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중학생이 보는 인간 실격 - 중학생 독후감 필독선 98 중학생 독후감 따라잡기 (중학생 독후감 필독선) 10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성낙수.임현옥.이승후 옮김 / 신원문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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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기획 중에 푸른 문학 시리즈란 방송을 보았다. 푸른 문학 시리즈란 일본의 유명한 문학가들의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방영한 이른바 영상문학의 개념이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애들이나 보는 그런 유치하고 저속한 콘텐츠로 여기기 쉬우나 사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여 무시하지 못할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푸른 문학 시리즈는 바로 그런 작품성과 예술성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青い文学シリーズ라는 원제로 시리즈 안에는 여러 일본 문인의 작품을 각본을 하여 제작했다. 1번째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人間失格)”, 2번째는 사가구치 안고의 “벚나무 숲의 만개 아래서( 桜の森の満開の下)”, 3번째는 일본 근대문학의 대문호인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こころ)”, 4번째는 카와시마 스미노의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 5번째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거미줄(蜘蛛の糸)”, 마지막 6번째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地獄変)”이었다.

 

작품을 보면 알듯이 다들 일본 문인계에서는 내놓는 작가들이다. 이중에서 나츠메 소세키의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정말 잊을 수 없다. 또한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같은 경우, 마치 문학소설이기보단 차라리 애니메이션 원작을 위한 각본이라고 생각할 만큼 상상력이 거대했다. 그러나 그 문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그는 모습을 버려야 했을까? 추후 인간실격의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 역시 자살을 한다. 죽음이 아니라면 탈출구가 없는 그런 인간이었을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 인상 깊은 점은 달려라 메로스다. 이 작품은 문학소설가 작품을 쓰면서 어떤 연극 시나리오를 적는다. 그런데 이 달려라 메로스는 그야말로 고대그리스에서 보여주었던 비극시와 동일했다. 비극의 주인공 메로스 그는 친구를 볼모로 하여 동생의 결혼식에 참가한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면 왕의 노여움으로 죽게 된다. 죽고 싶지 않은 그의 무의식과 친구의 의리를 위해 죽음을 이상적 가치로 받아들인 그의 고뇌가 그 각본을 적은 작가의 심리와 일치한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나 그 주된 이야기 속에 주인공이 작가가 되어 다시 작품을 만들어 연극으로 보인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나온 것처럼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푸른 문학 시리즈를 보면서 애니메이션 역시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단언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 원작의 토대가 되던 소설을 보면 어떤 느낌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상당히 다른 느낌일 것이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은 이미지로 통한 시각적 정보와 더불어 대사, OST, 효과음으로 통한 청각적인 정보를 동시에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각적 정보와 청각적 정보로 통해 하나의 서사 즉 narrative를 완성하여 거기에 담고 있는 하나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해 문학소설은 이미지의 시각적 정보도 없고 더구나 소리로 통한 청각적 정보도 없다.

 

오로지 문자 텍스트로 통해서만 본인이 이미지를 생각하고 소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서사적 내용을 담은 작품이라도 그 표현방식이 다르면 받아들이는 이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의 인간실격의 스토리는 대략적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이 작가의 사상적 특성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소개서에 나온 듯이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집안에 권력가에 특히 일본 자본주의 가속화와 군국주의적인 활성화로 그의 집안은 매우 번창했다. 대신 번창한 만큼 주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작가인 그인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자기의 집안만큼 아버지에 대해 혐오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인 요조는 아버지에 대해 상당히 배척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중간 작품에 주인공 요조는 자신이 진보적인 가치관도 없었으나, 마르크스주의 청년단체에서 활동을 한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가 자기가 익숙한 세계와 다른 세계라는 점이다. 자기가 있는 세계에는 어떤 패턴에 강제로 해야 한다는 것과 거기에 어울려 맞추는 것이 싫은 요조였고, 가식적인 세계에 가식을 맞추기 싫어하여 더욱 가식적으로 대한다.

 

그냥 넘어갈 것을 억지로 오버를 하고, 그냥 거절하면 되는 것을 싫은 내색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며 말없는 동의를 한다. 특히 그가 아무런 말도 없이 싫어하면서 억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과거에 나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 순수하기에 더욱 더 순수하지 않음으로 보일 수 없는 영혼을 말이다. 그는 아주 솔직하고 순수했다. 너무 순수했기에 할 말보다는 할 말이 아닌 것으로 했다. 누군가에게 가서 의지하다 싶다가 어느 순간 훌쩍 도망친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자기 내부의 이성적 가치에서 합당하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오로지 요조의 안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진실일 뿐이다. 더럽혀지고 싶지 않아 더 더럽혀지는 그의 슬픈 영혼 속에서 그는 정말 인간이고 싶었으나 인간실격이 된다. 무엇에 의지할 수 없는 요조, 그리고 그런 요조에게 빠져드는 여자들까지.

 

요조에게는 여자들의 공간 속에 묻혀 살아간다. 그의 최초의 여자는 어린 시절이다. 그는 아주 잘생기고 지적인 남자다. 게다가 비위 맞추는 것에 길들어진 그에게 남이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금방이라도 그 기세에 따라간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집안의 하녀에게 성적 희롱을 당한다. 그로부터 그에겐 여자라는 존재는 하나의 안식처로 보이기보단 어둠으로 끌고 가는 세계로 되었다.

 

여자에 술, 담배, 수면제, 모르핀까지 그의 인생은 오로지 타락과 정신적 피폐로 얼룩지게 된다. 이 이야기에는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그 진리를 무시하고 파괴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아마도 작가의 심리를 반영했을 것이다. 소화 10년은 1935년,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기 전이다. 소설에서 나오지 않으나 애니메이션에서 요조의 친구 아닌 친구로 나오는 호리키는 처음에 마르크스주의자로 나오나 이후에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간다.

 

이에 반해 요조는 그 세계에 빨려 들어가지 못한다. 자신은 그런 전체적이고 숨 막히는 곳에는 살 수 없었다. 단체생활을 거부하고, 오로지 개인적인 행동을 하는 요조, 그런 주제에 사람을 정말 그리워하는 요조, 그의 절망은 삶에 대한 희망이나 꿈보다는 현실 자체에 대한 무기력한 자신을 혐오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되지 못하고, 자신이 믿었다고 생각한 것은 더 큰 배신으로 돌아왔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운명이고, 그저 자신을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젊은 청춘이었다. 아니 슬픈 청춘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보면 미남자에 예술과 문학까지 두루두루 아는 지식청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지식인에겐 그 세계란 그저 숨도 쉬기 어려운 세계였을 것이다. 강제적으로 억지로 따라야 하는 것이 사회의 규율과 도덕이 되어버린 따분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에 물들어 갈 수 없는 작가와 요조이었기에 더더욱 타락한다. 오로지 타락하는 자신에게서만 자신이 있을 공간이라 여긴 것이다. 작품 마지막에 요조는 정신병원에 갔다가 어느 시골 바닷가에서 늙은 노파의 시중을 받은 채로 살아가나 여전히 약물에 의존하고 살아간다. 27살인데도 40대처럼 보이는 흰머리들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괴롭고 슬펐음을 상기시킨다.

