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과의 대화
이시형.박상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인생에서 만난 의미치료"

의미치료는 '인간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의지'에 초점을 두는 이론입니다. 의미치료는 내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내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알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치료법입니다. 내가 겪고 있는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을 우리는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 '의미'는 비로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의미치료에서 말하는 '영'이란 인간 '내면의 밝은 빛'입니다. 상처받아서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보이는 마음속에도 '순수한 밝은 빛' 즉 '삶의 목적과 고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행과 고통밖에 없어 보이는 인생에도 반드시 숨어 있는 행복이 있고, 고통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책은 '특별한서재'에서 출판한 이시형 박사님의 신간!

박상미 박사님과 함께 공저로 출간했고 의미치료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오는 의미치료에 관한 치유심리책이다.

로고테라피? 의미치유?

아직 낯선 이 단어는 인간이 말그대로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가는데 초점을 두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치유법이다.

-"그렇지만 단 한가지만은 자네들에게 당부하겠네."

그는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의 한 대목이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면도를 하고 깔끔하게, 인간답게 살아야하는 중요성을 말해준다.

사실 이 글 안에는 '인간답게' 이전에 '일할 능력'이 있어보이기 위해 면도를 하고 깔끔하게 단장하라는 의미가 먼저 들어오지만

행동이 마음가짐을 만드는 것처럼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도 한 대목 있다.

복잡한 관료절차에 부딪혀 질병급여,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더이상의 절차를 포기하고 이름을 내려달라고 하자,

관공서 직원이 만류한다. 그래도 이름은 리스트에 남겨두라고. 나중에 되면 더 제재가 가할 수 있으니 다시 절차를 밟으라고.

그 때, 다니엘은 말한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그리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말하는 인간다운 자존심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프랭클을 대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지녀왔떤 가치관, 행복관, 성공관, 인간관은 너무나 소아기적인 차원이란 생각에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인생관에 혁명적 변화의 계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됩니다.

...

프랭클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섭니다. 자기를 초월한 경지입니다. 자기 초월의 욕구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는 것.

지금까지 심리학은 네가 진짜하고 싶은 일, 꿈, 그리고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떤 희망이나 원망을 실현시키고 싶은가에 치중되어 왔습니다. 프랭클의 반론은 신랄합니다. 자기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를 실현했다고 하자. 바로 또 새로운 하고픈 일이 생겨 어쩌면 우리를 만성 불만의 상태로 몰아간다고.

...

프랭클의 심리학은 의미치유입니다. 의미 발견을 위한 3가지 물음!

1.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나?

2. 나의 일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디 있는가?

3. 그 누군가, 무언가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자기 초월의 경지

 

Trans Personal

자기를 확립한 사람이 이젠 그 단계를 넘어 무언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하고자 한다거나 사회나 집단에 공헌하는 일입니다. 프랭클의 체험가치 -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함으로써 실현되는 가치는 당연히 이 단계를 말합니다.

...

프랭클의 의미치료의 깊은 구석까지 이해하려면 심각한 시련을 겪거나 철학적, 종교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그의 지론을 살펴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종교적 또는 트랜스 퍼스널적인 두 가지 견해가 받침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1.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우리들의 삶을 보고 있다.

2. 과거에 일어난 일은 영원히 현존한다.

초월의 의미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의미치료를 따라가다보면 초월, 더 나아가 자기 초월이라는 경지를 알게 된다.

나를 넘어선 타인과의 의미까지 확장되는 개념인데 나는 이 말이 '내 삶의 의미'를 더 잘 표현하고 찾게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기에. 무인도에 떨어져도 윌슨을 만드는 존재이므로.

누구는 말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말라고. 왜냐고 묻지않는 삶을 살라고.

나는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도, 인생의 순리에 따라 인위적이지 않게 물 흐르듯 사는것도 모두 찬성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살아가는 날들에 있어서 의미 없이 보내고 싶진 않다는 거다.

