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 -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
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이주명 옮김 / 필맥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예전에 읽은 동물농장의 중요한 이야기가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40년 8월 2일에 일어난 트로츠키 암살 사건의 맥락이 연결된다. 트로츠키가 러시아에서 추방되고 이제 더 이상의 트로츠키가 정치적 권력으로서 정치에 임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그는 온갖 조작, 비방, 왜곡, 공작으로 통해 자기의 일어날 공간을 빼앗긴다. 그가 처음 러시아에서 떠날 때는 러시아혁명을 위한 전초전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영원히 러시아에서 머물 수 없는 추방자로 낙인을 찍혀버렸다.

 

그렇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보여주는 비극의 유머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성장을 위해 공업화가 필요하여 농민으로부터 야유를 받는 그의 난감함을 스탈린이 꼬리 잡아 트로츠키를 정치적으로 패배시켰다. 하지만 웃기게도 가장 러시아 농민인 굴락과 무지크를 억압한 사람은 스탈린이다. 그의 폭력적인 테러리즘은 사회주의 혁명이란 숙제를 그저 독재정치의 역사적 교훈으로 부각시켰다. 사실 트로츠키는 영구혁명론인 반면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였다. 그가 노린 전략은 대중들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적 존재 본능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조작법과 더불어 공포심이란 것을 이용했다.

 

가령 말 잘 듣지 않는 오리가 있다면 그 오리를 잘 대해주어서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오리털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심지어 치유될 수 없는 큰 흉터까지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리는 폭력을 휘두른 인간에게 따라온다. 그것은 옛날 고대부터 이어온 정치적 테러리즘이다. 스탈린은 그 폭력을 아주 교묘하게도 이용하였고, 심지어 그 폭력으로 통해 스탈린주의자에게도 그 폭력을 향했던 수준만큼 되돌려준다. 오죽했으면 게페우라는 비밀경찰조직을 통해 온갖 살인과 테러를 일삼았던 것도 모자라 그들마저도 총을 심장을 향하게 했다. 단지 어이없는 부분은 처음에 희생당한 정치인들은 모두 트로츠키를 음모의 원흉이라고 했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는 레닌과 더불어 러시아혁명을 일꾼 영웅이고, 코민테른에서 아주 중요한 입장과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의 위원회에서 활약을 했다. 그들은 트로츠키가 옳아도 트로츠키에게 죄가 있다고 했다. 그들은 죽음은 받아들이되, 그들의 어리석음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어리석음이 보였다. 그러나 지노비예프는 처음에 레닌에게 10월 혁명을 반대한 것보다 지금의 스탈린에게 당한 것이 치욕스럽다고 한다. 트로츠키의 선견은 결국 현실로 되었고, 트로츠키가 터키와 노르웨이, 프랑스로 전전긍긍한 후 최종적으로 멕시코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에 스탈린에게 절대적으로 봉사하고 버림받은 부하린마저도 죽음을 당한다.

 

예전에 보았던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이란 서적에서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내용에서 부하린의 죽음을 토대로 <한낮의 어둠>이란 소설을 인용한다. 대중들의 자발적인 폭력으로서 세워진 소비에트연방이 이제는 대중들에게 향하는 폭력으로 스탈린주의 독재국가로 변질된다. 시대착오적인 그 사상은 분명히 소비에트연방이 미국을 이은 경제 및 군사강대국과 과학기술의 절정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나 그것은 진정한 진보가 아닌 폭력과 조작으로 통한 집단주의였다. 아니 파시스트적인 요소가 강한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문제가 최근 국내에 일어난 점에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한 집단주의적이고, 오류만 남은 그 사고들이 아직도 망상의 유령이 아닌 현실의 유령에서 말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사실은 그 유령과 더불어 그 유령을 향해 미친 듯이 침을 튀기고, 확대화 하려는 자들은 유령을 떠나 악령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러한데, 당시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트로츠키의 선견지명에 정말 놀란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의심하고 내쫓은 노르웨이 정치가에게 언제가 나치의 정복으로 당신들은 모두 도망칠 것이란 사실에서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트로츠키는 독일에 일어난 나치의 강성과 히틀러의 위험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은 소비에트연방에게 쫓기고 스탈린에게 죽음의 위기가 오기에 말할 힘이 없었다. 자신의 입은 언제나 열려있으나 옆 사람들은 귀가 막혀버렸다. 그렇지만 결국 그의 위험은 확실했다. 실화에서 프랑스 대사관이 2차 세계대전 전에 히틀러를 만나는 자리에게 히틀러에게 트로츠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히틀러는 매우 놀라는 표정으로 일어나며, 트로츠키의 위험을 언급했다. 무기 하나 가진 것도 없고 조직도 없는 늙은 정치사상가 한 명이 스탈린은 물론이고 히틀러에게 최고의 강적이었다.

