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 -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
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이주명 옮김 / 필맥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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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드디어 예전에 읽은 동물농장의 중요한 이야기가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40년 8월 2일에 일어난 트로츠키 암살 사건의 맥락이 연결된다. 트로츠키가 러시아에서 추방되고 이제 더 이상의 트로츠키가 정치적 권력으로서 정치에 임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그는 온갖 조작, 비방, 왜곡, 공작으로 통해 자기의 일어날 공간을 빼앗긴다. 그가 처음 러시아에서 떠날 때는 러시아혁명을 위한 전초전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영원히 러시아에서 머물 수 없는 추방자로 낙인을 찍혀버렸다.

 

그렇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보여주는 비극의 유머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성장을 위해 공업화가 필요하여 농민으로부터 야유를 받는 그의 난감함을 스탈린이 꼬리 잡아 트로츠키를 정치적으로 패배시켰다. 하지만 웃기게도 가장 러시아 농민인 굴락과 무지크를 억압한 사람은 스탈린이다. 그의 폭력적인 테러리즘은 사회주의 혁명이란 숙제를 그저 독재정치의 역사적 교훈으로 부각시켰다. 사실 트로츠키는 영구혁명론인 반면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였다. 그가 노린 전략은 대중들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적 존재 본능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조작법과 더불어 공포심이란 것을 이용했다.

 

가령 말 잘 듣지 않는 오리가 있다면 그 오리를 잘 대해주어서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오리털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심지어 치유될 수 없는 큰 흉터까지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리는 폭력을 휘두른 인간에게 따라온다. 그것은 옛날 고대부터 이어온 정치적 테러리즘이다. 스탈린은 그 폭력을 아주 교묘하게도 이용하였고, 심지어 그 폭력으로 통해 스탈린주의자에게도 그 폭력을 향했던 수준만큼 되돌려준다. 오죽했으면 게페우라는 비밀경찰조직을 통해 온갖 살인과 테러를 일삼았던 것도 모자라 그들마저도 총을 심장을 향하게 했다. 단지 어이없는 부분은 처음에 희생당한 정치인들은 모두 트로츠키를 음모의 원흉이라고 했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레닌과 더불어 러시아혁명을 일꾼 영웅이고, 코민테른에서 아주 중요한 입장과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의 위원회에서 활약을 했다. 그들은 트로츠키가 옳아도 트로츠키에게 죄가 있다고 했다. 그들은 죽음은 받아들이되, 그들의 어리석음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어리석음이 보였다. 그러나 지노비예프는 처음에 레닌에게 10월 혁명을 반대한 것보다 지금의 스탈린에게 당한 것이 치욕스럽다고 한다. 트로츠키의 선견은 결국 현실로 되었고, 트로츠키가 터키와 노르웨이, 프랑스로 전전긍긍한 후 최종적으로 멕시코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에 스탈린에게 절대적으로 봉사하고 버림받은 부하린마저도 죽음을 당한다.

 

예전에 보았던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이란 서적에서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내용에서 부하린의 죽음을 토대로 <한낮의 어둠>이란 소설을 인용한다. 대중들의 자발적인 폭력으로서 세워진 소비에트연방이 이제는 대중들에게 향하는 폭력으로 스탈린주의 독재국가로 변질된다. 시대착오적인 그 사상은 분명히 소비에트연방이 미국을 이은 경제 및 군사강대국과 과학기술의 절정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나 그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닌 폭력과 조작으로 통한 집단주의였다. 아니 파시스트적인 요소가 강한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문제가 최근 국내에 일어난 점에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한 집단주의적이고, 오류만 남은 그 사고들이 아직도 망상의 유령이 아닌 현실의 유령에서 말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사실은 그 유령과 더불어 그 유령을 향해 미친 듯이 침을 튀기고, 확대화 하려는 자들은 유령을 떠나 악령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러한데, 당시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트로츠키의 선견지명에 정말 놀란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의심하고 내쫓은 노르웨이 정치가에게 언제가 나치의 정복으로 당신들은 모두 도망칠 것이란 사실에서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트로츠키는 독일에 일어난 나치의 강성과 히틀러의 위험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은 소비에트연방에게 쫓기고 스탈린에게 죽음의 위기가 오기에 말할 힘이 없었다. 자신의 입은 언제나 열려있으나 옆 사람들은 귀가 막혀버렸다. 그렇지만 결국 그의 위험은 확실했다. 실화에서 프랑스 대사관이 2차 세계대전 전에 히틀러를 만나는 자리에게 히틀러에게 트로츠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히틀러는 매우 놀라는 표정으로 일어나며, 트로츠키의 위험을 언급했다. 무기 하나 가진 것도 없고 조직도 없는 늙은 정치사상가 한 명이 스탈린은 물론이고 히틀러에게 최고의 강적이었다.

 

오히려 히틀러는 스탈린보다 트로츠키가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독일이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을 점령 후에 독일과 소비에트연방의 조약을 맺어 군사적으로 두려울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과연 무엇이 무섭고 두려운 것일까? 스탈린은 무척이나 트로츠키가 두려워 한 모양이었다. 스탈린의 정치적 압제는 수용소 죄수에겐 하나의 순교자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스탈린은 자신의 반대세력을 모조리 총살을 시킨다. 과거 1937년에 시작한 러시아 대숙청과 대이주와 더불어 교도소 역시 피의 바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교도소에는 많은 트로츠키주의자가 있었고, 이들은 무식한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과는 달리 엘리트였고, 한편으로 높은 도덕심도 보유했다.

 

그들의 존재란 스탈린에게 눈에 가시고, 하루 빨리 없어야 했다. 결국 없애버리고, 그것이 아닌 존재도 죽였다. 조금이라도 눈에 벗어나면 말이다. 그런데 처음에 트로츠키가 내쫓길 때는 모두 트로츠키를 의심하던 이들이 총살형으로 나무기둥에 묶여 있을 때 모두 트로츠키여 영원하라 하고 외친다. 심지어 트로츠키가 죽고, 스탈린이 죽은 후에 스탈린주의 후예들조차 뒤에서 몰래 트로츠키가 옳았음을 인정한다. 물론 100% 옳은 것은 아니나 그런 정치적 판단력을 가진 상태에서 말과 행동을 옮길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소비에트연방은 정치적 자유나 표현이 사라졌다. 오죽했으면, 스탈린이 자신은 노동자의 국가라고 하면서 독일 히틀러와 쪼개먹은 상대국가에 대해 모든 토지를 몰수하여 그 토지를 농민에게 죽는 것이라, 그 농민마저 강제노동에 부역시켰냐는 것이다.

