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 (특별한정판) - 요희전기 2, Novel Engine
크레파스 지음, Mx2J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은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를 이은 요희전기다. 일단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지만 작가인 크레파스라는 인물은 동양철학에 깊은 조예가 있다는 점과 그가 적은 글을 본다면 깊은 조예성과 더불어 부실한 요소도 같이 있다는 점이다. 즉 라이트노벨이란 특성이 경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자적 서사를 가지고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문자서사에 만화나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같은 일러스트를 첨부함으로써 라이트노벨이 만화와 같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라이트노벨의 주요 특성 중에서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은 설정이 미소녀 하렘이란 Cliche이다. 주인공 남자 주변에 많은 여자가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많은 여자들이 그에 대한 애정공세를 멈추지 않는 것은 내키지 않다. 왜냐하면 문학의 시작점은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신화(神話)란 신이란 존재를 내세우나, 그것은 정말 신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적인 요소에 잠재된 욕망 내지 억압심리로부터 탄생한 캐릭터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만큼 좋은 현대적 신화는 없다. 그 캐릭터는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나 남이 하고픈 이야기를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처럼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진 이야기이므로 누군가 거기에 자신 내지 혹은 남의 이야기를 끼워 넣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자신의 욕망과 억압에 비롯된 하나의 왜곡이라면, 그 왜곡되어버린 이야기가 타인도 역시 같이 빠져갈 수 있다. 그래서 미소녀 하렘 계통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그런 자기 현실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갇혀 자위하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다고 이런 장르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방식이 하나의 대세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점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고, 너무 부족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적당한 선에서 여러 가지의 종류가 다양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야 말로 문화콘텐츠로서 라이트노벨 장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하렘 요소 내지 또는 미소녀 캐릭터와 이벤트적인 요소에서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은 조금 지나쳤다고 할까? 아니라면 부드럽게 이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흔히 성적 묘사에 대해 논하자면 문학에서도 충분히 그런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문자서사가 영상서사로 변모될 때 문자서사 안에 있는 베드신 내지 성적으로 강렬한 모습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캉디드가 사모했던 퀴네공드 양은 아직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나 그녀는 무척 순진했다. 하지만 캉디드의 스승인 팡글로세가 퀴네공드 가문의 하녀와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따라하고 싶어 캉디드와 성행위를 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 혹은 20세기 대표적인 소설가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성행위를 나누는 모습이 소설에서 나온다. 그러니깐 단순히 라이트노벨이나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이 선정적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인류가 만들어온 많은 문학에서 성적행위나 묘사 등은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단지 문학에서 그런다고 해도 문학과 만화적 속성이 섞여 있는 라이트노벨이란 특성이 그런 성적 묘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듯하다. 불의 공주라고 불리는 국가 화선의 공주, 유하는 자신이 화선의 황녀이면서도 화선을 떠난 이유는 권력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용병단은 화선에게 고용되었으며, 그 용병단은 월하라는 국가의 1번째 공주인 월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2번째 공주인 월린이 황녀의 자리를 물러받아 레지스탕스와 같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하와 월린의 만남은 서로 적이면서 어떻게 보면 같이 운명을 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문제는 유하가 월하의 국가를 구해주는 대신 월린은 유하의 하녀가 되어야 했다. 유하는 기가 세고 똑똑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나, 그 성격에는 지나치도록 심각한 편집증적인 정신병이 보였다. 유하는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것도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족들이 언제나 피로 물든 권력다툼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 만큼 유하의 삐뚤어진 성격은 월린에게 대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자신의 손가락 하나 내지 혹은 두 개를 월린의 입에 넣는다는 점이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에서 월린이 유하의 손가락이 들어오고 나서 뺀 후의 장면이 책 중간 흑백 일러스트로 나오는데, 그 모습은 마치 여자와 남자가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게다가 월하는 자신의 큰 가슴 위에 자신의 두 손목을 올리고 있을 정도였다. 노골적인 성적묘사가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의 가장 큰 오류이지 않나 싶다. 적어도 이 책은 19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서사적인 흐름을 읽고 세계관과 인물에 대한 갈등과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리뷰의 목적이기도 하나, 적어도 리뷰 한다는 것은 비평적 관점을 배제해서는 안 되므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표지나 일러스트가 다소 여성의 성적인 요소를 부각하여 모에속성을 노리는 것을 두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책 내용에서 그런 노골적인 요소는 좋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Critical한 비평은 독자로서 분명히 생각하고 판단하여 반응해줘야 할 의무인 것 같다. 어째든 책의 내용을 읽어보자면, 이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우선 월하의 국가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 것은 없다. 단지 그들은 위기에 처한 국가이고, 월하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상징성인 월린이 어떤 운명을 겪을지 모르는 작품이다. 월린이 죽거나 또는 유하가 죽거나 혹은 흑록이 죽게 되면 이 작품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그들이 끝까지 생존하여 마지막에 이르러 어떤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스토리텔링의 맛이다. 적어도 이제 주요 인물들이 모였다면, 다른 식으로 보자면 진정한 적과 그 적에 대항할 수 있는 연합세력 및 지원군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향이란 나라의 공주인 수희가 등장한다. 만약 요희전기가 국가별로 공주의 존재를 두고 작품시리즈를 붙인다면 다음 작품은 물의 공주라고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혹은 부록에 나오는 화율의 어머니의 고향은 화령이듯이 꽃의 공주로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 내지 황녀라는 인물을 달, 불, 꽃, 물로 통해 나가는 것은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속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불을 상징하는 화선은 강력한 무력, 달을 상징하는 월하는 신비한 존재(신선), 꽃은 아름다운 자연, 물은 풍요로운 국가로서 말이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은 그 풍요로운 경제대국인 물의 국가 수향의 공주가 나온다. 그녀는 화선에 의해 고국은 멸망했어도, 수향의 상징성이란 수희로서 존재한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에서는 강력한 화선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군자금이 필요하고, 그 군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사람은 수향이란 국가였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법처럼 수향의 군주인 수희를 만나는 것은 화선의 책략이 존재했으며, 유하의 최대의 라이벌인 태화가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유하가 어떻게 하여 화선의 황궁에서 나왔는지에 대해 상세히 나오지 않으나, 단편집인 <작열 & 유하등>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화율의 어머니인 화이는 산 채로 아궁이로 버려져 백골이 보일 정도로 타버렸고, 화율은 유하와 같이 여행 가려는 도중 유하의 수석 호위관의 책략에 의해 죽게 된다. 수석 호위관은 화이의 죽음으로 화이를 존경하거나 사모하거나 또는 측은하게 여기는 이들이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것을 알고, 화율을 꾀어내어 모두 섬멸한다. 그런 수석 호위관의 책략도 모른 채 자신의 배 다른 동생인 화율의 죽음을 모르는 유하는 돌아가면 화율에게 과자라도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하에게 과자를 사주고 싶은 배 다른 동생은 사라지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잔인한 권력다툼의 상처뿐이었다.

 

황궁을 나온 황녀, 그녀가 선택한 용병생활에서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는 유하는 그 누구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흑록에게 말이다. 흑록에게 집착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단지 흑록은 단지 죽을 곳은 찾고 있었다. 삶의 미학을 알지 못하는 흑록, 그는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누군가를 믿는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으며, 남에 의해 배신당하여 상처받는 것조차도 두려워했다. 철저히 자신의 마음에 벽을 쌓는 흑록에게 유하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대화나 상황설정은 매우 좋았다고 보았다. 유하가 명령을 내릴 적에 직접 흑록이 아니라 월린으로 통해 내린 점에서 말이다.