 

부끄러운 자신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 밑에서 눈치를 보며, 아무 의지를 품지 못한 채 죽어간 자신을 말이다. 인간실격을 보면 요조는 정말 겉으로 본다면 인간이하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인간이하로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광인이란 존재는 근현대사회로 들어서며 분리와 격리 그리고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광인은 자시만의 세계를 마음껏 보일 수 있는 하나의 예술, 종교, 철학의 승화자이다.

 

그런 것이 허락되지 않은 세계와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마음이 병들어가는 요조, 그가 단순히 인간답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보다 그가 인간다움을 잃은 채 낙담하는 이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식이라고 보는 것이 정말 상식인지 그것이 도리어 인간 자기 자신에게 독으로 물들지 않은가 라는 의문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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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
손석춘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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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신문과 가난한독자, 이 책은 다소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책이다. 보통 신문의 기능을 무엇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신문(新聞) 그것은 새로운 것을 널리 알리는 도구이다. 지금이야 인터넷과 TV, 전화, 휴대폰 등의 미디어를 접촉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나, 적어도 이런 체계들이 없거나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다면 정보의 필수적인 도구는 사람과 대화함으로써 직접 알 수 있는 대화(對話)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사람의 눈으로 정보가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은 사람이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수 있는 것에서 사람의 하루에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며, 그 한정된 시간에 말을 계속 할 수 있는 체력의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오로지 시각적 정보다. 시각적 정보는 말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관리할 수 있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그런 정보의 공간적인 체계를 담을 수 있는 정보체계가 바로 신문이다. 이전에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신문의 위력을 본 적이 있었다. 신문의 복제로 통해 사람들을 주술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은 충분히 가능하다. 신문이란 정보매체가 진실 된 보도가 아닌 거짓된 허위정보로 채우거나 또는 왜곡 내지 허황된 소설로 지어내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그것이 거짓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특히나 신문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정보체계이므로 청각적 정보처럼 인간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건들기 보다는 이성적인 영역에서 더욱 강조할 수 있으므로, 인간의 판단능력 즉 이성적인 사고 관념까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신문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정보의 매체와 더불어 그 매체는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전가할 수 있는 점이다.

 

특히나 문자라는 언어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체계에서 기존 인간들은 문자에 대해 잘 몰랐다. 가령 중세유럽에 자국어로 성격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라틴어로서 기술했다. 만약 자국어로 성격을 보거나 번역할 경우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 심하면 심지어 인간의 생명까지 그냥 빼앗을 수 있는 점이다. 언어라는 것은 지식을 담은 하나의 방법이므로, 언어는 곧 지식이고, 지식은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 문자와 언어가 대량적으로 유포되면 어떻게 될까? 기존에 언어는 일부 엘리트만 허용되었다. 어려운 라틴어가 성격으로 되어 있다면 교회의 권위에 응대할 수 없다. 또한 과거 한국역사에서 조선시대 상황을 봐도 마찬가지다. 모든 문서를 한글 즉 훈민정음이 아닌 한자로 되었다는 점은 글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란 것을 의미한다. 한정된 자들의 문자체계에서 지식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식은 권력이고, 권력은 지식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다면 지식의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언어의 순환화로 통한 지식의 전파가 신분체계를 바꾸는 것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하여 사회적인 인식 그 자체가 변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배우게 하여 한정적인 부분만 배우는 것으로 세뇌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의 기능을 사람들의 인식이나 의식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으면 이것만큼 무서운 방법은 없다. 미디어라는 것은 사실 정치적, 경제적인 권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권력의 원하는 바가 대중 통치라는 것이라면 더더욱 심각하다. 가령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은 국가권력보다는 미디어가 훨씬 유용하다"라는 문구처럼 미디어로 통한 정신적 통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언론의 양심적인 행위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정치적, 사회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바로 여기 “부자신문, 가난한독자”에서는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하던 지난날의 추악한 모습을 지닌 신문사들의 악행들을 고발한다. 제일 인상 깊은 모습은 현대사회에 와서 최고의 독재자 전쟁광으로 평가되던 히틀러가 나왔다.

 

어느 신문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히틀러에게 히총통(總統)이란 단어와 더불어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외치고 있어 우리도 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민족은 독립주권도 가지지 못한 채 징용되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것을 만든 기사매체에서는 관동군으로 가는 것을 독려하고,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에 대해 영광된 죽음이라고 하고, 심지어 그의 가족까지 당연한 대장부의 도리라고 한다.

 

그런 부당한 행위를 한 신문사를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자면 우리 민족에 대해 과연 도움이 되는가 마는가에서 정상적인 이성능력을 가진 사람일 경우 반드시 의문을 품는다. 1932년 이봉창 열사가 독립투쟁을 하는 기사에서 우리는 어떻게 보는가? 그런데 그 이봉창 열사를 비난한다. 그런 신문사가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사는 회사로 변모했다.

 

이것이 합리적인 결과라고 보는 것일까? 시대적으로 사회진화론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보자? 그런 행동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신문, 일제의 억압받았다고 하는데, 1940년 대동아전쟁에서 당시 돈 100만원이나 집어먹고 폐간된 것이 일제의 억압이라고 한다면 돈만 먹고 적당히 말을 돌리면 민족의 광복과 독립을 위한 선발주자로 사기 치는 것을 간단히 속일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100% 객관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없으나, 적어도 그렇게 한 사실에 대해서는 100% 사실이다. 누가 그렇게 보던지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 사회진화론적으로 당시 그렇게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지금 시대적 상황에서 사회진화론적으로 본다면 당장 사라져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다.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그러면서 뻔뻔한 거짓의 과거 신간회를 찾는 그들에게 가난한독자들은 언제까지 그들을 부자신문으로 만들어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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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저작 선집 5
소광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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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에 대한 철학은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전에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에서 하이데거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고, 그의 도서인 “존재와 시간”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본다면 <하이데거와 그가 저술한 존재와 시간>은 이미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을 나는 기존에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존재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여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라는 그 존재가 인식하지 않으면 존재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전에 하이데거 관련 도서와 관련하여 하이데거가 저술한 “형이상학(形而上學) 입문”이란 도서를 읽었다. 물론 거기서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의 입문이란 제목과는 달리 입문 후에 제대로 하려는 사람을 위해 적어 놓은 것처럼 상당히 난해했다.

 

단지 그때 생각난 어구 하나가 “왜 있는 것은 도대체 있고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 기존에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이 저술한 책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그럴 만하게 여긴다. 차라리 내가 그 실존했던 인간과 현재도 실존하는 그 서적에 대해 몰랐다면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니지 않았겠는가?

