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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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의 원래 제목은 '롱롱'이었다."

책의 끝부분 '작가의 말'에 실린 첫 문장이다.

재밌고 슬프고 특이하고 서글픈 그런 SF 소설이 하나 나왔다.

허물이라는 희귀병 바이러스가 퍼진 가상의 도시에서 D동에 격리된 사람들과 병에 걸린 주인공의 모험이야기이자 병상일기이자 제약회사와 싸우는 극 현실적인 소설.

그 중 도시괴담이랄까 전설의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엄청나게 큰 뱀 '롱롱'이 허물을 벗는 날, 세상 사람들 모두가 허물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롱롱'은 세상의 허물을 벗기는 전설 속의 뱀이다.

그때까진 허물을 쓴 사람들은 숨어서, 그리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방역 센터에서 잠시 임시 치료를 받고 나오고 받고 나오고를 반복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은 파충류 사육사인데 어느 날 엄청나게 큰 뱀이 사설 동물원을 탈출해서 다시 생포하지 못한 그날의 기억을 안고 살고 있다.

물론 허물도 있다.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정상적인 일이나 생활도 할 수 없고 공원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동병상련을 겪는 병리 센터 사람들과 만나며, 그리고 엄청나게 큰 뱀 (이것이 롱롱인지 아닌지는 말할 수 없다)을 만나게 되고

사람들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며 세상과 병과 시스템과 대적하는 치열한 삶이 그려져 있었다.

허물이라는 가상의 설정에서 '허물' 글자만 빼고 다른 병만 넣으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에 걸려 격리조치하는 되는 사람들과 치료비와 약값이 없어서 죽거나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제약 산업과 나라의 시스템과의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시민들의 모습이 참 안타깝고 슬펐다.

슬픈데 눈물이 펑펑나는 그런 슬픔이 아니라, 마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을 읽었을 때 느끼는 먹먹함과 답답함으로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을 것 같다.

우리의 롱롱이는 과연 세상 사람들의 허물을 벗겨줄지.

그 전에 우선 롱롱이를 만날 수 있을지, 프로틴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을지는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허물

-그녀는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한꺼번에 벗었다. 바지와 팬티도 벗어 화장실 칸막이에 걸쳤다. 배낭에서 비누를 꺼내 재빨리 거품을 내며 입구를 틈틈이 돌아봤다. 공원 관리인에게 들키면 귀찮아진다. 세금을 내는 시민만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 그 꽉 막힌 남자의 신념인 듯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시 당국은 허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방역 센터에서는 약물을 주입해 허물을 벗겨냈다. 그녀는 허물을 벗기 위해 몸부림치고 싶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거쳐 허물을 벗은 사람들은 방역 센터에서 나와 직업도, 이웃도 없는 삶과 마주해야 했다. 결국엔 벌거벗은 기분으로 공원에서 잠을 자다 다시 허물 속으로 숨어들기 마련이었다.

 

 

 

프로틴

-"뱀은 언젠가 허물을 벗을 거야. 만일 뱀이 허물을 벗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롱롱이 아니라면, 뱀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기도를 배반함 뱀은 처참하게 버려질 것이다.

"이 뱀이 진짜 롱롱인지, 아니면 그저 거대한 뱀에 지나지 않는지,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겁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뱀의 몫이 아니라 사람의 몫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특히 이렇게 대중들의 마음 속에 생각을 심고 믿게 만드는 건 더욱 무섭다.

전쟁이나 정치에 관한 역사 책을 보면 프로파간다, 또는 선전선동이라는 말로 보이지 않는 장벽과 무기들을 마구 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드는 기술도 나온다.

믿음을 가진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가 돌아가거나 멈추거나 성장하거나 망하거나 할 것이다.

중요한건 지금 당장 결핍된 그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믿고 싶고 믿어야만하는 해결책으로 목숨건다는 것이다.

<소원을 말해줘>에서는 허물을 벗고 정상적인 사람처럼 사는 것이 꿈일 사람들에게 허물을 벗는 일 하나만이 전부다.