의미를 궁금해하고 찾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의미를 실현하고 싶어지는 믿음 자체가 오히려 의미치료에 한걸음 더 다가간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음에서 다시 시작한다.

"인생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의미는 반드시 주어져 있습니다.

해야 될 일, 충족시켜야 할 의미가 반드시 있기에 그 사람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가장 소중한 걸 잃고 가장 바라는 걸 얻었어.

때때로 나는 비감에 젖고 싶을 때 또는 내 지금을 긍정하고 싶을 때 저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와 헤어졌고, 그와의 일을 글로 써 나는 데뷔했다."

 

 

 

 

 

 

이번 책은 <여름, 스피드>로 너무나 유명한 김봉곤 작가님의 두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

그 중 창비 사전 서평단으로 <시절과 기분> 소설집 수록 단편 <엔드 게임>을 읽었다.

기다린 시간만큼 생각할 만한, 느낄 만한, 잊고 있던 감정들이 불쑥 느껴졌던 단편 글.

<엔드 게임>은 주인공 '나'와 그의 전 남친이자 현 지인(?) 형섭이가 등장한다.

엔드 게임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그들은 끝이 났지만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다.

몇년 전 헤어짐을 맞이했지만 아직 연락을 주고 받는 둘.

잘 지내고 있니? 라는 안부 문자부터 무슨 옷을 입을까? 놀러와, 시험에 합격했어- 등등

일상적인 대화뿐 아니라 삶의 대소사까지 함께하며 마음 속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며 살고 있다.

소설가인 '나'의 글에 글감으로 등장한다는 '형섭'과의 이야기는

이 단편이 소설인지, 일기인지, 논픽션이지 알쏭달쏭하게 우리를 이끈다.

헤어졌지만 계속 알고 지내는 사이.

그 중 어느한쪽은 아직 감정(feeling)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쪽도 감정이 있으니까 계속 연락하는거야. 그러니까 단편 제목처럼 <엔드 게임>으로 끝내지말고 <해피 엔드>로 끝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속으로 응원하고 있지만 사랑이야기의 끝이 언제나 해피하지는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리고 상대는 아무 감정 없지만 그저 편하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연락을 주고 받을 수도 있으며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연락이 뜨문뜨문해지다가 5년 후에는 서로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가물가물해질 수 있다는 것도.

 

 

 

 

 

"나는 그것을 알아야겠다. 내가 무엇을 정말 쓰고 싶었는지를,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의 형태를, 그와 나의 눈물의 이유를, 나를 무너뜨린 마음의 정체를, 되찾을 풍경과 열린 시간 속의 그의 모습을 나는 꼭 알아야겠다. 다시 한번 내 시간 속에서, 내 시간 속의 그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아직은 삶의 시간에 질 수 없다. 내 부끄러움에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그래도 <엔드 게임>의 '나'는 외친다.

감정의 이유를, 이별의 목적을, 만남의 필요를, 둘의 의미를.

'나'와 '형섭'이 왜 헤어져야했는지 둘 중 한명의 감정이 변한 것인지 사회의 시선 때문인지 불확실한 미래로 갑갑한 수험생의 삶 때문인지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근데도 끝내지말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끝의 끝을 붙잡고 다시 한번 해보고나서 그리고 나서 끝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다.

헤어진 연인은 함께한 추억을 나누고 말할 수 없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다시 만나고 살 수 있다.

이 글이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의 요가 - 인도 최고의 지성과 영성, 비베카난다의 말
스와미 비베카난다 지음, 김성환 옮김 / 판미동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묻게 된다,

이 삶이 진짜일까?"

인간은 대체 왜 신을 찾는 것일까요?

왜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들이 완벽한 이상을 추구할까요? 그런 관념들이 이미 당신의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당신 자신의 심작박동 소리였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것을 외부에 있는 무언가로 간주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를 찾고 '그'를 실현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당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바로 그 신입니다.

이번 영성 책은 판미동에서 출판한 <마음의 요가>.

아직 배움이 짧아서 그런지 스와미 비베카난다 책은 처음 읽어봤다.

