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고장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임종석 옮김 / 제이앤씨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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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에 대해 읽어보는 바에서 그렇게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차라리 실존적 자아 분열이라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좋을지 모르고, 인간의 이중적 인격에서 완벽함과 추함을 보인다면 차라리 일본 애니메이션이 좋을지도 모른다. 설국에서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공간에 기차를 타고 온 시마무라에서 주인공은 시마무라에게 시작되다가 작품 후반에 가면 요코와 코마코가 된다.

 

코마코는 시마무라에게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코마라는 말의 글자처럼 시마무라에게 큰 그 무엇이 없어 보인다. 작품 초반에서 끝까지 시마무라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하다. 수동성으로 가득한 이 남성과 이 남성의 눈에 비추어진 요코아 코마코의 이야기는 설국이란 현실 안에도 환상이 있다고 여기게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것이 시마무라라는 존재에서 남자로서 남자다운 요소가 전혀 없다는 점, 모든 대화와 행동의 흐름이 코마코에 의해 돌아간다. 그저 그는 바라보고 기록하는 제3로서 독자에게 비추어진다. 무력한 그의 출신답게 예술을 탐닉하나, 그 예술의 지점에서 동양인이면서 서양의 세계를 추구한다. 동양적 문화를 알아가고 비로소 그 가치를 밝혀 두려고 할 때 오히려 서양적 세계로 가려고 한다.

 

시마무라는 결국 자신의 존재적 기반에 대해 부정하는 인간으로 나에게 보인다. 그런 그에게 코마코란 능동적 여자와 요코라는 헌신적 여성에서 농락 아닌 농락을 당한다. 요코가 코마코의 분신인 이유는 유키오라는 시계를 좋아하던 남자를 계속 가슴에 담았기 때문이다. 죽은 유키오를 위해 묘에 매일 참배하지만, 그 실체적 존재인 코마코는 가지 않는다. 자신의 해리적으로 바라봄으로 갔다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가지 않았다고 하는지, 인간의 이율배반적 요소는 설국이란 그 고장으로 하여금 묘한 느낌이 준다.

 

처음에 기차를 매개가 중요한데, 영화나 소설에서 기차는 이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이다. 철로는 그 모양이 같기 때문에 어디든 같은 공간과 시간을 흘러가기에 철도에서 환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교각이 된다. 기차를 타고온 시마무라에게 설국의 풍경은 자신의 손에 감촉이 여전한 것부터 알 수 있다. 게이샤인 코마코에 대한 아름다운 입술에서 그는 환상을 품으로 왔다.

 

그러나 정작 환상의 세계에선 이방인적인 존재에 불과한 시마무라에게 주도권이란 없다. 단지 환상의 세계의 주인공은 환상 그 자체인가? 코마코가 만든 환상적 분신 요코의 행동에서 날카롭게 보이는 그녀의 행동을 주시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자신의 숭고한 가치에서 모순이 나타난다. 코마코가 게이샤로 활동하는 이유는 유키오의 요양비 마련이었다. 그러나 유키오가 고향으로 오면서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유키오 죽음에 매달리는 요코, 유키오 죽음에 외면하는 코마코, 지난 과거 그녀의 일기장에 유키오란 이름이 제일 앞에 있음에도 그것을 부정한다.

 

하지만 자신이 부정하는 요코에서는 그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는 그리고 유키고의 죽음과 동시에 시마무라에게 코마코에게 잘 해달라고 한다. 자신의 원체에게 육체적 교감보단 정신적 사랑을 요구하는 요코의 입장에선 자신의 인생에서 계속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시마무라는 수동적이다. 도쿄가 현실이고, 설국에서 환상의 세계이고, 환상이 가득한 자신 역시 사라질 환상적 존재인듯 하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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