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 정치와 사회적인 글들보다는 정치학과 사회학적인 글을 더 많이 보고 적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번만큼 2012년 5월에 일어난 아이러니한 사건을 옮겨 적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故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인 유시민을 대해서이다. 그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퇴임할 때까지 노무현의 정치적인 대변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질 때에는 모든 것을 제겨두고 봉하마을로 내려와서 분노와 좌절, 그리고 슬픔을 토해내었다.

 

그런 유시민이란 인물이 최근에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 그것도 다른 정당적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정당적인 존재에서 말이다. 노무현처럼 그도 사실 야권 제1당에 뿌리를 내려 권력을 얼마든지 유지시켜 볼 수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보처럼 그냥 자신의 눈앞의 이익을 손에 놓아버린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각자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적어도 보통 사람이라면 정치적인 권력에 눈독을 안 들 수가 없을 것이다. 정치란 권력에 향한 의지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유시민이 정치적 테러를 당한 이유는 바로 주사파 급진적이라고 하나 내가 볼 때는 그저 좌파를 빙자한 수구적인 세력일 뿐이었다. 그런 조직들에 대한 테러에서 유시민이는 이번이 처음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는 이미 참여정부에서부터 노무현과 같이 그들에게 현실적인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았으나, 결국 결과는 비참했다. 하지만 유시민이 욕을 먹어도 비난을 들어도 자신이 추구하던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에서 그가 경호하고 싶은 노무현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을까?

 

서적 본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세력들이 이제는 싸워야할 대상보다는 공동으로 바라보고 협력해야 할 무엇을 향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괴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보란 무엇이냐, 그는 항상 왕과 귀족이 누리던 권리를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누리는 사회로 인권이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을 진보라고 이야기했다.> 바로 진보란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고 하는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그 오랜 대립과 갈등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진보와는 다른 진보를 꿈꾸었다. 보수가 기득권과 강자의 자유를 보장하며 힘에 의한 질서를 강조한다면, 진보는 바로 그들이 누리는 권리를 힘없는 사람들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라 보았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세력에는 파괴만 있을 뿐, 창조적이고 새로운 대안이 없어 보였다.> 나 역시 진보주의 경향이나 이 말에 상당히 동감한다. 과거 프랑스혁명성공 찾아온 당통의 죽음과 테르미도르반동은 그야말로 진보의 실패를 보여준 혁명이고, 러시아혁명 역시 레닌 사후 스탈린의 집권으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후퇴시키는 오염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유시민을 가격하고 그 유시민의 노력을 묵살하는 진보란 과연 진보적일까? 내 눈에 그저 스탈린이 나타난 이후 스탈린에 붙어 러시아혁명 이후의 러시아권력층이 되려고 하는 인물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 진보의 한계, 진보의 앞길을 제시한 노무현, 그 뒤를 따라가는 유시민, 이 둘을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둘 다 바보라는 것이다. 물론 바보는 노무현 쪽이 크다. 그의 바보짓은 너무 바보 같아 화가 나고 욕이 나오고 때로는 눈물이 나온다. 너무 바보 같아서 그런 바보를 다시 볼 수 없음에서 말이다.

 

이 책에서 다시 인상 깊은 실화가 나온다. <정부는 일만 열면 노사 화합을 외칩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한 번 해보려고 하다가 전기도 끊기도 수돗물도 끊긴 공장 바닥에서 스티로폼 한 잔 깔고 앉아 생라면을 씹고 있는 노동자가, 가족이 가져다준 주먹밥마저 빼앗겨서 불타 버리는 광경을 바라보는 노동자가, 그리고 끝내는 감옥 갔다가 해고되어 길거리에 내쫓긴 이들 노동자가 그것을 내팽개친 기업주의와 이 땅 위에서 화합하고 살기를 기대하십니까?>

 

이 글에서 나는 여기까지는 아니나 비슷한 상황을 본다. 반평생 넘게 배를 타면서 선원일을 하던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노무현이 네 부모만큼 좋아하냐 말에, 부모와 비교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 적어도 노무현은 우리 아버지 같은 노동자들을 진실로 생각한 사람이다. 우리 아버지가 오셔서 배타는 이야기를 해준다. 온도가 40~50℃ 되는 기관실에 갖은 소음과 진동,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고 말이다. 배가 좋으면 몰라도 침몰 일보직전이라면 노동적정시간 준수는 기대하지 못하고 열 몇 시간 이상 일에 시달리고, 주말에도 일을 한다고 한다.