 

만약 단순히 흑록과 명령을 내리는 것과 작전을 위해 대화하는 사이가 되어버린다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사이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월린이 중간에서 중재하던 모습에서 이 작품은 1권에서 삼각관계적인 요소에서 월린이 후퇴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3권에서 어떻게 변할지 혹은 수희와 그녀의 비서인 연서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알 수 없다. 적어도 흑록에게는 유하가 모든 것이란 점이다. 흑록은 1권부터 나오지만 아버지는 월하의 장군이나 전쟁에서 죽고, 자신은 월하가 패배하여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용병 생활하는 내내 망해버린 월하의 백성이란 이유로 무시당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즐거움과 희망을 품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그저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이 흑록의 현실이었다. 그런 흑록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것이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이다. 제목처럼 불의 공주로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흑록으로 통해 인생의 전환점은 결국 자신의 주변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혹은 자신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정에서 말이다. 부록에서 등장하는 <작열 & 유아등>에서 수향의 고아로 태어나 뒷골목의 이리처럼 살아온 희는 아무런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망해버린 수향, 그리고 버려진 고아, 자신이 주변을 인식할 때 자기가 눕고 있는 침대자리에 어떤 여자가 남자를 안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게를 전전하다 결국 뒷골목의 창녀촌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각종 허세와 거짓, 그리고 도둑질과 싸움질, 그에게 주어진 삶은 항상 피 냄새와 빛조차 외면하는 그림자였다. 화선의 용병이 될 때, 상대 가리지 않고 싸움만 즐겼으며, 전투에서는 미친 듯이 총과 칼을 쏘고 휘둘렀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오직 어깨에 메어진 큰 가방이었다. 그 가방 속에는 이때까지 용병활동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이다. 돈이 가방을 다 채우고 있을 정도니 얼마나 많은 피 냄새를 맡았을까? 그는 사나운 이리였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좋았다. 단지 칼로 심장을 찌르고, 총으로 상대방의 뇌수를 박살내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항상 유령과 같이 잠재되어진 무의식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는 수향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수향에 대하여 원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말 수향에 대해 미워하고 싫다는 것은 그만큼 수향에 대해 마음속 깊이 담고 있다는 것과 같다. 그가 자신의 그늘로부터 나오기 위해서는 수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그는 수향에 대해 겉으로는 부정해도 속으로는 내심 수향에 대한 애증관계에 사로잡힌 것이다. 마지막에 수향의 왕이 도피생활하면서 자기만 편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은거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이때까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수향이 그토록 증오만 하고 살았지만, 그 증오의 정점이 되어야 할 수향의 군주는 오히려 자신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끝까지 화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싸웠던 것이다. 이때까지 그 누구에게 진지하지 않았던 희는 왕이 없는 허물어가는 왕궁에 거수경례를 하고, 그 마을을 침범하는 용병 출신 산적을 치러 간다. 거기서부터 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전쟁이란 공간에서 인간은 자신의 모든 터전을 잃거나 또는 타인의 터전을 모조리 부수거나 빼앗는다. 그런 전쟁이란 정치적 함의가 무력으로 동반될 때 그 모든 것이 악몽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전쟁에서 이때까지 가진 것을 모두 소멸하게 만들고, 혹은 아무 것도 없는 자를 다른 방식으로 채우게 된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에서 자신의 길을 찾은 흑록이나 또는 부록에서 보인 희, 그들은 화선에 의해 고국을 잃고, 삶의 가치도 잃었다. 그런 만큼 요희전기에서는 전쟁이란 공간에서 던져진 인간의 삶을 역경과 위기 속에서 보여줄 것이다. 언제나 유하를 믿지 못한 흑록이 유하를 믿을 수 있던 것은 그녀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과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내부의 갈등이 외부의 위기로부터 극복하는 것이라는 Narrative라는 전형적인 서사적 속성은 다음 3권부터 보여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일 문학작가 뷔히너가 저술한 <당통의 죽음>은 연극대본으로 제작되어 독일 및 프랑스 등과 같은 유럽에서 연극으로 펼치다 최근 한국에서 연극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단지 그 기사를 제작한 신문사와 <당통의 죽음>이 가진 의미적인 가치를 생각하면 너무 판이한 점을 생각하면 답답하나, <당통의 죽음>이 연극으로 나온 점은 매우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당통의 죽음>에서 잘 판단하는 부분은 세계 3대 혁명 최근에 일어난 것이 바로 러시아혁명이다. 그런데 이 러시아혁명의 원초적인 정신이 프랑스 대혁명이란 사실이다.

 

아서 쾨스틀러의 소설인 <한낮의 어둠>은 러시아혁명을 이룬 주인공이 스탈린의 공포정치 아래 숙청되는 것을 아주 디스토피아하게 그린 작품으로 작중에서는 포템킨함정에서 혁명을 일으킨 수병도 같이 처형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스노볼을 내쫓고 농장을 독재로 차지한 나폴레옹이 한 대사 중에서 "이제 혁명은 끝이다!"라는 것과 같다. 혁명의 배신적인 요소를 지켜본다면 트로츠키나 로베스피에르 내지 당통은 그 혁명에서 선구자이기도 하나 최고의 배신의 쓴 맛을 본 자이다.

 

영화 <당통>은 연극 <당통의 죽음>을 가지고 만든 작품으로 영화와 연극을 2가지를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영화는 당통을 객관적으로 보는 요소가 강하고, 연극의 대본은 주관적인 요소 즉 당통의 심리적인 요소를 많이 부각한다. 요절한 천재인 전혜린 교수의 저작들을 읽다보면 전혜린 교수가 독일에 유학하던 시절, 뭔휀에서 머무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독일에서 본 <당통의 죽음>이란 연극에서 당통의 죽음으로서 허무주의한 니힐리즘에 대한 요소와 더불어 실존적인 담론을 제기한다. 죽음으로서 살아있는 육체는 멈출지언정, 프랑스대혁명을 일구고 지킨 영원한 혁명가로서 당통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인간이다.

 

당통의 죽음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가? 로베스피에르가 선도하여 실행한 공포정치에서 그의 무서운 무기는 국민공회로 대변되는 재판이다. 그 재판에서 판사가 망치를 두드리는 순간 목이 하나 떨어진다.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단두대 아래 이슬로 사라진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서 그렇게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회의적인 요소가 나온다. 프랑스 여성문학사에서 빠질 수 없는 롤랑 부인이 단두대 아래 죽을 때 "자유여, 당신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죄가 저질러졌는가!"라고 외쳤다. 롤랑 부인의 죽음에서 보이는 프랑스대혁명은 역사적으로 큰 진보와 더불어 퇴보를 일으켰다.

 

헌법의 기본 중에 기본에서 민주자유공화국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이란 3개 그룹으로 나누는데, 그것이 몽테스키외라는 계몽주의 사상가의 <법의 정신>에서 시작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 시킨 이들이 디드로, 볼테르,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인 장 자크 루소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인권선언문을 읽다보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제장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떤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찾아보면 그런 내용이 그대로 따라하듯이 보여준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고 하는데, 그 원류는 미국독립혁명 내지 프랑스대혁명으로부터이다. 헌법을 고수하는 것은 보수주의적이나, 헌법의 정신은 진보주의적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에서 나는 일상생활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바로 저런 프랑스대혁명과 더불어 헌법의 기초와 계몽주의철학에서 비롯된 자유주의 사상을 제대로 담론 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당통>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 호칭을 붙인다. OO 시민이라고 말이다. citizen이란 것과 동시에 people에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mass라는 대중과 다른 의미로 부여된다. 존 롤즈의 <만민법> 내지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자유주의 철학대서를 읽게 되면 시민이란 것은 서울시나 부산시에 사는 시민보단 정치적 참여에서 하나의 발언권과 동시에 의무와 권리를 내포한 자들이다. 즉 시민이라고 불리 자격이 있는 부류는 그 자체 하나하나가 정치인이 되어서 정치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식과 인품이 갖추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프랑스대혁명에서 파리 시민들은 시민이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 무지한 농민이고, 글을 읽을 줄 몰랐으며,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혁명의 원초적 에너지가 될 수 있어도 혁명의 원동력이 되지 못하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바꿀 수 있으나, 현재를 보고 미래를 움직일 판단력은 없었다. 그런 군중적인 요소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이다. 토크빌의 <앙시애 레짐과 프랑스혁명>을 읽으면, 프랑스혁명은 계몽주의사상가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도한 게 아니라 프랑스 하층민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궁핍과 국가제정의 위기였다.

 

특히나 미국독립전쟁에서 영국의 견제를 맡은 프랑스로서는 제정적 위기가 닥친 것이다. 러시아혁명사의 원인도 마르크스주의자가 선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1905년 피의 일요일처럼 러일전쟁 이후 물가상승, 자원부족, 식량위기로 인한 생활의 경제적 문제였다. <당통>이란 영화 역시 그런 생계라는 부분에서 당통이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된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여자와 한 번 잠도 자지 않았다."라고 말이다.