 

그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소광희 교수의 “존재와 시간 강의”에서 필자인 소광희 교수의 강의도서를 보자면 충분히 저런 생각을 나게 만든다. 물론 존재와 시간이란 원전을 읽기 전에 참고적으로 읽었다고 하여도 나는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존재라는 것은 있고 없고도 중요하지만, 그 있고 없고의 인식에서 그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존재라는 것은 있다는 것이 되겠으나, 우리 인간의 눈을 비롯한 감각적인 기관으로 통해 존재를 느낄 수 있지만, 직접적인 감각으로 느끼지 못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맞대고 있어도 존재와 확인 유무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령 우리 몸 주변에는 1기압의 힘을 가진 대기가 분포한다. 그런데 그 대기는 78%의 질소(N2), 21%의 산소(O2), 그리고 아르곤(Ar), 이산화탄소(CO2) 등을 비롯한 기체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기를 들어 마시고 내뱉어도 그것이 공기란 사실을 그 공기가 어떤 화학적인 결합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면 그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 단지 그 존재를 있는 것만 감지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존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존재라는 것은 역시 인식의 차이일까?

 

가령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거나 만질 수 없는 초현실적인 존재라면 어떨까? 가령 관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신이라는 영역에 대해 말이다. 신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그것이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정말 그것이 없다고 할 수만 있을까? 존재의 유무는 인간의 인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그 존재는 인간이 계속 인식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 인식의 범위는 인간 자신이 유한하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게 아닐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분명 태어나고 죽는 그 시간까지 일정한 기간 아래 인간은 살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삶과 동시에 죽음이 이어져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까지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은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적대적인 큰 천적만 나타날 경우 죽을 수가 있다 라는 본능만 있다.

 

그 죽을 수가 있는 것을 지나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인간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유한한 생명은 동물과 다를 수밖에 없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 유한성을 계속 연결해 와서 인간의 존재는 지속된다. 생각해 보면 하이데거는 이미 죽고 없어진 존재다.

 

그렇지만 나는 하이데거라는 존재가 존재했음을 알고 그의 존재로 통해 “존재와 시간”이 존재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인간의 인식이 과거에 사라져버린 존재를 재확인을 통해 다시 존재에 대한 존재성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존재성에 대한 재확인과 더불어 “존재와 시간”은 개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존재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그 주체적인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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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재다 3 - Seed Novel
하람 지음, Nardack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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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재다 이번에 읽은 3번째 권으로 하여 작품 내의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가 된다. 솔직히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일반적인 소설과 라이트노벨이란 경소설에서 라이트노벨 그 자체만으로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같은 허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란 공통성을 인지하여 평가하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했다. 보통 라이트노벨의 경우 스토리텔링 경로가 환타지와 비일상적이라면 인간의 현실적 일탈이 강하게 요구된다.

 

따라서 현실성이란 부분에서 크게 결여된 라이트노벨은 현실과 괴리감을 주는 것으로 작가와 독자 모두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박탈감과 허무감으로 채울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부분은 문학소설에서 있으며, 문학의 기본이며 모든 서사의 최초인 신화조차도 그러하다. 인간이 신화에 매료되는 이유는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적어도 신화에는 현실의 인간이 될 수 없거나 혹은 대리적으로 되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화의 인물이란 모든 것을 안고 책임을 져야 하는 하나의 상징 내지 희생양으로 보일 수 있다. 신화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어떤 과업과 시련을 통과해야 하는 필수적인 plot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을 라이트노벨이라고 없다고 할 수 없다. 차라리 현대사회의 인간들에게 보이는 현실에 대한 비현실의 만족이 라이트노벨이 독자에게 주는 하나의 쾌감일 것이다.

 

그런다고 모든 라이트노벨이 탈현실과 비현실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인간관계 설정만 그렇지 시간과 공간이 현실의 이야기를 상당히 반영하는 것도 있다. 라이트노벨이 현실적인 일탈과 도피로서 나타난 이야기가 있다면 오히려 현실적인 부분과 현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보인 일본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분명 현실과의 괴리감, 이질감, 도피감이 상대했다. 현실배경이 아니거나 현실적 인물이 아니거나 현실적인 공간이라 하여도 세계관 내지 인물들이 현실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 라이트노벨에서도 현실적인 상황을 제법 표현하는 것이 보인다. 그런 점들로 볼 때 이번에 내가 읽어본 그녀는 천재다는 기존 한국의 라이트노벨이 비현실적 내지 비일상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번 3번째 책을 읽다보면서 1번째, 2번째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이 작품에서 왜 윤시아란 인물이 그렇게도 강압적이면서 작은 반응에도 그렇게 하는지 말이다. 그것은 물론 단순히 주인공 평범이의 잠시 입원함에 따른 부재만이 아니었다. 단순히 보자면 평범이가 옆에 없어 라고 보기보단 인간 사회라는 집단적 무리에 대한 이질감 내지 동질감의 차이였다.

 

3번째 권을 읽다보면 평범이는 중학교2학년 때 맹장염이 걸린 일화에서 그동안 윤시아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다. 윤시아와 평범이는 분명 3번째 권에서는 15년이 아닌 16년 친구로 나온다. 그러나 왜 이토록 윤시아가 평범이에게 집착하는지 알 수 없다. 윤시아의 주변 사람들이 평범이와 만날 때 하는 이야기는 오로지 윤시아가 다루는 이야기는 평범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윤시아의 존재가 천재소녀라는 점에서 천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보통, 일반적, 대체로 라는 단어를 지닌 인식과는 상당히 먼 언어이다. 특수하다는 것에서 오는 낯설음은 이미 1번째와 2번째 권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나오는 것이 3권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그녀는 천재든지 아니든지 평범이라는 남자주인공에게 윤시아는 언제가 연인으로 되어야 할 구조 즉 plot을 가지고 있다.

 

그런다고 하여 그 plot의 기본이 되는 하나의 극적 사건은 평범이가 걸린 맹장염이 아니라 그 맹장염으로 인해 학교 부재 시에 벌어진 사건들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들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기를 망설이는 것일까? 그녀는 천재다는 곧 그녀는 일반적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르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 차이날 수밖에 없다. 천재들은 천재들 사이에서 인식하는 보편성이 있으나, 그 보편성은 현실 속의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성에 다가가지 못하는 점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저 머리 좋고 예쁜 여학생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너무 공부를 잘하게 되자 모든 사람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질투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질투의 대상은 여학생이 아니라 남학생들 사이까지 번진다. 남녀가 분리된 성이라고 할지어도 여학생이 학급의 반을 차지한 이상 그 반이 되는 존재들도 나머지 반에 같이 동류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군중심리로 나보다 우월한 존재를 인정하기 보다는 하나의 적개심으로 나타낸다.

 

윤시아는 분명 중학교를 좋은 중학교로 갈 수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평범이를 따라 일반 중학교로 왔다. 그녀는 이미 중학교 2학년 평범이 없는 그 시기까지 이미 질투와 미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아무도 대해주지 않은 그녀에게 평범이만이 여전히 평범하게 대해주었다. 덕분에 중학교 2학년 시기에 평범이의 부재는 그녀에게 심한 따돌림을 넘어 집단적인 학교폭행까지 이어졌다.

 

아무도 말도 안 걸어주고 무시하는 것까지는 정말 양호한 편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시아의 신발 안에 압정을 넣고, 선생님이 안보면 때렸으며, 가방을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게다가 여자 아이들은 화장실로 끌고 가서 강제로 교복까지 찢어 버리는 행동도 하였다>. 그들의 행동에는 일절 양심이나 윤리적 판단의식은 없다. 인간의 집단적인 심리는 자신의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따돌림을 넘어 집단 괴롭힘은 윤시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이며 트라우마다. 1권에서도 왜 윤시아가 일탈행위를 시도 했는가에서 오직 그들의 행동을 막을 수 있던 최후의 방패가 평범이었다.

