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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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별로 즐기지 않았던 내가 소설도 좋아지는 계기를 만들어 줄 책이 이 책일 것 같다.

 

여느 허접한 자기개발서의 설득보다 훨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해 준다.

 

책을 덮는 순간 잘 쓰여진 자기개발서의 마지막장을 덮는 감동보다 더한 울림이 깊어 나는

 

자꾸만 울렁거리고 박완서라는 이름을 되뇌인다.

 

과연 2011년의 여류작가 1인으로 당연한 듯 한 그녀의 다음 책은 무엇으로 선택해볼까?

 

법정스님, 리영희, 김점선, 장영희......박완서......    모두 이 세상에는 없으니... 애재라, 애재라...

 

 

영빈과 현금과의 불륜이 그렇게 막 내려져 안도했고, 그로인해 그의 아내가 영원히 모를 것이란

 

예견에, 어차피 그러했다면 차라리 그렇게 모르면 될 일 아니겠는가라는 것으로 같은 아내의

 

입장을 중얼거려보다.

 

송회장이란 인간에 대한 울컥거리는 분노가 이 사회정의의 불공평에 맞서는 듯, 같은 느낌으로

 

분개하다가 아들의 장례식을 비디오 촬영하는 장면에선 치를 떨다가, 그 아들의 죽음 1주기에

 

그 비디오를 보고 히히닥거리는 묘사에선 아연실색도 도를 넘어 놓아버리고 말았다.

 

영묘처럼 나약하기만 해서, 자식이 볼모인양한듯한 상황이 어쩔 수 없을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나

 

꼭 같아서 옴짝달싹 할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영묘가 더없이 나약해질땐 희망도 보이지 않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듯 위태하기만 해서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박완서의 힘은 더없이 한국적인 것이었고, 그 힘은 "장남"이란 한국문화를 고색창연한

 

사찰이 주는 한국의 미처럼 보여 나는 그녀가 더없이 좋더라!

 

한국의 "장남"이란 가족의 희망이고, 힘이며, 의지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차도 여전히

 

자신의 몫을 굳건히 해 내고 있는 든든한 존재임을 영준을 통해서 본다.

 

송회장같은 이 사회의 치졸한 비굴함조차 통쾌하게 쓸어버릴 수 있는 그 "힘"은 바로

 

한국의 "장남", 결코 영준의 "돈"이 아니라 그건 "대한민국 장남"의 힘, 그 든든한 가족문화의

 

바탕, 뿌리의 탄탄하고 질긴 힘이라고 믿는다. 치킨 박의 자살조차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새벽까지 나를 붙들어 맨 이 책에서, 그녀의 글솜씨를 감탄해마지

않으며  접어 둔 부분이다.

 

*유열

 

*...피부는 생각이 내비칠 듯이 투명하다.

 

*저항하려면 빌붙이기보다 몇배의 힘이 든다.

 

*옥골선풍

 

*...야, 의학적으로 말구, 정서적 문화적으루다 말야. 가족이나 친척, 친구와의 관계가 백인들

보다 흉허물이 없고 끈끈하기때문이란 생각 안드니. 한방에 얼마든지 끼어 잘 수 있잖아. 방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도 모처럼 집에 온 손님 날 저물면 으레 자고 가라고 붙들 수 있는 배짱이

어디서 나왔겠냐. 한방에서 여러 식구가 끼어 잘 수 있는 문화에서 나온 것 같지 않니? 

 

*........ 노인들이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자식하고 같이 사는 게 젤이야. 잘난 척을 할 수 가

있거든. 노인들을 가장 비참하게 하는 게 뭔 줄 아냐? 잘난 척할 기회를 아무도 안 주는 거야.

잘난 척이 뭐겠냐. 자기 표현욕군데 그걸 봉쇄해 놓으면 죽은 목숨하고 뭐가 다르냐.