 

그렇게 트로츠키는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과거역사를 사례를 통해 앞날을 예견했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과거를 반성하는 것은 오늘의 현재를 구성하는 원인과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있으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사회가 발전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이성이란 단어가 적용된 것은 그리스철학이 시작되어 데카르트와 칸트에게 이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극소수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이상향은 국민정치가 아니라 시민정치였다. 어떻게 보면 폴리스국가에서 귀족적인 시민정치로 통해 어떤 사회의 실력과 학식, 인품이 높은 사람에게 많은 정치적 참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차후 니체가 지적하는 대중사회는 이른바 군중심리와 도덕에 대한 의심 없는 순종이 더 인간을 부패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트로츠키는 “도덕은 역사와 계급투쟁 속에 내재돼있는 것이며, 그 자체로 불변의 실체를 갖는 것은 아니다. 도덕은 사회적 경험과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다. 따라서 도덕은 언제나 수단을 목적에 연결시킨다.”에서 그는 종교에 대한 도덕적 강요를 비판했다. 이런 점은 니체의 서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내용과 비슷하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의심하고 스스로 되물어볼 수밖에 없다. 본래 철학이란 것이 자기 자신부터 생각하고 비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당시는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광기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파시스트가 판을 치고, 그들은 전체주의로 통해 광기를 살기로 향상시켰다. 유럽이 아닌 동양의 일본도 그렇다. 트로츠키는 세계적으로 불안과 광기에 넘치자 항상 이에 대한 비판을 날렸다. 그런데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일본 천황과 독일 나치와 결탁했다는 것과 트로츠키가 미국의 언론과 정치인하고 진실규명이나 문제해결을 하려고 하면 자본주의의 앞잡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 트로츠키에게 돈도 오지 않고, 나치도 트로츠키를 싫어했다. 본질과 상관없이 모든 대중들의 시선을 가리는 언론행위는 독재정치의 기본이고 필수라는 것이 여전히 드러난다.

 

그런 상태에서 트로츠키는 언제나 죽음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가 프랑스, 노르웨이, 터키를 오고가던 시절에 항상 암살과 테러의 위험에 쳐해 있었다. 게다가 그가 가던 집에 불이 나고, 누가 자신의 자료들까지 훔쳐가려 했다. 게페우가 으르렁 거리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1936년 멕시코로 이주를 가나, 거기라고 안정은 없다. 오기 전에 1번째 부인에게 얻은 딸 니나가 죽고, 2번째 딸 지나는 트로츠키의 손자인 세바를 데리고 오지만, 지나친 피로와 병들은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고, 그녀는 쓸쓸하게 독일의 침대에서 자살한다. 아직도 인상 깊다. 그녀는 자신의 방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하고, 가스를 채워 질식사를 했는데, 그 표정이 고통이 아닌 행복이었다.

 

그 후에 트로츠키의 아들인 료바는 우울증과 피로, 병세로 32세의 일기로 죽는다. 그는 아내 사이에 아이를 두지 못했고, 그의 누나의 아들인 료바를 아들처럼 여겼으나, 결국 죽고만다. 아내인 진은 트로츠키주의보다는 몰리에르파로 료바를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었고, 세바가 아들처럼 귀여워해준 것이다. 하지만 결국 트로츠키 품으로 세바를 돌아간다. 세바를 찾은 트로츠키는 다행일까? 불행일까? 자신의 2딸 중에 1명은 러시아에서 병으로 굶주림으로 죽고, 1명은 병으로 인해 자살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남편 모두 행방이 묘연해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아들인 료바는 괴로움 속에 죽었고, 다른 아들인 세르게이는 러시아에서 긴 유형생활을 하다 죽는다. 물론 죽기는 트로츠키가 죽는 것으로 나오나 트로츠키는 모든 가족들을 잃게 되었다. 심지어 1번째 부인인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공간이 없어 늙은 몸을 이끌고 그녀의 언니에게 의탁한다.

 

트로츠키에게 남은 가족은 세바와 그리고 40년 넘게 그를 지탱해준 나탈랴였다. 트로츠키는 평생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찬양했으며, 그녀가 없었으면 자신은 없었다고 한다. 영화 트로츠키 암살사건에서 트로츠키는 자신을 걱정하고 아이들을 잃어 슬픔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눈물을 보면서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입술을 바친다. 그러나 그렇게 노부부는 힘들게 망명생활을 하나, 결국 트로츠키는 잭슨이란 가명을 쓰던 라몬 메르카데르에게 피켈을 맞고 잔혹하게 쓰러진다.

 

여기서 스탈린과 게페우의 치밀함이 보인다. 라몬에게 지령을 내릴 적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트로츠키의 여비서인 실비아의 애인으로 등장하게 하더니, 그녀와 지내게 하면서 트로츠키 주변에 갈 기회를 만들어 단순히 살해하도록 부추킨 것이다. 라몬이 트로츠키를 살해하기 전에 라몬이 왜 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게페우는 라몬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았고, 어머니가 멕시코에 있었다. 굳이 멕시코에 나둘 이유가 없어도 나둔 이유는 라몬에게 협박을 한 것이란 점이다. 트로츠키 역시 인질을 잡은 적이 있었다. 러시아혁명 이후 백위군과의 내전에 백위군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았으나, 그들을 죽이거나 가혹한 대접을 하지 않았다. 단지 내전으로 인해 차르의 가족들이 그의 부하의 손에 죽을 때 그 책임을 자기가 맡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인간적 행위에 대해 양심과 윤리, 기준이 있었다. 그는 폭력과 억압이 폭주하는 광기의 역사에서 그 고리를 부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성적인 영역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전설적인 인권대통령인 링컨을 생각하면 말을 남겼다. “미국 북부군의 잔혹성과 남부군의 잔혹성에 대해 역사는 상이한 잣대를 갖고 있다. 속임수와 폭력으로 노예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노예주인과 속임수와 폭력으로 족쇄를 벗어던지려는 노예를 생각해보자. 오직 경멸스러운 환관들만이 도덕의 법정에서 이 두 가지경우가 동등하다고 우리에게 말항 것이다.”라고 말한다.

 

