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문화인류학적인 요소로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대해 이번에는 단군신화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동기는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한 도서를 보면서, 단군역사에 대한 연구를 보면서이다. 딱히 본 서적에서는 그런 내용을 상세히 다루지 않으나, 적어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원래 민족주의자 내지 사회진화론자에서 아나키스트 내지 사회개조론조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단재 선생 역시 역사관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의 사상은 근대주의에 입각했다. 근대화라는 산업체는 1960년대부터라도 근대사상은 이미 일제 강점기 독립군 내지 열사들과 같은 시대지식인에 의해 확립된 셈이다. 그러나 근대사상은 우리나라 근대화에 반영되지 않았고, 단지 경제적 근대화만 이룩했다. 뿌리 없이 자란 풀과 같아 모서리의 잎자락이 모두 병에 시든 것이다. 어쨰든 단군신화를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그 시대적 요건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선 곰과 호랑이에서 우리는 토템이즘이라고 하는 동물숭배 원시적 종교체계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환웅일족이 가진 것은 풍백, 우사, 운사, (뇌사) 무리 3000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환웅이라는 군주는(배달국을 세운 것이 한국의 최초의 국가이지 단군이 세운 것이 최초의 왕국이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하는 것은 나 역시 그래 여긴다.) 토템이즘이란 종교적인 사회구조가 아니라 샤머니즘이라고 하는 정령적인 존재를 신으로 받드는 부족의 수장이다.

 

그가 배달국을 만들 시기에 문화인류학적 관점 또는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적인 요소로 본다면 결국 지리적, 기상학적, 환경학적, 경제학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우선 우사와 운사, 풍백은 기상조건을 말한다. 그것은 기상학을 알던 지식인들이 환웅일족은 보유하고 있고, 그들은 농경사회의 기술을 가진 셈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벼농사로 통해 얻을 수 있는 쌀이란 식량이다. 벼농사 경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강우량이다.

 

 

비나 바람은 농경사회에서 벼를 가꾸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자다. 한국의 기후가 몬순기후로 여름에 많은 호우와 가을에 건조해지는 점에서 특히 한가위라는 추석문화는 벼농사의 전형적인 축제문화로 볼 수 있다. 벼는 여름에 많은 물이 필요하고, 가을에 건조해야지 수확을 제대로 얻을 수 있다. 벼가 여물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크기가 되어갈 때 호우가 내리면 벼이삭이 무거워서 모두 농경지로 빠져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환웅일족은 농경사회로서 그들은 농사를 짓기위한 도구를 지니고 있었다. 즉 신석기 이후의 뛰어난 석기문화와 더불어 청동기문화가 그들의 중요한 농경문화라는 점이다. 그가 가지고 온 삼부인에서 칼이란 권력적 상징이 중요한데, 칼을 가지고 있으면 구식무기에 비해 단단하고 날카로워 살상력이 강력하다. 만약 청동기문화 부족이 석기문화를 가진 부족과 만나면 석기문화족들은 모두 사멸한다. 망자의 길을 피하기 위해서는 흡수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토템을 가진 부족은 어떠한가? 곰과 호랑이에서 나는 그들의 음식문화에 대해 생각해봤다. 곰이란 동물은 육상의 나무와 풀에서 나오는 열매와 과실을 먹고, 또한 육상동물이나 강에서 나오는 물고기도 섭취가 가능하다. 곰이란 동물은 생물학적으로 잡식성이고, 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이라면 식량공급이 가능한 동물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대부분 육상동물을 먹는다.

 

음식문화에 대한 조건적으로 곰과 호랑이는 식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금 알아야 할 점은 흔히 우리는 곰은 순하고 둔하다고 하나, 야생의 곰은 사납고 빠르고 무서운 동물이다. 곰이나 호랑이 모두 야생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두려운 존재다. 호랑이와 곰을 만나면 어디가 더 치명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무서운 동물이다. 그러나 토템적 요건에선 결국 음식문화로 넘어간다면 환웅일족과의 만남에서 농경사회부족과 채취 내지 사냥일족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원시부족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에서 원시부족 중에서 평화로운 부족이 있는 반면 매우 사나운 부족이 존재한다. 그들의 성질을 좌우하는 것은 일정한 토지위에 놓인 인구수가 문제라는 점이다. 만약 1제곱킬로미터 내에서 인구가 100명과 1000명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들의 식량공급이 사냥 내지 채취, 수렵이라면 결국 계속되는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이 되는 동식물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같은 식량을 두고 서로 싸우는 것이다. 원시부족들이 전쟁한다고, 그리고 살해하고 인육을 먹는 것은 잔인하고 야만적이나, 우리가 그들의 생계를 책임을 질 수 없다.

 

환경적인 조건에서 야생의 생활은 생존적인 법칙이 곧 인간들에게 식량의 유한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전쟁노예 이전에는 전쟁포로는 대부분 돌려보내거나 모두 죽이는 것이 관례인데, 그 이유는 전쟁포로를 수용할 수 있을만큼 식량이 넉넉치 못했다. 그래서 인육을 먹는 부족이 생긴 이유다. 그렇다면 문명을 가진 환웅부족에서 곰과 호랑이가 서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곰만 남고 호랑이가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곰은 3·7일만에 인간으로 된 것은 결국 농경문화에 적응했냐이다. 다시 넘어가면 식량은 벼농사 위주이기 떄문에 쌀을 주식으로 삼고, 채집이나 사냥이 아닌 탄수화물로 영양분을 보충해야 한다. 하지만 쌀을 이용한 탄수화물보다 오히려 고기로 통해 얻는 지방과 단백질이 칼로리도 높고, 특히 단백질은 인간에게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쌀로만 보충할 수 없는 영양성분들을 쑥과 마늘과 같은 약용채소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고기만 먹던 수렵부족에겐 쌀을 비롯한 약용채소가 자신의 식성에 맞지 않아 스스로 떠나갔을 확률이 높다. 곰은 동물도 비롯하여 과일과 야채도 먹기 때문에 곰 토템을 지닌 부족이 농경문화에 적응했을 것이다. 농경문화의 이전은 결국 식량문제에 의한 인구증가 문제다. 같은 땅에서 수렵이나 채렵으로 얻는 식량보단 농사로 얻는 식량이 더 많고, 게다가 농사는 혼자가 아니라 집단노동이기 때문에 야생으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으며, 인간들 무리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장소에 살지 못하거나 혹은 살 수 없도록 내친 종족들은 유목지를 이동하면 살 수밖에 없다. 계속 한 곳에 정착할 경우 동물들은 모두 잡혀 먹히게 되고, 그 동물들을 키우기 위해 식생들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런 환경적인 조건에 의해 유목은 비과학적인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경제적인 조건과 환경적인 조건을 생각한 과학적인 생활양식이 된 것이다.

 

신화라는 것은 신의 이야기라고 하나, 사실은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이란 본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나, 혹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보고 그것에 대한 욕망으로 통해 나올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억압과 통제, 왜곡에 의해서도 신화라는 이야기는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는 하나의 과학성보단 공시적으로 비과학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 단군신화가 한국의 건국신화라고 하나, 그 이면에는 역사적 과학적 증거가 있을 터이다. 이번에 내가 적은 글에 대해 이미 누군가 연구했거나 학설로 인정받거나 또는 어느 서적에 실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것을 누가 제시하기보단 스스로 사고하여 적는 것도 역시 좋은 학문적 업적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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