 

오히려 히틀러는 스탈린보다 트로츠키가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독일이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을 점령 후에 독일과 소비에트연방의 조약을 맺어 군사적으로 두려울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과연 무엇이 무섭고 두려운 것일까? 스탈린은 무척이나 트로츠키가 두려워 한 모양이었다. 스탈린의 정치적 압제는 수용소 죄수에겐 하나의 순교자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스탈린은 자신의 반대세력을 모조리 총살을 시킨다. 과거 1937년에 시작한 러시아 대숙청과 대이주와 더불어 교도소 역시 피의 바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교도소에는 많은 트로츠키주의자가 있었고, 이들은 무식한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과는 달리 엘리트였고, 한편으로 높은 도덕심도 보유했다.

 

그들의 존재란 스탈린에게 눈에 가시고, 하루 빨리 없어야 했다. 결국 없애버리고, 그것이 아닌 존재도 죽였다. 조금이라도 눈에 벗어나면 말이다. 그런데 처음에 트로츠키가 내쫓길 때는 모두 트로츠키를 의심하던 이들이 총살형으로 나무기둥에 묶여 있을 때 모두 트로츠키여 영원하라 하고 외친다. 심지어 트로츠키가 죽고, 스탈린이 죽은 후에 스탈린주의 후예들조차 뒤에서 몰래 트로츠키가 옳았음을 인정한다. 물론 100% 옳은 것은 아니나 그런 정치적 판단력을 가진 상태에서 말과 행동을 옮길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소비에트연방은 정치적 자유나 표현이 사라졌다. 오죽했으면, 스탈린이 자신은 노동자의 국가라고 하면서 독일 히틀러와 쪼개먹은 상대국가에 대해 모든 토지를 몰수하여 그 토지를 농민에게 죽는 것이라, 그 농민마저 강제노동에 부역시켰냐는 것이다.

 

그렇게 트로츠키는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과거역사를 사례를 통해 앞날을 예견했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과거를 반성하는 것은 오늘의 현재를 구성하는 원인과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있으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사회가 발전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이성이란 단어가 적용된 것은 그리스철학이 시작되어 데카르트와 칸트에게 이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극소수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이상향은 국민정치가 아니라 시민정치였다. 어떻게 보면 폴리스국가에서 귀족적인 시민정치로 통해 어떤 사회의 실력과 학식, 인품이 높은 사람에게 많은 정치적 참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차후 니체가 지적하는 대중사회는 이른바 군중심리와 도덕에 대한 의심 없는 순종이 더 인간을 부패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트로츠키는 “도덕은 역사와 계급투쟁 속에 내재돼있는 것이며, 그 자체로 불변의 실체를 갖는 것은 아니다. 도덕은 사회적 경험과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다. 따라서 도덕은 언제나 수단을 목적에 연결시킨다.”에서 그는 종교에 대한 도덕적 강요를 비판했다. 이런 점은 니체의 서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내용과 비슷하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의심하고 스스로 되물어볼 수밖에 없다. 본래 철학이란 것이 자기 자신부터 생각하고 비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당시는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광기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파시스트가 판을 치고, 그들은 전체주의로 통해 광기를 살기로 향상시켰다. 유럽이 아닌 동양의 일본도 그렇다. 트로츠키는 세계적으로 불안과 광기에 넘치자 항상 이에 대한 비판을 날렸다. 그런데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일본 천황과 독일 나치와 결탁했다는 것과 트로츠키가 미국의 언론과 정치인하고 진실규명이나 문제해결을 하려고 하면 자본주의의 앞잡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 트로츠키에게 돈도 오지 않고, 나치도 트로츠키를 싫어했다. 본질과 상관없이 모든 대중들의 시선을 가리는 언론행위는 독재정치의 기본이고 필수라는 것이 여전히 드러난다.