 

*...그 동안 한 번도 난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적이 없거든. 그건 가족이 구속이 됐다는 뜻이

아니라 힘이 됐다는 뜻이야. 가족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했다면 무슨 수로 살아남았겠냐. 그건

나만이 아니라 다들 그래.    ..........     엄마가 집에서 기댜려주시 않으면 백점 받은 시험지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초등학생과 다를바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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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ers Writing Start (해커스 라이팅 스타트) (책 + 185 topics 완벽대비 포켓북) - 토플.영어논술.특목고.IELTS.토익
데이빗 조 (David Cho)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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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여년 전에 뭔 다짐으로 스타트시리즈를 모두 구입했겄만...ㅋㅋ '이제사'라는 말로 나를 질책하기

 

보다는, 2012년의 벽두, 지금이라도 잡아서 벌써 1/4은 진도가 나간것에 자신이 고맙고 기특하다는

 

칭찬을 한다. 이렇게 재미있고 즐겁게 영어공부를 했었다면, 공부를 해야할 나이에 이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절절하지만 그때는 시절인연이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ㅎㅎ

 

영작이라면 무작정 막히고 어려웠는데 이 책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든 써볼 수 있도록

 

몇몇단어들을 미리 주었다. 예를 들면, 첫째주 4일째 daily test 중의 12번 문제이다.

 

12)좋은 직원(good employees)은 찾기 힘들고 이것이 내가 더 높은 급여에 경험이 있는사람을

    고용하려는 이유이다.      *고용하다:hire    *높은 급여에:at a high salary

 

이정도의 힌트가 주어지니 어떻게든 영작이 되어지는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아마 나같은

초보는 '내가 더 높은 급여에 경험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려는 이유'라는 문장에서 벌써 지레

오그라들어 엄두도 못 낼텐데...ㅎㅎ

영작은->Good employees are hard to find, which is why I would hire an experienced

worker at a high salary.

이 문제를 몇 일이 지난 뒤 다시 영작해보면 거의 맞거나 오류가 상당히 적어지거나다.

 

 

이처럼 직접 영작해본 문장들을 몇 일이 지난후에도 다시 영작할 수 있었던 것에서 자신감과

 

즐거움이 몇 배가 되고, 그 힘으로 진도는 착착 나가진다.

 

해야 할 분량을 하루 별로 6일, 주 별로 4주를 두었다. 문법설명을 요점만 간략하게 하고(간략

 

하나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표현을 만들어 본 뒤, 다시 문장으로 만들어 본다.

 

그리고 하루 30개의 영작을 test하게 한다. 책에 쓰여진 표현을 읽는 것보다 내가 만든

 

문장은 이해도면에서도 월등하며 암기는 신기하게도 더없이 쉬워진다.

 

 

 

그날 하루 분량을 다 마치지 못하면 잠을 이겨서라도 해보겠다고,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도

 

앉아 있는 내가 봐지니 웃음이 난다. 아마도 이 스타트시리즈 세 권을 모두 마치고 나면

 

일취월장해있는 내가 보일테다.^^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어진 원인 중의 하나에는 몇몇 원서들을 읽었던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훌륭한 몇몇서재들을 들락이며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이익이 아닐까 싶다.

 

새해, 벽두의 첫 책은 Hackers Writing Start 가 된다. 너무 고마운 책이다.

 

 

감사한 2011년이었고, 감사할 2012년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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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2012-01-0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레 이 스 보고싶어요ㅠㅠ
돌아와요ㅠㅠ

Grace 2012-01-07 09:16   좋아요 0 | URL
꼬~옥 안아주고 싶은 녀석~^^
시절인연이 여기까지인 걸 받아들일 밖에...ㅠㅠ
애들 뭉쳐 놀러 와~
떡볶이 해 먹자. 라면사리도 넣을까?ㅎㅎ
 
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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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여행기가 있었으나 나의 집중력은 온통 티벳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구절,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나도 최근엔 이 걷는 사람이 되고 싶어 꺼리던 등산까지도 즐거워 질 수 있는 변화된 나의 모습

 

을 좋아라하고 있는 요즘이다보니 마지막 이 구절이 쏘~옥하니 들어온다.

