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다시 읽기 -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돌베개 한국학총서 15
이호룡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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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다시 읽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한 영화가 생각났다. 예전에 영화배우 장동건 씨가 출연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대 아나키스트들의 활동과 그리고 죽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잊어진 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보면 전형적인 모던보이였고, 그래서인지 항상 멋진 양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쓰며, 술집 미녀아가씨와 농담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대의 암울함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거기에 빠진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은 겉과 다르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멋쟁이 미남청년들은 알고 보면 술과 노래, 패션을 좋아하는 모습은 물론 좋아하기도 하나 그 이면에는 항일운동을 하던 자였다. 일본군의 주요인물을 살해하거나 또는 공작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아나키스트>처럼 아나키스트들은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자였다. 단지 작품에서 장동건 씨가 맡은 역에서 마약을 흡입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처한 운명과 현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고뇌가 숨어 있다.

 

그런데 이 아니키스트의 정신은 어디서부터 시작인가?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래저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서 주요 단체나 조직을 보면 제일 유명한 것이 상해임시정부부터 시작하여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이 운영하던 항일유격대, 그리고 종교단체로는 대종교, 정치적인 체제에서도 좌우 이데올로기 역시 같이 참가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모호한 면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자유주의이나, 모든 억압과 소속을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고, 지식이란 체계가 누군가에게 권력을 독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권력에 대한 관계에서 지식은 누구만의 소유가 아니라 전체가 나누거나 공동체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란 점이다.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담론이 생각났으며, 거기에 대한 대안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가 생각났으나, 그런다고 아나키스트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체계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나 농민이 단합하여 하나의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이라면 아나키스트는 그것마저도 해체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이가 그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란 점이다.

 

생소하고 너무나도 낯선 한국의 아나키스트, 한국에서 아나키스트라는 존재를 그다지 접해보지 못했으며, 그들의 극단적인 자유주의는 현재 신자유주의라는 자유주의와 전혀 다른 자유주의다. 무정부주의는 작은 정부도 아닌 정부가 없는 것을 추구한다. 단재 신채호라는 이름은 독립운동가 이름 중에서 나오는 이름으로 민족주의 사상가이면서 역사학자다. 그런 그가 한국의 아나키스트 운동가 중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았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단재 신채호라는 인물은 조금 알아보던 계기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많은 인물 중에서 대종교에서 활동한 점이다. 신채호와 활동하던 인물 중에서 대종교 3대 교주인 윤세복이란 이름이 나온다. 당시 대종교의 주요 인물들 중에서 독립운동이나 한국의 민족주의를 위해 헌신하지 않은 분이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 역시 대종교에서도 활동을 했고, 그동안 한국역사를 가려진 곳에 있었는데, 다시 복원하려고 했다. 특히 조선시대도 그러하나 우리나라가 사대주의사상에 가려져 자기민족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음을 크게 염려했다.

 

그래서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를 비판하고,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잡기 위해 순암 안정복 선생의 동사강목을 비롯하여 다양한 역사서적을 연구했다. 특히나 광개토대왕비를 직접 보러 가거나 각종 역사문헌을 참고하여 한국역사를 복원하려 했다. 당시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를 사회진화론으로 보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강력한 국력을 중시했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다소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국가주의로서 접근했다. 구국적인 가치를 국가주의로서 당시 고구려시대의 영웅들을 칭송했다.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장군과 같이 중국의 거대한 병력을 지혜와 용기로 물리친 장군을 소재로 글을 적었다. 초반에 신채호 선생은 나라를 구하는 것은 용기와 지혜 있는 몇몇의 영웅으로 생각했다. 사회진화론적인 가치와 더불어 일제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은 영웅이란 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게 되었다. 러시아혁명과 삼일운동을 보면서 국가가 있는 것은 국민들에 의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국민 그 자체 아니 민중이라는 그들이었다.

 

그런 역사적 가치관이 처음에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고, 역사의 중심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이어야 하는 점이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아나키스트적인 정신은 남녀노소라는 신체적 조건을 떠나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도 모든 것이 민중이어야 한 것처럼 생각했다. 그가 바란 세상은 오직 모든 것에서 해방이기에 처음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 독립만이 아니라 독립 후에도 모든 것을 해방하기를 원했다.

 

그런 해방적 미래를 위해 동양의 아나키스트를 모은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가 적대한 국가는 일본이나, 일본 내에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고, 그가 아나키스트가 되려는 것은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일본 내에서도 일본천황을 암살하려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적대하는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 동조한 인물이 있었다. 동양의 아나키스트들은 자금을 모아 무기를 제조하는 공장과 보급책을 획득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기도 하고, 수많은 인파들 속에 일본관료나 군장성이 오면 암살작전을 실행한다.

 

단재 신채호의 독립운동방식으로 테러적 직접행동론을 민족해방운동의 방략으로 체계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아나키즘 정신으로 수용했으며, 1936년 민족전선론을 폐기할 때까지 단재 신채호의 사상을 수용했다. 그래서 갑자기 생각난 영화가 바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다. 그들은 은거하거나 위장하여 군장성을 살해하는 테러행위를 벌인다. 그들의 테러는 자신을 위한 테러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억압에서 해방하기 위한 테러였다. 그러나 시대와 혹은 이상한 교과서나 어느 특정사람들은 그들은 단지 테러리스트로 보려 했다.

