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님에 대해 다들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신영복 교수가 어떤 분인지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어떤 책을 남겼는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 네 글자만 들어보면 누구나 ‘아!’하고 탄성을 낼 것이다. 소주이름 “처음처럼”이다. 소주 “처음처럼”은 이미 대중들이 자주 마시고 있는 메이커 중에 하나이다. 그 글귀 원본이 신영복 교수님이 적은 글이다. 신영복 교수님은 사상적으로 어마어마한 사유를 지닌 분이기도 하나, 서예가로서 또한 서예와 같이 그림을 그려 넣는 예술가의 혼을 느낄 수 있다.
한국과 세계를 돌아봐도 이렇게 뛰어난 학식과 이성, 그리고 인품과 근성, 더 나아가 예술적 감성과 감수성을 지닌 분은 흔치 않다. 신영복 교수님의 책 몇 권이 시중에 나온 것을 알아도 이때까지 읽어보지 않았다. 단지 신영복 교수의 책보다 매년 나오는 달력을 구매하여 다른 사람에게 선물한 적은 있다. 달력에서 날짜와 더불어 그 달에 대한 그림도 역시 중요하다. 겨울이면 눈과 눈사람이 나오고, 가을이면 맑은 하늘과 과실이 달린 나무가 우리 정서를 풍부하게 한다. 신영복 교수님의 글은 마치 맑은 가을하늘 아래 감나무에 맺힌 맛있는 단감 같은 느낌이다.
나무가 씨앗을 뿌려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려면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교대로 하여 수 년 이상을 보내야 한다. 태풍에 잎사귀가 떨어지고, 가뭄에 가지가 말라간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단감은 배고픈 이들에게 좋은 간식거리가 된다. 내가 단감을 떠올린 이유는 결혼 전 내가 살던 집 마당에 감나무 2그루가 있다. 도심지 내 감나무라 맛은 없지만, 그래도 감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부모님은 농촌출신이고, 다들 배고픈 시기를 보냈다. 배고픈 배를 뒤로 하고 집 마당에 감나무가 열리면 나무를 타고 감을 딴다.
단감 몇 개를 먹으면 주린 배도 채우고, 단감 과실에서 상큼하고 단맛이 올라온다. 신영복 교수님은 마치 단감나무와 같은 분이다. 비닐하우스에서 폭풍과 홍수, 가뭄도 겪지 않은 현재 엘리트 지식인들과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게다가 동서양 고전을 모두 읽었고, 최근 프랑스철학자이던 질 들뢰즈와 펠리스 가타리의 서적도 거론한다. 그의 지평은 동서양이란 공간적 영역에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까지 넓히는 시간적 영역을 통찰하는 지식인이다. 최근 진보성향 지식인 내지 정치인에게 실망한 적이 많았다.
그 이유는 시대적 흐름, 산업적 환경, 경제적 조건, 세계화 흐름이 있을 것이다. 엘리트들의 대학은 언제나 좋은 대학교이다. 진보정치인 내지 엘리트들은 주류대학교 출신이 많다. 그들은 진보의 이름을 내걸지만, 한편으로 엘리트주의가 보여주는 지식의 폭력성을 반성하지 않는다. 성리학을 만든 주자의 저서 중에 <대학(大學)>이 있다. 젊은 지식인 엘리트들의 대학은 상위학력을 지닌 대학교지만, 신영복 교수에게 대학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감옥이었다. 20년 20일, 그 기나긴 시간 속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군부독재가 자리 잡은 암울한 60년대 후반, 사관학교 교관으로 경제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은 반정부 세력으로 몰려 자유를 빼앗겨야 했다.