 

김점선의 책에 박완서가 나오더라. 전자의 그녀는 두 고개를 걸어 넘어 후자의 그녀 집엘 들른다.

 

두 고개나 넘었건만 전자의 그녀는 마당에서 후자의 그녀 미소만 보고 다시 되돌아 그 고개를

 

넘어 갔더란다. 얼마나 편안하고 너그러울 수 있으면 두 그녀들이 그리 될까란 생각을 했었다.

 

두 고개를 걸어 온 사람을 그리 보내는 사람이나, 두 고개를 넘어 갔으나 그리 되돌아 오는 사람이

 

나...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뭔가가 있을 것이란 여운이 짙게 남았었다.

 

이 책에서의 박완서는 그리 편안하고 소탈하지만은 않은, 마냥 너그럽지만은 않은 까칠함이 느껴

 

진다. 그래서 까칠함이란 동질성으로 감히 나와 동류라는 억지를 하나 만들어 내고 싶어졌다.ㅎㅎ

 

몇 일 전 티비에서 올해의 여류작가 3인으로 박완서, 신경숙, 공지영을 꼽더라.

 

1월에 고인이 된 그녀의 짧은 인터뷰도 볼 수 있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러했다.

 

즐거운 일이던, 슬픈 일이던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는 걸 이 나이가 되니 알겠더라는......

 

존경해마지않는 나의 멘토의 한마디나 되는 것 처럼 그녀의 말을 다시 읊어 보았었다. 

 

선한 눈매의 그녀가 웃으면서 겸손한 듯 보여지는 미소로 인터뷰하는 모습이 참 좋더라.

 

조용히 그녀의 일행에 말없이 끼여서  티벳을 다녀온 듯 하다.

 

마른 먼지 풀석대는 팍팍한 그 곳-티벳,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욱 움켜쥐게 되는 것이 물질임을

 

알겠고, 가진 것이 적을수록 더 베풀 수 있고, 더 선량할 수 있고, 더 너그러울 수 있고, 더 웃음

 

지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건 여전히 나에게 더욱 확고히 진리가 될 듯한 그 곳-티벳...

 

나도 자꾸만 가고 싶어지도록 만든다, 이 책이!

 

2011년의 마지막 책은 박완서의 '잃어버린 여행가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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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닳지 않는 손 - 서정홍 동시집
서정홍 지음, 윤봉선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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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서정홍선생은 쉽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찾아 쓰는데 정성을 다하는 시인입니다. 서정홍 선생이 쓴 시는 이상하게 비틀고 뜻도 알 수 없는 말로 꾸민 흔적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 문학 평론가 김제곤님이 쓴 '읽고나서'의 한 부분이다.

 

동시는 항상 나를 미소짓게 한다. '이상하게 비틀고 뜻도 알 수 없는 말로 꾸미지'를 않기 때문에

 

읽자마자, 혹은 읽으면서 벌써 즐겁고 재미있고 속상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기쁘다. 그러해서

 

동시야말로 딱 나의 수준이다.

 

 

 

-하고 싶은 말

 

"공부하기 싫으면 학교 그만두고

공장에 들어가서

죽도록 일만 하면 된다.

그래도 공부하기 싫나?"

 

내가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어머니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어머니,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공장에서 죽도록 일만 해야 합니까?

사람들 머리도 예쁘게 깎아 주고

빵도 맛있게 만들어 주고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입 속에서 이런 말이

불쑥불쑥 비어져 나오는데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참습니다.

꾹 참습니다. 

 

 

 

이 동시를 읽는데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말이다.ㅎㅎ 나도 이런 말을 아들에게 해 본 적이

 

있으니...ㅋㅋ 그러게, 왜 나는 꼭 공장에 가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주 자연스레

 

웃음을 주며 나에게 경종을 울리니 어느 누구의 충고보다 따끔하다.