 

 

 

롱롱프로틴

-그녀는 척이 사력을 다해 외치는 걸 올려다봤다. 척은 상상이 무너진 뒤 롱롱의 진짜 힘을 보게 될 거라 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시민들은 상상이 무너지자 현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모두가 영원히 허물을 벗을거라는 약속은 거짓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롱롱을 구하려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눈앞의 처참한 패배는 롱롱을 한낱 거대한 파충류로 돌려놨다. 아무도 상상과 현실을 잇는 다리를 건너려 하지 않았다. 이곳이 바로 상상의 끝이자 세계의 끝이었다.

 

 

 

-공 박사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릿속 설계도엔 아직 읽어야 할 내용이 남아 있었다.

"공포란 인간의 욕망과 여러모로 비슷하지. 공포가 공포를 낳는 것처럼 욕망이 욕망을 낳는다네. 내가 공포를 이용했다면 자네는 욕망을 이용한 거야.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 그게 죄라면, 자네와 내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비슷한 걸세."

스포는 아니고 책의 목차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은 엄청나게 큰 뱀을 만나고 사람들은 롱롱이라고 믿고 싶고 그 롱롱은 프로틴을 먹고 만든다.

마지막 챕터의 제목이 조금 특이한데 "뱀"이다.

'롱롱'이라는 전설 속 이름, 고유명사ㄹ에서 그저 하나의 흔한 파충류 단어에 지나지 않는 '뱀'으로 돌아온 것이다.

허물을 벗고자 하는 욕망이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롱롱프로틴'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 힘을 주었고 이번에는 모든 걸을 잃는다고 해도

우리 롱롱이(진짜 롱롱이인지는 직접 책을 통해) 큰 뱀을 구하려고 뛰어든다.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르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소설을 참 좋아한다.

바로 이 <소원을 말해줘>도 그런 책 중 하나인데 결국 소원이라는 것은 D동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희망이다.

가만히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한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다.

약을 먹고 기운을 못차리고 가만히 있던 '롱롱'이도 갑자기 변하게 되는 모습도 그렇다.

변하고 싶을 때,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만난다면 우린 모두 소원을 빌고 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허물과 롱롱이와 주인공들은 과연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악역을 맡고 있는 공 박사는 신약 개발에 성공했을까.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이 여기 있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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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웨인 W. 다이어 지음, 정지현 옮김 / 토네이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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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바뀌는 유일한 순간이 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다.

그리하여 마침내 잠들어 있던 내 영혼이 천천히 눈을 뜰 때다."

 

 

 

우리에겐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잘 알려진 구루, 웨인다이어.

이번에 토네이도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다.

2015년 세상을 떠나기 전 남겨둔 지혜, 그리고 그가 만난 현자들이 이 책 한 권 속에 담겨있었다.

제목이 참 멋있는데,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사실 쉽지 않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죽는다. 이건 명백한 진리다.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 동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여전히 낯선 일이고 나 자신이 죽는다는 것 역시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메멘토모리.

만약 내가 묘비명을 쓴다면 그 안에 꼭 써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 중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삶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

이런 철학적인 질문들 속에 이 책을 펼쳤는데 제목을 볼 때마다 한번씩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해본다.

언제나 들어도 낯선 죽음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더 잘 살기 위해 웨인 다이어 박사가 들려주는 문장들을 따라서 읽었다.

 

 

 

 

 

 

 

 

 

-죽음을 전위에 놓아라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더 많이 생각하고 탐색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을 더 겸손하게 돌보고, 행동을 반성하며, 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 안다. 이것이 곧 현자의 태도가 아닌가.

-나는 많은 강연과 인터뷰, 저술 활동을 통해 현명한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왔다. 세상 곳곳에서 살아가는 현자들의 조언은 매우 단순하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생각하라, 당신의 죽음에 대해."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다. 용서의 결과는 타인이 아니라 늘 나를 향한다. 용서하지 않는 한 내 몸과 마음은 분노와 상처에 꼼짝없이 갇혀 있게 된다.