폭력과 속임수를 파괴하기 위해 폭력이란 극단적 행위로 미칠 수 없는 현실의 비극에서 그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 여겼다. 그 결과 그는 추방되고,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 역시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도 그는 저항했다. 피켈을 맞아 머리에 70㎜정도 들어가도, 그리고 뇌수막이 찢어지고, 뇌신경이 파괴되어도, 뇌에 두개골 파편이 박히고 있을 때도 그는 라몬에게 저지했고, 그의 비명과 소란에 달려온 사람들을 설득하여 라몬을 포박하여 그의 증언을 내놓게 하라고 한다. 죽어가는 자리에서도 미래를 향한 이야기와 나탈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는 트로츠키가 죽어 20년 넘도록 트로츠키가 죽은 집에서 살아간다. 그의 시신이 화장되어 그 집에 묻혀 작은 비를 항상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의 죽음은 스탈린에게 큰 미소로 되었으나, 후에는 아픔을 맞이했다. 부하린을 죽인 스탈린은 부하린만큼 군사전략을 잘 아는 지휘관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처음에 히틀러와 계약하여 이익을 보던 소비에트연방은 결국 나치에 의 큰 타격을 받는다. 그것도 모자라 스탈린은 1919년 레닌이 세운 코민테른을 1943년 와해시키고, 무력으로서 혁명을 수행한다고 했다. 트로츠키는 소비에트연방이 타국의 혁명을 도와주는 것이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엇갈린 혁명은 결국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에서도 이상하게 만들어졌다. 정복이 혁명이라고 하는 스탈린의 잔재가 여전히 유령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트로츠키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나 그가 살아온 투쟁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고, 생각해야할 가치이다. 그의 유언에서 아내인 나탈랴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내용이 나온다. “나타샤(아내의 애칭)가 정원에서 창문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그 창문을 더 넓게 열어 공기가 내 방으로 좀 더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나는 담장 아래로 밝은 녹색의 풀들, 담장 위로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도처에 반짝이는 햇빛을 본다. 인생은 아름답다. 미래 세대는 모든 악과 억압, 폭력을 씻어내고 이 아름다운 인생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그의 유언은 한편의 시와 같아. 아름답고 절대적으로 인류가 이루어야 할 가치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가난과 빈곤, 죽음과 전쟁, 그리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과 같은 문제로 병을 앓고 있다. 그의 가치관은 아직 유효한 것일까? 자유라는 것은 무엇이고, 인권이라는 무엇인가? 세상에 평화는 무엇이고 인류가 가져야할 가치관이란 무엇일까? 스탈린과 많고 많은 권력자들에게 목이 졸리고 졸려 죽음을 당한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그 자신의 인생과 가족들은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이제 그를 패배한 영웅이 아니라 진정한 영웅으로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그들을 핍박하고 모함한 이들은 모두 후대 역사의 패자로 남았다. 진정한 승자라는 것은 당시의 승자인지 혹은 후대의 평가인가는 모르나, 적어도 인간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것처럼 그의 죽음으로 얻은 이름은 패배라는 아픔을 뛰어넘은 채 승화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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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로 간다 - 열혈 명계남, 리얼 증언과 한맺힌 싸움의 기록
명계남 지음 / 모루와정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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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3일 나는 정말 봉하로 갔다. 이번에 출판된 문성근 배우의 친구이며, 영화제작자 겸 배우인 명계남의 책 제목인 <봉하로 간다>라고 말이다. 이 책은 명계남 배우가 노무현이 처음 정치스타로 되는 시기인 2000년으로 올라간다. 그 당시 북구강서구 을인 허태열 후보에게 패배한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른바 노사모가 결성되었다. 그는 그런 노사모의 중간에서 노사모와 더불어 노무현, 그리고 문성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갔다.

 

여태까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자서전 내지 일화를 다룬 서적들을 보면 상당히 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복받쳐 슬펐다고 한다면, 이번에의 이 서적에서는 그리움으로 복받쳐 악으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단순히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당시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다루는 것보다는 그런 일들에 대하여 아주 열렬하게 깐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조금 즐겁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배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설이란 단어에서 말을 막 내뱉는 것이나, 그 내뱉게 한 일련의 과정과 형태를 보자면 배설 따위는 양반인 것 같았다.

 

노무현이란 인물이 당한 것도 그러하나 명계남 자신이 당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제일 인상 깊은 이야기가 바다이야기란 사행성 도박게임에 대한 일화다. 당시 명계남은 전혀 도박과 무관하고 그 엄격하고 무서운 칼날을 지닌 검찰과 법원에서조차도 무죄로 분명히 판결났다. 그러나 누가 명계남이 바다이야기의 중요사업자란 말을 억지로 만든 것이 이른바 공상 과학적 사고를 비꼬는 pata-physics라는 형이상이상학 영역으로 넘어갔다. 쉽게 이 단어에 대한 말한다면 나는 당신이 그것을 직접 하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나, 나는 당신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법이 여태까지 우리 일상과 사회에서 가장 잘 통용되는 이야기다. 또 다른 것을 다루어볼까? 명계남은 노무현 시절에 국가정치인사에 등용되지 않았다. 물론 노사모 많은 회원도 그렇다. 얼마나 참 국내 인식이 웃기는지 어느 사람이 사업을 벌이려다가 노무현 출마를 보고 대선지지를 호소했다. 그런데 막상 되고 나서 그 사람은 아무런 자리를 받지 않았다. 그는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의 동네에서 그는 자리 하나 못 찬 병신이라고 하여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고 한다. 보통 일반인이 이 정도면 유명인이라면 어떠하랴?

 

명계남의 이야기를 보니 어느 신문을 쓰던 기자가 명계남이 장관자리 요구라는 기사를 썼는데, 그런 허위사실에 대한 정정과 사과를 요구하던 명계남에게 기자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냥 그런 기사를 썼고, 그게 사실이 아니면 말고, 왜 미안해야 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의 언론수준은 세계적으로 상류에 끼지 못한다. 끼지 못하는 이유는 미디어란 자체가 경제적, 정치적 권력에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그것에 알맞게도 저널리스트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 사진기자들이 받는 상인 퓰리처에서 우리나라 기자들은 몇 명이나 받을 수 있을까? 아니 몇 명이나 거기 후보에 올라갈 수나 있을까에 더 이상 희망을 거는 건 포기하겠다.

 

그 정도로 한국에서 언론이란 것이 과연 진실과 정의를 보도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허위와 불의로 가득한 세계로 조장하는지 궁금한 것이다. 언론의 미디어 기능에서 사람들을 일차원적인 사고로 한정짓게 만드는 일은 정말 무섭다. 명계남의 일화에서 어느 부산 횟집식당에 갔는데, 명계남보고 봉하에 가면 한 몫 하겠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신문과 방송에서 그런다고 한다. 그것이 아니라고 하니 믿지 못한 것은 이해하겠다. 그렇지만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결정하란 말에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에 처음부터 언행일치가 되지 않은 의도를 왜 들이대는 것이냐 말이다.

 

봉하사저를 설계한 정기용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하고 만든 가옥이 아방궁이란 말에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고 한다. 그런 정기용에게 분노를 만든 대표적인 신문사의 싸움일화는 정말인지 질리지도 않을 이야기다. 단지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천황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이 느낀 군중심리적 불안요소를 조선인들에 대한 탄압과 마녀사냥으로 풀었다. 사실 대지진이든 소지진이든 지진이란 현상은 자연과학적으로 지각 아래 맨틀과 맨틀의 운동으로 발생하는 자연현상이다. 누가 주술을 부려 만들 수 없는 일이거와 억지로 무기를 동원해도 만들 수도 없다.

 

지진으로 일본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 모 신문 사주는 천황에게 자신이 제대로 조선인들을 통제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한다. 허구일까? 거짓일까? 적어도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벌일 적에 오만 칭송에 조선인들을 관동군으로 보내는 것이 영웅화시키는 얼간이란 점으로 본다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존재다. 그들이 한참 선전하던 시기에 사용된 윤전기가 있었다. 신문을 만들어서 빨리 보급하려면 인쇄시설이 필요하지 않은가? 처음에 독립기념관에 있었는데, 그게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 시절에 못된 짓만 했다. 그런데 그 기계를 사용한 사주가 다시 반환 요구했으나 독립기념관에서 거부했다. 그것이 기증된 이상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현실이 한국에서 최근에 벌여진 일이다.

