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과 제왕 - 문화인류학 3부작 넥스트 3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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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해리스는 몇년 전에 작고하신 저명한 교수님이다. 필자가 마빈해리스라는 문화인류학자를 알게된 계기는 코스프레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코스프레가 왜 식인과 제왕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사회를 만들거나 만들기 이전에도 인간은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다.
고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란 단순히 여흥을 가지면서 이야기하던 내용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우수한 과학기술과 문명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고 살고 있지만, 당시 인간들은 질병, 재해, 기아, 맹수들의 공격으로 항상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받고 있었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거나 혹은 부족한 면이 없으면 인간은 인간 내부 심리적으로 뭔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간절한 소망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고대 인류의 주술행위나 코스프레에 대해 근본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생각든다. 

인간은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항상 뭔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특히 제목 첫부분에 식인이란 말처럼 인간을 먹는 행위는 상당히 위험하고 잔인한 행위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 자체도 하나의 문화로서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부족한 단백질을 인간의 고기로부터 얻고, 자신들의 국가가 아닌 다른 부족이나 국가에 대한 침입과 공격에 대비하거나 혹은 그 다른 국가와 부족에 대해 위협함으로서 자신들의 부족을 지킬 수가 있다. 

또한 국가가 형성되면 국가체계에 있어서 신분이 결정되어진다. 신분은 통치하는 사람으로부터 통치받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요소로 나누어진다. 제왕은 이런 국가체계에 있어서 부족들을 이끌어갈 존재다. 그들은 단순히 부족사회 구조에서 군림하기보단, 그 군림을 하기 위해 막대한 재력과 정신적 에너지를 투입한다. 왕국은 부족장이 통치하지만 그 통치자는 부족들을 이끌기 위해선 부족원들을 어루만져야 했다.

이런 다양한 고대부족과 원시부족에 대한 이야기, 현대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서구인들이 바라보는 원시부족에 대한 편견을 이책에선 올바른 관점에서 해석하여 우리의 사고를 전환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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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상상력
오세정 지음 / 제이앤씨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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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저술하신 오세정 교수님은 필자가 대학교 학부시절에 교양과목을 강의하신 분이다.
예전에 오세정 교수님께 들은 영화이해 수업과 신화에 대한 수업을 받으면서 엄청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화는 우리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이야기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 그 신이라는 존재는 정말 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욕구와 상상력을 동원한 허구적인 인간이란 사실이다.
신화는 신의 이야기가 아닌 어느 지역, 민족, 국가에 대한 집단적인 무의식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신화와 관련하여 그 민족과 그 상상속의 이야기는 뭔가 모르게 비슷한 측면이 많이 보인다. 신화에는 우리 인간이 의도하든 혹은 의도하지 않든 인간 자신의 욕망을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애환,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새로운 주제로 볼 수 있다.  그런 이야기로 통해 현대사회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과 연결, 다양한 이야기로 통한 고전문학에 대한 재미도 같이 느낄 수가 있다.
이책에서는 단순히 우리 신화와 고전만 다루는 게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사고방식과 더불어 이런 고전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문화콘텐츠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우리의 역사와 전설, 민담이 어우러진 서적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인류문화학과 신화학에 대해 조금 공부를 해야하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 학문적인 부분이 갖추어져 우리나라 각 지역의 전설, 민담,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문화관광아이템으로 개발한다면 이 또한 우리 경제에도 자녀들의 교육에도 민족관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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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 - 공산주의 선언 나의 고전 읽기 11
박찬종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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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린 시절 그러니깐 초등학교, 그 당시 말로 국민학교 다닐 적이니 대략 20년 이전인 것 같다. 내가 아직 철없는 아이 무렵 마르크스라고 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한 존재라는 것과 공산주의를 지닌 북한은 엄청난 괴수들이 사는 나라로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어린 시절 똘이 장군과 같은 애니메이션을 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덧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하면서 그 때의 일을 다시 돌이켜보면 뭔가 이상한 것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2010년 가을, 겨울 이때 국내에서는 경기가 이상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물론 어느 분야와 사업은 잘 되고 있으나 어느 분야와 사업은 모두 잘 된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나라 겉으로 보는 균형은 이상 없어 보이나 사실 내적으로 들어다 보면 많은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

참고로 나는 하는 업무가 건설 엔지니어 쪽이다. 주로 대관협의와 관련 보고서를 적기 때문에 관공서 업무를 자주 하는 편이다. 기술력을 가진 엔지니어인 만큼 약간의 전문성을 가진 1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엔지니어 업무를 전국에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뭔가 건설과 엔지니어 계통에서 2010년 후반기로 접어들며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것은 건설 엔지니어 회사들이 재정난과 경기 난으로 큰 고통을 바고 있던 것이다. 그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일상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이런 후유증으로 우리 회사는 일부 직원이 자진퇴사 및 권고해직되었고, 월급도 몇 개월 동안 잠시 감축되었다. 물론 이런 과감한 회사추진계획에 나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당장 회사가 부도가 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미래상을 듣고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중소기업이다. 그런 중소기업들이 우리 회사처럼 뭔가 크나큰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건 비단 우리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는 인원감축에 못 미치는지 자기 회사를 다른 회사에 병합·인수되거나 혹은 아예 부도가 나버렸다. 심각한 재정난으로 허덕이는 업체는 직원 월급이 몇 개월 동안 밀렸다고 한다.