 

그렇지만 왜 그들은 테러를 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조명과 민족의식이 있다면 당연히 납득될 사항이다. 자국을 지키려면 자국민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기반하는 것은 자국민이란 역사적 민족적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진화론에서 사회개조론으로 진보하여 보편적인 인류의 자유를 위해 그는 온 몸을 바치고 결국 뇌일혈로 서거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교도소에서 서거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 자국의 땅에 묻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무덤을 만들려는 사람에 대해 감금과 구속, 고문이 이어졌을 정도니 말이다. 다행히 그의 육신의 불길에 나온 하얀 가루는 땅에 심어져 그의 안식처는 찾았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한 세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상에 무조건으로 동의할 수 없고, 그 방식이나 행동조차도 옳다고 볼 수 없다. 단지 그가 바란 모든 것에 대한 억압이 끝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세계는 결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향하여 계속 향할 뿐이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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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문화인류학적인 요소로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대해 이번에는 단군신화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동기는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한 도서를 보면서, 단군역사에 대한 연구를 보면서이다. 딱히 본 서적에서는 그런 내용을 상세히 다루지 않으나, 적어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원래 민족주의자 내지 사회진화론자에서 아나키스트 내지 사회개조론조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단재 선생 역시 역사관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의 사상은 근대주의에 입각했다. 근대화라는 산업체는 1960년대부터라도 근대사상은 이미 일제 강점기 독립군 내지 열사들과 같은 시대지식인에 의해 확립된 셈이다. 그러나 근대사상은 우리나라 근대화에 반영되지 않았고, 단지 경제적 근대화만 이룩했다. 뿌리 없이 자란 풀과 같아 모서리의 잎자락이 모두 병에 시든 것이다. 어쨰든 단군신화를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그 시대적 요건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선 곰과 호랑이에서 우리는 토템이즘이라고 하는 동물숭배 원시적 종교체계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환웅일족이 가진 것은 풍백, 우사, 운사, (뇌사) 무리 3000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환웅이라는 군주는(배달국을 세운 것이 한국의 최초의 국가이지 단군이 세운 것이 최초의 왕국이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하는 것은 나 역시 그래 여긴다.) 토템이즘이란 종교적인 사회구조가 아니라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정령적인 존재를 신으로 받드는 부족의 수장이다.

 

그가 배달국을 만들 시기에 문화인류학적 관점 또는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적인 요소로 본다면 결국 지리적, 기상학적, 환경학적, 경제학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우선 우사와 운사, 풍백은 기상조건을 말한다. 그것은 기상학을 알던 지식인들이 환웅일족은 보유하고 있고, 그들은 농경사회의 기술을 가진 셈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벼농사로 통해 얻을 수 있는 쌀이란 식량이다. 벼농사 경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강우량이다.

 

 

비나 바람은 농경사회에서 벼를 가꾸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자다. 한국의 기후가 몬순기후로 여름에 많은 호우와 가을에 건조해지는 점에서 특히 한가위라는 추석문화는 벼농사의 전형적인 축제문화로 볼 수 있다. 벼는 여름에 많은 물이 필요하고, 가을에 건조해야지 수확을 제대로 얻을 수 있다. 벼가 여물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갈 때 호우가 내리면 벼이삭이 무거워서 모두 농경지로 빠져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환웅일족은 농경사회로서 그들은 농사를 짓기위한 도구를 지니고 있었다. 즉 신석기 이후의 뛰어난 석기문화와 더불어 청동기문화가 그들의 중요한 농경문화라는 점이다. 그가 가지고 온 삼부인에서 칼이란 권력적 상징이 중요한데, 칼을 가지고 있으면 구식무기에 비해 단단하고 날카로워 살상력이 강력하다. 만약 청동기문화 부족이 석기문화를 가진 부족과 만나면 석기문화족들은 모두 사멸한다. 망자의 길을 피하기 위해서는 흡수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토템을 가진 부족은 어떠한가? 곰과 호랑이에서 나는 그들의 음식문화에 대해 생각해봤다. 곰이란 동물은 육상의 나무와 풀에서 나오는 열매와 과실을 먹고, 또한 육상동물이나 강에서 나오는 물고기도 섭취가 가능하다. 곰이란 동물은 생물학적으로 잡식성이고, 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이라면 식량공급이 가능한 동물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대부분 육상동물을 먹는다.

 

음식문화에 대한 조건적으로 곰과 호랑이는 식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금 알아야 할 점은 흔히 우리는 곰은 순하고 둔하다고 하나, 야생의 곰은 사납고 빠르고 무서운 동물이다. 곰이나 호랑이 모두 야생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두려운 존재다. 호랑이와 곰을 만나면 어디가 더 치명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무서운 동물이다. 그러나 토템적 요건에선 결국 음식문화로 넘어간다면 환웅일족과의 만남에서 농경사회부족과 채취 내지 사냥일족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원시부족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에서 원시부족 중에서 평화로운 부족이 있는 반면 매우 사나운 부족이 존재한다. 그들의 성질을 좌우하는 것은 일정한 토지위에 놓인 인구수가 문제라는 점이다. 만약 1제곱킬로미터 내에서 인구가 100명과 1000명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들의 식량공급이 사냥 내지 채취, 수렵이라면 결국 계속되는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이 되는 동식물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같은 식량을 두고 서로 싸우는 것이다. 원시부족들이 전쟁한다고, 그리고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 것은 잔인하고 야만적이나, 우리가 그들의 생계를 책임을 질 수 없다.