 

미학도서를 읽게 되면 유럽의 중세를 보자면 어린 아이들은 우리와 같은 어린 아이가 아니라 작은 어른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부모와 같은 방에서 큰 침대에서 같이 잔다. 문제는 농업기반이 주요 산업이던 시절에는 침대에서 많은 식솔을 거느릴 경우 어떤 광경이 보일까? 부모는 어린 자식이 옆에서 자고 있거나 혹은 깨어날지도 모르나 그 침대에서 계속 Sex를 하고 있던 것이다. 나이가 10대가 되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Sex를 하고 아이를 만들어 결혼하는 것이 농민을 비롯한 하층민들의 생활이었다.

 

물론 로베스피에르는 대표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으로 법조인이었다. 그는 분명 아내와 살고, 아내는 어린 남동생까지 데리고 있었으나, 충분히 부부관계를 통해 Sex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하지 않았고, 모두 평등하게 굶는 것만 추구했지, 그 이상의 차이를 두지 않았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불평등은 선천적과 후천적으로 나누는데, 선천적은 성별, 나이, 인종 등과 같은 생물학적 요소이고, 후천적은 경제, 지위, 문화, 정치적인 요소 등과 같은 후천적 요소다.

 

결국 후천적 요소의 배제에서 인간이 가진 욕망에 대해 철저하게 금욕주의적 요소를 추구한 것이 로베스피에르였다. 그의 이상적인 정치성향은 혁명중심이던 1794년 전까지는 좋았을 것이나 당통 사망 직후 그도 역시 테르미도르반동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에서 우리는 프랑스대혁명을 시작과 동시에 종점을 찍는 비극을 볼 수 있다. 추후에 1799년 브뤼메를 18일에 나폴레옹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프랑스의 공화정은 종극을 내리고 다시 왕정 이후 혁명과 보나파르트와 부패한 왕족과 귀족 그리고 부르주아에 의해 민주공화정의 위기를 맞이한다.

 

세상에는 이런 명언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인간의 피를 마시고 자란다.” 오늘날 프랑스를 비롯하여 영국, 독일 등과 같은 북유럽 내지 서유럽 국가들이 그만한 민주주의 제도와 정치적인 여력이 세계적인 국가로 부상한 것은 그에 대한 대가와 고난이 있었다. 심지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조차도 영국과의 독립전쟁, 흑백 인종차별로 계속 이어지고, 흑백 인종을 넘어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도 인종차별로 21세기까지 고통을 수반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체계는 완벽한 이데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란 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제기한 공산주의 역시 완벽한 공산주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그것에 대하여 가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하나, 러시아혁명에서 레닌 사후 스탈린에 의해 소비에트연방국가의 스노비즘이 결국 관료주의 독재국가로 전략해버렸다. 혁명의 시작과 위기에서 왜 이런 비극을 맞이하는가? <당통>이란 영화는 바로 이런 문제를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귀족과 왕족, 성직자, 악덕상인의 목은 광장 위에 세워진 단두대 아래 사라져 가는데, 계속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인간의 불평등을 재산과 계급 그리고 인간의 덧없는 욕망이 있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주장하고, 그것에 대해 루소는 인간은 인간성 회복을 위해 자연의 미를 따르라고 한다. 그의 저서 중에 <식물사랑>은 식물은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식물 그 자체를 관찰하고 자연의 존재성을 인정하는 자연주의적인 관점이기에 인간이 자연에 회귀하는 것이 인간으로 살 수 있다고 봤다. 오늘날 환경오염과 자연파괴에 위기에 놓인 문명사회에서 루소의 외침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 가진 만큼 누군가는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한계점과 용인할 수 있는 영역이 지켜질 경우 문제가 없겠지만, 하루에 빵 1개를 구하기 위해 싸움을 하는 남자와 몸을 팔아야 하는 여자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살았던 사드 후작의 서적인 <소돔의 120일>을 읽게 되면 사드가 가진 성적인 도벽과 사디즘에 대해 볼 수 있다. 당시 사드의 상상력으로 만든 소설에서 어느 정도 현실에 대한 기반과 사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실제 역사 사료를 읽게 되면 여자가 몸을 파는 것은 스스로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팔려간 여자였다. 집안에 부모에 의해 혹은 납치에 의해서였다.

 

프랑스혁명 아래 이런 여자들이 사라지고 평범한 일상으로 가야 하나,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을 보거나 영화 당통을 감상해도 창녀의 등장은 나온다. 혁명이란 단지 정치적 헤게모니를 뒤집는 것이지 사회구조적인 뿌리를 흔들지 못했다. 혁명이 결국 식량을 증식시키거나 혹은 보급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 이전과 후나 모두 비참하고, 분노의 칼날은 언제나 그들이 살던 시절의 사람에게 향하고, 그 사람은 희생자 내지 혹은 추후에 영웅이 되어야 했다. 프랑스대혁명의 루소에 대해 생각해보자. 루소는 조국인 제네바에서 추방당하고, 만약 그가 돌아올 경우 영원히 체포하여 법적 대응할 수 있는 공소시효 만료가 없는 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런데 루소의 본가가 아닌 루소의 할아버지 집에 지금 제네바시민 장 자크 루소의 기념물이 있다.

 

루소가 바랑 부인을 만나던 1728년을 기념하여 1928년 200주년 기념물이 생길 정도다. 루소가 파리 시민에게 놀림을 받고, 심지어 루이16세에게 루소의 소식이 하나의 가십거리로 들어갈 무렵, 루소가 자주 산책하던 호수가 루소의 호수로 되었다. 당통은 프랑스대혁명의 영웅이었으나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에 의해 사기꾼들과 같이 엮여 재판을 받고 단두대 아래 사려졌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의 전제군주라는 호칭을 받으면서 사라졌다. 역사는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가장 절친한 동지와 라이벌이었고, 그리고 위대한 혁명가로 매기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에서 이 둘은 그렇게 원만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 당통은 1794년 자유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로서 국민공회의 정치가 전제주의적 요소와 지나친 폭력적인 점은 지적했고, 국민공회는 그것을 막기 위해 데물랭의 신문사를 폐간시키고, 데믈랑과 당통을 죽음으로 내몬다. 당통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죽음으로서 공화국의 종말을 예언했다. 국민공회의 권력자들은 당통을 죽여 승리를 맺었으나, 결국 진정한 패자는 국민공회가 되어야 했다.

 

영화 <당통>에서 프랑스인권선언문 제4조인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각자의 자연권 행사는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할 경우 말고는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제약은 오로지 법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가 아주 인상적인데, 그것은 당통이 죽고 나서 로베스피에르는 집에서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잠을 자다가 당통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이때 로베스피에르의 아내가 방에 들어오고, 아내의 어린 남동생이 프랑스인권선언문을 외워 읽기 시작한다. 제4조에서 로베스피에르는 자기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진정한 패자로 되었음을 인지한다.

 

생각해보면 21세기 대부분 국가는 자유민주주의국가 체계라고 하나, 실제로 이루어지는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헌법의 정신은 자신의 권리와 더불어 타인의 인권을 존중해야할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기가 파란색, 흰색, 적색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것이 있다. 붉은 색의 색이 제일 강렬한 것은 바로 박애정신이 자유민주주의적 정신을 가진 시민의식이란 점이다. 당통에서 보면 주요인물은 국민공회와 그들의 라이벌이나, 대중사회를 보면 프랑스혁명 당시 많은 사람들은 무지했다는 점이다.