우리는 받은 상처 때문에 그토록 수많은 시간을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몸부림으로 숱한 밤을 뒤척이고 있을 뿐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 상처가 계속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모든 병이 그렇듯 방치하면 증상은 더 악회된다. 마침내 어느 날 문득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상처 그 자체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 자신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읽고 쓰고 산책하라

-"그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무조건 지금 이 순간을 창의적이고 흥미진진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인생은 오직 오늘 하루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꼭 죽음의 문턱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는 삶을 살아보세요. 하루에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실천해도 당신은 정말 몰라보게 달라질 겁니다. 귀 기울이지 못한 아름다운 소리들이 당신의 내면에 도착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반드시 죽음의 문턱까지 갈 필요는 없지만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모두가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 중 변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들려주는 조언이 이 책 속에 한 문장, 한 문장 살아있었다.

책의 한 챕터 분량도 2~3페이지 가량밖에 되지 않아서 오다가다 책을 들고 수시로 읽다보니 금방 읽었다.

오히려 책을 읽고 잠시 멈춰서 생각해본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죽음을 더 잘 기억할 수록 더 현명해지고 지혜롭게 살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교훈을 얻었다.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잠깐 멈춰 생각해봤더니 역시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숱하게 등장하는 주제라는 것이 떠올랐다.

내가 플레이리스트에 몇년 째 빠지지 않는 노래 중 노래 중

빈지노의 "If I die tomorrow"가 있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떨까를 시작으로 써낸 진솔한 가사들인데

If I die tomorrow

If I die die die

스물 여섯 컷의 흑백 film

내 머릿속의 스케치

원하든 말든 메모리들이

비 오듯 쏟아지겠지

내가 스물 여섯 살에 이 노래를 들었던 그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노래를 들으면 과거의 기억들, 그때 즈음의 날씨, 기분, 상황까지 함께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서 참 기분이 신기하다.

잊혀지고 싶지 않고 기억에 남기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능인가보다.

디즈니픽사의 영화 <COCO>에서도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해줄 사람 한 명 남지 않았을 때 그 영혼도 함께 살아진다는 멕시코 설화를 모니프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평생을 살 것처럼 익히고 꿈꾸고 감사하고 싶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도네이도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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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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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는 법.

필사적으로 좋은 점을 보고 싶다. 손톱만 한 구석이라도 주방 벽에핀 형형색색의 곰팡이는 문질러 없애면 된다. 잠깐이라도 그렇게 지내자. 더럽다는 말도 무색한 매트리스는 내버리고, 싸구려를 하나 사 오면 그만이다.

-"그 집에서는 나와야 해. 지금 당장, 설령 저스틴이 패트리샤를 데리고 다시 나타나는 걸 참으며 산다 해도, 그 집세는 어떻게 감당하겠어? 저스틴에게 돈을 잔뜩 빚졌고, 나는 지금 정말 누구한테도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 생활비를 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건데. 그래서 솔직히 말하는 거야... 이 집 아니면, 셰어하우스야."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동시에 한 침대에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뭐. 한 집에 같이 있을 일도 없다고."

독특한 영미 장편소설이 나왔다. 바로 <셰어하우스>.

원제는 The Flatshare 인데, 인터넷에 쳐보니 공유경제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주택 공유도 증가하여 스페어룸(Spareroom), 플랫셰어(Flatshare), 룸버디즈(Room buddies)처럼 이상적인 동거인을 찾아주는 인터넷사이트가 미국과 영국에서 인기라고 한다.

(정말인지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도 바로 티피와 리언, 두 남녀가 한 집에 룸메이트로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얼핏보면 그저 로맨스소설이나 연애소설일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동거라는 주제로 벌어지는 당당한 홀로서기다.

여기서 홀로서기는 전 남친 저스틴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자 주인공 티비 뿐 아니라, 간호사 교대 업무와 감옥에 있는 남동생 등 여러가지 일들로 바쁜 남자 주인공 리언에게도 마찬가지다.

동거라는 주제는 종종 로맨틱 코미디와 소설 속 다뤄지는 주제인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를 아주 따끔하게 꼬집고 생각해볼 만한 거리도 많이 준다.

페미니스트 코드도 곳곳에 숨어있으니 읽으면서 현 시대를 바라보면 어떨까.

 

 

 

 

 

 

-"저스틴과의 관계에서 너는 상처를 입었어, 티피."

모가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그는 널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머리를 흔든다. 저스틴과 나는 많이 싸웠다.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화해했고, 싸우고 난 다음에 우리 사이는 한층 더 로맨틱해질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다툼이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의 다툼은 다른 커플들과는 달랐다. 싸움은 한없이 아름답고 정신없는 롤러코스터 같았던 우리 관계의 일부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전부 이해되는 날이 올 거야, 티비."

