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저작 선집 5
소광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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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에 대한 철학은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전에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에서 하이데거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고, 그의 도서인 “존재와 시간”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본다면 <하이데거와 그가 저술한 존재와 시간>은 이미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을 나는 기존에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존재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여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라는 그 존재가 인식하지 않으면 존재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전에 하이데거 관련 도서와 관련하여 하이데거가 저술한 “형이상학(形而上學) 입문”이란 도서를 읽었다. 물론 거기서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의 입문이란 제목과는 달리 입문 후에 제대로 하려는 사람을 위해 적어 놓은 것처럼 상당히 난해했다.

 

단지 그때 생각난 어구 하나가 “왜 있는 것은 도대체 있고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이었다. 어떻게 본다면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 기존에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이 저술한 책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그럴 만하게 여긴다. 차라리 내가 그 실존했던 인간과 현재도 실존하는 그 서적에 대해 몰랐다면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니지 않았겠는가?

 

그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소광희 교수의 “존재와 시간 강의”에서 필자인 소광희 교수의 강의도서를 보자면 충분히 저런 생각을 나게 만든다. 물론 존재와 시간이란 원전을 읽기 전에 참고적으로 읽었다고 하여도 나는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존재라는 것은 있고 없고도 중요하지만, 그 있고 없고의 인식에서 그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존재라는 것은 있다는 것이 되겠으나, 우리 인간의 눈을 비롯한 감각적인 기관으로 통해 존재를 느낄 수 있지만, 직접적인 감각으로 느끼지 못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맞대고 있어도 존재와 확인 유무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가령 우리 몸 주변에는 1기압의 힘을 가진 대기가 분포한다. 그런데 그 대기는 78%의 질소(N2), 21%의 산소(O2), 그리고 아르곤(Ar), 이산화탄소(CO2) 등을 비롯한 기체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기를 들어 마시고 내뱉어도 그것이 공기란 사실을 그 공기가 어떤 화학적인 결합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면 그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 단지 그 존재를 있는 것만 감지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존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존재라는 것은 역시 인식의 차이일까?

 

가령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거나 만질 수 없는 초현실적인 존재라면 어떨까? 가령 관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신이라는 영역에 대해 말이다. 신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그것이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정말 그것이 없다고 할 수만 있을까? 존재의 유무는 인간의 인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그 존재는 인간이 계속 인식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 인식의 범위는 인간 자신이 유한하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게 아닐까?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분명 태어나고 죽는 그 시간까지 일정한 기간 아래 인간은 살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삶과 동시에 죽음이 이어져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까지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은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적대적인 큰 천적만 나타날 경우 죽을 수가 있다 라는 본능만 있다.

 

그 죽을 수가 있는 것을 지나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인간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유한한 생명은 동물과 다를 수밖에 없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 유한성을 계속 연결해 와서 인간의 존재는 지속된다. 생각해 보면 하이데거는 이미 죽고 없어진 존재다.

 

그렇지만 나는 하이데거라는 존재가 존재했음을 알고 그의 존재로 통해 “존재와 시간”이 존재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인간의 인식이 과거에 사라져버린 존재를 재확인을 통해 다시 존재에 대한 존재성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존재성에 대한 재확인과 더불어 “존재와 시간”은 개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존재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그 주체적인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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