 

평범이는 너무 평범하고, 그런 평범함으로 윤시아에게 대해주었기 때문에 윤시아는 평범이를 평범하지만 특별한 존재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으로 자기를 대해주는 평범이도 지치기 마련이다. 윤시아와 평범이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는데, 윤시아는 평범이가 그저 옆에만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평범이는 그것이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윤시아가 들고 오는 책은 모두 평범이에게 어려운 책이었다. 평범이만이 아니라 모든 보통 사람들에게 난해한 도서였기 때문이다.

 

물론 윤시아에겐 그 책들은 하나의 간단하고 쉬운 것들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 간단함은 자신에게 통용될 뿐이지 평범이에겐 낯설은 벽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윤시아는 평범이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그렇지만 그런 윤시아를 바라보는 평범이는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나약함에 쓴 웃음을 짓는다. 그런 평범이에게 다른 위기가 온다. 온몸이 몸살로 앓아 누울 지경에 있을 때 그가 교장에게 호출 받아 가서 윤시아가 얼마든지 좋은 대학교 심지어 세계 명문대학교에서 오라고 할 정도인데, 평범이 때문에 평범한 대학교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평범이에게 더욱 더 시련으로 오는 것은 윤시아가 자기를 따라오는 것만이 아니라 그 따라오는 문제로 윤시아가 많이 힘들어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교장은 사실 윤시아가 좋은 명문대학에 가지 않으면 오히려 다른 학교로 가주길 바란 것이다. 자신의 학교에 수재가 있는데, 그 수재가 평범한 대학에 가는 이상 자신들의 입지가 죽는다는 이유다. 이 역시 평범이가 느껴야 했던 자신 주변의 학교라는 공간이며, 그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인 만큼 오로지 이권과 명예만 탐내는 야만스런 어른들의 세계였다.

 

그런 고민의 기로 사이에 다른 천재로 통해 평범이는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윤시아를 승화시키기로 한다. 이때까지 윤시아는 평범이에게 따라붙고 평범이만을 보고 살아왔다. 이제는 반대로 평범이가 윤시아를 따라가는 것을 결심했다. 평범이의 반의 반장 서유미, 그녀의 집에서 반장 동생 현석이와 꼬마천재 이유리의 대화모습을 보았다. 외우기와 연산능력만으로 세계 최고인 현석이나 그것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그에게 이유리는 현석이의 능력을 개발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윤시아 때문에 고민하던 평범이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천재들은, 발전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면 금방 죽어버리니까요.>, 사실 천재를 다룬 소설이나 역대 내가 알던 천재적인 인간들의 삶을 보면 그런 것 같다. 가령 독일의 문학과 철학, 예술비평에 큰 업적을 남긴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은 2차 세계 대전 독일 나치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강박관념으로 권총자살을 한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도 억압된 민족현실 속에 좌절한 이상(李箱, 1910.8.20.~1937.4.17.)이라는 문학가도 있다.

 

이상의 소설 “날개”를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박제가 되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말이다. 그는 일제총독부 치하 아래 불온사상자란 이유로 탄압을 받아 체포되다가 병보석으로 풀린 후에 병원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의 인생에서 천재적인 예술성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죽어갔다. 그런 것은 현석이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이유리와 윤시아, 최수정은 현실 속에서 보통 사람과 다른 두뇌를 가질망정 신체구조나 외양은 모두 비슷했다.

 

그들은 처음과 다른 것이라 단지 내면의 차이로 인해 다름으로 차별을 받았다. 거기에 비해 현석이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래서 그는 살아도 죽어버린 박제처럼 살아오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이유리와 윤시아의 덕분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보이는 것만큼 평범이에겐 하나의 고문이었다. 왜냐하면 누군가 박제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박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면 평범이는 윤시아를 위한 이별연습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길은 최수정의 사촌에게 전화하여 그녀의 유학준비 부탁과 윤시아의 부모에게 찾아가 그녀의 유학을 설득한다. 평범이의 존재는 이미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의 방문에 윤시아의 부모님은 내딸을 주려면 5년, 즉 윤시아가 대학교 졸업 후에 준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이후 먹고 살기 어려워서 딸이 일할 수 있는 나이까지 기다려 달란 윤시아의 아버지 말에 평범이가 얼마나 윤시아에게 큰 기둥인지 다시금 확인했다.

 

떠나고 보내고 싶지 않아도 자유로운 학은 날개를 크게 벌려 나는 것이 아름다운 법이니, 닭장 속에 작은 날개를 보고 혼자 우는 평범이나, 그의 결단은 이제 자신만 바라보는 윤시아가 아니라 자신도 윤시아를 바라본다는 것을 결심하는 것이다. 그의 노력에서 가장 큰 역할은 윤시아가 자신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평범이가 윤시아의 그늘이라 생각했으나, 사실 윤시아의 그늘이 너무 깊고도 커서 그것마저 그늘인지 몰랐던 것을 말이다.

 

그는 중학교 친구 준석에게 부탁하여 윤시아를 괴롭힌 동기를 찾아내어 윤시아에게 사과하도록 했다. 중학교 시절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도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서인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으로 윤시아의 가슴에 새겨진 가시를 하나 둘씩 빼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그는 윤시아가 가고 싶은 곳을 향했다. 그곳은 바다. 거친 파도와 모래가 펼쳐진 넓고도 시원한 공간을 말이다.

 

이 작품에서 본 것은 생각보단 리얼리즘 요소를 많이 반영했다는 점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심지어 TV 안의 드라마에서 경제적인 관념에 대한 부재가 많은 반면 여기에 나온 평범이는 몇 개월 동안 겨우 모우고 모은 용돈을 지갑에 넣어 윤시아를 위한 데이트를 진행한다. 그리고 저녁 해변가에서 그는 드디어 윤시아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중학교 때 괴롭게 만든 사람들에게 용서받기, 고3 수능이 앞인데도 방학 때 매일매일 그녀와 보낸 시간들, 오늘 여기 바다에 데리고 와서 그녀를 위한 마지막 이별여행을 말이다.

 

평범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아버린 윤시아에겐 평범이의 이별통지는 잔인하고도 슬펐다. 눈물 한번 제대로 그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은 윤시아가 평범이 때문에 계속 흘린다. 유학가란 그 말에 눈물로 절규하며 평범이에게 내가 싫어지냐 말에 평범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윤시아를 보며 평범이의 키스는 그의 마음속 깊이 윤시아를 사랑한다는 진심을 보였다. 그런 이별의 첫사랑 친구들은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다음날 윤시아를 비행기로 보낸다.

 

아무리 윤시아가 평범이에게 기대된 것은 맞으나 여전히 주도권은 윤시아다. 출국 전 여자친구에게 키스 한번 해주지 않는다고 평범이를 다그치는 윤시아의 슬픈 눈에 평범이는 나중에 빚으로 받는다고 한다. 그런 평범이에게 꼭 날아오라는 윤시아, 그녀도 사실 알고 있다. 평범이는 평범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오기 너무 힘들 것이란 사실을, 그래도 그녀는 기다림을 안고 미국으로 간다.