물론 그 고용주는 직원들의 월급을 고의로 주기 싫은 것은 아니다. 주고 싫어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보고 당시 나 역시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있어야 하는가 또는 권고해직 대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물론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번일로 상당한 국내 경제상황에 대한 모순에 빠졌다.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것은 인터넷 신문기사로 주로 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TV에 가끔 긴장감이 나도는 기사나 보도가 나온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이다. 물론 내가 위와 같은 일들을 겪기 전에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그렇게까지 나쁘다거나 부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된 사유가 임금문제. 산업재해, 근로기준 등과 같은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높은 임금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을 하여 국민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준 노동자 부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이렇게 여길 것이다. “회사가 너무 하군”,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지? 그렇게 과격하게 시위할 필요가 있는가?”, “정부는 저런 것을 해결하지 않고 뭐하지?”라고 말이다. 막상 그런 내뱉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그 일을 당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서 방관하는 태도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TV에 시위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주변에 누군가가 해고될지 모른다거나 산업재해를 겪으면 그들 역시 분노한다는 것이다. 물론 감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성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그것은 노조, 사업자, 정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감정적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을까? 


사실 정부기관과 사업자는 기본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을 받은 사람이나, 노동자는 높은 교육수준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모두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사고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는 사업자와 정부기관보다 낮다. 솔직히 노동자들에게 이성적으로 표방하려고 해도 자신들의 지닌 한계점과 또는 높은 교육을 받더라도 정부기관과 사업자들이 서로 도모하여 의견을 나누지 않으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다고 해서 노동자, 사업자 모두 존재하지 않으면 국가경제나 그 당사자들의 경제활동에 큰 문제가 미친다. 그러면 이런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생각해야할까? 이런 모순에 대해 아주 깊고 깊은 사고로 고민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본”을 지은 칼 마르크스와 “자본”을 엮어 책으로 낸 프리드리히 엥겔스였다.

그들이 자본을 출간하기 전에 1848년 “공산주의 선언”을 발표했다. 내가 어릴 시절에 공산주의는 북한과 소련의 정치사상으로 국민들의 눈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는 어긋난 정치이념으로 알았다. 그런데 막상 공산주의의 의미를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공산주의와 전혀 관계없고, 공산주의국가인 북한과도 전혀 관계없다. 마르크스가 원한 이 사상은 노동자를 이 사회의 주인으로 하여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관계를 찾기 위함이지 노동당이 국가정부요직이 되어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에서 개인 자본 소유를 부정하나 막상 마르크스는 개인 자본을 인정했다. 만약 개인이 자본에 대한 소유력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발전할 계기를 상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 공산주의 선언 100%가 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 우리가 생각하고 봐야할 것들이 뭔지를 다시 돌아 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깜짝 놀란 사실이 있었다. 현재 우리 한국사람이라면 “일일 근무시간 8시간”, “아동에 대한 노동학대 금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나이키에서는 개발도상국가 어린이에게 과도한 노동시간을 부여하고 1달라도 되지도 않은 일일임금으로 착취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공은 수제품이라 하여 고가에 팔려 나이키는 엄청난 이득을 본다.
 

나이키라는 회사가 높은 이익을 받는다거나 고효율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단지 가려진 어린아이의 착취이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하면 이상하게 여길지는 몰라도 적어도 9, 10세 되는 아이들을 새벽에 깨워 밤늦은 시간까지 노동시키지 않는다. 이런 가혹한 행위를 하면 상당한 논란이 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있었던 19세기 유럽에선 당연한 관례이었다.

그렇게 마르크스가 주장한 만큼 그는 현실을 뒤엎기 보다는 현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여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이야기로 이 책에서 마르크스가 유럽지식인으로 인정받으면서 마르크스 사상을 따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겼다. 그런데 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보며 마르크스는 자신이 하나의 우상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그저 공산주의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길 바랐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기 자신이 오히려 정치적인 지도자로 되기보다는 올바른 이론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알던 마르크스와 달리 소련과 북한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라고 표방했으나 역으로 국민들을 속인 것이다. 소비에비 연방이 해체 전에 노동자 2명에 국가기관 요원 1명이 붙어있으니 그런 모순이 얼마나 심할까? 그들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라고 했으면서 속으로는 자본주의 국가 이상으로 착취와 탄압을 거행한 것이다.

