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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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뭔가 반드시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 강박관념은 우리에게 마치 편집증 환자처럼 자신의 심리를 날카롭게 만든다. 그런 날카로운 자신에게서 탈출하는 것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난감한 일이다.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그런 현실에서 여러 가지 소재를 8가지 이야기로 나눈다. 다 소개하기는 그러하나 1번째 이야기인 자동피아노, 우리는 음악이란 매체를 어떻게 여기는가? 솔직히 말하여 음악에서 답답한 클래식도 피곤하고, 섹시한 여자들이 섹시한 옷과 섹시한 포즈로 섹시한 가사를 보는 것도 지겹다.

 

그냥 섹시한 매력을 보고 싶다면 미스 유니버스에 나오는 후보들의 비키니 수영복을 보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포즈도 잡아주고 예쁘게 미소 지어주니 얼마나 훈훈한가?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각본과 연출이 필요하니 말이다. 어째든 자동피아노에서 우리는 소리에 대해 어떻게 여기는가에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본문에서 “음악은 단순히 소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콘서트홀에서의 음악은 피아니스트의 동작, 손끝의 움직임, 발놀림, 표정, 관객들의 헛기침 소리, 박수소리가 피아노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소리로만 이루어지기 위해 어느 죽음을 앞둔 피아니스트는 절대로 공연장에서 공연하지 않고 음반 속에 피아노소리만 존재했다. 그의 라이브는 전화기 너머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음악소리야 말로 정말 진실했다. 모든 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단지 나의 음악적 성향은 혼자 조용히 듣는 것도 좋으나 모두 같이 즐기는 것이다. 예전에 락콘서트에 가면 밴드보컬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공연 보러 오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오늘 공연은 관객은 없어요. 오늘 공연은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는 겁니다. 자 그럼 준비되었나요? 모두 목이 터져 내일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르는 겁니다.”

 

내가 바란 음악은 저런 것이다. 관객이 관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대의 또 다른 연주자로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얼마나 근엄하게 딱딱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이런 비슷한 일화는 엇박자 D의 이야기다. D는 매우 엉뚱하다. 합창부를 들어간 이유는 다른 사람과 동기가 다르다. 그는 진짜 노래를 하고 싶었다. 이에 반해 다른 학생들은 자습하여 공부하거나 졸거나 혹은 딴 짓을 한다. 오직 D만이 열정적으로 처음부터 합창부의 단장이 되겠다고 자진하고, 곡은 무엇이며 그 외 여러 가지로 의욕적 활동을 했다.

 

하지만 막상 합창부가 학교축제 1개월 전부터 연습했지만, 거기서 가장 못한 사람은 D이었다. 그만이 엇박자이었다. 우리는 엇박자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그저 모두가 같아야 한다는 관념 아래 조금이라도 틀리면 배제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개성이란 무엇인가? 20년 훌쩍 지난 후에 40살의 주인공이 D를 보자, 그의 공연에 대한 기획에 참여한다. 마지막에 학교에서 부른 그 곡, D가 학교선생에게 뺨을 얻어맞고 거기다가 비참하게 끝이 나버린 그 곡을 엇박자로 된 상태로 나온다.

 

단지 엇박자가 20명 중에 1명이 아니라 모두가 엇박자였다. 오히려 그것은 조화로운 사운드로서 관객에게 선율을 제공했다. 엇박자가 서로 모여 화음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조화로운 세상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사회에 놓이기를 바라는 사회적 통념일까? 그런 지루함에서 탈피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면 2사람의 미취업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매번 입사시험에 떨어지는 그들, 엉뚱한 행동에 모두 어이없어 한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최후의 아방가르드인 상황주의자의 행동들을 따라하는 듯한 느낌이다.

 

면접 중에 실타래를 풀고, 마술쇼를 하고, 온갖 잡동사니 짓을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번 쓴맛의 불합격과 그 뒤를 찾아오는 술맛만 맛볼 뿐이다. 이들이 우연히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못해 지하철 안에서 실타래를 풀어보자고 했다. 우연히 신문기사에 뜨고 이들은 성공한다. 그 일이란 면접관을 맡는 것인데, 그것 역시 하나의 지루한 단계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이루면 결국 권태로움이 된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게 아닌가? 어릴 때 나의 꿈은 대통령이나 우주비행사 같이 스케일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할 만하다. 하지만 하고 나면 어떻게 해?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이 가뿐 현실에 허우적대는 나로서는 알기란 어렵다. 단지 뭔가 이룬다면 다음 목표가 생기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그 자리에 만족할 수 없다. 그냥 만족하고 있다고 여겨질 뿐이지. 본래의 원한 목적은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항상 옆에 있어도 찾을 수 없다. 현실의 조건과 위기, 그 모든 것이 나의 벽일지 모른다.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인가? 무방향 버스에서 사라진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간 것인가?

 

일상 속에 가려진 나의 모습에 지친 것은 아닌가? 진정한 내가 찾으려 한 맛깔 나는 느낌이란 무엇인가? 무지개가 7개고, 음도 7개다. 세상은 소리로 이루어진 무지개처럼 조화로움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인 색이고 소리다. 우리는 자연적인 색과 소리를 찾았는가? 아니면 디제이가 억지로 끼워 맞추어 넣은 것처럼 우리도 그렇지 않은지 말이다. 작가가 초반부터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완벽한 것은 없고 계속 변화하는 점, 소멸에서의 미를 찾아가는 것 같다.

 

시작도 끝도 없기에 지금도 시작인가? 끝인가? 이 소설에서 특이한 구성은 남자 2명이다. 심사위원의 평도 그러하나 남자 두 명의 관계이다. 남자는 항상 현실에서 뭔가 충분한 삶을 살기보단 부족하거나 미흡한 존재다. 죽기 전의 남자, 실직자, 미취업자, 교통사고자, 가족이 행방불명, 불법음반복제자 등을 보면 말이다. 항상 비정상적 상황에 있는 자들이 남자와 남자라는 관계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심사평처럼 여성은 없다. 있다면 헤어진 여자 친구와 행방불명된 어머니나 그리고 친누나다.

 

그러나 헤어진 여자 친구처럼 관계가 소멸되고, 행방이 불명하기에 소멸된 존재란 점, 친누나가 결혼한 여성이란 점에서 이 역시 배제할 수 있는 여성이 형성된다. 그런다고 남성우월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남성들은 오히려 꿈이 커지기보단 작아지고 사라져간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나 남성들에게 로망이란 것이 있다. 단순히 연애나 부와 권력을 떠나 그 자체로서 자신이 원하는 세계가 있다는 점이다. 단지 이번 도서의 작가인 김중혁씨는 스토리전개를 음악에 맞추었다. 혹시 아니라면 인간이 스스로 살아있는 그 자체에서 예술이 되어보자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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