단지 청구회 활동이 권력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자기가 처음 간 수감방에 사형수와 무기수가 머물던 방이다. 실제 같은 방에 있던 감방 수감자가 사형을 당했다. 죽음과 마주한 곳, 자유를 박탈한 곳, 세상과 단절된 곳, 더 나아가 암울한 시대를 반영해주던 차가운 교도소는 신영복 교수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신영복 교수님이 저술한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란 글은 엄청난 내용이었다. 물론 교도소에서 서신을 확인하기 때문에 신영복 교수님 자신이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의 글은 매우 깔끔하고 청조하며, 맑은 정신에서 드러난 인품 그 자체였다.
학자로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지식인, 가족과 친지를 위해 따스한 글을 남기는 삼촌, 옆에 수감되어 있는 일반 교도소 수형자를 바라보는 인간적 시선, 이 모든 게 인상적이었다. 신영복 교수님은 이 세상의 어둠을 없애는 것이 옳다고 봤지만, 그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해 거만하게 보는 것을 무척 경계했다. 교도소에 처음 온 어느 청년은 너무 가난해서 치약도 없고, 죄수복 안에 속옷도 없었다. 치약과 속옷을 다른 이들이 주자 그 청년은 화를 내며 거부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 청년은 교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사유를 물어봤다.
마치 자기가 그대로 타인의 호의를 받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 자신에 대한 삶의 정체성이 부정당할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다른 이에 대한 시선이 늘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오만함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들의 기준, 보편성의 기준에서 물론 대상자는 틀리거나 전혀 좋은 방향이라 볼 수 없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거나, 타인의 간섭이 아닌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선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아마 지금 진보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이런 신영복 교수님의 경험과 깨달음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세상은 관계성에서 시작한다. 관계성에 대한 부분에서 더불어 나가는 길은 자신의 선에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관점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가끔 못난 사람들이 ‘오기’를 부린다고 하지만, 그 ‘오기’는 불친절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단이란 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님이 바라본 교도소는 완벽한 인간학의 공간이었다. 교도소에 오는 범죄자 중에서 죄질과 심성이 나쁜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 보통 사람과 비슷한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시스템이란 인클로저 앞에서 더 이상 몰릴 곳이 없어 교도소로 온 사람도 많았다. 고의성보단 우발성, 그 우발성을 만들어낸 사회의 차가움, 우리 사회는 너무 차갑게 변하여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저 물건 내지 상품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돈은 최고의 가치이다. 돈은 모든 가치를 화폐라는 단위로써 나타내는 수단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우리 현대인들의 삶이다. 그 삶이 시간으로 제단 되어 지불수단의 척도로 변모된다. 시간을 규정함은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그 시간 안에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여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
돈은 화폐지만, 돈을 위해 노동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의 노동력을 돈으로 산다 해서 그 인간의 인간성 내지 존엄성까지 구매한 것은 아니다. 전에 집에 에어콘을 설치한 적이 있었다. 에어콘 설치 시 다행히 휴일이라, 작업할 때 나도 같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에컨 설치는 9시 반 ~11시 반 사이였다. 날이 그래 무덥지 않으면 부산하게 몸을 움직이는 에어콘 설치 설비기술자들이 작업할 때, 아침을 먹지 않은 나와 와이프는 지켜보고 있었고, 와이프는 아침을 먹지 않아 배고파 10시 정도 라면을 먹고 싶다 했다.
나는 지금 에어컨 설치작업 중이니 먼지가 날릴 수 있고, 그리고 작업 중인데 우리가 라면을 먹고 있는 게 조금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내 집에서 그냥 라면 먹는 게 어떠냐는 말을 와이프는 했지만, 내가 다소 말렸고, 나중에 작은방에 가서 조금 쉬어달라고 했다. 나는 음료수 2개를 미리 사왔고, 그분들에게 드렸다. 물론 에어컨 설치기사들이 일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옆에 없어도, 라면을 먹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나는 그들을 그저 돈만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볼 뿐이지,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들은 우리 집의 손님은 아니나, 방문자들이다. 우리 집에서 에어컨을 설치하여 거기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해도 그들은 사람이다. 신영복 교수님의 글이나 혹은 <자본론>과 같이 노동을 하는 있는 노동자의 노동력이 그저 돈으로만 따지게 된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인생에 대한 글을 적으면서 신영복 교수님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야하고, 가슴에서 발로 움직여야 한다 했다. 본인 자신도 편한 곳에 있기보다 보통 수형자들과 같이 지내고, 작업반에서 직접 기술을 배우고 일도 한다.