 

계몽주의적인 요소가 지금도 21세기 한국과 미국, 유럽 등과 같은 많은 국가에서 적용된다.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 정치제가 바로 18세기에서 다 만들어진 정치적 체계이다.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에서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초점이다. 그러나 막상 장 자크 루소가 누군지 혹은 그의 서적을 읽어본 자는 얼마 없다. 당시 시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이자, 근대 민주주의 아버지, 심지어 마르크스와 같은 혁명가의 아버지 역시 루소다. 괴테는 손에는 셰익스피어지만, 머리에는 장 자크 루소였고, 루소를 알려면 칸트를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계몽주의사상에서 계몽주의 철학가이자 계몽주의를 비판한 루소에 대해 본다면 칸트의 말처럼 계몽은 누군가 깨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깨어 나오는 것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을 지지한 파리 시민들은 후에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에서 가장 훌륭한 병사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21세기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넘치던 로코코와 같은 탐미주의 내지 낭만주의가 지나간 시절이나, 아직도 계몽주의 사상가에 의해 빚을 지고 산다. 그런 21세기와 당통이 죽던 18세기는 220년이란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의 유명한 문구 중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전체주의가 되기 좋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루소는 현대에서 좌파와 우파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사상가이면서 열렬한 비판이 되는 사람이다. 중간이란 기착지점이 없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민주적 자유주의 내지 정치적 자유주의는 이성에 의해가 아니라 이성의 너머에 있는 인간의 본질에 의해 지배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국민 각각의 권리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이 또한 없다. 그래서 민주정이란 이름은 모순의 굴레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정치체제다.

 

<당통>에서 왕정정치가 사라져도 국가는 존치되고, 타국의 위협이 있기에 국가적 체계는 필요하다. 이때 민주정이란 이름은 민중을 하나의 역사적 주체로 등장시켰으나, 주체의 등장은 표면이지 심연의 세계까지 따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여전히 인간의 피를 마시고 살아가고 있다. 피라는 것은 반드시 단두대 아래에서 목이 잘려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체계의 근원이 되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그 자체에 도달하기 과정에 너무 많은 사회적 모순과 인습을 청산되는 그날까지라는 것이다.

 

당통의 죽음은 바로 그런 프랑스인권선언문에서 주장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신의 죽음으로서 인간의 삶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통의 죽음을 진정으로 아파했던 이는 당통을 보낸 로베스피에르였다. 그만이 진정 혁명의 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당통>은 매우 사실주의적인 영화다. 왜냐하면 실제 있었던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을 토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심리적 요소나 실제 했던 행동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망정 그들이 진짜 프랑스대혁명을 이룩하면서 사라져간 존재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화는 그런 비극적인 운명을 노래하는지 처음 당통이 파리의 성문으로 들어올 때 광장에 놓인 단두대가 보인다. 저 단두대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이 잘려나갔는가? 다시 단두대는 영화 중간쯤에 보인다. 당통의 운명이 저기에 달린 것처럼 말이다. 당통이 단두대 앞에 나갈 때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이상한 소음과 군중의 아우성이 들린다. 그의 죽음은 왠지 모르게 싱겁게 끝난다. 처형자에게 “나의 목을 자르면 군중에게 보여죠. 나는 그럴 자격이 있어.” 라고 말하는 그의 대사는 왠지 아픔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안고 홀로 죽음을 임하는 그의 죽음은 비극적 미학의 완성이었다.

 

그가 단두대의 널빤지에 일자로 눕힌 순간 단두대의 칼날은 무거운 소리를 내고, 당통의 목이 잘리자 피가 뿜어 나오며 아래 짚단에 피가 쓰며들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위대한 혁명가의 피를 마시며 성장하는 것이다. 피를 마신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당장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 피와 더불어 또 다른 피를 함양하면서 큰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지금 그 모습을 만들기 위해 단두대는 20세기까지 존재했다. 국민공회가 주관한 혁명재판에서 자기가 만든 혁명재판소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당통으로서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당통은 본래 부유한 법조인으로 부르주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로베스피에르의 경우 삼부회에서 부르주아 대표인물로 나가고, 프랑스 왕정의 제정상황을 비판하며 입헌할 것을 주장하고 그것이 되도록 선언한 테니스코트선언이 유명하다. 이후 프랑스 왕정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고, 루이16세와 왕비인 마리 앙투와네트는 1799년 도주혐의 및 반란협의로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들은 장 자크 루소가 살던 시절에 그를 비웃었지만, 루이16세가 죽을 때 “내가 죽는 이유는 루소와 볼테르 때문이다.”라고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국민은 자신의 국가를 배신하지 않아야 하는데, 루이는 그것을 배신하여 프랑스공화국의 국민이 아니므로 죽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정식적인 재판보단 형식적인 재판을 거치고, 당시 루이16세를 죽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으나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루이16세는 죽고 만다. 사실 루이16세는 포악하지 않았고 오히려 심약했으며, 국민들의 생활을 걱정했다. 하지만 개인의 영향과 더불어 사회구조적인 흐름과 더불어 주변 정치적 영향에 의해 죽은 것이다. 그러나 왕비와 귀족들의 사치와 부정축재를 억눌리지 못한 그의 실정에서 죽음의 회피란 어렵다.

 

영화 <당통>은 당통의 죽음만 아니라 프랑스대혁명에서 거치는 한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상징적인 요소 즉 왕권을 올리기 위해 성직자들이 신이 왕에게 권력을 준 왕권신수설이란 이데올로기 해체에서 다른 이데올로기로 대체되는 지점이 나온다. 로베스피에르가 화실에 가서 옷을 입고 손에 올리브 잎이나 혹은 지팡이를 들며 상징적 요소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나 혹은 구체제나 상징은 필요하다. 상징을 상징하기 위해 만드는 상징적 요소나 혹은 상징적 요소를 해체하기 위해 필요한 상징이 필요하다.

 

기술과 문명의 진보와 달리 인간의 이성과 윤리적 요소는 진보하지 않음에서 이런 역사적 굴레는 피할 수 없는 업이다. 영화 <당통>은 그런 역사적 비극을 하나의 희극적 요소를 부여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18일>에서 “역사는 2번 반복된다. 1번은 비극으로 1번은 희극(소극)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프랑스대혁명에서 비극적으로 루이16세는 불운한 왕으로 비극적으로 죽고, 당통도 루이16세처럼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비극적으로 죽는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은 비극이어야 하지만, 하나의 소극으로 되어버린다.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만들어버린 선택에 자기발목을 잡고, 자신의 목을 자르는 결과가 된다. 강성적이나 그래도 청렴한 로베스피에르의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하나의 파시즘에 이르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소극에서 다시 비극과 같이 끝나는 것은 그도 자신에 죽음에 대해 당통처럼 무력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브뤼메르18일까지 자코뱅당이 선택한 정치란 부정부패의 연속이었다. 지롱드파와 같이 무능한 왕정을 지지한 세력과 다름없는 바가 된 것이다. 영화 <당통>은 당통의 죽음은 죽음조차 뛰어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느낄 수 있다. 당통은 그렇게 죽었지만, 당통과 같은 죽음은 반복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생각하면 우리나라 역시 당통과 같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코미디 쇼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당통에서 가장 갈등이 되는 것은 당통과 데물랭이 운영하던 신문사에 대한 폐간과 억압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국민공회의 전제주의 정치를 비판하는 것을 감추는 것에서 혁명은 끝이 나고 있었다. 공화국의 기초에서 우리도 이런 모습이 그 당시의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어디선가 역사는 계속 되풀이 되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당통의 죽음>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남청수.김성희.최남도 옮김 / 이후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책을 잡게 된 동기는 <스펙타클의 사회>를 저술한 기 드보르를 검색하면서이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감독이며, 사상가며, 선동가이다. 그는 최후의 아방가르드운동의 마지막 주자였다. 그가 속한 KOBRA는 1970년대에 해체되면서 이 세계에서는 아방가르드 운동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입방정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으며, 스펙타클이란 용어는 심심하면 광고나 미디어 내의 쇼 프로그램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등에서도 튀어 나온다. 생각하자면 정확한 의미나 용어를 모른 채 마구 이 단어들이 남발되고 있다.

 

드보르가 추구하던 상황주의자처럼 살아가지 않지만, 그가 제시한 상황주의적인 판단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조차도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고리로 연결되었다는 점을 말이다. spetacle이란 용어는 이미지가 매개가 된 사회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이 세상(그러니깐 하다못해 본인의 집에 나와 길가의 도로를 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은 그야말로 스펙타클이란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 지역은 도시라는 거대한 문명과 산업이 밀집된 공간이다.

