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 프로이스의 <일본사>를 통해 다시 보는
국립진주박물관 지음, 장원철.오만 옮김 / 부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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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주교회사에서 한국의 경우 마테오 리치 신부가 중국에 전파 후에 만천 이승훈이 청나라에 가게 된 동기로 천주교 문화가 전파되었다. 물론 조선 후기 남인의 대표적인 학파이며 한국의 다산학의 원천자인 성호 이익가 저술한 성호사설의 “천주실의발”에서 천주교에 대한 국내 최초적 학술적 연구와 더불어 천주교에 대한 서양문물과 과학기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대해 성호학파 중의 이벽과 이승훈, 정약종 중심으로 천주교에 대한 교리를 받아들여 세계에 유래 없이 외국의 문호개방이나 침략 아닌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만든 나라가 한국이 되었다.

 

한국에서 천주교의 유입은 18세기 후반에서 시작하여 19세기에 박해의 시기였으며, 20세기에는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에 큰 역할을 부여한 점에서 피로서 얻어낸 종교의 자유이다. 이와 달리 건너편 나라인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의 경우는 외국 문물을 당시 한국의 국호인 조선보다 더 일찍 받아 들였다. 임진왜란 시기에 우리는 왜국의 병사들에게 간단히 동래성을 시작하여 한양까지 내어주었다. 나라는 피로 물들고, 국토는 황폐해졌으며, 정치적으로 크게 동요했다.

 

이런 계기는 바로 일본이 도입한 소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군이 사용한 활보다 왜국이 사용한 소총이 장거리공격에서 더 강한 위력과 정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일본군의 강력한 공격 앞에서 조선이란 국가는 전국적으로 왜군에 패전하여 장수들과 병사들이 몰살당하고, 초반에 군기가 엄격했던 일본군도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약탈과 살해, 강간 등과 같은 범죄 행위도 늘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더불어 거기에 따른 조선과 왜국 내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임진왜란에 대한 사료를 조선왕조실록 내지 난중일기, 징비록과 같은 국내 사료로 통해 자주 본다. 이에 다르게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기록을 이용하여 전쟁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조선은 피해국가라는 점, 중국은 중화주의 사상에 빠진 점, 일본은 침략국가라는 점에서 각각의 입장을 고려해본다며 여러 가지로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우선 조선의 경우 피해자라는 점이고, 사실 모든 기록에서 패배 내지 피해자의 역사가 가장 정확할 수 있으나, 감정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있다.

 

중국의 경우 대국이란 자체적인 중화주의에서 그들이 원정 올 때 부린 행패는 오히려 왜군보다 더 심각했다. 일본군이 지나가면 대비를 머리를 쓸어가는 것이나 명국은 참빗이라고 한다. 그만큼 더 많은 고혈을 빨아들인 것이다. 대부분 희생과 승전보는 조선의 군인과 의병이 올렸음에도 그들은 전시전과와 전리품을 챙기기 바쁜 것이었다. 물론 임진왜란의 여파로 명국도 가세가 기울여져서 청국에 먹힌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실 일본 역사에 그렇게까지 깊은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나 일본에서 전통사극으로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과 같은 전쟁이야기와 메이지유신 시대의 신선조와 유신자사의 갈등을 아주 미화하여 만든다. 최근 개봉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전국바사라에서 외눈장수 다테 마사무네가 나오거나, TV 애니메이션도 오다 노부나의 야망이라 하여 전국시대 무장들을 미소녀로 그렸고, 그 중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인공이 도착할 때 죽고 그 대신 사루(원숭이)라는 별명을 갖고 여러 미소녀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만화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국시대의 열기는 애니메이션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소설까지 이어져 그들에게 전국시대란 환상적인 스토리텔링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역사에서 조선의 침략자들은 영웅이면 영웅이지 잔혹한 살해자는 아닌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는 기록과 그 기록은 신화화하여 만든 것이 스토리텔링의 모습이다. 그래서 타인의 시각으로 본 사료라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처음에 왜 내가 한국천주교회사를 언급했을까? 그것은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천주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다면 맥을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도서명 <임진왜란과 토요토미 히데요시>라는 도서는 임진왜란을 동북아시아 3개국의 사람들이 본 전쟁이 아니라 외국 그것도 유럽의 신부가 직접 일본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정리한 도서다. 그는 포르투갈 출신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다. 그가 일본에 온 이유도 당연히 천주교 선교활동이었고, 일본 자체의 국력 발전을 위해 온 자가 아니다. 그의 행적에서 일본 장수나 평민들을 천주교도로 순화시키고, 서양문물을 전파했다. 그러면서 일본어를 익히 프로이스 신부가 일본에서 겪은 일들을 정리한 내용들은 천주교의 입장을 배제하여 본다면 매우 객관적인 사료다.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고, 현재의 그도 영웅적인 호걸로 묘사된다. 그러나 루이스 신부가 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상을 보면 참으로 신선하다. “그(히데요시)는 키가 작고, 또한 추악한 용모의 소유자로서 왼쪽 손의 손가락이 여섯 개인 육손이었다. 눈이 튀어나왔고, 중국인처럼 수염이 적었다, 아들과 딸 모두 자식복은 없었으나 빈틈없는 책략가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영토와 재산이 순조롭게 늘어감에 따라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악행과 심술궂은 짖을 저질렀다. 가신뿐만이 아니라 국외자에 대해서도 극도로 오만했으므로 누구나 싫어했으며 그에 대해 증오심을 품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일본 본국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참으로 다행인지 모르지만, 프로이스 신부의 책을 번역한 사람은 오만(吳滿) 이라는 언어(문학박사)학자이다. 그는 자국의 영웅인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결코 좋지 않은 모습을 본 이 선교사의 서적을 번역했던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살인기계로 보이나, 역사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기록이기에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은 이상 책임감에 대한 감각은 멀어지게 되는 마련이다. 대신 문학적 환상에 따른 왜곡은 더해질 뿐이다.

