 크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케 했던 보디가드, 포티튜드 작전, 독일군을 농락했던 영국의 더블크로스 시스템, 독일의 애니그마를 해독한 영국의 울트라첩보, 6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의 첩보전쟁 등 제1장에서는 정보전에서의 승리가 곧 전쟁의 승리로 이어진 사건들을 다룬다. 반대로 제2장에서는 정보전에서 실패함으로서 호된 댓가를 치룬 경우에 대한 것이다. 히틀러의 침공을 무시했던 스탈린, 진주만 기습에 당한 미국, 베트남 전쟁 당시 구정 대공세의 정보를 무시했던 미국,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레 알려준다.

오늘날 정보전은 더욱 치열하다. 또한 그저 상대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전과 해킹을 통하여 적국의 정치, 경제를 마비시키고 엄청난 손실을 입히기도 한다. 총한발 쏘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도 있다. 2천여년 전에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승리"라고 하였는데 21세기에 와서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에 비하여 우리는 정보전에서는 상당히 뒤쳐져 있다. 그동안 전차나 항공기, 미사일, 대포와 같은 유형적인 무기만이 진짜 무기라고 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무기는 무기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정보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지만 행동이 뒤따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재래식 전력은 막강하지만 정작 정보전 능력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미국 없이는 당장 장님 신세가 되는 것이 우리이다.

이 책은 여느 전쟁사 서적처럼 그저 전쟁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정보가 왜 중요한지, 오늘날 강대국들의 첨예한 정보전쟁,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과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보기 드문 정보전을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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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언니 부자연습 - 가난한 공주 부자되기 프로젝트
유수진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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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집사람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케이블 방송에서 어쩐지 어른을 봤는데 재태크에 대한 것이 나오더라. 그런데 내가 잘 몰라서 당신이 나중에 함 봐라."
"글쎄, 무슨 내용인데?"
"유수진이라는 여자가 강의를 하는데 우리나라나 선진국은 이미 경제 성장률도 낮고 금리도 낮아서 더 이상 돈 벌기 어렵다, 대신 인도나 베트남같은 개발 도상국에 투자를 해야 한다네."
"펀드? 베트남 펀드 요즘 별로인데"
"아니 펀드 말고. 말로는 설명 못하겠고 그냥 당신이 직접 봐."
집사람의 말에 가우뚱 하면서도 그거 찾아서 볼 짬은 없다보니 그냥 한귀로 넘겼다. 그런데 때마침 카페에서의 서평 이벤트. "당신이 말한 게 이거 아니야?" "맞아"

경제 서적은 몰라도 재태크 책은 거의 보지 않는다. 철없던 젊은 시절에야 돈을 벌어보겠답시고 부지런히 주식이니 경매이니 탐독하던 때도 있었지만, 어차피 본인들 돈 번 얘기이고 나름의 비법이라는 것도 우리같은 내공없는 일반인이 책 한권 보고 덜렁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려 <어쩐지 어른>에서도 나왔다고 하고 집사람의 얘기로는 귀담아 들어볼 부분도 있을 듯 하여 바로 신청.

어제 드디어 기다리던 책이 왔다.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과연 어떤 내용인가 페이지를 한장씩 넘겨보았다. 그러기를 한시간반. 앞부분은 "부자가 되면 좋은 이유" "그런데 왜 당신은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다이어트에 실패한 20대 동생 얘기도 나오고 50이 다되도록 결혼 못한 지인 언니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 "그래서 우리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어이 여보시오, 작가 양반, 이거 재태크 책이요? 에세이요? 이 얘기하자고 무려 책의 절반을 쓴거요?

