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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표지만으로는 전.혀. 끌리지 않았던 책입니다. 한국작가에 관심이 좀 없던 때이기도 했구요. 그런데 지인들의 평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제가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지 않으면 잘 믿지 않는 스타일이라 선물을 받아놓고도 선뜻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평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요즘은 손편지를 잘 쓰지 않기는 합니다만 저야 늘 끄적이는 걸 좋아해서 가끔씩 손편지도 쓰거든요. 뭐,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가 좋아서 쓰는 거니까 고독하지는 않던데, 주인공은 어땠을까요? 많이 우울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읽어내려간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장은진 작가님을 우연히,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라는 단편집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었는데 그 때 느낌이 나쁘지 않았었거든요. 어찌보면, 저와 만날 운명이었던 겁니다. 이 책은. 훗,

줄거리는 한강 소설가님이 잘 찝어주셨습니다. (훗훗) 처음에 모텔이 등장하길래 이건 또 무슨 설정이야,하며 좀 의아했었는데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는 이유가 다 있잖아요. 그 이유가 나올 때까지 조금은 갸우뚱하면서 들여다보았어요. 모텔을 전전하면서 편지는 또 뭐야, 이런거였죠 ㅋㅋ 다 쌩뚱맞잖아요. 거기다 눈먼 개까지 모텔에서 함께 지낸다니, 발상이 참 독특한 책임에는 틀림없었어요.
또 개, 하니까 얼마전 보았던 <블라인드>가 생각이 납니다. 어찌보면 여러면에서 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점이 많아요. 그쵸? 이 책에서 주인공이 개와 함께 있어 고독을 이겨내고 정을 내는 것처럼 <블라인드>에서는 시각장애인인 주인 민수아(김하늘 분)를 지키잖아요. 개는 참 좋은 동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떠올렸던 또 다른 생각.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
차지헌 (지성 분) 본부장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잖아요. 이 책의 주인공은 말을 좀 더듬죠. 자신을 자신있게 드러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장애를 최대한 감추되 다른 방법으로 드러내기를 시도합니다.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 차지헌 (지성 분) 이 공황장애 때문에 스크린으로 업무보고를 하듯이 이 책의 주인공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편지쓰기였던겁니다. 그 설정이 참 기가막힌거예요. 의문스런 행동들이 편지하나로 다 풀어지다니, 이 점에서 장은진 작가님 참 매력적이야,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진실보다 거짓말이 통할 때가 더 많은 세상이죠. 가식으로 대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다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저를 비롯해서요. 다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보이지는 않아도, 무시무시한 마음의 병 말이예요.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때 마음은 불편해도 몸은 편할 수 있죠. 지금 현실에 딱 공감되는 글귀였습니다.

봉헌된다는 말이 참 좋아요. 주저리주저리 쏟아냈던 말들이 봉헌되고 내 곁을 떠나가면 그것은 나에게서 잊혀지죠.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후련할 수도 있잖아요. 그의 시간을 희생하며 쓴 편지인만큼, 언젠가는 답장을 받을 수 있겠죠? 그가 실망하지 않고, 계속 편지를 썼으면 하고 바래봤던 글귀였습니다. 세상에 의미, 가치 없는 일이라는 건 없잖아요. 분명, 그의 편지를 받는 사람에겐 희망이고, 행복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비록 그에게 답장은 못했을지라도, 그랬을 거라고 믿어요.
글귀앞에 55. 라는 숫자가 적혀있죠? 이 책을 보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예요. 장편소설은 어찌보면 지루할 수도 있잖아요. 저렇게 단락이 나누어져 있으니까 책장이 더 잘 넘어가는 거 있죠. 흐름이 끊긴다는 생각은 해보지를 않았어요. 오히려 그가 보냈던 하루를 같이 보낸 느낌이랄까요. 하루와 하루사이, 사건과 사건사이를 깔끔하게 끊어주는 느낌. 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결말은, 제가 설마설마 했던 게 현실로 이루어져서 김이 살짝 빠졌었어요. 그저, 편지가 담뿍 쌓인 그곳으로 돌아가 답장을 쓰는 결말, 평범한 결말을 기대했었거든요. 어떻게든 이겨낼 수 밖에 없었기에 감행한 여행이라 더욱 안타깝기도 했구요. 그러기에 인생은 참으로 고독하다. 우리 모두 이렇게 떠도는 인생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견딜 수 있는 의미가 되어준 편지라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고독한 인생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이 그 이유일 수 있고, 누군가가 건네준 자그마한 쪽지가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죠. 그렇기에 인생은 고독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과 함께한 여행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