 

그런 부분에서 선교사가 본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 사정과 더불어 전쟁 중의 현상을 본다는 것은 사료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다. 대신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과 그 후의 정유재란에서 종료의 종료가 1598년이었으나 선교사 프로이스 신부는 1597년 타계하는 바람에 그 자료를 끝까지 이어갈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 마무리를 맺는다. 천주교도 중에서 특히 충실한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아고스띠뇨라는 표현에서 책의 후반은 토요토미 히데요시보다는 차라리 아고스띠뇨라는 고니시 유키나가라는 장수에게 초점이 가깝다.

 

그의 생존이나 혹은 주변 천주교신자 장수들이 승리나 구사일생에 대해 행운이나 또는 상황의 모면보단 하느님의 은총이란 비과학적 판단에서 다소 조심한다면 상당히 좋은 도서라는 점이다. 물론 천주교에 대해 나쁜 감정도 없고 오히려 천주교신자나 신부님이나 수녀님과 나름 친분을 나누는 입장에서 종교적 관점을 배제해야 역사의 정확한 요소를 판단하기에 종교적 입장을 분리하여 보는 것이 정당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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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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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기 전에 <맑스·엥겔스 평전>을 읽어보았고, 그 외로 마르크스 도서를 읽어보면서 다시 다른 사람이 적은 마르크스 평전을 읽어보는 재미란 조금 특이하다. 왜냐하면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세계적 학자가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가령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프랑스 구조주의, 영국의 버밍엄 대학교 문화연구소 등에 철학, 사회학, 문화학, 문학, 인류학 등 미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현대사상에서 마르크스를 제외하고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될 정도로 그 영향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그의 도서인 <자본>(도서출판 길, 강신준 역) 전체를 읽는 순간 이 도서의 가치가 왜 높은 줄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그 당시나 혹은 그 이전에 나온 도서를 비교하여 이만큼 자본주의에 대해 잘 분석한 도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본은 자본을 분석한 도서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본을 읽는 내내 놀라운 것은 아주 오래된 고전이 인용된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하여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상당히 많이 인용했다.

 

마르크스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독서력을 가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런 내용은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에서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라이프니츠, 볼테르, 레싱, 칸트에 대한 사상가들의 책들을 소개 받았다. 게다가 아이스킬로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의 작품까지 보게 하여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는 것은 단순히 경제학도서를 읽는 것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철학과 문학의 앙상블이 섞여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인 루이 알튀세르의 <철학에 대하여>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란 단순히 경전적인 철학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실행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르크스가 추구한 철학적 가치에서 그는 철학 관련도서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과학적인 도서를 집필했다. 하지만 그 집필과 동시에 그가 추구한 방향 자체가 철학이란 점이고 또한 윤리라는 점이었다. 마르크스가 살던 독일에서는 매우 열악한 노동자들이 계속 착취를 당했다. 이와 반대로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추방되어 영국으로 갈 때는 영국노동자 대부분이 부유한 편이었다. 그 이유는 영국은 노동자에게 착취하기보단 식민지로 착취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점이다.

 

그런다고 아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 옆에 아일랜드노동자가 영국노동자보다 인건비가 저렴하여 이들의 유입을 영국노동자가 반대했다. 이런 부분은 과거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 대한 수탈과정에서 노동력 착취와 인건비 절하를 위해 일부러 중국인을 유입하여 인건비의 저하를 시도했다. 마르크스 관점에서 인건비 절하로 인해 아일랜드와 영국 사람들끼리의 갈등 해소를 위해서 아일랜드의 독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1세기 들어와서 자본의 세계시장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이 사고는 약간 힘들겠으나, 근본적으로 착취의 조건이 있기에 영국 노동자들은 마르크스의 사고에 따를 수 없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시대적 흐름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마르크스의 인생을 조금씩 살펴보는데, 다른 평전과 달리 이 책에서는 중간마다 장을 할애하여 각종 사상이나 흐름 배경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특히 3장의 헤겔철학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전에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강신준 교수님이 자본 강의를 들어봤는데, 교수님이 마르크스 자본에 접한 동기가 헤겔의 철학이었고, 그 중에 법철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를 집필 한 것을 보고 자본을 읽었다고 한다. 당시 독어독문학과에 다니던 분이 경제학과 교수가 된 것은 괜한 운명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 마르크스가 헤겔의 영향을 받은 것은 독일에서 칸트의 3대 비판서 이후 철학사에서 헤겔이 변증법을 설파함으로 독일 대표철학이 되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 현실을 바꾸어간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나, 당시 독일 군주제에 의해 다소 위축된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헤겔의 철학이 독일의 철학이고, 독일철학이 세계철학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유럽에서 철학사상에서 독일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의 등장은 분명히 19세기 철학에서 독일의 역량이 강함을 보여준다.

 

단지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조금 더 나아가 유물론적 변증법을 도입하여 세상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그리고 그 도서가 자본이다. 역사적 사실이 변증법적으로 증명하는 점에서 자본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준 셈이다. 생각해보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상품을 중심으로 저술했다는 점이고, 마르크스의 <자본>은 화폐를 중심으로 했다는 점이다. 화폐는 은행에서 발행하면 얼마든지 시장에 유통이 가능한 점이나, 상품이 시장에 공급되어도 그것은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인구가 5,000만인 한국에 운동화를 5,000만을 만들어 제공할 수 있으나, 실제 시장은 그렇지 않다. 상품을 소비하는 인구가 동시에 여러 켤레를 가질 수 있는 점과 운동화의 내구력이나 수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요한 사실은 지나친 운동화를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는다고 무한정으로 판매가 되지 않는다. 상품의 소비에서 역시 한계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화폐의 유통은 얼마든지 증대가 가능하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발견하여 자본 3권으로 가면 화폐로 통한 상품과 자본의 관계만이 아니라 화폐와 화폐로 통한 자본관계를 밝혀낸다. 1847년 대공황이란 문제에서 이전까지 공황이란 개념이 없기에 찾을 수 없는 답이었으나, 자본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서적을 보면 반드시 역사적 사건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철학자나 문학자 역시 역사적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마르크스는 거기에 영향을 받는 것보다 그 영향에 대한 근본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나의 사회과학적 지표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사회구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바로 마르크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다. 하지만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에서 나온 내용이나, 마르크스가 헤겔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헤겔이란 존재는 마르크스의 등에 탄 원숭이라는 표현이 더 인상적이다. 그렇듯 마르크스는 헤겔 청년파로서 당시 헤겔학파 젊은이들과 같이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결국 바우어가 베를린대학에서 해고되는 바람에 그는 강사를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것이다.