 

환경적인 조건에서 야생의 생활은 생존적인 법칙이 곧 인간들에게 식량의 유한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전쟁노예 이전에는 전쟁포로는 대부분 돌려보내거나 모두 죽이는 것이 관례인데, 그 이유는 전쟁포로를 수용할 수 있을만큼 식량이 넉넉치 못했다. 그래서 인육을 먹는 부족이 생긴 이유다. 그렇다면 문명을 가진 환웅부족에서 곰과 호랑이가 서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곰만 남고 호랑이가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곰은 3·7일만에 인간으로 된 것은 결국 농경문화에 적응했냐이다. 다시 넘어가면 식량은 벼농사 위주이기 떄문에 쌀을 주식으로 삼고, 채집이나 사냥이 아닌 탄수화물로 영양분을 보충해야 한다. 하지만 쌀을 이용한 탄수화물보다 오히려 고기로 통해 얻는 지방과 단백질이 칼로리도 높고, 특히 단백질은 인간에게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쌀로만 보충할 수 없는 영양성분들을 쑥과 마늘과 같은 약용채소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고기만 먹던 수렵부족에겐 쌀을 비롯한 약용채소가 자신의 식성에 맞지 않아 스스로 떠나갔을 확률이 높다. 곰은 동물도 비롯하여 과일과 야채도 먹기 때문에 곰 토템을 지닌 부족이 농경문화에 적응했을 것이다. 농경문화의 이전은 결국 식량문제에 의한 인구증가 문제다. 같은 땅에서 수렵이나 채렵으로 얻는 식량보단 농사로 얻는 식량이 더 많고, 게다가 농사는 혼자가 아니라 집단노동이기 때문에 야생으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으며, 인간들 무리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장소에 살지 못하거나 혹은 살 수 없도록 내친 종족들은 유목지를 이동하면 살 수밖에 없다. 계속 한 곳에 정착할 경우 동물들은 모두 잡혀 먹히게 되고, 그 동물들을 키우기 위해 식생들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런 환경적인 조건에 의해 유목은 비과학적인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경제적인 조건과 환경적인 조건을 생각한 과학적인 생활양식이 된 것이다.

 

신화라는 것은 신의 이야기라고 하나, 사실은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이란 본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나, 혹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보고 그것에 대한 욕망으로 통해 나올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억압과 통제, 왜곡에 의해서도 신화라는 이야기는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는 하나의 과학성보단 공시적으로 비과학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 단군신화가 한국의 건국신화라고 하나, 그 이면에는 역사적 과학적 증거가 있을 터이다. 이번에 내가 적은 글에 대해 이미 누군가 연구했거나 학설로 인정받거나 또는 어느 서적에 실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것을 누가 제시하기보단 스스로 사고하여 적는 것도 역시 좋은 학문적 업적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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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웃기는 일이 있었다. 조경태 의원이 친노보고 민주당에서 나가라고 했다. 게다가 지금 안철수 의원과 당을 합하는 꼴에 친노보고 나가라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나 내 책상에는 조경태 의원이 저술한 세상과의 소통이 있다. 그나마 내가 예전에 조경태 의원을 좋게 본 것은 그가 토목공학 출신자고, 게다가 대학원출신이라 테크로라이트라는 이른바 기술관료가 없는 이 정치체제에서 공학출신자인 만큼 정확한 도시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문재인 의원에 대한 비판까지 좋다.

 

하지만 자신이 노무현의 후광을 얻고, 그 책에는 노무현의 이름으로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려 했다. 그런 그가 하던 말이 무엇인가? 요새는 정치에 염증이 나서 이제는 거의 어둠의 오덕세계에 깊이 열반을 들어가고 있다. 하루 평균 애니메이션 시청시간 2시간 정도, 물론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일도 하고, 야근도 하고, 이래저래 하다보니 주말에 몰아보나, 오덕을 위한 오덕으로서는 충실한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물론 책도 읽고 하고, 서평도 적기도 하지만,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를 벗어나고 한다. 그럴 때에 안철수가 바보 노무현이란 이름을 들먹이고 있다. 솔직히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부터 총선까지 봉하마을을 오고가고 한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명제에서 어긋난 이유는 그 주변의 인물이다. 그의 측근과 민주당 요원들이 노무현과 친노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말을 생각해보자. 정말 표리부동하다. 바보 노무현이란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지지도가 불리하기 때문이다. 친노를 뺏자고 해도, 과연 민주당에 친노는 몇 %? 라고 되묻고 싶다.

 

최근에 봉하마을의 권양숙 여사가 봉하마을 사저를 노무현재단에 위탁기부하고 자신은 다른 집에 간다고 한다. 노무현재단이라고 해보았자, 거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재단으로, 봉하마을에 가면 봉하사저를 제외하고 어디를 누벼도 통제하는 곳은 없다. 사람들이 미치지 않은 이상 남의 가게나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어디든 누빌 수 있다.

 

전에 봉하마을에 갈 떄 권양숙 여사가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생각난다. 딱 경호차량 1대 후에 본 차량이 등장한다. 처음에 오는지도 몰랐다. 알고보니 지나간 것이다. 정치적 명제를 위해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명제조차 사실은 권력유지라고나 혼자만의 숭고한 의지라거나 또는 빛 좋은 개살구, 요새 안철수 의원 주변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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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윤선도 평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고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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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남도기행이다. 그리고 그 기행의 시작점은 강진군이고, 다음으로 해남군이다. 강진과 해남, 왜 그는 그곳을 선택했을까? 그 책에는 이런 문구가 은근히 기억난다. 한국에서 먹물을 좀 먹었다는 인간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아마 우리 한국역사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치를 물어보자면, 2012년 세계 유네스코 인물에서 우리나라 첫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학문적 연구 가치로 따지자면 한국 역사와 철학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고, 동아시아권의 국가에서 다산의 학문을 연구한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이란 인물이 얼마나 후대에 이르기까지 깊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약용 선생이다. 유흥준 교수나 혹은 먹물을 좀 먹었다는 사람들처럼 존경하는 게 아니라 다른 루트로 통해서 나는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약간 중간에 길을 벗어나는 것처럼 들리지만, 내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기를 지금은 힘이나 돈이나 되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그 흔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나, 결론적으로 그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앞으로 간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보수와 진보라는 말을 떠나 그것은 하나의 전통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자기집안이 족보를 보는 시점이 언제냐고 생각하는지 생각하면, 아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제법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행사에 참여하여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질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집안 족보를 고등학교부터 봤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나도 처음 보고 정말 놀란 사실이고, 아직도 그것이 딱히 누구에게 자랑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 문중의 족보에는 다산 정약용이란 이름이 2번 들어가 있다.

