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란 영화를 보면서 주변 관객의 반응을 느껴보았다. 아마 이 영화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상영하는 작품 중에 Summer special란 이벤트 상영회인 점도 있고,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프랑스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국영화의 문제점으로 제작 시작부터 검열이 심한 반면, 프랑스는 그런 점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점에 모호하게 위치한 영화작품들이 프랑스영화는 많다. 물론 이 영화에선 다소 정사씬과 노출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 에밀리를 맡은 여배우 이실드 르 베스코의 경우 상부 가슴은 기본이고, 성기 부분까지 드러난다. 물론 흥분될 수 있기도 하지만, 야하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는다. 영상 시각으로 보이는 무의식적인 감각과 이성으로 텍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전후맥락을 잘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마친 후 많은 분들이 옆에서 별로라거나 혹은 내용이 기대 이하란 반응에서 <사드>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시기가 프랑스대혁명 이후란 점, 그리고 테르미도르반동 전후라는 점이다.

 

17897월 프랑스 바스티유 관장은 총격 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인류 최초 민중이 스스로 앞서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왕족과 귀족, 성직자들은 부패와 무능으로 권력에서 밀려나고, 루이16세는 신민이었던 자들이 이제는 시민이 되어 그를 왕족이 아닌 일개 인간으로 만들었다. 루이16세가 프랑스혁명 이후 바로 죽지 않았고, 해외도피가 발각되면서 목이 잘리게 되었다. 루이16세의 죽음은 자코뱅당의 독재화로 이어지고, 자코뱅의 판결아래 단두대에서 매일 수백 내지 수천의 인간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었다.

 

영화 <사드>는 자코뱅당의 독주가 제일 심하던 1794년이고,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를 비롯한 자코뱅 극단세력은 처음에는 왕족과 귀족의 목을 베더니, 이제는 자코뱅당의 반대 세력인 지롱드파와 자코뱅당 내의 온건세력까지 목을 벤다. 그래서 1794년 로베스피에르의 동지이며 유명한 혁명가 당통을 단두대 앞으로 보냈고, 이 사건을 토대로 게오르크 뷔히너는 <당통의 죽음>이란 연극을 만들고, 안제이 바이다 감독은 <당통>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사드가 수도원으로 옮겨질 당시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가장 무서운 시기였다.

 

그 수도원은 언제 죽을지 모를 귀족들이 운 좋게 뇌물을 주어 피신해 온 곳이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무서운 공포정치와 피 냄새나는 거리에서 도망친 그들에게 수도원은 유일한 은신처이었다. 사드가 여기에 올 때 그는 환영받지 못했다. 사드는 인류가 만든 문학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도발적이며, 정신분석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를 만들었다. 흔히 우리는 SM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여기서 사디즘이 나온 것은 사드의 이름에서 나왔다.

 

그의 유명한 문제저작 <소돔의 120일>

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프랑스 파리 대부호와 권력가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17(119)동안 산장에서 그들만의 향연을 펼친다. 이야기꾼 네 명을 부르고, 각자의 사연을 토대 잔인하고 끔찍한 행위를 되새긴다. 처음에는 성폭행 수준으로 끝나다가, 남색, 분뇨먹이기, 손가락 및 신체 절단까지 이어진다. 사드의 소설에서 이미 그는 프랑스혁명 전부터 감금상태였고, 그는 젊을 때부터 많은 여성들과 섹스스캔들을 일으켰다. 아내의 자매가 수녀로 있었는데도 서로 관계를 맺어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태어나서 청장년을 보낸 시기는 루이14세였고, 루이14세는 짐은 곧 국가라는 왕권신수설을 펼쳤다.

 

왕이란 신에게서 받은 권력이며, 왕이 행하는 모든 게 신의 섭리로 이루어지기에 신을 부정한 사드는 곧 왕국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사드는 신을 믿지 않았고, 무신론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연관을 추구했다. 그의 자연관은 지금이 중요하다는 점이고, 내세는 없으며 언젠가 모든 건 소멸해도 세상을 존재한다는 점이다. 죽음의 두려움에 무서워하기보단 지금이라도 조금 더 즐기기 원하는 실존주의적 인생관을 보여준다.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이며 이데올로그인 장 자크 루소의 사상과 사드의 철학은 많은 차이점은 보여주나, 근원은 같다. 바로 자연성이란 점이다. 루소는 자연적 인간상에서 이미 인간은 사회로 인해 부패하여 더 이상 미개인으로 갈 수 없으나 자신만의 판단력을 살려 미덕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래서 루소의 사상은 이성보단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감성은 이성 이전에 그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에 반해 사드의 자연성이란 인간 존재 자체에서 동물적 감각을 추구한다. 성적행위는 인간 종족 유지만이 아니라 쾌락과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고 여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모두 수도원에 와서 우울하고 불안한 반명 사드는 뭔가 재미있고 흥미로우면 다른 이들까지 즐거움을 준다. 로베스피에르가 찾아와서 행사를 열려고 했을 때 많은 귀족들은 자신의 목이 달라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도 사드는 당당했다. 에밀리는 이런 사드에게 빠지게 되면서 영화는 포르노그래피 영상에서도 하나의 철학을 제시한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에밀리가 처음 성행위를 하려고 했을 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사드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에 대한 흥미, 그가 저술한 책을 읽은 후 불쾌감과 동시에 호기심이다.