 

보통 이런 장면이라면 보통 서사적으로 엔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엔딩이 엔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엔딩 너머의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건 2번째 권에서 평범이가 윤시아에게 실없이 고백한 장면부터 시작해서 미국으로 가는 장면까지 말이다. 윤시아는 미국으로 가도 평범이는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결단에 옳다고 하나 너무 괴로워한다. 그는 대학진로에 많은 고비를 겪는다. 심지어 담임마저 포기하라 한다. 게다가 미국 명문대학교에 간 그녀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그의 마음은 아프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빨리 사라지기도 하나 그만큼 그의 가슴은 허전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평범이의 사투는 괴롭고도 먼 길이다. 그는 자신도 윤시아를 따라갈 것이라고 발버둥 친다. 매일 3시간도 못 잔채 9월 모의고사에 당당하게 자신도 윤시아를 따라 갈 것이라고 쓴 고배를 마신 채 말이다. 하지만 그가 9월 모의고사 당일 그는 쓰러지고 좌절을 한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윤시아의 이름만 외쳐댄다. 그의 절규는 한편으로 다른 여자의 마음을 울린다.

 

내가 보기엔 반장 서유미는 이성적으로 평범이가 싫어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저돌적으로 몸을 날리기 때문이다. 모의고사 보기 전에 쓰러진 그를 찾아온 반장에게 평범이는 반장을 윤시아와 혼동을 한다. 꿈과 현실을 이미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범이의 뺨에 차갑고 왠지 낯설지 않은 손바닥은 윤시아의 손이 아니라 반장의 손이었다. 현석이 동생을 돌보다가 반장에게 뺨을 맞은 평범이의 몸이 서유미의 손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분간했지 못했다. 단지 마지막에 들린 <미안, 남자와 키스하는 취미는 없어>라는 반장의 아쉬움과 안도심의 말에 평범이는 잠이 든다.

 

2번째 권을 보면 반장은 평범이에게 자신을 좋아하냐 말에 평범이는 물론 반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정확하게 답내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윤시아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고 혼자 이야기하는 평범이에게 반장은 더 이상 평범이에게 미련을 둘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비오는 날에 우산이 없던 평범이에게 교실 구석에 있는 낡은 우산을 주면서 같이 가자는 평범이의 제안에 <미안, 나는 남자애랑 같이 하교하는 취미는 없어>라고 했다. 하지만 평범이가 받은 우산은 너무 낡아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우산이었다. 아마 이 우산을 가지고 교실로 다시 반장에게 찾아갔다면 같이 하교했을 것이다.

 

평범이의 특징은 역시 평범함도 있지만, 보통 많은 남자처럼 둔한 점도 있었다. 우연히 마중 나온 이유리의 대화 속에 이유리의 안도감과 더불어 한심스럽다는 느낌이 같이 묻어져 나온 것이다. 그런 평범이기에 앞도 뒤도 볼 것도 없이 계속 윤시아에게 달려간다. 비록 모의고사에서 쓴 잔을 마셨지만, 수능당일 그는 자신을 향한 외로움을 향해 뛰어갔고, 수능 후 시험결과 평범이의 성적은 평범하지 못했다.

 

이젠 고등학교가 끝이고, 그의 수능성적은 자신을 말린 주변까지 말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닭이 닭장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닭의 날개는 날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들 바쁜 청춘을 보내고, 그의 얼굴에 수염이 나고 군대까지 전역한 아저씨로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이니, 윤시아와 헤어진 6년이 되었다. 그는 6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하고 결국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장면에서 늦었다고 토라진 것처럼 보이는 윤시아와 키스를 나눈다. 역시 아메리카에 있던 그녀일까? 6년 전 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평범이는 망설이고, 윤시아는 망설이는 평범이에게 빚을 졌다고 한다. 이제 그 빚을 갚는 장면에서 닭장 속에 있는 닭은 날개짓을 한다. 비록 그 기간은 매우 길고, 자신은 괴롭고 먼 길을 달렸어도 말이다. 마지막에 평범이는 평범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주영재라는 이름으로 윤시아에게 불린다.

 

윤시아에게 그저 평범이는 평범이라고 불렸을 때는 자신이 평범이에게 다가간 것이나, 이제 주영재는 자신에게 평범이가 돌아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나는 이 둘의 관계를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과정을 무슨 일들로 통해 가는 것인가이다. 그 길은 재미난 이야기도 있지만, 한편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녀는 천재다라는 라이트노벨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서 인물 설정은 평범이 주변에 천재가 윤시아, 최수정, 서현석, 이유리 라는 4명이 있어서 어느 평범한 고등학생에게 천재 4명이 모인다는 사실은 사실 어렵다.

 

단지 4명이 모였다는 가정 아래 시작되는 서사에서 현실 속의 대한민국의 사회 통념과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실로 리얼리즘 적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최근에 읽어본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근대이후로 현재 문학이 죽었다는 일본 문학비평가 및 철학자의 말에서 현대문학이 너무 영화처럼 혹은 영화를 위한 이야기로 변질되었다는 내용을 보았다.

 

어떻게 보자면 그녀는 천재다를 읽으면서 사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소재보다는 실제 영화적인 속성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리얼리즘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 그것은 너무 현실적이기에 비현실 속에 빠지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다. 물론 라이트노벨이라고 하여 영화나 문학소설과 다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서사적인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리얼리즘적인 요소가 강한 라이트노벨이었기에 조금 식상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과 그런 식상한 면이 있기에 충분히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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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재다 2 - Seed Novel
하람 지음, Nardack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그녀는 천재다 2권”에서는 드디어 윤시아와 평범이의 관계가 크게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평범이의 인간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편이다. 이번 2번째 이야기의 처음 고비는 윤시아에게 찾아온 어느 미소년의 고백이다. 문제는 그 미소년은 미소년이란 직함에 어울리게 외모는 기본에 학력과 집안까지 매우 좋은 학생이었다. 명문고에 다니면서 상위 1%에 들어가는 민준은 그런 평범이와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민준이가 윤시아를 찾아와서 그녀에게 사귀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윤시아는 그럴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민준의 행동과 행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평범이는 그것을 모르고 그저 자신보다 윤시아에게 고백한 민준을 보며, 자신도 납득하지 못하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것이다. 교문 앞에서 윤시아가 민준에게 냉대하게 굴면서 최수정과 평범이와 같이 가려고 했으나, 평범이는 그런 잘나고 잘난 윤시아의 옆에 있는 부담에 넘쳐 민준의 모습을 보니 그저 도망치기 바빴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도망치고 그 날 잠이 들었지만, 자기가 자는 동안 윤시아의 전화수신과 문자가 수없이 와있었다. 평범이는 자기가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낙담한 모습으로 이불 속에 눕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시장보러 가는데, 우연히 민준과 만나고 그와 원하지 않은 커피숍의 대화에서 평범이는 분노를 느낀다. 이 녀석만큼은 절대로 윤시아를 넘기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15년 지기로 그 어떤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거물에게 드디어 인간적인 삶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대상으로 지망한 민준은 자기보다 공부실력이 떨어지면 인간 취급도 하지 않은 이른바 엘리트주의였다. 사실 2번째 책에서 이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가 늦은 시간까지 자율학습에 학생들을 잡아 두는 것과 평소 평범이와 주변 학교생활로 보면 고등학교라는 억압된 공간을 느낄 수 있다.