 

한 문중에 같은 사람이 2번이나 올라가 있다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어느 권력자는 자신의 딸을 시집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또 다른 여자가족 1명을 시집보낸 일이 있다. 그런다고 그런 부당한 일도 아니고, 전부 가족 간의 친분이 있었던 사람끼리 혼인을 정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학연과 학유라는 아드님이 계셨고, 그 외에도 따님이 있었다. 정약용 선생의 아드님의 후손은 아직도 경기도에 살고 계시고, 따님은 정약용 선생이 귀양살이하시던 강진에서 자신의 친구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2사람은 결혼하여 조선후기 고전문학자인 방산 윤정기 선생을 태어나게 했다.

 

바로 그 다산 정약용 선생의 따님이 결혼하신 곳은 해남윤가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갓집 역시 해남윤가다. 그리고 나 역시 해남윤가다. 물론 핏줄이 직접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해남윤가 내에서 8대 공파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따님이 시집가신 곳이 나하고 같은 공파였다. 그래서 집안 족보 중에 파보를 보면 정약용이란 이름이 내 이름과 같은 책에 올라가 있다. 집안내력에서 내 직계의 할아버지가 그 당시 다산초당에서 정약용 선생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다산초당의 주인이던 윤단의 후손분과 친구였다고 한다.

 

이런 관계를 두고 조금 의아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지금 다산초당의 주인이고, 찻집 다신계 주인인 분은 윤단의 후손으로 지금도 다산초당 인근에 자란 야생차를 따서 녹차로 만들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머나먼 후손에게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다신계라는 것은 정약용 선생이 해배될 때 그분의 제자 중에 18분이 계를 만들어 스승인 다산 선생에게 차를 보내고, 서로 간의 우애를 다지자는 모임이었다. 한국 다도문화에서 다신계절목이란 기록은 매우 중요하고, 다도문화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치는 매우 높다. 실제로 다산 선생의 시조 중에 탁월한 시들이 많으나, 차시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살이 하던 강진 귤동마을, 그곳 산장 주인 역시 해남윤가다. 그런데 그 윤가는 다산 선생의 외갓집의 공파에 속했다. 그리고 그 공파 안에도 나와 다산 선생의 관계처럼 작은 파가 형성되어 있다. 그래도 다산 선생을 위해 다산초당을 제공하고, 음식과 술,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게 해준 이유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증조부가 조선화가 삼재 중인 하나인 공재 윤두서였고, 윤두서 선생은 고선 윤선도의 후손이었다. 즉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인생에서 해남윤가의 영향은 엄청났고, 그곳은 아직까지 유효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당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고산 윤선도의 영향이 컸다. 그는 조선 병자호란 전후의 남인 영수였고, 예송논쟁으로 우암 송시열과 다툼하다가 귀양살이한 사람이다. 다산 선생이 존경하던 성호 이익의 경우, 그의 큰형은 장형으로 죽고, 아버지는 귀양살이하다 죽는다. 당파싸움에서 남인과 노론의 관계에서 고산 윤선도가 벌인 싸움은 매우 컸다. 성호 이익 선생의 형인 옥동 이서가 공재 윤두서와 친구였고, 해남 녹우당의 현판의 휘호는 옥동 이서의 작품이다. 해남의 녹우당은 아직도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 살고 있다.

 

<윤선도 평전>을 보고 적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과 붕당정치의 비극, 그리고 해남윤가의 이야기가 나와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은가 하나, 모두 <윤선도 평전>에 담긴 내용이다. 단지 나는 이 책을 보기 전에 이미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윤선도 평전>을 서평하기 위해 풀어놓았을 뿐이다. 이미 고산 윤선도라는 이름은 고등학교부터 아버지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유너머의 저명한 인문학자인 고미숙 선생이 과연 윤선도라는 인물을 어떻게 평전을 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나왔다. 아는 것은 고산(孤山)이란 호가 외로운 산이란 것처럼, 그는 평생 외로움의 유배 살이를 보냈으며, 70대의 노년에도 귀양살이를 가야만 했다. 지금의 70대와 조선시대의 70대는 조금 다르다. 지금 70대 어르신들도 건강하고 정정한 분들이 많으나, 당시의 70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귀양으로 인한 유배 살이를 한 이유는 너무 입이 강직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후에 광해군이 정권을 잡았을 때, 당시 실세인 이이첨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하여 미움을 샀고, 효종의 스승이어서 효정이 집권할 때, 많은 질투의 대상이 되었으며, 효종 승하이후 상복을 1년인가 3년인가에서 불리할 것을 알고도 싸웠다.

 

어떻게 말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화가 미칠 것을 알면서도 상소를 계속 올린 자가 고산 윤선도다. 그의 상소문을 보면 직설적이라 당시 권력의 실세가 보면 매우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귀양을 인생의 반을 가야했던 그의 처지는 알면서도 싸운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성격이 아주 강직한 성품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면이 있었다. 또는 엉뚱한 면도 있었다. 조선시대는 사대부가 집권계층이던 시대다. 그런데 그는 사대부라도 조금 특이한 면이, 종에게 심부름을 보낼 때 가정이 있는 노복에 대해서는 심부름을 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즐기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일 가슴이 찡한 장면은 조선시대는 신분체계가 모순되고, 남존여비에다가 천한 신분의 여성은 양반에게 강제로 첩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그 첩에서 나온 자식은 비천한 신분이 되어야 했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으로부터 사랑은커녕 학대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고산이 유배 가던 때에 첩에게 나온 8살 아이 미가 어린나이에 죽자, 매우 통곡했다고 한다. 그때 지은 기록과 시의 일부분을 보면

 

“미는 천출로 태어난 나의 자식이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내 사랑을 온통 다 기울였다. 기묘년(53세) 중춘에 영덕의 유배지에서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오던 중, 20일 아침 경주의 요강원에 이르렀을 때, 미가 천연두를 앓다가 이달 초하루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통하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여 그 애통한 심정을 이루 다할 수가 없었다. 말 위에서 시어를 엮어 나의 슬픔을 토로했다.”