 

스펙타클(spectacle)이란 단어는 본래 이미지가 매개로 되어 구성된 인간사회를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펙타클이란 단어를 모른 채 뭔가 엄청나고 상당한 일들을 보면 이래 말한다. “우와 스펙타클하다!” 오히려 스펙타클한 것은 그 사람들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정신적으로 파고들어가고 있는 그 사람들의 의식이다. 어째든 정확한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발언되는 스펙타클하다가 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째든 명계남이 직접 본 노무현이란 인물은 내가 알고 있는 노무현보다 더 바보였다.

 

나같이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이라도 고급 메이커 이름 정도 하나 둘은 외운다. 가령 차는 벤츠, 아우디, 포르쉐라든지 내가 좋아하는 전자기타는 깁슨, 펜더, 잭슨이라든지 말이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것은 운전하는 사람만 몰고 전자기타는 기타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구매한다. 그러나 옷은 다르다. 옷은 자동차처럼 개인 선택이 아니고, 기타처럼 취미영역도 아니다. 옷이란 것은 일상생활에 늘 입고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사항이다. 그래서 옷에 명품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으나 대충 듣기론 닥스나 폴로 정도만 안다. 그리고 알마니 일까나? 노무현이 넥타이가 하도 낡고 지저분해서 새로 받은 넥타이를 차는데, 그것이 알마니인줄 모르고, 알마니가 유명하다고 물었다.

 

할 말이 없다. 그는 나보다 더 비주류적인 인간생활에 빠져 있던 것이다. 비주류다 못해 같은 비주류권조차도 비주류였다. 그가 탄핵 이후 노사모에서 시위를 했고, 얼마 뒤에 진보사회단체에서 항의시위를 할 것이니 노사모는 빠지라고 한다. 문제는 그 단체들은 시위 후에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이 정도면 양반이 아닐까? 그가 대통령 경선에서 이인제를 이기기 전에 그를 매도하는 것은 반대진영이 아니라 같은 후보자였다. 그가 대선후보로 지정되자 그의 사무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같은 당내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아주 철저하게 말이다.

 

당내에서 그를 밀어준 것이 아니라 노사모가 그리고 노사모를 본 국민들이 그를 밀어줬다. 물론 돼지저금통으로 만든 대선자금 말고 또 다른 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정녕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가 달린 대선운동은 다른 후보와 달랐다. 다른 것은 그가 가진 것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본 바보들이 있었다. 물론 너무 바보스럽게 오면 비판의식이 상실한 교조주의자로 변질될 수 있겠지만, 그런 점들은 노무현이란 진보적인 대통령의 맞수인 보수주의자보단 오히려 진보주의자였다.

다른 서적들을 보면 노무현은 상당히 진보주의자들에게 실망하고 섭섭한 감정을 털어 놓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통령이 1번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계속 꾸준히 하나씩 개혁으로 통해 풀어갈 수 없다. 대통령은 혁명이나 쿠데타로 뽑은 자가 아닌 이상 그는 모든 것을 조금씩 고쳐갈 운명이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러시아혁명으로 통해 차르를 붕괴하고 케렌스키와 백위군을 몰아내도 여전히 러시아는 가난하고 어지러웠다. 단지 그들은 더 망가지기 전에 스톱만 했을 뿐, 혁명이 일어나도 그 스톱된 위치가 개선된 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프랑스혁명도 마찬가지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단두대의 이슬로 보내도 여전히 프랑스 내의 농민과 노동자는 계속 굶고 허덕이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계속 어지럽고, 당통이 죽고 로베스피에르도 역시 단두대 아래 사라진다. 혁명조차도 그런 난항을 겪는데, 혁명보다 더 정부를 운영하기 힘든 개혁정치는 오죽하겠는가? 그런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교훈으로 통해 얼마든지 우리는 알아갈 수 있는 점들을 노무현은 알고 있었으나,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의 비난이었다. 내가 가장 속이 시원한 부분 중에 하나 명계남이 그런 진보주의자들을 무척이나 비판한 것이다. 진보라는 존재는 인식에 대한 재확인, 재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도리어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다.

 

물론 진보도 문제이거니와 보수는 그런 인식에 대한 재확인, 재인식, 전환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적어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사회적인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 지역갈등, 노동문제 등은 기본적으로 나올리는 없을 것이다. 모르겠다. 최근에 부산 북구강서구 을에 후보로 나온 문성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올해 겨울에 나온 부러진 화살에서 그 영화 속에 문성근이 출연한 이유로 그 장면이 나오면 안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선거 전에 영화배우 인물이 공식적으로 이미지가 보이면 선거활동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주 예전에 문성근이 출연한 영화중에서 그가 아주 변태적이고 정신병자 역을 맡은 영화가 TV에서 100회나 방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요건 무엇인가? 지금 나온 것은 그렇지만, 과거는 왜 나오는 것인가? 어째든 내가 적는 글이기는 하나 이 글이 100% 객관적이고 비판적 입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있었던 일화로 본다면 반 이상은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있지도 않은 일들을 꾸며 되어 기정사실로 만들고 있는 전문적인 소설가들에 비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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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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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정치와 사회적인 글들보다는 정치학과 사회학적인 글을 더 많이 보고 적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번만큼 2012년 5월에 일어난 아이러니한 사건을 옮겨 적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故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인 유시민을 대해서이다. 그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퇴임할 때까지 노무현의 정치적인 대변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질 때에는 모든 것을 제겨두고 봉하마을로 내려와서 분노와 좌절, 그리고 슬픔을 토해내었다.

 

그런 유시민이란 인물이 최근에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 그것도 다른 정당적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정당적인 존재에서 말이다. 노무현처럼 그도 사실 야권 제1당에 뿌리를 내려 권력을 얼마든지 유지시켜 볼 수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보처럼 그냥 자신의 눈앞의 이익을 손에 놓아버린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각자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적어도 보통 사람이라면 정치적인 권력에 눈독을 안 들 수가 없을 것이다. 정치란 권력에 향한 의지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유시민이 정치적 테러를 당한 이유는 바로 주사파 급진적이라고 하나 내가 볼 때는 그저 좌파를 빙자한 수구적인 세력일 뿐이었다. 그런 조직들에 대한 테러에서 유시민이는 이번이 처음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는 이미 참여정부에서부터 노무현과 같이 그들에게 현실적인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았으나, 결국 결과는 비참했다. 하지만 유시민이 욕을 먹어도 비난을 들어도 자신이 추구하던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에서 그가 경호하고 싶은 노무현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을까?