 

 

획일화적인 사회구조와 그 사회구조 축소판인 학교, 그런다고 해도 준민의 태도는 이원화적인 인물설정에 과도하게 잡혔는지 모른다. 본래 누군가 좋은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만큼의 악역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가역적인 설정으로 본다면 말이다. 어째든 준민이는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평범이에게 수능모의고사에서 자기보다 잘 하면 평범이를 인정해준다고 한다.

 

 

전국모의고사에서 수준이 3등급 내지 4등급인 평범이에겐 너무 머나먼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둘째치더라도 (자기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서) 진실로 소중하게 여기는 윤시아를 위해 (겉으로 자기 자존심이라 하나) 준민과의 시험대결을 선택한다. 답도 없이 시작한 그의 무모함은 자기 스스로 낙담한다. 모든 공부도 그러하나 수학에 절망적인 성적에 그 성적만큼 평범이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이때 자신에게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천재소녀 최수정과 다른 여자고등학교에 전학을 간 이유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최수정은 이미 평범이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에 그에게 개인교습을 해주기로 했지만, 이유리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여자고교 앞에서 혼자 바보처럼 기다리는 평범이에게 이유리는 냉담하게도 변태로 취급한다. 게다가 그 변태 취급을 당한 후에 우울해 하는 평범이에게 로리콘드리아라고 놀려댄다. 이유리의 친근함은 그런 상대방에 대한 심한 장난인 것이다.

 

 

그런 험한 꼴을 당한 후에 평범이는 최수정과 이유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남은 2주 동안 자기가 이때까지 생각지도 않은 공부를 시작한다. 잠도 못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말이다. 게다가 윤시아를 눈에 가시처럼 보고 있으며, 그 윤시아와 가장 친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게 한 서유미 반장까지 가서 물어본다. 학년 3위인 반장이 솔직히 벅찬 대화 상대이나 오히려 반장은 쿨하게 반응한다. 그녀는 단지 평범이가 윤시아의 친구라서 싫은 것이지 평범이 그 자체는 싫지 않았다.

 

 

그렇게 2주의 결과가 나온 날에 평범이의 성적은 학급 내의 학생과 담임마저 패닉에 빠지게 했으나, 그 결과는 민준에게 이길 수 없었다. 그런 악에 빠진 평범이가 민준을 만나게 되자 민준은 평범이에게 쓰레기같은 녀석 물러서라 하나, 평범은 오히려 쓰레기이니깐 못하겠다고 버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윤시아가 등장한다. 평범은 성적은 민준보다 못했으나 상당히 좋은 결과인 반면 윤시아는 평소 평범이보다 못한 결과였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사람취급하지 않아 천재소녀 윤시아에게 대쉬한 민준에게 자기 역시 쓰레기라고 말하는 민준은 그만 기가 막혀 윤시아의 명치에 주먹을 가격한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본 평범이는 아무런 생각도 망설임 없이 민준과 싸운다. 손은 상처 나고, 그의 분노로 가득한 눈빛은 금방이라도 민준을 죽일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평범을 말린 사람은 다름 아닌 윤시아였다.

 

 

민준이 자리에 뜨자 윤시아는 의도적으로 맞은 것이라고 자신의 계산에 끼어든 평범이에게 핀잔을 준다. 윤시아는 평범이에게 그런 소리를 했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평범이가 일부러 공부한 것까지 알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맞아주어 최수정을 괴롭힌 일진을 소탕한 것처럼 민준에게 도리어 혼을 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평범이가 윤시아의 책략을 흐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평범의 행동은 오히려 윤시아에겐 진짜 친구라는 사실을 평범이가 자기는 이성적인 행동이 아닌 그저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왜 평범이는 사람이 좋은 것일까? 자신에게 얼마든지 합리적 이유를 대고 피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평범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윤시아의 그늘이라 본다. 그는 윤시아 앞에서는 그저 작은 소년이었다. 공부나 외모나 체육이나 그 모든 것으로 이길 수 없는 윤시아에게 자기 스스로 그녀와 친구하는 것이 너무 벅차게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만이 윤시아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은 완전 인정하고 윤시아를 받아준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그녀와의 친구관계의 압박은 늘 그에게 콤플렉스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한 마디로 평범이는 자기가 윤시아에게 억눌린 만큼 그 억눌림의 해소로 다른 누구에게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대가없이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2번째 책에서는 반장 서유미 중심으로 한 평범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착실하고 성실한 반장, 3학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학교 보충수업에서 그저 졸린 닭처럼 힘겨워 하는 모습을 평범이는 감지한다. 평소 눈치 없는 평범이지만, 같이 보충받은 교실에 아는 얼굴이라곤 반장 서유미였다.

 

 

과묵하고 조용한 반장 그 착실한 그녀가 보충수업에 졸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평범이는 홍삼드링크를 내밀지만, 그녀에게 완강하게 거부당한다. 그녀는 이성적으로 평범이가 싫어한다고 말한 것처럼 윤시아 옆에 있는 평범이가 짜증나는 존재로 여겼다. 그런 어색한 반장과의 사이에서 어느날 평범이는 답답한 보충1반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온다. 그런데 그 자리에 많이 보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반장 서유미, 그녀는 옥상 난간에 올라가 마치 뛰어 내릴 것처럼 위험했다. 평범이는 반장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잡아 댕겼다. 그리고 반장은 평범이 위로 떨어졌다. 평범이 눈에 자살시도로 보였으나, 반장은 그저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이는 그녀의 섬뜩한 모습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발 하나가 공중 위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일을 윤시아에게 보고한 평범이에게 반장의 소문을 듣는다. 그녀는 고등학생이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착실한 반장이 아르바이트에 보충수업에서 졸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런 평범이의 고민 속에 반장은 평범이에게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한다. 예상 밖의 그녀의 제안, 그리고 반장 집에 찾아가자 충격에 빠진 평범이, 반장의 남동생 현석이를 보는 순간 평범이는 반장의 그늘을 보았다. 현석이는 자폐증세로 심각한 집착과 난폭한 행동을 했다. 평범이가 처음 간 날 현석이가 두꺼운 책을 누나에게 던진 것이다. 게다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재며, 반장의 저녁준비 중에 실수로 음식을 흘리자, 방에 흘린 음식까지 주워먹는 것이다.

 

 

그리고 말리려는 평범이에게 저항까지 했다. 13세의 남자아이라고 생각하기에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반장이 평범이를 자기집에 데리고 이유는 아버지 사망 이후 어머니가 집안살림을 위해 일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자기가 대신 일하니 1달 동안 동생을 봐달라는 것이다. 평범이는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을 이 괴로운 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반응을 본 반장은 평범이보고 자기를 좋아하냐 물어본다. 하지만 평범이는 여성으로 반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그늘을 받아준 것이다.