 

이제는 점차 바뀌어 도시는 산업화에서 탈산업화로 이양되고, 대신 금융과 서비스로 대체되고 있다. 그리고 산업화가 밀려난 비도시인 농촌지역이 서서 도시화가 되어가고 있다. 산업활동과 더불어 인간은 인간 스스로 자신과 자연을 파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점을 염두 하면 앤디 메리필드의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는 도시와 인간, 그리고 그 곳에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마르크스 내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야기로 통해 어떻게 우리가 도시를 생각해야하는지 알려준다.

 

먼저 이 책은 단순히 맑스주의 즉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다루기보단 마르크스주의로서 도시라는 공간에 살던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상과 삶, 그리고 거기서 얻어낸 도시라는 기능과 현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정체된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우리 인간과 도시를 비교하면, 도시는 정형적인 건축물과 시설물이 존재하는 곳이나, 그 도시 안에는 인간이란 유동적인 존재가 있다. 따라서 도시는 고정적인 존재고 인간은 유동적인 존재다. 하지만 고정적 존재는 유동적 존재를 담아두는 매체이다. 따라서 인간의 유동성을 고정성으로 바꾸어 버리고, 인간은 건축물이란 고정성이 존재하나 건축물의 양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시켰다.

 

즉 고정성과 유동성이 서로 변화를 주는 변증법적인 요소에서 도시란 것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그들의 삶과 흔적을 찾는 저자와 다시 저자의 서적을 읽고, 그 서적을 보고 생각하는 나로 통하여 고정성과 유동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선 나는 최근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했다. 인간의 유동적인 흐름은 고정적인 지리와 자연에 영향을 주며, 그 영향을 받은 지리와 자연은 도시적 기능을 갖추면서, 인간 자체를 도시 안에 가두어 버린다. 내가 살던 곳은 섬과 육지로 교량으로 연결된 곳에서 육지와 많이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도로가 확장되면서 차량의 이동이 증가되고, 뒤쪽의 산을 밀게 되면서 아파트단지가 형성되며, 집 근처에 큰 가게가 생기면서 생활환경의 질이 하락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문화적 구조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그 사회의 경제적, 환경적 조건을 보므로, 내가 살아가는 동네에 대한 변화는 결국 도시와 인간에 대한 관계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일상생활의 변화에 대해 내 자신이 느꼈다면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와 만나다> 역시 그런 변화를 당시 사람들을 지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만일 어떤 도시나 다른 국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3가지의 장소로 가보라고 했다. 장소 1개소는 기억나지 않으나, 1개소는 도서관이고, 다른 1개소는 시장(market)이란 곳이다.

 

흔히 시장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며,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시장의 공간성으로 통해 그 사회의 커뮤니티와 사람들의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이란 것은 누가 일부러 만들어준 곳보다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의 집합장소다. 그렇기에 시장이란 곳을 알아가는 것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치관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며, 삶의 질까지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강력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예전에 읽어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이라는 도서였다. 호크 하이머와 아도르노, 하버트 마르쿠제 등 다양한 학자들이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인문학자로서 어떤 삶과 어떤 학문을 했는지 알려주는 가이드역할을 맡은 도서였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고대 카빌라의 신비와 마르크스주의를 합친 발터 벤야민을 보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미 <문예이론>과 <모스크바 일기>로서 접한 인물이었다. 그가 본 도시의 환경은 매우 특이하다고 할까? 특히 국내 미학자인 진중권 교수가 제일 먼저 미학으로서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벤야민이다. 기존에 예술적 대상이 사물 즉 조각상이나 그림이었다면, 영상복제가 일어난 시대부터는 영화로 바뀐 점과 그것이 아우라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점이다. 절대적인 하나가 아니라 복제품들이 오히려 원래보다 더 원래 같은 느낌을 주는 simulace의 도래에 벤야민의 사상은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벤야민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이던 라시스란 여성을 만나면서, 그녀에게 빠진 후에 그녀가 살던 모스크바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벤야민은 자신이 러시아에서 가면서부터 오기까지 일기를 적었으며, 그 중에 대부분이 라시스라는 여성에 대한 자신의 관찰과 감정이었지만, 한편으로 러시아의 모스크바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도시의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가득했으며, 거기에는 러시아 전통인형과 장난감으로 가득했다. 벤야민은 그런 시장에 있는 사람들에 취했으며, 어린이와 같은 감수성으로 러시아 전통인형과 장난감을 사서 가지고 가는 내용을 보았다. 물론 배고픔과 추위는 언제나 러시아 사람들에게 큰 걱정이었으나, 적어도 시장에는 인간의 생동감이 살아있는 것이다.

 

벤야민이 이런 관찰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에서 다시 돋보이는데, 내가 이때까지 접하지 못한 개념 이른바 파사주라는 것이 튀어나온다. 프랑스 파리의 19세기와 20세기에 존재하던 건축물 양식으로 거대한 유리천장을 거리를 둘러싸며, 그 거리 안에는 술집, 옷집, 아틀리에와 같은 상점이 입주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는 상업적인 흐름을 따라 가게만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창녀와 포주, 그리고 불량배들이 함께 숨을 쉬던 곳이었다. 모든 인간들이 다양한 얼굴로서 돌아다니며, 파사주라는 공간은 마치 거대한 구경거리를 주는 재미난 공간이었다. 보들레르의 산보자라는 댄디처럼 산보자들은 거대한 구경거리를 지닌 이 파리의 파사주를 돌아다니면 인생의 낙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일단 파사주 안의 가게들은 상점과 더불어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원래 전통적인 수공업자 내지 또는 상점을 운영하는 가게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안에 잠을 잘 수 있는 생활공간이 있었다. 즉 경제활동과 가정활동이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동일한 공간이었고, 생활공간이 있으면, 당연히 그 생활 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상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거리는 하나의 유기체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거리를 중앙으로 두고 양 옆으로 때로는 골목으로 이어진 상가들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마주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보들레르의 산책이 이어지는 길가에서 자리 잡은 상가들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 내지 혹은 18~19세기의 유럽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의해 변혁되고 있었다. 토지가 대부분 몰수당한 농민, 대규모공장에 의해 몰락한 수공업자와 영세자본가, 그리고 도시에 사는 가난한 프롤레타리아의 자녀 등이 끊임없이 도시에 몰려들고 그 주변을 배회했다. 그래서 초반의 도시는 냄새로 가득하고 쓰레기가 즐비하며, 많은 사람들이 타락해갔다. 18세기 낭만주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가 그토록 동경하던 파리에 갔을 때 그에겐 열광과 희망의 이름 대신 실망과 회의감이었다.

 

인간의 생활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다. 루소가 지적하다시피 사유에 대한 지나친 차이는 인간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그것이 인간의 자유에 억압을 준다고 했다. 물론 서적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이나,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의 발견자, 루소>처럼 루소는 마르크스의 사상적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만약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읽는 순간, 머리에서 번개가 내려꽂히는 기분을 것이다. 두 책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유사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루소가 보던 파리라는 도시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영국에서 보던 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르크스는 독일 출신이나 그의 정치적 운동 때문에 프랑스와 벨기에로부터 추방되어 최후의 망명지인 영국 런던에 안주하게 되었다. 그는 런던에 있는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면서 <자본>을 집필하였으며, 도시라는 공간에서 노동자의 모습을 보았다. 도시라는 곳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권력자들의 왕궁이 있는 곳이라면 자본주의 이후로는 빈민과 창녀의 소굴이었고, 착취의 악마가 사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 매력은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문화적 인프라가 있었다는 점과 인간들의 밀집소란 점에서 새로운 모험이 있기도 한 곳이었다. 마르크스 친구인 엥겔스는 멘체스터의 밤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역동성을 보았다.

 

도시는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병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생기도 있었다. 아무렇게 만들어진 건물들이 여기저기 생기면서 사람들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한국에서 소문난 맛 집과 유명한 가게는 대로변에 있는 곳이 아니라 대부분 골목 사이에 있는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했다. 그런 가게들이 대규모로 신축하여 큰 거리로 나오게 되면 그때의 그 맛이 사라지는 마술과 같은 일들이 생긴다. 인간의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은 단순히 음식재료와 조리방법으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골목들이 이어진 시장에서 인간의 다양한 문화가 생기고, 서민들의 이야기가 꽃 피운다.