 

남성은 성적욕구가 들끓는 존재이나, 여성 역시 성적욕구가 없을 리가 없다. 지겨운 수도원 생활, 억압된 분위기, 공포정치의 극단성에서 그녀는 자신이 갇힌 세계에 절망하기보단 뭔가 새로운 문을 필요했다. 사드라는 문에서 사드는 정원사 청년과 에밀리에게 성행위를 하길 바란다. 청년은 건장하고 착실한 사람이고, 에밀리는 매우 똑똑하고 사리가 밝은 소녀였다. 하지만 에밀리의 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로베스피에르가 오자말자 많은 인간이 단두대 아래 사라져갔고, 에밀리 부모조차 그럴 운명에 처했다.

 

에밀리가 살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임산부는 사형에 처해지지 않은 점이다. 사드는 그녀에게 새로운 쾌락과 세상을 알기 위한 방법이라면 그녀의 부모입장에서 생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프랑스는 계급사회였고, 정원사는 처음 보면 알 수 있듯이 노예라는 단어로 칭해졌고, 에밀리는 귀족의 영애이다. 에밀리가 아버지의 바람 피는 장면을 본 후 실망할 때 정원사가 준 꽃 한송이를 처음에 받다가 건물 내로 들어오자 바로 버린다. 처음 그녀는 계급신분제라는 틀에 메여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드에 의해 그 생각이 달라졌으며, 정원사와의 섹스행위는 단순히 성적욕구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적행위를 하는 남녀 사이에 계급이란 칭호는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사드는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성적인 관념에서 계급사회에서 하위계급과 지배계급은 서로 다른 식으로 성관계를 유지하고, 남성지배계급이 하녀나 평민을 첩으로 두기는 하나, 정부인으로 두지 않는다. 자유라는 단어에서 성적인 해방 역시 그런 의미로 볼 수 있으며, 평등한 관계로도 볼 수 있다.

 

에밀리와 성행위를 고민하는 정원사에게 사드는 정원사에게 채찍으로 자신을 때리라고 한다. 왜 그럴까? 사드는 계급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만약 귀족과 노예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 노예는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의 시각은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려면 프랑스대혁명, 장 자크 루소, 소돔의 120일이란 연계성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란 무엇일까 에서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처럼 공포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아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보면 잘 재현해내었다. 테르미도르 반동 때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먼저 권총자살을 하려 한다. 하지만 권총자살은 실패하고 턱이 입에서 떨어져 나가 붕대로 감싼다. 마지막에 턱에 감긴 붕대를 풀자 그는 통증을 느끼고, 그의 목 위로 단두대의 칼날이 내려온다. 사드의 정부를 데리고 살던 남자 역시 자코뱅당 일원으로 단두대로 사라진다. 영화는 자코뱅당의 몰락 후 귀족들이 다시 자신의 집에 가면서 끝이 난다. 프랑스대혁명은 프랑스 피지배계급의 경제적 빈곤으로 발발했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은 경제적으로 부르주아들이 자신의 돈을 내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 전에 국가와 종교로부터 외면을 받고, 프랑스대혁명 때는 국가와 도덕이란 이름 앞에서 외면 받은 사드지만, 그가 생각한 자유와 평등은 오늘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로베스피에르는 루소는 매우 존경했고, 루소가 죽기 전 그를 방문했으며, 잠을 잘 때 <사회계약론>을 자신의 머리 옆에 둘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루소가 한 가르침에서 제일 첫 구절을 망각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 쇠사슬에 묶여있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심각한 쇠살에 묶여 있다라고 말이다.

 




사드에겐 그런 쇠사슬이 없었다. 물론 너무 성적인 욕망에 집착한 사드이기에 문제적 인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적 인간이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사고를 발견할 수 없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또 다른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여주인공인 이실드 르 베스코의 연기에 많은 인상을 받았다. <사드>2000년에 상영되었지만, 제작은 1999년에 이루어졌다. 1982년생인 그녀가 영화출연 시 나이는 이제 18세 소녀였다. 카메라 앞에 나체로 연기하고, 자신의 음부에 사드 역을 맡은 남주인공의 손을 접촉된다.

 

그래도 그 연기에 충실하게 소화한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굴은 보면 한국의 여자배우처럼 그렇게 미인이 아니란 점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파란 두 눈을 보는 순간 마치 나는 아주 맑은 호수가 거기에 있다고 느꼈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두 눈빛에서 모든 것을 투영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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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8-2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영화를 어떻게든 구해 봐야 겠습니다. 사드 소설은 본 적이 없지만, 영화는 관심이 가네요..오래전 영화라서 구하기 힘들 듯하지만 그래도 구해 봐야 겠어요.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ㅎ

만화애니비평 2016-08-22 13:48   좋아요 0 | URL
오~ 야무님이 이토록 관심을..ㅎㅎㅎ
부산에서 운좋게 상영하더군요..ㅎㅎ

루쉰P 2016-08-2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드와 루소의 공통점이 자연이라니....엄밀히 말하면 계급제 등 당시 숨막히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랄까? 그런 공통점이 있다니...깜놀
만화애니비평님의 식견에 놀랐어요 ㅋ 사실 사드는 밥맛이어서 ㅋㅋㅋ 지나친 성욕주의자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런 면이 있다는 건 새롭네요
아....저는 만화애니비평님 정도의 식견을 언제 가질 수 있을까염
글 진짜 잘 쓰신다 ㅋ

만화애니비평 2016-08-23 09:21   좋아요 0 | URL
루소와 사드는 둘 다 인간 안의 자연성을 추구했는데
루소는 감정이란 인간애
사드는 무의식 속의 성욕이죠

감정과 무의식에서 인간의 구별이 없이 모두 대할 수 있죠,,,
원초적인 것인지 원천적인 것인지의 차이겠지만요