그 다음에는 GDP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나온다. 갑자기 경제 기초 상식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미국 금리가 어쩌고 트럼프가 어쩌고... 이 정도는 그렇다 치자. 재태크 강의가 직업인 언니인데 그동안 상담하면서 투자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상식조차 결여된 동생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겠는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분명히 있을테니 글 모르는 유아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기분으로 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전부다. 제3장 마지막에는 "부자 미션"이라면서 GDP 증가율과 경제 지표, 전문가들의 전망, 자본주의의 역사, 화폐의 역사, 근대사를 공부하라고 한다. 그리고 공부한 것을 실전에 대입하면서 노하우를 익혀나가라고 한다. 이걸로 뭐하라고? 뭐하라는거지? 무슨 실전? 화폐의 역사를 공부한 다음 어떤 실전에 대입하여 무슨 노하우를 익히라는건가?

아니야. 여기서 끝은 아닐꺼야. 이미 책의 80% 이상을 읽었지만 아직 나에게는 마지막 제4장이 남았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읽었다. 마침 앞서 얘기했던 그 베트남 투자 얘기도 나왔다. 주식에 투자하여 받은 배당금으로 함께 재태크 모임하는 여인들끼리 베트남을 다녀온 모양이다. 자신이 배당금으로 얼마의 수익금을 받았는지 반페이지만큼의 크기로 확대하여 강조한다. 2천만원 투자했는데 시세 차익 200만원에 수익금이 무려 68만원이란다!

"해외여행에서는 참 배울 것이 많다. 단 배당금 받아서 가자. 그리고 다녀와서는 그 나라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가지로 모색해 보자"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베트남 가서 쇼핑만 하지 말고 그 나라에 투자할 방법을 찾으라는데, 재태크 책이라면 보통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했고 장점과 단점,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할 유의 사항 등 구체적인 경험담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우리와는 금융 시스템이 전혀 다르다. 초보자가 이 언니 말만 듣고 덜렁덜렁 갔다가는 은행 가서 통장 하나도 못 만든다. 그 전에 돈푼없는 가난뱅이 동생들에게는 언니처럼 베트남 갈 여행경비 만드는 것부터 첫번째 난제일듯. 배당금 주는 주식을 살 돈부터 마련해야 하나.

설령 우찌우찌 베트남까지 가서 통장 만들어서 쌈짓돈 넣었다고 치자. 외국인에게 금융이 개방되어 있지 않아서 넣는 건 쉬워도 빼는 건 어려운 나라이다. 오는 건 니 마음이라도 나가는 건 니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환차손, 수수료 외에도 베트남 경제의 안정성, 정치적 안정도 등 고려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그냥 막연하게 개발 도상국이니 앞으로 고도 성장하겠지 묻지마 투자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다. 남자랑 데이트해도 분양 홍보관에서 하라느니, 당신 수중에 10억만 있으면 대출 10억 더 받아서 건물 사서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느니, 믿을만한 자산관리사를 찾으라느니, 그 관리사도 100% 믿지 못하니 결국 너 스스로 공부하라느니. 여보시오, 이게 정말로 전부요? 이게 연봉 6억 언니의 조언이란 말이요!

또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책의 편집 구성인데, 쓸데없는 이미지들이 여기저기 페이지를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넣는 이유는 내용과 관련하여 텍스트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때 시각적으로 돕기 위함인데, 웹사이트를 단순 캡쳐한 사진을 도대체 뭐에 쓰라는 것인가. 게다가 이 책에는 이런 불필요한 이미지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잡아먹고 있다. 교양 서적으로도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는 고작 250페이지에 불과한데, 설마하니 <어쩐지 어른>에도 출연한 연봉 6억의 달인이 그 분량을 못채워서 이런 정크 이미지로 땜빵질을 했단 말인가. 심지어 어떤 페이지에서는 "재태크"를 설명하면서 "재태크란 재무와 태크놀리지를 합한 글자로...."라는 말로 무려 종이 반장을 차지한다. 이게 무려 반 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할 만한 내용인가. 세종 서적이라는 출판사가 신생 출판사도 아니고 그동안 꽤 많은 교양 서적을 내었던데 편집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구성했는지 모르겠다. 