 

“(중략) 네가 없으니 감싸 쓰다듬어줄 수가 없고, 네가 병들었으나 약을 써보지도 못해, 이 때문에 내 슬픔 더욱 크고, 애통함은 비할 데가 없구나, 밥을 먹어도 눈물이 수저에 오르고, 말을 타면 눈물이 고삐를 적시네, (중략), 비록 나의 악업 때문이라지만, 하늘은 무슨 일로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나.”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체면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가족과의 우애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와 남편의 딜레마였다. 그런데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그것도 첩의 자식인데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그의 모습에는 너무 인간적이었다. 지금도 이 정도의 부성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성격인지 보길도에 기거할 때, 자신의 아들이 찾아오면, 배가 도착하기 전에 나루터에 먼저 도착하여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아들을 반겼다고 한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희생자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뽑을 수 있는 인물이 고산 윤선도다. 그런 강직한 성격을 가진 자가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시조는 이율배반적인 요소를 가졌다.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넘어 자신이 보고 있는 어민과 백성에 대한 모습을 어부사시가로 표현할 때 한국의 국문학에서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의 자연미라는 것은 일반 조선선비들이 누리던 자연 그 자체를 두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조형미를 만들어서 자연미가 아닌 자연미를 만들었다. 작은 호수를 만들고, 조경을 꾸미는 모습에서 그만의 독특한 미학을 남긴 것이다.

 

시에서도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으나, 그가 접한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아니라, 그가 만들어진 자연이다. 자연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적인 자연성은 그의 정치적 미학이 반영되어 있다. 바른 쓴말과 직설적인 상소로 정치적으로 탄압받아 머물 곳이 없어 머물던 보길도에서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정치적 미학이 있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여 대체할 수 있는 요건이 보길도의 자연미다.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정치적 목적은 왕도정치였다. 조선시대 정치적 당쟁에서 왕권을 중심이냐? 혹은 신권을 중심이냐? 라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왕은 권력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하로부터 견제가 심했다. 임금의 정치적 색이 합당하지 않으면 반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독살설도 나온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조이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의 왕도정치와 남인의 목표가 나오지만, 문제는 그 이인화는 기호남인을 생각했어도,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기호남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조선후기에서 노론의 후예가 조선 말기를 혼란하게 했는데, 그 연결고리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어째든 조선시대의 임금은 권세를 잡은 신하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언제라도 내칠 위험이 도살아 있었다. 그리고 정권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느 한 쪽은 참수와 유배, 형벌이란 무서운 보복이 살아있었다. 삼족을 멸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예송논쟁은 바로 기년상과 3년상에서 효종의 죽음이 왕권을 얼마나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대립이었다. 지금 입장에서 붕당파벌이라고 하나, 당시로서는 국가의 대사가 걸린 문제였고, 거기에 목숨 걸던 사람들이 많았다. 한 마디로 세상이 사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당쟁에서 고산 윤선도가 택한 것은 왕권의 강화인데, 이이첨의 사례나 혹은 실세들이 지나치게 권력을 잡아 부정부패를 일삼고, 그로 인해 백성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군주정이 아니라 민주정이라고 하나, 과연 민주정에서 국민의 대표가 국민 아무나가 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런다고 군주의 위치인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줄 수도 없다.

 

지나친 권력이 모이면 결국 독재정치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지나친 권력을 잡아 자신의 이권만 누리면 정치적으로 혼탁하게 되어 결국 국가와 국민은 피해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국가와 국민의 이름을 아주 미화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입맛으로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혼자 돈키호테처럼 덤비는 것은 누가 봐도 알만한 결과이나, 그래도 멈추지 않았기에 역사에 이름을 생긴다. 단지 이이첨과 같은 간신배로 남지 않고, 조선시대 정치가나 또는 시조의 대가로서 말이다.

 

그런다고 고산 윤선도가 정치적 풍파를 많이 맞아도, 정치생활 자체는 길지 않다. 유배로 계속 살았고, 그 후로 몇 년씩 은거했기에 실제 정치적인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정치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사대부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인이면서도 문인이었다. 학문에 능통하지 않으면 과거에 급제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과거시험 문제가 이미 유출되어 그 자료를 고산 윤선도에게 달라는 어느 실세의 일화를 보면 참 웃기고도 안타깝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자료를 끝까지 주지 않기 위해 갖은 답변을 하던 고산 역시 재미있다.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가 되풀이되니 고산 윤선도의 이름은 개인적으로 내 입장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잊어지기 어려운 인물이다. 물론 국어 교과서 국문학에서도 빠질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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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키안입니다.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많이 힘들다. 그렇다면 안녕하세요. 키안입니다.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많이 힘들다. 그렇다면 한국에 종사하는 많은 애니메이터들, 만화가들, 외에도 관련 종사자들(게임개발자,일러스트레이터)은 과연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래도 계속 한국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좋을까?"
~라는 주제로 토론발의 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 콘텐츠업계가 왜 힘든가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주셨으면 좋겠고요.