 

물론 배를 타는 특수한 상황이니 문제 발생 시에 어떻게는 조치를 해야 하나, 그래도 배를 타고 외국으로 국내로 오고가는 화물선의 비화를 들어보면 선원노동자의 실태들을 알게 해준다. 아버지 몸에 새겨진 상처자국과 화상자국, 고된 노동으로 물집이 생기고, 신체기능까지도 장애가 오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이미 귀가 난청이다. 단지 저렇게까지는 아니나, 저렇게 당한 사람만큼 노동착취를 당하고, 불평등한 계약에 서명하지 않으면 배에 타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에게 대한민국은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내가 <네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웃기지만 그런 사람들을 가장 착취한 부류가 왜 선거만 되면 시장과 골목길을 돌며 서민층을 보살핀다고 하나, 왠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나보고 바보 같은 노무현을 왜 좋아하냐 물어본다면, 당신은 그런 비참한 경험을 하고 있는 당사자와 그 당사자의 가족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가능하면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먹을 쌀이 없어 굶는 서러움, 집이 없어서 어느 처마 아래나 배 갑판에서 자던 날들, 배우지 못한 이유로 핍박당한 사연들 그 모든 일들을 겪어야 했던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비화를 말이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에겐 관대해도 타인에게 날카롭다.

 

그런다고 모든 노동자를 노무현이 구해낸 것은 아니다. 인간 노무현은 혼자이고, 그는 권력도 돈도 없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돼 주었다. 레이온 실을 만드는 회사였던 원진레이온은 작업 중 이황화수소라는 독가스가 새어 나와 인체를 마비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엄연한 직업병이었으니 회사는 당연히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현은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 다시 한번 회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독가스에 중독되어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휠체어에 타고 나와 있었다. 곁에는 어린 딸아이와 가족들이 있었다. 그 환자의 얼굴은 차마 눈뜨고는 쳐다볼 수 없는 상태였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에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서둘러 인사를 건넨 뒤에 부랴부랴 차에 올라타 정문을 나오려는 순간, 그 어린 딸아이가 붕고차 유리문에 울며 소리쳤다. “우리 아빠 좀 살려 주세요” 소녀의 등 뒤로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가 보였다. 일그러진 뺨 위로, 기묘한 그 표정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현은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겪은 사람이 자신이 고용주와 계약을 해서이고 그리고 그 계약은 자유라고 하며, 게다가 이런 일을 당하면 왜 좋은 직장을 가지지 못했냐고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전국에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런 사람 옆에 가족들을 포함하면 얼마나 되는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다. 최소한의 법과 제도를 어긴 것은 누구인데, 항의하는 자들에 대해 법의 파괴자라고 한다. 과연 파괴자는 누구이며 그것을 만든 자가 누구인가? 바보 노무현은 이들을 위해 투쟁했다.

 

바보처럼 굴다가 변호사직도 정지당하고, 바보처럼 굴다가 감옥에도 가야했다. 그가 간 이유는 산업재해로 죽은 공자노동자들이 항의하는 자리에 갔는데, 거기에 상관없는 사람이 갔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이 주인이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노동변호사 인권변호사란 말이 나오는데, 실상 인권변호사에서 인권을 중시하고 지키는 변호사란 단어가 생겼는데, 모든 변호사는 인권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데, 그 의무감은 어디로 갔는가?

 

그의 바보짓은 계속 되었다. 부산 북구 총선에서 당시 여권의 핵심인데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했고, 지역주의에 눈물을 지어야 했다. 그리고 연속적인 도전에서 제대로 승리의 깃발을 잡지 못한 그가 2002년 대권을 향했다. 웃긴 말로 진보 사이에서나 같은 당에서도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고졸이라 상대해주지 않은 것이다. 진보라고 떠들어대는 인간 역시 엘리트주의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렇다. 그의 퇴임 후에 측근비리에서 스캔들이 터졌는데, 부인이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 가난하게 살아오고, 가난하게 물러났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바보 같이 권력을 대비하지 않았고, 재임시절 그는 자기가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돈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대통령 개인 판공비 수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사회에 헌납했다는 것에서 나는 그것을 실제로 지켜보았다. 2003년 매미태풍으로 한국은 거대한 재난재해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그 재해복구비용을 노무현의 판공비를 내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음 해부터 내가 군부대 간부로 근무하면서 예산용도와 예산의 출처를 확실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보처럼 남 좋은 일만 실컷 만들고, 자기가 누려야할 앞가림을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시달릴 때 자신의 지나칠 정도의 강박증이 그렇게 내몰았다. 그래서 원망스럽고 마음이 더욱 아픈 것이다. 2009년 봄에 그에 대한 언론과 권력이 목을 조르고 있을 때 그는 주변 사람들과 바라보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붙잡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일화 중에 가시고기라는 생선이 있다. 가시고기 부부가 알을 놓을 경우 암컷은 놓자말자 다른 곳에 가서 죽고, 수컷은 알을 지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암컷이 알을 놓을 때 그 특유한 냄새로 천적이 와서 알을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고, 수컷은 그런 알을 지키고 난 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로 하여금 자신의 살을 파먹도록 한다. 먹이를 찾아다니면 다른 천적에게 공격당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바보 노무현, 정말 그는 가시고기마냥 모든 것을 다 던지고 시대를 떠나갔다. 하지만 육체는 던져도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엄청난 바보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런 바보를 생각하면서 뒤에서 몰래 바보처럼 울고 있는 나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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