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고 한 팬질 ,
날짜를 보니 윤의 졸업식이 있던 날 날아온 메일이었다 .
나는 그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뻗었으므로 메일 따윈 열어볼 짬도 능력도 없었다 . 16일에야 땀에 온통 젖어서 깨고 온 몸엔 멘소래담
냄새를 폴폴 풍기며 그 덕에 더 쌀랑하게 느껴지는 거실에 나앉아 습관처럼 메일과 전전 날의 블로그 기록을 살피며 와 있는 댓글에 차례차례 답글을
했더랬다 .
메일 중에 발견한게 moonrise님이란 분의 짧은 인사
, 그리고 이 책 독서만담을 보내고 싶다는 내용의 얘기가 있었다 . 안그래도 보고싶어 근질근질하던 차였는데 이게 웬 횡재 ! 아, 늦었구나 싶어
얼른 답 메일을 보냈다 . 그렇게 두어차례 서로 감사의 말을 꾸벅꾸벅하고 책을 기다려 받았다 . 메일에서 득달같이 배송에 넣었다더니 다음날 바로
도착을 해줬고 , 나는 일단 도착 인증사진을 찍어 앞으로 읽게될 독서리스트에 꼭 타임테이블 찍듯 인스타와 활용하는 sns에 책 자랑질을 했다 .
그리고 어제 , 늦은 시간부터 책을 잡고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 책을 말그대로 즐겼다 . 클클대면서 , 재미 보장이란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
그런데 읽으며 놀란 건 몇 꼭지만 빼곤 내가 이
내용들을 전부 서재 , 그러니까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읽어 왔었다는 것 , 그 사실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이토록 저자의 팬이었다니 ,
왜냐하면 이 분이 북홀릭 (잡식성책장) 님이라는 인지를 하게 된게 오래전이 아닌 비교적 최근의 일(물론 이 책을 내기 전)이기 때문이다 .
아마도 습관처럼 다른 분들의 리뷰를 하루 시작과 함께 몇개씩 꾸준히 읽기를 해왔던 중에 , 폰이라는 놀랍지만 조악한 화면 특성상 닉네임은
따로이 기억하지 않으면서 이 분의 글 꼭지를 늘 찾아 읽었었다는 말이 되고마니 , 나로서는 그게 참 신기한 일이었다 . 책 자체가 아주 두껍지는
않지만 280 매라는 분량에서 처음 만나는 글은 겨우 두서너 꼭지 뿐이라는 걸 , 생각해보면 책 한 권의 분량을 같이 시간을 보냈다는 셈이
되는데 이 우연을 어찌 팬질이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 !
많은 리뷰어 분들의 닉네임과 글을 하나로 묶어 '이건 이
분의 글이로군' 할 만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데는 내 뇌 한계를 핑계로 댈 수 있겠지만 , 그 많고도 긴 시간 한사람이 완성한 글을 꾸준히
읽으면서도 정작 그를 몰랐다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하고 또 어떤 면에선 이처럼 무심하면서 다른 쪽에선 애호해왔다는 기이한 사실을 매 단락마다
깨달았으니 이 또한 웃긴 일이지 싶었다 .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 까닭엔 바로 북홀릭님인 저자와
댓글로 인사를 튼 개기가 이 책 맨 처음의 주제라는데 있다 . 그저 많고 많은 괴짜 중 한 사람이겠거니 했던 블로그 주인장은 친절하게도
절판본과의 탐욕 편에 거론된 그 위대한 <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이란 책들이 뭔지 알 수 있겠냐는 내 질문에 애써 관련 책들이
나열된 곳의 주소를 남겨 주기까지 해서 내 메모장 한 쪽을 차지하고 있고 , 그리고부턴 이 북홀릭 이란 닉네임은 그렇게 내게 메모장의 한
쪽처럼 각인이 되었다 .