모가 말했다.

"그때가 되면 나한테 얘기해, 알겠지?"

모의 말을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뭔가 불리한 듯한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네 스스로 이런 생각에 도달해야 했어. 그게 맞는 일이야. 남이 옆에서 얘기해줘서가 아니라. 예전의 너는 그에게서도 떨어지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그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강했던 거야."

-우리는 나의 기억대로 사건들을 짚어갔다. 고성이 오가는 싸움, 미묘한 힘겨루기, 심지어 더 교묘하게 내 독립성이 잠식되어갔던 방식. 나와 저스틴의 관계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했는지 믿을 수가 없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이해해야 할 문제였다.

앞 부분인 97쪽에 아리송하게 친구들의 조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과

240~241쪽에 이제는 깨달음을 얻고 잘못된 과거를 돌이켜보며 앞날을 바로 잡는 주인공과의 간극이 참 크다.

전 남친 저스틴은 바람을 핀 것도 모자라 티피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아주 나쁜 남자다.

하지만 드라마든 소설이든 현실이든 결국 본인이 그 잘못된 악이 구렁텅이에 빠져나오려면 직접 깨닫는 수밖에.

나쁜 관계도 중독이다, 중독.

아무리 주변에서 도와주려고 해봤자 관계만 나빠지고 오히려 이상한 불씨가 타올라 더 돈독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이 <셰어하우스>는 나름 사이다 책이다!

더 자세한 것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하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셰어하우스를 통한 동거가 이 둘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라는 책으로 유명한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최근 책을 읽어봤다.

제목은 <당신은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하군요> 라는 책인데, "나쁜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방탄 심리학"이라는 재밌는 설명처럼 정말 전 남친 저스틴 같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좋은 지침과 조언들이 들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심리 조종자"라고 일컫는다.

교묘히 사람을 조종하고 자존감 브레이커이자 가스라이팅 (요즘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처럼 바로 이런 상황을 대신할 만한 말은 없는 것 같다)을 당하게 만드는 사람들인데 참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럴 때 일수록 주변 좋은 사람들과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꼭 헤어나왔으면 좋겠다.

티피가 이 사실을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다.

 

 

 

 

-"당신은 집 냄새가 나."

"당신은 집이야."

그는 단순명료했다.

"당신은 침대고, 우리 집이고...."

그가 말을 끊는다. 무언가 큰 의미가 있는 단어들을 찾을 때 그는 늘 그러하듯이.

"당신이 오기 전까지, 그곳은 집이 아니었어, 티피."

셰어하우스의 룰 넘버1은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인 한 집에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리언은 새벽 교대 근무를 해야해서 티피가 출근하는 시간이나 활동시간에는 겹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은 만날 필요가 없고 만날 시간도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작된 메모.

집안 곳곳에 서로의 메모 흔적들이 늘어가고 이제 셰어하우스라는 공간이 둘 만이 공간으로 자리잡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 리언, 그리고 제멋대로인듯하지만 누구보다 사랑이 넘치는 티피.

그 주변에 매력 넘치는 지인과 친구들까지 500쪽 분량의 베스 올리리 소설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래서 그 둘은 결국 어떻게 되는지... 전 남친 저스틴은 전 남친으로 이렇게 쉽게 물러날 것인지... 그리고 리언의 하나뿐인 남동생은 감옥에서 어떤 일들이 벌이지는지...

셰어하우스에는 함께 나눌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 글은 살림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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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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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리는 예술작품을 읽으려고 노력하기 전에 보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하지만 성인인 우리는 보통 넘쳐나는 다양한 자극에 너무 시달린 나머지 어떤 일로 크게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을 더 이상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보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찬찬히 꿰뚫어 보기보다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눈으로 흘낏 보려고 한다.

