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베란다 밖 풍경을 한참을 보다가 큰 애는 떠났다.

"집이 천국이예요", "엄마 정말 행복해요" 라는 말을 5일 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 

군에서 먹고 싶어하던 오예스를 한 통 사들고 들어온 아이는, 5일 내내 그 과자도 못 먹고 자유의 냄새와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느라 바빴다.  

빕스에서 첫 날 저녁을 먹은 이후론 저녁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집에서 먹는 밥이 맛있다며 아침밥도 한 그릇씩 비우는 것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오늘 아침, 아쉬움이 가득한, 그러나 애써 숨기는 표정을 보며 남편과 나도 마음이 착찹했다. 

누구나 하는 거니까, 잘 지내고 또 금방 돌아오겠지. 

군 입대하고 5개월도 꿈처럼 흘렀고, 아이가 곁에 있던 5일도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갔으니 남은 시간도 그렇게 흐르리라, 시간에 맡겨 본다.  

갈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보냈는데, 방을 치우려 들어가 침대 시트를 정리하고 노트북을 정리하면서 아들의 빈자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저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남편도 영 마음이 아린지, 표정으로 말로 느낄 수 있었다. 

크게 고생하는 자리 아닌데도 잠깐의 휴가 뒤 보내는 마음이 이렇게 쓰라린데, 전방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 심정을 어떨까, 잠시 그 마음의 슬픔도 짚어졌다.

큰 아이의 빈자리를 채우듯 작은 아이도 기숙 학원에 가서 데리고 왔다. 

오는 내내 기숙 학원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느라 바쁘던 아이가 저녁을 먹은 후론 잠잠하다. 학원 앞에서 하나하나 포옹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난리를 떨더니, 이제 헤어짐이 실감이 나는지 아이는 울고 있었다. 

만남을 언제나 헤어짐을 전제로 한단다. 

오늘 헤어져 슬픈 일은 우리 긴 인생에서 겪어야 할 수 많은 이별들에 대한 예방주사가 되겠지. 

우리는 또 곧 만날 수 있지만,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도 세상이 있는 것임을 이런 작은 이별들을 통해서 배우는 거겠지. 

이별의 예방주사는 항체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에서 우러난 사실이지만, 이런 경험들이 우리의 생을 풍부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오솔길들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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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1-3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헤어져있으면서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값진데요. 만남이 보장된 헤어짐이라면 그리 슬퍼하지 않아도 될것 같아요. (그래도 마음이 많이 허전하시지요, 혜덕화님...)

혜덕화 2011-01-31 09:20   좋아요 0 | URL
어제 저녁 무사히 귀대했다는 전화를 받고 마음이 놓였어요.
이제 또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면 잠시 느꼈던 서운함도 잊혀지겠지요.
행복한 설 보내시기 바랍니다.

진주 2011-01-31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드님을 군대에 보내셨군요...
제 아는 언니가 아들 군대 보내놓고 2달 꼬박 울고 다녔어요. 언니 울고 다니던 모습 눈에 생생한데 벌써 그 아들이 제대했어요. 아들을 군에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정 떼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방금 인생의 대선배님께 한차례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조금씩 비워보려고 작정해요. 한 2년 있다가 우리 아들 군에 가면 저는 1달정도만 울려구요..^^ 혜덕화님 글 보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서 맘이 쓰이네요...에혀..

혜덕화 2011-01-31 17:23   좋아요 0 | URL
처음 입대할 땐 이번 만큼 서운하진 않더군요. 방학 내내 12시에 일어나서 아침겸 점심 먹고 오후에 나가서 거의 매일 밤 12시가 넘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내심 군에 가서 고생 좀 해야 인간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살도 좀 찌고 키도 좀 커서 아이가 단단해 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달라진 것 같아 대견하기도 했지만 군대가 무채색이예요 하던 말이 맴돌아 마음이 아팠어요.
진주님도 금방이랍니다. 대학 입학하면 그 다음이 군 입대잖아요.

무스탕 2011-01-3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게도 전 자라면서 주변에 '군인'이 없었어요. 11살 차이나는 오빠는 군에 가자마자 건강상의 문제로 면제판정 받아 다시 돌아왔고;; 신랑도 나이 먹어 만나 연애를 했으니 상관이 없고 이제 오빠네 큰조카가 올봄에 군대엘 가는데 그녀석이 처음이에요.
어떤 마음일까 내 자식이 군대엘 가야 가장 절실하게 와 닿을텐데 아직은 감이 안잡혀요.
혜덕화님의 아드님도 잘 지내다 건강하게 돌아올테니 크게 걱정 안하셔도 될거에요 ^^

혜덕화 2011-02-01 09:42   좋아요 0 | URL
실감 나지 않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요?
아이들이 아직 품에 있을 때이니...
나이 드신 분들은 또 지금 우리 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도 하더군요.
아마도 지난 간 시간은 모두 '제일 좋은'때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어요.
설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양철나무꾼 2011-02-01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저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거리며 읽어요.
저는 다른 사람을 향하여선 그렇게 절절, 애절 했었던 적은 없고,
올해 중2인 저희 아들은 어렸을때부터 한두달씩 미국에 보내 떼어놨던 적은 있어요.
고등학교를 가게되면 어쩜 또 떼어놔야 할지도 모르는데...제가 잘 할 수 있으려는지요.
님의 페이퍼를 보니, 저절로 간접 경험이 되는걸요~

명절 잘 지내세요~!!!

혜덕화 2011-02-01 09:45   좋아요 0 | URL
늦게까지 깨어계셨군요.
정말 대단해요. 어린 아이를 미국에 떼어 놓을 생각을 하시다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홀로 서기를 일찍 배우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홀로 서기가 되어야 누구와도 나란히 갈 수 있잖아요.
양철나무님도 행복한 설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순오기 2011-02-06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군에 간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났네요~ 남의 일이라 빠르네요.^^
휴가를 왔다 다시 돌아갈 땐, 정말 눈물이 날 거 같아요.
고3되는 아들 기숙사에 보내놓고 주말에 빨래감 가지러 가서 만나는데도 종종 보고 싶더라고요. 침대 정리하다 울어버린 엄마의 애절함에 눈물이 찔끔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