회원분들 각자의 의견주장은 되도록 댓글이 아니라 게시글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도 언급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위로 키안님이 저에게 주신 내용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실제로 그 바닥에 근무하지 않은 지라 정확한 데이타나 통계는 알 수 어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 종사하는 많은 애니메이터들, 만화가들, 외에도 관련 종사자들(게임개발자,일러스트레이터)이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간다는 점입니다.

 

많은 인력들이 특히 일본에 집중되며, 때에 따라서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갑니다. 미국에는 디즈니와 같은 대규모 자본을 갖춘 업체가 있고, 유럽의 경우 예술성을 강조하기 그렇습니다. 다르게 본다면 만화애니메이션 콘텐츠가 우리로선 일본에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나. 프랑스 안시영화제나 앙굴렘 만화전은 세계적인 만화애니메이션 행사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도 만화규장각에서 운영하는 부천국제만화축제와 부천국제애니메이션축제 등의 행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밖으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운영하는 서울애니메이션축제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앙굴렘이나 안시와 같은 사례를 보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곳은 도시 전체가 축제라면 우리의 경우는 도시에서 축제하더라도 일부 구나 동으로 제한될 뿐만 아니라 많은 참여객들을 위한 인프라조차 부족합니다.

 

예전에 저도 부천국제애니메이션축제(PISAF)나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행사에 참여할 때, 2011년 PISAF 떄는 숙소예약이 가능했지만 2013년 BICOF에서는 숙소를 예약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방문객도 아니고, 표찰에 Guest 내지 VIP를 차고 있는데도 말이죠(여담이나 BICOF 2013년 행사 위원회 부위원장이신 교수님이 부산에 사시는데, 여관에서 제자들과 방을 잡아 주무셨다고 합니다).

 

종사자는 아니나, 비종사자로서 보는 입장이라면 그 만큼 유관행사에 대한 인프라 내지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실제 만화규장각을 가면 주변에 식당이 부족하고, 여러모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합니다. 물론 내부에 전시관이나 상영관 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나, 이용자에 대한 접근성이나 편의성을 보면 많은 불편함은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행사조차 불편함이 감내해야 하는 현실에서 종사자에 대한 현실성은 당연히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사는 그 개최를 위한 기획과 예산, 실행이 필요하지만, 이와 반대로 이런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면 종사자들의 일상적인 부분은 어떤가라는 의문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기획하는 입장이나, 평소 전반적인 상황을 보자면, 그들은 우리에 비해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합니다.

 

자세한 통계까지는 아니나 대략 년간 애니메이션 관련 인력배출을 고려하면 천 명 이상이 될 것입니다. 각 지역별에 있는 만화애니메이션고등학교 및 영상영화예술고등학교(하단 참조, 자료출처 :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http://www.koscas.com)에서 배출디는 인원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예전에 비해 만화애니메이션 전공을 다루는 대학교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고, 만화애니메이션을 다루는 특화고등학교 역시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해마다 인력이 증원되는데, 이 많은 인원이 국내에서 활동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결론은 만화작가 내지 라이트노벨작가, 게임제작진 내지 애니메이터 등으로 활동하는 것이 이들의 직업일 것입니다. 디자인 내지 일러스트로 통해 활동할 수 있겠지만, 디자인 역시 만화애니메이션과 연계되므로,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확대적 방안은 매우 부실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제작에서 화면에 대한 편집과 동화작업이 위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음향적 조건과 더불어 서사적 조건이 따릅니다.

 

특히 서사적 조건인 스토리텔링에서 지나친 규제와 여성가족부의 개입, 각종 시민단체(일부 여성 및 기독교단체)들에 의한 제재에서 창의력이 기본이 되는 만화애니메이션에 치명적입니다. 그림이나 영상으로 드러나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서사를 가지므로, 그 서사적인 담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너무 심한 점입니다. 규제의 압력은 TV 애니메이션에서 상당히 치명적이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OVA 내지 극장용으로 되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TV 애니메이션 이외에는 광고 내지 홍보수단이 열악하므로, 이에 대한 문제점이 따릅니다. 결국 한국 만화애니메이션 문화산업을 흥행하기 위해서는 TV 애니메이션 규제 문제와 더불어, 그밖의 매체에서 홍보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 갖추어야 합니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하나, 지금 대부분의 만화애니메이션 정책제안자 내지 창작들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소비자에 대한 기호분석과 접근방법입니다.

 

최근 시드노벨과 같은 라이트노벨제작업체에서 라이트노벨 카페 내지 동호회, 사이트에 직접 활동하여 홍보하거나 또는 고객과의 만남을 주선하여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개발과 홍보를 병행합니다. 그리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빠른 정보와 명확한 발매소식을 접하므로 서로간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결론적으로 만화애니메이션 정책제안자 내지 문화산업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전환이 시급합니다.

 

그 이유는 제 아무리 만화애니메이션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가 내지 지방자치단체에서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 및 공고, 조례 등을 내세워도 결론적으로 지원만이 모든 해결책이 아니라 그 지원 후에 얻을 수 있는 성과입니다. 결과론적인 세견과 성과주의적인 요소로만 분명히 문화산업에 대하여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 성과나 결과에 대한 비판과 자숙은 필요합니다. 그 과정과 원인에서 정책제안자나 결정론자가 소비되는 시장구조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과거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과 같은 초기 전화모뎀 시절의 동호회들은 온라인활동과 동시에 오프라인 활동을 매우 중시합니다. 한국의 서브컬쳐 문화에서 대표주자인 ACA라는 동호회는 1990년대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규모 동호회였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 젊은 중학교 내지 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지금은 30~40대에 이르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당시보다 현재가 그들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유리할 겁니다.