-우리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역사의 무게에서 벗어나 위대한 작가의 작품에 직접 접속하자는 뜻이다. 과거의 명작들을 귀중하게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만 여기지 말고, 해석하고 의문을 던지고 평가하고 캐물으면서 논쟁을 벌일 수 있다고 느껴야 한다. 어떤 작품이라도 비평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작품이든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T.A.B.U.L.A

-나는 고전을 각자 독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열 단계인 '타불라 라사 TABULA LASA'를 제시하려고 한다. 타불라 라사는 원래 아무것도쓰여 있지 않은 백지 상태를 뜻하는 말로, 찰학 사조 중 존 로크로 대표되는 인식론에서 막 태어난 인간의 마음 상태를 설명할 때 등장한다. 우리 또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아무 선입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백지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러저리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해석하면 된다.

-앞의 여섯 단계는 이미지를 읽는 데서 시작해 이해하고 평가하기까지 우리의 무의식 과정과 비슷하다. 시간 Time, 관계 Association, 배경 Background, 이해하기 Understand, 다시 보기 Look Again, 평가하기 Assess의 (순서에 상관없이) 단계를 거치고 나면 다음 단계인 리듬 Rhythm, 비유 Allegory, 구도 Structure와 분위기 Atmosphere 를 적용할 수 있다.

나는 그림과 미술과 전시회를 좋아한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는지, 해외에 가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을 때 그 경이로움을 오롯이 체험하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질 때가 많았다.

이번 책 <혼자 보는 미술관>은 그런 나에게 질문과 답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부제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말처럼,

바로 뒷 표지에 있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때, 명작은 탁월하게 아름다워진다"는 말처럼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명성과 명예, 귀중함으로도 대신해줄 수 없는 명작이 주는 아름다운 안목을 어떻게하면 더 잘 느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시안 워드 저자는 우리에게 타불라 라사!

마치 해리포터 주문같은 이 아리송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그림을 보자고 제안한다.

타불라 라사는 (TABULA RASA) 시간 Time, 관계 Association, 배경 Background, 이해하기 Understand, 다시 보기 Look Again, 평가하기 Assess, 리듬 Rhythm, 비유 Allegory, 구도 Structure, 분위기 Atmosphere 을 말한다.

이 테마로 하나하나 예술작품을 보는제대로 보고, 새롭게 보고, 다시 보자고 말하는데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된 게 정말 다행이다.

조급했던 나의 마음에 한 줄기 위안과 위로가 되었달까!

나도 이제부터 타불라 라사!

 

 

 

 

 

 

빗대어 비웃는 그림들: 진지하게 건네는 농담, 풍자

-프라고나르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프랑스 화가 장 앙투안 바토의 작품은 더 연극적이다. ... 어릿광대를 실물 크기로 그린 <피에로>(처음 제목은 질)라는 제목의 거대한 초상화는 바토의 주요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떤 작품 못지않은 농담을 담고 있다. 어릿광대는 다른 출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바토가 짧은 생애를 비극적으로 끝내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가 이 작품을 은유적인 의미가 담긴 자신의 자화상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힘 없고 불편해 보이는 이 피에로는 가장 쾌활해 보이는 광대라도 웃음 뒤엔 슬픔과 몸부림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 그림 <피에로>는 바로 <혼자 보는 미술관> 표지에 있는 멋진 그림이다.

어딘가 허공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을 초월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의 시간과 생각에 빠진 남자 같기도 했는데 광대였구나.

책 표지를 보자마자 이 그림을 찾아봤다.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화가 바토의 생애의 한 생애가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물 크기로 그려져있다니 실제로 보면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피에로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왜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는 이 그림을 몰랐을까. 아마 다음 번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더 잘 보라고 주는 기회는 아닐까 싶다.

얼마전에 지식너머 출판사에서 나온 <매너의 문화사>를 읽고 광대라는 직업에 담긴 비애를 알게 되었다.

남과 다르고 비천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웃는 것에서 시작된 희화화의 문화가 지금 돌이켜보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고단해보이는 이 피에로 남자의 마음 속도 그럴까.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조커>도 역대 조커 중 가장 우울하고 슬픈 이념이 느껴졌는데 말이다.