 

기존의 마르크스 평전과 달리 이 도서에서는 마르크스를 초점을 하되, 그 풀어가는 방법을 마르크스 중심보단 당시 상황과 주변인물과의 관계성에 중시한다. 바우어 외에도 엥겔스의 만남, 라셀레, 그 외 많은 사람들, 생시몽이나 푸리에, 바쿠닌 등과 같은 사상가와 그 주변 무리들에 대해 강한 비판과 공격을 가하는 모습도 나온다. 상당한 명성과 동시에 악명을 유럽에 알린 마르크스의 모습에서 그의 직격적인 논리가 다른 지식인들을 굴복하게 함으로서 악명의 강도는 더욱 강력해진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을 만들고, 그 해를 뒤로 나폴레옹 3세 집권과 독일·프랑스전쟁, 1871년 파리코뮌 등을 보면서 계속되는 분쟁과 혁명을 지켜본다.

 

마르크스의 목적이 노동자의 인권이란 점에서 여기서 큰 한계점을 보인 것은 전쟁과 혁명이 일어나고 운 좋게도 왕국이나 독재정권이 잠시 물러간 뒤에 시민들이 정치제도를 꾸려도 이들에게 정치적 판단력을 지시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했다. 결국 프랑스혁명의 비극처럼 조직된 기구가 없다면 결국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제1인터내셔널을 만든 점과 활동과 동시에 와해를 겪으나, 그가 죽은 후 1890년 5월 1일 메이데이 때, 1일 8시간 노동이란 생존을 위한 권리를 가진다.

 

사람들이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주5일 하루8시간(점심시간 1시간 제외)이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근로기준이다. 물론 때에 따라 초과근무나 단축근무가 가능하나, 그 무엇보다 8시간 전후의 근로시간이 틀렸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8시간은 고사하고 12시간 심지어 16시간도 노동해야 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에게 집중된 고된 노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게 한다. 자본을 읽다보면 영국 공장 감독관들이 제출한 보고서가 제법 많이 나온다.

 

국가 공인으로 제출된 보고서가 학술적인 자료에 등장하면서 그 객관성을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를 보면 마르크스가 매우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저술하는 것은 분명하나 실제 생활에서는 과격하고 무례하며, 때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의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마르크스의 아버지가 마르크스에게 편지를 보내 충고를 해도 실제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견고한 그런 심기가 있기에 배고픔도 가난도 병마도 참으면서 활동한 것이다.

 

말년을 보면 아내인 예니가 먼저 병으로 죽고, 그 전의 자신의 아이 3명을 잃는다. 자신 역시 병으로 고생하다 안락의자에서 숨을 거둔 것을 보면, 그의 투쟁의 인생은 단순히 역사와 사회만 아니라 가족의 비극과 병마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인상적인 부분은 그는 가족을 무척이나 사랑한 점이다. 아내인 예니에 대한 마르크스의 애정은 그가 항상 좌절과 방황을 겪을 때마다 의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루소의 아내인 테레즈 역시 루소의 정신적 안정이 되었고, 트로츠키 역시 아내 나탈랴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마르크스의 아내인 예니는 마르크스가 어릴 적에 살았던 고향에 옆집 사람이었다. 예니의 아버지는 베스트팔렌이라 하여 마르크스가 어린 시절 매우 친하게 지낸 것으로 나온다. 이 책에서 나오지 않으나 마르크스 누나와 예니는 본래 친구였다고 하며, 4살 많은 예니는 자신보다 어린 마르크스를 동생보다는 남자로서 대해주었다. 아무래도 마르크스가 예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친누나의 친구도 어느 정도 포함되지 않은가 싶다. 예니의 품에서 마르크스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업적은 너무 질풍노도였다. 당시 마르크스는 많은 사상가들로부터 언쟁을 받아야 했고, 특히 그 중에 프루동 <빈곤의 철학>을 받고서는 <철학의 빈곤>이란 도서로 답을 주어 프루동의 사고방식을 강렬하게 조롱하고 비판했다. 가난 그 자체로는 노동자의 생활은 안정할 수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안빈낙도를 추구하는 프루동에서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맞지 않았다. 아마 오히려 자본주의 이전인 농경사회나 그 이전인 수렵사회에 어울릴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내려와 경제적인 지표가 되는 구조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야 말로 가장 효율적인 산업구조라는 것이다. 단지 생산량의 증대와 동시에 인간에게 부과된 노동의 강도와 시간은 줄어드는 대신 늘어간 것이 문제란 점이다. 발명자 대부분은 인간생활을 위해 문명의 기술을 안겨주었으나 도리어 발목은 잡은 것들이 많다. 왜냐하면 근본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야 벌린의 글에서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다. “고대 세계는 중세에, 노예제는 봉건제에, 봉건제는 산업 부르주아지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이러한 이행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투쟁과 혁명을 통해 탄생했다. 왜냐하면 기존 질서가 싸우지도 않고는 물러나주는 일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나머지 계급들 단 하나의 계급만이 극빈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오직 하나의 계급만이 여전히 노예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땅도 재산도 없는 그들은 바로 기술 진보의 산물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다.”