 

그러나 ACA라는 조직은 사라지고, 대신 여러 가지의 인터넷 동호회가 생기고, 그 동호회의 회원들은 ACA에 비해 활동범위가 주로 온라인에 머물려 있지만, 온라인이란 특성으로 많은 회원들이 가입하고 활동합니다. 특히 21세기에 이르러 모바일로 통한 스마트폰의 대두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에게 실시간 활동이란 장점도 전달해줍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젊은 계층인 10대부터 20대, 그 너머의 30대까지 동호회에 활동하고 그들만의 취미생활을 즐깁니다.

 

이들에게 늘 새로운 정보와 즐거움이 필요하고, 거기에 호응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런 콘텐츠홍보전략이 부족하며, 그들의 소비계층과 소비구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제가 딱 꼬집고 싶은 부분은 만들기 위해 인력을 배출한 것까지는 좋으나, 만들고 나서가 제일 중요합니다.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만든 물건들은 창고에 재고로 쌓여 있으면서 아무도 사지 않으면 결국 부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지고, 이들에 대한 정보력이 없다면 결국 무엇을 만들어도 소용없다는 점입니다.

 

소비되지 않은 한국, 소비되기 어려운 한국, 어떻게 소비되도록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맞춘다면 인력이 증가하게 되는 겁니다. 아직까지 많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등은 여가생활을 위한 문화콘텐츠입니다. 한 번 나오고 싶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문화적인 성과가 축적되어야 발휘되는 하나의 숙성된 장의 맛입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만화작가나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은 단순히 점수가 되어 누군가의 권유로 하여 들어온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좋아해서 어렵지만 그래도 좋아하니까라는 자신의 의지로 온 겁니다. 그들이 가지던 의지가 결국은 소비자라는 입장에서 생산자로 가게 된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그들이 과거의 모습을 잊었을까요? 꼭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과거에 자신도 소비자에 있었는데, 결국 생산자로 간다고 해도 좋아하는 것은 포기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인력구조가 시작되었을까요? 개인의 능력과 역량,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천재인 월트 디즈니나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거장들이 있으니깐요. 그러나 그들은 정해진 인원이고, 그 사람만 볼 수만 없으면,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만화나 라이트노벨처럼 소수정예로서 움직일 수 있는 미디어가 아닙니다.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동원되어야 가능합니다. 좋은 감독이나 애니메이터 밑에 우수한 직원이나 지원군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직원이나 지원군이 누구일까요? 결론은 힘들게 고생하고 대접 못받는 것을 알면서도 한치 앞도 보지 못할 꿈을 찾는 소비자들이 아닐까요?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결국 추후에 그 소비자가 생산자로 될 경우, 많은 제약과 난관에 봉착합니다. 한국 만화애니메이션 문화산업이 쇠퇴하니 당연히 그것에 맞추어 소비자들의 입장이 곤란합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잘못 봐도 오타쿠라는 낙인이 이상하게 찍히는 세상이니깐요. 결국 약자는 누구일까요?

 

만화애니메이션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고생하는 분들일까요? 아니면 그분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보고 즐기고, 향후 그들의 자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일까요? 우리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얼마 전에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문화산업 부흥을 위한 "애니메이션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두고 국회에서 방청객을 모시고 토론회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과연 무엇이 얻어지고, 무엇이 나올까요? 다들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에서 국회라는 곳은 국민의 대표자를 모아 국회의사당에 법률을 제정 및 개정, 그리고 여러 국가대사를 결정하고 운영하는 곳입니다. 막상 거기에 가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로서 애니메이션을 위한 토론을 제대로 했을까요? 아니면 거기 참석한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나 제작사 관계자들이 국민 속에 있는 소비자를 생각했을까요? 저는 그 자리에 가고 싶어도 회사일로 또는 너무 멀어서 못갔으나, 주변에 아는 분의 소식통으로 조금 들었습니다.

 

덧붙여서 한국에는 만화애니메이션과 같은 서브컬쳐만 아니라 영화나 소설과 같은 대중문화도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원래 강대국과 같이 어느 정도 요건이 되는 국가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찾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역사적 전통을 살리고, 문화예술을 발달시킨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영국 등과 같은 유럽국가에서는 세계적인 관광소가 되고, 다양한 문화유산과 전통문화가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문학과 영화, 미술과 음악, 철학 등과 같은 학문적 역량도 탁월합니다. 그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마법이 아니라 그 마법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번역이나 암기는 잘 합니다. 그러나 창작이나 그 이상의 성과는 나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최근 규제개혁이란 정치적 이슈에서 우리에게 반강제적으로 인입된 계몽 아닌 계몽부터 청산하는 게 바르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계몽이란 그 유명한 계몽주의 관념철학자 칸트의 말처럼 누가 깨우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야 하니 말이죠. 그런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은 이상 문화강국은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http://vculture.kangwon.ac.kr
경기대학교 다중메체영상학부 애니메이션과 http://web.kyonggi.ac.kranimation
경동정보대학 게임애니메이션과 http://ga.kdtc.ac.kr
경민대학 카툰애니메이션과 http://kcms.kyungmin.ac.krcartoon
경북과학대학 포장디자인계열 산업디자인전공 http://www.kbcs.ac.kr
경북전문대학 영상미디어과 http://blog.naver.com/kbcackr
경성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http://ks.ac.krDicon
계명대학교 미디어아트대학 영상애니메이션과 http://www.vakmu.co.kr
계원조형예술대학 디자인계열/애니메이션전공 http://www.kaywon.ac.kr
공주대학교 영상보건대학 만화학부 http://www.mongchi.com
공주영상정보대학 애니메이션과 http://cafe.naver.com/anisul.cafe
극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과 http://www.kdu.ac.kr
극동정보대학 영상컴퓨터과 http://home.kdc.ac.kr/motion/
 