 

경남 합천 황매산 자락으로 저자의 싸인을 받으러 무작정 떠나고 싶다. 책을 읽고 나면

 

항상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인다. 법정스님을 놓쳐서 인지, 리영희교수를 놓쳐서 인지

 

그냥 저자의 책을 들고 그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좋은 동시집을 알게 해 준 hnine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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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슬하 창비시선 330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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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의 서재에서 이 책을 보았다.

 

詩는 본시 나란 사람에겐 어려운 상대인데, 사람을 쬔다는 표현이 그녀의 마음을 

 

걸었던 듯, 그것이 다시 나를 걸었네. 나를 걸기에도 충분했네.

 

아~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구나. 아~ 이렇구나, 맞아, 그렇지, 그랬던 것 같아!!!

 

이러한 것들을 시란 이름으로 나타낼 수도 있구나, 표현할 수도 있구나...!

 

이런 감탄과 동의가 절로 나오는 시들로 엮어진 것이어서 비록 시를 어려워하는

 

나로서도 충분히 시인이 시란 것으로 보여주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쓸 수 있는 리뷰는 고작 이러하다. 양철나무꾼의 리뷰를 몇 번 더 읽어

보았다. 주눅 든다.ㅋㅋ 그녀뿐만이 아니라 독후감을 아주 잘 쓰는 사람들이 많더라구.

나의 독후감이란 항상 이 책을 내가 언제 읽었다는 사실정도만 남기는 꼴인데...

하긴, 초등학교때부터 독후감이란 것이 나에겐 1톤이나 되는 무게로 내리 누르는

것이었단말이지.^^ 그렇더라도 용케 쥐포처럼 납작해져있진 않다는 거!!! 그래서

즐겁다는 거!!! 나를 주눅들게하는 그녀들의 리뷰로 이렇듯 훌륭한 책들을 접할 수

있다는거!!! ........ OK!!!)

 

 

 

 

 

 

 

아래의 글은 어느 블로그에서 복사해 온 것이다.

유홍준 시인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아래의 소개글이 이 시집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을

주기에 붙여둔다.

 

 

劉烘埈. 196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시인 유홍준

 

 

▲ 유홍준은 진주에서 50㎞ 떨어진 산청군 생초면 계남리, 버스도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병석에 오래 누워 있느라 논밭 다 팔고 어렵게 컸다. 그는 가난과 '가슴 속 불'을 못 견뎌 네 차례 가출한 끝에 생초고를 간신히 졸업했다. 그래도 백일장만 나가면 상을 타왔다. 써 둔 시며 소설이 대학노트 두 권을 채웠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먹고살거리를 찾아 부산까지 갔다. 범일동 한복집에서 군대 가기 전까지 2년 반 바느질을 했다. 제대 후엔 서울 용산시장에서 마른 고추를 팔다 부산에서 쇠 깎는 밀링공으로 일했다. 대구로 가서는 채소가게와 과일행상을 했다. 그래도 벌이가 안 돼 아내와 아들을 산청 집에 보내놓고 경북 영양에서 3년 넘게 고추포대 꾸리고 싣는 품을 팔았다.

 

 

고추철 지나면 양곡·시멘트 나르기, 농약 치기에 공사판 막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 그중에 3년을 꾸준히 일한 곳이 산판이다. 통나무를 메고 비탈을 달려 내려와 하루 다섯 트럭씩 실었다. 어깨에서 터진 진물에 옷이 달라붙어 저녁마다 소주를 부어 떼어냈다. 굳은살이 박이고 어깨가 달걀 하나 들어갈 만큼 파이자 '젊은 유씨'는 "영양 최고 산판꾼"으로 불렸다.

 

 

1990년 진주사는 누나가 그를 불렀다. 누나가 대신 이력서를 넣은 진주 제지회사에 취직이 돼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산판 일을 하다 종이를 만드니 세상에 이리 쉬운 일이 있나, 돈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진주에서 맞은 새 삶은 그의 안에 잠자던 문학의 불을 댕겼다. 입사 첫해 구내식당에서 공단문학상 공모 포스터를 봤다. 장려상은 탈 것 같아 급히 단편소설을 써 보냈더니 대상에 당선됐다. 91년엔 진주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시 장원을 했다. 그는 이듬해 개천예술제에 잔일을 거들러 갔다가 심사위원이던 시인 김언희를 만났다. 시인은 대뜸 "써 둔 시 좀 보자"고 했다.