 

서적 본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세력들이 이제는 싸워야할 대상보다는 공동으로 바라보고 협력해야 할 무엇을 향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괴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보란 무엇이냐, 그는 항상 왕과 귀족이 누리던 권리를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누리는 사회로 인권이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을 진보라고 이야기했다.> 바로 진보란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고 하는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그 오랜 대립과 갈등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진보와는 다른 진보를 꿈꾸었다. 보수가 기득권과 강자의 자유를 보장하며 힘에 의한 질서를 강조한다면, 진보는 바로 그들이 누리는 권리를 힘없는 사람들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라 보았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세력에는 파괴만 있을 뿐, 창조적이고 새로운 대안이 없어 보였다.> 나 역시 진보주의 경향이나 이 말에 상당히 동감한다. 과거 프랑스혁명성공 찾아온 당통의 죽음과 테르미도르반동은 그야말로 진보의 실패를 보여준 혁명이고, 러시아혁명 역시 레닌 사후 스탈린의 집권으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후퇴시키는 오염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유시민을 가격하고 그 유시민의 노력을 묵살하는 진보란 과연 진보적일까? 내 눈에 그저 스탈린이 나타난 이후 스탈린에 붙어 러시아혁명 이후의 러시아권력층이 되려고 하는 인물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 진보의 한계, 진보의 앞길을 제시한 노무현, 그 뒤를 따라가는 유시민, 이 둘을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둘 다 바보라는 것이다. 물론 바보는 노무현 쪽이 크다. 그의 바보짓은 너무 바보 같아 화가 나고 욕이 나오고 때로는 눈물이 나온다. 너무 바보 같아서 그런 바보를 다시 볼 수 없음에서 말이다.

 

이 책에서 다시 인상 깊은 실화가 나온다. <정부는 일만 열면 노사 화합을 외칩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한 번 해보려고 하다가 전기도 끊기도 수돗물도 끊긴 공장 바닥에서 스티로폼 한 잔 깔고 앉아 생라면을 씹고 있는 노동자가, 가족이 가져다준 주먹밥마저 빼앗겨서 불타 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는 노동자가, 그리고 끝내는 감옥 갔다가 해고되어 길거리에 내쫓긴 이들 노동자가 그것을 내팽개친 기업주의와 이 땅 위에서 화합하고 살기를 기대하십니까?>

 

이 글에서 나는 여기까지는 아니나 비슷한 상황을 본다. 반평생 넘게 배를 타면서 선원일을 하던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노무현이 네 부모만큼 좋아하냐 말에, 부모와 비교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 적어도 노무현은 우리 아버지 같은 노동자들을 진실로 생각한 사람이다. 우리 아버지가 오셔서 배타는 이야기를 해준다. 온도가 40~50℃ 되는 기관실에 갖은 소음과 진동,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고 말이다. 배가 좋으면 몰라도 침몰 일보직전이라면 노동적정시간 준수는 기대하지 못하고 열 몇 시간 이상 일에 시달리고, 주말에도 일을 한다고 한다.

 

물론 배를 타는 특수한 상황이니 문제 발생 시에 어떻게는 조치를 해야 하나, 그래도 배를 타고 외국으로 국내로 오고가는 화물선의 비화를 들어보면 선원노동자의 실태들을 알게 해준다. 아버지 몸에 새겨진 상처자국과 화상자국, 고된 노동으로 물집이 생기고, 신체기능까지도 장애가 오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이미 귀가 난청이다. 단지 저렇게까지는 아니나, 저렇게 당한 사람만큼 노동착취를 당하고, 불평등한 계약에 서명하지 않으면 배에 타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에게 대한민국은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내가 <네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웃기지만 그런 사람들을 가장 착취한 부류가 왜 선거만 되면 시장과 골목길을 돌며 서민층을 보살핀다고 하나, 왠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나보고 바보 같은 노무현을 왜 좋아하냐 물어본다면, 당신은 그런 비참한 경험을 하고 있는 당사자와 그 당사자의 가족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가능하면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먹을 쌀이 없어 굶는 서러움, 집이 없어서 어느 처마 아래나 배 갑판에서 자던 날들, 배우지 못한 이유로 핍박당한 사연들 그 모든 일들을 겪어야 했던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비화를 말이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에겐 관대해도 타인에게 날카롭다.

 

그런다고 모든 노동자를 노무현이 구해낸 것은 아니다. 인간 노무현은 혼자이고, 그는 권력도 돈도 없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돼 주었다. 레이온 실을 만드는 회사였던 원진레이온은 작업 중 이황화수소라는 독가스가 새어 나와 인체를 마비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엄연한 직업병이었으니 회사는 당연히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현은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 다시 한번 회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독가스에 중독되어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휠체어에 타고 나와 있었다. 곁에는 어린 딸아이와 가족들이 있었다. 그 환자의 얼굴은 차마 눈뜨고는 쳐다볼 수 없는 상태였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에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서둘러 인사를 건넨 뒤에 부랴부랴 차에 올라타 정문을 나오려는 순간, 그 어린 딸아이가 붕고차 유리문에 울며 소리쳤다. “우리 아빠 좀 살려 주세요” 소녀의 등 뒤로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가 보였다. 일그러진 뺨 위로, 기묘한 그 표정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현은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겪은 사람이 자신이 고용주와 계약을 해서이고 그리고 그 계약은 자유라고 하며, 게다가 이런 일을 당하면 왜 좋은 직장을 가지지 못했냐고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전국에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런 사람 옆에 가족들을 포함하면 얼마나 되는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다. 최소한의 법과 제도를 어긴 것은 누구인데, 항의하는 자들에 대해 법의 파괴자라고 한다. 과연 파괴자는 누구이며 그것을 만든 자가 누구인가? 바보 노무현은 이들을 위해 투쟁했다.

 

바보처럼 굴다가 변호사직도 정지당하고, 바보처럼 굴다가 감옥에도 가야했다. 그가 간 이유는 산업재해로 죽은 공자노동자들이 항의하는 자리에 갔는데, 거기에 상관없는 사람이 갔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이 주인이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노동변호사 인권변호사란 말이 나오는데, 실상 인권변호사에서 인권을 중시하고 지키는 변호사란 단어가 생겼는데, 모든 변호사는 인권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데, 그 의무감은 어디로 갔는가?

 