1863년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나 18세 그의 스승 라마크리슈나와 만났고 인도 전역을 통해 수행 길에 올랐다.

<마음의 요가>는 미국과 영국 전역에서 전 새계에 베다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강연한 그의 말들이 담겨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삶과 영혼에 대한 말들이 생각에 잠기게 하고 책을 읽는 순간까지 명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다고 착각한 지식과 진실들을 그 심연 끝까지 파헤쳐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의 요가>를 통해 묻는 질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알면 알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게 된다.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예전엔 그런 글들을 봐도 와닿지 않았는데 살면서 몇가지 경험들을 겪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몸과 마음으로 닿는 몇가지가 생긴 것 같다.

답이 없는 질문을 묻고 찾길 원한다면 <마음의 요가>를 읽으면서 그 길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삶이 우주를 포함하고 다른 사람들을 포함할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삶을 살면, 단순히 죽음으로 끝날 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주에 생명이 존재하는 한 자신 역시 살아 있는 것이란 점을 깨달을 때에만 정복될 수 있습니다.

대범한 사람만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나는 모든 것 속에, 다른 사람 속에 존재한다. 나는 모든 생명 속에 존재하며, 그러므로 내가 곧 우주다."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그다, 내가 그다 I am He, I am He."

이 말이 마음속에 밤낮으로 울려 퍼지게 하고, 죽는 순간까지 '내가 그다.' 라고 선언하십시오. 이것이 진리입니다. 세상의 무한한 힘이 바로 당신 것입니다. 마음을 덮어 온 미신들은 쫓아 버리십시오. 대담해지십시오.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실천하십시오. 목적지가 멀더라도 깨어나고, 일어서서, 그곳에 도달할 떄까지 멈추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인간의 참다운 본성

당신이 원하는 힘과 도움은 모두 당신 내면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과거는 묻히도록 내바려 두십시오. 무한한 미래가 당신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각각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당신 내면에 그대로 저장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과 악한 행위가 불시에 덮쳐들듯, 활력을 불어넣는 희망과 선한 생각과 선한 행위도 언제든 솟아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당신을 언제나, 영원토록 보호해 주는 수천만 천사들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솟아날 것입니다.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하다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마음의 요가>를 읽다보면 반복적인 울림이 있다.

영혼, 자유, 삶, 죽음.

그리고 그건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처럼 내 마음 안에 있다.

힘이 드는, 그리고 힘이 되는 가르침을 주는 비베카난다의 강연이 내 안에 있는 영성의 힘을 작게나마 깨우쳐주길 바라게 된다.

오래된 나무를 가만히 보면 아마 반도 못미치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짧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내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건 아직도 큰 슬픔이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난 적도 없고 죽지도 않는다는 가르침과 영혼의 눈으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비베카난다의 말로 큰 울림을 받는다.

'영혼은 힘이 아니다. 영혼은 생각조차 아니다. 그것은 몸 그 자체도 아니다.'

내 마음, 영혼을 위한 <마음의 요가>로 잠시 멈춰서서 지혜, 행위, 헌신으로 가는 그 시간을 채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팩트를 알면 두렵지 않다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김종수 옮김 / 움직이는서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낙관주의는 역사의 화살을 추진시키는 활과 같다."

-<진보의 역설>을 출간한 이래 나는 이 난제를 계속 연구해왔다.

생활은 나아지는데 왜 사람들은 더 나빠진다고 느끼는가?

-이 책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썼다.

첫 번째 목적은 오늘날 온갖 불안 요소와 인터넷상의 요란한 논란, 귀에 거슬리는 피상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나머지 나라에서 생활 여건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좋은 조짐을 보이고 있따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그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다, 미국과 대부분의 여타 국가에서 보이고 있는 양호한 생활 여건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왜 모든 것들이 나빠지지 않고 더 나아지는가? 어떤 근본 요인들이 쇠퇴를 막는가?

