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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 전에 <맑스·엥겔스 평전>을 읽어보았고, 그 외로 마르크스 도서를 읽어보면서 다시 다른 사람이 적은 마르크스 평전을 읽어보는 재미란 조금 특이하다. 왜냐하면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세계적 학자가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가령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프랑스 구조주의, 영국의 버밍엄 대학교 문화연구소 등에 철학, 사회학, 문화학, 문학, 인류학 등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현대사상에서 마르크스를 제외하고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될 정도로 그 영향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그의 도서인 <자본>(도서출판 길, 강신준 역) 전체를 읽는 순간 이 도서의 가치가 왜 높은 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그 당시나 혹은 그 이전에 나온 도서를 비교하여 이만큼 자본주의에 대해 잘 분석한 도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본은 자본을 분석한 도서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본을 읽는 내내 놀라운 것은 아주 오래된 고전이 인용된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하여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상당히 많이 인용했다.
마르크스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독서력을 가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런 내용은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에서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라이프니츠, 볼테르, 레싱, 칸트에 대한 사상가들의 책들을 소개 받았다. 게다가 아이스킬로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의 작품까지 보게 하여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는 것은 단순히 경제학도서를 읽는 것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철학과 문학의 앙상블이 섞여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르의 <철학에 대하여>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란 단순히 경전적인 철학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실행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추구한 철학적 가치에서 그는 철학 관련도서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과학적인 도서를 집필했다. 하지만 그 집필과 동시에 그가 추구한 방향 자체가 철학이란 점이고 또한 윤리라는 점이었다. 마르크스가 살던 독일에서는 매우 열악한 노동자들이 계속 착취를 당했다. 이와 반대로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추방되어 영국으로 갈 때는 영국노동자 대부분이 부유한 편이었다. 그 이유는 영국은 노동자에게 착취하기보단 식민지로 착취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점이다.
그런다고 아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 옆에 아일랜드노동자가 영국노동자보다 인건비가 저렴하여 이들의 유입을 영국노동자가 반대했다. 이런 부분은 과거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 대한 수탈과정에서 노동력 착취와 인건비 절하를 위해 일부러 중국인을 유입하여 인건비의 저하를 시도했다. 마르크스 관점에서 인건비 절하로 인해 아일랜드와 영국 사람들끼리의 갈등 해소를 위해서 아일랜드의 독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1세기 들어와서 자본의 세계시장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이 사고는 약간 힘들겠으나, 근본적으로 착취의 조건이 있기에 영국 노동자들은 마르크스의 사고에 따를 수 없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시대적 흐름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마르크스의 인생을 조금씩 살펴보는데, 다른 평전과 달리 이 책에서는 중간마다 장을 할애하여 각종 사상이나 흐름 배경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특히 3장의 헤겔철학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전에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강신준 교수님이 자본 강의를 들어봤는데, 교수님이 마르크스 자본에 접한 동기가 헤겔의 철학이었고, 그 중에 법철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를 집필 한 것을 보고 자본을 읽었다고 한다. 당시 독어독문학과에 다니던 분이 경제학과 교수가 된 것은 괜한 운명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 마르크스가 헤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독일에서 칸트의 3대 비판서 이후 철학사에서 헤겔이 변증법을 설파함으로 독일 대표철학이 되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 현실을 바꾸어간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나, 당시 독일 군주제에 의해 다소 위축된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헤겔의 철학이 독일의 철학이고, 독일철학이 세계철학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유럽에서 철학사상에서 독일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의 등장은 분명히 19세기 철학에서 독일의 역량이 강함을 보여준다.
