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 (특별한정판) - 요희전기 2, Novel Engine
크레파스 지음, Mx2J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은 <달의 공주와 죽지 않는 병기>를 이은 요희전기다. 일단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하지만 작가인 크레파스라는 인물은 동양철학에 깊은 조예가 있다는 점과 그가 적은 글을 본다면 깊은 조예성과 더불어 부실한 요소도 같이 있다는 점이다. 즉 라이트노벨이란 특성이 경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자적 서사를 가지고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문자서사에 만화나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같은 일러스트를 첨부함으로써 라이트노벨이 만화와 같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라이트노벨의 주요 특성 중에서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은 설정이 미소녀 하렘이란 Cliche이다. 주인공 남자 주변에 많은 여자가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많은 여자들이 그에 대한 애정공세를 멈추지 않는 것은 내키지 않다. 왜냐하면 문학의 시작점은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신화(神話)란 신이란 존재를 내세우나, 그것은 정말 신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적인 요소에 잠재된 욕망 내지 억압심리로부터 탄생한 캐릭터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만큼 좋은 현대적 신화는 없다. 그 캐릭터는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나 남이 하고픈 이야기를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처럼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진 이야기이므로 누군가 거기에 자신 내지 혹은 남의 이야기를 끼워 넣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자신의 욕망과 억압에 비롯된 하나의 왜곡이라면, 그 왜곡되어버린 이야기가 타인도 역시 같이 빠져갈 수 있다. 그래서 미소녀 하렘 계통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그런 자기 현실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갇혀 자위하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다고 이런 장르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방식이 하나의 대세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점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고, 너무 부족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적당한 선에서 여러 가지의 종류가 다양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야 말로 문화콘텐츠로서 라이트노벨 장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하렘 요소 내지 또는 미소녀 캐릭터와 이벤트적인 요소에서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은 조금 지나쳤다고 할까? 아니라면 부드럽게 이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흔히 성적 묘사에 대해 논하자면 문학에서도 충분히 그런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문자서사가 영상서사로 변모될 때 문자서사 안에 있는 베드신 내지 성적으로 강렬한 모습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캉디드가 사모했던 퀴네공드 양은 아직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나 그녀는 무척 순진했다. 하지만 캉디드의 스승인 팡글로세가 퀴네공드 가문의 하녀와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따라하고 싶어 캉디드와 성행위를 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 혹은 20세기 대표적인 소설가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성행위를 나누는 모습이 소설에서 나온다. 그러니깐 단순히 라이트노벨이나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이 선정적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인류가 만들어온 많은 문학에서 성적행위나 묘사 등은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단지 문학에서 그런다고 해도 문학과 만화적 속성이 섞여 있는 라이트노벨이란 특성이 그런 성적 묘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듯하다. 불의 공주라고 불리는 국가 화선의 공주, 유하는 자신이 화선의 황녀이면서도 화선을 떠난 이유는 권력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용병단은 화선에게 고용되었으며, 그 용병단은 월하라는 국가의 1번째 공주인 월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2번째 공주인 월린이 황녀의 자리를 물러받아 레지스탕스와 같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하와 월린의 만남은 서로 적이면서 어떻게 보면 같이 운명을 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문제는 유하가 월하의 국가를 구해주는 대신 월린은 유하의 하녀가 되어야 했다. 유하는 기가 세고 똑똑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나, 그 성격에는 지나치도록 심각한 편집증적인 정신병이 보였다. 