손바닥에 고생을 하지 않은 채 펜대만 돌리는 글은 세상을 제대로 들어다 본 글이 아니다. 지금 진보정치인과 엘리트들의 문제점이 뭔지 잘 알 수 있는 글이다. 시대적으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은 군사독재시기에 활발히 일어났다. 많은 이들이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치고, 이들을 대변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여 죽거나 다쳤다. 이때 산업구조는 농업에서 공업으로 바뀌고, 대부분 산업구조가 공업으로 바뀌었다. 당시 노동운동을 하던 분들은 많았지만, 현재 노동운동이 진보정치의 중심 틀에서 보기에 많은 우려감이 들었다.
현재 산업구조는 공업이 아니라 서비스 위주이다. 서비스이기에 농업과 공업은 극대화된 기계화로 생산력을 증가했다. 하지만 농업인구는 감소하고, 공장에는 젊은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우리는 사회적 재화를 누리기 위해 늘 생산된 물품에 대해 노동력을 더하여 또 다른 상품으로 전환된다. 상품의 전환에서 죽은 노동이란 불리는 재료는 그 재료로 변모하기 위해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들어간 죽음노동의 탄생을 위한 노동력은 주시하지 않는다.
옷을 하나 입을 때, 옷감이 폴리에틸렌 계열이고, 폴리에틸렌은 석유에서 나온다. 석유는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으니, 석유를 반입하려면 선박이 직접 산유국에 가서 구매한다. 석유를 화물로 적재할 때 투입되던 선원들의 노동력, 그리고 배를 움직일 때 노동력, 한국 부두에 도착해서 석유를 이송할 때의 노동력, 공장에서 가공할 때의 노동력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는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진 최신의상일 뿐이다. 우리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모든 것은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노동들의 의미가 단순히 돈의 논리로 모조리 해명된다면 그동안 상품으로 시장에 나올 때까지 일하는 노동자의 의미는 없어진다. 물론 생계를 위한 활동으로 노동을 하지만, 그들의 입장은 너무 처량하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인원 비율을 넘어서고, 임금상승비율보다 물가상승비율이 오를 때 우리의 삶은 피폐해져 간다. 이럴 때 가끔 내가 아주 어릴 적 시골집에 갈 때가 생각난다. 아직 어린 나와 형이 엄마 뒤를 따라 종종 걸음으로 따라 시골집에 간다. 늦은 저녁 가로등도 보이지 않은 시골길에 오래된 무덤들을 지나간다. 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골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반겨주고, 할머니가 부엌 가마솥에서 장작불로 만든 밥과 누룽지를 먹으면 매우 좋았다. 이제 전통농촌사회를 기대할 수 없고, 여성에게 모든 가사를 요구하는 것도 안 되는 것은 알지만, 어린 시절 느끼던 그런 추억과 따뜻함은 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차가운 공간에서 차갑게 시간으로 제단 되어버린 인간 속에서 우리의 삶에 오아시스는 있는가? 신영복 교수님은 인간학을 중시했다. 인간이 중심 되는 그 세상에 인간은 오히려 외부로 소외되고 있다.
삶의 경쟁에서 모든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내 삶의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 삶에서 남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새로운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나 우리의 지난 것도 버리지 않은 것도 중요하다. 지난 것들에서 잘못된 점이 많다면 새로운 것 역시 잘못된 게 많다. 그래서 넓게 스펙트럼을 보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보는 것이 우리 삶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