그의 바보짓은 계속 되었다. 부산 북구 총선에서 당시 여권의 핵심인데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했고, 지역주의에 눈물을 지어야 했다. 그리고 연속적인 도전에서 제대로 승리의 깃발을 잡지 못한 그가 2002년 대권을 향했다. 웃긴 말로 진보 사이에서나 같은 당에서도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고졸이라 상대해주지 않은 것이다. 진보라고 떠들어대는 인간 역시 엘리트주의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렇다. 그의 퇴임 후에 측근비리에서 스캔들이 터졌는데, 부인이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 가난하게 살아오고, 가난하게 물러났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바보 같이 권력을 대비하지 않았고, 재임시절 그는 자기가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돈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대통령 개인 판공비 수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사회에 헌납했다는 것에서 나는 그것을 실제로 지켜보았다. 2003년 매미태풍으로 한국은 거대한 재난재해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그 재해복구비용을 노무현의 판공비를 내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음 해부터 내가 군부대 간부로 근무하면서 예산용도와 예산의 출처를 확실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보처럼 남 좋은 일만 실컷 만들고, 자기가 누려야할 앞가림을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시달릴 때 자신의 지나칠 정도의 강박증이 그렇게 내몰았다. 그래서 원망스럽고 마음이 더욱 아픈 것이다. 2009년 봄에 그에 대한 언론과 권력이 목을 조르고 있을 때 그는 주변 사람들과 바라보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붙잡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일화 중에 가시고기라는 생선이 있다. 가시고기 부부가 알을 놓을 경우 암컷은 놓자말자 다른 곳에 가서 죽고, 수컷은 알을 지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암컷이 알을 놓을 때 그 특유한 냄새로 천적이 와서 알을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고, 수컷은 그런 알을 지키고 난 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로 하여금 자신의 살을 파먹도록 한다. 먹이를 찾아다니면 다른 천적에게 공격당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바보 노무현, 정말 그는 가시고기마냥 모든 것을 다 던지고 시대를 떠나갔다. 하지만 육체는 던져도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엄청난 바보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런 바보를 생각하면서 뒤에서 몰래 바보처럼 울고 있는 나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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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대통령 - 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 1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한걸음더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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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적는 나는 그 날의 허무와 감각적인 마비, 그리고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내 가슴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는 분노, 슬픔, 분노, 좌절, 절망, 아픔, 고뇌, 번뇌, 충격, 충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들을 나를 덮치려 하고 있다. 책이라는 것은 이성적으로 보고 판단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었다. 오직 나에게서 분출되는 것들은 피로로 가득한 내 두 눈 속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과 입으로 말하지도 못할 한숨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지우랴? 그날의 일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패배주의에 주저앉은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이토록 괴롭게 하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게 하는 사람, 노무현, 나는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점점 가난해지는 서민들, 나이가 환갑이 넘었는데, 나중에 아들 결혼비용 만들어보겠다는 내 아버지, 수축해져가는 내 지갑과 은행잔고들, 내 개인적인 상황, 주변 상황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씁쓸하다.

 

물론 모든 생활이 정지될 정도는 아니나, 점점 박탈감으로 가득해지는 나와 주변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보면서 더욱 더 노무현이 그립다. 한때 봉하마을에 가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나라는 자신의 무력함과 나약함에 좌절감을 맛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절감을 이기기 위해서 그리고 아픔과 고통을 넘어 새로운 인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가시밭길을 넘어야 할 관문이다. 이제 추모 3주기를 맞아 내 모든 슬픔을 뱉어버리고 싶으나, 뱉어보려도 더욱 가슴만 아플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 말인가?

 

“내 마음속 대통령” 노무현, 그는 정말 시대와 현실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힌 인물이다. 기득권과 특권계층에 대해 끊임없이 대항하고, 그들과 맞서다가 상처도 받고, 많은 오명 아래 괴롭게 가슴이 타들어갔다. 한국에서 살다보면 과연 도덕이 무엇이고?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면 회의적으로 돌변한다. 독일의 자유에 대한 모순과 왜곡을 신랄하게 조롱하던 니체가 과연 “정치는 권력에 향한 의지”라는 말처럼 한국에서 도덕과 정치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role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가치나 윤리적인 가치가 아닌 힘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모든 도덕과 정치가 변질되었던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그런 한국의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role과 싸웠다. 빽도 없고 힘도 없으면 그저 입 다물고 닥치고 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결국 최소한의 상식이 아닌 몰상식과 폭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에서 말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런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날려서 거기에 대항하던 하나의 상징이고, 그 상징으로서 기득권과 특권계층에 대한 상징에 대항하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언론과 여론은 너무 심상치 않았다. 검찰에서 분명히 확정되지 않은 정보가 다음날 특급 기사로 표지로 실려 생생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최근 차명계좌 관련하여 검찰에서 그것은 <사모님의 생활비를 여비서 통장 200만원에 입금한 것이었다.>라고 인정했다. 무참히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어 검찰마저도 그런 발표를 했다. 왜 사실이 2009년 5월에 나오지 않았을까 했다. 그저 생활비를 관리하던 여비서의 통장까지 스캔들로 만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때는 오죽했을까? 측근비리라고 하여 증명되지 않은데, 마치 사실로 만들려고 했고, 증거가 나오지 않자 거래고객과 방문자들 심지어 고객들의 정보까지 억지로 검색했다. 자주 식사했었던 식당과 허리 치료를 받기 위해 진료한 병원까지 털었다. 정말 이것이 정치의 하나의 순리고, 인간에 대한 배려인가?

 

죽음에 직면의 고인은 어떻게 보았을까? 자기 주변의 사람들로 자신에게 겨누어진 화살은 받아들임은 분명 옳은 일이다. 하지만 아닌 일까지 겨누고, 진실의 메아리는 벽에 가려 막혔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거기에 의탁하는 것이 진정한 법의 수호가 아니던가? 한국에서 법이란 그저 권력을 향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미디어는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형이상이상학(pata-physics)적인 공상과학 소설처럼 변했다. 그 공상과학 소설의 끝은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란 커다란 충격까지 이어졌다.

 

인간의 생명은 간단하지 않다. 우주만큼 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 했음에 자기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인간들이 살아간 인생이란 과연 얼마나 잔혹하고 슬프고도 분노와 광기로 쌓여 있을까? 그러나 그 죽음이 개인의 이유인가? 아니면 개인의 이유를 넘어 하나의 시대적인 비극일까? 노무현의 죽음은 어느 대통령의 죽음으로 볼 수 없다. 막막하고 답답하고 괴로운 우리 시대의 서민들 약자들 그리고 나 같이 아웃사이더적인 인물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지키려고 한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10대 소녀부터 나처럼 30대 남자, 더 나아가 환갑 넘은 어르신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기 했다. 그의 죽음은 우리들 가슴 속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킬 수 없어 멀리서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일개 서민들에게 그저 악몽에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자기에게 너무 엄격하고, 남들에게 너무 관대한 바보 같은 사람,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그의 죽음을 너무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때까지 그 많은 시련과 고통, 장애들을 넘어간 일어선 그가 이토록 허무하게 가냐고 말이다.

 

하지만 더욱 더 큰 시련과 고통, 장애는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의 죽음은 편안하지 못했다. 국민장을 하느니 마느니 에서 갈등을 빚었고, 노제에서 살풀이를 하는데, 정부 측에서 일방적으로 등을 돌렸고, 시민들이 만든 자율분향소에는 경찰들만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시민들의 분향소를 만들려고 하면 철거하던 경찰들이 시민들의 항의에 철거했지만, 어떤 건물 앞에는 버스를 세우고 뒤에는 물대포차량이 있었다고 한다. 상식인가? 정상인가?

 

망자에 대한 예우나 격식에 대해 예초부터 없었다. 슬픔과 눈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공간이나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그들을 예비 집회자 내지 시위자로 판단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점들을 집회 내지 시위로 만들 수 있었던 자극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럴 때에 집회와 시위를 한다면 장례에 대한 예의도 망자에 대한 존중도 아니다. 그래도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찰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장례행사가 마무리되던 때에 노란색 물건조차도 가지고 못하게 하던 공권력 앞에서 최소한의 자유마저 박탈했다.