 

 

김언희는 "군소 문학지로는 당장 등단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시를 쓰고 싶다면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어디에도 응모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그녀를 스승으로 모시고 혹독한 시(詩) 수업이 시작됐다. 스승은 시 이론서부터 인문·사회·과학책까지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수시로 건넸다. 영화·비디오·화집도 골라 줬다.

 

 

7년이 지나자 스승은 "이젠 어디든 응모하라"고 했다. 곧바로 대구 시전문지 '시와 반시'의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04년 첫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을 내자 문단은 "물건이 하나 나왔다"고 반겼다. 시인협회가 주는 제1회 젊은 시인상이 그에게 돌아왔다.

 

 

2년 뒤 시집 '나는 웃는다'는 1000만원을 내건 시작(詩作)문학상 첫 수상작이 됐다. 문인들은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에서 가장 좋은 시집으로 뽑았다. 열 개 넘는 문예지가 다투어 그의 특집을 실었다. 유홍준은 시단(詩壇)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 됐다.

 

 

그는 공장 안에선 철저히 공장 일에 몰두했다. '글 쓴다며 겉멋 들었다'는 소리 들을까 봐 제지공으로 최선을 다했다. 3년 만에 작은 아파트도 장만했다. 생산부 가공과 C반 반장이 돼 "유 반장이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신뢰도 얻었다. 그러던 2007년 회사가 기울면서 구조조정을 당했다.

 

 

유홍준은 알음알음으로 경기도 여주 정신병원에 관리사 자리를 얻어 떠났다. 아내도 진주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느라 남매를 돌볼 수 없어 두 달 만에 돌아왔다. 이듬해엔 진주시 장애인복지관 계약직으로 버스도 몰았다. 그러다 여주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하동 정신병원에 근무하게 됐다.

 

 

그는 진주가 "힘겹게 떠돌던 나를 받아들여 정착시켜 준 곳"이라고 했다. "진주에 오지 않았다면 문학을 못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진주가 맺어준 사제(師弟), 김언희와 그는 피붙이, 살붙이 하듯 서로를 '시(詩)붙이'라고 부른다. 정작 고졸 시인 유홍준을 알아주는 곳은 도계(道界) 너머 전남 순천이다. 그는 순천대 문창과에서 시작(詩作) 한 과목을 맡아 일주일에 하루 강의한다.

 

 

그는 "공장을 다녔어도, 정신병원에서 일해도, 입성이 초라해도 나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외경(畏敬)스러운 삶을 유지하려면 웬만큼 돈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그는 가끔씩 분노하고 좌절한다.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이고, 가난 탓에 그의 시 세계를 넓히지 못한다는 좌절이다.

 

 

그는 제지공 시절 이런 말을 했다. "순백의 고급 아트지(紙)를 만들려면 순도 90% 가성소다를 넣어야 한다. 흔히 양잿물이라고 하는 독극물이다. 좋은 시에도 독극물이 필요하다." 모질기 그지없는 그의 인생행로가 '시인 유홍준'을 벼려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8월25일자 조선일보 29면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 고향인 생초면 출신의 유홍준 시인은 우리나라 시단(詩壇)이 주목하는 작가로서

<이형기 문학상> <시작문학상> <젊은 작가상> <올해의 시인>등을 수상하였고

시와 삶이 함께가는 참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자랑스런 젊은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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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2-17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양철나무꾼 등장에 깜.놀.이요~!

"그렇더라도 용케 쥐포처럼 납작해져있진 않다는 거!!!"
이 표현 참, 참, 참 재밌는 거 알까요?

Grace 2011-12-20 08:53   좋아요 0 | URL
ㅋㅋ어느 한자락이든 재미라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많은 독서량에, 훌륭한 독후감들...
감탄을 금할 길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