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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 프로이스의 <일본사>를 통해 다시 보는
국립진주박물관 지음, 장원철.오만 옮김 / 부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천주교회사에서 한국의 경우 마테오 리치 신부가 중국에 전파 후에 만천 이승훈이 청나라에 가게 된 동기로 천주교 문화가 전파되었다. 물론 조선 후기 남인의 대표적인 학파이며 한국의 다산학의 원천자인 성호 이익가 저술한 성호사설의 “천주실의발”에서 천주교에 대한 국내 최초적 학술적 연구와 더불어 천주교에 대한 서양문물과 과학기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대해 성호학파 중의 이벽과 이승훈, 정약종 중심으로 천주교에 대한 교리를 받아들여 세계에 유래 없이 외국의 문호개방이나 침략 아닌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만든 나라가 한국이 되었다.
한국에서 천주교의 유입은 18세기 후반에서 시작하여 19세기에 박해의 시기였으며, 20세기에는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에 큰 역할을 부여한 점에서 피로서 얻어낸 종교의 자유이다. 이와 달리 건너편 나라인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의 경우는 외국 문물을 당시 한국의 국호인 조선보다 더 일찍 받아 들였다. 임진왜란 시기에 우리는 왜국의 병사들에게 간단히 동래성을 시작하여 한양까지 내어주었다. 나라는 피로 물들고, 국토는 황폐해졌으며, 정치적으로 크게 동요했다.
이런 계기는 바로 일본이 도입한 소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군이 사용한 활보다 왜국이 사용한 소총이 장거리공격에서 더 강한 위력과 정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일본군의 강력한 공격 앞에서 조선이란 국가는 전국적으로 왜군에 패전하여 장수들과 병사들이 몰살당하고, 초반에 군기가 엄격했던 일본군도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약탈과 살해, 강간 등과 같은 범죄 행위도 늘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더불어 거기에 따른 조선과 왜국 내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임진왜란에 대한 사료를 조선왕조실록 내지 난중일기, 징비록과 같은 국내 사료로 통해 자주 본다. 이에 다르게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기록을 이용하여 전쟁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조선은 피해국가라는 점, 중국은 중화주의 사상에 빠진 점, 일본은 침략국가라는 점에서 각각의 입장을 고려해본다며 여러 가지로 객관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우선 조선의 경우 피해자라는 점이고, 사실 모든 기록에서 패배 내지 피해자의 역사가 가장 정확할 수 있으나, 감정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있다.
중국의 경우 대국이란 자체적인 중화주의에서 그들이 원정 올 때 부린 행패는 오히려 왜군보다 더 심각했다. 일본군이 지나가면 대비를 머리를 쓸어가는 것이나 명국은 참빗이라고 한다. 그만큼 더 많은 고혈을 빨아들인 것이다. 대부분 희생과 승전보는 조선의 군인과 의병이 올렸음에도 그들은 전시전과와 전리품을 챙기기 바쁜 것이었다. 물론 임진왜란의 여파로 명국도 가세가 기울여져서 청국에 먹힌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실 일본 역사에 그렇게까지 깊은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나 일본에서 전통사극으로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과 같은 전쟁이야기와 메이지유신 시대의 신선조와 유신자사의 갈등을 아주 미화하여 만든다. 최근 개봉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전국바사라에서 외눈장수 다테 마사무네가 나오거나, TV 애니메이션도 오다 노부나의 야망이라 하여 전국시대 무장들을 미소녀로 그렸고, 그 중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인공이 도착할 때 죽고 그 대신 사루(원숭이)라는 별명을 갖고 여러 미소녀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만화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국시대의 열기는 애니메이션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소설까지 이어져 그들에게 전국시대란 환상적인 스토리텔링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역사에서 조선의 침략자들은 영웅이면 영웅이지 잔혹한 살해자는 아닌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는 기록과 그 기록은 신화화하여 만든 것이 스토리텔링의 모습이다. 그래서 타인의 시각으로 본 사료라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처음에 왜 내가 한국천주교회사를 언급했을까? 그것은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천주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다면 맥을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도서명 <임진왜란과 토요토미 히데요시>라는 도서는 임진왜란을 동북아시아 3개국의 사람들이 본 전쟁이 아니라 외국 그것도 유럽의 신부가 직접 일본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정리한 도서다. 그는 포르투갈 출신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다. 그가 일본에 온 이유도 당연히 천주교 선교활동이었고, 일본 자체의 국력 발전을 위해 온 자가 아니다. 그의 행적에서 일본 장수나 평민들을 천주교도로 순화시키고, 서양문물을 전파했다. 그러면서 일본어를 익히 프로이스 신부가 일본에서 겪은 일들을 정리한 내용들은 천주교의 입장을 배제하여 본다면 매우 객관적인 사료다.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고, 현재의 그도 영웅적인 호걸로 묘사된다. 그러나 루이스 신부가 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상을 보면 참으로 신선하다. “그(히데요시)는 키가 작고, 또한 추악한 용모의 소유자로서 왼쪽 손의 손가락이 여섯 개인 육손이었다. 눈이 튀어나왔고, 중국인처럼 수염이 적었다, 아들과 딸 모두 자식복은 없었으나 빈틈없는 책략가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영토와 재산이 순조롭게 늘어감에 따라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악행과 심술궂은 짖을 저질렀다. 가신뿐만이 아니라 국외자에 대해서도 극도로 오만했으므로 누구나 싫어했으며 그에 대해 증오심을 품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일본 본국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참으로 다행인지 모르지만, 프로이스 신부의 책을 번역한 사람은 오만(吳滿) 이라는 언어(문학박사)학자이다. 그는 자국의 영웅인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결코 좋지 않은 모습을 본 이 선교사의 서적을 번역했던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살인기계로 보이나, 역사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기록이기에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은 이상 책임감에 대한 감각은 멀어지게 되는 마련이다. 대신 문학적 환상에 따른 왜곡은 더해질 뿐이다.
그런 부분에서 선교사가 본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 사정과 더불어 전쟁 중의 현상을 본다는 것은 사료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다. 대신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과 그 후의 정유재란에서 종료의 종료가 1598년이었으나 선교사 프로이스 신부는 1597년 타계하는 바람에 그 자료를 끝까지 이어갈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 마무리를 맺는다. 천주교도 중에서 특히 충실한 장수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아고스띠뇨라는 표현에서 책의 후반은 토요토미 히데요시보다는 차라리 아고스띠뇨라는 고니시 유키나가라는 장수에게 초점이 가깝다.
그의 생존이나 혹은 주변 천주교신자 장수들이 승리나 구사일생에 대해 행운이나 또는 상황의 모면보단 하느님의 은총이란 비과학적 판단에서 다소 조심한다면 상당히 좋은 도서라는 점이다. 물론 천주교에 대해 나쁜 감정도 없고 오히려 천주교신자나 신부님이나 수녀님과 나름 친분을 나누는 입장에서 종교적 관점을 배제해야 역사의 정확한 요소를 판단하기에 종교적 입장을 분리하여 보는 것이 정당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