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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최인호 작가님의 책을 두어권 접했습니다. <인연>과 <천국에서 온 편지>
에세이만 접했었기에 소설을 쓰시는 분이었다는 것은 차마 생각을 못했었어요. 알고보니, 역사소설로 이름 좀 날리시던 작가님이었던겁니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사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이 책 또한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맙소사. 같은 시기에 황석영 작가님의 <낯익은 세상>이 출판되었던터라 당연히 제목도 비슷한 것이 둘다 소설일리 없다, 낯익은 세상은 소설이고,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에세이일거다, 하고 막무가내로 생각해버린거예요. 사인회가 있어서 구입을 하고 사인회 전에 책을 읽고 사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작가님 죄송합니다. ㅜ_ㅜ

띠지에서도 말해주고 있듯이 한 남자의 모험이 주는 전개는 가히 숨막혔습니다. 뭐지 뭘까, 대체 무슨 일일까. 책을 잡은 순간부터 책을 덮는 순간까지 흥미진진했습니다. 주인공이름이나, 로션이름을 영문이니셜로 표기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살짝 흥을 깨는(?), 뭔가 취조당하는 느낌의 껄끄러움이랄까요.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은데 영문이니셜이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그건 그냥 살짝 영어울렁증이 있는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익숙한 일상에서 이따금씩 오늘은 내가 아닌 것 같다, 고 느껴보신 적이 있으세요? 사흘동안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이 책에서는 일어납니다.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죠. 늘 쓰던 로션이 무엇인지 늘 입고 자는 잠옷은 무엇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는지, 사람마다 삶의 패턴이나 습관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어느순간부터 바뀌어 있는겁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사이에 그렇게 갑자기 말이예요. 그러더니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진짜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주변이 모두 가짜인 것 처럼 느껴지더니 이제는 자신이 진짜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어쩌면 이것은 또 다른 나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도플갱어죠.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각자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가 그 합일을 찾을 때, 이 책은 끝이 납니다. 다른 습관을 가지고, 다른 아내와 다른 딸과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인데 만나고 보니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라면 어떠시겠어요? 사람들은 전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마다 주어진 삶이나 운명의 길이, 부의 차이, 모두 달라요.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같은 시간을 살더라도 나는 이것을 하고 있고, 이 사람을 이런 일, 저 사람은 저런 일, 겪는 일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죠. 다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진짜라는게 과연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모습으로 태어나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이런 습관을 통해 만들어낸 하나의 형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또 하나의 낯익은 타인일 뿐입니다. 매일 보던 얼굴이라, 매일 보던 몸이라, 매일보던 습관이라, 낯은 익으니까 그게 나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거예요. 진짜 나는 존재하는가,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을 품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에세이를 볼 때도 굉장히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묻어났었는데, 소설에서도 에세이만큼은 아니지만 종교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주의 기도가 그렇고 합일사상이 그러합니다. 온전한 내가 되기를 추구하는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프신대도 불구하고 두달만에 소설을 쓰실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마도 소설가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강에 유의하시어 또 좋은 작품으로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