세 번째, 이 책은 과거의 성공적인 개혁으로부터 배운 교휸을 불평등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21세기의 난제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이 세 가지 논점을 통해 나는 '역사의 화살(역사의 방향성)'이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낙관주의는 다시금 지적으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낙관주의는 개혁을 위한 최선의 주장이다.

그리고 역사의 화살을 추진시키는 활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서 파국적인 쇠퇴론과 긍정적인 역동설이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역동설의 관점은 우리가 우여곡절은 겪겠지만 전체적으론 삶의 여건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사람과 기술은 진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것이고, 유사 이래 그래왔다. 역동설은 우리가 미래를 그대로 용인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미래에도 잘살 수 잇을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안과밖이 시끄럽다.

그리고 지금은 제21대 국회의원선거기간이다.

여기저기 뉴스와 정보들이 가득하지만, 그게 진짜=팩트 일까?

지금처럼 너무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을 때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디지털리터러시다.

이미 읽고 쓰는 능력은 보유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 안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진짜뉴스인가, 가짜뉴스인가를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책 <팩트를 알면 두렵지 않다>는

우리가 왜 팩트를 알아야하고, 그동안 세상은 팩트와 다르게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과 가까이있다는 메시지다.

비관주의가 아닌 낙관주의로 역사의 화살을 쏘아 그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저자의 말에 힘을 실고 읽었다.

팩트는 팩트로 끝나지 않는다.

팩트가 이성이라면 반드시 감성을 끌고 들어온다.

왜 트럼프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가들이 이 공포심리를 자극해서 표를 얻는지, 그리고 민중들은 선동되서 표를 던지는지 알 수 있는 재밌는 대목도 있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에 더 자극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그래서 세계는 굶주리고 있는가?", "자원은 고갈되었는가?", "범죄와 전쟁은 악화되었는가? 등...

정치가와 선동가들이 "그래! 여전히 그러고 있어!"라고 외칠 때

이 책과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것은 "여전히 있는 건 맞아.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더' 나빠지고 있냐는거야." 를 알려준다.

낙관주의라는 새로운 시각.

생각보다 우리는 점점더 좋아지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낙관주의가 바로 역동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적으로 발전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결국 부딪치고 어느 지점에서는 쇠퇴하겠지만 역사라는 총체의 관점에서는 점점더 나아지고 있는 거라고.

이 책에 종종 언급되는 '역동설'이라는 키워드와 어조는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인류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내용들을 다루지만 그 어조는 밝다.

책에서 외치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공포라는 감정이 선동되기 전에 진짜 팩트라는 렌즈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좋은 자극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책은 창비에서 출판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

제목처럼 "알로하~" 유쾌하면서도 가슴 아픈 역사가 담긴 이야기다.

이번 서평은 작가를 공개하지 않고 시크릿하게 진행되었는데 책이 출간되는 3월 말까지 너무 궁금했다.

작가는 바로! 이미 오십여권을 출판하며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금이 작가님!

하와이를 배경으로 세 명의 엄마 (엄마이기전에 여자이자 사람이자 한 국가의 시민) 로 가슴 뭉클했고

하루 반만에 다 읽어버린 것 같다. (하루만에 읽고 싶었는데 밤 늦게 책을 붙잡다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우선 이 책의 배경은 '포와'이다.

하와이를 한자로 써서 한글로 음을 표현한건데 예전에는 하와이를 포와라고 불렀었나보다.

현대사를 배울 때 해외 이주 동포에 대해서 책의 한 페이지 분량도 채 되지 않게 배웠던 것 같다.

그저 지도를 통해 만주, 연해주, 미주, 일본 등지로 갔다는 사실과 혹독한 삶을 살았으며 지도를 통해 다음 지역은 어디일까요? 와 같은 객관식으로.

근현대사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하와이가 포와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와이에서 사탕수수를 했다는 건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책이 더 소중하다.

1917년, 어진말에서 주인공 '버들'에게 "내년이면 열여덟이지예? 포와로 시집가지 않을랍니꺼?"라는 말로 시작된다.