 

 

 

액자 너머의 그림을 읽다: 그리는 이의 마음을 보는 법

-휘슬러는 이후로도 녹턴 연작을 22점 그리면서 어두컴컴한 풍경을 잘 표현하는 화가로 유명해졌다. 그는 템스강 위를 떠도는 안개나 물보라 같이 그리기 불가능한 것들을 잘 포착했다. <녹턴: 푸른색과 은색-첼시>는 달빛 아래 겨우 윤곽이 드러난 바지선과 어부를 보여준다. 이렇게 불완전하게 현상된 사진이나 음악 같은 그림들은 손에 닿지 않는 분위기, 리듬을 포착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T.A.B.U.L.A R.S.S.A., 맨 처음의 백지상태로 돌아가게 한다. 이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작가들은 겉으로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진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 흰 종이, 빈 캔버스에서 시작한다. 어떤 방식으로 볼지는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되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게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내 두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을 보는 법, 보이지 않는 것을 관찰하고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마 평생 공부하고 노력해야겠지만 적어도 예술비평가이자 미술평론가로 이름난 오시안 워드 작가의 비법 만큼은 <혼자 보는 미술관>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캔버스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내 마음 속에 남길 하나 하나의 작품이 늘어나길 바라면서 오늘도 보고 또 보고 또 본다.

*이 글은 RHK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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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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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문은강 작가님의 한국소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뭔가 유쾌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띠지도 재밌다.

"2019년, 가장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다"라는 유성호 평론가의 힘있는 한마디와 함께 책을 펼친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봤었다.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할아버지, 오베.

아름다운 스웨덴 배경의 영화를 통해 인생의 쓸쓸함과 노년의 유쾌함을 배웠고 마저 읽게 된 원작 <오베라는 남자> 소설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믿고 보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고복희와 오베라니?

무슨 연관이?

책을 읽다보니 알겠다.

아래 몇가지 고복희 사장님(?)의 이야기를 펼쳐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누구보다 까칠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함께 있으면 든든한 그런 사람.

살아온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함께 비를 맞으며, 해를 맞으며 디스코 춤을 추고 싶다.

 

 

 

고복희는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쟁을 겪고 휘청이던,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는 없었다. 둥그런 굴렁쇠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동시에 숨을 삼켰다. 꿈, 희망, 미래와 같은 관념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날의 공기는 낙관으로 가득했다.

프롤로그

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원더랜드의 대문을 열고 닫는 시간은 오전 여섯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체크인은 정확하게 오후 두시 이후, 체크아웃은 오후 열두시 이전. 원더랜드의 투숙객은 모두 이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

뭐, 별수 없다. 어쨌든 지금 고복희는 원더랜드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건 언제나 고복희가 지켜왔던 삶의 원칙이었다.

잘못 오셨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박지우도 마찬가지다. 원더랜드에서 뭘 하냐면서 시간을 보내든 고복희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며칠째 마주하다 보니 거슬린다. 이곳이 아무리 재미없다 한들 관광을 하러 왔으면 관광객다운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틀어박혀 있으니 괴상한 질문이나 하게 되는 거다.

"시장에 가겠습니까?"

고복희의 말에 박지우의 동공이 커졌다. 객실로 후다닥 달려가 목 늘어난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새로 산 티셔츠와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의 배경은 캄보디아. 그것도 앙코르왓트와는 어느정도 가까운 곳에 있는 시암립이 아닌 프롬펜.

주인공 박지우는 슬프지만 노오력으로도 잘 풀리지 않아 무작정 여행을 떠나온, 그것도 첫 해외여행을 온 취준생이다.

그곳에서 원더랜드라는 호텔 사장님, 고복희를 만난다.

똑 단발에 까칠한 말투, 엄격한 원칙, 스위스 시계보다 정확한 입실 퇴실 시간까지.

쉽지 않은 한인 호텔 사장님이다.

요즘 여행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 중 또 유행하는 게 바로 한달 살기!

어느 한 국가와 지역을 정해서 한 달 오롯이 살아보는 것이다.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도 아직 곳곳 안가본 곳, 모르는 곳이 많은데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신기한 곳들이 많은데 여행지를 랜드마크 찍듯이 다니다보면 이렇게 진득하니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한달 살기가 유행하나보다. 심지어 퇴사하고, 취업 전에 떠나는 나를 위한 여행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어떤 기사를 보니 요즘 핫한 여행지로는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스페인 등 다양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마음에 나를 위해 선물하는 여행으로 떠나온듯 하였으나...