남서울대학교 애니메이션과 http://ani.nsu.ac.kr
 
대구미래대학 예체능계열/애니메이션과 http://ani.dmc.ac.kr
대구예술대학교 디자인계열 애니메이션전공 http://www.tau.ac.kr
대불대학교 디자인학부 만화애니메이션과 http://class.daebul.ac.kr
동강대학 정보산업디자인과 애니메이션전공 http://www.dkc.ac.kr
동서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애니메이션 전공 http://dicon.dongseo.ac.kr/VR
 
명지대학교 디자인학부 영상디자인전공 http://design.mju.ac.kr
명지전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http://www.mjc.ac.kr
목원대학교 미술대학 만화.애니메이션과 http://home.mokwon.ac.kr/~ani
 
백석대학교 디자인영상학부 영상애니메이션 http://community.bu.ac.kr/design
벽성대학 공업계열 VR 게임개발과 http://www.byuksung.ac.kr
부산경상대학 컴퓨터그래픽디자인전공 http://www.psks.ac.kr
부산예술문화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http://ani.pia.ac.kr
부천대학 FX애니메이션과 http://club.cyworld.com/fxani
 
상명대학교 만화 디지털콘텐츠학부 http://web.smu.ac.kr/art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과 http://design.ac.kr
선린대학 시각디자인계열 http://design.sunlin.ac.kr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영상학 전공 http://art.skku.edu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과 http://www.sejong.ac.kr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시각영상디자인전공 http://www.sookmyung.ac.kr
순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만화예술전공 http://cafe.naver.com/scartoonart.cafe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미디어학부 영화애니메이션전공 www.sch.ac.kr/filmani
신라대학교 IT디자인대학 만화/애니메이션디자인전공 http://cadesign.silla.ac.kr
 
아주대학교 정보통신대학/미디어학부 http://media.ajou.ac.kr
안산 1 대학 디지털에니메이션과 http://ani.ansan.ac.kr
영산대학교 CT대학 시각영상디자인학과 http://vdmg.ysu.ac.kr
예원예술대학교 만화게임학부 만화애니메이션전공 http://www.yewon.ac.kr/Subject/cartoon
용인대학교 예술대학 디지털미디어과 http://dfam.co.kr
용인송담대학멀티미디어 콘텐츠과 http://www.multi.ac.kr
울산과학대학 디지털콘텐츠디자인과 http://c-design.uc.ac.kr
유한대학 애니메이션과 http://www.yuhan.ac.kr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영상디자인전공 http://mid2008.cafe24.com
인덕대학 만화영상애니메이션과 http://animong.induk.ac.kr
인제대학교 디자인학부/영상애니메이션디자인 http://design.inje.ac.kr
 
장안대학 게임전공 http://game.jangan.ac.kr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 만화애니메이션전공 http://club.cyworld.com/jeonjuani
조선대학교 미술대학/만화애니메이션학부 http://www.chosun.ac.kr
조선이공대학 시각영상콘텐츠과 http://www.chosun-c.ac.kr
중부대학교 예술체육대학 만화 애니메이션과 http://animation.dongmoon.kr
 
청강문화산업대학 http://www.chungkang.ac.kr
청주대학교 조형예술학부 만화애니메이션전공 http://www.chongju.ac.kr
 
카톨릭대학교 디지털 미디어학부 http://songsim.catholic.ac.kr/~dct
 
평택대학교 영상애니메이션디자인전공 http://www.ptuniv.ac.kr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영상만화과 http://www.knua.ac.kr
한국폴리텍 서울정수기능대학 컴퓨터애니메이션과 http://www.sjpc.ac.kr
한림성심대학 영상콘텐츠과 http://cms.hsc.ac.kr:8080/doca
한서대학교 영상애니메이션학과 http://greatfire.cafe24.com/bbs
한성대학교 미디어디자인학부/애니메이션전공 http://www.hansung.ac.kr
한양대학교 디자인대학 영상디자인 전공 http://idesign.hanyang.ac.kr
한양여자대학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http://www.hywoman.ac.kr
혜천대학 컴퓨터게임&그래픽 http://game.hcc.ac.kr
호남대학교 정보통신대학 게임애니메이션학과 http://gameani.honam.ac.kr
호서대학교(아산캠퍼스) 예술학부 애니메이션전공 http://www.hoseo.ac.kr/ani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애니메이션전공

 

 

경기예술고등학교 만화창작과 http://kgart.hs.kr/
경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 컴퓨터 디자인과 http://www.designschool.hs.kr/
경남예술고등학교 미술과
(디자인전공-컴퓨터그래픽)
http://kyongnamarts.hs.kr/
경북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애니메이션전공 http://www.gahs.or.kr/
경일 정보여자고등학교 그래픽디자인과 http://www.kig.hs.kr/
고봉정보통신고등학교 애니메이션과 http://seoul.jschool.go.kr
관악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만화영상 http://www.kwanak.hs.kr/
 
문성여자상업고등학교 애니메이션과 http://www.ims.hs.kr/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 게임 애니메이션과 http://e-mirim.hs.kr/
밀성정보고등학교 멀티미디어과 http://www.msih.hs.kr/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시각디자인과 http://www.psgch.hs.kr/
부산영상고등학교 만화캐릭터학과 http://www.visual.hs.kr/
부산정보디자인고등학교 시각디자인 http://www.psid.h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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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공업고등학교 애니메이션과 http://www.samil-i.hs.kr/
서서울정보산업고등학교 만화영상 http://www.ssii.h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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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컴퓨터디자인과 http://www.youngran.hs.kr/
영신여자실업고등학교 컴퓨터그래픽디자인과 http://www.youngshin.hs.kr
울산애니원고등학교 창작만화과,
애니메이션과, 컴퓨터게임개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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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 애니메이션과 http://anigo.h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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