단지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조금 더 나아가 유물론적 변증법을 도입하여 세상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그리고 그 도서가 자본이다. 역사적 사실이 변증법적으로 증명하는 점에서 자본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준 셈이다. 생각해보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상품을 중심으로 저술했다는 점이고, 마르크스의 <자본>은 화폐를 중심으로 했다는 점이다. 화폐는 은행에서 발행하면 얼마든지 시장에 유통이 가능한 점이나, 상품이 시장에 공급되어도 그것은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인구가 5,000만인 한국에 운동화를 5,000만을 만들어 제공할 수 있으나, 실제 시장은 그렇지 않다. 상품을 소비하는 인구가 동시에 여러 켤레를 가질 수 있는 점과 운동화의 내구력이나 수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요한 사실은 지나친 운동화를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는다고 무한정으로 판매가 되지 않는다. 상품의 소비에서 역시 한계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화폐의 유통은 얼마든지 증대가 가능하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발견하여 자본 3권으로 가면 화폐로 통한 상품과 자본의 관계만이 아니라 화폐와 화폐로 통한 자본관계를 밝혀낸다. 1847년 대공황이란 문제에서 이전까지 공황이란 개념이 없기에 찾을 수 없는 답이었으나, 자본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서적을 보면 반드시 역사적 사건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철학자나 문학자 역시 역사적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마르크스는 거기에 영향을 받는 것보다 그 영향에 대한 근본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나의 사회과학적 지표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바로 마르크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다. 하지만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에서 나온 내용이나, 마르크스가 헤겔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헤겔이란 존재는 마르크스의 등에 탄 원숭이라는 표현이 더 인상적이다. 그렇듯 마르크스는 헤겔 청년파로서 당시 헤겔학파 젊은이들과 같이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결국 바우어가 베를린대학에서 해고되는 바람에 그는 강사를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것이다.
기존의 마르크스 평전과 달리 이 도서에서는 마르크스를 초점을 하되, 그 풀어가는 방법을 마르크스 중심보단 당시 상황과 주변인물과의 관계성에 중시한다. 바우어 외에도 엥겔스의 만남, 라셀레, 그 외 많은 사람들, 생시몽이나 푸리에, 바쿠닌 등과 같은 사상가와 그 주변 무리들에 대해 강한 비판과 공격을 가하는 모습도 나온다. 상당한 명성과 동시에 악명을 유럽에 알린 마르크스의 모습에서 그의 직격적인 논리가 다른 지식인들을 굴복하게 함으로서 악명의 강도는 더욱 강력해진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을 만들고, 그 해를 뒤로 나폴레옹 3세 집권과 독일·프랑스전쟁, 1871년 파리코뮌 등을 보면서 계속되는 분쟁과 혁명을 지켜본다.
마르크스의 목적이 노동자의 인권이란 점에서 여기서 큰 한계점을 보인 것은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고 운 좋게도 왕국이나 독재정권이 잠시 물러간 뒤에 시민들이 정치제도를 꾸려도 이들에게 정치적 판단력을 지시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했다. 결국 프랑스혁명의 비극처럼 조직된 기구가 없다면 결국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제1인터내셔널을 만든 점과 활동과 동시에 와해를 겪으나, 그가 죽은 후 1890년 5월 1일 메이데이 때, 1일 8시간 노동이란 생존을 위한 권리를 가진다.
사람들이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주5일 하루8시간(점심시간 1시간 제외)이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근로기준이다. 물론 때에 따라 초과근무나 단축근무가 가능하나, 그 무엇보다 8시간 전후의 근로시간이 틀렸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8시간은 고사하고 12시간 심지어 16시간도 노동해야 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에게 집중된 고된 노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게 한다. 자본을 읽다보면 영국 공장 감독관들이 제출한 보고서가 제법 많이 나온다.
국가 공인으로 제출된 보고서가 학술적인 자료에 등장하면서 그 객관성을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를 보면 마르크스가 매우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저술하는 것은 분명하나 실제 생활에서는 과격하고 무례하며, 때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의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마르크스의 아버지가 마르크스에게 편지를 보내 충고를 해도 실제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견고한 그런 심기가 있기에 배고픔도 가난도 병마도 참으면서 활동한 것이다.
