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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읽다 1980-2010 - 세계와 대륙을 뒤흔든 핵심 사건 170장면
카롤린 퓌엘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12년 1월
평점 :
예전에 러시아혁명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지금 중국이 공산주의국가 여부에서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답하고 싶다. 그들의 국가적 가치관은 이른바 쇼비니즘에 가깝다. 마치 러시아혁명이 1917년 2번이나 일어나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러시아 농민 쿨라크와 같은 존재가 중국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부분에서 노동자로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19세기 중후반 독일에서 활동하다 자국 내의 검열로 인해 영국으로 추방당한 마르크스에게 당시 유럽은 근대화 기반을 이미 수행하고 있었다.
즉, 이미 많은 도시에 시골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공장 노동자로 살았던 것이고, 많은 국민들이 노동자로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의 밀집된 공장이 있기에 유럽에서는 지금까지도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잘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 독일, 영국과 같은 정치적 선진국에서는 마르크스 연구가 활발하며, 마르크스주의로 생긴 구조주의와 프랑크푸르트학파, 버밍엄문화연구소의 경우 상당한 인문학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얼마 전에 한국에 방문한 케임브리지 대학의 테리 이글턴 교수의 경우 세계적인 석학이면서도 지식인이니 정치적 성숙과 더불어 학문적 영역까지 뛰어나다.
이와 달리 중국에서 배우는 마르크스주의란 과연 어떠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중국에서는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오히려 노동조합의 단결력으로 노동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에 공산주의국가라고 표방하는 중국에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공산국가라고 하나 그것은 마르크스가 가르치던 공산주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공산당만 남은 관료주의 국가일 뿐이다. 게다가 강력한 쇼비니스트들의 모임이다. 중국의 강력한 단결력은 관료주의 체계에서 사용하는 프로파간다의 위력이다.
중국이 원인제공자이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고, 그 원인에 따른 부차적인 사고를 카메라로 집중적으로 목격하여 대국민적인 단결력을 도모한다. 가령 티베트족의 독립 문제를 거부하는 것과 달라이라마의 망명,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행보를 트집 잡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르크스주의와 관계없는 행동이다. 게다가 중국이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다르다. 레닌은 제3인터내셔널을 조직할 때 분명한 슬로건이 있었다.
제3국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공산주의국가 혁명으로 러시아혁명이 비록 스탈린에 의해 실패했더라도, 기본적으로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란 제3국의 노동자에 대해서도 보장해야할 가치였다. 중국의 경우 오히려 역행했다. 티베트를 강제적인 군사행동과 대만과의 군사적 대립, 그 외 중국내에 거주하는 다민족들까지 억압했다. 한족이 중심인 중국에서는 그저 한족이 세계 중심이 되어야 하는 점과 평등이란 오로지 자신에게 존재한 평등이었다.
따라서 중국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강력한 관료주의에 바탕으로 한 전체주의 가치관으로 말이다. 중국이 당초 생긴 공산당이란 일본과 대립하던 독립운동이었다면 이제는 마오쩌둥이 지배하기 위해 생긴 정치적 공작기관이다. 마오쩌둥은 일생을 투쟁만 삼은 인물이다. 그 투쟁력이 있기에 중국은 독립적인 나라가 되었고, 냉소 이데올로기에 살아남아 거대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과 같이 마오쩌둥의 강력한 모습은 정치란 단순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만 몰고 간 것이 한계였다.
마오주의가 성공할 수 있는 동기는 마르크스는 혁명주체를 노동자로 봤다면, 마오는 농민으로 보았다.
중국이 기본적으로 1차 산업인 농업중심이었고, 그들은 광대한 대륙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장점이자 단점이다. 러시아 농민처럼 그들은 심각한 쇼비니즘에 심취한 점이란 것이고, 교육의 한계성으로 계몽이 성사될 수 없었다. 자기 안의 계몽이 없으면 타인의 계몽은 그저 새로운 억압과 통제일 뿐이다. 마오쩌둥의 강한 의지로서 중국은 같은 공산국가인 소비에트 연방과 베트남과 이질적인 외교성을 보인다.
그런 마오쩌둥이 죽은 후에 덩샤오핑이란 인물이 나타나면서 중국은 변화의 물결을 받는다. 하지만 덩샤오핑 역시 한계성이 보이는 것은 마오쩌둥 시절에 문화대혁명에 따른 홍위병이 중국내를 혼란으로 몰고 갔다면, 1989년 천안문사태는 중국 내에서 검색이 불가능한 단어로 설정했다. 중국은 인권문제에서 매우 열악한 국가이다. 사람이 너무 많기에 개인의 중요성에서 단체적 중요성이 먼저이다. 물론 사회적 행위에서 단체의 중요성은 인정되나 그 모든 것을 위해 개인의 영역은 모두 소멸된다.