고복희와 주변 한인사람들, 그리고 현지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했던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게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이 장면을 참 좋아한다.

"시장에 가겠습니까?"

고복희 사장님이 널부러져서 관광도 안하고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는 박지우를 보고 건내는 말.

마치 한 사람에게 이름을 불러줘서 의미를 만드는 것처럼, 수많은 장미 중 여우만을 위한 장미를 발견한 것처럼

나는 이 장면에서 복희와 지우의 관계가 사장-투숙객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시장에서 먹은 국수를 복희가 사주는 줄 알았는데 숙소에서 더치페이 받아낸 것은 함정!

벽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벽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는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몸을 숨길 장소가 필요했다. 세찬 비가 내린다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니까. 지난함을 견디는 것이 인생이니까.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성가신 남자는 매일같이 찾아와 조금씩 그녀의 벽을 허물었다. 어떤 날은 달콤하게, 어떤 날은 아프게.

...

고복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낱낱이 새겨진 손금 사이로 무수한 시간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영원희 붙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

많이 남았다. 아직 못 해본 일들이 넘쳐났다.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고 남쪽 나라에 놀러가지도 못했다. 바보 같다고. 늘 이상한 짓만 한다고. 무뚝뚝한 얼굴만 보여줬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당신이 안고 온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볼 때마다 울컥한 노년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디즈니 픽사의 영화 <업>에서 남자,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꿈꾸다가 아내를 떠나보내는 장면.

불과 1~2분 안에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면서 한 남자의 일대기가 그려지는데 그 장면이 그렇게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다.

또 하나는 책과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서 주인공 오베 할아버지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단정하고 또 단정하게 몸가짐을 한 뒤 자살을 하려고 목을 메는 장면.

굉장히 밝고 재밌게 그렸지만 이제 더이상 살고 싶지 않고 살만큼 살았다는 기분으로 넥타이와 양복, 그리고 자살할 올가미를 목에 메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에서도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고복희가 있었다.

"사라졌다. 완벽하게."

이 문장으로 남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실감한다. 물론 책의 초반부터, 아니 책을 뒤집어서 뒷 표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고복희는 올해로 오십 살이 됐고 평생 밥해주겠다던 남편은 요리하기가 귀찮았는지 먼저 세사을 떠났다. 고복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민박에 가까운 호텔 '원더랜드'를 운영한다.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성격 탓에 호텔은 망하기 직전. 그런데 이 호텔에 무려 한 달 동안 살겠다는 멍청이가 나타났다.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좀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한국을 떠나 왔다는 스물여섯 살 백수."

그렇다. 스포는 아니지만 고복희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고 그렇게 신날 것 없는, 다를 것 없는 하루 하루를 버티고 살았다.

그런데 지우와 현지 직원 린이라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 새로운 감정과 인생들이 생겨났다.

 

 

 

 

 

 

원더랜드는 낙원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 틈입해 평화를 뒤흔들어놓고 떠나는 사건들이 넘쳐났다. 무엇보다 힘든 건 그로 인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였다. 너는 별로인 사람이야. 세상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놓치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걸.

다 함께 모여 춤추는 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동그란 지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으로 빼곡할 것이다.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놓고 떠난 이들은 분명 즐거웠을 것이다.

아침이 밝아온다. 고복희가 원더랜드 대문을 연다. 이 단순한 행위는 반복될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남쪽의 어느 나라라고 기억될 이곳에.

이 책이 유쾌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옛날 옛적 동화책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극히 감동적이다.

함께할 사람들은 함께하고, 떠날 사람들은 떠난다.

고복희가 혼자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이 생길수도 있다.

이 글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한인타운의 한인교회에서 펼쳐지는 갈등, 그리고 고복희를 배척하는 텃세의 무리들과 주인공 지우의 혼란스러운 인생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다녔던 여행지들,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 한인민박 사장님들까지 다 기억이 났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번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캄보다이 여행지를 다녀온 기분이 든다.

아마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제목과는 다르게, 고복희가 춤추는 장면은 이 책에 없다.

디스코 장에 가고, 미래의 남편이 될 사람이 댄싱머신이라도 고복희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언젠가 고복희가 춤출 날을 상상하며, 까칠해도 좋으니까 원더랜드에 가보고 싶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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