 

생각하면 우리 문명의 역사는 전쟁과 분쟁에 의해 계속 이어온 피의 역사다. 피로서 씻고 또 씻어주는 과정 속에 전복과 옹립이 대상주체만 바뀔 뿐 계속 이어져 왔다. 결국 노예는 그대로이나 주인만 다른 이름만 빌린 것이다. 그리스의 시민 귀족주의에서 농노사회, 봉건사회에 걸쳐 통치자라는 계급 대신 노예는 자본이란 이름이 주인으로 되었다. 자본주의의 최고의 장점이 때로 최악의 단점이 된 것이다. 인간 소유권에서 생명과 재산이 결국 혁명을 이끌었으나 혁명을 무디게 했다. 그런 역사적 과정이 변증법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이때까지 누구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테제라면, 마르크스는 그것을 만들게 한 하나의 교두보와 같다. 주인 없는 노예, 노예 없는 주인에서 휴머니즘을 원한 마르크스에겐 인간의 스스로의 사슬을 푸는 것은 결국 합리적 이성과 명확한 현실적 판단이다. 오히려 마르크스에게 공상적인 몽상과 현실과의 지나친 타협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른 길임을 말한다. 여전히 자본은 세계명문대학에서 고전으로 읽힌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마르크스 도서 역시 고전으로 읽는 도서다. 그래도 계속 오해와 편견, 망상과 괴리 속에 마르크스는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어떤지 알아보거든 이 책이 좋은 듯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상사학자이니 그만큼 객관성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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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존 도커 지음, 신예경 옮김 / 알마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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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폭력으로 얼룩이 진 역사다. 가려진 역사 뒤에는 죽음과 파괴, 모순과 왜곡으로 가득하다. 오히려 모순과 왜곡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상일까? 세상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 보여주기 보단 감추고 은폐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신화라는 이름이 탄생하고, 그 신화에서도 폭력에 숨은 영광과 동시에 폭력에 대한 억압을 담은 것 역시 신화다. 인류가 모조리 멸망하지 않을 그 순간까지 우리는 신화의 세기인 것이다. 우리들에 대한 억압은 부조리하나 타인에 대한 억압은 생각하지 않는 풍조는, 인간들의 집단주의적 행동들이 불러일으키는 광기다.

 

광기는 개인적 광기는 예술과 문학, 철학과 사상을 전파한다.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들이야 말로 기존 시대에 새로운 이야기를 열어가게 하는 사람이다. 아니라면 신과 조우한 자들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샤머니즘이란 전통신앙체계가 있고, 거기에 무당들은 알 수 없는 무아지경에 빠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 춤과 노래를 부르고, 작두 위에서 맨발로 뛰어 오른다. 작두에 오이를 떨어뜨리면 두 동강이 나는데, 그들에게서 상처 따위는 없다. 개인적 광인들의 출현은 오히려 그 사회의 대중들 속에의 자리 잡은 숨은 광기를 해소해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인들은 모두 정신병원이나 수용소로 넘어가고, 미신이라는 이유로 남들이 보이지 않은 공간에 유폐된다. 그러면서 인간의 광기는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공통습성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자신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가진 부류들은 결국 관대하지 말아야 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들이 스스로 관대하기 위한 우월감에 젖을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전쟁역사를 다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계속 언급하는데, 그들만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민족주의가 우선되어야 했다.

 

자신들의 우월한 통치체제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렇지 못한 존재가 필요하고, 그들을 짓밟는 것이 필요했다. 결국 관용과 환대라는 정신보단 항복하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협박만이 존재했고, 그것은 그리스가 멜로스라는 작은 국가를 침공하면서 잔인한 인간을 보여준다. 대부분 남정들은 전투요원이 된다는 이유로 모조리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삼는다. 결국 일국의 나라와 민족의 씨를 모조리 말리는 것이다. 물론 노예가 된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여도 후세를 남기기 어렵다.

 

여자들은 모조리 전리품이 되어 종살이를 해야 하고, 잦은 착취와 성폭력에 시달린다. 다른 부족 남자에 의해 성폭행당한 여성은 아이를 놓으면 그 아이는 성폭행 자의 아이가 아니라 단지 종의 아이일 뿐이다. 피로 연결되어 있지만, 결국 죽는 순간까지 비참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이들이 살아남아 다른 곳에서 생존하여 다시 되찾으러 오는 순간 커다란 전쟁과 폭력의 공포에 빠지게 된다. 기억나는 부분은 유대인에 대한 부분이다. 그들은 분명 주변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나, 그들은 메시아주의에 의해 약속된 땅을 찾으러 간다.

 

문제는 그 땅을 찾아가는 곳에 이미 다른 주민들이 정착하고 있었다. 그들과 공존하기보단 그들을 내몰거나 죽이는 행위를 했다. 오히려 그런 힘이 없는 부족의 죽음이 신의 명령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런 피해자 속에 잠재된 피해의식이 억압과 분노에서 다른 부족들에게 공격과 파괴로 이어진다. 흔히 피해자가 가해자로 되어버리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극은 1982년 레바논 대학살로 이어지는 사태로 이어진다. 전쟁에서 군인들의 전쟁에서 전쟁 후의 처리는 결국 민간인들의 참살 내지 노예화다. 죽이는 것에서는 농경사회 이전에 보이는 것으로 수렵이나 사냥에서는 에너지효율을 생각하면 대부분 몰살시키는 제노사이드가 용이했고, 농경사회 후에 재물을 축적하게 되면서 노예가 오히려 편한 것이다.

 

노동을 타인에게 부과한 만큼 강력한 군사력을 만들 수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정체에 대한 부분에서 우수한 아들들을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어릴 적부터 체육과 학문을 연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모가 누군지 모르고, 귀족시민들의 공통된 자녀로서 살아가기에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란 필요가 없다. 단지 전쟁을 위한 전사, 정치를 위한 정치가로서 발전시킬 뿐이다. 이들이 가진 우월감에서 결국 그 외의 신분이나 계층들은 모두 하등한 것으로 간주하고, 여기서 상대국가에 대한 관계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플라톤이 이룩한 철학적 과업은 위대하나, 그런 만큼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여 이민족이나 유목민,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틀에서 서구 중세 기독교로 이동하면 신대륙 환상이 가득하다. 이들이 도전한 땅에 원주민들은 본래 그 곳의 주민인데도 이들을 모두 이민족으로 여긴다. 진짜 이민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영국에서 종교적 자유와 인권을 위해 미국으로 온 백인들은 거기서 살고 있던 인디언을 살해하고, 흑인들이나 유색인종에 대해 폭력과 억압을 실행한다.