 

노무현의 죽음에서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는가?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이렇게 저렇게 옳다고만 여길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최근의 정철 카피의 “노무현입니다”를 읽었다. 그가 대통령 시절 사진 찍기 싫어하던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거기에 순간적으로 찍힌 그의 표정에는 어떤 권위의식이나 권력을 탐하던 모습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인간 노무현만 존재했다. 가끔 나는 노무현의 신화를 생각한다.

 

노무현은 이미 육체적으로 죽었다. 존재하던 인간이 실존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그의 진행형적인 삶은 이미 모두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신화적인 존재로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인정하면서 그가 살아있다고 하는 신화적 존재처럼 과연 그는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단지 나는 그가 남긴 숙제를 하나씩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최근 읽은 책 중에 존 롤즈의 “만민법”을 읽었다. 병실에서 누워 죽어가는 그날까지 책을 집필하던 위대한 미국철학자 존 롤즈의 글을 읽으면 이런 말이 있다. 단어가 모두 기억나지 않으나 어렴풋이 이런 내용인 듯하다.

 

<진보란 역사적 상황에서 역사적 인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인식조차도 철학적 인식에서 나온다.> 라고 말이다. 과연 영문이 The Law of Peoples처럼 Peoples란 만민도 되나 시민도 된다. 노무현이 꿈꾼 정치적 사회적 가치는 시민사회였다. 시민은 단순히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 중에 한명이 아니라 그 한명이 정치적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올바른 가치관으로 통해 사회를 이끌어 가는 대다수의 리더이다. 물론 시민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많은 지식인들은 시민들을 만들고 계속 유지하기 위해 글을 적고 가르쳐야 한다. 과거와 현실에 대한 인식만이 아니라 그 인식에 대한 재인식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란 정말 너무나도 어렵다. 하지만 내 마음속 대통령이 살아있는 한 나는 계속 정진할 수밖에 없다. 그의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그가 단순히 죽음과 동시에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던 가치관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비록 실패하고 좌절했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와 좌절이 반드시 모든 것을 실패했고, 좌절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실패와 좌절로 통해 오늘날 우리가 그를 타산지석 삶아 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아프다. 그의 진실함이 너무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한 내 마음속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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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 -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
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한지영 옮김 / 필맥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1917년 10월 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트로츠키, 그의 활약은 러시아 대표적인 영화감독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10월”이란 영화를 보다시피 그의 영웅적인 활동은 이미 러시아 사회에서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1927년 영화 10월이 나올 적에 트로츠키의 모습은 분명히 그 누구보다 앞에 서서 열변을 토하고 전진하던 모습이었다. 만약 당시 러시아의 모습을 예기치 못했다면 그가 그런 비극적인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까지 남길 정도다.

 

그는 당시 인생 최고의 비극적 난관에 부딪혔다. 오데사에서 붙잡혀 시베리아로 가는 유형에서도 심지어 10월 혁명전에 케렌스키에 의한 압박에서 말이다. 그는 분명히 러시아혁명을 성공시켰고, 거기에다가 외국과의 전쟁에서 더 나아가 외국이 지원하는 백의군까지 토벌했다. 그런 러시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을 울부짖은 트로츠키의 말로는 비참하고도 우울하기가 짝이 없었다.

 

트로츠키는 너무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서 시작하여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미래를 투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과 더불어 현재의 상황을 아주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냉정하게 바라본 것이었다. 그의 엄숙하고 차가운 시선에서 그의 열변은 뜨겁고 화염처럼 쏟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신념이고 의지였다. 문제는 그런 점들이 자신에게 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권력과 특혜를 그는 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가 레닌생전에 제2인자를 위치라고 모두 인정할 때도 그는 권력을 주어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권력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거부하였고, 그것에 대한 미련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서 앞으로 다가올 암흑의 러시아가 도래함은 필연적이었다. 트로츠키의 그런 태도가 바로 자신의 파멸을 이어온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파와 우파를 오고간다. 러시아혁명에서 극렬한 좌파들이 이제는 러시아혁명정부에서는 극렬한 우파로 변모한다. 그들에게 권력이 생겼고, 그들에겐 명예와 지위가 생겼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게도 자신들의 중요한 과업을 잊었다. 차르와 백위군, 케렌스키와 서구열강을 물리친 후에 다가올 자신들의 나라에 어떻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 모든 압제들이 사라진다고 하여 러시아에겐 희망이 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희망을 열어갈 수 있는 열쇠 1개만 던질 뿐이다.

 

트로츠키는 이 모든 상황을 접수하고 나서 큰 위기가 도래함을 알고 있었다. 러시아는 당시 너무 후진국이고, 모든 국민 대부분이 농민이었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수많은 무기와 기계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러시아 상황은 차르 정권보다 못한 공업생산량과 서유럽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무장능력을 자랑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트로츠키가 서구열강에게 지원받는 백위군과 다투면서 그들을 이긴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나라가 힘들었다. 트로츠키가 선택할 사항은 독재였다.

 

하지만 그는 진실로 독재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러시아 각 분파의 최고위원을 맡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자신이 살던 집은 매우 낡고 허름했으며, 그가 가진 가구는 싸구려 옷장과 침대, 식탁이었다. 그런 집에 늘 손님이 찾아와 트로츠키는 대화를 하고, 높은 지위에서 공장노동자까지 그는 그 누구라도 자신의 방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 그가 욕심을 어떻게 냈으랴? 그는 독재를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고, 그것을 토대로 다시 경제성장 후에 러시아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로츠키의 정치력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그가 만약 필요한 인물이나 사상, 체계, 문물이라면 그 적들의 소유까지 배우고 습득하여 언젠가는 그들에게 전달한 그 상대진영까지 계속 혁명을 나가야 하는 점이다. 트로츠키는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만의 나라가 살기 위해서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이 심각한 경제난 식량난에 전쟁까지 당했으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동쪽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의해 제국주의 침탈로 식민지 주민들이 심각한 고통을 받았다.

 

그런 기억에서 그런지 방송국 특집에서 러시아5부작 혁명이야기를 다룬 작품에서 1920년 모스크바 코민테른 행사 현장에서 태극기가 높이 휘날리고 있음을 보았다. 독립군 이동휘와 박진순이 조선독립을 위해 러시아에 방문한 것이다. 레닌이 살아있을 때 그는 동북아시아이 약소민족인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고, 군자금도 지원했다. 그러나 레닌이 죽고 트로츠키가 망명가고 난 뒤인 1936~1938 사이 많은 조선독립군들은 스탈린의 철권정치에 죽임을 당한다.

 

만약 이때 트로츠키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으면 중국 공산당이 일본과 항일전투를 제대로 벌였으며, 국제적인 관계를 제대로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원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일국사회주의를 원했고, 그것은 국가자본주의를 넘어 전시공산주의로 유지하게 된 동기이다. 오늘날의 공산주의를 혐오하게 하여 이른바 반공사상을 만들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바로 스탈린에 의해 주도된 러시아 쇼비니즘적인 태도 즉 민족주의적인 요소이다. 역사란 항상 반복되는 것일까?