말년을 보면 아내인 예니가 먼저 병으로 죽고, 그 전의 자신의 아이 3명을 잃는다. 자신 역시 병으로 고생하다 안락의자에서 숨을 거둔 것을 보면, 그의 투쟁의 인생은 단순히 역사와 사회만 아니라 가족의 비극과 병마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인상적인 부분은 그는 가족을 무척이나 사랑한 점이다. 아내인 예니에 대한 마르크스의 애정은 그가 항상 좌절과 방황을 겪을 때마다 의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루소의 아내인 테레즈 역시 루소의 정신적 안정이 되었고, 트로츠키 역시 아내 나탈랴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마르크스의 아내인 예니는 마르크스가 어릴 적에 살았던 고향에 옆집 사람이었다. 예니의 아버지는 베스트팔렌이라 하여 마르크스가 어린 시절 매우 친하게 지낸 것으로 나온다. 이 책에서 나오지 않으나 마르크스 누나와 예니는 본래 친구였다고 하며, 4살 많은 예니는 자신보다 어린 마르크스를 동생보다는 남자로서 대해주었다. 아무래도 마르크스가 예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친누나의 친구도 어느 정도 포함되지 않은가 싶다. 예니의 품에서 마르크스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업적은 너무 질풍노도였다. 당시 마르크스는 많은 사상가들로부터 언쟁을 받아야 했고, 특히 그 중에 프루동 <빈곤의 철학>을 받고서는 <철학의 빈곤>이란 도서로 답을 주어 프루동의 사고방식을 강렬하게 조롱하고 비판했다. 가난 그 자체로는 노동자의 생활은 안정할 수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안빈낙도를 추구하는 프루동에서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맞지 않았다. 아마 오히려 자본주의 이전인 농경사회나 그 이전인 수렵사회에 어울릴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내려와 경제적인 지표가 되는 구조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야 말로 가장 효율적인 산업구조라는 것이다. 단지 생산량의 증대와 동시에 인간에게 부과된 노동의 강도와 시간은 줄어드는 대신 늘어간 것이 문제란 점이다. 발명자 대부분은 인간생활을 위해 문명의 기술을 안겨주었으나 도리어 발목은 잡은 것들이 많다. 왜냐하면 근본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야 벌린의 글에서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다. “고대 세계는 중세에, 노예제는 봉건제에, 봉건제는 산업 부르주아지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이러한 이행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투쟁과 혁명을 통해 탄생했다. 왜냐하면 기존 질서가 싸우지도 않고는 물러나주는 일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나머지 계급들 단 하나의 계급만이 극빈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오직 하나의 계급만이 여전히 노예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땅도 재산도 없는 그들은 바로 기술 진보의 산물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
생각하면 우리 문명의 역사는 전쟁과 분쟁에 의해 계속 이어온 피의 역사다. 피로서 씻고 또 씻어주는 과정 속에 전복과 옹립이 대상주체만 바뀔 뿐 계속 이어져 왔다. 결국 노예는 그대로이나 주인만 다른 이름만 빌린 것이다. 그리스의 시민 귀족주의에서 농노사회, 봉건사회에 걸쳐 통치자라는 계급 대신 노예는 자본이란 이름이 주인으로 되었다. 자본주의의 최고의 장점이 때로 최악의 단점이 된 것이다. 인간 소유권에서 생명과 재산이 결국 혁명을 이끌었으나 혁명을 무디게 했다. 그런 역사적 과정이 변증법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이때까지 누구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테제라면, 마르크스는 그것을 만들게 한 하나의 교두보와 같다. 주인 없는 노예, 노예 없는 주인에서 휴머니즘을 원한 마르크스에겐 인간의 스스로의 사슬을 푸는 것은 결국 합리적 이성과 명확한 현실적 판단이다. 오히려 마르크스에게 공상적인 몽상과 현실과의 지나친 타협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른 길임을 말한다. 여전히 자본은 세계명문대학에서 고전으로 읽힌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마르크스 도서 역시 고전으로 읽는 도서다. 그래도 계속 오해와 편견, 망상과 괴리 속에 마르크스는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어떤지 알아보거든 이 책이 좋은 듯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상사학자이니 그만큼 객관성은 보장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