 

그런 공간을 없애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공간을 없애는 것과 같다. 가령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는 전형적인 관료주의로서 프랑스를 통치한 독재자로서 그의 세력 중에 오스망 백작은 파리의 거리를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하는데, 먼저 기존의 파리상가들을 철거하고 거기에 거대한 도로와 그 도로 주변에 거대한 건물, 공공시설, 상징물 등을 집어넣는다. 파리의 거리가 파리시민의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 상징적인 도시정비는 거리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을 변방으로 내몰게 되었고, 일을 하는 가게와 거주하는 가정을 분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현대에서도 가정이 상가와 같이 겸용하는 가구도 있지만,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실태다. 그런 이유는 대규모 자본유입으로 통한 공업화와 관계가 있다.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서 많은 집들이 필요했다. 그들을 가두는 것으로 통해 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것은 어느 순간 노동자를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그 노동자로 통해 이윤을 내려고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감옥이 필요했다.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처럼 감옥은 학교, 공장, 직장 등만이 아니라 주거시설도 역시 감옥이 되어야 했다.

 

대규모 단지 아파트를 가보면 인간이 사는 공간과 형식이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같은 평수와 같은 방 구조, 같은 경치까지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집은 마치 죄수번호가 새겨진 감옥처럼 규격화되어 버렸다. 아파트라는 대규모 집단주거단지는 이웃이 옆에 있어도 이웃보다는 남으로 대해야 했다. 파사주처럼 거리의 건너편에 있는 가게사람을 볼 수 있는 낭만적 요소도 제거되었으며, 아파트 안을 보는 것은 개인의 영역에 대한 침해였다. 이런 감옥과 같은 아파트계획은 노동자를 수용하기 좋은 공간이었고, 그들은 단순히 노동시간만 노동하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 외에도 노동하게 되었다.

 

드보르가 제시한 스펙타클처럼 TV나 미디어는 곧 대중문화로서 노동자들의 생활에 침투하고, 그들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만 생각하게 유도했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던 시장과 달리 아파트문화는 그렇게 획일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아파트단지 생활을 위해 대규모 마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시장은 대규모마트로 인해 점차 소멸되어가고, 대자본가들은 아파트단지로서 자신들의 노동자를 가두고, TV로서 사유의 전환을 막으며, 대규모점포로서 또 다시 이윤을 얻는다. TV라는 것은 상품이 이미지라는 것으로 통해 전달되므로 TV시청은 휴식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이런 프롤레타리아 부류가 도시중심에서 살다가 도시 외부로 추방되면서 부동산 경기는 치열하게 뛰어오르며, 부동산 투기로 한 몫을 노리는 부류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부동산이 참 걱정인 이유는 보통 한국인들은 아파트를 전세 내지 구매하면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일단 자신이 구매한 집의 평균 수명이 30년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30년을 살고 난 후에 집을 이동할 때 재건축계획에서 그 재건축되는 집과 자신의 집의 가격 차이를 보면 절대 100% 이내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도 주택을 소유하고 것은 70%가 되지 못한다. 최근에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 여전히 재건축현장은 늘어나는 추세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은 늘어가는 반면 그 집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가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이른바 부동산에서 내 집은 비싸게 팔고, 남 집은 싸게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심리가 계속 자극하면서 부동산에 동반되는 화폐유통은 엄청난 것이다. 이미 한 사람이 10년 동안 벌어도 집 구매가 어려운 현실에서 도시의 착취는 바로 주택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대규모산업단지 있는 곳에 노동자를 오게 해놓고, 집을 안정적으로 제공하지 않을 경우 그 지역은 반드시 큰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지역의 산업단지가 사라져도 문제가 된다. 실직자의 대량생산은 그 지역의 상권을 모두 절멸시키는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시라는 것은 결국 유기적인 존재이나, 그 도시의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적 기능에서 도시계획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가? 그래서일까? 최근 환경경제학자의 강의를 듣는 도중 도시의 생태적 기능을 부여하고, 도시의 공간이 자연적인 요소를 되돌려 인간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도시계획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대단지 주택이나 자연적인 조경을 나두고, 건축배치는 직사각형으로 나열하여 도로로 중간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중앙지역은 대규모 공원과 문화시설을 설치하고, 그 중심으로 원형으로 건축물을 배치하여 그 안에는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공원과 문화공간을 향유하고, 부모들은 공동그룹을 구성하여 서로 음식을 구매하거나, 아파트단지를 운영하거나, 아이들의 학습과 놀이 프로그램을 개선하기도 한다. 기존의 도시에서 아파트라는 곳은 감옥과 같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도시적 기능을 다른 식으로 보완하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협동조합이란 기능은 자신들의 주거지역만이 아니라 그 주거지역이 형성된 지역까지 확대되어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공간이 형성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런 일들이 국내에서 당장 실천되지 않지만, 그런 기능이 어느 정도 중요성을 보는 것 같다. 도시의 지역주민이 만든 커뮤니티는 그 지역사회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특히 범죄나 사고로부터 예방해 줄 수 있으며, 생활환경의 개선대상은 소외된 이웃까지 혜택을 볼 수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둘러싼 도시에 인간의 마음 역시 삭막하게 변해간다. 인간의 비인간화, 그것을 눈치조차 챌 수 없게 하는 미디어, 드보르가 주장한 스펙타클처럼 도시의 잉여적 존재조차도 도시에서 당위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도시가 팽창하고 확장되며 건설되기 바란다. 이 책에서 (분명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서적이지만)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 나온 문구를 인용한다.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점심 먹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맞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중에 잿더미 위에서 그 점심을 먹는다.”, 망각의 동물인지 아니면 현실을 볼 수 없는지 또는 보려고 하지를 않은 것인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적어도 가족주의라는 현실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그 가족주의가 자신의 아이의 목을 옭아매는 것은 이해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자본력을 가진 자들은 바로 그 가족주의야 말로 완벽한 사업의 밑천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에 회사에서 휴가를 얻어 1박 2일로 서울 및 경기도 일원에 머물고 이제 집에 내려왔습니다. 휴가를 내어 서울로 간 이유는 2014년 SICAF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개회식은 화요일 22일에 개최되었으나, 사무실 업무 및 지방에 사는 이유로 23일 학술세미나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당일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이번 주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미래였습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미래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기존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국내 상황은 그저 아이들을 위한 오락이나 또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그런 취미생활과 여가생활에서 만화,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터넷에서 게재되는 웹툰, 문학적 요소와 만화적 요소를 합친 라이트노벨, 그리고 게임 등이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의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 수시로 웹툰을 즐길 수 있으며,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즐깁니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기능에서 더 확장하여 카카오에서 게임을 실행하므로 우리 일상생활에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 및 웹툰은 깊숙하게 침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영상은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영상이므로 아무래도 21세기 만화 애니메이션의 영역은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시장형성과 소비자 및 대중의 인식, 그리고 정부의 법적 행정적인 규제가 총괄적인 문제가 있어서 개선이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조금 의미 있던 분야가 많았습니다. 애니메이션 부분에서는 앞으로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실시간적인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발제자의 발표에서 제가 판단하기에는 발터 벤야민이 제기한 파사주적(술집, 아틀리에, 상점, 유흥가들 섞인 지붕이 연속적으로 연결된 건축물)인 파리의 거리를 말하며, 산보자란 유유히 거리를 돌면 그 거리의 즐거움을 즐긴 사람들이 앞으로 인터넷과 극장을 통해 유유히 삶의 유희를 즐긴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애니메이션이란 것이 단순히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겠죠.

 

미디어라는 매체에서 애니메이션은 이미 영상과 소리를 동시에 내포하므로 이 멀티미디어적인 요소가 대중사회에 큰 역할을 하고, 실사영상과 애니메이션영상의 구분이 해체되면서 영화 자체가 애니메이션처럼 되는 사례가 허다하죠.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미디어라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인 권력이 반영되기에 하나의 프로파간다라는 선전행위로 이용될 수 있죠. 특히 애니메이션의 경우 과거 만화영화로 만들어질 때 <똘이 장군> 같은 매카시즘을 어린이에게 강제로 전달하는 방법이 있었기에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만큼 효과적인 매체는 없을 것이란 봅니다.