 

 

반장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한편으로 납득했다. 그가 바로 윤시아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하다는 것은 좋은 것만도 나쁜 것만도 아니라 주변생활에 큰 불행이나 사건이 없다는 의미다. 클로버라는 식물에서 잎이 4장이면 행운이나 3장은 행복이라 했다. 평범은 3장의 클로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클로버는 3장과 4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3장에서 1장이나 2장을 떼어도 클로버다. 그런 클로버가 반장 서유미인 것이다.

 

 

그리고 3장의 클로버 사이의 4장을 가지고 태어난 윤시아는 그야말로 축복받았다. 천재미소녀, 그렇지만 그녀 역시 어두운 과거를 있었고, 그 어두운 그늘에 있던 사람은 평범이었다. 그런 평범이기에 최수정도 평범이를 친구로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반장에게는 다른 이면이었다. 왜냐하면 평범이가 윤시아에게 반장의 일을 말하고, 반장 집에 윤시아가 가면서 부터이다. 윤시아는 분명 천재이고, 평범한 사람과 대할 수 있을 정도로 상식과 교양이 있으며, 겉모습을 보자면 그저 미인이다.

 

 

그렇지만 천재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 비교되고, 그 비교에 의해 차별당할 수 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저 배척받는 일을 윤시아도 있었다. 그런 윤시아이기에 반장의 동생 현석과 윤시아는 깊은 공감을 나눈 것이다. 그렇지만 반장은 그것을 가지지 못했다. 현석이는 유미에게 누나라고 부른 적도 없으면서 윤시아에게 시아누나라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반장은 윤시아를 더욱 더 미워했다.

 

 

왜 윤시아는 완벽한 외모와 지성을 타고나서 저렇게 잘난 듯이 살아가는데, 왜 자신의 동생은 천재이면서 사반트 증세로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도 자신을 힘들게 하느냐 말이다. 거기다가 자신에게 십 년 동안 누나라고 말해주지 않은 현석이 얼마 되지도 않은 시아에게 누나라고 하는 순간 반장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분노로 가득했다. 반장이 윤시아를 미워한 이유는 바로 동생과의 삶에서 하늘은 공평하지 않은 것과 공평하지 못한 상태에서 윤시아에겐 평범이가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자신의 동생은 장애로 눈이 있어도 세상의 빛도 볼 수 없는데, 그래서 자기는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거기다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 모든 것을 윤시아가 가졌기에 너무 비참하게 느낀 것이다. 윤시아의 방문으로 평범이의 뺨을 때린 반장,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윤시아는 마음속으로 아파한다. 대신 그녀의 말에선 평범이의 처음으로 때리는 뺨을 빼앗긴 사실을 말이다. 윤시아는 자신의 친구를 자신처럼 대하는 반장에게 질투했고, 반장은 자기 동생이 천재라서 모든 것을 포기한 자신의 인생에 평범이를 친구로 둔 윤시아를 질투했다.

 

 

그런 난감한 싸움에 평범이는 윤시아에게 아쉬움의 대상으로 반장에게 윤시아를 데리고 온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런 평범이가 느낀 것은 평범하니 그저 물러설 것이란 좌절감이다. 그런데 의외로 윤시아는 평범이에게 책을 던져 그를 때린 후에 그를 설교한다. 가서 반장을 도우라고 말이다. 윤시아는 알 수 있었다. 반장에게 평범이가 필요하고, 현석이에게 자기가 필요했으나, 갈 수 없기에 오직 평범이만이 현석을 구해줄 수 있다고 말이다.

 

 

윤시아가 없는 평범이의 하루는 고되고 힘들었다. 자신의 평범한 머리로 윤시아에게 따라갈 수 없었고, 윤시아와 현석이의 대화 속에서 자신은 소외됨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보자면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윤시아는 그런 사람들 속에 있는 평범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그런 힘겨운 투쟁 속에서 평범이는 윤시아와 최수정에게 조언을 받으며 반장과 현석을 위해 노력한다.

 

 

사실 이 모습에 반장은 매우 놀란다. 반장은 자지가 뺨을 때려 평범이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낙담했었다. 그러나 그가 오자 반장은 다시 평범이에게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 평범은 반장을 이성적인 존재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경하는 마음이라고 대답한다. 반장은 그저 평범이를 보며 미소 지으며 납득한다. 그런 긴 시간이 지난 후에 현석이는 장애아동이 모이는 특수학교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전에 평범이는 현석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야기는 평범이가 홀로 현석이를 돌볼 때 우연히 현석이가 왜 유미누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유였다. 그 사실은 교통사고로 반장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린 시절의 반장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때 현석이가 귀찮게 굴자, 어린 시절 반장 무심코 현석이에게 자기에게 말 걸지 말라고 한다. 이때의 정신적 충격으로 현석이는 이후로 반장에게 유미누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시아누나란 말은 그렇게 잘하는데, 그 대신 자신의 친누나에겐 말조차도 제대로 걸지 못한 것이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잊어도 현석이만 그 사실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평범이는 현석이가 누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누나에 대한 말에 절대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멀리 다른 곳에 가면 좋은지 그리고 힘든지 물어보니, 현석이는 모두가 힘들어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현석이에게 평범이가 오직 그 난국을 타파하는 것은 지난 과거로부터 시작된 엇갈림을 다시 원위치밖에 없었다.

 

 

현석이가 원주로 기차타기로 한 날, 반장과 평범이는 현석을 데리고 기차역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기차를 기다리며 현석이가 기차표를 꺼내기로 했는데, 기차표 대신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현석이가 직접 적은 글이 있었고, 거기에는 현석이 누나 유미에게 전해주고 싶은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현석이의 말을 들은 유미는 그저 현석이를 품에 안고 눈물로 흘린 뿐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부분에서 평범이가 제안한 방법을 결코 윤시아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윤시아에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1권 째에 본 이유리만큼 평범이는 윤시아에게 과거에 어떤 큰 일이 있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이유리에게 과거의 윤시아를 본다는 것처럼 평범이가 반장과 현석이에게 해준 선물은 윤시아가 예측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윤시아가 어떤 계기인지 모르나, 평범이의 행동패턴을 모두 예지하는 윤시아를 여기까지 지내게 만든 것은 평범이는 결코 사람을 논리적인 계산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것이다.