블로그란 한정된 화면에서나 보던 익숙하고도 구성진 또
익살스런 한탄과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말그대로 찌질을 지향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 그 남자는 그렇게 어느 날 내 기억에 들어와서 다시는
(응?) 나가지 않았다 ' 고 ,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 문장을 인용해 떠들어 대면서 지금까지 해왔듯 나는 그 찌질한 어느 날에
시비 아닌 시비를 걸어가며 오래 이웃하게 되길 바라게 된다 .
어쩌면 저자로서는 마음이 꿍할 수도 있겠다 . 이번 책이
처음도 아니고 무려 다섯번 째 책이란 걸 감안하면 , 그러나 책이란 성질이 그렇듯 읽지 않으면 , 그 전은 그 책이 아무리 세상에 있다고 해도
안 읽은 사람에겐 없는 세상인 것이니 , 나의 장황한 첫 인사에 아주 살짝만 삐치시기를 바라며 , 명저 "오래된 새책 "이 절판본 또는
희귀본으로 마구 몸값이 오르기 전에 찾아 또 읽어봐야겠다 .
가깝다 느끼는 이웃님들의 리뷰로 이 책의 호기심을 키웠고
, 원래 책에 관한 책은 가급적 읽지 않으려 하던 내 애씀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져 버렸다 . 그러니 앞으론 읽더라도 마구 늘어나는 책 욕심만은
경계에 경계를 거듭하며 그저 즐겨야지 , 세상엔 별 사람도 많고 역시나 읽지 못한 (않은?) 책이 여전히 많다는 것에 좌절과 기쁨을 동시에
놓으면서 .하핫~
인터넷 서점의 블로그인지라 대부분의 이웃서재 주인장들은
책을 사랑한다 . 그게 ' 정신적 사랑이건 육체적 사랑 ' (육체파와 정신파, 본문 60쪽) 이건 , 저자의 말처럼 표현의 차이이지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일테다 . 그것이 ' 국내에서 출간된 책의 판매 부수가 2 천권을 넘지 않아 , 인구 5 천만 명 중 단 2 천 명만이 같은 책'
(본문 7 쪽 ) 을 읽고 공감을 한다고 해도 , 그 많은 사람 중에 길게 혹은 짧게 늘어진 시간선(삶) 을 떠올리면 시대도 출판사도 읽는
사람의 지역마저도 모두 뛰어 넘어하는 공유와 공감이 되니 어쩐지 더 소중해지고 뭉클해지고 하는 것이 나만은 아닐거라고 믿게 된다 .
그런 현상을 한때 곱씹으면서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
나는 "경이로운 공감지대 "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이 책의 만담들은 특히나 더 각별해진다 . 그 화면의 글들이 이처럼 종이에 찍혀 나왔다는 것이
. 아 , 다음은 어떤 분의 글이 이처럼 책으로 만들어질까 ! 우리가 익숙하게 읽던 누군가의 글 중에서 !? 그런 마음과 함께 많은 글사랑
책사랑 이웃님에게 한 권의 책을 내고 만나게 하는 그 과정에 용기가 될 책으로 이 책을 , 계속하는 만담처럼 놔주고 싶다 . 어떤 읽기나 쓰기를
말하는 책 중에 용기가 다리가 될 역할로 말이다 .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책을 냈고 작가라는 직업을 하나 더
얻었다 . 부끄러움이 많아 다른사람 앞에 서는 것조차 어려워했던 내가 제법 말문이 트인 것도 독서 덕분이다 . 직장에서 필요한 글쓰기를 두려워
않게 된 것도 독서 덕분이다 . (본문 7 쪽)
그 감탄은 종종 그 책을 재독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
뒤쪽에 숨어 있는 책들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미지의 동굴을 처음 답사하는 듯한 설렘을 선사한다 .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 한 번 읽은 책의 내용이 금방 잊힌다고 한탄할 이유가 전혀 없다 . (본문 46 쪽)
늘 그렇듯 즐거운 생활을 보여주는 박균호 (북홀릭 ,
잡식성책장)님께 , 또 좋은 느낌으로 책을 보내주신 moonrise 님께 깊은 고마움 전하며 , 꾸벅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