 

그런 상태에서 트로츠키는 언제나 죽음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가 프랑스, 노르웨이, 터키를 오고가던 시절에 항상 암살과 테러의 위험에 쳐해 있었다. 게다가 그가 가던 집에 불이 나고, 누가 자신의 자료들까지 훔쳐가려 했다. 게페우가 으르렁 거리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1936년 멕시코로 이주를 가나, 거기라고 안정은 없다. 오기 전에 1번째 부인에게 얻은 딸 니나가 죽고, 2번째 딸 지나는 트로츠키의 손자인 세바를 데리고 오지만, 지나친 피로와 병들은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고, 그녀는 쓸쓸하게 독일의 침대에서 자살한다. 아직도 인상 깊다. 그녀는 자신의 방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하고, 가스를 채워 질식사를 했는데, 그 표정이 고통이 아닌 행복이었다.

 

그 후에 트로츠키의 아들인 료바는 우울증과 피로, 병세로 32세의 일기로 죽는다. 그는 아내 사이에 아이를 두지 못했고, 그의 누나의 아들인 료바를 아들처럼 여겼으나, 결국 죽고만다. 아내인 진은 트로츠키주의보다는 몰리에르파로 료바를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었고, 세바가 아들처럼 귀여워해준 것이다. 하지만 결국 트로츠키 품으로 세바를 돌아간다. 세바를 찾은 트로츠키는 다행일까? 불행일까? 자신의 2딸 중에 1명은 러시아에서 병으로 굶주림으로 죽고, 1명은 병으로 인해 자살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남편 모두 행방이 묘연해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아들인 료바는 괴로움 속에 죽었고, 다른 아들인 세르게이는 러시아에서 긴 유형생활을 하다 죽는다. 물론 죽기는 트로츠키가 죽는 것으로 나오나 트로츠키는 모든 가족들을 잃게 되었다. 심지어 1번째 부인인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공간이 없어 늙은 몸을 이끌고 그녀의 언니에게 의탁한다.

 

트로츠키에게 남은 가족은 세바와 그리고 40년 넘게 그를 지탱해준 나탈랴였다. 트로츠키는 평생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찬양했으며, 그녀가 없었으면 자신은 없었다고 한다. 영화 트로츠키 암살사건에서 트로츠키는 자신을 걱정하고 아이들을 잃어 슬픔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눈물을 보면서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입술을 바친다. 그러나 그렇게 노부부는 힘들게 망명생활을 하나, 결국 트로츠키는 잭슨이란 가명을 쓰던 라몬 메르카데르에게 피켈을 맞고 잔혹하게 쓰러진다.

 