 


이런 점에서 폴란드 예술애니메이션 감독인 마리우스 빌친스키의 강의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분의 작품을 보며 너무 난해하고 어렵다고 느꼈지만, 기본적으로 느낀 것은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자식이 부모의 이기심에 의해 희생되고, 그런 모습을 영화를 보고 나오는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영화로도 보면서도 각인하지 못하고 하나의 쇼로 여기는 스펙타클의 사회가 존재했습니다. 이미지가 매개가 되는 스펙타클의 의미처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역시 이미지로서 매개하니 그것이 대중사회에 큰 지배력은 주는 것 자체가 스펙타클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 만큼 실험적인 예술애니메이션은 기존 관성적 인식을 가진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마리우스 빌친스키 감독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추천하신 작품 중에 마르쟌 사트라피의 <페르세 폴리스>와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이더군요. 저는 전자의 작품은 만화책으로 보고, 후자는 애니메이션으로 보았습니다. <페르세 폴리스>는 이란 여성인 마르쟌 사트라피가 겪은 일을 보여주는데, 이란이란 국가가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했으나 중동전쟁과 구시대적인 이슬람문화로 인해 평화가 무참히 부서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바시르와 왈츠를>는 1982년 이슬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마리우스 빌친스키의 앞으로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바로 대중적 재미와 오락만이 아니라 위와 같은 우리가 생각해야할 점, 앞으로 세상의 문제점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술에서 만화는 제9의 예술이라는 것이고,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같이 제7의 예술이어야 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SICAF 행사 이외에도 24일 오전에 방문한 단원미술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특별기획전이 진정 예술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부산․경남지역만화작가 및 웹툰작가분들이 이번에 기획전에 투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안산은 처음이고, 안산에서 집에 오는 시간 역시 길었지만, 그 시간과 고생은 찾아간 보람을 생각한다면 매우 의미 있게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전시회 가면서 눈에 띈 것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그림이기도 했으나, 박재동 화백과 조관제 화백의 작품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로 작가분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주셨고, 특히 박재동 화백께서는 세월호 희생자 학생의 얼굴을 그려주고, 그 옆에는 부모형제분들이 직접 편지로 적은 글이 새겨져 있더군요. 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참 답답했습니다.


 

 


저는 아직 세월호 추모와 관련하여 추모하는 공간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현실의 모습과 단원미술관 하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서 과연 이 문제가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전시한 그림 중에 인상 남는 것이 518의 비극을 차용한 그림이었습니다. 몽둥이로 어느 청년의 머리를 때리려는 군인, 이미 34년이 지났으나 그때의 악몽이 지금도 나타난다는 저 유령과 같은 모습에 소름이 끼치더군요.

 

올해 4월 저도 처음 광주 망월동에 가서 그 희생자들의 흑백사진을 보았습니다. 아직 초등학교조차 가지도 못한 어린 아이의 흑백영정이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도 있었습니다. 2011년에 돌아가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남영동>이란 수기를 읽어보면서 그때 광주의 비극을 보면서 무서웠습니다. 그런 기억이 그림 1장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 듯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몇몇 방문자분들도 있었습니다. 옆에 계신 어느 여성분은 손수건을 눈물을 훔치며 보고 있었으며, 어떤 소녀는 그림과 그림 사이의 하얀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서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아마 이번 희생자의 가까운 사람이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나 봅니다. 마리우스 빌친스키의 감독 말이 생각난 이유가 바로 애니메이션도 그렇지만 만화 역시 이런 사회적 문제를 다룬 것으로 만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장르가 하나의 예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할 수 있었지요. 벽에 걸린 그림을 보러 가는가? 아니면 그림이 걸린 벽을 보러 가는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후자가 강하겠죠? 만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마치 어린아이들 취급하거나 또는 시간 때우기 식으로 여기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술이란 것은 삶을 빛이 굴절되는 것처럼 보기에, 현실의 비극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은 점에서 만화예술은 바로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강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든다고 여깁니다.

 

웹툰과 관련하여 최근에 생각나던 작품은 박운음 작가의 <노공이산>이었습니다(그 분이 디자인한 4주기 노란티를 입고 봉하마을에서 몇 번 일했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그분의 말씀처럼 자신은 우공이산을 노공이산처럼 칭한 것처럼 상당히 기억 남는 웹툰이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원진 레이온 사건을 잊을 수 없더군요. 신경이 마비되어 온 몸이 마비되어 가는 노동자 앞에서 무력한 그 분과, 그 분을 바라보는 노동자의 어린 딸, 웹툰이란 것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생각지도 못했지요. 5월의 아픔도 가시기 전에 4월의 비극은 너무나 충격적이더군요.

 

 



만화와 웹툰이 사실 단순히 재미를 넘어 그 표현적인 방법이 아주 탁월한 메시지를 주니 한편으로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런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참 답답하더군요. 어째든 세월호 추모 특별기획전 준비하신 분들 수고했고, 저번 부산만화연대 모임에 가서 만화가가 아니라서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전시작품 중에서 제가 아는 분과 그 날 알게 된 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많이 반가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생각하는발 2014-07-25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서 서울 올라오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만화 사랑은 만애비 님을 따를 자 없을 것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7-25 08:19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SICAF 교수님 중에 시계, 반지, 목걸이, 핸드폰 바탕화면과 엑세사리까지 디즈니이신 분도 있습니다. 연세가 60대인데 눈빛은 20대 청춘입니다!! 멋집니다!!
 

<꽃이 피는 첫 걸음>이란 작품은 본래 TVA로 나온 애니메이션으로 이번에 감상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꽃이 피는 첫 걸음>은 아직 킷스이소 여관이 폐관 이전에 일어난 일을 구성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주인공 오하나의 외삼촌인 시지마 에니시가 카와자리 타카코와 결혼 후에 일일 것이다. 시기적으로 킷스이쇼 여관이 폐관 이전에 일어난 일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그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두사람의 결혼과 더불어 TVA에서는 어느 이벤트가 발생한다. 그것은 예전에 오하나의 외할머니집에서 나온 어머니 사츠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킷스이쇼의 일을 도와주던 때다.

 

TVA 마지막화를 보면 어머니와 할머니는 서로 마음속으로 깊은 응어리를 맺고 있으나, 그 나름대로 서로를 이해해주는 모녀로서 등장한다. <꽃이 피는 첫 걸음>을 처음부터 보면 알겠으나, 오하나의 어머니인 사츠키는 집안일에 영 서툴며, 일이 바쁜 관계로 오하나를 혼자 내버려둔 채 계속 밖의 일에 몰두한다. 게다가 첫 화부터 사츠키의 애인이 빚으로 인해 오하나를 더 이상 맡을 수 없어서 시골에 있는 킷스이쇼에 보낸다. 하지만 문제는 킷스이쇼에 있는 가족들은 오랫동안 서로 교류가 없었다는 점과 거기에 보내진 오하나는 여관주인의 귀한 외손녀가 아니라 그저 말썽만 일으킨 딸이 낳은 아이에 불과했다.

 

여관에 도착하자말자 오하나는 여관집의 손녀가 아닌 여관집의 종업원이 되어야 했고, 그 속에서 학교친구들과 같이 일하면서 근로소녀로서 살아간다. 작은 공간이나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일상 속에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이다. 드라마적인 요소 즉 Drama라는 비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처럼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란 말과 같이 오하나의 인생은 그저 평범한 편모집안의 여고생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이야기다. 물론 자신만이 아니라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민코, 가정 일을 도우면서 여관일을 하는 나코 같이 다들 일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킷스이쇼(하지만 애니메이션 작화에서는 모두 미소녀지만)이다.