 

세계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은 1789년과 1917년에 일어났지만, 결국 실패했다. 프랑스혁명은 자코뱅당은 몰락과 당통의 죽음 그리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국민이 주인이 아닌 관료주의가 주인이 되었다. 전쟁은 계속되고 국민들은 거기에 열광해 갔다. 여기서 러시아와 프랑스혁명의 비극은 국민들의 한계였다. 스탈린의 정책 중에서 스탈린주의를 늘리기 위해 많은 노동자를 당원으로 받았으나, 그들은 무식했다. 정치적 안목, 국제적 상황, 사회적 변화, 경제적 관점, 문학적 감명, 철학적 원칙 따위는 전혀 없었다.

 

오로지 레닌이 사후 레닌을 따르는 열광적인 군중심리와 한몫 잡아보겠다는 기회주의자들만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그게 아직도 계속인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자주 보인다. 그런 요소들은 스탈린을 강하게 하고 트로츠키를 어렵게 했다. 왜인가? 트로츠키가 하는 말은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아주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때로는 열정적으로 토한다면 스탈린은 간단했다. 지금의 안위를 위해서란 것이다. 일국사회주의라는 체계에서 스탈린은 자신들의 안위만 중요시하고 그것은 결국 어리석은 군중으로 하여금 세뇌했다.

 

나중에 다가올 쿨라크의 학살과 착취, 노동자에 대한 막강한 착취와 억압, 자유로운 언론의 탄압, 과거 러시아혁명의 영광을 모조리 분뇨 속에 묻어버리는 스탈린의 작업은 드디어 준비되었다. 스탈린은 레닌이 트로츠키를 아낀 점에서 매우 경계했고, 그 둘 사이를 멀어지기를 바랐다. 특히 레닌이 1922년 총상 이후 1924년도에 사망할 때 스탈린은 기회를 맞이했다. 당시 트로츠키는 심한 병을 앓고 있었다. 오랜 투쟁과 열변에서 그의 몸은 병에 찌들어 갔다. 특히나 레닌이 죽을 때 그는 레닌의 죽음을 전해 듣지 못하고, 스탈린과 긴장관계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큰 치명적인 약점으로 만들어버렸다.

 

레닌의 장례식에 가지 못함은 결국 레닌과 트로츠키 사이를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레닌과 트로츠키 사이는 레닌의 아내가 그러하듯 혹은 많은 10월 혁명가가 인정하듯 모두 둘 사이의 우정과 연대를 지지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트로츠키를 궁지에 내몰고, 트로츠키가 제안한 모든 정치적 과제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특히 NEP라는 신경제정책에서 트로츠키가 모든 것을 일구어내고 그것에 따른 오류와 왜곡을 정정하려고 했으나 스탈린은 오히려 못하게 하고 그것에 생기는 현상 모두 트로츠키에게 전가시켰다.

 

당시 농부들은 정말 무지했다. 쿨라크라는 부농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 신경제정책에 생긴 벼락부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보았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스탈린에게 의지하다가 후에 자본주의보다 더 심각한 자본주의화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트로츠키가 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쯤 트로츠키는 이미 러시아에 더 이상 올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그가 나가기 전에 러시아혁명 정치가들은 얼마든지 트로츠키와 연대하여 정치를 원상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하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와 같은 인물들은 처음에 트로츠키와 대립만 내세우다 어느 순간 스탈린에게 모두 권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1936년에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1938년 부하린은 스탈린의 공포정치 아래 총살당한다. 여담이나 부하린의 죽음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소련을 침범할 때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스탈린은 정치공작과 권력정치에는 능했으나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문학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의 수완은 그런 뼈아픈 경험으로 생긴 하나의 대가였다. 트로츠키의 어리석음은 그런 스탈린을 방조한 것이었다. 그를 좀 더 알았더라면 많은 고통들이 자신에게 러시아에게 닥치지 않았을 것이다.

 

1번째 아내에서 태어난 2딸이 스탈린과의 대립에 의해 죽어나갔다. 그녀들은 트로츠키주의자였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아내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냉대와 핍박은 가난과 병폐로 생을 마감하게 한다. 그런 가족의 죽음 친구들의 배신과 전복에서 트로츠키는 병마와 더욱 싸워야 했다. 불면증에 말라리아는 그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지치게 하는 것은 불량하고 사리사욕만 채우는 인간들이 마치 위대한 정치가 놀이에 빠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로츠키가 코민테른 회의장에 갔을 때 각 국의 대표를 보니 가관이었다. 예전에 파시즘에 빌붙은 위선가 앞으로 나치에게 붙은 변절자들이 모두 모여 트로츠키에 향해 공격했다.

 

그에게 더 이상 러시아에 있을 위치는 없었다. 그래도 희망이란 스탈린의 정치적인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그의 복귀를 모스크바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스탈린은 그것마저 용인치 않았다. 그를 모스크바에 멀리 떨어진 카자흐스탄 어느 벽촌에 나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를 러시아에 두려하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그렇게 스탈린이 보낸 특수열차에 러시아를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자기가 러시아에 올 때 그는 비참한 혁명가고, 이제는 비참한 망명자였다. 그러나 그는 질수만 없었다. 그의 동료가 트로츠키가 처음으로 스탈린에 의해 유형을 보낼 때 자살하면서 트로츠키에게 이렇게 “불굴한 의지와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길 바랐다.

 

운명이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하나, 트로츠키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이토록 변화될지 몰랐을 것이다. 그가 이때가지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것을 이루려고 살았던 것만큼 그 배반의 아픔이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가슴 아픈 사실은 여전히 역사란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스탈린에 의한 군중심리 자극과 무지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대중들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사용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만 따르고,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오로지 안일만을 위해 살아가다 결국 희생당한다. 인간에게 왜 지나간 역사를 보고 또 보란 이유는 역사로 통해 당시의 사회를 알고 인간의 한계를 배워나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철학적 자세를 유지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혁명의 자리에서 레닌보다 더 앞에 나서서 언제라도 총알에 맞을 각오가 된 트로츠키는 배신당한 혁명에서 병마에 시달린 채 가족을 잃은 채 멀리 아주 멀리 떠나야 했다. 그의 인생살이에서 우리는 어떤 점을 생각하고 보고 생각해야 하는가?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은 항상 고독한 것 같았다. 때로는 비난과 배신에 시달리고, 자신이 주장한 것이 결국 도래하는 사태로 인해 허무함과 박탈감에 주저할지도 모른다.

 

트로츠키는 “어중간한 지식과 어쩡쩡한 능력만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시했다. 그는 단순히 알고 있는 것만이 모든 것이 아닌 그 자체를 알아서 그 원리까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많은 불가능으로 다가왔다. 대중들은 러시아혁명으로 차르를 몰아내고 백위군을 몰아낸 것이 전부로 알았던 것이다. 단지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을 향한 하나의 초석임을 몰랐으며, 그들의 어리석은 결국 자신들의 미래까지 모두 버려야 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사실이며, 냉정한 현실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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