유하는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것도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족들이 언제나 피로 물든 권력다툼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 만큼 유하의 삐뚤어진 성격은 월린에게 대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자신의 손가락 하나 내지 혹은 두 개를 월린의 입에 넣는다는 점이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에서 월린이 유하의 손가락이 들어오고 나서 뺀 후의 장면이 책 중간 흑백 일러스트로 나오는데, 그 모습은 마치 여자와 남자가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게다가 월하는 자신의 큰 가슴 위에 자신의 두 손목을 올리고 있을 정도였다. 노골적인 성적묘사가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의 가장 큰 오류이지 않나 싶다. 적어도 이 책은 19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서사적인 흐름을 읽고 세계관과 인물에 대한 갈등과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리뷰의 목적이기도 하나, 적어도 리뷰 한다는 것은 비평적 관점을 배제해서는 안 되므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표지나 일러스트가 다소 여성의 성적인 요소를 부각하여 모에속성을 노리는 것을 두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책 내용에서 그런 노골적인 요소는 좋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Critical한 비평은 독자로서 분명히 생각하고 판단하여 반응해줘야 할 의무인 것 같다. 어째든 책의 내용을 읽어보자면, 이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우선 월하의 국가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 것은 없다. 단지 그들은 위기에 처한 국가이고, 월하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상징성인 월린이 어떤 운명을 겪을지 모르는 작품이다. 월린이 죽거나 또는 유하가 죽거나 혹은 흑록이 죽게 되면 이 작품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그들이 끝까지 생존하여 마지막에 이르러 어떤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스토리텔링의 맛이다. 적어도 이제 주요 인물들이 모였다면, 다른 식으로 보자면 진정한 적과 그 적에 대항할 수 있는 연합세력 및 지원군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향이란 나라의 공주인 수희가 등장한다. 만약 요희전기가 국가별로 공주의 존재를 두고 작품시리즈를 붙인다면 다음 작품은 물의 공주라고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혹은 부록에 나오는 화율의 어머니의 고향은 화령이듯이 꽃의 공주로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 내지 황녀라는 인물을 달, 불, 꽃, 물로 통해 나가는 것은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속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불을 상징하는 화선은 강력한 무력, 달을 상징하는 월하는 신비한 존재(신선), 꽃은 아름다운 자연, 물은 풍요로운 국가로서 말이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은 그 풍요로운 경제대국인 물의 국가 수향의 공주가 나온다. 그녀는 화선에 의해 고국은 멸망했어도, 수향의 상징성이란 수희로서 존재한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에서는 강력한 화선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군자금이 필요하고, 그 군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사람은 수향이란 국가였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법처럼 수향의 군주인 수희를 만나는 것은 화선의 책략이 존재했으며, 유하의 최대의 라이벌인 태화가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유하가 어떻게 하여 화선의 황궁에서 나왔는지에 대해 상세히 나오지 않으나, 단편집인 <작열 & 유하등>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화율의 어머니인 화이는 산 채로 아궁이로 버려져 백골이 보일 정도로 타버렸고, 화율은 유하와 같이 여행 가려는 도중 유하의 수석 호위관의 책략에 의해 죽게 된다. 수석 호위관은 화이의 죽음으로 화이를 존경하거나 사모하거나 또는 측은하게 여기는 이들이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것을 알고, 화율을 꾀어내어 모두 섬멸한다. 그런 수석 호위관의 책략도 모른 채 자신의 배 다른 동생인 화율의 죽음을 모르는 유하는 돌아가면 화율에게 과자라도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하에게 과자를 사주고 싶은 배 다른 동생은 사라지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잔인한 권력다툼의 상처뿐이었다.

 

황궁을 나온 황녀, 그녀가 선택한 용병생활에서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는 유하는 그 누구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흑록에게 말이다. 흑록에게 집착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단지 흑록은 단지 죽을 곳은 찾고 있었다. 삶의 미학을 알지 못하는 흑록, 그는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누군가를 믿는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으며, 남에 의해 배신당하여 상처받는 것조차도 두려워했다. 철저히 자신의 마음에 벽을 쌓는 흑록에게 유하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대화나 상황설정은 매우 좋았다고 보았다. 유하가 명령을 내릴 적에 직접 흑록이 아니라 월린으로 통해 내린 점에서 말이다.