포와, 사진결혼, 사진신부...

예전에는 멀리 하와이까지 간 청년(과연 청년일까? 이 책을 읽으면 답을 알 수 있다)들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결혼을 맺었는데

바로 책 속 주인공 버들, 홍주, 송화! 세 명의 여자들도 사진결혼을 하기 위해 조선을 떠난다.

여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버들과,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쿨한 신녀성 홍주, 그리고 그들 곁에 누구보다 따뜻하고 꼭 필요한 (무당 외할머니의 손주) 홍주가 있다.

스포같지만 스포는 아닌데 세 사람 중 제대로 된(?) 신랑을 만난 건 버들 뿐이다.

다들 사진으로 속았다. 알고보니 나이차이 한참 많은 아버지뻘 남자들. 그렇다고 다정하거나 능력이 좋은가? 그것도 아니다.

이 부분에서 아주 열불이 났지만 참 이게 비단 과거만은 아닌 게 아직도 국제결혼이 존재하고 "도망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버젓히 걸리는걸 보면 이 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열불터지는 사회의 한 단면인가보다.

어쨌든 이렇게 세 여자는 신랑을 만나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라는 제목처럼 엄마가 된다.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누구는 아버지뻘 남편에게 맞고, 누구는 처자식을 두고 또다른 꿈을 꾸며 떠나고, 누구는 알고보니 한국에 본처가 있어서 핏덩어리 아들과 떼어놓고 떠나버리니까.

읽으면서 고되고 기구한 세 명의 삶이 마음이 참 아파서 몰래 꾹꾹 눈물도 닦았다.

이제 겨우 정착하나 싶으면 좌익/우익, 윗동네/아랫동네로 니편/내편을 가르며 정치사상으로 관계를 가른다.

과거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한 일들이 역사를 통해 말해주는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세 명의 엄마들은 어떻게 다시 만나는지, 힘든 역경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나온다.

이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400여쪽을 달리고 또 달리게 된다.

 

 

 

 

 

-태완의 입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상처가 어떤 것인지 버들도 잘 알았다. 그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 태완이 그동안 닫아 두었던 문은 새 사람 쪽으로 향한 문이 아니라 자기 과거의 문이었을지 몰랐다. 버들은 태완에게 연민을 느꼈다.

-"딴 가시나한테 마음 다 준 사나라 캐도 지는 당신하고 계속 가볼랍니더. 가다 보면 당신 맘도 돌아오는 날이 있겄지요. 당신도 노력하겄다고 어무이 앞에서 약속하이소."

p.177, p.178

-"그동안 가장 노릇도 못 하고서 또 이렇게 떠나니까니 내레 면목이 없어. 나 없는 동안 정호 부탁하고 당신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우. 기러믄 낸중에 옛 말 하며 살 날 오지 않갔네. 편지 자주 못하더라도 걱정 말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니."

-"기왕 가는 길 편하게 보내 드릴 겁니더. 하지만서도 한 가지만 약속해 주이소, 정호 아부지."

태완이 고개를 들어 버들을 보았다.

"절대로 죽으면 안 됩니더. 무신 일이 있어도 살아 돌아와야 합니더. 정호캉 날마다 기다릴 깁니더."

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끝까지 울지 않았다.

p.273, p.274

 

 

 

버들의 남편인 태완과 마음을 나누고 이별하게 되는 장면.

버들-태완의 러브스토리를 살짝 보자면, 태완에게는 세상을 일찍 떠난 전여친 달희가 있었다.

버들은 그 사실을 알게되고 마음을 열지 않는 태완에게 울며불며 얘기하는데

태완은 동생 태완과 달희를 잃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픔과 아픔을 통해 둘이 이어지는 이 부분이 참 좋았고 급하지 않게 기다려주는 버들의 인내심과 희생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둘의 인생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무장투쟁파인 태완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중국으로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해야겠다고 달희와 아들 정호를 두고 떠나버린다.