여기서 스탈린과 게페우의 치밀함이 보인다. 라몬에게 지령을 내릴 적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트로츠키의 여비서인 실비아의 애인으로 등장하게 하더니, 그녀와 지내게 하면서 트로츠키 주변에 갈 기회를 만들어 단순히 살해하도록 부추킨 것이다. 라몬이 트로츠키를 살해하기 전에 라몬이 왜 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게페우는 라몬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았고, 어머니가 멕시코에 있었다. 굳이 멕시코에 나둘 이유가 없어도 나둔 이유는 라몬에게 협박을 한 것이란 점이다. 트로츠키 역시 인질을 잡은 적이 있었다. 러시아혁명 이후 백위군과의 내전에 백위군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았으나, 그들을 죽이거나 가혹한 대접을 하지 않았다. 단지 내전으로 인해 차르의 가족들이 그의 부하의 손에 죽을 때 그 책임을 자기가 맡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인간적 행위에 대해 양심과 윤리, 기준이 있었다. 그는 폭력과 억압이 폭주하는 광기의 역사에서 그 고리를 부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성적인 영역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전설적인 인권대통령인 링컨을 생각하면 말을 남겼다. “미국 북부군의 잔혹성과 남부군의 잔혹성에 대해 역사는 상이한 잣대를 갖고 있다. 속임수와 폭력으로 노예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노예주인과 속임수와 폭력으로 족쇄를 벗어던지려는 노예를 생각해보자. 오직 경멸스러운 환관들만이 도덕의 법정에서 이 두 가지경우가 동등하다고 우리에게 말항 것이다.”라고 말한다.

 

폭력과 속임수를 파괴하기 위해 폭력이란 극단적 행위로 미칠 수 없는 현실의 비극에서 그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 여겼다. 그 결과 그는 추방되고,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 역시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도 그는 저항했다. 피켈을 맞아 머리에 70㎜정도 들어가도, 그리고 뇌수막이 찢어지고, 뇌신경이 파괴되어도, 뇌에 두개골 파편이 박히고 있을 때도 그는 라몬에게 저지했고, 그의 비명과 소란에 달려온 사람들을 설득하여 라몬을 포박하여 그의 증언을 내놓게 하라고 한다. 죽어가는 자리에서도 미래를 향한 이야기와 나탈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는 트로츠키가 죽어 20년 넘도록 트로츠키가 죽은 집에서 살아간다. 그의 시신이 화장되어 그 집에 묻혀 작은 비를 항상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의 죽음은 스탈린에게 큰 미소로 되었으나, 후에는 아픔을 맞이했다. 부하린을 죽인 스탈린은 부하린만큼 군사전략을 잘 아는 지휘관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처음에 히틀러와 계약하여 이익을 보던 소비에트연방은 결국 나치에 의 큰 타격을 받는다. 그것도 모자라 스탈린은 1919년 레닌이 세운 코민테른을 1943년 와해시키고, 무력으로서 혁명을 수행한다고 했다. 트로츠키는 소비에트연방이 타국의 혁명을 도와주는 것이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엇갈린 혁명은 결국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에서도 이상하게 만들어졌다. 정복이 혁명이라고 하는 스탈린의 잔재가 여전히 유령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트로츠키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나 그가 살아온 투쟁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고, 생각해야할 가치이다. 그의 유언에서 아내인 나탈랴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내용이 나온다. “나타샤(아내의 애칭)가 정원에서 창문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그 창문을 더 넓게 열어 공기가 내 방으로 좀 더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나는 담장 아래로 밝은 녹색의 풀들, 담장 위로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도처에 반짝이는 햇빛을 본다. 인생은 아름답다. 미래 세대는 모든 악과 억압, 폭력을 씻어내고 이 아름다운 인생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그의 유언은 한편의 시와 같아. 아름답고 절대적으로 인류가 이루어야 할 가치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가난과 빈곤, 죽음과 전쟁, 그리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과 같은 문제로 병을 앓고 있다. 그의 가치관은 아직 유효한 것일까? 자유라는 것은 무엇이고, 인권이라는 무엇인가? 세상에 평화는 무엇이고 인류가 가져야할 가치관이란 무엇일까? 스탈린과 많고 많은 권력자들에게 목이 졸리고 졸려 죽음을 당한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그 자신의 인생과 가족들은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이제 그를 패배한 영웅이 아니라 진정한 영웅으로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그들을 핍박하고 모함한 이들은 모두 후대 역사의 패자로 남았다. 진정한 승자라는 것은 당시의 승자인지 혹은 후대의 평가인가는 모르나, 적어도 인간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것처럼 그의 죽음으로 얻은 이름은 패배라는 아픔을 뛰어넘은 채 승화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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