 

만약 단순히 흑록과 명령을 내리는 것과 작전을 위해 대화하는 사이가 되어버린다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사이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월린이 중간에서 중재하던 모습에서 이 작품은 1권에서 삼각관계적인 요소에서 월린이 후퇴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3권에서 어떻게 변할지 혹은 수희와 그녀의 비서인 연서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알 수 없다. 적어도 흑록에게는 유하가 모든 것이란 점이다. 흑록은 1권부터 나오지만 아버지는 월하의 장군이나 전쟁에서 죽고, 자신은 월하가 패배하여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용병 생활하는 내내 망해버린 월하의 백성이란 이유로 무시당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즐거움과 희망을 품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그저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이 흑록의 현실이었다. 그런 흑록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것이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이다. 제목처럼 불의 공주로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흑록으로 통해 인생의 전환점은 결국 자신의 주변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혹은 자신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여정에서 말이다. 부록에서 등장하는 <작열 & 유아등>에서 수향의 고아로 태어나 뒷골목의 이리처럼 살아온 희는 아무런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망해버린 수향, 그리고 버려진 고아, 자신이 주변을 인식할 때 자기가 눕고 있는 침대자리에 어떤 여자가 남자를 안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게를 전전하다 결국 뒷골목의 창녀촌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각종 허세와 거짓, 그리고 도둑질과 싸움질, 그에게 주어진 삶은 항상 피 냄새와 빛조차 외면하는 그림자였다. 화선의 용병이 될 때, 상대 가리지 않고 싸움만 즐겼으며, 전투에서는 미친 듯이 총과 칼을 쏘고 휘둘렀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오직 어깨에 메어진 큰 가방이었다. 그 가방 속에는 이때까지 용병활동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이다. 돈이 가방을 다 채우고 있을 정도니 얼마나 많은 피 냄새를 맡았을까? 그는 사나운 이리였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좋았다. 단지 칼로 심장을 찌르고, 총으로 상대방의 뇌수를 박살내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항상 유령과 같이 잠재되어진 무의식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는 수향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수향에 대하여 원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말 수향에 대해 미워하고 싫다는 것은 그만큼 수향에 대해 마음속 깊이 담고 있다는 것과 같다. 그가 자신의 그늘로부터 나오기 위해서는 수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그는 수향에 대해 겉으로는 부정해도 속으로는 내심 수향에 대한 애증관계에 사로잡힌 것이다. 마지막에 수향의 왕이 도피생활하면서 자기만 편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은거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이때까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수향이 그토록 증오만 하고 살았지만, 그 증오의 정점이 되어야 할 수향의 군주는 오히려 자신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끝까지 화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싸웠던 것이다. 이때까지 그 누구에게 진지하지 않았던 희는 왕이 없는 허물어가는 왕궁에 거수경례를 하고, 그 마을을 침범하는 용병 출신 산적을 치러 간다. 거기서부터 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전쟁이란 공간에서 인간은 자신의 모든 터전을 잃거나 또는 타인의 터전을 모조리 부수거나 빼앗는다. 그런 전쟁이란 정치적 함의가 무력으로 동반될 때 그 모든 것이 악몽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전쟁에서 이때까지 가진 것을 모두 소멸하게 만들고, 혹은 아무 것도 없는 자를 다른 방식으로 채우게 된다. <불의 공주와 반성하는 용병>에서 자신의 길을 찾은 흑록이나 또는 부록에서 보인 희, 그들은 화선에 의해 고국을 잃고, 삶의 가치도 잃었다. 그런 만큼 요희전기에서는 전쟁이란 공간에서 던져진 인간의 삶을 역경과 위기 속에서 보여줄 것이다. 언제나 유하를 믿지 못한 흑록이 유하를 믿을 수 있던 것은 그녀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과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내부의 갈등이 외부의 위기로부터 극복하는 것이라는 Narrative라는 전형적인 서사적 속성은 다음 3권부터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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