정말 인간을 사랑하고, 약자 편에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로 통해 이상적인 나라로 만들겠다니 농담의 한계를 벗어나 이미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정도이다. 마르크스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현실을 보았다. 오늘날 내가 혹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어떠한가? 여전히 한국에서 마르크스는 악령으로 통하는 세계다. 그렇지만 막상 악령은 아니다. 그런 현실 속에 여전히 한국에서 노사관계 문제만이 아닌 남녀차별, 지역차별, 빈곤차별, 학력차별, 인종차별 등과 같은 모순이 발생한다.

자신은 그런 차별로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그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막대한 비난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그가 하는 행동들은 차별을 하고 있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는 위선이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가끔 나는 이래 생각한다.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라고 말이다. 그리고 서민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서민과 어려운 이웃은 파업하고 시위하는 사람이다. 물론 대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나 이런 겉으로 들어나는 양심발언과 행동으로 보이는 차별대우는 여전히 이율배반적인 인간, 사회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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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지도 - 세계지성사를 풍요롭고 활기차게 한 핵심 키워드 88
기다 켄 지음, 김신재.심정명.윤여일 옮김 / 산처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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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역사적인 사건과 혁명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서 현대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는 당연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적으로 전쟁에 휘말려 들어 많은 인간들이 죽고 많은 문명이 파괴되었다. 이렇게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매체들은 꾸준이 새롭게 변화가나 막상 문명사회에서 보이는 인간들은 여전히 과거 못지 않은 자기 모순과 굴레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20세기에 걸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초까지 우리가 살아온 그 많고 많은 사건들과 그 사건에 따라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상들은 무엇들일까? 우리는 그런 큰 사건을 겪은 이후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는 분쟁과 갈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나라와 지역까지도 분쟁과 갈등을 우리는 보고 있다. 아니 보고 있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고 있다. 어차피 인간은 모두 각각 다른 조건과 환경 그리고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같은 사고와 행동을 보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이 격동의 세월을 보낸 20세기에는 이런 인간의 사고, 행동, 의식에 대한 담론들이 아주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그런 담론이 오가면서 기존에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누적된 문제, 그리고 지금 생긴 문제, 또한 앞으로 생겨서 발생될 문제 우리는 이런 다양한 문제와 거기에 대한 원인분석 및 대처방안에 대해 끝없이 사고하여 실마리를 풀어 해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지난 20세기 100년 전후로 인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인 영역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담론 사이에는 다양한 관점으로 통해 현실세계를 보자고 했을 것이다. 이번에 내가 본 현대사상지도는 그런 100전후의 근현대사에 등장한 철학, 사회학, 언어학, 문화학, 심리학, 정치학 등 각종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거기에 해당하는 학설과 이론을 소개했다.

특히 그 학설과 이론을 주장한 학자와 학파 그리고 그런 학자와 학파로 통해 어떤 영향을 주고 그 영향으로 인해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하나의 도식화된 표처럼 그려 나간다. 물론 아주 복잡하고 많은 학설과 이론을 단 몇 페이지로 요약하고 소개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책내용 자체로는 그 사상적인 부분을 알 수 있다고 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면서 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좋은 도서이다. 우리가 책을 본다는 것은 그저 막연하게 집어들어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흐름과 순서를 파악한 후에 보는 것이 이해가 빠르기 때문이다. 현대사상지도에서는 그런 흐름을 88가지 목록으로 정해 소개했다. 물론 그런 내용으로 통해 자신이 궁금한 점을 찾아 어떻게 봐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좋은 안내지침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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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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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대사회에 살아가면서 예전에 일어나던 일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할 것이다.
"아니 이미 지나간 일들을 왜 다시 꺼내어 이야기하지? 이미 지나간 일들은 지나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것이 바뀌고 바뀌어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듯이 순간순간 모든 것이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나간 일들이 다시 거론되는 일들을 무엇일까? 지나간 일들은 지나가서 시간이란 비가역성에 의해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과거로 넘어간다. 그런데도 왜 아직도 우리는 고전을 다시금 찾아봐야할까?

그런 의미로서 이 책을 한번 보면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지만 과연 인간 근원적인 부분은 얼마나 변해왔는가이다.  그래서 내가 언제나 생각한 부분이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는 왜 이렇게 계속 되풀이 되고 다시 되풀이가 되어 그런 반복적인 패턴이 되었을까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사건은 하나의 상징성이 되어 통시적인 현상으로 머물러 있다면 그 상징적인 역사적인 사건은 어떻게든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 인간세계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상징을 가진 통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다시금 반복되는 공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으로도 옳지 않은가 싶다.

사랑, 이별, 배신, 우정, 욕망, 전쟁, 인간불평등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우리 세상에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것은 인간 근원적인 문제는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하나의 역사와 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중문화를 본다면 고전이야기나 현대이야기나 구조상으로 별반 차이점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분명 시대, 인물, 배경 등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다르나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별반 차이점을 느낄 수가 없다.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우리가 고전을 통해 지금을 알아가기 보단 고전이 오히려 우리를 두고 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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