 

그런데도 자유와 평등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자유와 평등은 자신 안이 아닌 타인에게도 존재하는 것에 대한 철학적 명제는 없다. 이런 모습들은 계속 역사적으로 되풀이가 되어오고, 학살은 계속 이어간다. 제노사이드에 대해 상식을 가진 자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사건들은 분명 옳지 않고 무섭다고 하나, 살인의 향연에선 늘 주인공은 그런 상식을 가진 자들이다.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하는 합리주의적 사고와 계몽의식은 오히려 그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가린다. 스피노자가 이성도 감정 중에 한 가지라고 한 것처럼 이성적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결국 더 잔인한 인간상을 부여한다.

 

물론 그것을 진작부터 알았다면 비극은 피할 수 있으나, 그럴 수가 없다. 상식적인 부분은 보편적인 면과 동시에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유사한 인간상을 가진 것과 같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서 어린 시절 그녀 집 근방에 독일군 포로를 가둔 수용소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나치에 대해 수전과 그 시대 사람들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마치 괴물이나 흉악한 존재로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보면 보통 인간이었고, 감정이 풍부하고 때로는 이성적이며, 온화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괴물이라고 여기는 존재가 오히려 선량하게만 보이던 사람이니, 그들을 악마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괴물과 악마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고 내 속에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에게 처한 위기에서 애절한 구원의 손길을 주기를 원하는 오디세우스가, 어느덧 자신이 구원의 순간을 결정할 때 아주 냉정하게 몇 마디로 잘라낸다. 당하는 자는 예전에 자신을 구해준 사람인데도 말이다. 인간이란 본래 이런 존재인가?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왠지 허탈하다.

 

비폭력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안으려 해도, 결국 비폭력 정신은 폭력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디즘이라고 하여 영국에 대항한 인도의 성인, 그러나 그도 폭력적인 종교주의자에게 살해당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타인에 대한 관대함은 좀처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허망한 꿈이다. 그런다고 해서 지금까지 일어난 세계의 인종 학살극과 지금도 계속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은 우리의 뉴스에서 나오는 일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에만 생각만 할 수 없다.

 

과거의 역사와 역사의 숨은 이야기인 신화조차도 우리의 모습이 계속 되풀이된다. 신화적인 사실의 왜곡에서 인간들이 보여준 이야기는 매우 잔인하다. 그런데 더 잔인한 짓은 그 잔인한 행동들을 오히려 영웅적인 행태로 속인다는 점이다. 은폐와 모순, 왜곡 이 모든 것이 신화적 동기에서 중요한 촉매를 한다. 폭력의 정당화는 그 폭력에서 보이는 의미의 부여다. 건국신화를 보더라도 영웅이 거기에 정착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에 부족이 있다는 점과 그들과 교합하여 동맹을 이루지 못하면 결국 침략이다.

 

침략의 행위를 하나의 신화로서 명예로 간주하는 것들은 문명화라는 이름의 오만이고 야만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다보면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보던 남미의 삶에서 상처와 고통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소실은 반대로 그 소실만큼 이익을 챙기는 자의 증대다. 균형의 추에서 어느 한 곳이 내려가면 다른 곳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을 야만스러운 존재라고 억지로 교화시킨 그들의 모순적 행동은 문화의 소멸과 부족의 소멸이다.

 

이 책의 뒷면에 아주 좋은 말이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헬레네>의 대사 일부로서 “인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형이 낭자한 참사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으리. 언제쯤 폭력이 사라지고 증오가 누그러드는가? 언제쯤 사람과 도시가 평화롭게 살아가는가?” 여기에 대한 좋은 답은 코멘트가 달려 있다. 헤로도토스 <역사> 제3권 21장 에티오피아 왕이 페르시아 특사에게 한 말로 “그대의 왕은 공정한 사람이 아니다. 만일 공정한 사람이었다면 남의 땅을 탐내지도 않았을 테고, 아무 죄 없는 민족을 노예로 삼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왕국들이 자취를 사라지고 있어도 저기 숨겨진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왕은 대표되는 인물이지 그 왕들의 아래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런 심리를 느끼는 점이다. 피를 보는 만큼 자신이 정당함을 몸소 정의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의란 선악의 도덕적 구분에서 그 대상이 심각한 행위가 아닌 이상 결국 선은 힘에 의해 구분이 지어지게 된다. 정의의 실현은 곧 폭력의 실현이다. 폭력의 미학에서 인간은 그것이 틀렸다고 여기지 않는다. 더 잔인하고 상대방의 목을 베는 것이 지겨워서 못할 정도가 되어야 그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 제노사이드가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의 순간으로 칭송되는 것이 여전한 전쟁논리다.

 

전쟁에서 민가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에 대한 보급과 은식처를 제거하는 것이고, 민간인에 대한 총격은 적군의 지원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들만 죽이는 것에 비해 최근 학살은 어린이아와 여자 할 것 없이 모조리 살해한다. 20세기 파시즘이 활개를 칠 때 같은 시간에 누가 더 많은 목을 베는지 시합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괴물이고 악마라 여기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만의 정의를 행사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폭력에 항상 정의란 단어가 들어간다. 정의의 이름으로 적을 처단하는 행동에서 오히려 정의가 없다는 게 드러날 뿐이다. 적군으로부터 그 나라 국민을 해방한다는 자들이 오히려 그 국민들에게 저지른 학살들은 모두 아닌 척하고 있다.

