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 를 읽고 간식 거리 하나도 제대로 사 줄 게 없구나 충격을 느낀 적이 있다. 그 고민은 초록마을에서 사오는 유기농 과자로 인해 점점 흐릿해졌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과자와 멀어지니 처음의 충격이 많이 잊혀졌다.
이 책은 단지 음식을 음식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아이들의 건강을 볼모로 한 마케팅, 그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의 농촌 문제까지 쉬운 말로 친절하게 엮어서 보여준다.
모르고 먹었던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호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밥 하기 싫어서, 피곤해서, 가족의 행사라서, 고기를 많이 먹으면 키나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늘까 싶어서' 등 외식이나 시켜 먹는 음식에 대한 핑계는 무궁무진하다. 음식 그 자체의 맛을 느끼며 먹는 습관을 들여주기엔 현대 사회가 우리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다. 천천히 음식의 맛을 느끼며 앉아서 밥을 먹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것들이 온통 양념으로 범벅이 되었던 것이라면, 요즘은 오이, 당근 그 자체의 맛을 느끼며 음식을 먹게 된다.
할머니가 키워서 된장찌게나 나물을 잘 먹던 큰 아이는 단체 급식 6년 사이 입맛이 바뀌었는지 라면이나 햄, 고추장 범벅이 된 음식만 좋아하고 담백한 야채류는 잘 먹지 않는다. 단체 급식이 엄마들의 일손을 덜어주면서 아이들의 입맛까지 바꿔놓은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회식이 있거나 야밤 간식을 찾을 때 손쉽게 피자나 통닭, 자장면을 시켜 먹게 한 내 책임이 더 크겠지만.....
단체 급식은 유치원에서부터 실시가 되고 맞벌이로 바쁜 부부는 아이들에게 만들어 먹이는 음식의 따뜻함과 정성과 맛을 느끼게 하기에도 현실이 너무 바쁘고 각박하다.
사람은 음식에서 태어나서 음식으로 돌아간다고 어느 노천문학자께서 말씀 하셨다.
부모의 영양분을 받아서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부로 부터 음식을 얻어 살아야하는 인간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자연의 보시가 없으면 자랄 수가 없다고 했다.
자연으로 부터 음식을 받아서 몸이 자라고 평생을 살게 되니 죽으면서 몸을 자연으로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하셨다.
나이가 드니 예전엔 먹지 않던 장아찌 류를 좋아하게 된다.
간장에 담궈 익힌 무, 고추, 오이 장아찌, 깻잎 장아찌 등이 고기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입맛도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가 싶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런 음식에 맛을 들일 나이가 되겠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린 어릴 때 그런 음식을 먹고 자라서 다시 찾게 된다지만, 아예 그런 슬로푸드를 경험해 보지도 않은 아이들도 커서 입맛이 우리처럼 바뀔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아이를 적게 낳아서 국가의 장래가 없다는 고민을 하기 전에 낳아 놓은 아이부터 잘 키워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대형 기업의 문어발 경영이 시장의 영세 상인들을 다 잡아 먹고, 기업형 음식 업체가 아이들의 건강을 다 망쳐 놓은 후에, 농촌을 초토화 시켜 놓은 후에 우리가 들여야 할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단순히 내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문제는 그 부모의 문제라고 떠넘기기엔 개인의 힘은 너무 약하다. 눈 앞에 값싼 음식, 배를 불릴 수 있는 음식이 널려있는데 유기농이라는 이유로 비싼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한 줄 알고 살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행복한 사람들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향유하고 사는 이 모든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과 보시를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면, 내 돈 내가 쓴다거나, 남을 돕고 산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빚진 것을 갚는 과정일 뿐이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아 주는 것보다는 통닭을 더 선호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토피로 고민하는 수 많은 엄마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것이 음식에서 왔다는 것은 알지만 오염된 음식이 얼마나 많이 우리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밥의 고소함과 달콤함을 느끼며 밥을 먹고 신 것은 시게, 단 것은 달게, 쓴 것을 쓰게 음식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되도록 우선 나부터 애써야 겠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