 

 

그런 평범이기에 윤시아는 현석이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이고, 그 후에 현석이는 누나와 사이좋게 지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알아봐주는 최수정과 이유리까지 만나게 된다. 친구가 없던 현석이에게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평범이는 자기가 손해보고 게다가 찌질이까지 들은 마당에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다. 찌질한 바보 평범이는 어떻게 보면 너무 평범한 것이 아니라 너무 평범하다 못해 특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평범이가 자신 스스로 너무 평범하나고 나약한 인간이라 옆에서 제대로 잘봐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1권 째부터 윤시아에게 절교 선언하다가 된통 혼나서 취소까지 해야 했고, 윤시아와 진짜 친구가 되어준 것이 고마워 최수정을 위해 온몸이 멍이 되도록 맞았다. 이 모든 사건들은 사실 평범이가 용기 있고 도덕심이 높은 인간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 깊이 자기도 모르는 깊은 무의식의 공간에 윤시아라는 괴물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괴물은 마음속 깊이 봉인되어 자기도 모르는 상태이나, 이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미국 헤이버드 대학교에서 온 최수정의 사촌오빠 수민이 오고 나서 부터이다. 수민은 수정을 아끼는 괴짜오빠이나, 상당한 수재이다. 그런 수재가 천재소녀 윤시아를 만나면서 수민은 오로지 윤시아에게 마음을 돌렸다. 평범이를 관찰하고 사촌동생 수정을 위해 평범이에게 수정과 사귀기를 원한 수민이에게 평범이는 자기가 가진 윤시아에 대한 일들을 새롭게 돌아봐야 했다.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으나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평범이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그녀와 지낸 일들을 알아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군계일학에서 닭장 속의 소년 평범이, 그 닭장위로 날아가는 윤시아, 평범이는 닭장에 있는 자기 때문에 학이 날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윤시아라는 친구는 오랜 지기이기도 하나 선망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대상이었다. 오만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평범이에게 선택이 다가온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최수정인가? 아니라면 자신의 허락 없이 대답하지 않으면 성질내는 윤시아인가? 좋아하는 사람이 윤시아여도 그것이 너무 깊은 내면에 각인되어 그것조차 알지 못한 평범이는 고뇌를 한다. 수민에게 들은 강렬한 이야기에서 자신이 우유부단하고 겁쟁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 우유부단함이 최수정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그러면 그럴수록 윤시아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말이다. 평범이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붙잡혀 있는 것은 윤시아와 최수정이 아닌 자기 내면속의 시아의 그림자였다.

 

 

그런 운명의 갈림길에서 평범이는 최수정의 고백을 거절하고, 윤시아에게 달려가고, 거기서 수민의 꾸지람까지 먹는다. 그리고 다시 윤시아를 찾아 그녀에게 고백을 한다. 다리가 삐어 절룩거려 자신의 등에 업힌 천재소녀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 고백마저도 너무 싱겁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윤시아>, 자기의 깊은 내면을 알았음에도 그것이 너무 깊이 들어간 나머지 그렇게 말해버리는 평범이, 그런 평범이에게 윤시아는 대답 대신 가만히 있었다. 평범이가 윤시아가 대답이 없어 자냐 말에 목을 조르면서 나 잠잘 거니까 시끄럽다고 대답한다.

 

 

게다가 멋도 확신도 낭만도 없이 고백받은 윤시아는 평범이의 행동에 한심하다고 하나 자기 역시 한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평범이는 깨달지 못한 것이 있다. 윤시아는 평범이가 한심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한심하다는 뜻이다. 윤시아에게 오로지 평범이만이 친구이나 평범이는 그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윤시아를 자기에게 떨어져 주기를 바란다. 그런 평범이를 보면서 억지로 참으며 생트집을 잡는 윤시아로선 과연 누가 한심한가를 독백하는 것이다.

 

 

1권 째에 최수정은 평범이에게 진짜 천재는 필요 없는 기억은 버린다고 한다. 이성적인 존재일수록 자기 판단이 정확하기에 그런 것이다. 2권까지를 읽다보면 1권과 달리 평범이의 입장보다는 윤시아의 입장으로 넘어가기가 좋을 것이다. 2권 째의 연일일이라는 2사람의 생일에서 윤시아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평범이는 그 눈물을 보지 못했으나, 평범이 동생인 주선영은 윤시아의 슬픈 모습을 본 것이다.

 

 

그 이유는 이전에 평범이의 생일에 윤시아가 준 선물을 어느 상장에 넣어 먼지가 수북할 정도로 쌓인 것이다. 평범이가 생각하는 윤시아의 생일에는 가격으로 매긴 용돈살인범 선물만을 회상한다. 그에 반해 윤시아의 선물은 가격적인 부분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었다. 특별한 존재이기에 나를 골려먹을까라는 평범이의 생각이나, 그 선물들은 윤시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많았다. 그 선물상자 안에는 먼지로 쌓인 스웨터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윤시아가 가져온 선물은 하얀색 볼품없는 스웨터였다.

 

 

볼품없고 멋은 없으나 한번 세탁기에 돌렸는지 좋은 냄새가 난 것으로 보아 분명 윤시아는 평범이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평범이는 그저 윤시아가 내가 평범하여 그런 스웨터가 어울리니 그것이나 입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평범이는 생인파티가 열리는 윤시아의 집에 가서 스웨터를 입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볼품이 진짜 없는지 평범이 친구인 한성이는 평범이의 스웨터 입은 모습에 비웃기까지 한다. 그러나 평범이는 굴하지 않고 스웨터를 봄까지 계속 입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윤시아의 마음을 풀어준 것이었다.

 

 

이 작품의 2권까지 읽다보면 1권부터 시작한 것처럼 윤시아는 분명 평범이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러나 평범이는 그런 윤시아의 행동에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이 평범하고 만만한 소꿉친구로 놀리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윤시아의 깊은 마음과 더불어 상처 받는 모습도 보인다. 어떻게 본다면 그런 둔감한 평범이의 모습에 윤시아는 이끌려는지 모른다. 둔감하기에 상대방과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둔감하기에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대하는 평범이를 말이다.

 

 

인간에게 가진 성격이나 속성은 뭐든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은 점들이 있으면 나쁜 점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특별한 천재소녀로 태어난 윤시아가 평범이에게 특별히 대해주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윤시아에게 특별하게 대하지만, 그 특별함 윤시아란 존재에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평범이의 반의 반장이 윤시아를 싫어하는 것이고, 반장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윤시아를 멀리 하려는 모습도 있는 것이다. 그런 윤시아가 오직 말을 거는 사람은 평범이다. 최수정이 처음 와서 체육복을 평범이에게 빌리려고 할 때 최수정은 여학생이고, 평범이는 남학생이다.

 

 

상식적으로 처음 전학 온 것도 모자라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여고생에게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의 체육복을 빌려서 입게 한 것은 주변 여학생과 사이가 매우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실 그렇게 윤시아에게 평범이에게 와서 반강제적으로 빌려간 체육복의 의미는 평범이가 윤시아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평범한 그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사람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음이다. 최수정도 고백 전에 6개월 동안 평범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물론 얼마 되지 않은 전학생이 그렇게 빨리 친구의 친구인 평범이를 좋아한 것은 이상한 일이나 최수정은 15년 동안 평범이를 지켜본 윤시아의 이야기로 통해 15년 치의 평범이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평범이의 15년에 대한 면을 모두 이해했어도, 15년 동안의 윤시아와의 깊은 인연의 끈은 가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2권을 읽으면서 이 라이트노벨은 단순히 라이트노벨로 보이기엔 너무 현실적인 부분이 강했다. 재미요소보단 다소 감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자극한 것이 여력하게 보인다.

 

너무 높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으나, 라이트노벨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가까이 붙어 있지만, 라이트노벨 역시 문학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제목에서 “그녀는 천재다”처럼 평범이가 다가가려는 윤시아에게 도달하는 것은 최종적인 서사의 완료이다. 그러나 그 가는 와중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사연이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역시 중요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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