 

결국 피해자의 세계에서는 정의란 그저 허울만 좋은 폭력이고, 피해자의 상흔은 드러날 수 없는 숨은 이야기다. 약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으며, 설사 한다고 해도 그저 퇴치되어야 할 선동가로 될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역시 그런 기류를 잘 볼 수 있다. 냉전 시대의 메카시즘이 다시 21세기에 신메카시즘으로 우리 앞에서 폭력의 신화가 부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력적 메시아주의에서 진정한 정의를 찾을 수 있다. 힘으로 누르고, 그 힘에 굴복한 이들은 모두 악으로 규정지게 하면 된다. 정의는 우리의 것이라는 슬로건이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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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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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뭔가 반드시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 강박관념은 우리에게 마치 편집증 환자처럼 자신의 심리를 날카롭게 만든다. 그런 날카로운 자신에게서 탈출하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난감한 일이다.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그런 현실에서 여러 가지 소재를 8가지 이야기로 나눈다. 다 소개하기는 그러하나 1번째 이야기인 자동피아노, 우리는 음악이란 매체를 어떻게 여기는가? 솔직히 말하여 음악에서 답답한 클래식도 피곤하고, 섹시한 여자들이 섹시한 옷과 섹시한 포즈로 섹시한 가사를 보는 것도 지겹다.

 

그냥 섹시한 매력을 보고 싶다면 미스 유니버스에 나오는 후보들의 비키니 수영복을 보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포즈도 잡아주고 예쁘게 미소 지어주니 얼마나 훈훈한가?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각본과 연출이 필요하니 말이다. 어째든 자동피아노에서 우리는 소리에 대해 어떻게 여기는가에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본문에서 “음악은 단순히 소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콘서트홀에서의 음악은 피아니스트의 동작, 손끝의 움직임, 발놀림, 표정, 관객들의 헛기침 소리, 박수소리가 피아노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소리로만 이루어지기 위해 어느 죽음을 앞둔 피아니스트는 절대로 공연장에서 공연하지 않고 음반 속에 피아노소리만 존재했다. 그의 라이브는 전화기 너머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음악소리야 말로 정말 진실했다. 모든 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단지 나의 음악적 성향은 혼자 조용히 듣는 것도 좋으나 모두 같이 즐기는 것이다. 예전에 락콘서트에 가면 밴드보컬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공연 보러 오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오늘 공연은 관객은 없어요. 오늘 공연은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는 겁니다. 자 그럼 준비되었나요? 모두 목이 터져 내일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르는 겁니다.”

 

내가 바란 음악은 저런 것이다. 관객이 관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대의 또 다른 연주자로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얼마나 근엄하게 딱딱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이런 비슷한 일화는 엇박자 D의 이야기다. D는 매우 엉뚱하다. 합창부를 들어간 이유는 다른 사람과 동기가 다르다. 그는 진짜 노래를 하고 싶었다. 이에 반해 다른 학생들은 자습하여 공부하거나 졸거나 혹은 딴 짓을 한다. 오직 D만이 열정적으로 처음부터 합창부의 단장이 되겠다고 자진하고, 곡은 무엇이며 그 외 여러 가지로 의욕적 활동을 했다.

 

하지만 막상 합창부가 학교축제 1개월 전부터 연습했지만, 거기서 가장 못한 사람은 D이었다. 그만이 엇박자이었다. 우리는 엇박자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그저 모두가 같아야 한다는 관념 아래 조금이라도 틀리면 배제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개성이란 무엇인가? 20년 훌쩍 지난 후에 40살의 주인공이 D를 보자, 그의 공연에 대한 기획에 참여한다. 마지막에 학교에서 부른 그 곡, D가 학교선생에게 뺨을 얻어맞고 거기다가 비참하게 끝이 나버린 그 곡을 엇박자로 된 상태로 나온다.

 

단지 엇박자가 20명 중에 1명이 아니라 모두가 엇박자였다. 오히려 그것은 조화로운 사운드로서 관객에게 선율을 제공했다. 엇박자가 서로 모여 화음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조화로운 세상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사회에 놓이기를 바라는 사회적 통념일까? 그런 지루함에서 탈피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면 2사람의 미취업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매번 입사시험에 떨어지는 그들, 엉뚱한 행동에 모두 어이없어 한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최후의 아방가르드인 상황주의자의 행동들을 따라하는 듯한 느낌이다.

 

면접 중에 실타래를 풀고, 마술쇼를 하고, 온갖 잡동사니 짓을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번 쓴맛의 불합격과 그 뒤를 찾아오는 술맛만 맛볼 뿐이다. 이들이 우연히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못해 지하철 안에서 실타래를 풀어보자고 했다. 우연히 신문기사에 뜨고 이들은 성공한다. 그 일이란 면접관을 맡는 것인데, 그것 역시 하나의 지루한 단계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이루면 결국 권태로움이 된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게 아닌가? 어릴 때 나의 꿈은 대통령이나 우주비행사 같이 스케일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할 만하다. 하지만 하고 나면 어떻게 해?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이 가뿐 현실에 허우적대는 나로서는 알기란 어렵다. 단지 뭔가 이룬다면 다음 목표가 생기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그 자리에 만족할 수 없다. 그냥 만족하고 있다고 여겨질 뿐이지. 본래의 원한 목적은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항상 옆에 있어도 찾을 수 없다. 현실의 조건과 위기, 그 모든 것이 나의 벽일지 모른다.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인가? 무방향 버스에서 사라진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간 것인가?

 

일상 속에 가려진 나의 모습에 지친 것은 아닌가? 진정한 내가 찾으려 한 맛깔 나는 느낌이란 무엇인가? 무지개가 7개고, 음도 7개다. 세상은 소리로 이루어진 무지개처럼 조화로움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인 색이고 소리다. 우리는 자연적인 색과 소리를 찾았는가? 아니면 디제이가 억지로 끼워 맞추어 넣은 것처럼 우리도 그렇지 않은지 말이다. 작가가 초반부터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완벽한 것은 없고 계속 변화하는 점, 소멸에서의 미를 찾아가는 것 같다.