어차피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도 아니고 가족보다 국가가 우선인 사람에게 무슨 말이 통할까.

버들은 여기서 또 한번의 희생을 감행한다. 울지도 않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그 말이 더 슬프고 애틋하다.

그래 죽으면 뭐하나. 살아서 만나야지.

그치만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는 태완과는 어떻게 살아갈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책의 뒷부분에서 밝혀진다.

 

 

-오늘은 세 번째 곗날이었십니더. 계원은 일곱 명이라예. 구중 명옥 언니, 막선 언니, 백가 상회 영순이는 윗동네 교회에 다닙니더. 가입한 단체는 다르고예. 명옥 언니하고 막선 언니는 동지회고 영순이는 국민회라예. 우리캉 동갑인 봉순이는 아랫동네 교회에 다니면서 동지회 회원이고예. 젤로 어린 기화는 절에 다닌다 아입니꺼. 홍주는 교회도 동지회도 다 그만둬 삐릿습니더.

오늘 곗돈 타는 명옥 언니네 집에 모여 밥을 먹는데 스콜이 쏟아지고 무지개가 섰습니더. 언니가 우리 계 모임 이름을 무지개회로 짓자고 하데예. 계원이 일곱 명이라 그레 짓자는 줄 알았는데 성경에 무지개가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한다는 증표라고 나와 있답니더. 홍주는 무지개 색맨키로 우리도 다 다르다고 했어예. 우찌됐든 비 온 뒤에 환하게 서는 무지개처럼 우리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습니더.

p.312

 

언제, 어디로 보낼지 모르는 태완에게 보내는 버들의 편지.

태완 없는 버들은 꿋꿋히 아들 정호와 함께 궂은 일도 마다않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니까. 삶이란 그런거니까.

버들이 일하는 하와이의 와히아와에서 무지개가 떳다.

계모임 하나 결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버들에게 친구 홍주와 주변 한인사람들이 모여 계모임을 시작했다.

다들 정치적 이념도, 종교도 다르지만 이 순간 만큼은 무지개의 의미처럼 모두 행복하게 살길을 진심으로 바랬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 그런 일을 어떻게하지? 싶은 일들이 많지만 태완없는 버들과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닌 홍주, 송화 (그리고 수많은 포와 이주 동포들) 는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황금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을 본 적이 있다.

드넓은 초원을 말을 타고 다니며 붉은 빛의 멋진 옷을 입고 그들만의 특별한 음악을 연주하며 황금으로 가득한 장신구를 차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으로 유물과 그들의 생활품을 보았고 전시가 마지막 끝날 때 즈음에는 자그마한 영상화면과 함께 헤드폰이 놓여있었다.

무심코 그 헤드폰을 귀에 대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한 15분 정도 영상이 2개였는데 끝날 땐 누가 볼사레 살짝 눈물을 닦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카자흐스탄 교포 3세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인터뷰이로 있었고 지난했던 그들의 삶과 가족이야기, 힘들었지만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고맙고 좋았던 사람들, 그리고 멀어서 한번도 가진 못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한다고 어색한 한국어를 통해 말했다.

고려인 할머니가 부르시는 아리랑을 마지막으로 듣고 나왔다. 내가 흔히 알고 있는 "아리랑~ 아리랑~ "이 아닌 조금 생소한 아리랑 노래였는데 각 지역마다 다른 아리랑인 것 같았다.

한국인 생김새지만 푸른 눈을 하고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들의 삶도 이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처럼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지 문득 궁금함이 떠올랐다.

우린 모두 다르지만 더 좋은 삶을 꿈꾸며 떠난다는 것이 같다.

버들과 그의 친구들, 태완과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들도 각자가 꿈꾸는 세상이 있었을 것이다.

가슴 아픈 과거지만 그 무엇보다 응원하게 되는 세 엄마, 그리고 그의 아이들에게 "알로하"라고 외치며 더 큰 삶의 기쁨을 얻는다.

책의 마지막 구절과 함께, 알로하!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이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