이 전통일본식 여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주인공 오하나라는 존재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의미를 보여준다. 물론 킷스이쇼 여관이 과거의 산물이나, 그 과거 산물인 전통이란 이름을 지키기 위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세상에 따라 같이 동조하며, 지킬 가치는 가지고, 받아들여야 할 가치는 받아들인 것으로서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전통이란 가치에서 우리 역사적인 현실에서 우리는 조선이란 국가가 최후의 왕조국가이고, 전통문화이다. 하지만 조선 이전의 고려나 발해, 삼국시대나 고조선의 문화적인 유산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의 제사문화를 비롯하여 묘소를 산으로 이장하는 것, 어업을 하는 어부가 용신굿을 하는 것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이들 문화가 조선시대부터 있었을까? 조선시대는 유교문화이고, 특히 공자의 유학보다는 주자학이라고 불리는 성리학에 의해 진행된 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문화가 아직도 향교문화라는 것으로 전해지고, 제사문화 내지 전통문화가 조선시대 유교문화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런다고 해도 그 유교문화가 그대로 이어진다고 하면 21세기 민주주의국가사회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통문화는 그 자리에 고인 썩은 물처럼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물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물을 내보내야 한다. 즉 물 그 자체는 흘러도 물을 담는 그릇인 매체는 그대로 존재하는 법처럼 말이다. 아니라면 좀 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도 있다. 그런 과정이 바로 <꽃이 피는 첫 걸음>에서 보인다. 주인공이 오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나, 막상 킷스이쇼라는 공간과 그 공간을 만든 오하나의 외할머니 스이의 모습에서 킷스이쇼는 단순히 스이의 집착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모두의 꿈이 있는 곳으로 승화해버린다.

 

그러나 꿈이 있기에 그 가치가 있기에 마지막화에 킷스이쇼는 폐관하게 이른다. 스이라는 늙은 안주인의 꿈은 자신을 사랑해주던 그녀의 남편, 아니 오하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스이의 남편은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 스이를 위해 킷스이쇼를 열었으나, 병으로 인해 죽고 만다. 남은 것은 스이와 여관 종업원들, 그 공간에서 사츠키와 에니시는 마음의 궁핍을 느낀다. 오하나의 어머니 사츠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소녀였고, 에니시는 누나 사츠키의 그늘에 가려진 마음이 여린 소년이었다. 어머니가 남매보다는 여관에 치중하자, 에니시를 돌보는 것은 사츠키가 되어야 했지만 오히려 에니시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사츠키가 가진 마음속 빈공간에 새로운 바람이 들어온다. 그것이 바로 <꽃이 피는 첫 걸음> 극장판의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TVA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 나온다. 그 사람은 바로 오하나의 아버지 마츠마에 아야토다. 그는 전문적인 사진작가로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킷스이쇼여관에 머물며, 주변의 경치를 한 폭의 사진으로 담는다. 거기서부터 사츠키의 운명은 변하고, 오하나의 탄생이 시작했다. 오하나가 일어로 보면 꽃님이겠지만, 이탈리어로 가족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가족의 탄생에서 꽃과 같은 오하나의 탄생에는 사츠키의 꿈과 눈물이 있던 것이다.

 

작품 초반에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사츠키는 어머니 스이와 갈등을 빚고 있다. 언제나 여관 일만 치중하고, 사츠키 남매에게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어머니, 사츠키는 언제나 어머니에 대해 불만이었다. 공부한다고 하고선 시내에 가서 예쁜 속옷 세트를 사온 사츠키를 냉대하게 대하는 스이에게 사츠키는 자신은 이런 공간에서 그냥 묻히기는 싫고, 자신은 자신의 길을 찾아 빛나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망령을 쫓아가는 것이 어머니라는 말과 함께 사츠키는 여고생으로서 가지는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 공간에서 아야토의 만남은 사츠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게 되었다.

 

사츠키는 이제 18세 소녀, 아직까지 그녀는 퍼스트 키스는 둘째치더라도 첫사랑조차 없었지만, 그녀의 첫사랑은 아야토였고, 아야토가 떠나기 전날 기습 키스를 날린다. 그리고 자신은 사진작가인 아야토 옆에 당당히 서기 위해 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잠시, 아야토는 오하나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된다. 여기서부터 사츠키는 자신의 길이 어머니 스이와 겹치는 것을 알게 된다. 결코 질 수 없다는 심정을 말이다. 질 수 없는 그 무엇인가는 자신의 주변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스이는 남편이 죽은 뒤, 여관을 혼자 이끌어왔다는 것을 사츠키는 알고 있었다.

 

남편을 잃은 사츠키가 오하나를 친정에 맡길 때 바로 어머니 스이가 힘들어도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은 모습을 본 것이다. 덕분에 사츠키는 자기 자신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오하나를 여자 혼자서 키우기로 한다. 남편 없는 여자가 혼자서 돈 벌고 아이 키우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물론 남자 혼자서는 더욱 힘들지만 말이다. 그런 어려운 여건에서 사츠키는 그 빛나고 싶은 것을 찾았고, 또 찾아가려고 했다. 사츠키가 빛나는 모습은 스스로 볼 수 없었듯이 그 빛나는 모습을 유일하게 발견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아야토였다. 그런 사츠키가 아야토가 죽어도 그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다는 것은 아야토의 가족으로부터 아야토의 사진을 발견한 것에 대해 전화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아야토의 예전 사진을 찾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사츠키, 겉으로 보면 어머니로서 낙제점을 받았으나, 사츠키라는 사람으로서는 백점인 인생을 살고 있었다. 자신의 빛을 찾게 해준 아야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하나를 얻었고, 편집자가 된 여자 사츠키였다. 그래서 사츠키는 자신의 어머니 스이가 여관운영에 만사를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사츠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그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있을 장소와 삶의 이유를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는 그 정체성을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성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나 감정과 무의식에 의한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감정보다도 무의식적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정립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이성적으로 애를 혼자서 키우기도 어려운 사츠키나 남편 없이 킷스이쇼를 운영하는 스이나 두 모녀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같은 얼굴을 하기에 서로를 이해하지만 같은 공간에서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같은 얼굴이기에 서로를 보면 자기 자신의 맨 모습을 다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하나가 과거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알고, 외할머니가 만든 여관을 보면서 자신이 그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분하게 여겼다.

 

자신이 스스로 가야할 길을 가지 않고, 오히려 그 길을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쭉 같이 지낸 남자친구인 코이치가 자신에게 고백했을 때, 오하나는 그 대답에 대해 성실하게 답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 사츠키와 할머니 스이는 자신이 오히려 그 길을 찾아간 것이다. <꽃이 피는 첫 걸음> 극장판 <홈 스위트 홈>은 인간 오하나로 통해 보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물론 여정은 오하나 중심으로 진행되어 오하나의 회상으로 어머니 사츠키가 구성된다. 소녀인 사츠키는 자신의 어머니인 스이와 매우 닮아있다. 이와 다르게 오하나는 머리색은 어머니나 느낌은 왠지 아버지와 닮아 보인다.

 

어떻게 보자면 어미니 사츠키와 할머니 스이의 대립성 즉 변증법적인 요소로서 오하나로 인물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오하나는 딱딱한 할머니와 공격적인 어머니보다는 밝고 다정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바쁜 이유로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으나, 사실 사츠키 역시 오하나를 사랑하나, 자신의 무책임한 일상으로서 오하나와의 일상을 지키려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하나는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이해하면서 어른이란 공간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꽃이 피는 첫 걸음>에서 오하나만 아니라 오하나의 친구인 민치로도 알 수 있다.

 

민치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만 만들지만, 정작 어린 손님이나 노인 손님이 오면 그들의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만들었다. 음식으로서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요리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코는 계속 부모님을 돕기 위해 집안일을 챙기고(가계부를 나코가 작성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동생들을 돌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에 힘겨워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착한 딸이지만, 나코의 여동생 마나가 집에서 가출할 때, 나코는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마나의 소풍에 제발 따라가 달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타인의 입장만 보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힘든 부분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어른의 일이기도 하다. 그런다고 인간은 그렇게 <꽃이 피는 첫 걸음>에서 보여준 것처럼 쉽게 어른이 되어가지 않는다(물론 작품 내 주인공은 힘들겠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에겐 어렵지 않다). 단지 보여줌으로서 일상 속에 머무는 우리에게 빛나는 순간이 있고, 어느새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힘들다는 점이고, 그 과정을 넘어도 여전히 힘든 일은 다가온다. 어른이 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단지 어른이 되어가고 어른이 되는 것은 자기 인생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고, 그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해 걸어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