 

시작도 끝도 없기에 지금도 시작인가? 끝인가? 이 소설에서 특이한 구성은 남자 2명이다. 심사위원의 평도 그러하나 남자 두 명의 관계이다. 남자는 항상 현실에서 뭔가 충분한 삶을 살기보단 부족하거나 미흡한 존재다. 죽기 전의 남자, 실직자, 미취업자, 교통사고자, 가족이 행방불명, 불법음반복제자 등을 보면 말이다. 항상 비정상적 상황에 있는 자들이 남자와 남자라는 관계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심사평처럼 여성은 없다. 있다면 헤어진 여자 친구와 행방불명된 어머니나 그리고 친누나다.

 

그러나 헤어진 여자 친구처럼 관계가 소멸되고, 행방이 불명하기에 소멸된 존재란 점, 친누나가 결혼한 여성이란 점에서 이 역시 배제할 수 있는 여성이 형성된다. 그런다고 남성우월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남성들은 오히려 꿈이 커지기보단 작아지고 사라져간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나 남성들에게 로망이란 것이 있다. 단순히 연애나 부와 권력을 떠나 그 자체로서 자신이 원하는 세계가 있다는 점이다. 단지 이번 도서의 작가인 김중혁씨는 스토리전개를 음악에 맞추었다. 혹시 아니라면 인간이 스스로 살아있는 그 자체에서 예술이 되어보자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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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SE
존 할라스, 조이 벳첼러 / 블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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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부터 1940년대의 유럽은 파시스트의 태동기였다. 당시의 나치의 히틀러, 스페인의 프랑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이 모든 분쟁과 억압에는 독재자란 이름이 항상 끼여 있었다. 이에 대한 비극인가? 1936년 프랑코는 스페인 자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죄 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특히 피카소의 명작 중에 하나인 <게로니카>가 바로 프랑크의 독재정치로 말미암아 발생한 잔혹한 살인극을 초현실주의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그런 프랑코에 대항하여 세계 각지의 지식인들이나 혁명가들이 스페인이 모였다. 거기에는 영국 문학가인 조지 오웰이 있었고,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자전적 소설을 만들었다. 전쟁에 대한 심각한 공포와 실재적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쟁의 참혹함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새겨주었다.

 

그런 조지 오웰이 전쟁 중 부상을 입은 후에 다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서적들이 있으나 특히 <1984>와 <동물농장>은 20세기 문학에서 권장도서로 여길 만큼 좋은 작품이다. <1984>는 미래의 감시국가에 대한 암울함, <동물농장>은 러시아혁명 이후의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암울한 이야기를 다룬 풍자극이다. 전자는 매우 리얼리티한 공포를 내세운다면 후자는 우화로 통해 만든 이야기다. <동물농장>은 1942년에 만들어진 것이고, <1984>는 1948년에 완성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여기에는 어느 인물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그것은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인 스탈린이다.

 

스탈린의 폭정은 1930년대부터 신경제개발정책으로 쿨라크의 재산과 식량을 빼앗고, 당시 동아시아의 독립운동가나 이민족들을 강제이주 및 살해한다. 이때 암울한 이야기 중에 하나가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과 동시에 <동물농장>이었다. 어느 쪽이든 암울한 이야기를 다룬 것은 분명하나 <동물농장>은 다른 작품에 비해 재미와 위트를 많이 넣었다. 이것은 곧 히트하여 미국과 한국 등에 퍼지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 이른다. 그 이유는 러시아혁명 이후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비판을 강도높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여기에 진정 비판하는데 있어서 어느 인물에 대한 동정심을 조지 오웰은 보여준다. <1984>에서 골드슈타인으로 안경 낀 마른 남자로 하얀 염소수염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인물은 <동물농장>에서 작은 돼지인 스노볼로 나온다. 그는 러시아혁명에서 레닌 옆에서 직접 지휘하던 레온 트로츠키였다. 트로츠키는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에 새롭게 러시아혁명사에서 주요 인물로 부각되었는데, 그 이유는 스탈린이 레닌 사후 소비에트연방의 권력을 장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비극적 혁명사는 1917년 러시아혁명만 아니라 1789년 프랑스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당통이 죽고, 로베스피에르마저 죽자 프랑스혁명은 모조리 끝이 났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에서 혁명이 끝이 났다라고 선언하듯이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일어난 구체제 봉건사회에 대한 반발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압제정치의 새로운 형태로 발생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나, 그것은 그 혁명에 대한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혁명 이후 개혁적인 부분이 문제였다. 두 혁명은 왕정의 압정과 국민들의 가난과 굶주림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부적인 압력이 하부적인 구조를 망쳤고, 다시 하부적인 구조가 상부의 결정방향에 큰 위기를 만든 것처럼 실패한 혁명이야기에서 <동물농장>은 여러 가지의 교훈을 주고 있다.

 

존 할라스는 바로 자기 고국인 영국 문학가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 제작에서 셀 애니메이션 기법에 런닝타임 70분 정도로서 실사영상으로 만든 영화 <동물농장>보다 시간적 제약이 큰 것이 아쉬웠다. 대신 애니메이션은 표현주의 미학에 따라 보여주므로, 소설의 문자에서 읽히던 부분들을 영상과 소리로 표현하여 다양한 재미와 묘미를 맛볼 수 있었다. 간단한 스토리는 어느 목장에서 주인이 계속하여 제대로 가축들에게 밥을 주지 않고 술만 마셔서 결국 이에 항거하여 농장이 동물에 의해 소유되나 스노볼이 쫓겨나고 나폴레옹이 집권하면서 살인적인 압제가 되는 것이 주요 메인이다.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관점들을 보면 소설은 화자인 작가가 3인칭으로 관찰하고, 영화는 캐쉬라는 개를 통해 그 개의 눈을 보는 것처럼 3인칭 구조로 했으며, 애니메이션은 당나귀의 시선에서 작품을 정리한다. 물론 카메라 앵글에 따라 비추어지는 대상물은 차이가 나겠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것은 농장의 주인이던 러시아황제 차르를 몰아내는 것과 그 결과 내전과 다른 국가의 내정간섭 등이 같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부분은 작은 돼지 스노볼이 민주주의적 공산국가를 만들려고 하다 나폴레옹이 공권력을 휘둘려 그를 제거한 것이었다.