집사람에게 책이 이러이러해서 영 실망이다, 라고 했더니 "나도 강의 들어보니까 뭔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되더라고. 그래서 당신보고 좀 보라고 한건데. 당신이라면 나보다는 나을테니까."

여보시오, 마눌님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소?!

여러모로 자괴감이 들게 하는 책이다. 서평 한두번 써본 것도 아니고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해서 남에게도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서평을 쓸 때에는 "이 책은 이런 점이 좋지만 이런 오류가 있다. 따라서 어떤 독자가 이 책에 가장 걸맞을 것"라고 나름대로 솔직하면서도 신중하게 적는 편인데, 이런 경우에는 도대체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쓸 생각하지 말고 돈 모을 생각을 하라"라는 뻔한 얘기의 나열이다. 팁이나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경제 서적도 아니고 언니가 그동안 얼마나 험난한 삶을 거치면서 이 자리까지 왔는지 고백하는 에세이도 아니다. 강의는 잘하는데 글에는 서툴러서인가. 모르겠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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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쿠스 2017-07-1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되는 벙법은 재테크책 써서잘모르는독자에게 파는 겁니다

구데리안 2017-07-19 10:51   좋아요 0 | URL
그런데 다 아는 얘기만 적어놓았으니 문제라는 것이죠... 재태크란 재+태크의 합성어이다, 이런 말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말의 힘'으로 키우는 대화 육아 - 부모의 말이 바뀌면 아이의 미래가 달라진다
오수향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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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MBC에서 한글날 특집으로 말의 힘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먼저 두개의 통에 흰 쌀밥을 각각 넣은 다음, 한쪽에는 "고맙습니다" "아이 예뻐" 같은 긍정적인 말을 들려 주었고 다른 한쪽에는 "미워" "나빠" "짜증나" 같은 부정적인 말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을 때의 결과는 놀라웠다. "고맙습니다"를 들려준 쪽의 쌀밥은 구수한 누룩 냄새가 나는 하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반면, "짜증나"를 들려준 쪽의 쌀밥은 검은 곰팡이가 핀 채 완전히 썩어 있었다.

직접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도 놀라워 했다. 밥에 귀가 달린 것도 아닌데 고작 말 한마디에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가 평소 무의식 중에 내밷는 말이 단순한 전달의 역할만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가 실려 있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정치인들이 본다면 함부로 막말을 하지 않을 것같다.

무생물에 불과한 밥도 이럴진데 하물며 귀가 있고 감정이 있는 사람은 어떠할까. 유머러스한 사람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만들 뿐더러, 주변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어쩌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보다 아름답게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육아에서도 말은 중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외하고 육아의 90%는 "말"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아이와 대화하면서 칭찬하고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때로는 잔소리를 하거나 혼내기도 한다. 솔직히 말을 빼고 나면 육아에서 뭐가 남을까. 위의 쌀밥 실험처럼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 시간이 지난 뒤, 아이의 모습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고마워라는 말이 구수한 누룩내 나는 밥으로, 미워라는 말이 시커멓게 썩은 밥으로 만들 듯, 말은 아이를 긍정적으로도, 또는 부정적으로도 만들고 자신감과 행동, 사고력에 큰  영향을 준다. 아이의 건강도 예외가 아니다. 어릴 때 병약했던 아이가 부모의 끊임없는 격려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 누구보다도 건강한 사람이 되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오수향 교수가 쓴 신작 도서 <말의 힘으로 키우는 대화 육아>는 아이와의 긍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알려주는 육아서이다. 참고로, 오수향 교수는 EBS <육아학교 PIN>에서 '초보 엄마를 위한 말하기' 강의를 맡았고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와 SNS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2015년에는 대한민국 신지식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세계 제일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사교육비에는 아낌없이 쓴다. 우리 아이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뒤쳐질까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역할이 단순히 돈을 버는 기계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어 폭력으로 아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다. 화가 난다는 이유로 막 혼낸 다음 후회한다. 대다수 부모들의 모습이다. 왜 그랬냐고 하면 사는데 지쳐서, 내 몸이 피곤해서, 육아가 힘들어서, 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서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권위주의, 가부장 문화 속에서 우리도 그렇게 보고 자랐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배울 기회도, 깨우칠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직장 생활이건 사회 생활이건 가장 어려운 것은 대인 관계이다. 부부 관계나 부모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사교육이 아니라 부모의 말 한마디이다. 이 책에서는 좋은 일화가 나온다. 어릴 때 말 더듬는 버릇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다. 주눅 든 그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네 두뇌 회전이 워낙 빨라서 혀가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그만큼 네가 똑똑하다는 거 아니겠어? 너는 머리가 비상하니까 앞으로 큰 일을 할거야"