그런 점에 따라 중국은 인권의 기본핵심인 건강문제나 위생문제 역시 엉망이다. 한 마을에 에이즈가 넘쳐도 당국은 비밀에 행동하며,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알린 의사를 평생 감시 속에 나둔다. 언론의 중요성이란 정확한 객관성만큼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중요한 국가적 실책이 나오는 그 부분에서 공정성은 없다. 에이즈 문제가 생긴 마을은 통제되고 격리되었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부분을 생각하면 중국의 성장 뒤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빛이란 강력한 에너지 뒤에는 어둠의 세계가 더 짙게 드리우는 것처럼 중국의 성장에서는 계속되는 발전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는 점이다. 경제 성장만큼 발전하는 것이 컴퓨터와 인터넷과 통신시스템이다. 그러나 그만큼 발전해도 자유로운 언론이 보장되지 않으며 국가 전반적 문제는 여전히 비공개를 요구한다. 환경오염 부분에서도 벤젠이 유출된 문제는 심각하다. 각종 암과 백혈병을 유발하는 벤젠이 기준치 100배라는 점은 보통 인간이 흡입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분유에 멜라닌이나 최근 한국에서 시끄러운 사건인 납이 든 꽃게나 색소가 들어간 음식물은 중국이 그동안 자신들의 경제성장에 치중한 만큼의 국민성의 발전이 없었다. 그것은 강력한 국가정보 통제였다. 선전업무를 맡은 공안정치에서 적은 항상 필요로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은 항상 정의로운 투사야 했다. 국가나 혹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항의는 재빨리 제압하던 그들은 외교문제나 소수민족의 테러에 대해서는 천안문사태가 일어난 그 광장에서 마음대로 외치기 나두었다.
중국이 최고가 되려면 중국이 아닌 자는 그 이하로 격하시켜야 한다는 강한 강박관념이 존재한 것이다. 그 성과는 경제성장이 이미 일본을 제친 것과 2008년 올림픽 경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만큼 국민의식은 발전하지 않았다. 아니 정치적 성장은 기대할 수 없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중국올림픽 참관에서 티베트와 원만한 해결을 원했다. 그러나 중국은 그것을 부정했고, 이에 대해 티베트인이 프랑스에서 파리시장의 허락 아래 티베트 국기를 내건 점과 티베트인과 세계 인권단체에서 티베트 문제를 항의한 것이 그대로 여론에 나타났다.
프랑스는 국가 수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정치적 행보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었다. 같은 국가는 그 자체가 독재국가이고 전체주의국가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이해할 없었다. 지방자치분권에서 자유로운 정치권을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해 말에서다. 프랑스의 경우 1789년 7월 대혁명부터 19세기 내내 혁명의 시기였고, 20세기에도 대혁명이 있던 국가이다. 그만큼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배경이 그 어떤 나라보다 깊은 나라이고, 표현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중시했기에 중국인들로서는 프랑스가 배신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후진타오 수석이 정권을 잡을 시기인데, 후진타오 총리가 임명될 때의 일화는 너무 인상이 깊다. 중국은 부정과 비리가 너무 강한 국가였다. 공안정치가 강한만큼 관료주의 체계의 부실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가족이 없으며, 엄마처럼 키워 주신 고모까지도 인연을 끊은 후진타오의 정치적 행보는 참 인상이 깊다. 중국이란 나라가 아무리 국민성에서 다소 문제가 많아도 저런 지도자의 모습은 왠지 부럽다. 그렇지만 후진타오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티베트에서 저항운동에서 그가 펼친 강압적 조치는 유유하게 대응하면서도 한편으로 강력한 모습을 지닌 것이 배타적 요소이다.
그런 배타적인 자국민중심주의는 중국이란 국가를 선진국으로 발달시켰다. 넓은 인구에 광대한 영토에 외국기업이 투자유치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외화를 벌었다. 하지만 산업스파이나 기술유출이 강한 국가로 비추어진 만큼 중국은 강대국들이 가장 경계할 대상 국가이다. 그러나 중국은 가장 멀리하기보단 가장 경제적으로 협조해야할 국가이다. 국가의 규모와 인구수만큼 시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시장성이 되는 인원이 소수라도 그 소수규모 자체도 다른 국가에서는 상당한 인원이다.
한국에서 보는 중국에 대한 시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나, 경제적 분야를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매우 강한 나라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소모품이나 물건을 보면 대부분 made in china라는 마크가 분명히 새겨져 있다. 중국에서 만들어온 물건들이 우리 일상들을 지배한다. 심지어 우리 기업이 만든 상품도 국내 공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으로 이주하면서 중국은 큰 공장지역으로 되었다. 하지만 외국으로 공장이 가면서 국내 내수시장은 약해지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2013년에도 중국은 마오쩌둥-덩샤오핑-짱저민-후진타오라는 거대한 4명의 남자의 입김에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연구자는 중국이 2030년 중반에 최고의 나라가 된다고 한다. 중국은 이제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보단 중국 한족의 세계적 위상을 노리고 있고, 그것을 위해 경제적인 성과에 치중한다. 이미 중국의 경제적 위력은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미래를 보며 살아가는 시점에서 중국이란 나라는 적이 아닌 적이 될 것이고, 친구 아닌 친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