 

덕분에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시작되고, 한국에서 <동물농장>이 번역되어 널리 퍼진 이유도 바로 스탈린이 집권이고, 그 스탈린은 공산국가를 위장한 관료주의적 전체주의국가로 변질시켰다. 그래서 한국에서 공산국가라는 것은 곧 독재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정치철학적 사전용어와 달리 일반론적 사전용어로 되어버려 한국에서 적대적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째든 작품에서 나폴레옹이 사냥개를 이용해 스노볼을 제거할 때 영화와 소설은 그가 죽지 않은 것으로 나오고, 대신 그가 차르왕족과 독일 나치와 손을 잡아 농장을 위협하는 치명적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트로츠키는 스탈린에게 도망치기 북유럽과 프랑스, 그리고 남미로 망명하여 결국 스탈린 보낸 자객인 라몬 메르카데르에게 살해된다. 그런 실화를 다룬 영화로 <트로츠키 암살사건>이란 작품에서 멕시코 어느 마을에서 트로츠키가 피켈에 잔인하게 살해되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때 트로츠키를 살해한 라몬을 맡은 배우는 프랑스 영화배우 알랭 드롱이었다. 알랭 드롱의 젊은 시절의 모습에서 그의 매력과 동시에 스탈린에게 사주 받아 트로츠키를 살해하는 과정을 아주 심적으로 고뇌하는 자객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라몬에게 살해당하는 트로츠키를 맡은 배우는 영국의 명배우 리처트 버튼이었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에게 살해된 시점은 추방된 이후 10년 이상 지난 것이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바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사냥개들이 스노볼을 무참하게 잡아먹는 것으로 살해된다. 애니메이션이 영화 최초 작품이란 점과 어린이 이상이란 점에서 매우 잔혹한 사건을 이렇게 우화적으로 만든 존 할라스 감독의 실력에 놀라울 뿐이다. 스노볼 추방 이후 뒤 이야기는 거의 비슷하다. 나폴레옹과 그의 일당들이 농장주인의 착취에 반기를 든 동물에게 더 심한 폭정을 기울인 점이다. 달걀을 외부 상인에게 팔고, 닭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많은 동물들을 상해한다. 게다가 든든한 일꾼인 큰 말 복서가 다치자 말고기로 만드는 사람에게 팔아버린다.

 

<동물농장>의 처음 이상적 가치는 이미 실종된 지 옛날이고, 모든 동물들에게 가혹한 노동과 폭력, 가난과 추위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동물농장>을 보면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국가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 점은 분명하다. 본래 레닌과 트로츠키가 목표한 것은 연속적인 혁명이고, 비슷한 개념으로 본다면 프랑스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가 공화국의 연설에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가치에 따라 자유란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에도 주어져야 자유가 비로소 도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트로츠키가 연속혁명론을 생각할 때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로 주창하여 결국 관료주의적 전체주의의 결정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그것도 어린이들도 본다는 점에서 상당히 연출력에서 심혈을 바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돋보인 점은 대사가 영국어로 해도 중간마다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나온 점과 작품 내에서 소리가 없는 것보다 항상 소리가 존재한다. 동물들이 움직이거나 혹은 율동에 맞추어 일을 하거나 농장에서 동물과 인간들의 결투 역시 그렇다. 적절한 박자와 음악적 흐름은 작품 r속의 캐릭터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미키마우싱을 충실히 실현한 것이다.

 

당시 제작년도 1954년이란 점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이라고 생각하면 상당한 연출력이 아닐 수가 없다. 기술의 발전, 컴퓨터그래픽의 도입은 애니메이션 자체에 큰 발전을 준다고 하지만, 그 기법적인 연출력과 상상력은 지금 다시 봐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작품의 비평적인 관찰에서는 본래 소설에서 나폴레옹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을 나치와 맺는다. 그러면서 돼지와 인간이 서로 누가 돼지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나폴레옹과 그 주변 카르텔들이 원래 농장 주인이던 술주정뱅이 같이 보인다.

 

그리고 복서의 친구인 당나귀가 그들의 행동에 참지 못해 다시 동물농장은 분노의 혁명이 일어나고 작품은 마감한다. 1954년은 한국전쟁이 1953년 휴전 뒤이기 때문에 냉전의 공포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다. 아마 존 할라스의 작품에서는 소비에트연방의 주인인 스탈린 정권에 대해 러시아 사람들이 다시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다시 일어나서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하기를 바란 것이 보인 듯했다. 이에 반해 실사영화에서는 동물농장이 다른 동물의 저항보단 스스로 망했다는 점이 다르나, 조지 오웰의 가진 스탈린에 대한 증오심은 어떻게든 과정을 떠나 결론적으로 완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트로츠키는 제이슨 바커라는 철학자가 만든 영화 <marx reload>에서 포스트 중앙에 나온다.

 

그 뒤로는 아주 낯익은 인물인 슬라보예 지젝이 보이고 말이다. <동물농장>에서 실제적인 모티브는 스탈린이 펼친 독재와 폭력이었으나, 그것을 알게 해주고 비판해주게 한 것은 바로 트로츠키였다. 소설 <1984>에서 오세아니아에 큰 적이고, 빅 브라더와 본래 면식이 있던 자는 스탈린의 정적인 트로츠키다. 그의 서적인 <배반당한 혁명>은 스탈린이 반드시 독재정치로 통해 폭력과 압제를 누리는 것과 동시에 권력욕을 위해 나치와 손잡는 것을 1936년에 예언하고, 그것은 적중했다. 역사란 참으로 오묘하다. 단순히 소설 같은 것이 결국 역사적 사실이고, 혹은 역사적 현실로 변해가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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