어머니는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 칭찬을 해 주었다. 이런 칭찬을 들으며 자란 그가 바로 세계적인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의 회장이자 세계적인 명강사로 이름을 떨치는 잭 웰치이다.

여기서 입장을 바꾸어 만약 나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너는 왜 그렇게 모자르냐?" "커서 뭐가 될래?" "걱정이다 걱정"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를 나무래고 질책하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을까. 한국인의 대화법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말을 훨씬 많이 쓴다고 한다.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만 막상 평소에 남을 칭찬하는 일도 없고 칭찬을 듣는 일도 없는 것이 우리 문화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그만큼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특별히 다른 나라보다 더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각종 강연과 양육 상담을 통하여 부모들이 일상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실수하는 부분, 반드시 지켜야 할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룬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부모를 통하여 언어를 배운다. 예쁜 말, 고운 말을 들을수록 아이 또한 예쁘고 곱게 자란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에 불과한데도 벌써부터 온갖 상스러운 욕설을 달고 산다. 혹자는 TV와 인터넷, 스마트폰, 또래 친구들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모에게서 배운 것이다. 만약 아이가 부모 앞에서 욕설을 한다면 우선 나 자신부터 욕설을 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사고력과 어휘력을 높이기 위한 "수다쟁이가 되어라", 자존감과 공감력을 키우기, 자존감이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아이의 말을 경청하는 요령, 상상력은 "왜?"라는 질문에서 나온다, 아이의 경제관념과 독립심 키우기,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밥상머리 교육 등.

어찌보면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얘기의 나열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여 육아책이란 누가 썼건간에 알맹이는 어차피 그기서 그기이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막상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얘기도 된다. 머리로는 알지만 어렵다고, 다 어떻게 지키냐고 그냥 넘겨버리는 것이다. 대화법이라는 것도 단순히 알고만 있다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우리 사회는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면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상스럽게 여긴다. 남들 앞에서 자기 표현이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 한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묻는 것은 체면이 깎인다고 여기고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긴다.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말하는데 익숙해도 남의 의견을 듣는 것에는 서툴다. 우리 정치인들이 맨날 싸움박질만 하는 것도 경청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헬 조선"이 된 것도 과거 부모세대가 무조건 공부만 잘 하면 된다면서 대화 육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소홀히 하면 아이의 언어 발달은 당연히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언어 발달이 늦어지면 사고력도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집중력, 학습 능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고 타인과의 공감 능력 역시 부족하여 사회성과 또래 친구와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육아 도우미의 손에만 맡기거나 TV,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에 방치했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대화 육아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부모와 대화를 많이 한 아이가 말하는 데 적극적이다.
칭찬과 격려를 많이 받은 아이가 일찍 말을 한다.
건강한 아이가 말을 더 빨리 배운다.
지능이 높은 아이가 말을 더 빨리 한다.
권위적인 교육은 말을 배우는 데 지장을 초래한다.
가족이 많을수록 아이가 말을 잘 한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어휘 수가 더 많다.
경제적 여건이 좋은 아이가 말을 더 잘한다.

아이의 미래는 사교육이 아니라 부모가 만든다. 알면서도 그동안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소홀하게 하지는 않았던가. 무의식 중에 내밷은 나의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 새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부모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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